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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사무엘상 17장 32~47절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였다. "누구든지 저 자 때문에 사기를 잃어서는 안 됩니다. 임금님의 종인 제가 나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겠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다윗을 말렸다. "그만두어라. 네가 어떻게 저 자와 싸운단 말이냐? 저 자는 평생 군대에서 뼈가 굵은 자이지만, 너는 아직 어린 소년이 아니냐?" 그러나 다윗은 굽히지 않고 사울에게 말하였다. "임금님의 종인 저는 아버지의 양 떼를 지켜 왔습니다. 사자나 곰이 양 떼에 달려들어 한 마리라도 물어가면, 저는 곧바로 뒤쫓아가서 그 놈을 쳐죽이고, 그 입에서 양을 꺼내어 살려 내곤 하였습니다. 그 짐승이 저에게 덤벼들면, 그 턱수염을 붙잡고 때려 죽였습니다. 제가 이렇게 사자도 죽이고 곰도 죽였으니, 저 할례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도 그 꼴로 만들어 놓겠습니다.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자를 어찌 그대로 두겠습니까?" 다윗은 말을 계속하였다. "사자의 발톱이나 곰의 발톱에서 저를 살려 주신 주님께서, 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틀림없이 저를 살려 주실 것입니다." 그제서야 사울이 다윗에게 허락하였다. "그렇다면, 나가도 좋다.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길 바란다." 사울은 자기의 군장비로 다윗을 무장시켜 주었다. 머리에는 놋투구를 씌워 주고, 몸에는 갑옷을 입혀 주었다. 다윗은, 허리에 사울의 칼까지 차고, 시험삼아 몇 걸음 걸어 본 다음에, 사울에게 "이런 무장에는 제가 익숙하지 못합니다. 이렇게 무장을 한 채로는 걸어갈 수도 없습니다" 하고는 그것을 다 벗었다. 그렇게 무장을 해 본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에, 다윗은 목동의 지팡이를 들고, 시냇가에서 돌 다섯 개를 골라서, 자기가 메고 다니던 목동의 도구인 주머니에 집어 넣은 다음, 자기가 쓰던 무릿매를 손에 들고, 그 블레셋 사람에게 가까이 나아갔다. 그 블레셋 사람도 방패 든 사람을 앞세우고 다윗에게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그 블레셋 사람은 다윗을 보고 나서, 그가 다만 잘생긴 홍안 소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그를 우습게 여겼다. 그 블레셋 사람은 다윗에게 "막대기를 들고 나에게로 나아오다니, 네가 나를 개로 여기는 것이냐?" 하고 묻고는, 자기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였다. 그 블레셋 사람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어서 내 앞으로 오너라. 내가 너의 살점을 공중의 새와 들짐승의 밥으로 만들어 주마." 그러자 다윗이 그 블레셋 사람에게 말하였다. "너는 칼을 차고 창을 메고 투창을 들고 나에게로 나왔으나, 나는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 곧 만군의 주님의 이름을 의지하고 너에게로 나왔다. 주님께서 너를 나의 손에 넘겨 주실 터이니, 내가 오늘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사람의 주검을 모조리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밥으로 주어서, 온 세상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알게 하겠다. 또 주님께서는 칼이나 창 따위를 쓰셔서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여기에 모인 이 온 무리가 알게 하겠다. 전쟁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주님께 달린 것이다. 주님께서 너희를 모조리 우리 손에 넘겨 주실 것이다." <표준새번역>
여러분들은 '영적 전쟁'이라는 말을 알고 계십니까? '전쟁'이라는 단어는 익히 알고 계실 것이고, 그 전쟁이라는 단어에 '영적'이라는 말을 붙이면서 주로 그리스도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그렇다면 '영적전쟁'과 '전쟁'의 가장 큰 차이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단순히 '영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서 나라나 민족간의 전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존재인 우리들의 영이 무엇인가와 싸우는 전쟁이라는 뜻을 품고 있다는 차이일까요? 폭격기나 탱크나 칼과 총이나 화학 무기 등의 물질적이거나 현실적인 것을 무기로 싸우는 전쟁이 아니라 무엇인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으로 공격하거나 방어한다는 차이일까요?
여러가지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영적전쟁과 전쟁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목적'입니다.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가 분명히 정해져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입니다. 나라와 민족간에 일어나는 전쟁의 목적은 딱 하나, '승리'일 것입니다. 생각할 수 없는 무서운 방법으로 우리가 얼마나 강한지를 보여주어서, 완전히 폭파시키고 쓰러뜨려서, 상대방으로부터 패배를 인정하게 만든 후 누가 더 강한지를 똑똑히 알려주는 것이 바로 '전쟁'입니다. 그런데 '영적전쟁'의 목적은 완전히 다릅니다. 영적전쟁의 목적은 딱 하나뿐입니다. 바로 '하나님'입니다. 오직 '하나님'이 드러나기 위해, '하나님'을 드러내기 위해 치르는 전쟁이 바로 '영적 전쟁'입니다. '하나님'이 싸우시고, '하나님'의 임재와 힘이 드러나며, '하나님'을 위한 결과로 종지부를 찍는 바로, '하나님'의 전쟁이 바로 '영적전쟁'인 것입니다.
언뜻 보면 '영적 전쟁'을 치르는 것은 분명 나 자신인데..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반은 맞지만, 반은 틀린 생각입니다. 그 영적전쟁을 싸우는 장소가 내 내면이거나 내 주변이기에 반은 맞지만, 그 영적전쟁을 싸우는 것은 내가 아니기에 반을 틀린 것입니다. 나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나의 전쟁임에도 불구하고, 마땅히 이 모든 전쟁을 '하나님'이라는 주연에게 넘기는 나는 조연이 되는 전쟁이, 바로 '영적 전쟁'입니다. 그러니 내가 시작하는 것이지만 나를 위한 전쟁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전쟁임을 미리 선포합니다. 그리고 내가 직접 전쟁을 하지도 않습니다. 더 나아가 내가 마무리하지도 않는 전쟁이 되는 것입니다. '언제 내게 그런 상대가 영적 전쟁을 걸어오기나 했었나'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하나님이 시작하시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나를 대신해서 싸우시고 승리하시는 전쟁입니다.
그런데 대부분 이 영적전쟁에서 실패하는 순간이 바로 '이 때'라는 것 또한 우리는 잊지 말아야합니다. 하나님을 위해 영적전쟁을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한 순간인 하나님이 나를 대신해서 싸우려고 하실 때 그것을 거부하고, 내가 싸우려 한다면 반드시 전쟁에서 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혹시라도 '하나님'을 위해 내가 직접 싸운다는 명목을 버려야 합니다. 그 싸움은 내가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그 싸움도 하나님이 하십니다. 하나님이 싸우시도록 양보해주셔야 합니다. 조연과 주연은 반드시 정해진 역할을 수행해야만 합니다. 조연은 주연이 잘 마무리할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대신해서 싸우는 전쟁이라는 '믿음'이 내게 필요한 유일한 무기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 무기를 사용하지 않고, 내가 주연이 되려고 할 때 '영적 전쟁'의 결과는 불보듯 뻔합니다. 어쩌면 우리가 '영적 전쟁'에서 지기를 바라는 존재들이 가장 바라는 점이 이 '영적 전쟁'이 시작될 때 하나님이 아닌 자신이 직접 뛰어드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영적 전쟁'을 치르기 위해서 처음부터 '하나님'께 자리를 내어드리십시요. 싸우려고 하지 않아도 됩니다. 중간중간에 끼어들지 않아도 됩니다. '하나님'이 하시도록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하실 것입니다. 바로 그럴 때 '승리'라는 결과를 보게 될 것입니다.
잘아시다시피 오늘 함께 나눈 본문은 단순히 성경에만 등장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이야기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모든 약해 보이는 자들이 강해 보이는 자들을 마주할 때, 싸울 때, 이길 때 사용하는 예화이며, '언더독'들의 화려한 승리를 나타날 때 사용되기도 합니다. 그러다보니 '다윗과 골리앗' 보통 이렇게 제목을 짓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당연히 읽는 사람들은 그렇게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이 본문을 읽고 제목을 짓는다면 좀 달라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오히려 '다윗과 골리앗'은 부제가 되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다윗이 이 싸움에 나서게 된 이유가 더욱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를 위해서 오늘 본문이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결코 사울이라는 왕을 대체할 '다윗'이라는 인물의 드라마틱한 등장을 위해서 기록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오히려 앞으로 있을 수많은 '영적전쟁'에서 다윗이 보여주게 될 '믿음의 승리들'의 전초전을 보신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블레셋의 '골리앗'이라는 거대한 벽을 마주한 그 어떤 유대 군인도 계속되는 모욕과 만행에도 불구하고 ,두려움에 선뜻 나서지 못하고 쭈글이들이 되어 뒤로 물러나 있는 순간에 군인은 당연히 아니었고, 그저 아버지의 심부름 때문에 그 자리에 오게된 어린 소년 다윗만이 너무 순진무구하게도 골리앗의 모욕과 만행을 듣자마자 당연하다는 듯이 분노를 일으킵니다. 일찍이 하나님은 유대인들에게 늘 이야기하셨습니다. "전쟁의 승패는 나에게 달려 있다. 그러니 너희들은 나를 의지하고 전쟁에 나서라" 그런데 유대인들은 일찍부터 이 말씀을 늘 기억에서 지운채 전쟁에 나서고 있는 듯 합니다. 그러니 그들이 목숨처럼 생각하는 '십계명' 중 하나님을 모독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는 수치의 순간에도 아무도 나서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힘을 의지하면 당연히 골리앗과 1:1 싸움에서 이길 수 없습니다. 이런 너무도 지극히 현실적인 시선만을 가지고 있었던 어른들, 군인들 사이에 소년, 목동 다윗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리고 당당하게 선포합니다.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독하는 자를 어찌 가만히 두겠습니까?" 이 다윗의 선포는 이제 이 블레셋과의 전쟁이 '영적 전쟁'이 된 것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습니다. 다윗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냥 블레셋과 이스라엘간의 '전쟁'이었지만, 다윗이 믿음의 선포 뒤로는 바로 이 '전쟁'이 '영적 전쟁'이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만군의 여호와'가 이제 전쟁의 앞자리에 서시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분명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의 믿음은 확실했습니다. 자신이 곰을 잡던 시절에 쓰던 무기들을 의지한 것이 아닙니다. 어린 소년 다윗의 고백을 한 번 들어보십시요. 그리고 그 고백을 우리의 고백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개역개정)" 칼과 창과 단창으로 하는 '전쟁'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가는 '영적전쟁'의 서막이 오른 것을 선포하는 다윗의 '믿음'에 우리 모두는 신앙의 전율을 느껴야 합니다. 네. 그렇습니다. '믿음' 그것이 다윗의 유일한 무기였습니다. '영적 전쟁'에서 가장 대단한 무기는 그래서 '믿음'인 것입니다. 저는 그래서 흔히 '다윗과 골리앗'이라 불리는 제목은 부제로 돌리고 본 제목을 '다윗! 하나님을 위해 조연을 택하다'라고 바꾸어 보고 싶은 것입니다.
우리는 '다윗과 골리앗' 1:1 싸움의 결과를 알고 있습니다. 아..혹시라도 '다윗의 승리'로 알고 계신다면 싸움의 결과를 모르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 싸움의 결과는 '하나님'입니다. 왜냐구요? 바로 다윗의 고백에서 알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너를 나의 손에 넘겨 주실 터이니, 내가 오늘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사람의 주검을 모조리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밥으로 주어서, 온 세상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알게 하겠다. 또 주님께서는 칼이나 창 따위를 쓰셔서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여기에 모인 이 온 무리가 알게 하겠다. 전쟁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주님께 달린 것이다. 주님께서 너희를 모조리 우리 손에 넘겨 주실 것이다." 아멘! 여기 17장 46, 47절에 등장하는 서술어의 모든 주어는 다윗이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입니다. 다윗은 전쟁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자신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다고 분명하게 고백합니다. 그리고 이 전쟁이 왜 '영적전쟁'인지 궁극적인 이유를 선포합니다. "온 세상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알게 하겠다!" 할렐루야! 이것이 바로 영적전쟁의 목적입니다. 영적 전쟁의 목적은 딱 하나 뿐입니다. '하나님'을 드러내는 것이며, '하나님'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렇게 싸움이 시작하기도 전에 싸움의 결과를 선포합니다. 자신의 승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승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자신이 조연이 되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주연이신 '하나님'을 위해 더욱 더 빛나는 '조연'이 된 다윗이 그래서 큰 박수를 받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이 드러나는 것과 동시에 다윗의 '믿음'도 빛을 발합니다. 이것이 '영적 전쟁'의 결과입니다. '영적 전쟁'을 잘 치러낸 그리스도인은(하나님께 주연을 양보한 그리스도인은) 그렇게 믿음이 한단계 더 성장합니다. 한걸음 더 하나님께 가까이 갑니다. 다윗처럼!
혹시 요즘 영적 전쟁을 하고 계신 중이십니까? 혹시라도 왜 이렇게 결론이 안 나는 지지부진한 영적 전쟁이 오래 지속되고 있는지 궁금하십니까? 왜 똑같은 영적전쟁을 주기적으로 하고 계신지 아십니까? 이상하게 영적전쟁에서 승리했다고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나의 믿음은 한단계 추락했고, 한걸음 하나님과 더 멀어졌다면 지금 겪고 있는 모든 상황은 사실상 '영적전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으셔야 합니다. 그냥 그것은 '유혹'일뿐이고, '괴로움'일 뿐이고, 때론 '억울함'이며, '다툼'이며 '속상함'이며, 일상 속에서 방치해둔 '죄의 잔재'일 뿐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영적 전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괴롭힘만 당하고 있는 것이고, 맞서 싸울 생각이 없어서 피해 도망다니는 중이며, 그냥 못본척 방치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하나님께 이 전쟁을 맡기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때론 아주 드물게 그렇게 '영적 전쟁' 중이라고 말하면서 마치 '치열한 신앙생활' 중인 것처럼 그 상황을 즐기고 계시는 분들도 있으신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설사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냥 그것은 단순히 '전쟁'에 불과합니다. 분명 그 전쟁에서는 이길 가능성이 희박해 보일 것입니다. 당연히 하나님이 하시지 않는다면 어떤 '승리'도 경험하지 못하실 것입니다. 마치 골리앗을 멀리서 그냥 바라만 보고 있는 유대 군인들의 모습을, 사울의 모습을 잊지 마십시요. 혹시라도 그게 여러분의 모습은 아닙니까? 분명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믿는다면 그만 방치해야 합니다. 이제 진짜로 '영적전쟁'으로 바꾸어야 할 때입니다. 우리 안에 잠자고 있는 '다윗'이 발동되어야 합니다. 이제 우리 안에 '다윗의 고백'을 당당히 꺼내어 선포해야 할 때입니다. 이미 여러분들 모두 소유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지금 '전쟁'을 '영적 전쟁'으로 바꾸십시요.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하시고 당당히 조연이 되어 무대 뒤로 물러나십시요. 바로 그 때 주연되신 하나님께서 등장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승리하시는 것을 똑똑히 경험하게 되실 것입니다. 그리고는 찬양이 절로 나오실 것입니다. "아~역시 하나님! 의지합니다.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주연을 위해 기꺼이 조연이 되는 삶이 억울하게 생각되십니까? 모두 '주연'이 되지 못해 안달이 난 세상 속에서 '조연'이 되라니 도저히 용납하기가 힘드십니까? 그것 역시 현실 안에 갖혀서 신앙생활마저 사회생활로 만들고 있는 어리석인 우리의 생각입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을 위해 조연이 되는 것입니다. 기쁨으로, 자발적으로 하나님을 위한 조연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그런 것입니다. 내가 주인공인 삶에서 하나님이 주인공인 삶으로 기꺼이 옮겨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더 아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위하여 조연을 선택한 나를 두고 하나님은 이야기하십니다. "나는 너를 위해 싸운 것이다.",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 사랑하는 당신을 위해, 독생자 아들 '예수 그리스도'까지도 아낌없이 내어줄만큼 사랑하는 당신을 위해 이 '영적 전쟁'을 기꺼이 싸워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조연을 선택한 것에 너무 억울해 하지 마십시요. 세상이 볼 때는, 다른 사람이 볼 때는 조연일지 모르지만 하나님께 당신은 언제나 가장 중요한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니 '영적 전쟁'이 찾아올 때마다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늘 함께하시는 '하나님'이 여러분을 대신해서 싸우실 것이고, 승리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이 '영적 전쟁'을 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주연을 위해 조연이 되는 선택! 이것이 바로 '영적전쟁'이 가진 비밀입니다.
마지막으로 짧은 글을 줄이면서 CCM 소망의 바다' 1집 중 한 곡의 가사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제목은 '나의 싸움이 시작될 때'입니다.
"나의 싸움이 시작될 때 놀라운 일들이 보이네
하늘의 하나님께서 나의 앞에 서 계시리
그 보좌를 둘러쌓고 하늘의 천사가 움직이면
주님 의지하는 자들을 주가 친히 도우시네
전쟁은 나의 것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
우리안에 계시는 그분의 역사하심으로
나의 싸움이 끝나갈 때 놀라운 일들이 보이네
빛나는 생명의 면류관 나를 위해 준비됐네
힘겨웠던 지난날에 눌렸던 고통과 한숨소리
나의 눈에 고인 모든 눈물 주가 친히 씻기시네
전쟁은 나의 것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
우리안에 계시는 그분의 역사 하심으로
전쟁은 나의 것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
우리안에 계시는 그분의 역사하심으로
이땅에 하늘의 영광 가득히 채우시리라"
다시 한번 잊지 않으시길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영적전쟁은 당신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하시고, '하나님'의 이름이 드러날 것입니다. 바로 당신이 영적전쟁에서 마땅히 조연을 선택할 때 말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위한 '명품조연'이 되어 주십시요. 그리고 하나님과 함께 승리를 만끽하는 삶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Don't forget! The battle is the Lord’s"
https://www.youtube.com/watch?v=qdTCpYiux7M(나영환, 하나님의 승리)
https://www.youtube.com/watch?v=yfWzBI1pjgg(어노인팅,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dKn97i_ucP0(천관웅, mighty gener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