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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꽃 할머니와 콩새
김 소 정
댐을 덮고 있는 하늘엔 하얀 솜털 구름이 드높게 떠 있습니다. 벌써 몇 달 동안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아, 웬만해선 힘겨움을 내보이지 않던 풀꽃들도 모두 고개를 반쯤은 숙이고 있습니다. 땡볕 더위를 참기 어려운 듯 매미도 목청 높여 숲이 떠나가라 울어대는 통에 얼마 남지 않은 댐의 물을 그만 흔들어 놓을 것만 같은 한낮입니다. 댐을 둘러싸고 있는 산 밑 둥지에도 벌써 여러 날 째 십여 개의 나이테가 붉게 드러났습니다.
그런 사정을 이곳에 사는 새들은 유심히 지켜보고 있습니다. 소나무 가지에 둥지를 튼 콩새네 가족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이곳의 터줏대감 노릇을 하며 도도하기 이를 데 없는 어미콩새가 오늘 따라 무척 안절부절 못합니다. 경망스럽게도 꽁지를 올렸다 내렸다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포로로 날아다니며, 마치 어린 새끼 새처럼 부산합니다. 이런 어미콩새의 심상찮은 행동에 어린 콩새는 오히려 불안해 집니다.
그 때였습니다. 댐 가운데서 물에 잠겨있던 다 썩은 나무 등걸이 삐죽이 물 위로 솟아올라왔습니다. 어미 콩새는 무슨 생각이 났는지 재빨리 그곳으로 날아갑니다. 어린 콩새도 어미를 놓칠세라 꽁지 빠지게 뒤따라갑니다.
“안녕 하세요? 감꽃 할머니,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몰라요. 우리를 설마 잊진 않으셨지요?”
말할 틈도 주지 않고 어찌나 빨리 종알대던지 나무 등걸은 그제야 소리 나는 쪽으로 몸을 천천히 돌려 쳐다봅니다. 그러나 눈이 몹시 부신지 가느다랗게 실눈을 뜨고 소리 나는 쪽을 천천히 바라봅니다.
“으음, 이게 누구인고?”
“삘롱댁이에요.”
“저- 우리 마을이 수몰되기 전, 마을 입구 미루나무에 살던 삘롱댁요. 감꽃 할머니께서 언젠가 제게 못생긴 이름을 붙여 주셨잖아요. 엉덩이를 쭉 빼고는 삘롱삘롱 하면서 걷는다고.”
“누구라고?”
“아-그 어느 해인가 눈 쌓인 겨울날 우리 가족을 살려주신 삘롱댁요. 기억나세요? 그 때 우리는 할머니께서 감꽃을 많이 피운다고 감꽃 할머니라고 불렀었지요.”
“오, 그 그래, 이제야 생각나는구먼. 그 그래 어찌 지냈누?”
감꽃 할머니는 이제야 생각이 나는지 가느다란 눈꺼풀을 힘껏 끌어올려 봅니다. 그때마다 눈꺼풀이 파르르 떨립니다.
“그 그래 맞아, 이 아래 살던 삘롱댁이 맞구먼. 응, 그래. 그때는 그랬지. 이제야 생각이 나는구먼.”
감꽃 할머니는 혼자말로 게슴츠레한 눈을 껌뻑이며 중얼거렸습니다.
감꽃 할머니가 어렴풋이나마 기억해 주는 것만으로도 기뻐 어쩔 줄 몰라 종종대며 어미콩새는 찔끔 눈물까지 훔쳐냅니다. 그리고도 마음이 안 가라앉는 지 연신 꽁지깃을 세우고 종종대다가 머리를 조아리곤 합니다.
어린 콩새는 갑자기 기분이 나빠집니다. 움푹움푹 패이고 썩어서 몸통만 겨우 남아있는 볼품없는 나무토막을 보고 반갑게 아는 체하는 것부터 자존심이 상하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쾌쾌한 냄새까지 풍기며 흉한 모습을 하고 있는 나무토막에게 임금님 대하듯 하는 어미 새가 어린 콩새로는 이해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그래도 이 숲에서는 제일 우아한 깃털 옷을 입고 위엄을 지니고 살던 어미 새의 이런 행동이 어린 콩새로는 영 못마땅하고 부끄러웠습니다.
“이게 무슨 냄새람 ,휴- 조금 더 있다간 내 몸에도 밸 것 같아. 아이 더러워.”
“이런 흉한 몰골에다, 썩은 냄새까지 진동하는 이 볼품없는 나무에게 굴신 대다니, 아이 창피해.”
화가 몹시 난 어린 콩새는 꽁지를 빨딱 세워 불만을 표시해 보기도 하고, 푸드덕 두 날개를 펴 날아가려는 시늉도 해 보입니다. 또 누가 보면 어쩌나 물가 숲 쪽을 힐끔힐끔 바라다봅니다.
어미콩새는 이런 어린 콩새 마음 따위엔 콩알만큼의 관심도 없어 보입니다. 썩어빠진 나무 등걸에만 온통 정신이 팔려 알 수 없는 이야기만 계속합니다.
“그때는 정말 감꽃 할머니가 아니었더라면 우린 모두 살아남지 못했을 거예요.”
“그 해엔 유난히도 추웠지”
“네, 그랬었지요. 날이면 날마다 온 산을 찾아 헤매고 다녔지요. 어린 새 끼 새 주린 배를 채워줄 씨앗 하나 근 보름이 넘도록 구하지 못하고 있을 때였으니까요. 게다가 밤새 폭설까지 내려 더 이상 어쩌지 못하고 있을 때였지요. 그때 감꽃 할머니께서 매달아 놓으신 그 감이 아니었으면 저 어린 새끼 새들을 살릴 수 없었을 거예요.”
“그 그랬나보군, 그러고 보니 참 그 시절엔 몹시도 춥고 먹을 게 귀해서 그 그런 일을 종종 볼 수 있었지. 그 한 번은 몹시 사나운 태풍이 저 산 너머 마을을 마구 휩쓸고 지나갔었지. 몸을 푼 지 하루 만에 그만 까투리네 둥지가 비바람에 날아가 버린 거야. 하 마터면 어린 새끼 새들과 큰일 날 뻔했지. 그 한밤중에 어린것들을 데리고 내게로 찾아왔 어. 물에 흠뻑 젖은 새끼 새들은 오돌 오돌 떨고 있었고. 어찌나 가엾던지.......다 다행히 해마다 내 품에 와서 알을 까곤 하던 참새 네가 새끼 새들을 모두 키우고 나서 저 재 넘어 큰 산 마을로 떠난 후였어. 때마침 둥우리를 잘 말려 둔 덕을 톡톡히 보았던 거지.”
감꽃 할머니는 몹시 힘이 드는지 입을 뾰족이 내밀고는 휘파람 소리 같은 숨을 몰아쉬면서도
얼굴엔 환한 미소가 가득합니다. 뿔뚝거리던 어린 콩새도 어느 새 어미콩새 옆에서 다소곳하게 앉아 눈망울을 굴리며 귀를 세우고 있습니다.
신이 났는지 감꽃 할머니는 옛날 일을 또 이야기합니다. 나이가 들면 옛날을 생각하며 산다는 말이 꼭 맞나봅니다.
“내 몸이 성 할 때는 참 보람 있는 일도 했지.”
“그럼요. 이곳에서 할머니 덕을 보지 않은 새가 어디 있나요. 요즘처럼 더워도 그때 우린 걱정하지 않아도 됐지요. 그 우거진 감꽃 할머니 품에서 더위도 피하고 또 사나운 비바람도 피하고, 어디 그 뿐인가요? 겨울에 우리가 먹을 비상 양식까지 언제나 깊숙이 품 고 계셨지요. 언젠가 한번은 몹시 심술궂은 태풍이 할머니 뿌리를 뽑아 버리려 했을 때 우리는 할머니 팔과 다리에 대롱대롱 매달려 울부짖었잖아요. 우리를 위해 안간힘을 다해 당당하게 버티어 지켜주시던 용감한 모습도 기억해요.”
“그 그런 적도 참 있었지. 그땐 참 힘들었어. 나 하나 죽는 건 문제가 아니었지.”
어미콩새는 잠시 그 푸르고 늠름했던 감꽃 할머니의 옛날모습을 떠올려봅니다. 그때는 정말 모두가 부러워하는 멋진 모습이었습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싱싱한 나뭇잎 한 올 걸치지 못 할 정도로 상한 감꽃 할머니의 몸이 더욱 안타깝습니다. 이끼 낀 감꽃 할머니의 몸 구석구석에 들러붙은 해충이라도 떼 주려 어미콩새는 마음을 씁니다. 감꽃 할머니는 부리로 콕콕 찍어 줄 때마다 시원한 지 몸을 씰룩씰룩합니다.
숨죽이고 잠자코 있던 어린 콩새는 어느 새 눈물을 콩콩 찍어냅니다. 이런 썩어빠진 나무가 옛날엔 무성한 나뭇잎을 달고 그렇게 멋지었다는 게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어린 콩새는 그 볼품없이 삯아 빠진 나무 등걸이 위대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나도 저렇게 위대한 일을 해 보고 싶어.’
어린 콩새는 가슴을 딱 펴 봅니다. 그리고는 댐 주위를 쓱 둘러봅니다. 댐을 둘러싸고 있는 숲도 벌써 조용히 숨을 죽이고 있습니다. 모두가 그들을 지켜보고 있나봅니다. 조금 전까지 만해도 요란하던 이 숲 속의 울보 매미도 얌전해졌습니다.
잠시 눈을 지그시 감고 있던 감꽃 할머니는 또 무슨 생각을 하셨는지 안색이 편하지 않습니다.
“물이 이렇게 부족해서야 어찌 발전소를 돌리누? 비가 빨리 와야 할 텐데.”
“감꽃 할머니, 이렇게 가물었으니 할머니를 만날 수도 있었지요. 그리고 모처럼 햇빛도 보고, 바람도 마시고, 축축한 몸도 말리고 편히 좀 계세요.”
“어쩐담, 이대로 며칠만 더 간다면 모두 말라 타 죽고 말 것 같구먼.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누?”
감꽃 할머니는 한숨을 깊이 몰아쉽니다. 어미콩새는 갑자기 불안해집니다. 옛 부터 늘 겪어온 터라 누구보다도 감꽃 할머니의 성품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감꽃 할머니, 조금만 잠자코 저와 함께 계세요. 늘 할머니가 보고 싶어 이곳을 떠나 지 못하고 댐 주변에서 이쪽만 바라보며 살았어요.”
“그래도 어쩌누 너희들을 다 죽일 수야 없지.”
감꽃 할머니는 다시 깊은 한숨을 다시 토해냅니다.
뭔가 심상치 않은 나무 등걸과 어미콩새의 이야기에 어린 콩새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릅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어린 콩새는 갑자기 푸르르 성질이 나서 꽁지를 빨딱 세우고 종종거려봅니다. 그러다 애써 마음을 가라앉히고 꽁지를 얌전하게 모아봅니다. 이렇게 참아보는 것도 다 나무 등걸 때문입니다.
“비가 빨리 내려야할텐데 . 으- 음.”
감꽃 할머니의 목소리가 마치 신음 소리처럼 들렸습니다. 어미콩새는 벌써 감꽃 할머니와의 대화에서 물러섰는지 풀이 죽어 조용합니다. 이 숲에서 똑똑하기로 말하자면 어미콩새를 따라갈 자 없는데 이상한 일입니다. 감나무등걸에게만은 통하지 않나 봅니다. 어미콩새는 감나무등걸의 썩어 없어진 팔이며 다리 그 무성한 나뭇잎을 매달았던 흔적들을 어루만져봅니다.
그때였습니다. 서쪽 산허리에서 바람이 움직이는 걸 보았습니다. 바람은 서서히 구름을 몰고 오더니 급하게 댐 위를 지나갑니다.
“어서 이제 그만 떠나거라. 센바람에 저 어린 것 날개 상할라.”
그래도 어미콩새는 꼼짝 않고 앉아 있습니다. 바람 끝에 묻어오는 물기가 느껴집니다.
“아, 얼마만이야. 아이 시원해.”
어린 콩새는 머리 깃털을 포르르 흔들고는 이내 어미콩새 쪽을 바라보곤 다시 얌전하게 자세를 고쳐 시침 떼고 앉아있습니다.
한 방울씩 비가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어미콩새는 조금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것 같은 얼굴을 하고 감나무등걸만 쓰다듬습니다.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빗줄기가 굵어집니다. 급기야 세차게 계곡 물이 내려와 점점 나뭇가지를 차오릅니다. 물이 조금씩 차오를 때마다 감나무등걸은 숨을 거칠게 몰아쉬는 횟수가 잦아집니다. 이런 감나무등걸을 보며 어미콩새는 이리저리 종종대며 안절부절 하지 못합니다.
“무-물이 닿기 전에 얼른 그- 그만 떠나야 해. 아- 아무쪼록 모- 몸 건강 하게 자-잘 살고, 저-저 어-어린 새끼 새도 예-예쁘게 키우고.......고-고맙구나. 고마워.”
이제야 어린 콩새는 왜 어미콩새가 그리도 슬퍼하였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점점 차오르는 물에 가슴이 벅찬지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썩은 감나무 등걸은 콩새를 향해 빨리 날아오르라고 고갯짓을 합니다.
“어-얼른 가, 위-위험해.”
가까스로 손을 조금이라도 더 잡고 있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어미콩새의 울음 섞인 신음 소리를 아는지 모르는지 감나무등걸은 물속으로 스르르 잠깁니다. 손을 놓친 어미콩새는 차오르는 물 위로 힘없이 날아오릅니다. 어린 콩새도 따라 슬퍼져 천천히 날아오릅니다. 그리고 점점 가라앉는 감나무등걸 위를 맴돌며 느리게 날개를 펄럭입니다. 감나무등걸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맴돌며 물속을 지켜봅니다. 감나무등걸이 가라앉은 그 주변으로 일렁이는 물결에 미루나무 집 낯익은 놋그릇이나 놋수저가 언뜻언뜻 금빛으로 되살아옵니다.
“이젠 편히 계셔야 해요, 할머니.”
“이젠 편히 쉬셔야 해요, 할머니.”
어미콩새는 애써 참고 있던 눈물을 주르르 흘리고 맙니다. 어미콩새 눈치만 살피며 뒤따르던 어린 콩새도 쪼르르 눈물이 흘렀습니다.
어미콩새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어린 콩새를 앞세우고 다시 높게 하늘 높이 날아오릅니다. 산 밑 둥지 붉게 드러났던 흙 나이테도 어느 듯 물에 잠겨 푸른 숲이 보기 좋게 가꾸어졌습니다. 푸른 물로 가득한 댐은 모처럼 평온해 보입니다.
저녁 무렵이 다 되어서야 잔잔한 바람은 물속에 잠긴 고향 위에 동그랗게 물결을 만들어 붉은 저녁노을을 살짝 얹어놓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