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전북 완주에서 수도 정진하면서 글을 쓰는 스님의 산문입니다. 승려시인이고 하지요.
땔나무를 하러 산에 오르다
방 전체를 도배할 여력이 없어 좀이 먹은 부분에만 도배지를 일일이 오려서 붙이고, 대나무 이파리와 비닐 포장을 가려 임시로 화장실도 하나 만들었다. 이렇게 바쁘게 일하다 보니 나무가 떨어진 줄도 몰랐다. 이사오던 날 철물점에서 사온 쇠파이프로 만든 지게를 지고 앞산으로 향했다.
다른 일들은 어느 정도 하면 끝이 보이지만 나무는 더운 여름을 빼놓고는 계속 해야 할 일이다. 그래서 좋은 나무 지게를 구하려고 했다. 그러나 좋은 지게는커녕 어디를 가도 지게는 팔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시골 장터에 가보라고 했다. 나는 한동안 당황했다. 뭔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얼마전가지만 해도 시골에서는 지게가 없으면 살기 힘들었는데, 요즘에는 지게를 쓰지 않으며 경운기와 자동차가 모든 것을 운반한다고 한다. 더구나 시골에서도 연탄이나 기름을 때느라고 나무를 필요로 하지 않으니, 지게는 있어도 필요가 없어 창고에 처박혀 썩어간다고 한다. 그 동안 내가 시골에 대해서 너무 잊고 지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여러 군데의 철물점을 더 다닌 후에야 어느 시골 철물점에서 쇠로 만든 지게를 구할 수가 있었다.
옛날에는 절에 부목(負木)이라는 소임이 있어 산에 가서 나무를 해오면, 화대(火臺) 소임을 보는 스님이 불을 때, 선방 스님들이 겨울 한철을 따뜻하게 날 수 있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거의 기름이나 심야보일러를 쓰니 나무를 하는 소임도 불을 때는 소임도 사라져버렸다. 절 집안도 지게 문화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러나 송광사(松廣寺)의 선원(禪院)은 아직도 아궁이가 있고 나무를 땐다. 불을 때는 소임은 세심한 신경을 써야 하는데, 조금이라도 느슨해지면 방의 온도를 잘못 맞추게 되어 추워지기도 하고 더워지기도 한다. 그러나 온돌방은 그 온기로나 기운으로나 보일러 방에 비교가 되지 않는다.
앞산에는 벌목을 하고 버려진 나무들이 아주 많다. 낙엽송, 잣나무, 밤나무 등이 주류를 이루는데 그것들을 톱으로 일일이 잘라서 나무를 져 나른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선 톱질은 조금만 하면 숨이 차고 지쳐버린다. 꾸준하게 힘을 유지하는 지구력이 필요한 일이다. 모든 일이 다 그렇듯 별 것 아니라고 서둘러서 톱질을 하다가는 금방 지쳐버리는 낭패를 보게 된다. 그러면 그 다음부터는 일에 힘이 붙지 않아 중간에서 포기하는 일이 벌어진다. 오래 톱질을 하면 팔에 힘이 붙고 그 다음부터는 톱질이 재미있어진다. 산을 왔다갔다하며 나무를 자르고 모으다보면 땀도 적당히 나고 몸에 활력을 줘서 추위에 움츠러들지 않게 해준다.
옛날 육조 혜능(惠能) 스님도 나무꾼이었다. 날마다 산에 가서 나무를 해 시장에 내다 팔아서 어머니를 봉양(奉養)했다. 그러던 어느 날 금강경(金剛經)의 “응당 머문바 없이 그 마음을 낼지니라(應無所住 而生其心)”라는 구절을 듣고 발심(發心)하여 출가를 결심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 있어 나무를 한다는 것은 불을 땐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넘어 자체가 수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인구가 많고 땔감은 부족하여 자연히 산은 민둥산이었다. 그래서 산림을 보호하기 위해 국법으로 엄하게 다스렸고 산을 지키는 산감(山監)이라는 직책을 두어 산을 지키게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요즘에는 산에 죽은 나무가 천지인데도 줍는 사람 하나 없으니 시대가 바뀌어도 너무 바뀌었다. 그러고 보면 옛날 몇백 년은 변해야 할 것들이 요즘에는 몇 년 사이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으니, 거기에 맞춰가야 하는 현대인들은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시계를 보니 아침 9시인데 아직 해가 비추지 않는다. 이곳은 산이 높고 골이 깊어 겨울 해는 아침 열 시쯤 떴다가 오후 세시 반이면 져버린다. 그래서 겨울 산골의 낮은 짧고 겨울밤은 길고도 길다. 이렇게 깊은 골짜기를 보니 초등학교 때 어떤 어린이 잡지에서 보았던 스위스의 눈 내린 알프스 사진이 하나 생각난다. 만년설에 검게 그을린 두 소년이 눈이 가득 쌓인 알프스의 등성이에서 성냥갑처럼 작은 마을의 집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후로 나는 스위스가 가고 싶어졌다. 그런데 눈이 가득 쌓인 산의 중턱에서 아스라이 보이는 나의 토담집을 내려다보니 내가 마치 알프스의 소년이 된 기분이다.
이제는 자른 나무를 지게에 실었다. 싣고 나서 일어나려 했으나 지게는 꿈쩍 하지 않는다. 얼마의 나무를 덜어내고 다시 시도해서 일어났지만, 이제는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눈길에 곧 미끄러질 것 같다. 전부 날랐을 때는 어깨가 결리고 쑤셨다. 옷을 벗어보니 어깨가 지게 근에 눌려 빨갛게 변했다. 그러나 옛날 나무가 생필품이던 시절 지게에 나무를 하나 가득 싣고 매일 이삼십 리를 지고 가 팔았던 나무꾼들을 생각해보면, 나의 고생쯤은 아무 것도 아닐 것이다.
가져온 나무들을 한데 모으고 톱으로 알맞게 다시 잘랐다. 잘려진 나무들 중에서 너무 큰 나무들은 도끼를 가져다가 쪼갰다. 쪼갠 나무들을 가져다가 부엌에 차근차근 쌓았다.
부엌에 쌓인 나무들을 보니 갑자기 부자가 된 기분이다. 눈이 와도 삼사 일은 거뜬히 견딜 수 있으니 걱정이 없다. 옛 어른들이 겨우내 먹을 양식과 방을 훈훈하게 할 장작만 있으면 부러울 것이 없다는 말뜻을 이제야 알 것 같다. 눈이 펑펑 내리는 밤에 장작을 아궁이에 하나 가득 넣고 따뜻한 아랫목에서 앉아 있을 생각을 하니 내 마음이 먼저 따뜻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