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를 마치며...
발바닥에 잡혀있던 물집의 흔적들이 이제 다 아물어 가고 있다. 답사기간 동안 놀림의 대상이 되었던 물집!
“아빠는 마라톤을 한다면서 발바닥에 물집이 뭐야?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그러면서 짠한 눈으로 쳐다보는 아들놈 앞에서 할 말을 잊었었던 참 거시기한 기억들..
답사가 끝난지 이제 몇 일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옛날 일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막상 답사기를 쓸려고 하니 얼굴들이 또렷이 떠오른다.
같은 4조에 속한 7,8텐트 친구들, 특히 같은 텐트에서 동고동락했던 종민이네가 많이 생각난다. 그리고 답사팀을 이끌고 동분서주했던 대장님과 지도자선생님들...
7월 어느 날, 아내가 가지고온 팜플릿을 놓고 온 가족이 둘러앉았다. 순천YMCA에서 주관하고 수자원공사에서 후원하는 주암호 300리 물길답사 대장정이었다. 사실 날마다 주암호의 물을 마시면서도 주암호에 대하여 아는 게 별로 없었다. 그래서 이 기회에 주암호에 대해서도 좀 알고 컴퓨터에 푹 빠져 있는 아들에게 기분전환과 극기훈련을 시키고 싶어서 내가 아들을 데리고 참여하겠다고 아내에게 이야기하였다. 그러나 6박 7일이란 기간이 너무 길게느껴 진다. 하지만 좋은 취지와 목적의 답사 대장정인데....꼭 참여하고 싶었다. 그러나 출정 시작 날짜가 다가올수록 내내 마음 한쪽에 무언가 좀 무게감이 느껴지곤 했다. 그 무게감은 과연 아들이 6박 7일을 잘 견디어 줄지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나의 생각은 답사 첫날이 지나면서 기우였음이 드러났다.
8월 8일 월요일 아침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내의 승용차로 주암호에 도착해 보니 이미 여럿이 모여 있다. 출정식이 진행되는 동안 여러 가지 생각들로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일단 출발하니까 머릿속이 개운했다. 모후산 등반이 시작되었다. 산을 내려가면서 계곡물을 받아 물병에 넣어 마셨다. 이렇게 깨끗한 물이 사람의 손을 타면 더러워진다고 생각하니 속으로 많은 반성이 되었다. 그리고 동반한 자연환경해설가님들의 풀과 나무에 대한 설명을 들으니 지루함이 가셨다. 어머니의 품 같은 모후산을 넘어 후곡수련원에 도착하니 하루 종일 오락가락하는 비에 젖은 운동화 때문에 발에 물집이 잡혔다. 아들은 멀쩡하다. 이게 무슨 망신인고.... 비교적 수련원의 좋은 시설 때문에 별 불편없이 지낼수 있었다. 밤에 강당에 모여 주암호 감시단장님의 말씀을 들었다. 주암호에 대한 중요성과 주암호의 수질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시는 단원들의 노고에 머리가 숙여진다. 400만 광주전남 도민들의 젓줄이 한 순간의 방심으로 상수원으로서 가치가 사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책임감도 느껴진다.
8월 9일 화요일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삼복더위에 뙤약볕이 아닌게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마디로 날짜 한번 기가막히게 잡았다는 생각이 든다. 21킬로의 행군이 좀 힘들고 지루하게 느껴졌는지 초,중학생 답사대원들이 “얼마 남았냐”고 자주 물어온다. 그때마다 어른들의 대답은 “얼마 안 남았다”이다. 21킬로 내내 주암호의 경관을 보면서 행군을 해서인지 크게 지루함을 느끼지는 않았다. 대원사에 도착하여 산사 체험에 들어갔다. 절 음식, 주지스님의 법문, 무엇보다도 법문 후에 대웅전을 내려오면서 본 연못에 비친 연등은 감탄을 자아내게 하였다. 주지스님의 배려로 다음날 아침 티벳박물관도 감상할 수 있었다. 박물관 2층의 지장탱과 시왕탱을 감상하는데 관람시간의 대부분을 보냈다.
8월 10일 수요일 여전히 비를 맞고 하루를 시작한다. 아침에 먹는 주먹밥은 왜이리 맛있는지.. 특히 아들 녀석이 좋아한다. 동네 이장님이 닦아놓은 천봉산 산길을 따라 봉갑사로 넘어갔다. 봉갑사 옆 개울물에서 한바탕 물놀이가 벌어진다. 물놀이후 점심은 더 맛있는 것 같다고 아들이 이야기한다. 점심 후 국도를 지나기 때문에 대장님을 비롯한 지도자 선생님들의 안전사고에 대한 걱정이 대단하다. 지도자 선생님들의 노고 때문에 무사히 복내면 소재지를 지나 복내초등학교에 도착하여 처음으로 텐트를 치고 밤을 맞이한다. 대학시절 친구들과 놀러가서 텐트를 치던 생각이나서 신이 났다. 3일째 빨래가 마르지 않아서 썩는 냄새가난다. 냄새나는 빨래를 다시 빨아서 말려보지만 날씨를 봐서는 도저히 마를 것 같지는 않다.
8월 11일 목요일, 빗속에서 텐트를 철거하고 복내면사무소로 향했다. 면장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복내면민들의 주암호를 지키기위한 노력에 박수를 보냈다. 몇 년 전에 들은 이야기로는 로는 보성군민들이 주암호에 대하여 불만이 많다고 들었었다. 그 이유는 보성주민들이 먹지도 않는 주암호 물 때문에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생활에 제약을 받아야하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이제 보성지역 주민들이 주암호를 지키기위해 노력하는 것을 보면서 깨끗한 물에 대하여 모두가 공감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본다. 면사무소를 나와 자연환경을 이용한 정화시설인 바이오파크를 돌아보았다. 관리주체의 소홀함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교육적인 가치는 있다고 생각되었다. 길을 재촉하여 문덕초등학교로 향했다. 행군의 사이에서 길가의 쓰레기를 줍는 대원들이 보였다. 자발적인 답사대원들의 행동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푹푹찌는 날씨를 뚫고 문덕초등학교에 도착하였다. 텐트를 치고 여장을 정리한 뒤 답사대장님과 비디오 촬영기자님의 통키타에 맞추어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옛 추억과 함께 그날의 피로를 풀었다.
8월 12일 금요일, 오랜만에 날씨가 아주 맑다. 오늘은 더위와의 전쟁일 것 같다. 차량 왕래가 비교적 많은 국도를 따라 송광초등학교까지 이동해야한다. 아스팔트의 지열이 장난이 아니다. 안전사고예방을 위해 대오를 정리하느라 지도자선생님들의 목이 쉰다. 뜨거운 아스팔트 열기를 뚫고 송광초등학교로 행한다. 가는길에 보니 주암호 상류쪽 구석진 곳에 하얀 스치로폼같은 부유물들이 물가쪽에 떠내려와 몰려있다. 바라보는 마음이 편치않다. 송광초등학교에 도착하여 송광면장님의 말씀을 들었다. 주암호 수질보호를 위해 송광면에서는 밤나무 밭에 농약을 하지 않는다고 하신다. 수확이 떨어지는 것을 감수하시면서도 농약 사용을 자제하시는 송광면민들의 노력에 고마움을 느낀다. ‘송광 밤 파이팅! 송광면민 파이팅!
밤에 수박을 이용한 가면 만들기를 하였다. 결과를 보면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뜻 깊은 행사였음을 알았다. 주최 측의 아이디어가 빛난 밤이었다. 주암호 300리 물길답사를 주제로 한 팀이 1등상을 받았다. 시상식 후에 아들과 나는 내일 아들의 영어 시험 때문에 부득히 답사를 하루 접을수 밖에 없었다. 아내의 차에 몸을 싣고 일시 귀가하였다.
집에 와서도 캠프가 자꾸 떠오른다. 토요일 아침 일어나서도 아들과 나는 지끔 쯤 대장정대원 들이 무얼 하고 있겠다 하며 이야기한다.
8월 14일 아침 일요일 우리는 일찍 일어나 준비를 하고 죽학분교로 향했다. 하루밤을 같이 하지 못함이 여간 안타깝고 서운한 게 아니었다. 어쨌든 대장정단은 마지막 일정인 상사호를 향해 출발했다. 상사호를 가면서 상사호 순환도로 주변의 쓰레기를 주웠다. 주워도 주워도 끝이 없다. 시민들의 자연보호의식이 아쉽다.
드디어 가족들과 관계자님들이 기다리는 상사호에 도착하니 대장정단을 환영하는 음악과 함께 활기찬 분위기가 느껴진다. 골인지점을 통과하며 울려퍼지는 음악을 들으니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눈물이 나올것 만 같다. 순간 대장님을 보니 대장님의 눈가에 눈물이 보인다. 애써 감추려하지만 대원들은 다 보았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다른 지도자 선생님들도 눈시울을 적신다. 대장정을 마무리하면서 모든 장정단원들이 가슴 벅찬 감동을 느겼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번 대장정 행사를 지난 5년간 구상하시고 실천에 옮기신 대장님의 감회는 남 다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 사고 없이 6박 7일의 대장정을 무사히 마치게 된 것은 수자원공사와 직원분 들의 아낌없는 지원과 장정단 대장님과 지도자 선생님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답사를 통해서 주암호에 대하여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고 자연사랑 물사랑의 중요성을 더욱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렇게 좋은 체험을 하게 해주신 수자원 공사와 순천 YMCA관계자 여러분께 다시 한번 머리숙여 감사드립니다. 두서없이 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05년 8월 18일 정공련
첫댓글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현직 교사를 만나 행복했습니다. 지역에 대한 관심과 열정만 보아도 아이들과 어떻게 생활하실지 훤합니다. 다음 장정엔 강사로 나섬이 어떠실런지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행복하십시오.
강사를 하시죠
물집짜주신 덕분에 편하게 걸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다 낳았구요. 정말 고마웠습니다.
학생들의 답사기가 보고싶어요. 중딩 여러분! 제발 올려주세요.
동욱이 아버님~!^^ 대장정 기간동안 참 수고 많으셨습니다. 특히 험난한 산을 오를 때 뒤에서 너무 수고하셨어요^^ 글도 너무 잘쓰셨어요! 정말 다음엔 강사하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