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빌립보서 1장 20절, 출애굽기 3장 15절
나의 간절한 기대와 희망은, 내가 아무 일에도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온전히 담대해져서, 살든지 죽든지, 전과 같이 지금도, 내 몸에서 그리스도께서 존귀함을 받으시리라는 것입니다. <표준새번역>
하나님이 다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기를 '여호와,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여라. 이것이 영원한 나의 이름이며, 이것이 바로 너희가 대대로 기억할 나의 이름이다. <표준새번역>
혹시 요즘 이런 생각을 하신 적이 있으십니까? "예전 그 때, 내가 봐도 내 믿음이 참 좋았었지. 그 땐 참 뜨거웠지!", "이번 일만 지나가면, 이번 일만 잘 해결되면 잘 믿을거야!" 첫사랑을 회복하기 위해 점검해야 할 4번째는 바로 지금 내 믿음이 과거형인지, 현재진행형인지, 미래형인지 체크해 보는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믿음'이란 단어에는 결코 과거형도, 미래형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믿음은 현재진행형(~ing)입니다.
믿음은 변화합니다. 그 변화는 성장과 성숙을 의미합니다. 수많은 우여곡절 속에서도 깊게 뿌리내려, 쉽사리 흔들리지 않도록 변화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믿음이 변질되지는 말아야 합니다. 처음 모습을 찾을 수도 없고, 처음 모습이 무엇인지도 모르게 전혀 다른 형태로 변해버리는 것을 우리는 경계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리만큼 믿음은 변화되는 것보다 변질되는 것이 훨씬 쉽습니다. 아마도 그건 우리가 믿음을 '현재진행형'으로 유지하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마치 신선한 우유를 잘 보관하기 위해서는 냉장고를 이용하면 되는 것처럼, 우리의 믿음이 언제나 활어회같은 말씀 안에 있으면 되는 것인데, 우리는 쉽게 그 보관방법을 잊어버립니다. 그냥 실온에 보관하다가 변질되어 버리기 일쑤인 우유처럼, 세상의 법칙에 그저 내버려두니 믿음이 변질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 등장하는 이스라엘 백성이 바로 이 '변화'와 '변질'을 가장 잘 설명하는 민족일 것입니다. 가장 먼저 약속을 받은 민족이 되었지만, 아주 쉽게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세상을 벗하며 살다가, 고난이 찾아오면 그제서야 하나님을 다시 찾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고 위기를 벗어난 후 다시 평화가 찾아오면, 언제 그랬냐는듯 하나님을 외면한채 너무도 빠르게 돌아섭니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현재진행형의 믿음을 요구하시지만, 그들은 믿음을 언제나 과거형에 두는 것을 좋아합니다. 바울도 갈라디아 교회들을 향해 이렇게 안타까움을 토로한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렇게도 어리석습니까?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 와서는 육체로 끝마치려고 합니까? 여러분의 그 많은 체험은, 다 허사가 되었다는 말입니까? 참말로 허사였습니까? <갈라디아서 3장 3~4절, 표준새번역>
누구나 소위 뜨거웠던 시절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냥 그때는 교회 가는 것이 좋았고, 예배 드리는 것이 우선이었고, 찬양은 기뻤으며, 말씀은 은혜스러웠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교회는 따뜻했고, 모이는 것은 즐거웠으며, 함께 울고 웃는 것이 너무도 당연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보니 사실 변한 것은 '믿음'이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믿음을 계속 소유하지 못한 '내'가 변한 것이 더 맞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스스로를 소개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리라 생각됩니다.
하나님이 다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기를 '여호와,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여라. 이것이 영원한 나의 이름이며, 이것이 바로 너희가 대대로 기억할 나의 이름이다.<출애굽기 3장 15절, 표준새번역>
하나님은 태초부터 하나님이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도 하나님이시고, 이삭에게도, 야곱에게도, 그리고 오늘 지금 나에게도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신실함이 여전히 우리에게 회복의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과거형으로 끊어졌던 나의 믿음이 하나님이란 존재마저도 과거에만 존재했던 하나님으로 전락시켜 버린 것은 아닌지 한 번 생각해 보십시요. 여전히 하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을 바라볼 때 다시 우리의 믿음은 끊어진 다리를 이어 현재진행형의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볼 때입니다. 하나님을 찾을 때입니다. 여기 놀라운 약속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찾는 자를 언제라도 만나준다고 하셨습니다. 진심으로 과거형이었던 믿음을 현재진행형으로 바꾸고 싶은 마음이 있으시다면 지금이 바로 하나님을 찾을 때이고, 다시금 뜨겁게 만날 때입니다.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예레미야 29장 12~13절, 개역개정>
누군가는 믿음을 계속해서 '미래형'으로 남겨두는 이도 있습니다. 지금 자신 처한 모든 상황이 하나님을 찾기에는 너무도 복잡할 수 있습니다. 현재 자신의 모습이 하나님을 만나기에는 한없이 부족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야기합니다. "상황이 조금 나아지면, 좀 더 생활이 정리되면, 내 모습이 정돈되면, 교회 나갈 수 있는 여유가 생기면, 믿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그 때 믿어볼께" 그런데 벌써 그 말을 했던 미래가 현재가 되어 있고, 약속했던 그 날을 이미 벌써 과거로 흘려보낸 이유는 무엇일까요? 지금도 계속해서 미래만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상황도 나아졌고, 생활도 정리되었고, 내 모습도 정돈되었고, 교회 나갈 수 있는 여유도 생겼는데 왜 아직도 망설이고 계시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그토록 일상의 은혜를 부어주셨다면 이제는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올 때입니다. 분명 늦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말씀을 잘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이 바로 그 때일 수 있습니다.
"너희는, 만날 수 있을 때에 주님을 찾아라. 너희는, 가까이 계실 때에 주님을 불러라." <이사야 55장 6절, 표준새번역>
믿음은 '현재진행형'이어야 합니다. 소유하고 있어야 합니다. 의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억지로라도 붙잡고 있어야 합니다. 냉냉한 마음일지라도 예배의 자리를 떠나서는 안됩니다. 응답조차없어 그냥 한탄하는 읇조림이 기도라 생각되어도 기도를 해야 합니다. 펴기만 하면 잠들지언정 오늘도 성경을 펴야합니다. 그런 노력들이 바로 '현재진행형'으로 믿음을 유지해가는 최소한의 노력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마음을 아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믿음'이란 선물을 계속해서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현재진행형이 될 수 있도록 오늘도 우리의 믿음에 믿음을 더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치열하게 현재진행형으로 지키기 위해 노력해보십시요. 그러면 더 놀라운 은혜로, 인도하심으로, 여러분의 그 노력을 인정하시는 하나님을 당연히 만나게 되실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기다리고 계십니다.
여기 믿음이 과거형이었던 이가 현재진행형으로 바뀌고서 하나님께 드린 고백이 있습니다. 우리도 함께 이 고백을 드렸으면 좋겠습니다.
"주님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지금까지는 제가 귀로만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제가 제 눈으로 주님을 뵙습니다." <욥기 42장 5절, 표준새번역>
여기 믿음이 미래형이었던 이가 현재진행형으로 바뀌고서 하나님께 드린 고백이 있습니다. 우리도 함께 이 고백을 드렸으면 좋겠습니다.
아이 아버지는 큰소리로 "저는 믿습니다. 그러나 제 믿음이 부족하다면 도와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마가복음 9장 24절, 공동번역>
여기 일평생 현재진행형의 믿음을 소유했던 이가 하나님께 드린 고백이 있습니다. 이 고백이 우리의 평생 고백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주님, 나에게 단 하나의 소원이 있습니다. 나는 오직 그 하나만 구하겠습니다. 그것은 한평생 주님의 집에 살면서 주님의 자비로우신 모습을 보는 것과, 성전에서 주님과 의논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시편27편 4절, 표준새번역>
https://www.youtube.com/watch?v=OPKdZKYN5Yo
https://www.youtube.com/watch?v=YxaKYVKBZ4c
https://www.youtube.com/watch?v=uogUZjStAPU
https://www.youtube.com/watch?v=52ZWaUM0Z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