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키스, 확실하게 다시 하기
첫 키스의 기억을, 추억을, 느낌을 끊임없이 반복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섹스처럼 너무 극단적이지 않고 그렇다고 처음 손을 잡던 것처럼 어쩐지 미진하지도 않은 알맞게 떨리고 입안 가득 별을 삼키는 듯한 그 기억을 다시 느낄
수 있는 그런 방법이 없을까?
첫 키스의 설레임을 되살리는 한 방편으로 샴페인을 권하고 싶다.
눈을 감고 샴페인을 음미해 보라. 입술에 닿는 와인 잔의 산뜻한 느낌에서부터 입술을 적시고 혀를 적시고 목젖까지 적시며 입안 가득 명멸하는 별들.
흔히 우리는 발포성 와인의 총칭으로 샴페인이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정확하게는 프랑스 샹파뉴 지방에서
생산된 발포성 와인을 그 지역의 영어식 발음인 샴페인이라고 부른다. 국제적으로도 샹파뉴 지방에서 생산된 와인이 아닌 경우에는 샴페인이라고 이름 붙이지 못한다.
예를 들어 샹파뉴 지방이 아닌 프랑스에서 생산된
발포성 와인의 경우 '무셰'라고 하고 스페인에서는
'까바' 이태리에서는 '스푸만테' 미국에서는 '스파클링 와인' 등등의 이름으로 부른다.
샴페인은 17세기 프랑스 샹파뉴 지방의 오빌레 마을의 베네딕트 수도 원의 수사 '돔 페리뇽'(1639∼1715)에 의해서 태어났다. 그렇다고 해서 돔 페리뇽이 최초로 샴페인을 개발한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고
그 당시까지만 해도 악마의 술, 미친 와인이라고 불리던 샴페인을 콜크 마개를 개발해 장기간 보관이 가능하게 하는 한편 샴페인에 브랜딩 기법을 도입해 그
동안의 샴페인 보다 월등한 품질의 와인을 얻을 수
있게 했다. 이처럼 샴페인의 발전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으므로 샴페인의 아버지로 부르기도 한다.
만약 루이뷔통 매니아라면 그 회사가 소유한 샴페인 제조업체 '모에 & 샹동(MOET &CHANDON)'의 샴페인을 마셔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일 것이다. 특히 돔 페리뇽 신부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제조한 '뀌베 돔 페리뇽' 샴페인은 미국의 영화배우 마릴린 먼로가 즐겨
마셨다. 엘리자베스 2세의 대관식과 찰스 황태자와
다이아나의 결혼식 공식 샴페인으로도 쓰였으며 영화
'007 시리즈'에도 등장할 정도로 유명하다.
샴페인을 마실 때 사용하는 잔은 대체적으로 길고
가는 튜울립 형의 잔을 사용한다. 지난해 남북 정상회담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건배를 제의했던 때의 긴 잔을 떠올리면 정확하겠다. 그러나, 꼭 튜울립형 잔을 고집할 필요는 없고 레드 와인 잔이나 화이트 와인 잔 어느 것이든 상관은 없다.
다만, 샴페인의 향과 기포를 오래도록 감상하기 위해서는 튜울립 형의 목이 긴 잔이 유리하다는 것이다.
최초의 샴페인잔은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의 왕비 헬레네의 젖가슴으로 주조했다고 한다. 그 뒤 프랑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자신의 젖가슴으로 쿠프(COUPE)라는 잔을 주조했는데 샴페인에서 관능의
분위기를 느끼는 것은 어쩌면 이 때문일는지도 모르겠다.
샴페인을 마시기 위해서는 키스를 준비하는 것처럼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하다. 우선 적어도 마시기 4시간 전에는 냉장고나 얼음통을 이용해 차갑게 해 두어야 제 맛을 즐길 수가 있다. 그것은 키스를 위해 이를 닦거나 구강 청결액 등을 사용하는 과정과도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대체로 프랑스에서는 샴페인을 마시기에 가장 이상적인 시간으로 늦은 아침이나 저녁 식사전을 든다.
이는 마음이 안정되고 어쩐지 고즈넉해 지는 시간이라야 샴페인의 맛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 축제의 술이라고 해서 떠들썩한 분위기에서 마시는 것이 제 격이라고 오해할 소지도 있으나 키스가
여럿이 모여서 해서는 제 맛(?)을 느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샴페인도 두 사람이 마실 때가 가장 은밀한 기쁨을 느낄 수가 있다. 혼자서 마시면 맛과 향은
충분히 느끼고 감상할 수 있겠지만 좀 쓸쓸할 것 같다.
샴페인을 마실 때는 아무리 애연가나 향수 애호가라 하더라도 삼가는 것이 좋다. 키스할 때 담배 냄새
나면 누가 좋아하겠는가?
만약 꼬냑을 마시는 거라면 담배 정도는 괜찮을 것도 같다. 꼬냑은 쿠바산 고급 시가와 함께 하는 것이
좋은데 꼬냑의 향기와 시가 향이 어우러진 환상적인
향을 즐길 수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시가의 끝 부분을 꼬냑에 담갔다가 피우는 맛은 일품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꼬냑이란 와인 명산지인 보르도 지방의 북쪽에 위치한 프랑스의 지명이다. 샹파뉴 지방에서 생산되는
발포성 와인에만 샴페인이라는 명칭이 붙듯이 꼬냑
지방에서 만들어지는 브랜디에만 꼬냑이라는 이름을
사용할 수 있다. 꼬냑에 견주어 조금도 뒤지지 않는
아르마냑은 보르도 지방 동남부에 위치한 아르마냑
지방에서 생산된 브랜디를 말한다.
대부분의 바에서 꼬냑과 함께 시가를 진열해 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샴페인을 비롯한 모든
종류의 와인에는 강한 냄새는 절대 금물이다. 아무리
이쁘고 매력적인 여자라고 해도 진한 향수를 뿌린 여자와의 키스는 왠지 집중력이 떨어지고 그녀의 체취를 제대로 감상할 수가 없지 않겠는가.
담배 냄새, 향수 냄새에 가려 샴페인 고유의 은은한 향취를 느낄 수 없게 된다면 비싼 돈 주고 산 샴페인이 다 무어란 말인가. 너무 아깝지 않은가.
스포츠 게임에서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초대형 샴페인을 터뜨리는 장면은 경기 내용보다 뭉클하고 감동적일 수 있다. 그간의 피와 땀과 눈물이 가져다 준
그 환희와 기쁨을 샴페인의 풍부한 거품보다 더 확실하게 표현할 그 무엇도 나는 본 적이 없다.
우승의 기쁨에 들떠 우승컵에다 키스를 해보았거나
키스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절세 미인과의 키스에 견주어 결코 뒤지지 않는 기쁨임을.
샴페인을 한 모금 입안에 머금고 있다고 가정하자.
샴페인의 풍부한 거품들이 마치 경기장을 가득 메운 관중들의 갈채처럼 느껴지지 않는가?
많은 사람들이 오랜만의 정찬에 와인을 곁들이려고
할 때 자신이 선택한 음식에 어떤 와인이 어울릴지
몰라 당황하거나 곤란했던 기억들을 가지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서 와인을 많이 소비하는
유럽이나 미국, 일본에서처럼 전문적인 소믈리에가
있어서 메뉴 선택을 도와주지도 않았을 것이고.
소믈리에란 자신이 속한 레스토랑이 내놓은 요리와
와인을 찾는 손님의 입맛을 조율하는 일을 담당한다.
대구의 경우 전문적인 지식은커녕 레드 와인 잔과
화이트 와인 잔, 샴페인 잔의 구별도 불가능한 웨이터나 웨이츄레스들이 대부분이어서 오히려 기분을 잡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남의 여자하고 키스하라는 꼴이 되고 마는데 이럴 경우의 황당함이란 도무지 말로써 표현할 도리가 없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음식과 맞는 와인을 권해 주리라고 기대하는 게 오히려 어리석을 지경이다.
그렇다면 어떤 기준으로 음식과 와인을 매치 시켜야 할까?
가장 손쉽게 육류가 주 요리일 경우에는 레드 와인, 생선이 주 요리일 경우에는 화이트 와인으로 결정하는 것이 보편적인 와인 선택법의 하나이지만 요리의 색깔에 와인 색을 맞추면 그다지 와인과 음식이
상호간의 맛을 심하게 해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예컨데 육류라도 돼지고기, 닭고기처럼 흰 살 육류에는 단 맛이 별로 없는 드라이한 화이트 와인이 더
어울린다. 생선이라고 하더라도 참치나 연어처럼 붉은 색을 띠는 생선에는 보졸레 누보와 같이 숙성 기간이 길지 않은 가벼운 레드 와인을 곁들여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대구에 소재하고 있는 고급 레스토랑의
정찬일 경우 에피타이저로 달팽이나 연어, 드물게 푸아그라(비만 거위의 지방간)가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다음이 스프, 샐러드, 메인 디쉬로는 아마도 생선이나 쇠고기를 主材로 한 스테이크 류가 압도적으로 많을 것이다. 디저트로는 과일과 아이스크림
혹은 간단한 음료들이 나온다. 이럴 경우에는 어떻게
와인을 맞춰야 좋을까?
정답은 아니지만 샴페인을 추천하고 싶다. 와인 전문 레스토랑도 한 두 곳에 불과할뿐더러 경제적으로
꽤 부담이 가는 까닭에 아페르티프 와인, 테이블 와인, 디저트 와인으로 격식을 제대로 갖추기에는 무리가 있다. 따라서 샴페인은 경제적 부담을 현저히 덜어주면서 분위기도 해치지 않는 탁월한 선택이 될 것이다.
이것은 개인적인 견해가 아니라 SOPEXA, 즉 프랑스
대사관 농식품 진흥부에서 권하는 와인 선택요령 중의 하나이다.
전 세계의 미식가들이 공통적으로 꼽는 최고의 음식으로 푸아그라, 캐비어, 송로버섯이 있다. 이 최고의 음식에 가장 잘 어울리는 와인은 샴페인이라고 한다. 따라서 최고의 음식에 어울리는 와인이 최고의
와인이라고 가정한다면 샴페인 또한 와인의 왕이라고
해도 그다지 큰 곡해는 아닐 것이다. 물론 이 경우에는 황제의 와인이자 와인의 황제로 오랫동안 군림(?)해 온 헝가리의 토카이를 염두에 두어야겠지만.
샴페인을 마시면서 첫 키스의 기억을 떠올린다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식전주로 제공되는 샴페인을 마시는 느낌은 분명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고 음식물을 입에 넣은 채로 마시는 샴페인의 느낌은 마치 결혼식 피로연에서 짓궂은
친구들에 의해 강요당하는 날계란 노른자 옮기기처럼
에로틱한 분위기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첫 키스의 아련한 기억. 샴페인이라면 분명히 되살려 줄 것이라고 믿는다.
부모님의 노고가 있었으므로 키스를 알만큼 성장한
것처럼, 피나는 훈련과 담금질이 있었으므로 승리의
샴페인이 주는 풍부한 거품을 향유하는 것처럼, 한
여름 뙤약볕을 이겨낸 농부의 수고가 있었으므로 샴페인이 있다는 사실 또한 기억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