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으로 건너간 우리문화의 현장
- ‘동북아 고대사 한·일역사탐방’기
최귀조(평화언론포럼 회장 · 전 한국경제 종합편집부국장)
필자는 지난 4월 20일 ‘코리안드림역사문화재단’이 ‘동아시아평화를 위한 역사포럼’과 공동으로 주관한 ‘2023 춘계 동북아고대사 한·일역사탐방’행사에 참가하는 행운을 만끽했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의 시작과 한반도의 문화교류’란 부제를 내걸고 추진한 이번 행사에는 일본 고고학자등 30여명의 국내외 인사들이 참가했다. 최근 윤석열대통령의 일본 방문을 계기로 한일관계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는 때라 각별한 감회를 느끼며 인천 국제공항을 떠나 3박 4일 동안 시종일관 진지한 분위기에서 일정을 소화했다. 끝까지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각별히 신경을 써준 집행부의 노고는 물론 해박한 지식으로 해설을 맡아 준 사학자 윤정하 교수와 일본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는 이보순 가이드에게 감사 드리며 현장에서 보고 배우고 느낀 것을 생각나는 대로 돌이켜 본다.
0-일본 나라 (奈良)시대 출발은 백제
이번 행사의 성과는 한마디로 한·일 문화교류를 일본 현장에서 직접 확인한 점이라 하겠다. 특히 한반도에서의 정세 변화가 일본 열도에서의 왕조(王朝)의 교체, 고분시대-나라시대-헤이안시대로의 이행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 그 과정에서 일본이라는 국가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그 길을 따라가면서 다시 한 번 민족적 자긍심을 느끼게 된 것이다.
우리가 탐방한 지역은 일본역사에서 고분시대 나라시대 해이안시대의 중심지역에 해당하는 곳이었다. 일본이 시작되는 미와산(三輪山) 자락 아스카(飛鳥)에서, 망국의 한을 품은 백제인들이 정착하여 새로운 나라를 꿈꾸었던, 비파호수가 내려다보이는 교토 히에이산(比叡山)까지 마치 그 옛날 삼국시대로 돌아간 듯, 만감이 교차했다. 역대 일본 천황 중 신(神)자가 들어가는 천황들의 시대에 일본 열도에서는 이전 시대와는 확연하게 구분되는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났는데 공교롭게도 한반도에서의 정세 변화와 깊이 연동되어 있었다는 것은 무엇을 시 사 하는가. 바로 우리 문화가 일본으로 건너간 현장이 아닌가 볼수록 만감이 교차했다.
어디 그뿐인가. 고구려 장수왕 대에 백제가 한성을 상실(A.D 475)하는 시기에 오사카 평야에서 가와치(河內) 시대가 시작되고 백촌강(白村川) 전투(663)의 패전으로 백제가 최종적으로 한반도에서 사라지면서 일본 열도에서는 ‘나라(奈良)시대(710~794)'가 출발하게 된 동북아 고대사는 바로 우리 문화가 일본에 미쳤음을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다.
0 우리 문화 살아 숨 쉬는 일본의 불교문화
* 동대사(東大寺)
일본 불교 화엄종의 총본산으로 동대사 대불전은 세계에서 가장 큰 목조건물이다. 대불전 안에는 14.98미터의 세계최대 청동대불이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고 주변엔 1,200 여 마리의 사슴이 함께 하는 사슴공원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 대불 사찰 건립에는 도래인(渡來人 백제인을 말함)의 공헌을 빼놓을 수 없는데 백제인 후손인 양변 승정이 이 절의 창건에 크게 공헌했다고 전한다. 또한 이 절 대불을 도장한 금박은 백제왕가의 후예인 경복이 무쓰지방에서 채취한 사금으로, 백제인이 대불건립의 주요한 역할을 담당했음을 알 수 있다.
* 법륭사(法隆寺)
요메이천황(用明天皇)의 아들 쇼토쿠태자(성덕태자)가 서기 601~607년에 세웠다고 전해지며 현존하는 일본 최고의 목조건축물이다.
고구려 승려 담징의 벽화가 있었다고도 전해진다. 백제 기술자들이 건축한 것으로 알려진 오층탑은 아스카시대에 부처님의 신성한 유물을 모시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 오오카미 신사(大神神社)
일본 나라현에 있으며 대물주신(大物主神)을 받든다. 삼륜신사(三輪神社) 삼륜명신(三輪明神)이라고도 한다. 역사적으로는 가장 오래된 신앙형태를 지닌 신사로서 유명하다. 숭신천황시기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일본신도의 기원은 신라에서 전해졌다고 전한다)
* 가시하라 고고학연구소 부속박물관(奈良県立橿原考古學 硏究所附 博物館)
1938년에 설립된 나라현립 가시하라 고고학연구소의 부속 박물관으로 나라현 내에서 실시된 발굴조사와 연구 성과를 볼 수 있다. 한반도계 유물이 대거 발굴되어 가야 백제와의 연관성을 추정케 한다.
* 이시부타이 (石舞臺)
아스카 역사 공원 내에 있는 일본 최대의 거석 고분이다. 아스카 시대 6세기 말부터 7세기 초쯤에 만들어진 것으로 백제계호족 세력인 소가노 우마코 대신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 다이센 고분, 인덕천왕릉(仁德天皇陵)
오사카 사카이시에 있는 전방후원분 고분이다. 세계 최대의 다이센 고분은 인덕천황릉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인덕천황은 고분시대 일본 제16 대 천황이다. (3-4세기) 이 고분에서 나온 환두대도는 백제계유물과 아주 흡사해 백제문화가 일본으로 건너갔음이 분명하다.
* 백제왕신사(百濟王神社) : 백제사
일본 오사카 히라카타시(校方市)의 주큐(中宮)에 있는 사당으로 제신(祭神)으로 백제국왕과 우두천왕(牛頭天王)을 모시고 있어 눈길을 끈다.
737년 3월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의 직계 후손 남전은 종삼위라는 관직에 올랐지만 병에 걸려 같은 해 9월 사망했는데 그의 죽음을 슬퍼한 세이무왕은 백제왕사묘 및 백제의 사찰을 주큐에 건립하도록 명하여 백제왕씨족의 선조 영을 그곳에다 안치했다고 한다.
* 연력사(延曆寺) 엔라쿠지)
일본 천태종의 총본산으로 일본 3대사찰의 하나이다. 일본 천태종의 개조(開祖)인 사이초(最澄 766-822)에 의해 창건되었다. 199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고대 교토의 대표적인 17개 사찰 신사 성으로 이루어진 역사기념물이다. 일본 천태종의 제3대 좌주엔닌스님이 유학을 위해 당나라에 입국할 때 입국추천장을 잃어버려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신라의 장보고의 도움으로 당에 입국할 수 있었다고 전한다. 이런 연유로 연력사내에 장보고비가 세워졌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 후시미이나리신사 (稱荷神社)
후시미이나리신사는 신라계 후손 하타씨가 세운 신사(神社)다. 나라시대에 기록된 풍토기(風土記)에는 야마시로구니(山城國: 교토의 옛 지명 후시미이나리신사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다. (후시미이나리 신사는 전국에 1만여 개 말사가 있는 일본 최대의 신사이다. 영화 게이샤의 추억 촬영지이기도 하다)
* 키요미즈데라(淸水寺)
기요미즈데라(淸水寺)는 오토와산(音羽山) 중턱의 절벽 위에 위치한 사원으로 사원에 들어서기 전 까지는 위태로워 보이지만 막상 들어서면 탁 트 인 전망에 가슴까지 시원해진다. 본당에서 바라보이는 사계절의 풍경이 절경으로 이름이 높다.
나라 시대인 778년에 최초의 정이대장군 사카노우에노 다무라마로에 의해 창건되었는데 이 사람의 조상은 백제 오진왕 때 일본으로 건너간 백제왕족 아치노오미였다고 한다.
* 광륭사(廣隆寺)
신라에서 건너온 하다노 카와카쓰(秦河勝)가 창건하였다고 ‘일본서기’ 에 기록되어 있다. 이곳에는 국보 제 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상과 똑같이 생긴 일본 국보 제 1호인 미륵보살상이 있다. 이 불상을 만든 재료가 한국에서 나는 적송임이 밝혀지면서 한반도의 장인이 만든 것으로 확인 되었다.
특히 양식상 우리나라의 반가사유상 계통과 가깝게 비교되므로 삼국시대 에 제작되어 전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역시 재료와 제작기술법면에서도 우리나라사람이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 스미요시대사(住吉大社)
스미요시대사(住吉大社)는 바다와 관련된 스미요시 3신을 제신으로 받들고 있다. 항해의 안전과 상업번창을 기원하는 신사로 유명하다. 전국에 2,500여개의 말사가 있고 총본사가 오사카 스미요사대사이다 이 자리에 신라사가 있었다고 전해지며 스미요시 3신은 신라계통의 해신으로 이해된다는 주장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0- 한·일 역사의 올바른 이해
이번 역사탐방은 위에서 살펴 본대로 한민족의 문화 특히 불교문화가 일본서 말하는 도래인(渡來人) 즉 백제인들의 공헌이 컸음을 현장에서 확인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컸다. 탐방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필자는 많은 생각에 잠겼다. 일본의 역사 문화가 거의 백제인의 손에 의해 축성되었음에도 소위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을 주장하며 일본이 한민족을 지배했다고 억지를 쓰는 그 왜곡된 ‘식민사관’ 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임나일본설의 주조는 일본의 야마토 정권이 4세기 후반 한반도의 남부 지역인 가야 지방에 ‘임나일본부’를 설치하여 근 200년간 한반도의 남부를 지배했다는 주장으로 우리문화를 애써 비하하려는 저의가 분명하다.
이와 같은 주장은 많은 일본 학자들 사이에서 현재는 어느 정도 수정되고 있다지만 일본의 교과서에는 그 내용이 그대로 수록되어 있는 것은 자신들의 우월감을 억지로 부추기려는 속셈으로 밖에 달리 해석하기 어렵다. 광개토대왕 비문의 왜곡 조작도 학자들 사이에 논의가 분분하지만 여러 가지 탁본과 해독 문을 대조한 결과 일본 군부와 국수주의 학자들이 계획적으로 비면에 석회를 바르고 새로운 글자를 써 넣어 마치 일본이 고구려까지 지배했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펴고 있으니 한 일 양국의 고대사를 바로잡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지 않을까. 이번 한·일역사탐방은 이 같은 잘못된 역사관을 바로잡는데도 적지 않은 성과가 있었다는 생각이다. 일본으로 건너간 우리문화의 현장을 많이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기를 바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0- 감명 깊은 ‘코리안드림‘운동
특별히 김백산 지구촌평화연구소 대표의 친절한 안내와 ‘코리안드림 운동’에 관한 자상한 설명도 인상적이었다. “우리 선조들은 세계에 영감을 주고 평화로 인도할 모범적인 민족 국가를 건설하는 꿈을 꾸었다. 오늘 우리는 그 고결한 사명을 전수받고 그들이 시작한 일을 완성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 새로운 국가 건설의 중심에는 우리민족이 ‘모든 인류를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의 건국이념이 그 중심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 코리안드림운동의 기본 정신이라는 점을 새삼 인식하게 된 것이다. 다시 한 번 행사를 주관한 집행부의 노고에 감사의 박수를 보내며 ‘코리안드림역사문화재단’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