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상처에
B형의 봄을 수혈하는 시인
공 영 해(시인)
삶의 틈바구니 안에서 일상을 깔고 앉아 사물과 주고받는 이야기가 시 행위의 본질이 되고 거기서 만들어내는 향기가 시적 이미지로 승화되어 사람들 가슴에 다가가 안길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거기서 나름대로의 독특한 향기를 만들고 싶은 게 나의 문학적 욕심이다.
--시집 『아름다운 상처』의 서문에서
1. 난蘭 사랑에 젊음을 바치는 시인
지난 3월 초, 모 건설회사의 모델 하우스에서 한국춘란 전시회가 열렸다. 주최자는 (사)경남난연합회 ‘난고을’회였다. 여느 난 전시회와는 달리, ‘난蘭과 시詩가 만나는 축제의 한마당’이라는 신선한 주제로 애란인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였다. 마음이 앞장서서 나의 소매를 이끌었다. 난에 대한 관심도 관심이지만 시화전이 함께 열린다니, 문향聞香의 기회를 놓칠 수 없는 일이었다. 전시장은 성황을 이루었다. 지역의 내로라하는 난 애호가들과 문인들이 자리를 같이하여 난향처럼 그윽한 정담을 나누고 있었다.
난은 빼어난 꽃 대궁을 올려 홍․황․자색 화예의 향을 피워 올려 눈길을 끌었고, 시는 난을 배경으로 빛깔을 달리한 문자향文字香을 발산하고 있었다. 전시회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였다.
이 기발하고 신선한 난과 시와의 만남은 ‘난고을’ 회장을 맡고 있는 시인 김시탁이 마련한 이채로운 자리였다. 김 시인이 아니고서는 감히 추진할 수 없는 행사였다. 김 시인의 삶에서 시 못지않게 난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그는 20여 년을 한국춘란 연구에 이바지해 온 실력가인데, 한국 난계의 대가로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우리 난의 명감明鑑에 그의 이름으로 공식 등록된 명품만 해도 호피반虎皮班의 ‘지수보地秀寶’를 비롯하여 복륜화覆輪花의 ‘승무僧舞’, 주금화朱金花의 ‘봉화奉花’ 등 10여 종에 달한다.
이렇게 난계의 대가이면서도 그는 난초 잎 뻗는 길을 알지 못하는 초심의 자세로 난을 대한다. 아래 시에서 나는 그가 난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 설득을 당한다.
난초 잎 뻗는 길을
저 유연한 허리로
허공을 떠받치는 힘을
올곧은 저 잎
몇 년을 쳐다보아야
그 길 보일까
알 수 없다
가만히 손을 뻗어 만져 보면
벌컥 제 향부터 내뿜어
유연한 허리로 허공을 떠받치는 힘과 올곧은 정신, 벌컥 내뿜는 난향에 나의 숨도 컥컥 막히고 만다.
2. 사시청청불변심四時淸淸不變心
김시탁 시인이 난을 좋아하는 이유는 난의 변하지 않는 선비정신 때문이란다. 젊은 사람치고는 참 고리타분한 정신이라고 지나칠 수는 없다. 그의 선비정신은, 양심적 지성으로 자연과 사람을 사랑하며 시대를 이끈 딸깍발이 정신이요, 외유내강의 강인성과 중용中庸의 정신을 이름이다. 그는 집 거실에 ‘蘭吐有香난토유향’이란 편액을 걸어놓고 난 사랑을 매질하며 사는 사람이다. 남들이 부동산, 증권, 미술품에 투자할 때 그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난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난은 돈이 아니라 그의 마음이다. 김 시인은 자신의 마음에다 엽예葉藝와 화예花藝를 투자한 것이다.
김시탁 시인을 내가 처음 만난 것은 5년 전쯤이다. 그의 첫 시집 『아름다운 상처』를 받고 난 뒤 막걸리 집에서였다. 내가 아는 그의 신상 정보는, 경북 봉화가 고향이고 서양화를 전공한 젊은 사업가라는 정도였다. 무심코 툭툭 던지는 말들이 때로는 비수가 되고 숭늉이 되기도 하였다. 대수롭지 않은 화제도 그의 입심에서는 전혀 다른 생명체로 둔갑하였고 투박한 그의 말들은 길들지 않은 야생마였다. 기죽지 않은 그의 언어들은 덤으로 술잔을 가득 채워 놓기도 하였다. 그의 말 속에서 나는 이따금 굳은살 박인 세월에 뿌리 내린 싱싱한 생각들을 발견하기도 하였는데, 그것은 여울이었다가 강이었다가 어느 결에 내 가슴에서 은유로 퍼덕이는 전어가 되기도 하였다.
그보다 나이 차이가 한참인데도 그는 나를 전혀 낯설어하지 않았고 이웃 아재를 대하듯 스스럼이 없더니 이제는 대놓고 형님이라 부르며 응석을 부리는 사이가 되었다. 그가 마음에 팍 들어서, 함께 동인지 『시향詩嚮』을 꾸려가며 막걸리 자리를 종종 가지곤 했는데, 돌아보니 벌써 만리장성 하나를 쌓아 놓고 있었다.
우스운 얘기가 있다. 난 여남은 분을 재미삼아 기르는 내가 어느 자리에서(그는 구석에 앉아 있었다.) 혜란蕙蘭이 어쩌고 하며 난 자랑을 하였더니 내 말을 다 듣고 난 그가 말없이 티슈에다 사인펜으로 보춘화를 멋스럽게 쳐 놓고 초장을 찍어 홍화를 피워낸 뒤 ‘四時淸淸不變心사시청청불변심’이라 쓰고는 한국춘란을 한번 키워보라고 권한다. 무슨 말이 필요하랴. 족보도 불분명한 중국산 보세, 일본산 한란을 헐값에 사 키우며 애란가인 연하는 나의 처지가 딱도 하였다. 나는 대번에 기가 죽어 입을 닫아야 했다. 그 후부터 우리는 난과 시를 통해 서로의 마음을 털어놓게 된 것이다.
김시탁의 시에서 난은, “주춤대던 생을 향해 / 종아릴 후려치던 / 칼날 같은 회초리”(「난초․3」)였다. 그 ‘회초리’가 뚝 부러진 날의 아픔을 김 시인은 그의 난실에서 조용히 털어놓는다. 활달한 성격의 그는 남에게 실없는 소리 한 번 하지 않는 시인이다. 그런 그가 자신의 상처 하나를 나에게 꺼내어 보여 주었다.
IMF때 군소 사업가들은 대부분 부도의 아픔을 겪게 된다. 13년 간이나 몸담았던 회사가 부도나자 그의 삶도 부도난다. 돌아오는 어음보다 더 빨리 마음의 셔터가 내려지고 있었다. 거래처에서는 출입을 막았다. 은행은 돈줄을 꽁꽁 묶었다. 그는 숨통이 서서히 막혀 갔다. 인척도 친구도, 선배도 후배도 서둘러 등을 돌렸다. 안에서는 평화가 금이 가고 밖으로는 신용이 결딴난 것이다. 앞만 보고 달려온 세월이었다. 그 세월조차 잘못 차용한 부채로 저당 잡혀 있었다. 돌아오는 당좌보다 더 빨리 신용은 부도 처리되고 있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만나던 난을 너무도 경황이 없어 몇 달 동안 찾지 못했다. 주인의 부도를 무엇보다 난초가 먼저 알았던가 보다. 난실을 찾았을 때는 이미 때가 늦었다. 300여 분이나 되는 난들이 시들어 죽어가고 있었다. 제 때 돌보지 못해 치명적인 병해를 입은 것이다. 그토록 의지했던 난의 고사枯死는 그의 마음까지 부도나게 하였다. 그는 경제 부도보다 마음 부도가 더 쓰리고 아팠다. 고사한 난초로 인한 손실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까맣게 타들어가는 난을 보며 그도 그만 절망의 벼랑 끝에 몰린다. 죽음의 그림자가 그에게 덫을 놓고 있었다. 그가 연옥煉獄의 문 앞에서 돌아선 것은 가족들의 사랑 때문이었다. 몸을 추슬러야 했다. 그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그를 사랑하는 가족이 있었다. 그는, 쫓기듯 밤에 변두리 사글셋방으로 집을 옮겼고, 그 와중에도 아직 그를 믿고 따르는 난 몇 십 분을 거두며 재기를 다짐한다.
절망하고 절망하고 하염없이 절망해도
절망할 수 있다는 절망도 희망 아니냐
비탈에도 햇살은 내리고
흙탕물 속에서도 연은 꽃대를 밀어 올린다
「다시 사랑을 위하여」에서
그만큼 상심하였으면 난과 결별을 했어야 했을 텐데 김 시인은 그렇게 야박하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난이 그렇게 치명적인 병해로 죽어버린 건 자신의 관리 소홀 탓이라 자책하며 생명이 붙어 있는 몇 분의 난을 정성껏 거두었다.
몇 달을 난실에서 살다시피 하며 심혈을 기울인 결과 마침내 몇 분의 난분이 신아新芽를 발아發芽하기 시작하며 그에게 희망을 안겨 주었다. 그렇게 그는 난과의 인연을 다시 어어 간다.
3. 물로 쓴 잠언, 아름다운 상처
김 시인은 ‘어정쩡한 세월에 무단 주차시킨 내 인생이 절망이란 견인차에 무작정’ 끌려가다가 ‘길고 어두운 터널’을 빠져 나온 시인이다. 터널은 너무 깊은 상처를 그에게 입혔다.
상처는 아팠다. 아프지 않은 상처는 없다. 상처의 깊이는 시련을 겪어 본 자만이 안다. 옹이박인 나무가 아름답듯 상처를 치유한 자의 삶은 더 아름답다. 김 시인의 상처는 문학과 난에 의해 『아름다운 상처』로 기록된다. 그의 문학 수업은, 허명을 위한 공명심의 발로에서가 아닌, 생의 막장에서 문득 깨달은 계시 같은 것이었다. 그에게 문학은 구원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국어시간이다. 공부는 제쳐 놓고 새까만 촌놈이 시건방지게 소설을 쓴답시고 끙끙거리고 있다. 당연히 교사의 눈에 띄고 작품은 압수당한다. 교사는 선 채로 용감한 촌놈의 작품을 읽어 본다. 읽은 후 시간 마치면 교무실로 오라는 말 한 마디를 남긴다. 촌놈 치고는 싹수가 보였던 모양이다. 그 교사는 현재 <포에지창원>의 회장인 강윤수 시인(당시 안동문협 지부장)이다. 이를 계기로 부룩송아지 같던 촌놈은 문학에 코뚜레를 꿰이기 시작한다. 대학 시절에는 서양화를 전공하면서 소설을 습작했고, 자전적 소설 『내 슬프고 우울했던 젊은 날의 노트』를 출간하는 치기까지 보인다. 그런 그가, 생의 물살에 부대끼다가 인생 부도까지 겪고 나서, 가야 할 진정한 마음의 안식처가 문학임을 알게 된 것은 필연이듯 강윤수 시인을 다시 창원에서 만나게 되면서부터이다. 때 묻은 김시탁의 영혼을 표백하여 시의 세계로 입문시킨 스승은 창원대학교 평생교육원 문창과에서 만난 고영조 시인.
김 시인이 처음부터 매달린 시의 화두는 ‘물’이었다. 물은 삼라만상의 근원. 한 발 한 발 쉬지 않고 걸어가는 물의 모습에서 그는 자연인의 삶을 읽게 된다. 시인의 내면은 온통 물과의 교감으로 얻은 잠언箴言의 기록으로 빼곡하다. 그의 심서心緖는 오로지 물을 통해서만 풀려 나온다. 물이 말한다. “모난 곳일수록 먼저 달려가 몸을 눕힌 채 / 상처마다 만지고 함께 울어 주는 / 뜨거운 눈물”(「물」)을 보라고. “지칠 때마다 부축하고 / 병든 몸과 살을 섞으며 / 어디서 왔는지 묻지 않고 / 어디로 갈 것인지 망설이지 않으며 / 약속처럼 운명처럼 꾸준히”(「물․2」) 걸어가야 한다고. 김 시인은 물을 통해 상처를 다스렸고 세상사의 지혜를 터득하게 된다. “성질 날카로운 사금파리 조각도 일일이 혀로 핥아 / 날을 죽이고 거친 돌덩이도 가슴으로 보듬어 / 두루뭉실 깎는 물”(「물․3」)은 “참되게 세상을 사는 건 욕심을 버리는 거라고 / 가진 것 다 버리고 채워 온 것들 모두 쏟아내라고 / 제 몸에 들어온 모든 것들 다 거꾸로 세워 놓”으라고 말한다.
흘러가다 바위를 만나면 일단 우회를 하는 한이 있더라도 물은 멈춰 주저거리지 않는다. 앞서가는 물줄기들을 보면 불러 세워 큰 흐름 속에 몰아넣기도 하고, 지친 나머지 땅 위로 기어오르는 물살을 발견하면 곧바로 달려가 들쳐 업거나 손을 잡아끌고라도 바다까지 몰고 간다. 이런 힘을 지닌 물살은 그의 시 도처에서 흐름을 멈추지 않는다.
물의 공동체 의식은 김 시인의 삶을 지배하는 정신이 된다. 객체로서 그가 물에 동화하자, 회사의 부도와 난의 고사로 입은 상처를 물은 무색투명한 너른 가슴으로 치료해 준다. 물은 그에게 스승이고 진리이고 우주이다. 평정심을 찾았을 때 그는 곡강曲江의 물줄기로 흐르며 “나를 구부리는 일”에 서슴지 않는다.
강은 모래 속에 발목을 묻고
미리 줄기를 늦추어 흐르고
암벽은 맨몸으로 부딪쳐 올 강물을 상처 없이 받기 위해
아랫배에 힘을 준 채 시린 관절을 접지 않는다
수심이 깊은 곳에 그리움도 깊어
머물고 싶은 마음과 보내기 싫은 마음 사이로
길이 생긴다
강물이 굽어 흐르는 것은
떠나온 곳이 그리워
흘러가면서도 자꾸 고개를 돌리기 때문이다
너에게 닿기 위해 나를 구부리는 일은
4. B형의 봄을 수혈하는 시인
“구겨져 본 자만이 펴진 희망을 알 수 있다”(「빨래」)고 노래하듯 그는 구겨졌으나 다시 일어나 봄의 연둣빛 ‘희망’에 탑승한다.
13년 동안 몸담았던 직장에서 배운 아파트 분양 경험을 바탕으로 인간 김시탁은 재기에 성공한다. 그가 창업한, 아파트 분양 대행업체인 ‘(주)대성’은 업계의 베테랑으로 성업 중이다. 사업을 궤도에 올리기까지 그는 시골의 상머슴처럼 일했다. 도전적 시장 개척과 치밀한 정보 분석에 의한 고객관리는 컨설팅계의 자산이다. 그의 성공은 건설회사의 오랜 경험을 토대로 뛰어난 업무 능력과 직접 발로 뛰는 부지런함에 있다. 사업가로서의 김 시인은 창의력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추진력 또한 남다르다. 그의 사업장을 찾을 때마다 나는 김 시인의 사업가적 면면을 확인할 수 있었다. 7명의 직원들은 피를 나눈 형제 이상으로 화기 애애한 분위기이다. 희로애락을 함께 나누어가지는 가정 같은 미니 회사 경영이 그가 평소 바라던 바였다.
김 시인은 요즘 난에도 사업에도 열심이다. 그런데 그의 시작 활동은 왕성하지가 않다. 그는 과작의 시인이다. 시에 대한 열정이 식은 것도, 바빠서 시를 쓸 시간이 없는 것도 아니다. 과작의 이유는 시에 대한 경외심 때문이다. 그래서인가. 간혹 지면에 발표되는 김시탁 시인의 시는 완성도가 높아 문단의 주목을 받게 된다. 지난겨울 펴낸 두 번째 시집 『봄의 혈액형은 B형이다』에서 김 시인은 그만이 지닌 향기를 발산하기 시작한다. 대낮부터 벚나무 아래 앉아 동동주를 마시는 화자를 만나 본다. 꽃잎 하나가 그의 술잔에 떨어진다. 이 사소한 현상이 화자의 의식에서 피돌기를 한다. 꽃잎을 그냥 마시자 온몸에 열이 오르고 팔뚝에도 목덜미에도 얼굴에도 벚꽃이 피어난다. 벚꽃의 꽃잎 속에는 B형의 피가 흐른다. 봄이 수혈한 피다. 피의 수혈로 인한 열병은 꽃을 피우기 위함이다. 자연의 순환적 이치를 시인은 B형의 감각으로 피워내고 있다. 대상과 주고받은 이야기가 향기로 승화되어 우리들 가슴에 컥컥 다가와 안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숨 막혔으면 좋겠다.
안타깝고 서글프고 때로는 쓸쓸하고 눈물겨울 때 나는 그의 시집에서 B형의 피를 수혈 받고 싶다. 좌판 위에 싱싱한 시간이 올라앉은 ‘어시장’을, 비 내리면 일어서는 ‘길’을, 떼 지어 날아올 새를 위해 날마다 잔가지를 늘려가는 ‘나무’를, 장대한 주검으로 개미들의 먹이가 되는 ‘지렁이’를, 자르르 군침 도는 얼큰한 행복을 비벼 파는 ‘비빔밥집’을 만남으로 나는 위로 받으리라. 죽어가는 ‘땅’도 그의 향기를 쐬면 풀씨를 거두고 보듬어 꽃을 피우게 된다.
김 시인은 요즈음 가슴 속에 사람의 향기를 맡을 수 있는 더듬이를 지니고 산다. 농부 시인으로부터는 ‘땅김 같은 향기’를, 뻥튀기 할아버지에게는 ‘달달한 고로쇠 수액 같은 향기’를 맡는다. 나는 생각한다. 향기를 이렇게 잘 맡는 그야 말로 정말 향기 가득한 가슴을 지닌 사람이라고. 김시탁 시인의 이 향기는, 아들이 지어 준 “새집에 흙 묻는다고 현관부터 맨발로 들어오시는” 봉화군 춘양면 서동리 202번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어머니 심순대 여사의 DNA 지도와 일치하는 B형이어야 한다.
상처조차 탐미의 세계로 피워놓는 ‘물’의 시인, 난의 성정을 잘 다스리 는 난계의 젊은 거목, 그가 바로 우리 김시탁 시인이다. 나는 바란다. ‘가파른 곳에는 반드시 샘물이 있다’고 믿는 인간 김시탁, 사업도 번창하고 난의 잎이 가는 길도 이제는 척 눈치 채는 ‘난성蘭聖’쯤 되기를. 그러나 진정으로 내가 바라는 바는 항상 봄의 향기를 우리들에게 수혈하는 ‘시인 김시탁’으로 건재하기를.
공영해 ∥ 시조시인. 경북 영천 출생. 『시조문학』으로 등단.
*** 위의 글은 격월간지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5-6월호(2007년)의 '이 시인이 사는 법 / 김시탁 편'에 발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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