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암산 초입의 수도원은 느티나무 그늘이 부처님 품처럼 넉넉한 절이다.
모처럼 주지스님과 차 한잔을 마시는데, 다실에 걸린 그림 한점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수묵채색의 기법으로 화폭 가득 나팔꽃을 그린 족자였다.
그림 속의 나팔꽃은 새벽녘에 막 피어나는 개화의 순간을 표현하고 있었고,
화제(畵題)를 보니, '만신추로입다시(滿身秋露立多時)' 라고 적어놓았다.
청초한 나팔꽃에 대한 기막힌 찬사가 아닐 수 없었다.
온몸 가득 가을 이슬 적시고 눈부신 시간 속에 서 있다는 뜻.
누구나 알듯, 나팔꽃은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는 꽃이다.
그러므로 그의 일생은 단 하루가 전부다.
그렇기 때문에 나팔꽃의 개화는 가장 눈부신 삶의 절정인 것이다.
따라서 나팔꽃이 가슴 시리게 아름다운 것은 너무나 고귀한 그의 생애 때문이다.
오래 머물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아니라 순간 순간의 간절함을 전해주는 것이다.
초여름에 피기 시작하여 초가을 까지 피고 지는 나팔꽃,
그 나팔꽃이 가을에 피었다면 얼마나 청초하고 아름다울까.
그래서 가을날 아침에 이슬을 머금고 피어 있는 나팔꽃은 더욱 애달프고 선명하다.
대신 나팔꽃은 그 하루를 가장 화려하고도 소중하게, 후회없이 살다 가는 것이리라.
- '오늘이 전부다' (현진 玄眞 스님 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