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아몬드, 넬슨 만델라, 백색주의, 케이프타운, 희망봉… 제가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에 대해 아는 전부였습니다. 그러니 와인에 대해서는 더욱 어두울 밖에요. Cathedral Celllar, Siyabonga, 그리고 또 뭐가 있던가?
에노테카에서 좋은 와인들을 할인판매하고 있어서 시음회 시작시간 보다 훨씬 일찍부터 도착하여 김진섭 점장님의 안내로 이놈 저놈 들추어 보며 침을 한껏 흘리고 있었죠. 마침 업무차 들리신 바인굿 앤 아미쿠스의 권소민 사장님, 윤준식 사장님과 인사를 나누고 나니 오늘의 발표자이신 이세용 선생님께서 도착하시더군요. 항상 털털한 옆집 아저씨의 모습이시지만, 와인 이야기를 하실 때는 냉철한 비평가의 모습을 보이시는 와인 전문가이시죠. 또 마음에 드는 와인을 드시면서 행복해 하실 때는 천진난만한 어린이의 모습을 보이시기도 하시구요. ^^*
오랜만에 데이트하자고 집사람을 나오라고 했는데 아직 도착 못하네요. 무료시음회인데도 제가 한 턱 쏘는 것처럼 말했거든요. ㅋㅋㅋ 곧 들통이 나겠지만 집사람이 알게 될 때까지는 얼마나 행복하겠어요? 이런 걸 선의의 거짓말이라고 하는 거죠.^^*
여러 날에 걸쳐 남아공 와이너리들을 다녀오신 이세용 선생님께서 남아공 와인산업 전반에 대해 설명해 주셨는데, 선생님의 새로운 정보를 이해하는 데는 제 얄팍한 와인지식이 전혀 쓸모가 없더군요..
350년이 넘는 오랜 전통의 남아공 와인, sweet wine으로 시작, 여기도 1886년 필록세라로 황폐화 되었다네요. 1948년에서 1994년까지 국민당 정부가 국제적으로 고립되면서 와인산업 또한 암흑기를 겪었고, 넬슨 만델라의 민주화 정부가 들어선 1994년 4월부터 변화와 발전의 획기적 전환기를 맞아 크게 발전하고 있다는 설명이셨습니다. 한가지 놀라운 것은 남아공의 와인생산량이 프랑스, 이태리, 스페인, 미국, 아르헨티나, 독일, 호주 다음으로 세계 8위이고 (9위 포르투갈, 10위 루마니아, 11위 중국, 12위 칠레) 남아공에서는 칠레를 한 수 아래로 보고 호주를 경쟁상대로 여기고 있을 만큼 자신만만하며, 와인의 품질도 평균 수령 8 ~ 9년 나무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대단해서 그 자신감이 허풍이 아니라는 사실이지요.
Winkler scale이 인용된 기후와 토양에 대한 설명, 처음 들어보는 남아공의 WO (Wine of Origin) 제도, 포도품종, Brand South Africa! 등 남아공의 노력과 집념이 실감나는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1990년도에 15.4%에 불과하던 Red Wine 품종 들이 2001년도에는 36.2%로 증가했다는 자료가 인상적이었구요, Brand South Africa를 구축하기 위한 남아공 최고의 Icon Wine인 Abraham Perold Shiraz의 출시, Pinotage의 고급화, 남아공 와인서적 및 잡지 등의 정보는 사실 이세용 선생님께서 이런 자리를 마련해 주시지 않으셨으면 몇 년이 지나도 쉽게 접해 볼 수가 없었겠죠. 좋은 기회를 통해 새로 얻은 정보를 모든 애호가들과 나누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실천하고 계시는 이세용 선생님께 감사 드립니다.
“남아공의 원조 포도품종인 Pinotage를 많이 마시면, 남성들이 기운이 세진다고 남아공에서는 굳게 믿고 있다”는 이세용 선생님의 말씀에 집사람이 저를 향해 눈빛을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하긴 와인이 정력제라는 소문이 퍼지면 와인시장 확대에는 더 없이 좋겠지만, 남성 와인 애호가들은 부인들로부터 많은 시달림을 받게 되겠지요. ㅎㅎㅎ
무려 열한가지 종류의 와인이 서브 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품질의 와인들이 제공되어서 비교시음을 통해 와인의 특징을 쉽게 느낄 수 있었죠. 어린 수령에서 나타나는 비리고 거친 맛, 쓴 맛이 느껴지는 와인도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같은 가격대의 칠레산 보다는 산도가 높고 탄닌이 부드러운 와인들이었습니다. 특히 이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현지 가격은 품질에 비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저렴해서 집사람에게 남아공으로 이사 가자고 농담을 할 정도였지요.
백포도주는 Chardonnay보다는 Sauvignon Blanc이 좋았던 것 같고, 적 포도주 중에서는 L’ormarins Optima 1997이 가장 마음에 들었어요. Cabernet Sauvignon, Cabernet Franc, Merlot의 Bordeaux blending을 한 와인인데 산도가 좀 부족한 듯했지만 진한 과일향과 맛이 모자른 부분을 채우고 남을 밸런스가 아주 뛰어난 와인이었습니다. Cabernet Sauvignon 100%인 Naledi 2000도 훌륭했지만 어린 와인이라서 그런지 탄닌이 너무 많이 튀어서 좋은 맛을 반감시키는 분위기였습니다. 몇 년 지나면 아주 훌륭한 맛을 내지 않을까 하고 집사람과 의견을 맞추었습니다.
시음회에 참석할 때마다의 문제점이긴 합니다만, 여러 와인들의 맛을 정확하게 평가하기 위해 맛을 본 후 삼키지 말고 뱉어 내자고 결심을 몇 번이고 하지만 마음에 드는 와인을 대하면 이미 위를 향해 내려가고 있는 와인을 느끼게 됩니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였지요. 오히려 집사람 잔에 있는 것까지 모두 다 마셔 버리고 서빙하시는 에노테카 직원분 들에게 계속 더 달라고 칭얼거리는 초보자의 행태를 답습하고 말았습니다.^^* 조상님들로부터 이어 받은 DNA에 깊이 새겨진 ‘체면은 순간이고 이익은 영원하다’는 신념(?)은 쉽게 떠나지 않으려나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