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제 5장
=====5:1
그러므로 - 혹자는 '그러므로'가 새로운 주제를 소개하는 것으로 해석한다(4:1,
17;5:15, Lenski). 그러나 '그러므로'는 앞서 언급한 내용(4:25-32)의 결론부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Bruce, Wood, Lincoln, Hendriksen). 왜냐하면 문맥상 1, 2절은 앞
의 내용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사랑을 입은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되고 - '사랑을 입은 자녀같이'
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의 근거가 된다(Meyer, Mitton). 그리스도인들은 하나
님의 용서하시는 은혜를 경험한 자녀이기 때문에(1:5) 하나님을 본받아야 한다(마
5:44-48; 벧전 2:21). 자녀된 그리스도인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이미 자신들에게 보여
주신 사랑을 행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5:2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 사랑은 하나
님의 성품의 본질이며 동시에 그리스도인이 닮아야하는 성품의 본질이다. 그리스도인
이 닮아야 할 사랑의 모범은 그리스도 자신이다(Wood). 바울은 '같이'의 헬라어 '카도
스'(* )를 사용하여 모방의 기준을 나타내고 있다(4:32). '카도스'는 그리스
도인이 닮아 지녀야 할 사랑이 개인의 주관적 생각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의 객관적인 사랑에 근거해야 함을 시사한다. 그리스도인의 사랑의 객관적 기준인 그
리스도의 사랑은 자신을 희생하신 사랑이며 하나님의 사랑이 역사 안에서 현시된 것이
다(Lincoln).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경험한 사죄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대속적인
그리스도의 사랑을 본받아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
라 - 바울은 본절에서 그리스도인의 생활 원리가 희생적인 사랑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를 밝히고 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 제물로 드리
셨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를 위하여'의 헬라어 '휘페르 헤몬'(* )
에서 '휘페르'는 무엇을 대리하여 행한다는 것을 강하게 암시하는 것으로 그리스도의
희생이 대속적인 것임을 시사한다(Wood). 한편 바울은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을 '향
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표현하고 있다(LXX, 시 39:7; 히 10:5). '제물과 생축'에 대
해서 혹자는 '제물'이 그리스도의 생애 전체를 통해서 행하신 순종을 가리키며, '생
축'은 그리스도의 희생적 죽음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Foulkes). 그러나 '제물과 생
축'은 이사일의(二詞一意)로 모든 종류의 희생 제물을 가리킨다(Lincoln). 한편 '향기
로운'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이스 오스멘 유오디아스'(*
)는 70인역에서 희생 제사와 관련된 문맥에 많이 나타나며(창 8:21; 출
29:18, 25, 41; 레 1:9, 13, 17) 신약성경 빌 4:18에서도 나타난다(Robertson,
Bruce). 이것은 그리스도의 희생 제물이 하나님 아버지께 기쁨이 되었다는 것이며 화
해의 한 방편으로서 받아들여졌다는 것을 시사한다(Wood).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향
기로운 제물이 되신 것처럼 그리스도인들도 하나님께서 받으시기에 합당한 희생의 삶
을 살아야 한다.
=====5:3
음행과...이는 성도의 마땅한 바니라 - 바울은 본절에서 희생적인 사랑의 삶을 살
고자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순결한 생활을 위해서 행해서는 안 되는 것들에 대해 권면한
다.
음행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포르네이아'(* )는 합법적인 결혼 생
활 이외에 빚어지는 모든 성적 부도덕을 지칭한다(마 5:32; 고전 5:1).
더러운 것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카다르시아'(* )는 세속적
인 존재의 특성을 말하는 것으로 윤리적, 종교적으로 추한 모든 행위를 가리킨다.
탐욕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플레오넥시아'(* )는 단순한 욕심
이 아니라 끊임없이 성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바울은 하나님으로부터
구별된 그리스도인이라면 위와 같은 악들은 생각지도말고 이야기하지도 말라고 권면한
다.
=====5:4
누추함과...마땅치 아니하니 - 바울은 본절에서 그리스도인의 언어 생활에 대해서
권면한다. 여기에 사용된 세 가지 악은 신약성경에서 본절에서만 나타난다.
누추함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이스크로테스'(* )는 천하고
속되고 더러운 말을 가리키며 '부끄러운 말'과 같은 의미이다(골 3:8).
어리석은 말 - 이로 번역된 헬라어 '모롤로기아'(* )는 죄악의
성향(性向)을 지닌 좋지 못한 말로서 바보같이 중얼거리거나 분별없이 뇌까리는 군소
리들을 가리킨다.
희롱의 말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유트라펠리아'(* )는 본래
'재치 있는 농담'이라는 좋은 의미였으나 본절에서는 외설적인 내용을 포함한 '상스러
운 농담이나 독설'을 의미한다. 이러한 언어 생활은 그리스도인들의 삶 속에서 배제되
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와 같은 말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크게 위배되기 때문이다
(Calvin).
감사하는 말을 하라 -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언어 생활에 있어서 최선의 태도는 감
사하는 말을 하는 것이라고 훈계하고 있다(Foulkes). '감사하는 말'로 번역된 헬라어
'유카리스티아'(* )는 '유'(* , '좋은')와 '카리스'(*
, 은혜)의 합성어이다. 그래서 혹자는 '유카리스티아'를 '은혜스러운 말'로 해석하나
(Calvin) 이런 경우로 사용된 예를 찾아보기 어렵다(Mitton). 오히려 '유카리스티아'
는 그리스도인들이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감사하는 말을
의미한다(Lincoln). 그리스도인들은 그 입에서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말이 항상 흘러
넘쳐야 한다(18절;골 2:7;3:15).
=====5:5
너희도 이것을 정녕히 알거니와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투토 이스테 기노스콘테
스'(* )는 현재 명령법 또는 현재 직설법
으로 볼 수 있다(Robertson). 전자의 경우로 보면 '이것에 대해 확신하라'(Be very
sure of this, NEB, RSV)로 해석되며 후자의 경우로 보면 '너희가 이것을 안다'(this
you know, KJV, NIV, Foulkes, Bruce)로 해석된다.이 두 가지 해석이 나름대로의 타당
성을 지닌다. 바울은 이 표현을 통해 자신이 말하고자하는 것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
(Hendriksen).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
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 본절에서 열거된 죄악의 범주들, 곧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는 3절에 언급되어 있는 것과 근본적으로 같다. 본절에서 바울
은 인간의 탐욕을 우상 숭배와 동일선상에 두고 있다(골 3:5). 우상 숭배자는 절제할
수 없는 탐욕으로 인하여 자신을 우상화하여 앞서 언급한 죄악을 범하는 자이다. 결국
이러한 자들은 어느 누구라도 다가올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받을 수
없다(Wood).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의 헬라어는 '엔 테 바실레이아 투 크리스투 카
이 데우'(* )로서
'크리스투'(* , '그리스도의')와 '데우'(* , '하나님')가 하나의
관사인 '투'(* )에 의해 수식된다. 이것은 '크리스투'의 나라와 '데우'의 나라가
동일한 것임을 시사한다(Foulkes, Caird, Gnilka).
=====5:6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 본절의 '누구든지'에 대해 혹자
는 영지주의자라고 주장한다(Foulkes, Barth, Mitton, Abbott). 그러나 본절에서 바울
이 경고하는 대상은 일반적인 거짓 교사들이다(Wood, Lincoln). 왜냐하면 바울이 영지
주의자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허망한 생각으로 미혹하는 자들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말고 가르침을 받은 진리에 굳게
설 것을 권면한다. 에베소 교인들은 헛된 말을 경계함으로 죄악에 빠져 타락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Hendriksen).
이를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 '이를 인하여'는 속
이고자 하는 헛된 말을 가리킨다기보다 앞절들에서 언급한 죄악을 시사한다고 본다
(3-5절, Wood). 한편 '임하나니'의 헬라어 '에르케타이'(* )는 현재 시
상으로 하나님을 떠나 죄를 범하는 불순종의 아들들에게(2:2) 하나님의 진노가 현재와
미래에 임함을 시사한다(Abbott, Barth, Lincoln, Foulkes, Wood). 즉 그들은 하나님
의 나라를 상속받을 수 없으며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게 된다.
=====5:7
그러므로 저희와 함께 참예하는 자 되지말라 - 본절은 3절에서부터 시작된 훈계를
결과적으로 마무리해 주고 있다(Wood, Lincoln). 에베소 교인들은 하나님께 불순종하
며 추악한 죄에 빠져 하나님 나라를 상속할 수 없는 자들과 연합하여 행동해서는 안
된다. 빛과 어두움은 양립(兩立)할 수 없듯이 그리스도인들과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자
들이 함께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받을 수 없다. 하나님의 심판 때에 불순종의 아들
들은 영원한 형벌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만일 성도들이 불순종의 아들들의 헛된 말
에 속한 그 죄악에 참여하게 되면 마땅히 그들과 함께 벌을 받게 될 것이다. 따라서
바울은 어떠한 식으로든지 그들과 함께 해서는 안 된다고 권면하고 있다(Blaikie).
=====5:8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 바
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그들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이전 상태인 어두움을 상기시키
고 있다(2:1-3). 그들은 과거에 죄로 인하여 죽을 수 밖에 없었던 불신앙 상태에 있었
으며 공중 권세 잡은자의 추종자였다(2:1, 2). 그러나 이제는 챰빛이신 예수 그리스도
(요 1:9)로 말미암아 어두움의 권세로부터 건져냄을 받았으며 빛의 자녀가 되었다(골
1:12, 13). 그러기에 에베소 교인들은 이제 '세상의 빛'(마 5:14)으로서 참빛이신 그
리스도를 그들의 삶 가운데 드러내야만 한다(Hendriksen). 바울은 과거 이방인이었던
에베소 교인들의 생활과 현재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활의 차이를 명확히 구별함으로
그들이 생활이나 행위면에서 불신자들과 분명한 차이가 있어야 함을 밝히고 있다
(Calvin).
=====5:9
빛의 열매는...있느니라 - 바울은 본절에서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 말미암아 변화
된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그 열매로 증거되어야 함을 언급한다. 변화된 삶의 열매들은
세 가지이다.
착함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가도쉬네'(* )는 일종의 관대한
정신으로 온유하고 도덕적인 성품을 의미한다(Wood).
의로움 - 이로 번역된 헬라어 '디카이오쉬네'(* )는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자신의 의무를 이행하는 공정(公正)하고 올바른 행위를 의미한다. 새 사
람이 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에 의해서 '의'로 지으심을 받은 자로서(4:24) '의로
움'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된 그리스도인들이 맺어야 할 생활의 열매이다(빌
1:11; 히 12:11).
진실함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알레데이아'(* )는 말과 행위에 있
어서 순수하고 정직함을 의미한다(4:25; 요일 3:18). 이상 세 가지 빛의 열매들은 악
의 결과로(4:31) 나타나는 어두움에 반대되는 것으로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균
형있게 나타나며 하나님의 참된 자녀됨을 판단하는 근거가 된다(약 2:19).
=====5:10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기쁘시
게하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되는지를 알아보라는 의미이다
(Hendriksen). 여기서 '시험하여 보라'로 번역된 헬라어 '도키마존테스'(*
)는 금속의 질을 판명할 때 쓰이는 단어로 실험을 통해서 무엇을 '실
증하다', '규명하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해서 자신들의 모든 행위가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일치할 수 있도록 해야 한
다(롬 12:2).
=====5:11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 빛의 자녀들은
빛의 열매를 맺어야할 뿐만 아니라(9절) 열매를 맺지 못하는 어두움에 참여하지 말아
야 한다. 이런 바울의 경고는 매우 적절한 것이다. 왜냐하면 빛의 자녀들은 어두움의
세상 속에 살고 있어서 죄악된 생활에 쉽게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바울은 단순히
'참예하지 말라'는 경고에서 그치지 않고 '책망하라'는 강한 경고를 한다. '책망하라'
의 헬라어 '엘렝케테'(* )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1) 혹자는 책망
의 대상을 사람으로 생각하여 '납득시키다' 또는 '꾸짖다'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Gnilka, Halter). (2) 혹자는 책망의 대상을 어두움의 죄악으로 생각하여 '드러내어
폭로하다', '고발하다'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Lincoln, Foulkes). 이 두 가지 견해는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지닌다(Wood). 그리스도인들이 빛의 자녀로서 어두움에 속한 자
들과 그들의 죄악을 책망하고 드러내야 하는 이유는 어둠에 속한 자들을 빛으로 인도
하며 자신들을 죄악으로부터 지키기 위함이다(고전 13:6).
=====5:12
저희의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움이라 - 바울은 어두움에 속한 자들
의 행위에 대해 3-5절에서 이미 서술하였다. 그들은 성적으로 방탕하며 탐욕이 가득차
우상 숭배의 죄를 범하였다. '은밀히 행하는'은 어두움에 속한 자들의 행위가 심히 수
치스럽고 혐오스러운 것임을 암시한다.
=====5:13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이 빛으로 나타나나니 나타나지는 것마다 빛이니라 -
빛의 자녀인 그리스도인들이 어두움에 속한 자들의 죄악을 책망하며 빛의 열매를 맺는
삶을 드러낼때, 빛의 열매들은 어두움에 속한자들을 조명하여 어두움의 행위의 실체를
폭로하게 된다. 즉 빛의 자녀들은 그들의 삶 속에서 맺는 열매를 통해서 어두움에 속
한 자의 죄악을 드러냄으로 어두움에 속한 자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행위의 실체를 보
게 하고 빛에 대해 응답하게 한다(Wood, Schlier).
=====5:14
그러므로 이르시기를...하셨느니라 - 본절은 구약성경의 어느 구절을 정확하게 인
용한 것이 아니라 사 9:2;26:19;51:17;52:1;60:1 등과 연관된다. 이런 인용 구절은 초
대 교회의 세례식(洗禮式) 찬송이다(Bruce, Foulkes, Wood, Lincoln). 이 세례식 찬송
은 세 가지 비유로 이루어져있다.
잠자는 자여 깨어서 - '잠자는 자'는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이전 즉 어두움에 속한
자를 의미한다(Mitton). 한편 '깨어서'의 헬라어 '에게이레'(* )는 영적
부활과 연관된 것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새롭게 태어난 상태를 가리킨다
(Lincoln, Wood).
죽은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 '죽은 자들'은 앞서 언급한 '잠자는 자'와, '일어나
라'는 '깨어서'와 병행된 것으로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 - '비취시리라'의 헬라어 '에피파우세이'(*
)는 천체 즉 해와 달을 떠서 빛을 발하는 것을 표현하는데 사용된 것으로
(LXX, 욥 25:5)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어두움 속에 있는 자들에게 생명의 빛을 비
추심을 뜻한다(요 1:9). 이것은 비그리스도인이 어두운 잠에서 깨어나 생명의 빛 속으
로 들어가는 새로운 탄생을 체험함을 보여준다(사 60:1; 행 12:6-11). 한편 본문은 어
두움에서 빛으로의 변화가 인간 자신의 힘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주권적인 능력으로 말
미암아 이루어짐을 시사한다(Hendriksen).
=====5:15
개역성경에는 '블레페테'(* , '살피라')가 생략되어 있다. '블레페
테'는 '자세히 주의하여'에 연결되는 말로, 이어지는 권면의 중요성과 긴박성(緊迫性)
을 시사한다(Lincoln).
그런즉 - 이것은 본절의 권면이 11절까지의 권면과 연관된 새로운 권면임을 나타낸
다(Wood, Lincoln).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 본절의 '어떻게'에 해당하는 헬라어 '포스'(*
)의 위치가 사본에 따라 다르다. (1) 어떤 사본에서는 '아크리보스 포스 페리파
테이테'(* , '어떻게 행할지를 주의하
여')로 되어 있다. (2) 어떤 본문에서는 '포스 아크리보스 페리파테이테'(*
, '얼마나 조심스럽게 행할지를')로 되어 있다
(Textus Receptus). 두 가지 경우 중 전자의 경우가 타당하다. 따라서 본절은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주의깊게 살피라'로 해석된다(Look carefully how you walk, RSV,
KJV, NIV, Foulkes, Hendriksen).
지혜 없는 자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같이 하여 - 바울은 앞에서 빛과 어두움
을 대조시킨 반면 본절에서는 지혜 있는 자와 지혜 없는 자를 대조시킨다. '지혜 없는
자'로 번역된 헬라어 '아소포이'(* )는 '어리석은 자'를 의미한다
(Blaikie). 이것은 성도로서 꼭 알고 행해야 할 지극히 중요한 일들에 대해서 진지하
게 생각할 줄 모르는 자를 가리킨다. 한편 '지혜있는 자'의 삶은 조심스럽게 살펴서
하나님의 뜻을 잘 이해하고 따르는 삶이다(Lincoln).
=====5:16
세월을 아끼라 - '아끼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엑사고라조메노이'(*
)는 '도로 사다' '속량하다'라는 의미로 신약성경에서 율법으로부터
의 구속과 관련하여 사용되었다(갈 3:13;4:5). 또한 '세월'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이
론'(* )은 '중요한 시기' 또는 '금방 지나가 버리는 특별한 기회'를 의미
한다. 따라서 본절은 '모든 기회를 잡으라'는 의미로(making the most of every
opportunity, RSV, NIV) 주어진 환경 속에서 기회를 찾아 그에 따르는 어떠한 희생과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것을 놓치지 말라는 권면이다(갈 6:9, 10).
=====5:17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 본절은 15
절 내용의 반복이다. '어리석은'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아프로네스'(* )
는 15절에서 '지혜 없는 자'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소포이'(* )보다 강한
표현으로서 지각없이 행동하는 우매함이나 바보스러움을 가리킨다(Wood). 바울은 에베
소 교인들에게 소극적이고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며 적극적으로 '주의 뜻을 이해하는
자가 되라'고 권면한다. '주의 뜻을 이해하는 자'는 15절의 '지혜 있는 자'에 대한 정
의이다(Calvin). '이해하라'의 헬라어 '쉬니에테'(* )는 '어떤 것에 마
음을 기울여 파악한다' 혹은 '노력을 쏟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악한
이 세상을 살면서 주의 뜻을 잘 분별하고 주의 뜻대로 삶을 영위하여 빛의 열매를 맺
어야 함을 시사한다(9, 10절; 롬 12:2).
=====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 바울은 본절에서 어리석음의 구체적인 예로
잠 23:29-35을 인용하여 술 취함으로 인한 방탕한 생활에 대해서 경고하고 있다. 당시
술 취하는 일은 불신자 세계에 있어서 일반화되어 있었으며 초대 교회에서도 심각한
문제 중 하나였다(딤전 3:3; 딛 1:7;2:3, Wood, Foulkes, Hendriksen). 술 취함은 단
순히 그 자체에만 문제가 있는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인해 생활이 무절제하게 되고 방
탕하기 쉽다는 것에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여기서 '방탕'으로 번역된 헬라어 '아소티
아'(* )는 술 취함의 현상을 잘 나타내 주는 단어로 고대 헬라 세계에서는
'방종' 혹은 '돈과 육욕의 무절제한 낭비'를 의미했다(Wood). 이것은 신약성경 탕자의
비유에서 '허랑 방탕한 생활'이라는 의미로도 사용되었다(눅 15:13). 이와 같이 그리
스도인들이 이 세상에서 지혜로운자로서 생활하려면 술 취함으로 인한 방탕한 생활 곧
어리석음의 일을 금해야 한다.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 '성령의 충만'은 '성령의 내주'나 '성령의 인침' 그
리고 '성령 세례'와는 다르다(1:13;4:30; 요 3:5;14:16; 롬 8:9; 고전 3:16). 성령의
내주나 성령의 인침 그리고 성령 세례는 단회적 사건인 반면에 '성령 충만'은 구원의
때뿐 아니라 그후에도 계속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것으로(행 4:8, 31;6:3, 5;9:17;
13:9, 52) 그리스도인이 능력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행 10:38;
11:24; 살전 1:5; 벧전 4:11, Lincoln). 즉 이것은 이미 그리스도인에게 내주하신 성
령께서(롬 8:9; 고전 12:3) 그리스도인을 온전히 지배하며 인도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한편 '충만을 받으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플레루스데'(* )는 현재
수동태 명령형이다. 이것은 다음의 내용을 함축한다. (1) '현재 시제'는 성령 충만이
일회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채워져야 함을 시사한다(Lincoln). (2)
'수동태'는 성령 충만이 인위적(人爲的) 체험이 아니라(갈 3:2, 5) 성령에 의해서 체
험됨을 시사한다(Wood). (3) '명령형'은 성령 충만이 제한적인 것이 아니라 모든 그리
스도인들을 향한 것임을 시사한다(Wood).
=====5:19
본절은 그리스도인들이 성령 충만하여 얻게 된 기쁨을 찬양과 찬미의 열매로 맺었
음을 시사한다. 바울은 찬양의 종류를 세 가지로 언급한다.
시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살모이스'(* )는 구약성경 시편뿐 아
니라 시편이 가지고 있던 정신과 그 형태를 간직한 일반적인 찬양 노래들을 가리킨다
(눅 1:46-55, 68-79;2:29-32;20:42;24:44; 행 1:20;13:33).
찬미 - 이로 번역된 헬라어 '휨노이스'(* )는 신이나 영웅을 찬양할 때
부르던 노래를 의미했으나 초대 교회에서는 당시에 초대 교회 내에서 작성되기 시작한
삼위 하나님에 대한 영광송(doxology)을 가리킨다(막 14:26).
신령한 노래들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오다이스 프뉴마티카이스'(*
)는 '세속적인 노래'와는 달리 성령의 영감에 의해 만들
어지고 불리어진 찬송을 가리킨다.
서로 화답하며...노래하며 찬송하며 - 바울은 세 개의 분사를 사용해 앞서 언급한
찬양을 '부르는 것'에 대해 묘사한다. 이 세 가지 분사는 서로 중복된것으로 성령 충
만함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와 그리스도의 구속 그리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찬양함을 시사한다(Hendriksen).
=====5: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 '항
상'은 어떠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감사할 수 있음을 나타낸다.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인
들은 환경의 좋고 나쁨에 상관없이 처한 환경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하심을 깨
닫고 감사를 드린다. 감사는 모든 생명과 삶이 하나님에게서 비롯되며 예수 그리스도
와의 연합을 통해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수 있음을 인식하는 가운데 이루어질 수 있
다(Wood, Foulkes).
=====5:2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 본절이 연결되는 부분에 대해서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 혹자는 본절이 앞서 언급된 성령충만의 생활에 연결된다고 주장한다
(Lenski, Hendriksen). 왜냐하면 '복종하라'의 헬라어 '휘포탓소메노이'(*
)가 분사로서 19, 20절에서 언급된 네 개의 분사와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2) 혹자는 본절이 22절부터 시작되는 다음 단락과 연결된다고 주장한다
(Mitton, RSV, NEB). 왜냐하면 권고의 문맥에서 분사는 독립적인 동사나 명령형으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견해는 나름대로 타당성을 지닌다. 본절은 문법
적으로는 20절에 연결되어야 하며 내용상으로는 다음 단락에 연결시키는 것이 타당하
다(Wood). '휘포탓소메노이'는 고대 군사 용어로서 본래 '...아래 정렬하라'는 의미이
나 본절에서는 현재 영위하고 있는 위치로인해 존경받을 만한 사람들을 따르라'는 의
미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존경하고 섬겨야 한다. 한편 상호간의 복종은 '그리스도
를 경외함으로'이루어져야 한다. '경의'에 해당하는 헬라어 '포보'(* )는 '존
경'보다 더 강한 의미로(Barth) '경의'나 '의무감'을 뜻한다(Lincoln). 이것은 그리스
도의 뜻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순종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들은 강요나 위압에 의해서
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명령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상호 복종해야 한다.
=====5:22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 헬라어 본문에는 '복종하
기를'에 해당하는 헬라어가 나타나지 않으나 앞절의 '복종하라'와 연결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Wood, Foulkes). 본절은 상호 복종하라는 명령중 아내의 의무에 대한
것으로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해야 함을 나타낸다(고전 11:3;골 3:18; 벧전 3:1).
이 명령은 여자가 남자보다 열등한 위치에 놓여 있어서 종속 관계에 있음을 암시하
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바울은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해야 하는 기준을 '주께 하듯 하
라'는 말로 제시한다. 이 기준은 그리스도인들이 주께 자율적(自律的)으로 순종하는
것처럼, 아내도 주 안에서 자원하는 마음으로 남편의 권위에 따르며 순종해야 함을 의
미한다.
=====5:23
이는 - 이것은 본절이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해야 하는 이유임을 뜻한다(Lincoln).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다 - 바울은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해야 하는 이유를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머리됨에 비유하여 설명한다.
'머리'에 해당하는 헬라어 '케팔레'(* )는 '지도자'나 '통치자'의 의미로
사용되었다(1:22).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로서 교회를 다스리고 인도하시는
것처럼 남편이 아내에 대해 '지도자'로서의 권위를 가지고 있음을 시사한다(Lincoln,
Wood, Bruce, Foulkes).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 본절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구속하기 위해 희생하신
것을 나타낸다. 이것은 남편이 아내를 위해 희생해야 함을 뜻하며 남편이 아내의 보호
자임을 나타낸다(Wood, Foulkes, Bruce).
=====5:24
그러나 - 이것은 앞의 내용을 역행하는 접속사가 아니라 앞의 내용을 계속해서 잇
는 순행 접속사로 사용되었다(Wood).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 바울은 앞
절에서 남편이 아내를 위해 희생함을 전제로 보호자가 됨을 시사한 후 본절에서 아내
의 의무에 대해 강조한다. 남편에 대한 아내의 복종은 그리스도인들의 그리스도를 향
한 신뢰와 복종의 관계에서 출발한다(골 3:18). 이 복종은 단지 명령에 대한 의무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보답으로서 사랑에 의해 자발적으로 반응
하는 것이다(Hendriksen, 요일 4:19). 한편 '복종할지니라'로 번역된 헬라어 '휘포탓
세타이'(* )는 질서의 의미가 담겨 있다. 이것은 남편에 대한
아내의 복종이 여자의 열등함으로 인한 종속적인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 질서에 대한
순응(順應)임을 시사한다(고전 11:3-12; 딤전 2:11-13).
=====5: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
이하라 - 남편에 대한 아내의 의무가 '복종'이라면 아내에 대한 남편의 의무는 '사랑'
이다. '사랑하라'의 헬라어 '아가파테'(* )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타내
는 것으로 비이기적이며 무조건적이며 희생적인 사랑을 가리킨다(Foulkes). 또한 이것
은 현재 명령형으로서 어떤 상황에서든지 언제나 아내를 사랑해야 함을 나타낸다. 그
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신것처럼 남편들도 아내를 무조건적이며 자기 희
생적으로 사랑해야 한다.
=====5: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 바울은 아내에 대한
남편의 사랑을 더 자세히 설명하기 위해 그 예증으로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진술한다(Wood, Foulkes).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자기를 희생하신 목적은 교회
를 '거룩하게 하기 위함'이다. '거룩하게 하시고'의 헬라어 '하기아세'(*
)는 '분리시킨다'라는 의미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을 세상으로부터 구별하여 자
기 백성으로 삼으심을 뜻한다(벧전 2:9). '거룩하게 하시는 것'은 '깨끗하게 함'으로
가능해진다. '깨끗하게 하사'의 헬라어 '카다리사스'(* )는 부정 과
거로서 문자적으로는 '씻음을 받았다'는 의미이며 계속적 경험보다는 단회적 경험을
나타낸다(Foulkes). 논리적으로 볼 때 '거룩하게 하는 것'보다 '깨끗하게 함'이 우선
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 과정에 있어서 '깨끗하게 함'과 '거룩하게 함'은 동시적으로
일어난다(Wood, Foulkes, Robinson). 또한 '하기아세'와 '카다리사스'는 모두가 부정
과거로서 과거에 이미 성취된 것임을 시사한다(고전 1:2; 딤후 2:21). 한편 '카다리사
스'와 '하기아세'의 과정을 이루기 위한 매개체(媒介體)는 '물로 씻음'과 '말씀'이다.
첫째로 '물로 씻음'은 물세례를 시사한다(히 10:22, Wood, Foulkes, Lincoln). 둘째로
'말씀'에 해당하는 헬라어 '레마티'(* )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이다. (1)
혹자는 '레마티'가 '물로 씻음'과 연관되어서 세례의식 때 그리스도인들이 행하는 '신
앙 고백'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Bruce, Wood, Westcott, Mitton). (2) 혹자는 '레마
티'가 '깨끗하게 하사'와 연결되어서 '복음'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요 15:3;17:17,
Lincoln, Foulkes). 이러한 두 가지 견해는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갖는다.
=====5: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희생하셔서 교회를 깨
끗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신 목적은 교회를 그리스도 자신의 신부로서 맞이하기 위함
이다. 여기서 '세우다'의 헬라어 '파리스테세'(* )는 신약성경에서
신부를 신랑 앞에 내세우는 것을 말할 때 사용되었다(고후 11:2). 신랑이신 그리스도
앞에 세우심을 받는 신부는 '영광스러운 교회'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이 풍성한
기업이며(1:18)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을 알 수 있는
곳이다(3:21). 한편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신부로 맞이하는 때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
해가 있다. (1) 혹자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그 때라고 주장한다(Meyer, Hendriksen,
Bruce, Barth, Wood). (2) 혹자는 31절에서 현재에 그리스도와 교회가 한몸을 이루었
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현재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Lincoln, Schlier). 이 두 가지 견
해는 나름대로 타당하다. 교회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었으며
이러한 관계는 마지막 때에 완전히 성취된다.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 이
계획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창세 전에 이미 예정하신 것이다(1:4). 이러한 행
위는 사람의 노력이나 공적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몸의 머리가 되시
는 그리스도의 역사에 의해서 성취되어진다(23절, Wood, Foulkes).
=====5:28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할지니 - 바울은 예증인 그리
스도와 교회의 관계에 대한 설명에서 되돌아와 본주제인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 대해
분명히 밝히고 있다(Wood). '이와 같이...할지니'의 헬라어 '후토스 오페일루신'(*
)은 25절에 언급된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리킨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 자신의 몸을 희생하시기까지 사랑하신 것처럼 남
편은 자신의 몸과 같이 아내를 사랑해야 한다. 즉 남편은 자신의 몸이 필요로 하는 모
든 것을 충족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내를 사랑하며 아내의 성숙과 발전을 위해 모
든 것을 채워주고 돌보아 주어야 한다(Lincoln, Foulkes).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 본절은 창 2:24의 사상과 맥
을 같이 한다(Bruce, Lincoln). 남편과 아내는 둘이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기 때문에
남편이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곧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 된다.
=====5:29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
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나니 - 바울은 본절에서 아내에 대한 남편의 사랑을 교회
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과 비교하여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Calvin). 여기서
'양육하여 보호하기를'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에크트레페이 카이 달페이'(*
)는 문자적으로 '성숙하기까지 따뜻하게 감싼다'라는
의미로서(Wood) 사람은 누구나 자기 몸을 정성을 다하여 가꾸며 보호하며 돌보는 것을
나타낸다. 이러한 모습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행하신 모습으로서 남편도 이와
똑같은 원리로 아내를 돌보고 보호하여 성숙하게 자라날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한다. 하
나님은 부부의 관계에 있어서 단순히 인간적인 애정의 차원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교회
와의 관계처럼 깊은 영적 차원으로의 성숙을 요구하신다(고전 6:15-17).
=====5:30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니라 - 본절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돌보는 이유이다. 그
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이루는 지체들이다.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들의
관계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에 그리스도께서 지체들의 모임인 교회를 양육하고
인도하시는 것처럼 남편도 자신의 몸인 아내를 잘 인도하여 성숙으로 나아가야 한다
(4:11, 12, 25).
=====5:31
이러므로 - 이것은 인용구를 도입하기 위해 사용된 것이 아니라 창 2:24에 있는 인
용구 그 자체이다.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 본절은 구약성
경 창 2:24의 인용으로서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이루신 결혼의 신비를 나타낸다
(Foulkes). '합하여'로 번역된 헬라어 '프로스콜레데세타이'(*
)는 성적인 결합을 의미하는 단어로서 문자적으로 '붙게 될 것이다'를 의미
한다(Wood, Bruce). 이러한 결합을 통해서 남편과 아내는 분리할 수 없는 '한 몸'을
이룬다(고전 6:17).
=====5:32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 '이 비밀'은 앞절에
서 인용한 창 2:24을 가리키는 것은 물론(Bruce),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를 가리킨
다. '비밀'(* , 뮈스테리온)은 본서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동일하게 구원받게 되는 하나님의 전체적인 목적을 포괄(包括)한다(1:9;3:3,
4, 9;6:19). 비록 본절에서 하나님의 구원에 유대인과 이방인이 동일하게 참여한다는
언급은 없을지라도 하나님의 구원을 통하여 이루어진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는 남
편과 아내의 관계보다 더 심오하며 놀라운 것임을 시사한다(Bruce, Wood).
=====5:33
그러나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플렌'(* )은 반의 접속사이나 본절에서는
'이제' 혹은 '여하튼'이란 의미로 이제까지 논해온 내용의 가장 중요한 요점을 서술하
고자 함을 나타낸다(Lincoln, Bruce, Calvin).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 -
부부의 관계에 있어서 결론적인 권면은 '사랑'과 '경외'이다. 여기서 '경외하라'는 말
의 헬라어 '포베타이'(* )는 아내가 남편을 대할 때에 그리스도를 경외
하는 마음으로 대해야 함을 뜻하는 것으로(21절) 우러나오는 헌신적인 마음으로 남편
에게 복종하며 의무를 다해야 함을 의미한다(22절). 반면에 남편은 아내가 남편에 대
해 경외함으로 복종하고 섬기는 것처럼 그에 상응하게 사랑을 베풀어야한다. 그리스도
께서 교회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시고 보호하시며 양육하시는 것처럼 그리스도안에서
남편은 아내를 보호하며 서로 협력하여 성숙에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한다(25-
29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