인왕산과 1,500원 국밥

[예그리나(강상무)]

인왕산과

1,500원 짜리 해장국

11월 21일부터 이틀간 서울에 머물렀다. 그동안 서울 출장길이나 가족여행길에는 항상 수도권 안에서만 머물다 시간에 쫓기다시피 항공기에 몸을 싣고 돌아와 솔직히 서울에 대한 동경이나 추억거리는 별로 없는 듯 하다.

이날은 서울 여의도에서 전국 공무원들이 총집결하는 행사가 있었는데 행사 종료 후 곧바로 돌아가는 동료와 기왕지사 왔으니 가족을 동행하여 여행길에 나서는 동료도 있다. 나 역시 입시생인 아들 녀석이 대학을 진학하고 군에 입대하면 좀처럼 가족간 여행이 쉽지 않을 것 같아 네 식구가 함께 하기로 했는데 갑자기 아들 녀석이 심한 감기몸살로 딸애만 데리고 갔다.

이런저런 일로 아들은 서울나들이가 손꼽는데 반해 딸애는 구석구석 아니가본 데가 없어 이번 동행에는 좀 색다른 인상을 심어줄 필요성이 있겠다 싶기도 하고 그동안 제한적 개방에서 지난 해 4월 25일부터 전면 개방하였다는 북악산 탐방을 제안하였지만 딸애는 영 시큰둥한 반응이다.

“아빠! 롯데월드나 에버랜드에 가서 실컷 놀다오면 안될까요?”

“지난 5월에도 가고서는 또 간단 말이야? 이번에는 역사탐방 같은 의미 있는 기행을 하자꾸나.”

결국 어렵게 딸애를 설득했지만 거기에는 남대문 시장에서 구입한 14,000원짜리 윗도리와 같은 미끼가 결정적 역할을 해냈다.

다음 날 일찍 인왕산(仁王山)을 거쳐 북악산 일대에 걸쳐 축조된 서울 성곽탐방을 나섰다.

인왕산을 가는 길목에 위치한 사직공원은 아침 일찍부터 산책 나온 사람들과 배드민턴을 치는 구령소리가 뒤섞여 울려 퍼지고 있었고 길목에 위치한 황학정(黃鶴亭, 서울유형문화재 제25호)에서의 궁사들도 힘찬 활시위를 당기고 있었다.

멀리 인왕산 정상이 손에 잡힐 것만 같았지만 오르는 길은 그리 호락하지 많은 않았다. 높이 338m,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산길을 1시간 여 만에 올랐다. 가는 길에 약수 한 모금은 갈증을 해소해 주기에 충분했다.

경치가 아름다워 예로부터 이곳을 배경으로 그렸다는 산수화가 많고 특히 정선의 ꡐ인왕제색도ꡑ가 유명하다는데 이날은 시계가 어두워 발아래 놓인 서울의 모습을 카메라 앵글에 담질 못했다. 지천에 있는 청와대도 가물가물하다.

정상에서 서대문구와 종로구 일대를 한 눈에 담아두며 성곽을 따라 하산을 했다.

북악산 입구에는 창의문(자하문)과 함께 故 최규식 경무관 동상이 자리하고 있었다. 종로경찰서장 재직시 무장공비침투를 맞아 전사한 그의 공적을 기려 세운 것이다.

북악산(北岳山)은 백악산(白岳山)이라 불리기도 하며 인왕산과 비슷한 342m의 높이와 화강암으로 구성되어 있다. 남쪽 기슭에 자리 잡은 청와대를 습격한 무장공비와 군사적 이유로 통제되었다가 2007년 4월 25일부터 국민의 품으로 모두 돌려주었다.

자하문에서 신분증을 제시한 탐방신청서도 비교적 간단하다.

다만 백악마루에 이르기까지 날선 계단 앞에서 거친 숨소리를 주체할 수 없었다. 속세에서 이리 체이고 저리 체이면서 내 몸이 부셔지는 소리들, 정상까지 900여 개로 이루어진 계단을 하나하나 밞을 때마다 나는 타락과 오욕으로 물들었던 지난날을 묻으려 했다.

그렇게 오른 정상에서의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딸애도 기뻐서 어쩔 줄 모른다. 흐린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멀리 북한산과 서울 하늘이 발아래에 놓이는 그 기분 말이다.

성곽을 따라 하산을 하면서 딸에게 나의 지식을 총동원한 조선시대와 역대 대통령의 비화를 들려주노라니 어느새 숙정문(肅靖門)에 다다랐다. 서울 성곽의 북대문으로 창의문, 숭례문, 광희문으로 이어진 성곽 진입문이다.

삼청공원과 와룡공원을 가는 두 갈래 길을 우연히 선택해 하산했는데 와룡공원이라는 간판이 보였고 그곳이 성균관대학 후문이었다. 마을버스를 타고 종로 낙원동에 하차하고 늦은 점심을 먹고자 기웃거리는데 해장국이 2,000원이라 적혀진 간판이 곳곳에 보인다. 그 중에서도 많은 인파가 몰린 가게를 찾았는데 그곳은 1,500원이다.

낯선 이와 아무렇지 않게 밥상을 마주하고 먹는 1,500원짜리 해장국이 왜 그렇게 맛있는지 후딱 해치우고 주위를 살펴보니 낙원동 ꡐ탑골공원ꡑ이다. 자장면과 해장국들을 단돈 1,000원에 없으면 말고 있으면 ꡐ돈 통ꡑ이라 불리는 박스 함에 넣는 먹거리 골목을 언제가 TV에서 본 기억이 떠오른다.

자장면 한 그릇 값도 안돼는 돈으로 때운 점심을 두고 딸애에게는 인상이 무척이나 깊었던 모양이다. 여태껏 서울 나들이에 이처럼 보람 있는 기행이 또 있었을까 싶은 마음에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주섬주섬 글을 써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