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군 신림면 소재지에 있는 처가에서 고창읍내를 지나 석정온천까지 왕복 20여Km가 족히 나오는 코스이다.
설날!
초저녁에 처당숙댁에서 새배후에 권하는 술을 예닐곱잔이나 마셔버렸다.
처가에서 저녁을 먹은 다음 슬금슬금 눈치를 보다가 잠자리로 도망치는데 성공했다.
막 잠이 들었을까? 누군가 막 깨운다. 처재였다. 술한잔 하자고...
실눈을 떴다가 이내 감아버렸다.
"웅~ 음냐! 냠냠!! ... ...."
'이사람아 내가 지금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 또 하루 공치네!'
새벽녘에 작은놈이 우유떨어졌다고 우는 소리를 듣고 잠이 깼는데 뒤척이다 보니 5시 50분이다.
이쯤이면 어슴프레 날이 좀 밝았겠지 하고 마당으로 나섰는데 웬걸! 칠흙같은 어둠속에 찬바람만 휭하니 불고 있었다.
도시와는 전혀 다른 밤의 모습이었다.
터덕터덕 마을길을 뛰어서 708번 지방도에 올라섰다.
도로를 달리면서 제일 신경쓰이는 것이 달리는 자동차인데 이처럼 어두운 그믐밤엔 차라도 좀 지나가 주었으면 하는 맘이 굴뚝같다.
야트막한 언덕을 넘어서니 신림저수지가 나온다.
저수지를 휘돌아 도로가 나있는데 등골이 오짝하다. 게다가 언제부턴가 내 발자국소리에 누군가의 발소리가 섞여서 들리는 것같은 ...
수문위 다리를 지나서 둑방길에서 스트래칭을 하고 있는데 설마하던 그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아니? 그럼 그게....???'
"허~엄! ... 뭐하는거여?"
칠십대 노인네 목소리다. 스트래칭한답시고 잔뜩구부리고 고개를 들지 않은체 대답을 한다.
"보다시피 운동합네다"
"허~ 거차 ㅁ ㅁ ㅣ ㅊ ㅣ ㄴ ~ ㄴ ㅗ ㅁ... ...."
노인네가 멀어져가고서야 숙였던 상체를 세우고 한숨을 크게 쉰다.
'뭔 노인네가 농사철도 아닌디 신세벽에 돌아당겨?' '간 떨어질뻔 했네!'
오르막 내리막 굽이를 몇개 돌아서 22번 국도와 만나는 삼거리가 나왔다.
지난번 추석때는 이곳에서 국도를 따라 돌아갔는데 이번엔 고창쪽으로 방향을 잡고 달린다.
귀경객들이 제법 있을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웬일인지 도로가 텅비었다.
진흥아파트 앞에 이르러서야 가로등 구경을 하기 시작했다.
정말 반갑다. 가로등아!
군청정문에 이르니 총40분이 지났다. 스트래칭한 시간 5분을 빼면 한7Km정도 되는 것 같은데...
석정온천 쪽으로 가는 길은 대로여서 달리기에도 시원했다.
한동안 계속되던 대로가 2차선으로 줄어들고 산을 잡아 돌며 오르막이 계속되다가 힘이 들만 하니 왼편언덕에 석정온천이다.
배가 고프면 뭐라도 사먹으려고 주머니에 오천원권 한장을 챙겨 왔는데 썰렁한 분위기에 웬지 머무르기가 싫어 곧바로 발길을 돌린다.
오던길을 돌아내려오다가 길이 바뀌는 지점에 아까는 보지 못하고 지나쳤던 공설운동장 이정표가 눈에 띈다.
한 오백미터 오르막위에 깔끔하게 지어진 운동장을 밖으로 한바퀴 돌아보고 트랙으로 들어섰다.
트랙의 쿠션이 스폰지처럼 부드럽다.
"와! 겁나게 부럽네!"
전주종합경기장하고 여러가지가 비교 된다.
지금 이시간이면 사람들이 와글거릴텐데 이곳은 정적만이 감돌고 있다.
혹시나 만날수 있을까? 했던 고인돌마라톤클럽도 보이지 않는다.
감촉좋은 트랙에서 몇바퀴를 돌다가 아쉬움을 뒤로하고 귀로에 나선다.
7시가 조금 넘어서 운동장을 출발했는데 맏바람이 제법 매섭다.
돌아오는 길이 언제나 그렇듯 페이스가 좀 빠르다.
칠흙같은 어둠속에 출발했다가 해가 훤한 8시가 다되어 도착한 처가 마당에서 한참 몸을 풀고 들어가니 장인양반의 성원이 대단하다.
장모님은 입을 다물지를 못한다.
"석정온천? 거기를 뛰어 갔다가 왔다고??"
아직도 잠자리에서 못 일어난 나와 비슷한 또래의 처남하고 동서는 오늘도 죽사발이 되고...
카페 게시글
마라톤이야기
2002 설연휴-신림에서 석정온천까지 (강기상)
산이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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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5.26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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