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리산 둘레길 구례구간(51Km)
8월 7일 무이파 온 날,
제 4 구간 중 난동에서 구례읍(지리산둘레길 구례선터)까지 약 12km 정도를 걸었습니다.
오전에는 바람만 거셌던 터라 사진을 찍을 수 있었는데,
그 중 연파마을부터는 태풍으로 비가 심하여 사진을 찍지 못하고 걸었습니다.
구례구간 참 아름답고 자랑할만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하지만 둘레길 표지판이 아직 조성중인지, 지명이며 구간거리 등이 표기가 안되어 있고,
붉은색과 검은색의 화살표 색도 일관성을 잃고 뒤바뀐 곳이 더러 있어
외지에서 오시는 분들은 애를 먹겠다 싶더군요.
난동 출발지점 입니다.
혼란스럽지 않게 지도를 길 가에 기대 세워 놨더군요.
처음에 올린 지도는 바로 이 지도 입니다^^
이 지점에서 몇 미터 더 올라가면 구례 철쭉동산 주차장이 있어서,
차 주차하고 난동에서 산동 탑동마을로 넘어가거나
서시천쪽 둘레길 코스를 선택하여 걸으실 수 있어요.
그런데 걷다보니 두고 온 차까지 다시 가는 것이 문제네요^^;
택시 불러서 다시 가는 방법으로 해결하는데 택시비가 만원 정도 드네요.
도보여행자를 위해서 둘레길과 연계되는 버스노선이 절실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난동 마을을 빠져 나오자 마자 아름다운 소나무밭이 보입니다.
빨간 지붕의 온당충신교회가 보이지요? 바로 직전에 샛길로 들어섭니다.
어느 민가 벽에서 소가 그윽한 눈길로 지나는 우리를 쳐다 봅니다.
난동마을 골목들을 빠져나와 찍은 마을 풍경 입니다.
난동은 마을 뒷산에 난초가 많아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옛날에는 난곡(蘭谷, 난초골)으로 불렸다고 하네요.
마을에 있는 난약사(蘭若寺, 지금의 반야사)에서 1915년 경에 발견된 종에 새겨진 거란 연호로 볼 때,
고려시대 쯤 마을이 생겨났을 것으로 추정한답니다.
화살표들이 일관되게 되어 있어야 하는데 가다보면 바뀐 색들이 많아 시정이 필요하더군요.
방문하는 분들은 색깔에 너무 집착 마시고 걸어셔야 할 듯~.
차차 정비되겠지요?^^
온당리는 당동, 난동, 온동을 포함한 행정지명 입니다.
난동에서 온동으로 넘어가며 유난히 눈에 띄는 무궁화 꽃길이 인상깊었습니다.
가다가 만난 돌무더기가 예사롭지 않아, 빙빙 돌아보아도 아무 안내표지판이 없더군요.
최근에 눈요기로 만든 것일까요? 옆에 선 나무는 당산나무라 하기에는 퍽이나 빈약한데......
그런데도 맨 위의 바위가 뭔가 할 말이 많아 들어 줄 사람 기다리는 양 우뚝 서 있습니다.
마을을 지날 때마다 저수지를 낀 탁 트인 풍경들.
지리산 둘레길 구례구간은 곳곳에 마을 저수지나 작은 계곡 등이 모습을 드러내
아기자기한 변화에 지루할 틈을 안주는 아름다운 코스,
그러면서도 높고 깊은 산길로 위압감을 주지 않는 편안한 코스 입니다.
둘레길을 열어주고, 택지개발하여 새로운 이주민들이 정착하게 되면서
마을 주민들이 가장 걱정하시는 점이 오염입니다.
아주 깨끗해 가을이면 민물새우를 잡는다는 온당리의 저수지는
사람의 발길이 잦아져도 그 깨끗함을 지킬 수 있을까요?
온동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이 마을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전까지는 남원부에 속해 있던 마을입니다.
온동이라는 한글명 밑에 온수동(溫水洞)이라고 한문으로 씌여져 있습니다.
예전에는 온수가 난다고 하여 온수골로 불리웠다고 합니다.
마을 뒤에 '골룡계'라는 골짜기 논에서 온수가 솟아 그 온수로 몸을 씻으면 피부병이 낫는다는 소문이 퍼지게 되었답니다. 각지에서 모여든 나병환자들이 인근의 문둥골에 모여 살면서 왕래하자 마을 주민들이 고심하던 끝에 온수가 나오는 구멍을 솥뚜껑으로 덮고 묻어 버렸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옵니다.
온수에 관하여는 또 다른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는데, 산동면 이평리의 문효공(文孝公) 윤효손이 어머니의 병환이
깊어지자 이 마을의 온수를 어머니에게 떠다 드려 마시도록 했더니 병이 나았다고 합니다.
이 둘레길 코스를 걸어 본 여행자는 돌아가 전리품을 회상하듯 말하겠지요.
나는 그 길을 이미 걸었노라고.
하지만 철마다 갖가지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고, 온갖 작물들을 길러내는 이 길이 모두의 마음에
같은 모습일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뜨거운 여름 둘레길을 걷자니, 흰 꽃을 방울방울 달고 선 참깨며, 물도 없는 밭에 연꽃인척 커다란 잎들을
활짝 펼쳐들고 오밀조밀 서 있는 토란이 보입니다. 둘레길 걷다가 여기저기 토란밭을 많이 만났습니다.
토란대 껍질 벗겨 삶는 것까지는 줏어들은 풍얼에 흉내를 냈는데, 물에 충분히 우려내지 않고 볶아서 한 잎 먹고는
하루 종일 목이 따끔거리고 아렸던 기억에 웃음이 납니다.
태풍 무이파가 점점 다가오는 게 느껴지네요.
저수지 위에 한 방울 두 방울 비가 떨어지기 시작하며 조그만 동심원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했습니다.
벼가 강한 바람에 파도타기를 시작합니다^^
저수지 앞에 펼쳐진 용방면쪽 풍경.
한여름의 논이 이다지도 아름다와 보인 적은 처음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마음 설레며 바라보다가도
순천완주 고속도로의 높은 교각이 자꾸 눈에 거슬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네요.
지리산 둘레길을 따라 걸으면 계속 보게 되는 장면 입니다, 옥에 티 같이.
저 도로가 올 초 개통되고, 서울까지의 거리가 40-50분 단축되어 덕분에 편히 다니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산에만 오르면 왜 그리 저 교각들을 무엇으로라도 가리고만 싶어지는지......
8월의 산수유 열매는 아직 초록 물방울들로 조롱조롱 나무에 달려 익어갑니다.
10월이 되면 8개월 산달을 다 채우고 붉은 루비로 빛나겠지요?
보통 식물들은 3개월이면 싹틔우고 꽃 피워 결실을 이루는 한 해의 사이클을 완주합니다.
그런데 봄의 전령 산수유는 이른 봄, 노란 꽃몽우리를 터뜨리며 수줍게 수줍게 봄의 기운을
대지에 퍼뜨리지만, 산수유 열매를 잉태하여 가장 긴 기간 동안 열매를 키워 냅니다.
같은 기간에 수분되지만 6월 초면 수확을 하는 매실과는 참 대조가 되는 식물입니다.
마을에는 마을분들의 삶이 있지요.
구례 둘레길은 마을분들의 삶을 존중하려고 코스를 짠 고민이 드러납니다.
하지만 마을 구경 못하고 걸음을 재촉하자니 많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제 구만제 저수지 쪽으로 발길을 재촉합니다.
무이파야, 걸음을 늦춰다고.
바람만 강하게 불 뿐 걷기에는 최고인 날씨입니다, 아직까지는.
차츰 화살표 색깔과 표지판 위치에 혼란이 가중되기 시작합니다 @@:
길은 우리밀밭풍경펜션 건물을 바로 뒤로 돌아나 있습니다.
이곳은 우리나라 우리밀 운동의 산실이기도 합니다.
1984년 정부 수매 중단으로 종자초차 자취를 감추었던 우리밀 살리기 운동이 어언 20 살이 되어갑니다.
한 때 자급률 0% 였던 우리밀이 2009년 1% 가까이 성장했다고 하니, 값진 땀을 세월은 결코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밀밭펜션 바로 옆에 자리하고 있는 여름철 구만제 저수지는 한껏 물을 품고 있습니다.
산동에서 발원한 서시천의 물이 이곳에 이르러 한숨 고르고,
다시 구례읍에서 기다리고 있을 섬진강을 향하여 내달립니다.
들깨잎을 먹기에 들깨는 쉽게 구별하지만, 대부분 도시사람들에게 참깨는 참 낯설지요.
흐흐~ 처음 시골로 이사와 참깨보고 무슨 식물이냐고 물었다가 그 아주머니 경악하는 표정에 제가 되려 놀랐더랬습니다.
아, 이 무식~! 앞으로는 탄로내지 않도록 믿을만한 사람 한 명만 정해놓고 집중적으로 물어봐야겠다고
다짐했던 기억이 나네요. ㅋㅋ
가지런히 심어 놓은 들깨밭을 따라 걷자니 들깨향이 바람에 실려옵니다.
겨울 둘레길은, 작물들도 꽃도 없는 시절이라 소리에 민감한 여행이었는데,
여름 둘레길은 시각적인 것도 있지만 후각적인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기회인 것 같습니다.
달맞이 꽃인가요?
8월의 지리산 둘레길, 지천으로 핀 달맞이 꽃이 바람에 격렬하게 몸을 흔들어대고 있습니다.
달맞이 꽃은 낮에는 입을 오무리고 있다 밤이 되면 활짝 핀다고 합니다.
원래는 칠레가 원산인 귀화 식물이라고 하네요.
'아가야, 나오너라. 달맞이가자'
동요 노랫말이 생각나네요.
달맞이꽃이 은은한 달밤 나즉히 부르는 노래 같다는 생각이......
구만제 저수지 수로에서 낚시하고 있는 강태공? (수로태공?)을 보았습니다.
바람이 거세지면서 철수준비로 손길이 바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이곳은 물고기가 그리도 잘 잡히는 곳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 강태공은 소위 요즘 유행하는 '착한 낚시'를 하시는 분인가 봅니다.
어망에 잡아 놓은 물고기를 모두 풀어주고 있더군요.
옥수수잎들이 격렬하게 온 팔을 흔들며 반겨줍니다.
태풍 불어 좋은 날도 있군요.
집에 꽁꽁 틀어박혀 있었음 못 만났을 풍경에 다시 한 번 감사를~~.
바람이 거세고 비가 내려도,
도로 위의 차들은 모두 사라지고 사람들은 건물 속에 꼭꼭 숨어버렸어도,
농부들은 들에 나와 농작물들 넘어지지 않게 지지대에 꼭꼭 묶어주느라 분주합니다.
태풍이 모든 것을 정지시켜 놓치는 못하는구나!
들녘을 지키는 농심을 만나는 하루.
개울따라 걷다 다시 되돌아본 구만제 수로 풍경.
세심정 아래 강에서 놀고 있는 오리떼들.
마을분들이 풀어놓았다고 하는데, 바위 위에 모여 쉬고 있는 중 입니다.
저러다 정말 '오리 날다'가 현실이 되는 것은 아닐지~~.
세심정에서 잠깐 걸어나와 구만교와 나란히 놓여있는 구다리로 들어섰습니다.
읍의 안내센터까지 8km를 더 걸어야 합니다.
이런 날에도 어망을 메고 나와 낚시하시는 분들이 있네요.
아마 부자지간이 아닐런지~.
도시에서 오랜만에 휴가 온 아들의 향수를 달래주러
나이 든 아버지가 같이 강가로 나온 것 같다고 느꼈습니다.
한 번 던진 어망에 물고기가 그득 합니다.
굽이쳐 흐르는 서시천을 담아 보려고, 이리저리 발품을 부지런히 팔다가
물고기 그득~ 그 모습을 놓쳤습니다!
구만(九灣)마을의 이름은 아홉굽이를 이루며 내려오는
서시천의 모습에서 그 이름을 땄다고 합니다.
구만제부터 쭉 아스팔트 길이 이어져 슬슬 발바닥이 아파오기 시작합니다.
"딱딱해지는 발바닥~ 걸어걸어 가다보면~"
윤도현 노래가사가 갑자기 생각이 나네요.
구만마을 앞을 지나며 이쁜 마을 풍경에 사진 한 컷 찰칵!
이런 자연스런 모습을 그대로 두는 것도 좋을텐데......
온당 취입보에서 잠시 멈춰섰습니다.
들판을 길러내는 고마운 시설인데, 서툰 감상에 젖어 투털거릴수만은 없는 건가요?
그런데도 여기저기 늘어만가는 보 건설과 강뚝길 공사현장을 대할 때는 수변에 깃들어 사는
동식물들에게 너무도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 없네요.
적정선이란 불가능한 것 일까요?
어느덧 광의면사무소 앞,
거의 조선왕조 500년의 나이를 먹은 느티나무까지 도착했습니다.
10시 조금 넘어부터 걸었는데, 12시 30분이 넘었습니다^^;
마을앞에 식당이 몇 군데 있는데, 20년전까지만해도 번화했던 거리가 한산합니다.
정육점 식당에 들어가 메뉴에도 없는 특별 메뉴 추어탕을 맛나게 먹었습니다.
난동에서 이곳까지 오면서 식당이 없으니 자연히 이곳에 식당을 찾게 되네요.
가을, 시원해지면 둘레길을 찾는 손님이 이곳을 찾아들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좀 더 생기가 돌겠구나 그림이 그려지네요^^
작년에 못보던 석조 조형물들이 서 있습니다.
올 해 광의면지를 출판하면서 세운 기념비 입니다.
기념비 삼면에 돌려가며 출향민들과 면민들의 기부금액과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고향 등지고 먼 바다로 나가 돌아오지 않는 은어떼가 되었지만 고향을 향한 무한한 애정은 변함없다오."
이런 목소리들이 들리는 듯 합니다.
시골에 사람은 줄어가고, 대대로 이어온 마을의 이야기는 더욱 더 빨리 지워져 갑니다.
10년 후, 20년 후, 누가 이 마을의 역사를 이어갈까요?
생각하니 마음이 뭉클합니다.
이후 더욱 더 거세지는 바람과 본격적인 빗줄기에 사진 촬영은 더 못하였답니다.
바람부는 들녁 동영상 하나 보너스로 올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첫댓글 둘레길을 함께 걸은것 같이 생생합니다.
함께 하였더라면 더욱 좋았을 것을 아쉽습니다.
한 밤에 들어오셔서 읽으셨네요^^
오타 장난 아니었는데!
다음에 기회되심 함께 걸으세요^^
갑자기 가방 챙겨 나선 길이라서요~.
날 선선해지면 김밥싸서 한번 가요~~~
룰루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