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민족예술 5월호 좌담 '예술난타' * - 민중가요의 새길찾기 # 일시 : 2001년 4월 14일 토요일 낮 11시 # 장소 : 민음협 사무실(02-364-8031) # 참석자 : 손병휘(사회), 유인혁, 박문옥, 최도은 |
손병휘 - 자, 가볍게 시작하죠,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주로 어떤 작업을 하시고
계시나요?
박문옥 - 뭐 내 것도 조금 하고, 운동 노래패들 것도 조금 하고 희망새, 국악가요.
그 다음에 가요지방생들 것도 몇건 하고 있습니다. 음반 나온것도 홍보하고
그래야 되는데 이 문제도 토론에서 다루어져야할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어
디 조직에다서 팔아주는 것도 아니고.... 그런다고 가수 지망생들처럼 돈
싸매고 와서 매니저를 구할 수도 없고, 그런다고 들어줄 음악도 아닌 것
같고. 이제 그런 고민들이 있지요. 한순간에 정치적인 상황이 바뀌니까 음
악적인 내용도 싹 바뀌어서 이른바 상업적인 것을 목표로 노력했던 그런
음악하고 비교해서 상대가 되게 그렇게 하기에는 역부족인것 같고 천재가
아닌 이상, 그렇게 날마다 머리 싸매고 어떻게 하면 돈을 벌어볼까 궁리
하는 내용에다가 반칙을 해도 좋고 뭘해도 좋은 음란해도 좋고 상스러워
도 좋고 뭐 해도 좋은 자유스럽고 어떻게든 돈만 벌면 된다 그런것과 비교
해서 약간 도덕적이어야 되고 그런 반칙을 하면 안되는 그런 싸움이니까
처음부터 이기기가 참 힘들죠.
손병휘 - 조금 있으면 부평 공연장에도 가셔야 되고, 요즘에도 현장 다니시는 최도
은씨가 이 문제에 대해서 얘기 좀 해 주세요.
최도은 - 시대상황이 어찌되었든 구조조정의 시대니까 구조조정을 당하는 30%하고
어울려 사는 저 같은 경우야 현장에서 싸우는 사람과 그곳에서 노래하는
상황이구요.
손병휘 - 요즘 많이 바쁘시겠네요?
최도은 - 요즘 많이 바쁜게 좋은게 아니죠.
유인혁 - 하하. 그렇구나
최도은 - TV에서 보셨겠지만 지금 부평의 상황은 광주 민중항쟁에서 테러단이 진압
한 것과 다를바가 없죠. 그냥 인도에 있는 사람들에게 무차별적으로 폭력
을 자행하는 것이니까요.
유인혁 - 그곳은 완전히 계엄상황인 것 같아요
최도은 - 많이 철수했는데, 많이 좋아진 상황이죠. 자기들의 부정함을 폭력으로 반
창고 붙이듯 덮고 있는 상황.
손병휘 - 유인혁 씨는 ‘민중음악판의 동물원이다’라는 표현을 듣는데, 꽃다지 음반은
잘 나왔나요? 사실은 곡을 만들면 발표를 하고 음반으로 제작해야 하는데
우리 상황이 그렇게 되지 않챦아요? 만든 곡을 어떻게 할 것인가 저는 사
실 인터넷을 활용하거든요. 그런데 이것이야말로 한계가 있는 것이고 특
히 우리처럼 현장성이 중요시되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벽을 느끼게 되고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를 갖고 팔아먹느냐 아니면 이것을 가지고 명함을
만들 것으로 만족하느냐의 기로에 서있는 것이 문제지요
박문옥 - 그런데 그 전에는 시대상황이 지금도 뭐 시대상황이 크게 변했다고 볼 수
없지만 그런 요구가 있을 때 현장에 가서 노래해주고 소외된 현장에 가서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보람과 긍지를 느낄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것
이 의미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에 상당한 피해의식같은 것이 생긴
다는 것입니다. 현장에서 찾아주는 사람도 점점 적어지고 그 전에야 내가
가서 품팔아서 가서 참여하는 것 자체가 큰 보람이고 즐거움이였는데, 그
남이 불러주는데도 지금은 별로 많지 않다라는 거죠. 불론 찾아 다니면 있
겠죠. 소위 소외된 곳과 그런 현장들이. 그런데 그것이 어떤 이슈가 있고
대중들의 호응이 있을때와 그렇지 않을 때는 좀 달라요. 근데 내가 만약
정치하는 사람같으면 별 상관이 없을텐데 나는 운동가로서 나는 내 경우
는 어떤 운동가가 아니라 음악하는 사람으로서 좀 좋은 쪽의 음악방향이
없을까 이렇게 해서 시작한 것이기 때문에 그 두가지 문제를 분리할 수 없
다고 봐요. 음악하는 사람들은 어디까지나 예술인이고 예술단체이지, 그것
은 정치단체는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정치하는 사람이나 이른바 운동가
들은 나중에 자기에 운동에 자취를 남기는 것이지만 어쨌던 자기의 살길을
찾아가는데 그런데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뭔가 예술적인 창작과 기량을 쌓
아야 하는데, 선전이라는 도구로서 뛰다보니 결국은 자기 충전의 기회가
없었다는 거죠. 그러면서 나중에는 쓸모없는 이른바 폐인이 돼버리는 현
상이 나타났어요. 그리고 나서 노래라는게 강력하게 도구로서 무기로서 사
용되어진 것까진 좋은데 그것이 시간이 흐르면서 새로운 무기로 변해야 하
는데 새로운 무기로서의 역할을 할 수 없다는 좌절감과 무력감, 그러니까
그 자체로 내가 살아왔던, 내가 음악해왔던 지금까지가 의미가 없었던 것
이 아니라 그것이 대중에게 검증을 받았건, 역사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 일
으켰건, 아주 소박한 것이 되었건 나는 굉장한 긍지가 있었고, 굉장한 성
과가 있었다고 봐요. 하지만 성과는 성과고 앞으로 미래가 중요한데, 현시
점에서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뭘 해야 하는 것인지, 계속해서
똑같이 힘도 점점 빠지고 나이도 들어가는데, 투쟁현장에 계속 가서 소모적
인 싸움을 해야 하는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운동이 두가지가
있는데, 정치적인 우리 현실에 대한 발언으로써의 것이 필요하기도 한데,
내 자신으로의 예술을 위해서 싸울 수 있는 그런 것이 필요할때가 되지 않
았는가 라는 생각을 스스로 돌이켜 보기도 합니다.
최도은 - 저 같은 경우에는 박문옥 선배님이 말씀하신 부분에 아주 상충적인 사람으
로서 예술은 사람들의 삶과 구분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사람들의
삶이라고 하는 것은 예술을 독특하게 연구하는 삶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
자체를 사람의 감수성에 맞게 표현한 것이 예술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렇
다고 한다면 이 시대에 사람들이 어떻게 사냐 속에 예술가는 함께 있어야
한다는 거죠. 함께 있고 박문옥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자신의 활동이 소
모적인 것이 되어 버렸다 나중에 나이가 먹고 이랬을 때 충전의 기회도 없
고 열심히 뛰다보니 선전의 도구로 쓰여졌다고 하셨는데, 전 그것을 거꾸
로 생각하는 사람이예요. 오히려 그 속에서 경험하고 실천하는 것이 표현
되었을 때 그것이 참 예술이 아닌가 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선동이나 선전
의 도구는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자체를 표현해 주는 자체가 민중예술
이 버틸수 있는 힘이라고 생각하는거죠. 부르조아 예술은 어떤것이냐 하면
예술을 특화시키는 거죠. 삶으로부터 분리시키고 그렇지만 그들이 분리시
킨 것이 지금 예술이 된 이유는 그들의 엄청난 권력과 돈과 이데올로기와
문화, 학계, 교육등 신변 잡다한 것들을 통해서 어려서부터 생활속에 그냥
습득이 되버려서 그런 어떤 대중예술과 상업예술, 고급예술만이 예술인걸
로 오해하는 부분들이 자라면서 있다고 생각해요. 그것에 반기를 들고 민
중예술이라는 것들을 다시 만들어 내고 대중 속에서 창작해 나갈려고 하고
대중의 삶에 집중하고 삶이라는 것은 밥먹고 편하게 사는 것만이 아니라
억압자로부터 권력을 가진자로부터 억압을 당하고 억압을 당하는 속에서
싸우고 그 싸우는 사람들의 역사가 흘러온 것들을 정리하고, 기록하고, 그
것을 음악으로 그림으로 글로도 표현한 것이 전 민중예술이라고 보고 그것
자체가 예술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저 같은 경우는 생각하는 거
죠. 그래서 선배님이 말씀 하시는 것을 듣고 나도 나이 먹이면 이렇게 말
할까 생각해 봤어요. 하하
- 일동 웃음
박문옥 - 20년간 우리가 줄곧 외쳐왔던 애기를 들으니 새롭네요. 우리가 여태 견지
해 왔던 그것이 우리의 활동방향이었는데, 그렇게 하다 보면서 현실에 와
서 지금 우리가 그 과정을 성과가 있었다. 분명히 그런 것인데, 예술론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성과가 현재에 와서 여러 가지 아까 말한 그
런 개인적인 회의, 현실, 사회적인 민중가요나 노래패들의 위축 그런 것
들을 현실적으로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니까 그것
자체가 선전선동가요나 또는 투쟁의 현장에 있는 음악이 필요가 없다는 뜻
은 아닙니다. 오해는 하지 말아 주세요.
- 일동웃음
최도은 - (웃음) 아, 오해하는 것이 아니라, 민중가요를 이야기하다 보니 이런 부
분은 좀 짚고 넘어 같으면 하는 바램에서 다시 한번 얘기해 본겁니다.
박문옥 - 민중가요라는 것이 두가지거든요. 민중가요를 얘기하는 것인지 우리가 여
태 그런 이른바 운동가요나 민중가요에 대한 말 자체에 어폐가 있지만 우
리가 어디까지나 민중가요인지 모르겠지만, 민중들이 부르는 것이 민중가
요인지, 민중들을 위한 가요인지, 민중의식으로부터 시작한 가요인지 잘
모르겠어요. 근데, 여러 가지 다 포함될 수도 있지만 언제부터 어떤 노래
가 그럼 구체적으로 민중가요라고 하는지 그것을 잘 모르겠어요. 그것은
나도 좀 어폐가 있다고 생각하는게 막상 현실적으로 민중들은 민중가요를
별로 열심히 부르지 않잖아요. 그것이 좀 문제라는 거죠. 할아버지나 소외
받는 할머니들은 흘러간 노래를 좋아하고 공장에서 열심히 근로하는 분들
은 신나는 디스코 메들리도 좋아하고, 물론 서태지도 좋아할 수 있겠고 오
히려 대중적인 음악을 좋아하거든요. 뭔가 내가 생각했던 그동안의 민중가
요라는 것이 민중을 계몽의 대상으로 삼았다고 생각해요. 민중들은 깨우쳐
야 되는 역사의식을 주입시켜야 하는 대상으로 생각했다는 거죠. 민중들로
부터 같이 함깨 하고 배우는 대상이 아니라 뭔가 우리는 엘리트들이 당신들
은 역사의식이 없으니까 뭔가 주입시키고 가르쳐 주는 관점에서 노래들이
많이 만들어지지 않았느냐 하는 그런점에서 조금 반성할 필요가 있다고 생
각해요. 그런 점에서 옛날 노가바 운동같은 경우가 상당히 성과가 나름대로
있었다고 봅니다. 그것이 무슨 예술적인 가치가 있어서가 아니라 노가바라
는 강력한 대중성 그런것들이 상당히 민중들에게 확산시키는데 역할을 했다
고 봐요.
유인혁 -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 그런 것 같아요. 아까 얘기를 들으면서 잠깐
생각해 봤는데, 실제로 집회현장이나 시위 현장에서 노래를 부를때 특정한
형식이 아닐 경우에 잘 안 먹히는 문제, 그런 것은 현실적으로 있고 그런
집회를 만들 사람에게 있어서 음악이나 노래 민중가요라는 것이 분명히 이
렇게 도구주의적인 부분으로 사용된 부분은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현실
적으로 그리고 또 하나가 사람들이 민중가요라는 것을 생각할 때 굉장히
전투적인 노래들만 생각하는 편향 같은 것이 있기 때문에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 그것을 갖고 그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보면 맞춰 나가는 것
이라고 생각해요. 시의적이라기 보다는 어떻게 보면 거꾸로 맞추어 온 것
이 아닌가 생각이 드네요.
박문옥 - 다른 분야에 비해, 특히 유독 음악 분야가 좀 그렇죠. 다른 분야 문학이
나, 미술 같은 경우 고급예술 순수예술 장르에서 이른바 80년대 지나면서
나온 작가들이나 예술 작품들이 하나의 주류로써 확고한 예술로써 자리를
잡았는데 그것에 비해 특히 문학쪽에서는 이른바 역량있는 작가들이 이미
그런 역사의식을 가지고 쓴 작품으로 되는건데, 음악쪽에서는 아마추어들
이 이른바 기성들 이미자나 이런 사람들은 부를 생각도 하지 않고 유명한
대학교수 작곡가들은 거의 참여를 하지 않고 극소수이고, 약간 아마추리즘
에 역사의식이 있으면서 음악을 할 수 있는 그런사람들이 역량을 여기에
쏟아붓다 보니 뭔가 그런 점에서 아직은 특히 음악분야만 유독 음악분야만
예술로서 대접을 받지 못한다고 할까? 주변예술로서 취급당하는 그런 느낌
이 있거든요.
유인혁 -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사실상 80년대 이래로 같이 왔던 민음협
이라든지. 민예총 같은 현장중심의 예술은 전부 아마추어리즘이라고 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 부분에서 그 잣대는 현실을 보는데 있어서 별로 중요
한 잣대는 아닌 것 같아요. 제가 아까 현장에서 도구적으로 사고되는 부분
이 있지 않느냐라는 것 또 민중가요를 수용하는 사람들이 민중가요에 대해
서 이해하는 부분이 굉장히 좁다는거죠. 그것이 음악이든 노래든, 다른 예
술과 마찬가지로 저 같은 경우는 이런 얘기를 하고 싶어요. 이게 왜 이럴
까? 선배님이 애기하셨듯이 저는 이 ....민중가요를 하고 좋아하는 사람
들, 하고 있고 이것을 좋아하는 수용하는 사람들에 있어서 정체성 같은 문
제가 제기되고 있어요. 도대체 뭘 하고 있는 사람들이며, 내가 이 노래를
좋아하는 노래가 뭐며 어떤 노래가 이러한 노래인가 잘 모르고 있어요. 노
래패 같은 경우가 그런 현상들이 심해졌는데, 옛날에는 학교 다닐 때 민중
가요가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 자체가 통용이 안되는 때였지만, 90년대 이
후 음악적인 스타일들이 바뀌고 섞이면서 대체 뭐가 민중가요냐? 서태지
의 교실이데아 가지고 한참 싸웠던 기억도 나는데 제가 생각하기론 그런
부분이에요. 현실적인 문제에 있어서 몇가지 문제들이 있죠. 유통하는 문
제든지, 수용이 옛날보다 훨씬 늘어져요. 옛날에는 곡이 뜨면 사흘만에 전
국을 강타하는 때도 있었지만, 일단은 수용 자체가 늦으니 당연히 반응자
체를 확인할 수도 없고, 이런 문제는 좀 다르게 얘기해야 할 것 같고 근본
적으론 민중가요의 정체성 부분에서 사람들이 혼란스러워 하고 있고 하고
있는 우리조차도 80년대 기억들과 옳다라고 생각하는 것을 통해서 뭔가를
얘기하고 싶었던 그러한 부분이 정리되어서 보편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개
념으로 확실하게 정립이 되지 않아서 내가 알고 있는 노래패들은 선배님
왜 이 노래를 하면 안되나요 묻기도 합니다.
손병휘 - 그런 것 같아요. 80년대는 누구나 같은 얘기를 할 수 있었어요. 일단은 독
제는 타도해야 되고, 외세는 물리쳐야 되고, 노동자의 심장이 되어야 한다
는 마치 진화되기 전의 그 무엇처럼. 그것 때문에 그것과 관련된 많은 여
러 노래들이 전부 민중가요로 묶여지고 갔는데, 어느날 90년대가 들어오면
서 각 부분별로 해결이 되면서 사람들의 관심이 다양해지면서 한꺼번에 포
괄할 수도 없을뿐더러 포괄하는 노래 자체를 만든다는 것도 말이 안되고
이렇게 되면서 혼란이 생겼어요. 80년대는 어떤게 민중가요야 라고 물어볼
필요도 없었죠. 머릿속으로 인식하고 있고 이것이 달라졌다라는, 저는 그
래서 보면 지금 관계에서 지역활동을 하시면서 자신의 음반을 만들고, 희
망새 음반을 만들고 현장에서 30% 라고 하는 분들과 함께 부딪치면서 가
고 결국 또 바위처럼이라고 하는 공존의 히트곡을 만들고 꽃다지를 계속 프
로듀싱 하고 있지만 이번에 어떻게 보면 30대 활동가였던 사람 아니면 화이
트 칼라 이런 사람들의 얘기가 담겨있는 듯한 그런 음반도 내고 그러니까
우리에겐 과거와 현재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어떤 개념 설정
을 하기 보다 우리가 어떻게, 참, 그 얘기를 꼭 해야 되겠내요. 얼마전 민
주노총 민중대회 전야제때 바위처럼의 관광버스 버전을 선보인적 있어요.
최도은 - 불나비의 관광버스 버전이 아니구요?
손병휘 - 아뇨, 불나비는 랩이였구요.
최도은 - 그랬나. 하하
손병휘 - 그런데 사람들의 반응이 좋았었어요. 그런데 그걸 선보이기 전에 집회 준
비하는 사람들에게 그 안을 올렸을 때 십중팔구가 반대를 했어요. 그러나
대중들은 미리 알고 있었어요. 그런 것을 원하고 있었고, 그래서 제 지론
은 좋은 노래를 만들면 그것이 어떤 장르의 구분을 하기 전에 받아들이고
반응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라는 곡은 훌륭한 대
중가요이기도 하지만 휼륭한 민중가요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니까 관심이
다양해졌다는 것과 전에는 한가지만 만족시키면 되지만 이젠 여러 가지 가
지가 있기 때문에 결국은 그 안에서 얼마나 자기가 관심있는 분야에 대해
서 얼마나 좋은 예술 창작을 하느냐가 관건이죠. 분명히 87년 6월에는 누
구나 나가서 독재타도를 외쳤지만, 그 후에는 어느 운동의 중심이 노동자
들의 운동, 그렇기 때문에 그때는 새벽이나 노찾사 마저도 그런 곡을 만들
었어요. 그리고 아직도 불리워지는 김호철의 노래도 있고 그런건데, 분명
히 그때 되게 웃기고 이상하다는 비판을 받았던 김호철씨보다 당시에 거창
하게 발표했던 새벽의 노래는 죽어 있는 경우가 많아요
유인혁 - 결국은 민중가요의 개념, 정체성 부분인데, 저도 그 얘기를 하고 싶습니
다. 일단 그것을 먼저 시작했으면 합니다. 우선 민중가요라는 용어자체가
타당한가부터 짚어 보아야 해요. 사실은 그것을 민중가요가 뭐다 라는 것
을 부정하자는 이야기가 아니고, 그런 부분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을 해
봐야 한다는 거죠.
박문옥 - 제가 이야기한 부분도 그것입니다. 어찌보면 우리가 반외세를 외치면서 형
식은 서양의 그런 이른바 대중들이 좋아하는 것을 예를 들어 전략, 전술의
하나로 수용해서 싸움의 도구로 이용하자 그런 것이 필요할때도 있었는데.
오늘 출판기념회를 한 정세현씨 같은 경우, 광주출정가를 만들었어요. 그
런데 알고 보면 이건 군가에서 딴 것이죠. 이른바 군사독재에 항거하면서
군사 독재를 찬양한 형식을 빌려서 노래를 한다는 것 자체를 회의를 느꼈
지요. 그래서 보다 형식적으로도 완전무결한 그런 정체성을 찾아보기 위해
민요에 관심을 갖게 되고 그런점에서 민요운동, 노동요, 민요, 국악, 가요
이런 형식에 민중가요가 대단해 내용과 함께 형식자체도 완벽한 정체성을
찾게 된거죠. 그래서 국악가요를 하게 되고 다시는 피냄새 나는 그런음악
을 안하겠다고 스스로 얘기했다고 합니다. 잔뜩 투쟁현장에는 똑같이 칼에
는 칼로 5월 광주 당시 군인들에게 몽둥이 맞아가면서 시위대들은 무슨노
래 불렀나면 사나이로 태어나서 라는 군가를 불렀어요. 부를 노래가 없어
서, 그것이 참 아이러니죠. 노래라고 하는 것이 어떤때는 그 노래가 누구
에 의해서 불려졌느냐 또는 어느 현장에서 불려졌느냐가 중요한 때가 있어
요. 예를 들어 아침이슬이 민주화를 외치는 학생들이 부를 땐 대단히 투쟁
적인 힘이 되는 노래지만 노태우씨가 술자리에서 부르면 그것은 같은 노래
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의미가 되거든요. 그래서 이제는 그런 노래 자체를
규정하기에는 어렵지 않나 생각해요.
유인혁 - 요즘 대학 노래패를 만나면서 하는 생각인데, 옛날에 어떤 노래가 있었는
지도 모르고 민중가요가 어떻게 이렇게 독특한 하나의 대학가의 노래문화
로 형성되었는지도 모르고 그렇게 때문에 앞으로 어떻게 가야할지 모르고
있어서 이 노래는 왜 부르면 안돼는지 그것과 이것은 무엇이 틀린지 아주
기본적인데서부터 막혀있는 것이죠. 선배들이 가르쳐 주면 좋은 것 같고 어
리버리 있다가 나중에 예를 들어 후배가 왔다든지 다른사람에게 이런 노래
가 어떠냐고 얘기할 때 그냥 ‘좋잖아’ 이상의 이야기를 할 수 없는 것이 현
실이예요. 민중가요의 독특한 문화 바운더리를 만들어 주지 못하는거죠. 지
금은 물론 장르가 다양화된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
나의 형식이 하나의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박문옥 선배가 말했
는데, 그것이 어떤 주체에 의해 어떻게 불리워지는 것이 중요한 문제예요.
이런 부분을 지적한 것은 굉장히 좋은 얘기인 것 같습니다. 그런 부분을 옛
날에는 노래책이 항상 첫곡이 '새야새야'로 시작을 했어요. 그리고 끝노래
는 거의 최신곡. 이런식으로 마무리되면서 노래책을 한번 쭉 띄고 나면 그
흐름들이 보이고. 그랬던게 지금은 가나다로 순서가 정해져요. 그것도 참
큰 부분인 것 같아요. 옛날에는 노래책들을 노래패들의 직접 제작을 했으니
까 만들면서 모르는 노래도 생기고 아, 이러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내가 부
르는 이 노래가 여기 있는 것이구나 라는 그 틀 그것에 대한 얘기고 이것이
없으면 사실은 글쎄 이거도 우리쪽 같고 이것은 우리 쪽이 아닌 것 같고 이
런식으로 계속 헷갈리니까 그런 부분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민
족적인... 옛날에는 노래패들도 민요들도 굉장히 많이 불렀어요. 못하면 바
보같은 그리고 제 기억으로 항상 민요를 2-30곡 정도는 외우고 있었던 것
같아요. 노래패들이 87년 전후로 없어졌지만 하여튼 민요를 한다고 해서 그
것이 흔히 말하는 진보적인 내용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니죠. 어떤 식으로 그
것이 우리에게 흡수되고 변형될것인가라는 부분들에 대해서 고민하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최도은 - 저 같은 경우에는 민중가요의 정체성을 얘기하니까 많은 생각이 납니다.
급격한 산업화에 의거해서, 예전에는 삶속에서 노래를 했단 말이에요. 이
런 것이 산업화의 과정에서 공장의 기계나 아니면 직장의 틱 타임에 훈련
되는거죠. 그 훈련되는 과정에서 익힐 수 있는 것이 대중가요고 공장에서
일을 하면서 들을 수 있는게 바로 대중가요입니다. 퇴근하고 친구랑 차한
잔을 마실 때 발라드에서부터 다양하게 몸 풀러 디스코장에 갈때부터 다양
하게 이전에 향유하던, 스스로 창작하던 그런 것들이 사실은 통제되는 것
이예요. 저는 민중가요 운동이라는 것이 어떤거냐면 통제되어 왔던 역사를
다시 우리것으로 찾아 나가려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다시 민중 스스로
가 삶 속에서 창작하고 삶 속에서 표현하는 것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표현의 자유, 국가보안법 철폐를 얘기하지만 그것들이 모두 연관이 있다고
생각해요. 산업화의 과정에서 빼앗긴 것들을 되찾으려고 하는 노력의 일환
으로 그 속에 저도 있는 것이고, 그렇게 때문에 민중가요라고 하는 것은
현실에 구애를 받는다는 것보다는 민중이 창작하고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
다고 보는 것.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죠. 아까 말한 것 중에서
한가지 생각나는 것이 있는데 민중가요를 교육시키려 했던 역사들에 대해
서 부정적으로 평가를 하셨거든요. 그런데 그것은 부정적인 평가에 대해
반박하는 것이 아니라 민중가요의 역사를 깨우친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거
죠. 그런 쪽으로 해결이 되야 된다고 생각해요.
박문옥 - 우리는 이미 전부 다 그것을 알고 그런 의식을 기본으로 깔고 있는 전제
하에 이야기를 진행하는 것이죠.
유인혁 - 아까 삶속에서 느껴지는 것을 표현하고, 직접 민중들이 노래하는 것이 중
요하다고 했는데 사실은 현대의 삶이라는 것이 단순명쾌하지 않고 그리고
너무나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펼쳐지기 때문에 싸우는 사람들의 삶 여기로
부터 어떻게 넓혀갈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있는데 그것이 잘 안 넓혀져 간
다고 그럴까? 처음에 제가 얘기했던 사람들이 민중가요하면 이렇게 이해해
요. 그런 지점에서 걸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요.
박문옥 - 80년대부터 5-60개 음반을 내가 같이 만들었는데... 나만큼 민중가요 음반
을 많이 음반 만들어가면서 부대낀 사람도 드물거예요. 빵에 간 사람도 많
았어요. 처음에는 녹음실이 없어서 방에서 북하나 퉁퉁치면서 기타정도가
하나 들어가요. 그렇게 노래를 불렀는데 신디사이저를 넣어서 광주여 5월
이여라는 곡을 84년도에 만들었어요. 그랬더니 서울지역에서 난리가 났어
요다. 신성한 민중가요에 저속한 신디음을 넣었다. 그래서 신디를 쓰는 것
이 민중적인가 아닌가라는 근본적인 문제에 부딪쳤어요. 그런 논의가 있어
서 그때는 근본주의 같은 것이 있었죠.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그러나
그때는 심각하고 했어요. 참 진지하고 고민되는 문제들이었거든요. 그다음
에 오케스트라 형식의 음악을 넣었지요. 이른바 부르조아 형식의 음악을
도입한 것이죠. 그것으로 인해 굉장한 비난을 받고 급기야는 천지인 같은
락그룹도 나오고 여러가지가 나오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그것은 음악 어
떤 하나의 그것이 음악인 이상은 자꾸 스스로 발전해 나가려는 자기 본능
이 있는 것이죠. 그것을 자꾸 이데올로기로 제압하려고 하면 안돼요. 그러
면 요즘 와서 심지어 어떤 사람은 집회 현장에서 신디사이저 음악이 흐르
면 신디가 대부분 일제 악기잖아요.(일동 웃음) 기가 막히죠 그러나 요즘
와서는 신디가 가장 민중적인 악기가 됐잖아요, 가장 돈 안들고 편리하니
까 그런 악기도 민중을 담는 시대가 되었다 저런 악기가 인위적으로 어느
하나의 이상적인 틀에 음악을 묶을수는 없다. 삶도 다르고 생각도 다른데,
이른바 건강한 아름다움을 찾아 가는 것이 민중음악이라고 생각한다면 아
까 최도은씨 이야기를 들으면 민중음악은 민중들이 민중의 손으로 창작하
고 역사의식을 가진 음악이면 더 좋겠다고 말씀하신거죠.
최도은 - 아뇨, 더 좋은 것이 아니라 바로 그것이라는 것이요 그러니까 선배님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락을 이용할수도 있고, 오케스트라, 재즈를 이용할수
도있어요. 다 이용할 수 있죠. 중요한 것은 바닥에서 사는 사람들이 체제
에 귀속받지 않고 그들 스스로 표현할 수 있다라는 거죠. 제일 중요한 것
은 저는 그런 것이라 생각해요. 민중가요는 통제되고 획일화되는 것이 아
니라 저는 우리들 방식으로 저항한다는 것이죠. 그것을 표현하는 자체가
저항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때문에 이런 다양한 양식을 쓰는 것이 확대
되는 것은 오히려 좋다고 봐요. 거기에서 기본적인 전제는 삶을 표현하는
게 중요합니다. 이것은 기본이기 때문에 더 이상 거론할 필요가 없고 저는 일
단 지금의 사람들 같은 경우에는 민중가요를 할 생각이 없는 것이잖아요.
음악을 만들면 그 자체가 하나의 문화가 되어 있는 것이고, 이미 체제내에
그런 도구들을 너무나 많이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나는 제도적인 기구나
체제에 틀에 들어가지 않고 하는 것 예를 들면 대학 노래패나 농민의 노래
패, 이런것들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외국같은 경우에는
영국의 브라스밴드 같은 것도 그들의 독특한 양식이거든요. 누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지배기구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저는 민중가요의 정
서의 첫번째로 지배계급 속에서 어떻게 민중들의 삶이 표출되느냐가 중요
하다고 봅니다.
유인혁 - 그런데 처음에 민중가요가 시작되었을 때는 의식적으로 이것이 민중가요
다 라고 만든 것이 아니거든요. 김민기 선배가 지금까지 그렇게 지금까지
극구 부인하고 있구요.
최도은 - 그렇지만 조그만 더 깊이 들어가 보면 프로레타리아 예술동맹쪽에 가보면
그들은 아예 그 시대에 전투적인 노래도 만들고 동요도 만들고, 그랬던
역사가 있는 거예요.
유인혁 - 저는 그 얘기를 하고 싶어요. 민중가요는 그렇게 처음부터 의식적으로 이
러한 노래를 만들어야겠다고 만든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최도은 -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유인혁 - 저는 그렇게 밖에 생각할 수가 없는데요, 사실은 그랬쟎아요. 이 노래가
심지어는 민중가요 옛날 노래책에 보면 대중가요들도 들어가 있고, 연속
극 주제가도 있고, 라디오 주제곡도 있고 다 그런것들이 있기 때문에 특별
한 취사 선택 과정을 통해서 이렇게 하나씩 덧붙여 가면서 쌓아올린 그런
한 형태의 문화라고 생각하거든요
최도은 - 저도 그것에 동의를 해요. 실지로 제가 노래운동을 해서 조사를 해보니까
전전에는 많은 저항가요가 민중가요였죠. 왜냐하면 새사회 건설을 위한 프
롤레타리아 예술동맹의 활동들이 그 당시 김순남이던, 이건우던 ,조선의
독립과 인민을 억압하는 일제 소탕, 미제소탕, 이런 것들이 주요했었다면
전쟁이 나면서부터는 이런것들이 사라졌죠. 전쟁이 나면서는 이런 저항작
곡가들이 생존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전쟁을 통해서 사라진 것이죠. 그리
고 전쟁이 나고 나서는 저항가요라는 것이 이제 4.19 있을 때 부른 노래
들, 그때 부른 노래가 대중가요도 있었지만 의식적인 역사들이 전 분명이
존재한다고 보고 민중가요의 두가지 양태에서, 강조해야할 부분은 지도하
고 교육하려는 이데올로기 역사는 분명히 존재해요. 제가 주장하는 또 한
가지는 민중가요 자체는 산업화의 과정에서 빼앗긴 삶과 분리된 예술, 이
런 것들을 되찾으려는 움직임이라고 생각해요.
박문옥 - 그 부분이 좀 어려운 부분인데, 한마디로 그렇게 잘라 말할순 없다고 생각
해요. 아마추어 얘기하고 좀 비슷한 애기인데, 예를 든다면 음악전문가로
교육을 받고 독일에서 유학을 하고 작곡과에서 음악을 배운사람과 공장에
서 근로를 하면서 음악을 열심히 만들어 놓은 음악과 약간의 차이가 있다
는 것이죠. 그것을 요즘의 삶은 옛날에는 가내 수공업적으로 다 해결이 되
었잖아요. 혼자살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사회자체가 분리되어 버
렸어요. 전부 다 분화가 되 있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별별 직업이 다 생겨
나고 그러다 보니까 이것은 민중적이고 이것은 민중적이지 않다고 말할 수
없게 된거죠. 만약 어떤 사람이 아버지는 땅을 파고 있는데 아들녀석은 빈
둥빈둥 논다면 그렇게 빈둥빈둥 노는 녀석을 나쁜놈이라고 단정지어 말할
수 없는 세상이 요즘 세장이죠. 그도 그 나름대로의 삶이 라는 거죠. 그
사람은 자체로 노동을 하고 있는 것이죠. 현대의 삶은 노동의 내용이 다르
죠. 그래서 어디까지가 뷰르조아고 어디 까지가 프로레타리아인가 한계가
불분명해지고 그런 아주 복잡하고 다분화된 사회속에서는 이제 똑같이 앞
으로도 민중가요가 있어야겠죠. 우리가 앞으로 불리워질 민중가요와 그전
에 불리워졌던 민중가요는 다르다는 거죠. 예를 들면 노래도 똑같잖아요.
흘러간 옛노래를 요즘 신세대 가수들이 부르면 가락을 같을지 모르지만 뭔
가 느낌이 다르잖아요. 바로 시대의 변화가 다르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같
은 것을 반복해도 어제 내가 했던 같은 행위가 다르다는 거죠. 그 전에 역
사에서 쭉했던 뭔가 하나로서 규정지을수 있는 삶이 아니죠. 삶자체를 우
리가 칼로 자르듯이 딱 잘라 말할수 없다는 거예요. 아까 말했듯이 일제의
신디를 쓰는 것은 민족적 입장에서는 나쁘지만 그런 것처럼 민중의식이나
민중의 생활을 담은 노래라고 하는 것도 그렇게 잘라 말할수 없는 부분이
생긴다는 거예요. 그래서 앞으로는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고 그 고민을 풀
어 나가야 하는 방법들도 더 다양해질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최도은 - 예, 그런 부분에 다 동의해요.
박문옥 - 그런데 문제가 뭐냐면 현재 오늘에 와서 그만큼 민중가요를 하는 노래패
들이나, 가수들이나 그런 활동을 하는 현장에 있어서 함께 투쟁하는 의식
을 가진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생활이 상당히 위축되고 있다는 거죠. 그
런 부분을 현실적인 부분을 인정해야 한다고 봐요. 그게 아니다. 앞으로
천년이 지나도 소외받는 사람은 있을 것이고 반민주적인 것도 남아 있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민중가요의 효용이 필요없다고는 말할 수 없을 거
예요. 그렇지만 2000년대 와서 많이 위축되어 있어요. 그건 사실이에요.
옛날 같으면 대학가 축제에서 팝송을 부르면 당장 돌멩이가 날라와서 기타
가 깨질겁니다. 노래패를 불렀는데 민중의식을 가진 노래패가 아니고 편안
한 노래를 부르면 야유가 터지던 시대가 있었죠. 얼마전 대학교 OT에 갔
었는데 락밴드가 나오면 팝송을 부르는 것은 당연하고 제일 좋아하는 것은
춤추는 것이더라구요. 그것이 우리의 현실이라는 거죠. 불과 몇 년전만 해
도 대학교 축제때 팝송을 부르는 것은 대단히 매국적인 사람으로 보였는데
그런 현상이 지금 대학에서 벌어지고 있어요. 락이나 힙합등을 열심히 하
면서 그것을 즐긴다는 거죠. 그런 것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는지
그런 고민으로부터 현재 우리 민중가요가 나아가야 할 길을 다시 찾아야
한다는 거죠. 현실파악을 좀 해야 한다고 봐요.
최도은 - 선배님이 현실문제로 오셔서 그런데, 민중가요가 위축되었다고 말씀하시는
것에 전 동의가 안되거든요.
박문옥 - 위축돼있어요.
최도은 - 왜 위축되었다고 생각하시죠? 근거를 말씀해 주세요. 저 같은 경우에는 역
사성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민중가요패에 대학노래패 출신들이 집단적으로
몰려왔던 시점이 있는 것이고,
유인혁 - 수적으로 그렇고 역향력에서 그렇죠.
박문옥 - 대중들의 영향력이나, 물론 민중가요라는 것이 히트곡 선상에서 불리워져
야 된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뜻에서 위축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 전에
도,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통틀어서 이른바 제도권에 상업방송을 하지 않
는 노래패들은 사실 그 영향력이라고 하는 것은 미미하고 거진 다 살아남
지 못했어요. 그리고 그래도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는 가수나 노래패들은
뭔가 방송이라도 한번 나간 사람들이 아니면 거진 다 지금 없어져 가고 있
거든요. 물론 지금도 농민노래패도 있고, 노동자 노래패도 있고 하지만 그
것이 자기네들끼리의 일반 일반대중들이 보았을때 민중가요를 저해하는 요
소가 될 수 있다는 거죠. 어떻게 보면 순한 노래는 대중들도 따라서 하거
든요. 피냄새가 뚝뚝 떨어지는 노래는 일반 사람들도 혐오감을 가져요. 예
를 들어 교회 안나가는 사람이 “오 주여 벌레만도 못한 이 죄인을” 그러면
혐오감을 갖는데. 교회 안 다니는 사람들도 “오 아름다워라 주님이 지은 세
계는” 그러면 우리가 좀 호감을 갖잖아요. 그런 것처럼 민중가요도 그 안에
빠져있는 현장속에 있는 사람은 그것이 절실하고 값지다고 생각하지만 일
반 운동의식으로부터 출발하지 않는 사람은 당사자도 소외받는 민중임에도
불구하고 그 자체를 싫어 할 수 있다는 것이죠.
최도은 - 저항성이 있는 민중가요라고 하는 것은 싸움이 있는 공간에 참여하면서 지
속되고 확산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선배가 말씀하신대로 민중가요패가
위축되었다면 어떤 부분이 어떻게 위축되었는지 내용적이 부분이 언급되었
으면 좋겠어요.
유인혁 - 예를 든다면 민중가요가 주도적인 노래가 될 때가 있었어요. 그때는 나와
서 팝송을 부르면 돌을 던져도 그것에 대한 무언의 동의가 이루어졌기 때
문에 그런 행위가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축소되었다는거죠. 게다가 88년 이후로 현장 노래패들이 없
는데가 없었는데, 지금은 많이 깨지고 그 성원들이 다른곳에 흡수되어 있
거나 일들을 못하는 부분들이 많고 음반판매량에 있어서 예전의 꽃다지 같
은 경우는 음반을 냈다고 하면 한 삼만장수준으로 항상 바라보곤 했거든
요. 구매층 자체가 그 정도가 팔려나갔는데 지금은 4천장에서 5천장 넘어
가기가 그렇게 쉽지가 않아요. 실제적으로 소비하는 숫자자체의 사람들도
많이 줄은거죠. 그런거라면 현실진단에 있어서 침체 또는 쇠퇴라고 애기하
는 것부터 시작을 하지 않으면 애기가 않될 것 같고, 그것은 지금의 엄연
한 현실이니까요. 실제로.
손병휘 - 다만 그것이 거품이었을수가 있죠. 거품이고. 실제로 봐요. 지금도 싸우는
사람들이 있고 노래부르는 사람들이 있다고 얘기할 수 있어요. 예. 좋아
요. 그러면 항상 전선에 접전에 있으면 얘기가 달라진다.
박문옥 - 나도 전선에 가 있는데...하하
손병휘 - 제 얘기를 할까요. 주로 많이 가보는 집회들이 바로 일하는 사람들의 집회
니까 특히 요즘에 현장에 가면 나오는 사람이 비슷비슷해요. 경우에 따라
서 누가 더 빠지고 누가 더 나오느냐의 차이죠. 제가 봤을때도 비슷비슷해
요. 노래들이. 아마 지나가는 사람들이 봤을때는 거의 똑같이 보일수도 있
을 것 같아요. 그런데 여기서 저는 그것이 되었으면 좋다고 생각이 드는게
물론 내일 파업을 앞두고 있다고 한다면 간단하게 주제를 정하고, 분위기
를 만들어서 가야 되겠죠. 어떤 집회든 똑같은 방식으로 가서는 곤란해요.
결국은 만드는 사람도 자유로와야 되고 그것을 즐기는 사람들도 굉장히 자
유로울 수 있게 노래들을 만들고 부르고 이래야 합니다. 지금은 미안하지
만 집회 와서 듣는 음악이 다르고 집에 가서 듣는 음악이 너무도 달라요.
유인혁 - 그건 옛날부터 있었던 현상 아닌가?
손병휘 - 지금은 더 한 것 같아요.
유인혁 - 더 양극화 되어있죠.
손병휘 - 저는 그것을 만드는 우리들이 그런 점에 더 자유롭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
각해요.
박문옥 - 이른바 상업가요들은 만드는 사람과 유통하는 사람들이 비즈니스가 되어
있어요. 그렇지만 이른바 노래패들이나 그런 의식으로 순수하게 노래운동
에 참여한 사람들은 그것 자체를 싫어해요. 그런 사람들은 누가 구호해야
되느냐, 누가 그런 사람을 비즈니스 해주느냐, 이 사회 자체가 그런 부분
에서 비즈니스가 없으면 안되는 사회인데, 그래서 노래를 필요로 했던 운
동, 노래운동이 아니라 노래를 필요로 했던 운동 관점이 두가지인데 노래
라고 하는 것이 노래의 운동성을 찾아가는 자체죠. 노래운동의 두가지 갈
래가 있어요. 하나는 사회운동의 도구로서 공급하는 노래운동, 혁명의 도
구로서 노래와 노래 자체를 좀더 자유롭게 표현하고자 하는 형식적인 면에
서의 노래운동이 있을 수 있는거죠.
유인혁 - 그것은 이분법 아닐까요?
박문옥 - 아, 그것은 그런 경향이 있다는 말로 들어주세요.(웃음). 그런 부분에서
이쪽 부분이 너무 소홀해요. 노래 자체로서 노래운동은 사전검열 폐지, 대
단히 중요한 창작의 표현의 자유를 쟁취하는 그런 의미에서 반사회단체,
독립운동단체, 노동조합, 환경단체 여러 가지 단체들이 많겠죠. 정치조직,
조직이 활성화되는데 필요한 선전도구로서 노래의 역할 그것은 그것을 사
실 노래 없이 되지는 않아요. 그것이 반드시 필요로 했잖아요? 사람들에게
지금 와서는 그 조직 자체가 힘들기 때문에 거기에서 문예역할을 했던 사
람들에게, 재충전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지 못했다는 거죠.
유인혁 - 우리가 민중가요를 해나왔을때는 기존의 독자적인 시스템이 있었어요. 아
무나 곡을 만들고 테입을 틀어놓고 골방에서 녹음을 하고 그랬잖아요. 이
것을 품에 고이 간직해서 복사할 수 있는데를 찾아서 혹은 악보로 내든지,
입에서 입으로 구전한다든지 퍼지는 나름대로의 독자적인 유통시스템을 그
리고 거기에 서점도 끼어 있었구요. 나름대로 완결적인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고리가 끊겨나갔다는 거죠. 사회과학 서점도 무너지고 옛날처
럼 그렇게 음질을 만들어 내면 팔리지 않으니까요. 민중가요를 처음 만들
었던 목적은 퇴폐적이고 천편일률적인 상업가요를 지향하고 보다 좋건 건
전한, 건강한 노래들을 만들어 이쪽을 없애겠다는 그런 논리였다고 생각해
요. 그러나 현실적인 힘의 관계나 역량으로 봐서 그 시스템 안으로 들어가
는 거라고 봐요. 그런데 이 쪽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시스템 밖에서 일하는
것이 너무나 익숙한 거죠. 그래서 시스템 안으로 들어가 성공적으로 정착
한 사람들 예를 들어 노래를 찾는 사람들, 안치환 같은 경우겠지요. 그러
나 많은 대다수의 노래팀들은 스타일 자체부터 안쪽으로 들어가기엔 너무
나 안맞는 부분들도 많았을 뿐더러 좀더 치밀하고 비즈니스로 만들어서 시
스템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거기는 게임의 법칙이 다르니까. 이쪽 노래와
저쪽 노래가 다르니까 그런점을 확실하게 인식하고 그것을 어떻게 절묘하
게 조화시키면서 갈 수 있느냐? 그리고 전 그 시스템 안으로 들어가는 것
에 대해선 대다수가 실패했다고 생각해요. 체질에 맞지 않아서일수도 있구
요. 그렇지만 민중가요가 시스템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민음협 같은
단체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봐요.
손병휘 - 그런 부분은 맞다고 생각하고 노래장르, 음악장르가 가장 대중적인 장르이
기 때문에 매스컴과 언론, 즉 자본력과 기획력에 가장 종속되는 장르인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민중음악은 여지가 적은 거죠. 안치환이나, 노찾사
의 노래들이 대중화 될 수 있던 것은 그들이 노래를 잘해서이기도 하지만
피디들이 이정도는 한번 틀어줘야 의식있는 피디로 보이기 때문이기도 했
지요.
박문옥 - 이전에는 합법음반으로서 좋은 음질과 방송에 적합한 음반이 없었어요. 이
미 대중들로 히트된 노래를 알고 있고, 이미 히트된 노래를 최초로 합법
음반으로 냈다는 거죠.
손병휘 - 요즘에는 그런 것이 없으니까 미리 히트되는 것이 없으니까 결국은 이 정
도까지는 틀어줄 수 있어 라고 피디들이 판단을 하죠. 우리가 아무리 우리
끼리 시장개척을 한다 해도 어느 정도의 한계는 있을 것 같고, 그래서 유
통과 홍보를 담당하는 사람들의 생각도 듣고 싶어요.
유인혁 - 옛날의 시스템을 다시 복원할 수 있겠느냐 하는 문제는 좀 비관적이긴 한
데, 내가 생각하기론 시스템을 복원하는 길이 민중가요의 정체성을 살리고
합법 시스템으로 들어가는 것이 힘을 가지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견
을 제시해 보기도 합니다.
최도은 - 예기를 들으니 제가 골동품 같습니다. (웃음). 저는 컴퓨터에 있는 씨디
라이터에 구워서 디렉터해서 배포하고 있어요. 현장에 있는 분들의 요구에
의해서 주거든요. 그리고 녹음도 집회장에서 직접 녹음한것도 편집해서 주
기도 하구요.
유인혁 - 그것은 전혀 문제가 아니구요. 그 방식만을 고집할 이유는 없다는 거죠.
그것은 그것 나름대로의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구요. 사실은 언제나
우리는 변방에 위치해 있다는 것이 맞는 말 아닌가해요. 그런 생각을 갖고
있으면 특별하게 억울하거나 그러지 않고 오히려 우리들이 하고 싶은 음악
들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토양인데 굳이 이쪽판으로 가겠다고 한다면 확
실하게 마인드 자체를 바뀌어야 하죠. 그리고 자기 자신의 음악적 색깔을
어떻게 유지하면서 갈 것인가 예를 들어 비틀즈는 양아치인데 단정한 머리
로 고쳤잖아요. 이처럼 변화로 인해 지금의 비틀즈가 있지 만약에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의 비틀즈 맴버들은 지금의 비틀지가 되지 않을 수도 있었어
요. 그런 부분들의 해결을 좀 더 지혜롭게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고 제가
생각할 때 옛날의 음반은 합법, 비합법을 음반심의를 통과해야 하니까 일
단 거기서부터 많은 마찰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나 대신 지금은 있다면
좀 더 다수의 대중들에 파급되는 효과를 막는 방송권력과의 싸움으로 단계
가 올라간 것이거든요. 사실 민중가요 하시는 분들은 나는 어떻게 되는 나
는 똑같아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니들은 니들대로 해라 이런
태도는 좀 문제가 있고 봐요. 연대의 틀을 만들어야 합니다. 사실 정태춘
선배가 싸웠을 때도 사실은 외로웠을 것이고 그런 부분들이 지금 우리가
보면 운동권들이 보편적으로 저지르고 있는 실수인데, 가장 중요한 문제로
영향을 집중한다. 이것은 맞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지금은 전선이 한 곳에
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전방위적으로 펼쳐져 있고 똑같이 대응을 하면서 전
선을 넓혀가는 그래서 형성해야 되는데 예전처럼 정치권력의 문제에만 집중
하다 보니 그 빈 지점을 오히려 경실련이나 정치권력이 치고 나오면서 오히
려 이쪽이 대중의 호의를 받고 매스컴 타고 저는 이런것들이 일종의 언론플
레이라고 생각하는 마음도 갖고 있어요.그렇지만 그것이 효과적인데에 이견
이 없구요.
박문옥 - 그래서 나도 그전의 대중성 확보라는 것에는 이론이 없습니다. 90년대 운
동 노래패들의 슬로건이 대중성이었어요. 지금 와서도 역시 마찬가지이죠
순수하게 노동자의 삶속으로 들어가서 농민들도 함께 하고 그것은 별개의
문제이죠. 언론 플레이가 모순인 것 같지만 중요한 문제입니다. 예를 들자
면 간디도 무저항 비폭력이라는 것을 기자를 통해 드러냈어요. 그래서 어
찌보면 민중가요라는 것은 더욱더 그럴 필요가 있습니다. 무기가 될 수 있
어요. 언론은 항상 필요한 것이지요.
유인혁 - 그것과 맞물려서 민중가요의 기본적 틀에 대해서 사람들이 사실 많이 헷갈
려 하잖아요. 군가풍도 있고 제가 보기엔 민중가요는 장르도 구분할 수 없
는 그러한 틀들이거든요. 음악적 양식으로 규정하려는 여러 시도들이 있었
으나 민중가요는 태도거든요.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와 관점이 항상 아래쪽
에 위치하고 그것이 흔이 민중이라고 얘기되는 사회적 약자, 경제적 약자
인 사람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봐 주는 것, 음악적 틀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골방의 태도, 더 좋은 장비에서 좀더 거칠고
투박하고 남성적이고, 생생한 살아 있는거, 운동권처럼 민중처럼 어디가서
봐도 티가나 멋있어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죠. 있어보이고, 흐름이 바뀌고
추레하고 미로서 아름다움으로서 안 다가오는 신세대 패션 이런것들이 흐
름에 가다보면 옛날과 똑같은 흐름으로 갈수는 없거든요. 근본원칙중의 하
나죠. 거칠고 날 것 그대로의 맛이 나는 것. 그것을 진입하는 과정에서 잃
는 것이 있고, 얻은 것 있어요. 홈스튜디오 그것에 근간을 두고, 그런쪽의
질감들을 내려고 음질을 일부러 다운시키키도 하고 그런 것을 서구에서는
하고 있었어요.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이러한 태도가 더 이상 90년대에는
멋있어 보이지 않는다는 거죠. 이제 더 이상 대중들이 미로서 아름답게 봐
주시 않는다는 거죠. 다들 자유롭게 하고 싶어하쟎아요. 역으로 보면 우리
의 자유분방한 방식이 환영을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옛날과 똑같은 방식으
로 해선 안된다는 거죠. 거칠고 투박하지만 그것에 설득력이 있을 때 민중
가요라는 느낌을 받게 되는 거죠. 꽃다지가 합법음반 낸다고 해서 편곡을
깔끔하게 했더니, 느낌이 안 좋다고 얘기를 했데요. 그런데 어떻게 보면
진입하는 과정에서 그렇게 갈아 입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잃은 것이
있었고 얻은 것이 있었죠. 세련된 맛은 있으나 예전 그대로 민중가요의 거
칠고 투박함의 질감들을 어떻게 살리느냐가 관건인 것 같아요. 그러나 이
미 서양에서는 일부러 거칠게 표현하는 음악을 만들고 있는데, 우리는 다
시 역행하는 거죠. 이미 대중가요는 6-70년대 사용했던 방법들이죠. 그런
방법들을 어떻게 적절하게 맞추어 갈 것인가의 문제가 있어요.
박문옥 - 그런 점을 어떻게 바라봐야 되냐면 우리나라 사회의 특수성이라고 봐요.
진보도, 저항도 좀 다르죠. 저항이라는 것이 기성세대에 대한 저항 아니면
도덕성에 저항일수가 있거든요. 저항도 여러 가지 달라요. 우리나라에서
진보나 운동개념은 어떤 대단히 도덕적이고 교조적인 부분이 있어요. 왜냐
하면 우리의 현실이 그만큼 암울했기 때문이죠. 반독재, 외세타도, 민중생
존으로 이미 귀착이 되어 있고 그렇기 때문에 음악도 그것과 분리되지 않
는 부분이었던 거죠. 민중가요라고 하는 것이 그것 자체는 대단히 특수한
것으로 우리나라에서 있었고 우리사회를 변화시키고 우리의 삶을 높이는데
그동안 민중가요가 엄청난 역할을 해왔죠. 김민기 선배의 말을 빌리자면
노래가 없었다면 어떻게 시위현장을 버틸것인가? 30시간을 싸운다면 노래
해야죠. 무슨노래라도 해야죠. 그 자리에서 걸맞는 노래가 없었다면 그만
큼 변화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우리가 생각하는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우리는 역사의 변혁에 긍지를 가져도 좋다고 우리는 역사
의 변혁에 그만큼 큰 공헌을 했다는 민중으로서 긍지를 가져야 된다고 생
각해요. 당장 대단한 스타도 아니고 정치 권력에 있는 것도 아니지만 문자
그대로 스스로 민중으로서 대단한 역할을 했다는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것
같아요. 그런점에서 민음협도 자부심을 갖고(웃음) 민중가요라는 것이 어
떻게 한마디로 말할 수 없는 실체를 가지고 있지만, 어디까지가 민중가요
가 아닌지 모르지만 우리가 다 느끼고 있잖아요. 그 실체가 역사를 변화시
키는데 대단한 공헌을 했다 그런 점에서 스스로에게 긍지를 가질 필요가
있다는 거죠. 우리가 자꾸 피해의식을 갖는데 사회는 자꾸 변하고 주위의
처음 했던 사람들은 영향력도 갖고 있는데 처음 그대로의 모습을 갖고 계
속해서 사회를 견지하면서 활동한다는 것이 힘들 수 있겠죠. 그러나 나는
지금까지 20년간 견지하고 있고 그것을 나 스스로도 승리했다고 생각합니
다. 그런 점에서 상업성을 쫓아가던 가수들은 잘 안돼서 다른 것 하는 친
구들도 많아요. 그렇지만, 저는 지금도 내가 해왔던 방식으로 즐겁게 음악
을 하고 있거든요. 내가 해왔던 음악방식으로 내 개인적으론 성공한 음악
가다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성공한 운동가는 아니지만 음악가로서 내 개인
삶이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성공했다고 자부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극히 일부분이지만 또, 민중가요 전체 사회적으로 보면 일부분이지만 상당
한 공헌을 했다고 생각하고 그런 점에서 긍지를 가지고 있어요. 그런 긍
지, 자신감으로부터 출발을 해야지 앞으로 민중가요가 계속적으로 생겨난
다고 생각해요.
유인혁 - 사실 80년대가 전반적으로 폄하되고 있어요. 사실 그 시대가 또다른 의미
의 억압이었기 때문에 정치권력에 의해 억압받는다면 반대로 그걸 위해서
저항했던 사람들도 그 거대함과 맞서 싸우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내부적으
로 자유로울 순 없었다고 생각해요. 시대상황이 그랬으니까. 근데 좀 ,부
당하게 폄하되고 있다는 느낌. 주류사회에서 갖고 있는 운동권에 대한 컴
플렉스를 볼 수 있어요. 빛진 부채의식이 있었는데 90년대를 통과하면서
말끔하게 떨어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 봐라 세상은 결국 이렇게 돌아간
다고나 할까?
박문옥 - 정치적인 논리는 사회 상황이 바뀌면서 자꾸 변해가죠. 그런데 노래는 변
하지 않는 것 같아요. 노래 자체로 생명이 있기 때문에
유인혁 - 계속 변형해 가면서 쓰이는 것은 확실히 있는 것 같아요.
박문옥 - 음악은 훨씬 더 강한 도덕적인 것으로 향략적인 힘에 맞설려고 하는 거에
한계가 있다는 거죠. 오히려 때로는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앉게 할 수도 있
지 않을까... 음악도 마찬가지다. 더 향략적인 힘에 맞설려고 하는 것이
한계가 있다.
유인혁 - 지금처럼 사랑노래가 이젠 사람을 죽이잖아요. 감동을 주기 위해서 그럴
경우 저항하는 방법이 그냥 잔잔하는 일상을 노래하는 것이 오히려 저항의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박문옥 - 그렇지!
유인혁 - 지금의 가장 적극적인 저항방식이 귀농운동이라고 애기하는 사람도 있는
데, 이 시스템에서 벗어나서 그것이 의미있다고 생각해요. 마찬가지로 노
래도 지금 보면은 사실은 저는 93년부터 대중가요를 많이 들었는데 그때는
서태지, 공일오비, 넥스트등 나름대로 굉장히 재미있었거든요. 그런데, 지
금 보면 다시 천편일률 상황이 되었어요. 그때 당시는 대중 가요도 사회비
판적인 내용이 많이 있었서 이쪽의 사람들이 많이 흡수되기도 했을 것이라
생각해요. 그런 층들과 공유할 수 있는 ‘싸우자’ 이렇게 애기하는것도 분명
히 가치 있지만, 분명히 필요하지만 전혀 대중가요를 할 수가 없쟎아요.
충분한 존재의 이유랄까?
손병휘 - 예, 좋습니다.
박문옥 - 그러니까 민중가요의 전통을 이어받는 새시대의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음
악, 같이 부를 수 있는 노래를 만들어야죠.
손병휘 - 최근 개봉한 영화 친구에서 다 죽고 그러는데 우리야말로 어깨에 힘 빼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해야해요.
최도은 - 저는 원래 체격이 그래서...(웃음)
유인혁 - 문화적으로 받아들여야할 사람들이 소비 안하고 익히지도 않으면서 요즘
노래에 대한 비판을 해요
손병휘 - 오히려 맨날 같은 톤으로 하려니까 오히려 대중들은 노동자들은 짜증내고.
최도은 - 아니 그럼 어떻게 하면 투쟁 저항하는 공간에 어떻게 다가가갈 것인가에
대해서도 고민을 해봐야죠.
박문옥 - 그렇죠. 투쟁의 대상이죠. 합리적이어야 해요. 노래운동이고 하는거 얼만
큼 성스러운것인지는 잘 모르지만 살아남은 자의 부끄러움이 가슴에 있을
때는 어떤 희생이라도 감수하고 그것을 하지만 이제 사회가 변했을때는
이젠 좀 합리적이어야 하죠. 과학적이고 현실을 그대로 꿰뚫고 가야한다
는 것이예요. 당위성과 삶을 과학적으로 배치해야 하고 어느 한순간 가장
선명하게 투쟁대열에 나섰던 사람이 가장 선명하게 변절하는 경우가 있
거든요.
- 일동웃음
박문옥 - 그리고 가장 온건하게 물고 늘어졌던 사람이 끝가지 물고 늘어져요. 물론
성격차이도 있겠지만, 그래서 앞으로 민중가요는 가장 온건하고 끈질기게
가는 방향으로 가는게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유인혁 - 그렇죠. 오히려 원칙적으로 과격하게 갈 필요도 있는 것 같아요. 만약 그
렇게 온건과 과격으로 나간다면,
최도은 - 민중가요라고 하는 것은 저항의 공간에 맞는 노래로서 민중가요의 의미가
좀 크다고 생각합니다. 저항의 공간에는 저항에 맞는 노래가 필요한 것이
고, 노동자나 일반사람에 대한 일상에 대한 것들을 고민하고 창작활동을
하는 것들이 지금까지 비어있는 지점이라고 생각해요. 그 비어 있는 지점
에 대한 연구와 활동이 좀 보강되어야 한다고 봐요. 억압의 구조를 물리치
는 것이 민중의 역사이고 그런것들이 민중가요의 몫이고 또 민중가요와 함
께 했던 사람들의 몫이라 생각해요. 선배님이 주장하는 부분들도 인정하지
만 저는 민중가요는 좀더 실천하는 공간에서 생동감 있게 실천, 활동하는
것들이 민중가요의 몫이라 생각합니다.
손병휘 - 각자 이번 토론에서 말씀하고 싶은 이해를 토대로 얘기를 한 것 같습니다.
그래도 못다한 말이 있다면 한다디씩 해 주시죠?
유인혁 - 저항한다고 했을 때 어떻게 저항하는 것인가? 저항의 공간에 존재하는 것
에 대해 더 중시하건 기본적으로 민중가요 운동이 해왔던 보편적인 정체성
과 관련된 부분이기 때문에 충분히 동의할 수 있는데 다만. 저항의 방식
자체도 좀 틀리죠. 옛날처럼 싸우는 공간만이 저항의 공간은 아니라고 생
각해요. 일상속에서도 싸울수 있는 것이고, 그럴 때 어떤 노래들이 필요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들 그리고 거기에 대한 노력과 지원을 필요해요. 나는
민중가요를 하거나 듣는 사람들이 조금은 어깨에 힘을 빼야한다고 봐요.
너무 특별한 일을 해온 것처럼 느끼는 것 있잖아요? 그래서 자꾸 무리하게
되고, 우리도 이것이 좋다. 너희들이 그게 좋은 것처럼 우리도 이것이 좋
은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것을 수용하는 사람들도 민중가요 노래패들도 다
죽었다고 애기하는 자체도 듣기 싫어..
최도은 - 그러나 통계적으로 이런 부분이 있다고 지적할 수는 있죠.
유인혁 - 창작자들, 실제로 주체, 만드는 사람들이 어깨의 힘을 빼고 여러 가지 다
양한 보일 수 있는 것이 필요한 것처럼 민중가요을 수용하는 사람들도 제
발 음악 좀 듣고 음반은 돈 내고 소중히 사보고 공연에 있어서도 그런 것
을 어떻게 받을 것인가에 대한 취향도 결정하고 팀도 운영하고 해야하지
않은가요?
최도은 - 그런데 마지막 부분에 있어서 아직도 계속 고민인데, 어떻게 듣게 할 것인
가? 어떻게 듣게 할 것인가에 대해 적극적으로 노력하지 않고 들을 수 있
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듣게 할것인가에 대해 민중가요를 창작하고 활동하
는 사람들이 그들을 만나는 고리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봐요.
유인혁 - 사람들이 민중가요를 듣는 곳이 대다수 집회장소든지 가끔 공연장, 방송으
론 전혀 못하니까 인터넷이 새로운 매체로 뜨고 있잖아요. 요러한 지점들
이거든요. 이런것들을 어떻게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유기적으로 연결해야
된다는 것처럼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되는데, 그것이 나는 창작자
의 몫은 아니라고 봐요. 물론 연행자 창작자인 몫인 동시에 그것이 아니라
민중가요 민음협일이야 라고 말하고 싶지만 조금은 더 집중적으로 고민하
는 쪽이 단위가 이쪽이고 물론 실천적으로 하다보니까 사람들은 이것을 더
즐거듣더라 이런식으로 갔다라고 실제적인 소스를 내놓고 그것을 조금더
고민할수 있는 사람들이 정책화 시키고 균형잡히게 되는 것이죠
최도은 - 민음협의 역할, 그것을 통제하고 기획관리하는 역할도 있겠지만, 연행자나
창작자들이 실제 대중과 결합하는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실
제적으로 결합력들이 굉장히 축소되어 있고 집회를 운영하는 자가 요청했
을 때만 결합하는 것이 다수가 된다는 것은 안된다는 거죠. 일상적으로 대
중 투쟁의 공간, 삶의 공간속에서 결합하는 것들 속에서 우리 노래가 확장
되고 이러는 방법들이 더 올바르지 않을까 생각해요.
유인혁 - 그것이 지금 제가 보기에는 지금 시대에서는 기획력 뿐만이 아니라 자본력
이 필요한 부분이 분명히 있어요. 아디디어로 해결될 수 있지만, 관객동원
은 굉장히 과학적이고 치밀하게 현실적으로 고민을 해야되는데 그걸 사실
은 각 팀들이 무참하게 깨지기도 하고, 나름대로 성과를 얻어 가기도 하는
데 이런 것들이 묶일 필요가 있다는 것은 다들 공감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하는 한계가 있으니까 그것을 좀 뛰어 넘었으면 해요.
최도은 - 저 같은 경우에는 공연장을 만들어서 그것을 보게하는 방식들이 아니라 일
상속의 결합이 중요하다고 봐요. 투쟁의 현장에서 5분대기조처럼 있다가
노래를 하게되면 하고 못하게 되더라도 그 운동에 참여하는 것이 축척되면
서 독특한 방식으로 우리의 노래를 전파하는 구조가 되어 있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유인혁 - 저도 그러한 방식은 유효한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최도은 - 예, 제가 말한것도 하나의 방식으로 이야기한 것입니다.
유인혁 - 제가 생각할때는 그래요. 우리들 스스로가 자기들이 살아가는 방식이 있잖
아요.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 있고 내가 살아가는 방식도 민중의 삶이라는
방식과 그렇게 다른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똑같지는 않지만...
손병휘 - 좋습니다. 우리가 두시간 가까이 얘기하고 있는데 일단은 형식적으로 정리
를 하고 나올 수 있는 얘기는 거의 다 나온 것 같습니다. 일단은 정리하면
서 한분씩 마무리 이야기를 하죠.
박문옥 - 일단 오늘은 민중가요에 대한 이야기를 해서 그런데, 운동이라는 것이 여
러 각도에서 볼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실체가 있긴 하지만
우리가 다 이야기하기는 너무 광범위하고 노래라고 하는 것이 삶의 현장에
서 진실되어야 하고 투쟁현장에서 필요하다는 것이 민중가요의 속성을 가
장 극명하게 드러내보이는 것이긴 하지만 방법으로 여러 갈래가 있을 수
있다고 봐요. 부분적인 문제가 되겠지만, 나는 광주라는 지방에서 어떤 때
는 지역문화운동, 이것도 어떻게 보면 중앙의 획일화 되어있는 것에서 가
장 중요한 운동의 하나의 방식일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또 하나는 유통
관계에 있는데, 유통의 방식을 상업적 루트가 아닌 나름대로의 음악을 소
비하고 생산하는 그런 건전한 관계를 네트워크을 만들어 가는 것, 그 자체
가 어쩌면 대단히 중요한 요소일수 있다는 것이죠. 그런 두가지를 얘기하
고 싶어요. 예술에 노래의 내용이나, 음악의 내용은 우리가 여태 얘기해
왔지만 우리가 보지 않는 또다른 측면에서 지역문화 운동, 개인의 삶, 삶
에 관한 배려, 그 다음에 유통방식의 자유로움이 대단히 큰 운동중의 하나
라고 생각되어져요.
최도은 - 민중가요는 민중의 삶을 조금더 진보하는데 중요한 영향을 미쳐왔다고 생
각을 해요. 사회를 변화시키는데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고 이후에
도 민중의 삶 속에, 삶의 아픈곳을 찔러나가는 우리들만의 독특한 방식으
로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계속해서 좀더 더 많은 민중가요 활동을
하고 민중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현실참여가 더 많이 계속되었으면 함니다.
유인혁 - 어깨 힘빼고. 자기 좋아하는 노래 듣는다 생각하고 그런 쪽이 중요하게 보
여져요, 그리고 끊임 없었던 이분법적인 구조하에서 서로를 그런 식으로
뭐가 원칙적인 것인가를 자르지 말고 다양한 모습들이 다 전체적인 민중가
요의 모습들이라고 생각하고 그런것들을 조금 넉넉하게 포용할 수 있는 형
태, 조금 넓은 형대로 연대가 되어서 이쪽 끝점과 저쪽 끝점이 있더라도
끝점끼리 서로를 인정하고 이분적으로 적과 나를 가르는 방식은 아니었으
면 해요. 그래야 더 풍성해지고 서로 업그레이드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손병휘 - 전 개인적으로 우리가 민중가요를 얘기할 때 바운더리가 좀 더 커졌으면
좋겠고 우리 주위에 있는 분들이 좀 더 다양한 음악을 하려고 하고 각자의
길을 가고 있는데, 이 사람들이 자신의 고유한 장이라도 생기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의 나아갈 길이라 생각합니다. 그것은 일단 우리가 먼저 노력을
해야 하고 만들어야죠. 그러나 유통과 홍보의 문제는 별개라 하더라도 수
용자 그런 문화 자체가 우리의 운동이 성숙해 가는 과정이고 이것이 되지
않으면 우리 모두의 미래는 밝지 못할 것 같아요.
유인혁 - 그래서 마지막으로 한마디 더 하고 싶은건 지금까지 부처님 가운데 토막같
은 얘기만 했는데 먹고 살게 좀 해줘. 뭐 이런게 아닐까?
손병휘 - 그것 참 중요하죠.
유인혁 - 제발 어떤 방식으로든 먹고 좀 살아보자. 좀 따뜻하게 살아보고 싶어.
손병휘 - 정말 모두들 수고 하셨습니다.
첫댓글 좌담내용을 차분히 읽어 봤을 때 박문옥씨는 경험위주의 논리가 있는 듯, 민중노래가 위축된 부분은 성황리(누구들에게, 얼마만큼?)에 있던 그 젊은 날(88년이전?)의 분위기에 박힌 인상! 그러나, 다양한 현장, 장르(민중가요내에서)를 바탕으로 다양한 주체들이 광범위한 소재를 갖고 이야기하고 노래하는 지금이
더 활성화된 것이 아닌가 봅니다. 분명, 친숙하지 못한 자들도 민중가요를 보는 눈이 관대해 진 것만큼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유인혁씨의 경우도 "유효하다"면, 동의한다는지, 일부 동의한다는지, 아니면, 동의하지 않지만 일리는 있다는 내용인 지, 대화라기 보다는 대화상대와의 기존 관계틀을 중심으로 주입하는 아니면
주입당하는 고정된 듯한 인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민중노래는 누가 뭐래도, 어떤 형식이든, 노가바든, 민중이 민중을 위해 노래 부르는 것이라 봅니다. 아침이슬을 노무현이 부르면, 민중노래가 아니듯! 또, 꼭 투쟁의 현장에서 선전선동을 위한 것뿐이 아니라, 쟝르가 다양하듯, 지치고 힘들고 위로받고 싶을 때! 평안
의 안식을 주는 노래도 분명 필요합니다. 울고싶을 때, 적어도 혼자만의 공간속에서 펑펑 울고 싶을 때, 따뜻한 위로의 노래 한곡에 많은 힘을 얻지 않습니까? 시스템과 매카니즘에 다소 주안점을 두고 있는 유,박 두분의 이야기에 큰 공감이 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손병휘님께 많은 공감과 배움이 있었습니다.
참! 노무현이 아침이슬노래하는 것을 민중이 듣고 감동을 받으면, 그게 민중노래화한 것인지, 아닌 지를 모르겠습니다. 묘한 문제입니다. 노무현의 가치와 현실한계를 용인해 준다면 더 복잡한 현실론과의 대담도 필요한 듯. 크~~
박준 님이라면 어떤 이야기를 전개했을 지 궁금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