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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여행기
2005. 6. 2 새벽 4:30분 아파트 앞에서 출발하기로 한 우리는 비바람 번개와 천둥 속에서 일행 한분이 조금 늦어 핸드폰을 하니 연락이 안 되어 천둥 속에서 휴대폰하면 번개를 끌어 들일 수도 있다는데 하는, 불안한 마음속에서 여행 첫날은 극도로 불안한 일기 속에서 출발했지만 여행하는 동안은 계속 날씨가 좋았다.
1시30분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11시간 30분 이상을 해를 따라 이동하는 비행속도라, 계속 밝은 태양 아래 하얀 구름을 감상하며 비행했다.
18:30분 취리히에 도착 사진 속에서만 보던 스위스 풍경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하지만 거리에 걸어 다니는 사람하나 볼 수 없었고, 넓은 들에 방목하는 소들은 가끔 보였지만, 일하는 농부 하나 볼 수 없었고, 우리 눈에는 명당자리인데도 묘지하나 없었다.
가이드는 스위스 사람들을 이웃과 만나서 수다 떨기를 좋아하지 않고, 공동묘지에 임대하여 20년간 안치 한 후 다시 임대를 연장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1대가 지나면 화장하고, 공동묘지 그 자리는 다시 임대 한다는 게 우리 제도하고 비슷하다 느꼈다.
농부들도 아침에 일찍 덥지 않을 때 기계로 땅을 갈고, 낮에는 별로 일하지 않는다 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내 눈에는 꼭 유령 도시를 보는 것만 같았다.
여관에 도착하여 차에서 내리자마자 요정처럼 귀여운 6-7세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를 만나서 하도 예쁘고 귀여워 그냥 말 걸어 보고 싶어 “너 영어 하니” 했더니 “음-음 도이치”하는데 독일어권인가 보다 싶으면서도 저 빌딩이 교회니 하고 물으니 독일어로 뭐라 설명하는데, 도통 못 알아먹는 내 표정이 재밌는지 음흐흐 하고 웃는 모습이 또 너무 귀여웠다.
식당 문을 닫아 가져간 밥을 데워먹으려 전자오븐 있느냐는 내 질문에 여주인은 아래층에 미크로웨이브오븐이 있다했는데 우리는 마이크로웨이브라고 배웠지만 독일어권이라선지 미크로라고 해서 잠시 못 알아들었었다.
더운물 나오고 커피 나오고 하는 기계를 당신 없을 때 내가 좀 대신 서빙해도 되냐고 물으니, 웃으며 안 된다 했다. ( 동양인이 서툰 영어로 의사소통하니까 귀여운지 재미있는지 고마운지!애교스런 미소를 짓는데 나이든 거구의 여자도 이렇게 매력이 있을 수 있구나! 하고 느꼈다. )
다음날 아침 여관주인의 노크 소리로 모닝콜 하는데, 문 열고 바라보며 “모닝콜?” 하고 물으니 “얖;”하며 대답하기에 “탱큐!” 했더니 “얖”하며 미소 지으며 걸어가는데, 단 3초밖에 보지 않았는데 든든한 보호를 받은 느낌이 들고 그 할아버지에게 , 지성과 인격, 야성 모든 것을 에이플러스 점수를 주는 나는 얼마나 성급한 판단을 하는 사람인가 몰라도, 유럽의 그 어떤 미녀보다도 더 매력 있게 보였다. 백발이 성성하지만 건장한 걸음과 잔잔한 미소로, 사람을 압도하는 매력이 산속에서 사니 신선 같은 분위기로, 매력 있는 사람들도 관광자원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또 스위스에서 기차를 타고 내릴 때 어떤 백발의 할머니가 맨 마지막에 내리기에 ‘돌아가신 모친 생각이 나서’ 제대로 걸어 내리실까 걱정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니, 내 눈길을 의식한 할머니가, 어쩌면 평범하게도 보였을 내 눈빛을 자기를 염려해준 눈빛이라 확신하고 화사한 미소를 지어주시면서 내게 “댕큐” 하셨다.
그다음 철로 중간에 내려 계단 없이 50cm 정도 높이를 내려서 우리 일행들은 역을 나가기에, 거기에서는 할머니가 혼자 내리기는 무리일 것 같기에 “이 쪽으로 가실 겁니까?” 하고 물으니 다른 방향으로 간다고 단호한 게르만 이성이 번뜩이는 눈으로 대답하는데 섬뜩함을 느꼈다.
나는 유럽 여행 때 건물들은 사진이나 매스컴으로 많이 봐서 큰 흥미를 못 느꼈고, 그 나라 현지 사람들과 대화해보고 싶었고, 그들의 사고방식에 흥미가 있었지만, 여행스케줄은 문화재 건물과 미술품 위주로 짜여져 다음 기회가 있다면 민박을 하면서 그 집 주인들의 생활 방식 등 문화를 같이 생활하며 느꼈으면 한다.
로마 스페인 광장 여행 때 우리 일행이 유럽 미녀들과 사진을 같이 찍고 싶다고 말해서, 로마의 휴일에 나오는 오드리 헵번 같은 미녀들 옆으로 가서 동행한 백인 남자에게 먼저 양해를 구했더니, 그녀들은 오드리 헵번 같은 미소를 지으며 그레고리펙을 만난 듯이 반가워하는데 백인 남자는 영어를 못 알아듣는지, 내가 동양인 소매치기 같아 보였는지 거부반응을 보여, 피곤도하고 이 ‘나이에 무슨 주책이냐?’ 싶어서 더 이상 추진하지 못했다.
오스트리아 어느 모텔인가에서 자는데 복도에서 제법 준수한 미모의 금발 여인이 다가와 영어 하냐고 말을 걸기에 조금 자신은 없지만 고개를 끄덕였더니 하는 말이 “ 자기는 선생인데 호텔 벽이 얇아 당신들 노이즈(소음)가 들려서 자기 아이들 방해되니 좀 조용히 하고 내일 아침에도 일찍 일어나 떠난다면서 갈 때도 좀 조용히 가주라 ” 는 얘기를 도도하게 하는데 나는 별로 떠든 것 같지 않아서 미안하다는 말이 안나 왔는지, 미모 감상하느라 그랬는지 아무 말이 없이 듣고만 있었더니, 같은 말을 세 번 하는 게 내 표정이 잘 못 알아듣는 듯 보였나보다. 마지막으로 내 눈치를 봐가며 '조용해'(비콰이어)라는 표현은 한번만 조심스레 쓰는 게 딴에는 예의를 지켜서 말을 하는 듯 했다.
“어디서 왔니”했더니 "독일"이라 했다.(젠장 데이트신청 하러 오는줄 알았더니)
나도 너무 무뚝뚝해 보였겠지만 미소 한번 짓지않고 명령인지 부탁인지 모를 기계적인 말투에 내 기분도 상쾌할 리는 없었다.
방에 들어와 텔레비전을 끄고 자려 누우니 옆방 소리가 들렸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우리는 떠들지는 않지만 우리일행중에 유치원 원장님들이 있었는데 한국여자 셋만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는데(수다 떠느라) 유치원 원장님들이라 성격들이 밝아서 조금 국제적 실수한 모양이었다.
다음날 아침 출발할때 카운터 에서 중년 여직원이 사무적이지만, 미소를 지어주었는데 주머니에서 반납해야 할 방키를 찾지 못해 그앞에서 조금 당황하여, 그 우아한 미소를 오래동안 지어주어야 하는 친절을, 고맙다는 인사를 못해주고 온게 후회 되었다.
참고로 바티칸 성당 구경 때는 미술 설명을 듣기위한 일행들만 통신이 가능한 이어폰 무전 수신기를 빌려준다.
가이드 설명을 그 일행 20명만 주파수를 맞추어 통화가 가능한데
미술품 설명도하고 사람 수가 너무 많아 길을 잊었을 때 요긴하게 쓸 수 있었다.
우리 일행 중 한분이 빌릴 필요 없을 것 같다고 했지만. 그 사람이 길을 잊어 헤드폰 무전기 없었으면 그 사람을 찾지 못해 큰일 날 뻔했다.
다음날 100년 전 나라가 가난할 때 남의 나라에 용병으로 팔려, 전쟁을 대신 치른 스위스 용병을 기리는 빈사의 사자 상을 구경하고, 로이즈 다리를 구경하는데, 내 지팡이 사정거리 내에 백조(고니) 한 마리가 태연히 서 있는 것을 보고, 여기 사람들은 고니도 관광 상품으로 키우는 듯이 보였다, 다리 건널 때 난간에 한글로 된 낙서가 반가우면서도 창피했다.
예를 들자면 ‘홍길동 인생 대박 터졌다.’ 로마 교황청에는 ‘언제 다시 또 오나‘ 등의 우리글 낙서를 볼 수 있었다.
영어 낙서들 사이에서 ‘국위선양’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오후에는 로이슈만스타인의 성을 견학하였는데 루트비히라는 사람이 만들었는데, 너무 아름다워 미국 디즈니랜드에서 그 성을 그대로 복사하여 만들었다 했다.
백조의성 이라고도 하는데 그 성을 관람하러 전 세계에서 보러 와서 매년 수천억 원의 관광수입을 얻고 있었다.
우리도 백조의성을 모방하여 내장 근처에 호텔 건물로 하나 지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는 길에 일본인 신혼부부를 만난 는데 한국인이라니까 겨울연가 주제가 리듬을 흥얼거리며 배용준 욘사마 얘기를 했다.
솜털이 보송보송한 애기 같은 작은 키의 신부와 커다란 신랑은 어색(언밸런스) 해 보이는데 귀여운 신부를 가져 좋겠다고 하였더니,신랑은 "생큐" 만 하는데, 신부가 더 좋아하며 폭소를 참지 못한다.
괘도열차를 타고 융프라우 산을 오를 때다.
우리 팀 유치원 원장 모임이 있어 여자원장님 들이라 들뜬 기분에 자연스레 산에 대한 노래를 합창하니 옆 칸에 탔던 한국인 할아버지가 짜증을 내시며 “어이 여 봐! 좀 조용히 올라 갈수 없어” 하고 한국말로 얘기를 해서 한국사람 여행객이 많다는 것을 또 한번 느꼈다.
모처럼 즐거운 외국 여행에 노래 한번 한걸 가지고, 고산에 오르니 노인양반이 혈압이 좀 오르셨나? 지나친 나이 유세로 보였다.
융프라우 산 정상 여행하고 내려올 때는 옆 칸에 인도 여행객들이 가족단위로 여행을 온 것 같았는데 그쪽에서 먼저 인도노래를 부르니, 우리 쪽도 한국노래 합창으로 화답하고 주거니 받거니 합창 대결을 하는데 서로 알아듣지는 못해도 음악은 세계 만국 공통어라 흥겨운 마음과 춤을 주고받으면서 즐겁게 내려왔다.
인도인들 중에는 비디오카메라로 우리들을 담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태리 버스 여행 때 너무 장거리 버스여행으로 일행이 버스 멀미가 난다는 사람이 있어, 여자라 내가 지압을 직접 해 줄 수는 없어서, 앞에 나가 버스기사와 가이드를 내가 해주면서 차멀미 방지 지압 시범을 보이고 옆에 앉은 파트너들을 서로 지압 해주게 하여 차멀미를 방지하게 했다. 어설픈 유머와 나름의 유럽 문화의 뿌리는 중국 채윤의 종이발명과 한국의 금속 인쇄술이 밑바닥에 깔려있으니 동양문화의 자부심을 잊지말고, 서양문화를 감상하시라는 설명으로 우리문화의 우수성도 알리는 얘기를 조금 하며, "너무 유럽 문화에 넋을 잃고 입 헤 벌리지 마시라"고 하며 침흘리시는 분이 많아 입 밑에 깡통을 하나씩 달아 드릴수도 없고 고민이 많다며, 막내둥이 버릇인 여러 사람 앞에서 재롱을 조금 떨었는데, (일행중 한분은 자기도 모르게 입이 벌어질때마다 깡통 얘기 생각이 나서 얼른 입을 다물었다고 했다)
통일된 안면이 있는 팀들이 아니라 어색해서 더 오래 할 기분이 나질 않았다.
이태리 밀라노 시청 문 앞에서 우리도 한국에서 온 공무원이니까 기념사진 한번 같이 찍자고 경찰복장의 경비인지 청경인지 있길레 서툰 영어로 얘기하니 한사람은 영어를 못 알아들었는지 거절하고 그 옆 사람이 알아들었는지 쾌히 승낙하여 기념사진을 같이 찍었다.
우리 일행 중 여자 한분이 비둘기가 많은 곳에서 비둘기 먹이 주는 포즈를 취하면 비둘기가 오니까 사진을 찍으라고 누가 한 모양이다. 그런데 흑인 혼혈로 보이는 꼬마가 옥수수를 한주먹 주니까 비둘기가 금새 손위로 날라 올라 멋진 사진은 찍었는데 옥수수 한주먹 값이 투유로를 달라고 바가지를 씌우니 언성이 높아지는데, 여자라 새까만 흑인이 커다랗게 눈을 뜨고 달려드니 겁먹은 표정이었다. 내가 다가가 50센트짜리 동전 하나 더 주고 해결했다.
이태리 가죽 패션 매장에서 중년 일본여성을 만났는데 매장 점원으로 일하는데 내가 한국인이라니까 우리말로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등 한국말 실력 자랑을 하기에 나도 비슷한 일본어를 몇 마디 하면서 응수했더니, 한국 여행도 한 듯 한국 여행 때 느낀점을 이야기 하는데 일본은 전국적으로 별로 특색이 없는데 한국은 지방 마다 아주 다른 특색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을 한다.
영어는 서툰지 한국은 지역마다 특색 있다는 표현을 임포턴트(important)로 표현하지만 앞뒤 문맥으로 보아 특색 있다는 표현 같았다.
가이드에게들은 2002월드컵 뒷이야기다, 안정환의 해딩 골든골로 우승후보라는 이태리를 이기자,
한국유학생 한명이 죽검(竹劍)에 태극기를 달고 로마시내를 달리니, 이태리 국민들이 한국에 져서
열받아서 술먹고 사십도가 넘는 아스팔트 도로에 누워서 분을 삭이고 있다가, 그 한국 유학생을 동시에 노려보자, 유학생이 그제사 사태를 눈치채고, 그자리에 얼어붙듯 서있는데, 이태리인중 제일 거구가 일어나서, 한국유학생에게 다가와 " 너 죽을래 살래?" 하고 엄포를 놓자 한국유학생이 그이태리 국민성을 파악하고 그자리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면 맞을거라 생각하고, "죽일려면 죽여라" 하고 노려보자, 그한국 유학생도 키가 너무커서 군대를 면제받은 운동을 즐기는 밀리지않는 체격이라, 그이태리인이 "내가 너를 칠수도 있지만 용기가 없어서 못친다" 하고 돌아서서 위기를 모면했다는 무용담을 들었다.
한달째 이태리 택시기사들이 공항에서 한국인 유학생들 택시 승차를 거부하고, 하숙집에서 쫒겨났다는 둥, 거짓말 같은 광적인 이태리 국민들의 축구 열기를 들었다.
반대로 사강에서 진 독일국민은 독일에 져주서 고맙다고 한국 유학생에게 하숙비를 깍아줬다는 둥 웃지못할 이야기도 들었다.
로마에서는 줄을 기다리며 이태리인과 얘기했는데 피자 먹어 봤냐기에 한국에서 많이 먹어 봤다니까. 이탈리안 피자는 틀리다며 꼭 먹어보라고 로마와 피자의 자부심이 대단했다.
로마의 인상이 어떠냐기에 오래된 대리석 건물들이 검정 이끼가 끼어 좀 지저분해 보인다고 폄하하는 평을 좀 했더니 그냥 웃어넘긴다.
신혼부부인데 부인이 예쁘다고 해줬더니, 신부는 미소만 짓는데, 남자가 더 좋아했다.
전반적으로 여행할때 식사를 조금 만 하고, 맑은 정신으로 여행을 했더라면 좋았을걸 물가가 비싸 배고프면 사먹는것은 아까웠는지, 식사 때마다 조금 과식해서 피곤을 빨리 느껴, 황금같은 유럽여행 기회를 잠으로 낭비한 느낌도 적잖이 들었다.
에펠탑을 관광할때 일본인 가족을 만났는데, 아가씨에게 영어로 어디서 왔니 하니, 웃기만 하기에,
고등학교때 배운 일본어로 일본인이니("아나따노 니혼진")하니 "하이"엄마 되시니( "아나다노 오까상") "하이" 당신들 가족이니("아나다노 가조구데스") "하이 " 하고 딱 세마디 물어 봤는데, 자리를 떠나면서 깍듯이 내게 인사를 하고 가는게 예절교육이 조금 된 듯이 보였다.
동료들이 "자네에게만 인사를 하고 가내!?" 하고 웃었다.
프랑스 (파리)
에펠탑 : 연간 632만 명 관람, 8,400억원 수입금
도시계획 발달
- 150년 전부터 도시계획법 적용 : 하수구 구획정리. 고도제한
( 도시 미관고려 6층높이 이하만 허가 )
출산정책 (우리가 본받아야 할)
임신 4개월부터 국가가 임산부 관리 - 건강검진. 의료비. 출산비 등 전액 국가지원 출산한 아이는 4살까지 양육비 지원, 출산한 여성은 주택 보조비 지급 세 자녀 이상 출산한 여성은, 평생 연금 혜택부여, 아기 낳지 않은 사람은 보수의 75%를 세금으로 공제, 아이를 셋 이상 낳은 사람은 소득 거의 보존 하여, 출산정책에 신중을 기하며 2010년 이후는 인구수로 독일을 능가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출산율이 저하되는 우리나라가 시급히 도입해야 할 것 같았다.
독일과 스위스 등은 국적 취득하기가 까다롭고 결혼 이외에는 거의 불가능하지만, 프랑스는 5년간 살면서 범죄만 저지르지 않고, 선량한 프랑스인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시험만 통과되면, 국적을 주는 제도로 인구가 국력임을 뼈저리게 통감한 나라이다.
이방인이 자국민이 되어도 전혀 차별이 없는 것은, 그들이 자랑하는 프랑스 대혁명의 슬로건인 자유, 평등, 박애를 온 인류에게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는 자부심의 철학으로 보였다.
그들의 삼색 국기가 푸른색=자유, 흰색=평등, 붉은색=박애로 혁명을 상징하는 것이 세계최초로 왕정을 타파한 자존심이 국기에 담겨있었다.
우리 동학혁명도 실패해서 그러지 그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을 거라고 보였다.
가이드의 설명이 병역 문제로 이중국적을 불허함으로서 자기 아들은 이중국적을 가지고도 병역 의무를 하고 싶고, 이중국적을 가짐으로서 경제발전에 이바지 할 수도 있는 방법이 많은데, 너무 마녀 사냥식 이중 국적 금지를 강하게 시행하여 우리나라 국적 포기 자가 늘어, 오히려 국민수가 국력인 이때 국민들을 잃고 있지 않나 신중한 검토를 해주라는 부탁이 있었다.
학교정책 : 초, 중, 고등학생은 전액학비무료
국립대학교는 전액무료
이탈리아
○ 고속도로 중앙분리대에 일정간격으로 일련 번호부여
- 교통사고 또는 각종 위난 시에 위치를 알려주는 안내판 역할
○ 통일된 가로수
- 노선별로 한 가지 나무만을 통일되게 심어 고유한 특성을 지님
○ 수력발전소, 화력 발전소가 경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전기의 90%이상을
수입하여 쓰는 관광제일주의의 정책을 시행하는 나라
사 족
이번 여행에서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너무 서구 문물을 동경하고 경탄 하는 모습을 많이 보았다.
그러나 자랑스러운 우리 민족의 직지심경 금속활자가 유럽문명에 크게 기여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중국 채윤의 종이 발명과, 독일의 쿠텐베르그가 우리 직지심경의 금속활자를 보고 모방하여, 금속활자를 만들어 성경책자 등 책값이 싸져, 시민들이 책을 읽고 개화되어 시민혁명과, 종교개혁 등이 지지를 받아 성공한 계기가 된 것을 알았다.(그전에는 양가죽에다 직접 일일이 써서 성경책을 만들었기 때문에 성경책이나 모든 책값이 비싸 귀족과 성직자 아니면 일반인들은 구할 수가 없어, 시민들은 무식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성직자들이 아전인수식으로 성경을 해석하여 면죄부를 팔아 로마 베드로성당 교황청을 지어도, 루터와 캘빈이 종교개혁을 하기 전에는, 무식하여 그저 성직자들 하는 짓이 옳은 줄만 알고 아무도 반기를 들지 못했다.
지금도 매일 수백 미터씩 줄을 서서 기다려가며 오는 전 세계인들에게 돈을 받고 관광을 시키고 있다.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를 타고 바늘구멍을 통과하기보다 어렵다고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자기들은 전 세계의 돈을 긁어모아 건물을 짓고 지금도 계속 그 짓을 하고, 천주교 신도가 두 배나 많은 우리나라는 추기경이 한사람인데, 엔화가치가 센 일본은 천주교도가 적어도 추기경을 두 명 배정한 배경을, 좁은 내 소견으로는 아이러니로만 보였다.
유럽여행 결론은 수천억 들여서라도 세계적인 명품 건축물을 아름답게만 만들어 놓으면, 전 세계에 소문이 나서 관광객들이 찾아오게 만들어 그 수입을 수백 배 더 벌수 있다는 생각이 들고, 모나리자 그림이나 미켈란젤로의 조각들은 수천억이 들지 않았지만 그걸 보러 수억의 관광객들이 줄지어 오는 걸보고 문화예술의 전쟁시대 라는 말이 실감이 났다.
우리도 문화예술에 적극투자 하는 정책을 펴고 있지만, 시민들에게도 문화예술 마인드를 심어주는 정책은 조금 미흡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프랑스는 그 점을 일찍부터 알고 역량 있는 예술가가 어떤 예술작품 설계를 제안하면 거기에 들어가는 제작비는 물론 인부까지 제공해주어 작품을 만들게 한다. 혹시 세계적인 훌륭한 예술품을 만들어, 그걸 보러오는 관광객들이 백배 천배의 부가가치를 가져온다고 믿는다.
시벨리우스라는 핀란드 음악가는 핀란드가 전 세계에 내놓을 자랑스러운 음악가라며
평생 그 나라 최고 연봉을 받으며 창작 활동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전 세계 음악가들이나 알지 일반인들은 잘 알지 못한다.
우리나라 백남준이라는 비디오아트 창시자는 1984년1월1일 뉴욕과 파리 한국 아침 황금
시간대에 텔레비전 생방송으로 한 시간 동안 ‘굿모닝 미스터오엘’이라는 제목으로
'비디오아트'라는 예술의 새 지평을 열며, 전 세계 예술계에 신선한 충격을 준 한국인 보다
세계에서 더 알아주는 예술가다, 그런 위대한 한국이 예술분야로는 세계에 내놓을 만한
인물을 우리는 평생 최고 연봉은 고사하고, 그분이 자식을 낳으면 교육비로 예술 작품을
만들지 못한다고 아이도 낳지 않고, 끼니도 하루 두 끼밖에 먹지 못하고 세상을 떴다하니,
한숨이 나왔다.
케네디는 “나라가 나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지 말고 내가 무엇을 나라에 해줄 수
있을까를 생각하라” 했다.
역으로 백남준은 전 세계에 코리아의 예술가의 진면목을 보여주고, 코리아의 국위를
그만큼 선양해 주었는데 국가는 백남준에게 무었을 해주었는가?
묻고 싶다.
올림픽에서 금메달 몇 개 따면 평생연금을 주듯 예술로도 전 세계에 금메달 이상 가는
국가 이미지 홍보 효과를 주었다면 그만한 대우를 해주어야 한다고 본다.
어려운 경제난에 예술가들이 더욱 안쓰러워 생각해봤습니다.
마지막으로 유럽여행 때 아무리 영어를 못해도 한 문장은 알고 가야 할 것 같기에 소개한다.
물을 살 때 고속도로 휴게실에서는 내가 물병을 들고 가서 계산하면 되지만 호텔 등 숙소나 레스토랑 등에서는 네 가지 질문을 한다.
탄산수냐 소다수냐 미네랄이냐, 그럼 미네랄(광천수)라고 대답해야한다. 다음 물 회사를 묻는다. 그때는 에비앙이나 다른 회사를 대답한다. 그다음 단맛이냐 쏘는 맛이냐, 등을 묻는다. 그때는 단맛(스위트)라 하면 된다. 스위트해야 설탕물이 아닌 그냥 맹물이다.
다음 팻트 병이냐 유리병이냐 묻는다.
위 네 가지를 다 묻고 대답 하려니 영어가 짧은 나는 무척 힘들어 나중에 느낀 것인데,
내가 미리 에비앙, 미네랄, 스위트, 팻트 병에든 물 달라고 네 가지 답을 미리 말하고
주문하면 편할 것 같았다.
그리고 파리 호텔에서는 물을 사면 너무 비싸 양주 술값이나 별 차이가 없다.
2006.9. 5
제가 혼났습니다. 끝까지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