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2급에서 1급으로 도약하는 국어과 1정 연수 첫날이다. 조금 우습게도, 아주 오래 전 초등학교 1·2학년 때나 겪었을 법한 소풍 전날의 설레임 비슷한 것이 생겨서 전날 밤잠을 설치고 알람소리에 맞춰 겨우 눈을 떴다. 근데 이게 웬일......아침부터 천둥 번개를 동반한 엄청난 폭우가 내리고 있는게 아닌가.....하필이면 첫날부터 웬 폭우람.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서둘러서 나선다고 나섰는데 고속도로에 진입하자마자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집중폭우가 쏟아졌다. 첫날이라고 연수원까지 태워준 남편 덕에 아슬아슬하게 시간맞춰 도착할 수 있었지만 너무 서두른 탓에 아침부터 힘이 쫙 빠졌다. 등록 장소인 101호에 들어서자 벌써 거의 대부분 샘들이 다 와 있었다. 담임 연구사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등록을 하고 겨우 내 자리를 찾아서 앉고나니 그제서야 휴우~하고 한숨이 나왔다. 두리번 주위를 둘러보니 아는 얼굴 몇이 있어서 반갑게 눈인사를 나누었다. 두꺼운 두 권의 연수 교재를 받아들고 나니 이제야 비로소 연수가 시작됐구나 하는 실감이 난다.
연수 첫날이고 갑자기 비가 많이 내려서 다들 정신없이 바쁘게 도착했을텐데 아쉽게도 우리 담임 연구사님은 너무 딱딱한 분이라 쫓기다시피 허둥지둥 도착한 연수자들에 대한 배려가 너무 없었다. 처음부터 늦게 온 샘들에게 눈치를 주고, 고압적인 말투에 9시에서 1분이라도 늦으면 지각처리 하겠다는 멋없는 말만 늘어놓아서 뭔가 좀 인간적이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기대했던 나로서는 첫날부터 김이 팍 샜다. 그러면서 퍼뜩 떠오른 생각이 학기 시작 첫날에 우리 반 학생들과의 첫만남에서 혹시 내가 저런 모습을 보인 적은 없었나 싶었다. 새 선생님에 대해 뭔가 잔뜩 기대하고 기다렸을 아이들에게 첫날부터 이것저것 잔소리에 앞으로 비협조적으로 나오면 1년이 괴로울거라는 반협박조의 말을 한 적은 없었나를 떠올리며 학생들의 입장으로 돌아가자고 다짐했다.
대강당에 모여 개강식을 마치고 도승회 교육감의 특강을 들었다. 제목도 없는 특강이라 별로 기대한 건 없었다. 특강의 요지는 결국 많은 도움이 되는 연수가 되길 바란다는 말과 함께 앞으로의 교육은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첫날 첫 만남은 늘 희망적인 얘기로 시작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데 늘 이런 강의를 들으면 교육에 대한 비판과 부정으로 일관되는 게 좀 아쉽다. 교육감의 특강에서는 일본과 한국을 끊임없이 비교하며 일본 따라가려면 멀었다는 식의 해묵은 일본 사대주의 냄새가 풍겨나왔다. 제목없는 특강답게(?) 마땅한 주제도 없고 내용의 논리적 흐름도 없는 그야말로 '특강'이었다.
특강을 마치고 다시 101호로 와서 연수에 대한 시시콜콜한 안내사항을 들었다. 우리 담임 연구사님은 역시 별 재미없는 딱딱한 어조로 얘기를 시작했는데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선생님은 잊혀지는 선생님'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러면서 칠판에 '不狂不及' (미치지 않고서는 미치지 못한다)는 말을 적으셨다. 그래도 그 말이 제일 기억에 남는군......
12시가 돼서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갔는데, 역시 줄이 줄줄이 늘어져 있었다. 아! 연수원 생활의 가장 큰 고통은 바로 이 '밥 먹기 위한 줄' 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시절 4년을 생활관 식당밥을 먹으려고 줄을 섰는데 그 긴 '줄 서기'가 또 시작됐구나.....나는 개인적으로 즐겁게 연수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도시락도 싸 다니고, 가끔씩은 외식도 하고 싶었는데 그건 원천봉쇄라고 한다. 연수원 측에서 미리 식사량을 예측해서 예산을 다 잡아 놓았기 때문에 무조건 한달 치 돈을 내고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해야 한단다. 밖에서 사 먹고 싶더라도 연수원 식당에 식비를 내고 개인적으로 사 먹으라고 한다. 첫날 아침부터 좀 열 받았기 때문인지 그런 사소한 일들에도 자꾸 딴지 걸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일방적이고 융통성없는 연수원 측의 태도에 슬며시 화가 나기도 하지만, 연수자로서 하라는 대로 해야지 뭐.......어쨌건 대학 후배이자 발령 동기 샘들 두 명과 즐겁게 식사를 마쳤다.
오후 시간에는 <창의력 개발과 교사의 역할> -대구대 김춘일 교수-의 강의를 들었다. 충청도 아니면 경기도 말씨 같은데 아무래도 경상도 말씨 보다는 훨씬 듣기가 좋고 편하다. 평소에 사투리를 쓰는 것에 대해서 별 거부감이 없었는데 강의를 듣다보니 경상도 말씨 보다는 표준어가 훨씬 부드럽게 들리고 편하게 와 닫는다는 게 새삼 느껴진다. 비교적 재밌고 세련된 강의였다. 특히 영어 발음이 무지하게 좋아서 받아 적지 못할만큼 유창했다. 20세기 교육학의 흐름을 짚어가며 그에 따른 '창의성' 의 개념 변화에 대해 설명했다. 내용의 흐름이 잘 정리되는 강의였으나 교재에 있는 내용과 달라서 쉬지 않고 필기를 하느라 정신이 좀 없었다. 예전에 교육학 시간에 배웠던 내용들이 나왔는데 너무 오래돼서 무지하게 새롭게 들렸다. 중간에 미술사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하셨는데 꽤 해박한 지식을 갖고 계신걸로 봐서 전공이 아마 미술쪽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결론에서는 창의력 개발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결국 창의력 개발 프로그램을 연구해서 창의적 사고 과정을 훈련시켜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창의력 개발 프로그램 자체가 정작 어떤 것인지는 너무 전문적인 것이어서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걸 알려면 꽤 깊이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해야될 것 같은데, 요즘 막 말문이 트여 여기저기 호기심을 보이는 우리 아이를 위해서라도 좀 관심을 가져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첫날 과정이 다 끝났다. 하루가 어떻게 갔는지 모를 정도로 피곤했다. 돌아오는 길에 마중나온 남편에게 하루 일과를 얘기하며 내가 제일 많이 한 말이 "짜증나" 였다. 으~즐거운 마음으로 연수받자고 해놓고서리.......반성, 또 반성하며 이왕 연수 받는 거 즐겁게 받자고 다시 한 번 다짐했다. 그래도 첫날부터 던져주는 과제를 보면 한숨이 나오는 걸 보면 난 정말 어쩔 수 없나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