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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때? 윤서야! ”
“우와! 정말 멋지다, 세상에 이렇게 시원한 영화는 처음이야. 얘! 난장이 부하들이 정말 날쌔게 싸우네. 게임 영화 보다 더 재미있어. 길동아! 어쩜 영국에서 일어난 일을 여기 앉아서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 있지?
“그거, 뭐가 어려워? 너희도 비디오로 녹화까지 하잖아? 그리고 캠코더로 동영상도 찍고.”
“그야 뭐 약간씩 하지만 영국까지 금방가고 오고, 또 박물관에서 아이들 머리위에까지 날아가서 말하고, 하늘에서 난장이 인형들이 전투를 벌이는 장면까지 동영상으로 재생한다는 건...”
“물론 그 건 율도국의 이 홍길동의 둔갑술이니 이승 사람들은 불가능하지.“
”그래, 헤리포더들 용서했어?“
“그럼, 너무 불쌍해서 용서 해줬지. 또 까불면 더 혼내줄 수도 있어. 그러나 뉘우치고 반성하면 봐줘야지. 안 그래?”
“맞아, 너 아주 너그럽구나, 옛날 사람이.”
“사실 옛날에는 이런 인정도 많아 사람 사는 맛이 있었지. 요즘은 뭐야, 인정은커녕 인간 윤리가 땅에 떨어져 제 아비를 때려 죽여 시신을 5개월씩 방에 방치 해둔 20대도(190522)있었고 인천에선 어린 중학생 넷이 친구를 몇 시간씩 때려 옥상에서 떨어져(190516) 죽게해, 소년범죄이지만 몇 년씩 징역형을 받았지. 그 뿐이 아니야. 어린 여자 아이를 성폭행하곤 토막내 암매장 까지 하는 막가파 세상이잖아?
엊그제 뉴스에 보니, 지하철 전동 찻간에서 노인과 나란히 앉은 어떤 젊은 녀석이 다리를 무릎에 올려 꼬고 앉았기에 옆의 노인승객이 옷에 구두가 닿으니 좀 내려달라고 요청하자, 반말로‘뭐야? 누구 보구 내려라 마라 해? A C 발! 니가 뭔데? 하며 저의 할아버지뻘 되는 팔십 노인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폭언을 퍼붓고 난동을 부리는 꼴도 보았어. 참 어이없더군. 더 기가 찬 건 말리는 젊은이가 없어. 이렇게 윤리가 땅에 떨어졌으니, 쯧쯧쯧... 또, 요즘 부산인가 어디 저축은행에 돈 맡겼다가 도둑맞고 찾지 못해 안달하는 불쌍한 서민들을 보니 참 누굴 믿고 저축을 하겠어? 은행을 감독하는 감독기관이나 부정부패를 파헤치는 감사원까지, 더 나아가 범죄자를 다스리는 판 검사, 경찰 간부들까지, 그 뿐이던가 국회의장과 총리실 보좌관들과 대통령 보좌관과 친인척까지 범죄에 합세했다니 거의 다 도둑놈들이야. 그 뿐이 아니더라 얘!... 참. 아이들이 좋아하는 축구 야구 같은 인기 있는 운동경기에서도 돈 받고 승부조작까지 하는 세상이니... 이젠 썩지 않은 구석이 없어. 참 세월도.... 쯧쯧쯧...”
길동이 혀를 차자 윤서가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 없어 그도 덩달아 .
“그러게 말이야. 이런 끔찍하고 부끄러운 뉴스가 매일이니. 쯧쯧쯧...”
겨우 이렇게 대꾸하고 말았다.
“근데 그것뿐이 아니더군. 나라가 제대로 서려면 대들보가 튼튼해야 하는데, 나라의 중심이 교육이 아니겠어? 요즘 뉴스 보니 학교가 온통 난장판이 되어 선생님들이 아이들 한 테 절절매고 끌려 다니며 적당히 시간만 때우고, 아이들은 선생님 알기를 우습게 여기며 놀려대고, 꾸짖으면 대들어 동영상을 찍어 인터넷에 올려 놀리는데, 훈계의 회초리를 들 수 없다니 참으로 한심해. 그 뿐인 줄 알아?
더 기가찬 건 여선생님을 자기 애인 다루듯 희롱한다니 허허, 참, 나라가 큰 일 났더라. 교사가 학생을 장악하지 못하고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으니....쯧쯧쯧...”
*장악 - 손안에 잡아 쥔다는 뜻으로, 무엇을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됨을 이르는 말
윤서는 점점 얼굴이 뜨거워 고개를 숙이고 있으려니 길동이 내친 김에 한마디 더 뱉았다.
“내가 할 소린 아니지만, 나라살림 맡은 나랏님부터 교육은 뒷전에 두고 경제도 못 살리면서 백성들 환심이나 사려고 온 나라가 무상 복지 타령만 벌이고 있잖아?
공짜라면 고래도 춤 춘다 텐데... 나라 장래가 정말 암담해. 세상사람들이 하는 말이 있지? 나라 경제는 깡*총이 망치고, 학교교육은 깡*조가 망친다더군. 참, 한가지 빠뜨릴 뻔 했네. 내가 이승으로 나들이를 떠난다고 하느님께 인사드리러 갔다 올 때 조선시대 세종대왕을 만났어. 어떻게 알고서... 날 만나러 나와 기다리던 중이래.”
“그래서 웬 일이냐고 물었지. - 세종대왕께서 꼭 한 가지 부탁은... 대왕이 만드신 천지인에서 태어난 살아있는 ᄒᆞ늘글, 우리ᄒᆞᆫ글을 쓰는 지금 사람들은 그 가치를 모르고 아래ᄋᆞ라고 천대해 귀중한 으뜸 글자(씨ᄋᆞᆺ글자) ᄒᆞ늘ᄋᆞ(ㆍ), 천(ㆍ)모음까지 폐기했다면서 아주 서운해 하시더군.”
“아, 그러시던가? 나도 아직 그런 뜻도 모르고 있었지”
“ 우리ᄒᆞᆫ글은 애초부터 ᄒᆞ늘에서 태어난 살아있는 ᄒᆞ늘글이래. 우리나라가 폐기했다는, 이를테면 아래ᄋᆞ(ㆍ)가 우리ᄒᆞᆫ글 28자를 낳은 어미모음이자, 글씨ᄋᆞᆺ이래. 특히 이 씨ᄋᆞᆺ글자 점(ㆍ)은 우리ᄒᆞᆫ글 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모든 문자를 만들어 내는 시조글자라고 하시더군. 그래서 내가 어떻게 그런 말씀을....하고 되물었더니. 보기로 어떤 글자를 쓰려면 씨ᄋᆞᆺ글자가 첫점(ㆍ)을 찍고 밀지 않으면 글자가 생겨나지 않는다더군. 그래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사실 그렇더군. 아하...난 여기서 탄복했다네.“
”아하...나도 이해가 가네. 우리가 폐기한 ᄒᆞ늘ᄋᆞ 천(ㆍ)모음이 첫점을 찍고 밀지 않으면 글자가 태어나지 않는다는 걸 이해 하겠네. 아...과연 탄복할 일이로군. 아 위대한 세종대왕을 다시 생각해 보아야겠는걸...“
”네가 잘 들었으니 내가 떠난 후에라도 이를 잘 홍보해줘. 생각없이 지워버린 아래ᄋᆞ(ㆍ)라는 ᄒᆞ늘 ᄋᆞ(ㆍ)를 되살려 쓰도록 말이야.“
”좋은 말씀. 나도 꼭 그렇게 할 게“
400 년 전 옛날 사람 홍길동이 세종대왕을 만나고 와서 중대한 정보를 알려준 마지막 밤이다.
길동은 손님아라고 침대에 재우고 윤서는 방바닥에 자리를 깔고 누웠다. 이렇게 나라 걱정을 늘어놓다가 누가 먼저였는지 어느새 꿈나라로 들어갔다.
( 28)길동이 율도국으로 떠남
그 동안 재미있는 홍길동 소동도 벌여 즐거운 한 때를 보낸 길동은 오늘 자기네 나라 율도국으로 떠나는 날이다.
고향 나들이를 나왔다가 뜻하지 않게 상처까지 입었던 길동은. 그 어간에 윤서라는 착한 친구를 만나 사귀었다는 것이 소득이면 큰 소득이었다.
길동은 윤서가 아니었으면 이승에서 입은 상처 때문에 영원히 집으로 돌아가지 못할 뻔했던 것이다. 길동으로서는 정말 목숨을 건 순간이었다. 말하자면 윤서는 홍길동의 생명의 은인인 셈이다.
이번 길동의 고향 나들이 길은 해저나 호수 땅 밑의 율도국으로 가기 때문에 UFO를 타고 물속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한다. 육로로 갈때는 보통, 문경 가은 성밑마을 뒤 모산의 모산굴(옛 활빈당 본거지)로 드나들지만 오늘은 호수로 가기 때문에 산정호수나 속초의 영랑호로 갈 참이다. 이미 지구상에 날아다니던 비행접시의 출몰 역시 바다에서 솟아오르고 사라질 때도 바다로 곤두박질치듯 사라졌다는 보도가 있듯이.
율도국의 UFO도 바다로 출입하기도 하지만, 호수를 이용하기도 한단다. 율도국 출입구 역할을 하는 호수로는 산정호수와 속초의 영랑호, 창원의 주남저수지, 창녕의 우포늪, 그리고 백두산 천지 또 길동의 고향 장성호 등 그 외 비밀로 돼있는 서너 곳을 합쳐 예닐곱 군데의 국내 호수 외 중국의 차간 호 러시아의 바이칼호 등 외국의 호수로도 출입한다고 한다.
오늘 길동은 산정호수로 갈 참이다. 윤서는 길동을 산정호수까지 배웅하기 위해 동생 꽃지랑 아버지 어머니 이렇게 네 식구가 윤서가 이미 만들어놓은 짚신 하늘배를 타고 가기로 했다.
“윤서야! 그 동안 너무 고마웠어. 나, 너를 만난 게 퍽 다행이었어.”
“별 말씀! 뭘 새삼스레 거창한 인사를...”
“ 아니야. 난 정말 너 아니었으면 이승에 나왔다가 아주 떠돌이 귀신이 될 뻔했어. 이 상처를 치료 못 했더라면 말이야.“
윤서가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며 얼른 되받았다.
“그야 뭐, 오박사님이 다 치료했지 뭐. 내가 해 준 게 뭐가 있어? 난 너를 만나 희한한 구름타기 체험도 하고 하늘 배도 만들어 대상도 받고 너무너무 기분이 좋아”
“얘, 윤서야 아무튼 고마워. 그래서 말이야. 그 보답으로 내가 갖고 있는 이 만능리모컨(율도폰)을 선물로 줄게 잘 간직하고 잘 써어. 자아 - ”
윤서가 눈이 둥그래, 설마 이 중요한 걸 정말 주나, 하고 받지도 않고 놀라 쳐다보고 있다.
“자 어서 받아.”
“아니야. 율도국에서 써야할, 이렇게 중요한 물건을 내가 받는다는 건....”
“괜찮아 집에 가면 또 있고, 앞으로 많이 만들 거니까 너에게 만은 하나 줘도 괜찮아. 자...”
윤서가 기쁘기도 하고 한편 놀라 어벙하니 쳐다보다가 받았다. 흡사 가스 라이터같이 생긴 작은 리모컨 겸 핸드폰같다.
“내, 이것을 길동이 보듯 잃어버리지 않고 잘 간직해야지.” 하며 목에다 걸었다. 그러고 일어서더니 벽에 걸린 안동 하회탈 목걸이를 벗겨 길동의 목에 걸어 주며
“이건 보잘 것 없는 것 같아 좀 마음에 덜 차지만 나의 성의로 받아두고 나 본 듯이 걸고 다녀!”
“그래, 고마워. 특이하게 생긴 한국고유의 예술품이군.”길동이 하회탈 목걸이를 만지며 미소를 흘렸다.
“작년 여름방학 때 민속촌 안동하회 마을에 갔을때 사온 거야. 아주 특이한 스마일 목걸이야. 우리 우정의 기념으로...”
“고마워. 자, 그럼 그 리모컨 사용법을 대강 설명할 게....”
윤서가 진지한 얼굴로 길동을 쳐다보고 있다.
“ 우선 여기 봐. 요 별표는 태양광 자동 충전 키야. 주인은 몰라도 돼. 이 키가 에너지가 줄어들면 자동으로 충전돼. 우리 율동국의 날비(비행접시)도 태양광으로 충전돼 움직여. 방마다 태양빛을 끌어들여 밝히고 에너지 역할을 해. 그리고 앞으로 너의 짚신배도 이 리모컨으로 조종하면 되는 거야 자 그럼 여기다 네 비밀번호를 입력해 둬야해.”
“내 비밀번호? ”윤서가 리모컨을 살피며 길동의 설명을 듣고 있다.
“그래, 최초의 비밀번호를 잊으면 안돼. 그 비밀번호를 입력한 후 도우미 버튼을 누르면 도우미가 나와. 뭐든 물어보는 대로 가르쳐 줘. 어디 한 번 눌러봐. 도우미를 뜻하는‘도’를 누르고 114를 눌러, 도우미가 나오면 물어봐. 도우미는 실체(몸)가 없는 사람이야.”
윤서는 어안이 벙벙해 입을 벌린 채 속으로 감탄만 하고 있다가
“어디 한 번 눌러볼까? 음‘도’를 누르고 전화번호 물어보기처럼 114를 누른다. 아, 나왔다! ”
‘주인님, 부르셨습니까?’흡사 일본 스모선수같이 뚱뚱한 녀석이 나왔다.
“그래, 이 리모컨을 잃어버리면 어떻게 찾지?”
‘네, 주인님의 전화나 핸드폰에 주인님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다시 비밀번호를 거구로 누르면 위치를 알 수 있습니다. 리모컨의 위치까지 찾아가 다시 비밀번호를 누르고 다시 거꾸로 비밀번호를 누르면 소리가 크게 들립니다.’
“오호, 이제 알았다. 도우미 들어가!” 도우미가 들어가고 달랑 리모컨 만이 손에 들려있다.
길동은 지금 생각해도 윤서가 너무너무 고마웠다. 그러기에 율도국에서 가장 중요한 보배인 동시에 가장 중요한 비밀이 숨어있는 만능리모컨 목걸이를 선물했다.
옛날 전설에, 착한 어부가 바닷가에서 큰 고기를 잡았다가 살려주었더니, 용궁에 초대되어 용왕님으로부터 쌀도 나오고 돈도 나오고 집도 지어준다는 여의주를 선물 받았다는 전설에서와 같은 귀한 보물을 길동이 선물한 셈이다.
*여의주 - 용의 턱 아래에 있는 영묘한 구슬. 이것을 얻으면 무엇이든 뜻하는 대로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오늘은 길동이 율도국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윤서는 식구들과 길동이를 아파트 앞 까치동산 경로정 마당에 미리 가 있으라고 한 후 옥상으로 올라갔다. 집으로 떠나는 길동은 옛 활빈당 홍길동 정장차림이다. 경로정은 이 마을 할아버지들이 노는 정자를 말한다. 윤서는 책꽂이 위에 얹어두었던 짚신하늘 배를 안고 옥상으로 올라가 바닥에 내려놓았다.
‘어어? 벌써 작동해 하늘 배가 크게 변했네? 누런 황포 돛이 눈에 띄게 환하다.’
이는 말 할 것도 없이 홍길동의 둔갑술이다. 윤서는 배에 오르자 길동이 준 만능리모컨으로 바로 조타키를 조작해 옥상위로 떠 올랐다.
그는 얼른 방향키를 잡고 까치동산 쪽으로 선수를 돌렸다. 앞동산 소나무 아래에 가족들이 모여선 게 보였다. 윤서 어머니는 아들의 하늘 배 안전을 위해 두 손을 모아 쥐고 기도하고 있었다. 그 때 길동은 윤서가 타고 오는 하늘 배를 발견하고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배꽁무니에선 흰구름이 넘실넘실 춤을 추고 오색테프가 바람에 포르르 날리며 흡사 배가 은하수를 가르고 떠 가는 것 같다. 황포돛이 바람을 받아 배가 알맞게 불룩하다. 뒤늦게 하늘 배를 본 꽃지가
“오빠아- ”
하고 소리 지르며 손짓했고 아빠와 엄마는 너무 놀라 입을 딱 벌리고 진짜 우리 윤서가 하늘 배를 몰고 오나하고 쳐다보았다. 이윽고 하늘 배가 동산 정자 앞 공터에 내렸다. 경로정 노인들도 이상한 짚신배를 돌아보며 신기해했다. 누런 황포 돛은 미풍에 흘든거리고 뱃전 옆구리에는 ‘샛별호’라는 하늘 배 이름이 붙어 있다.
“야, 우리 윤서 대단하다. 언제 이렇게 만들어 두었지?”아빠의 칭찬의 말이다. 온 가족이 배에 타자 드디어 하늘 배는 서서히 하늘로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마침 정자에 나와 있던 동네 노인들이 웬 배인가 했더니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을 보고 입을 딱 벌리고 놀라워하고 있다. 요즘은 자고 일어나면 변하는 세상이라, 밤새 이런 하늘배가 시중에서 판매하는가보다 하고 서로 수군거렸다.
배가 수원골프장 위를 날 때 윤서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골프장의 골퍼들도 놀라 잠시 운동을 멈추고 짚신모양의 하늘 배를 쳐다보며 놀라워하고 있다.
“윤서야, 너 어느새 이런 배를 만들어 두었지? 우리 윤서 대단하다, 이제부터 다시 봐야겠는걸.”
“그러게 말이에요. 요즘 애들은 옛날과 달라요. 우리가 상상도 못하는 이런 것도 발명하고... 아, 글쎄 요즘 초등학교 아이들‘과학’ 교과서의 과학문제는 옛날 우리가 배울 때의‘자연’교과서하고는 영 딴 판이에요. 실용적인 생활 과학으로 저네들이 배운 것을 이렇게 즉석에서 응용할 수 있는 교육의 힘이 무척 커졌네요.”윤서 어머니의 말이다.
“정말 장하다, 우리 윤서!”
“이게 다 길동이 덕이죠 뭐, 이름이 하늘배라고 하지만 장난감 짚신배를 길동의 둔갑술로 이렇게 크게 둔갑시켜 준 것 뿐이에요. 우린 아직 멀었어요. 길동이네 율도국엔 벌써 드넓은 우주 공간을 오가는 UFO 까지 이미 만들어 놓았다는군요. 그 동안 세계 각처에 출몰했던 비행접시가 다 율도국의 비행접시 시운전으로 일어난 현상이라는 군요. 안 그래? 길동아! 참, 지난 3월 멕시코 캠페치 상공에 나타났던 16개의 UFO도 율도국의 비행접시라고 했지? 길동아!”
“뭐, 별 것 가지고 그래. 사실 말이 났으니 말이지만, 지난해 3월에 처음 우리 날비 소대를 몰고 시운전 삼아 한 바퀴 돌고 왔어. 멕시코를 둘러보고 올때 미국의 캘리포니아의 유명한 관광지 ‘빅 베어 레이크’도 둘러보았지. LA에서 동쪽으로 130마일 거리에 2930m 의 높은 샌버나디노 산위에 유리처럼 맑은 새파란 호수가 있더군. 여름철엔 모터보트와 수상스키로 유명하고 설산의 산자락에는 연중무휴 스키장으로도 유명하대. 내려가 가까이 구경하지 못한 것이 유감이었지만, 다음엔 망원렌즈 창을 달아야겠어. 자세히 볼 수 있게. 다행이 사고 없이 무사히 시운전이 끝나 이제 실용단계에 들어갔어.”
윤서는 물론 윤서 부모님까지 진지한 모습으로 듣고 있다.
“시운전이 무사히 끝났으니 이제 살살 세계의 구석구석을 둘러 봐야겠어. 집에 돌아가면 우선 한국부터 둘러보려고 해. 우리나라에선 아직 UFO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애. 지난 번 멕시코에 다녀오기 직전에도 한국의 가평, 울진, 문경 지역을 몇 번 둘러보기도 했는데, 여태 눈치도 못 챈 것 같더군.”
“아, 그랬어?”윤서가 호기심어린 눈으로 대답했다.
“아, 참 엊그제(19. 8. 7) 잠깐 나들이 다녀왔지. 산청군과 지리산 자락을 종주해 돌아왔는데, 한국의 국방부에서 그 시간에 레이더에 찍힌 것이 없다면서 아마츄어가 찍은 커다란 동영상을 무시해 버리더군.”
“길동아, 너의 날비는 스텔스 장치로 보이지도 않고 레이더에 걸리지도 않차나?”
“네 말이 맞아. 더 이상 신경 쓸 것 없어. 참 아버님 그 동안 신세 많이 졌어요. 언젠가 또 만날 때가 올 겁니다. 윤서야, 그 때까지 공부 잘하고 건강해야지. ”
“그래, 알았어.”윤서가 조타키를 잡고 앞을 응시하며 한 대답이다. 조타키는 흡사 아이들 장난감 무선 자동차 운전용 십자 리모컨 같다. 길동이 윤서를 돌아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참, 요전에 마지막 다리 치료하고 나올 때 그 옆의 소아병동의 어린이 환자 엄마가 참 딱한 이야기를 하던데, 내가 바빠서 자세한 얘기 못 들었어. 네가 자세히 알아보고 내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핸드폰을 쳐, 참 그 핸드폰 사용법 알지? 만능리모컨 말이야. 오전에 설명한대로야. 그리고 모르면 그 밑에 도우미 버튼 눌러 알아봐. 거기에 물어보면 도와 줄 거야. ”
윤서는 만능리모컨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며
“어디 눌러 볼까? 음 도우미 ‘도’ 자를 누르고 114라고 했지?”
‘예, 부르셨습니까? 주인님 말씀하십시오.’
“어어? 참 아라비안나이트의 요술 램프에서 나온 거인 부하 같군. 그래 여기 빨간 버튼은 어떻게 쓰는 거지?”
‘네, 그것을 누르면 홍길동과 직접 통화 할 수 있고, 화면을 보고 싶으면 빨간 버튼을 두 번 누르세요’
임무를 마친 도우미는 이미 들어갔다.
“아, 이제 알았다. 요 ‘도’자하고 전화번호 모르면 물어 보듯 114만 알면 뭐든 기능을 다 알 수 있으니 다 잊고 몰라도 안심이군.”
“응, 그래, 다만 이 목걸이를 잊어버리면 안돼, 그래서 혹시 잊어버리거나 또 깡패한테 빼앗길 때를 대비해 비밀번호를 입력해두라고 한 거야.. 너만 아는 비밀번호를 입력해두면 잃어버려도 찾을 수 있어.
“아, 참 희한하네.”
“위치가 확인되면 차 타고 내비게이션이나 핸드폰의 안내를 받아 찾아가서 다시 핸드폰으로 비밀번호를 누르면 누구 호주머니에 들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아니면 위치추적으로 근처까지 가서 비밀번호를 누르고 도우미를 불러내 찾아 오라고 하면 금방 찾아올 수 있어. 힘도 무척 세고 무엇이건 척척해 내는 슈퍼 투명인간이야. ”
“야, 그것참 기가 막히는구나, 길동이네 율도국은 언제 이토록 발전했니?” 윤서 아버지가 한 말이다.
“우린 이미 옛날 세종대왕 때의 장영실 선생을 비롯해 세계 여러 나라 박사들을 초청해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 실험이 끝나 지금 활용하고 있답니다. 학자라면 의학계의 허준 선생, 유전 식물학자 우장춘 박사, 천문학자 장영실 선생, 고려말의 무기 화약 계통의 최무선 선생 등 우리나라의 고인이 된 모든 과학, 의학 등 여러 학자들을 동원하여 지금 깜짝 놀랄만한 연구를 하고 있는데 아직 발표는 하지 않고 있습니다만, 아마 미국이 알면 기절 할 것입니다. 한 가지만 귀띔해드리면 인공위성도 감쪽같이 끌어내릴 수 있고 외계로 빼돌릴 수도 있답니다.”
“아하,...”
윤서 어머니가 입을 딱 벌리며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 때 윤서 아버지가 물었다.
“이봐, 길동아! 그 박사들을 우리나라에 초청해 도움을 받으면 안 될까?”
“아버님, 참 좋은 질문이십니다만. 실은 이미 고인이 된 그 분들을 초빙했다지만 경계국인 우리 율도국에서의 일이지 여기 인간 세상에까지 나올 수는 없어요. 전혀 불가능합니다.”
“아 암, 그럴 테지. 나도 짐작은 했었지만....”
“그러나 여기 인간 세상의 유명한 박사님은 우리 율도국에 초청해다 연구하고 되돌아오곤 할 수는 있답니다. 지금 우리 율도국에는 여기 한국의 유명한 박사님도 몇 분 와있답니다. 이건 아주 비밀이라 말씀드릴 수 없어 유감입니다만.”
“암, 그것까지야 물을 수 있나? 아무래도 우리나라를 위한 중대한 연구를 할 테지....”
“예, 그렇습니다. 앞으로 현재 연구 중인 것이 완성되면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일류 과학 강대국이 될 것이고 최강의 부국이 될 겁니다. 굉장한 연구란 세계의 어떠한 나라도 당 할 수 없는 무기, 즉 무기라 해서 대량살상 무기가 아니라 대량살상 무기나 핵무기를 갖고 있는 나라의 그 무서운 무기를 감쪽같이 무력하게 만들기도 하고 터뜨릴 수도 있게, 간단하면서도 최첨단 인공두뇌를 갖춘 과학기기라는 것 만 말씀 드려둡니다. 인간과 같은 지능을 갖춘 인공 두뇌를 넣은 로봇을 만들어 이 인공두뇌를 가진 과학로봇이 사람을 대신해 연구를 해낸다는 말씀입니다.”
“아, 대단하군. 도저히 상상도 못하겠군.”
“그 인공두뇌만 완성되면 심지어 자동차도 손으로 운전할 필요 없이 운전자의 생각 즉, 마음으로 운전할 수 있습니다. 즉 인공지능 두뇌를 장착한 모자를 쓰고 자동차를 타면 그 사람의 생각 마음까지 기계에 전달되어 자동차를 타고 핸들을 쥐지 않고도 마음으로 좌회전! 하면 좌로 가고, 뒤로! 하면 뒤로 가고, 가다가 위험하면 자기가 알아서 판단해 정지하고 살아있는 사람과 꼭 같이 움직여주는 인간기계인 셈이지요.“
윤서 아버지는 그만 입을 딱 벌리고 감탄도 않고 고개만 끄덕이고 있다.
“이 인공두뇌 칩 속에는 사람의 맥박, 땀, 체온, 입의 침, 혈액, 지문, 사람의 호르몬, 심지어 소변까지 입력돼있어 이런 기능이 가능하게 작동합니다. 이 인공두뇌를 넣은 칩은 흡사 반도체처럼 완전 코팅돼 있어 절대 고장 나는 법도 없답니다. 망치로 두들겨 깨기 전에는 영구적입니다.
길동이 여기까지 좍 쏟아 내곤 너무 깊이 설명하지 않았나 하고 은근히 걱정도 했다. 그러나 윤서를 볼 때 그 아버님은 절대 믿음이 가기에 걱정하지 않고 있다. 그래도 행여나 해서 다시 못을 박았다.
“아버님. 이건 아버님만 알고 계셔요. 절대 비밀입니다. 지금 미국, 러시아 등이 눈이 벌개 매달리고 있답니다. 이 비밀을 알아내려고 말입니다. 이 연구를 먼저 완성하는 나라가 앞으로 세계 판도를 좌우합니다. 앞으로 우리나라의 통일, 세계의 최강국, 이게 우리 율도국의 목표입니다. 꼭 비밀을 부탁합니다.”
*판도 - 한 나라의 영토. / 어떤 세력이 미치는 영역 또는 범위.
“암, 나도 절대 비밀로 해두지. 그래, 걱정 마라. 어서 그 거대한 연구가 성공하길 바란다.”
“감사합니다. 꼭 성공할겁니다. 다 끝나면 한국의 박사님들도 다 돌려보낼 겁니다. 율도국에 와 계신 박사님들도 율도국에 앉아서 집에서 하는 일, 가족의 하루일과를 다 보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지루해 하거나 가족을 그리워하거나 집에 가고 싶어도 견딜 수 있답니다. 사실 집에 전화를 하고 TV에 화상 연결을 하면 서로 얼굴을 보고 통화도 할 수 있어 안심이지만 비밀 유지가 어려워 그건 안 하기로 서로 양해가 돼 있답니다.”
“오호, 그래? 대단하고 빈틈없구먼. 죽었다던 박사님이 다시 살아왔다면 난리 날 테지?”
하늘 배는 팔당 댐을 지나 운길산을 향해 올라가다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전망이 좋다는 운길산 자락의 수종사를 바라보고 내려가고 있다. 커다란 은행나무와 느티나무 숲에 둘러싸인 수종사는 과연 듣던 대로 높다란 명당에 자리 잡은 위치부터가 일품이어서 저 앞으로 내려다뵈는 두물머리 경치가 기가 막히게 아름답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합류하는 두물머리 널따란 물 가운데 띄엄띄엄 떠 있는 갈대 섬과 물안개 서린 강변 경치가 정말 한 폭의 수묵화 같다. 중앙선 운길산역의 수종사(水鐘寺)를 다녀간 사람들은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열 번을 가도 싫증 나지 않는 전망이라고 칭찬이 자자한 곳이 수종사다. 하늘 배는 남한강을 따라 올라가다가 왼쪽으로 틀어 양평에서 제일 높은 용문산(1157m)을 끼고 유명산을 넘어 아래로 내려가고 있다. 하늘 배 선장 윤서는 지리부도를 펴 놓고 배 아래 산하를 살피고 있다.‘아, 여기가 가평군 설악면이군.’ 산 아래로는 설악면 곡달사 절이 보였다. 내려가다 오른 쪽을 보니 설악면 신천리 일대와 설악중학교와 마을가운데 파묻힌 미원초등학교도 보였다. 울업 신성봉을 돌아. 잔잔한 청평호반을 따라 시원히 물길을 가르며 쏜살같이 달리는 청호가든의 수상스키장 앞으로 해서 다시 오른 쪽으로 트니 옛 설악면 송산리 장낙산 아래 문선명의 통일교 성지까지 보였다. 북한강을 따라 좀 더 올라가 남이섬을 지났다. 가다가 왼편으로 틀어 가평 운악산을 넘어 이윽고 양주 동두천 소요산을 넘어 삼팔선을 지났다. 배가 하도 낮게 떠가니 삼팔선 표지석이 확연히 보였다. 오른편으로 연천 재인폭포 물줄기가 안개처럼 부연 물보라를 일고 있다.
“엄마, 엄마! 저 무지개!”
배 안의 모든 사람이 청청 하늘에 웬 무지개냐며 꽃지가 가리키는 아래를 내려다보니 재인 폭포에서 일어나는 물보라 때문에 무지개가 가로 걸린 게 보였다.
배가 오른 편으로 방향을 돌려 태봉국 궁예가 망하고 연 사흘을 식음을 전폐하고 울었다는 명성산(鳴聲山)자락의 산정호수를 향해 날아 오르고 있다. 그 앞으로 좀 높은 산이 나왔다 선장 윤서는 키를 작동해 배의 머리를 올렸다, 산정 호수 정상에 오르니 파란 산정호수가 둥그런 그릇에 물을 떠놓은 듯이 잔잔하다.
이들은 샛별호를 타고 산정호수를 한 바퀴 낮게 돌았다. 호수 가의 식당 관광객들이 처음 보는 하늘 배를 보고 머리를 갸웃하며 손짓했다. 이들은 어느 회사의 광고 비행선인가 하는 눈치였다. 이윽고 산정호수의 수면 가운데로 들어가자 길동이 윤서의 리모컨을 달래서 무슨 암호를 입력했다. 바로 그때,
앗, 저런!
호수 한가운데 물이 원형 물결을 그리며 빙그르 돌더니 윤서의 하늘 배 밑의 뭉게구름도 따라서 원형 써클 방향으로 구름이 흩날리며 부서져 떨어져 날아가면 앞쪽에선 또 새로운 구름이 생기곤 했다. 물 한 가운데 원형 구멍이 점점 크게 벌어지며 안이 훤히 내려다 보였다.‘아, 저기가 율도국 통로로구나’ 이렇게 생각할 새 길동이 입을 열었다.
“윤서야. 지금 율도국 출입문을 열었어. 저 아래 보이는 동굴안이 우리 율도국이야. 난 지금 저기서 올라오는 사다리 계단을 타고 내려가면 돼.”
“우아... 정말 놀랍다.”
놀라기는 윤서 아버지 어머니 꽃지 까지 다 입을 딱 벌리고 아래의 지하 나라를 내려다. 보고 있다. 꽃지는 어지러워 짚신 옆구리에 W자 모양으로 얽어 놓은 안전밧줄을 꼭 잡고 머리를 숙여 내려다 보고 있다. 여기서는 물밑이지만 정확히 말하면 지하 왕국이다. 지하 동굴이라고 해 어둑한 굴속이 아니라 대낮같이 밝아 우리들 지구나라와 꼭 같은 딴 세상이 훤히 내려다 보였다. 율도국의 지하 왕국은 각 방이나 구석구석에 햇볕을 끌어 들여 햇빛 전구를 켜 놓은 듯 밤낮없이 항상 훤하다고 한다. 자동으로 온도와 조도(밝기조절)를 조절해 잠잘때는 햇볕이 엷어져 동굴내의 모든 생물(벌 나비 및 유익한 곤충)이 잠을 잔다고 한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동굴속에서도 지구나라와 같이 각종 채소도 기르고 바닥은 물론 벽과 굴 천정에까지 녹색 식물과 이끼가 파랗게 자라 광합성(光合成)에 의해 자체적으로 산소를 생산한다고 하니 정말 놀라운 일이다.
*광합성(光合成) - 1.녹색 식물이 빛에너지를 이용하여, 흡수된 이산화 탄소와 수분을 유기물과 산소로 변환시키는 작용(산소를 만드는 작용)
길동이 또 무슨 버튼을 누르자 아래에서 흡사 이삿짐센터 사다리 모양의 사다리 계단이 하늘배 뱃전 가까이로 올라와 멈춰 섰다. 그 사다리에는 안전용 난간과 발판 계단까지 비스듬히 걸려 있었다. 호수 밖의 관광객이 이 광경을 보고 감탄해 마지않았다. 어떤 사람은 어떤 회사가 이벤트를 벌이는 걸로 알았다가 물속에서 사다리가 쑤욱 올라오는 것을 보고 어안이 벙벙해 있다.
“윤서 부모님! 안녕히 가십시오, 또 놀러 오겠습니다. 윤서, 고마워. 자 그럼.... 아 참, 이거...”길동이 쓰고 난 리모컨을 윤서에게 전했다.
“그래, 잘가아. 길동아!”
“길동이 오빠! 빠이빠이!”
“그래, 꽃지 안녕!”
길동이와 윤서는 서로 악수를 교환하고 아쉬운 작별을 고했다. 길동이 계단에 올라 서자 사다리는 자동으로 서서히 아래로 내려갔다. 윤서가 손을 흔들자 길동이 또 답례로 손을 흔들고 돌아서니 사다리는 물속으로 자취를 감추고 물이 소용돌이치며 빙그르 돌더니 점점 구멍이 좁아져 닫히고 말았다. 맨 나중에 작은 조약돌 하나 던진 파문처럼 물결이 맴 돌다가 잠잠해졌다. 호수가의 모든 관광객과 낚시꾼들이 눈이 둥그래 저희들끼리 화제가 만발했다.
아, 참 기이하다. 정말 꿈같다.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가 윤서에게 물었다.
“너, 어느새 이 배를 만들어 감춰두었니? ”
“이 배요? 벌써 만들었어요. 우리 학교 김선균 과학부장 선생님의 도움으로 시작했고 그 다음은 길동이 많이 도와줬어요. 사실 길동이 아니면 전 과학적인 지식이 별로 없었고 길동이 율도국 과학자 장영실 선생, 아빠 장영실 아시지요? 그 옛날 조선시대 사람으로 세계 최초로...”
“아하 알겠다. 세종 때 측우기를 발명한 과학자 말이지, 장영실... 응 맞다, 맞아...”
“그 외 여러 과학자들에게 물어 길동이 도와주어 내가 만들었어요. 동력은 길동이 알아서 구름 마술을 걸어 내가 배를 타고 조타키를 작동하면 구름이 모여들어 배 밑창을 떠 받치어 밀어 준답니다.”
“우와~ 기가 막히네” 일동이 하는 놀람이다. 윤서가 흐뭇해 엷은 미소를 흘렸다. 암 길동이 많이 도와 줬겠지만 우리 윤서... 참 장하다.”
윤서는 처음으로 아버지한테 칭찬을 들었다. 만날 잘 못한다고 야단만 치던 아빠가 오늘은 아들에게 푹 빠졌나보다.
25.방송국 특별 뉴스- 지난번 예고했던
길동이 떠나고 그 며칠 후 지난번 장성 홍길동 축제 후의 특집방송 때 예고 했던 제2 특집방송을 한다는 예고가 나왔다. 말하자면 지난번의 하늘로 날아가는 짚 인형이 고속도로에 곤두박질 친 장면이 제 1 특집방송이라면 요번 것은 제 2특집 방송인 셈이다. 제2 특집방송을 오늘 저녁 9시 뉴스 끝에 이어서 한다고 한다.
9시 뉴스가 끝나면 잠이 많은 아이들은 대부분 꿈나라로 들어갈 시간이지만 오늘 만은 홍길동 소동의 제 2막이 올라간다니 잔뜩 기대를 걸고 기다리고 앉았다. 이윽고 9시 뉴스방송이 끝나고 40분부터 ‘홍길동 소동의 해부’라는 제목으로부터 시작해 요번에는 지난 봄 장성 홍길동 축제때 강아지에게 물린 홍길동 장면부터 다시 시작해 피흘리며 쫓기는 홍길동과 이를 추적하는 경찰관과 윤서네 승용차의 내부 검사 하는 장면까지 몽땅 까발려 방송한다니 전국의 청소년들의 눈을 붙들어 묶고 있다. 물론 율도국의 홍길동도 자신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해부하는 장면을 지금 시청하고 있다. 율도국에서는 한국의 TV방송은 물론 라디오 방송까지 24시간 틀어 놓고 자동녹화까지 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특별방송이 나온다면 놓치지 않고 시청하게 돼있어 오늘의 이 프로는 홍길동도 관심 있게 시청하고 있는 중이다. 일차 홍길동 소동 때에는 길동이 쫓기다 윤서네 승용차 앞에서 사라진 장면까지였으나 길동이 율도국으로 떠나기 전날 밤에는 길동이 넣어준 공중에 날아가던 헤리포더의 빗자루와 고속도로에 곤두박질 치는 장면과 도망치는 빈빗자루에 탄 헤리포더의 얼굴을 보여준 장면까지 완전 입체로 보여 주었지만, 오늘은 처음부터 다시 재방송으로 자세히 보여준단다. 그러면서 막간에 그 옛날의 홍길동의 활빈당 활동과 임금님과 담판하고, 율도국으로 떠나는 홍길동전 마지막 장면까지를 넣어 이해하기 쉽게 엮은 제 2 특집으로 지금 방송 중이다.
이때, 예고도 없이 홍길동은 또 다른 길동의 프로를 막간에 입체화면으로 끼워 넣었다. 지난번 도망치는 헤리포더의 얼굴을 본 이후의 장면이다. 지금 막 헤리포더가 한국에서 쫓겨 런던의 자기 집에 도착해 자기 공부방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실감있게 나오고 있다. 방송국에서는 또 놀라 어안이 벙벙해 있다. 여기서 방송국 담당기사들도 지난번처럼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해 하고 있다. ‘어어? 이 게 어찌 된거지? 아니, 이렇게 멋진 입체 화면은 누가 어떻게 우리 방송에 끼워 넣었지?’ 그러나 어느 누구 하나 이를 제지하거나 방송중단 조치를 취하지도 않고 그냥 돌아가는 대로 내 맡기고 있다. 이때 전국의 시청자들은 지난 번 도망치는 헤리포더 이후의 장면 필름을 구한 방송국에서 역시 입체로 오늘 제2 특집방송을 하나보다 했지, 어느 누구도 갑작스레 끼어든 프로인 걸 아는 사람도 없다. 방송국 실무 진들만이 어안이 벙벙해 있는 사이 특집방송은 저절로 진행되면서 방송국으로서도 구하지 못한 특별 장면이 지금 돌아가고 있다. 희야!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너무 의아해 말이 나오지 않는다. 어디서 누가 이런 장면을, 그 먼 헤리포더의 집안까지 들어가 입체 동영상으로 녹화해 보관했다가 남의 방송국에 끼워 넣을 수 있을까? 실로 놀라운 장면이다. 누구의 짓일까? 방송국으로서는 뜻하지 않게 특집방송이라는 제목에 어울리는 진짜특집 프로그램이 되고 있지만 어떻게, 누가, 이런 일을 도와주었는지, 그 사실을 설명할 수가 없어 정말 얼이 빠진 상태이다. 지난번 고속도로 상공으로 빗자루 여덟이 짚 인형을 태우고 줄 맞춰 날아가는 장면도, 더 더군다가 빈 빗자루에 사람이 탄 것을 보이게 하곤 더 자세히 살필 수 있게 헤리포더의 얼굴을 클로즈업 시켜 방영한 것을 보면 헤리포더의 짓은 아닌 듯 한데... 도대체 누가 한 짓일까? 다행이 오늘 특집으로서의 역할은 톡톡히 했지만.
한국에서 쫓겨온 헤리포더가 자기 공부방에 들어서니 난데없이 저절로 TV가 확, 켜지면서 광고방송 화면 이래에 영어 자막 글씨가 흐르는 것을 들여다보는 장면에서 놀라는 모습도 비치고 있다. 헤리포더의 방 TV에서 흐르는 영어 자막 글씨는 한글로 번역돼 보여주고 있다. 물론 시청자들이야 방송국에서 번역해 보여주는 줄 알고 놀라지도 않고 자연스레 시청하고 있다. 우와 아 ~ 재미있다. 이렇게 재미있을 수가! ....?
< 헤리포더야! 잘 봐라. 나, 코리아의 홍길동이다. 내말 잘 들어라. 내가 알기로 영국은 신사의 나라라고 들었다. 신사의 나라 헤리포더, 넌 어쩌자고 남의 나라에 허락도 없이 들어와 내 부하들을 훔쳐 도망친단 말이냐? 내 부하 일곱 명은 고속도로에 떨어져 모두 박살나 죽었단 말이야. 어서 사과 해라.> 이 자막글씨를 읽은 헤리포더가 < ‘어어? 책임지라고? 난 훔쳐 온 것도 아닌데... 아, 아무튼 대단하구나. 여기서 동쪽의 코리아라면 정말 먼 곳인데 어찌 여기 TV에 까지 입체로 나올 수 있을까? 정말 놀랍다. 도대체 홍길동이란 인물은 어떤 사람일까?’ >
이렇게 중얼거리는 소리도 한국어로 통역되어 들리고 있다. 이렇게 생생한 특별 방송이 지금 진행 중인데 방송국 실무 기사들까지 손을 놓고 이 장면을 보면서 놀라워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곤 헤리포더가 의자에 털석 주저 앉으며 고민하는 모습이 비치고 있다. ‘도대체 홍길동은 누구일까? 여기서 코리아라면 엄청 먼데 어떻게 자막글씨를 넣고? 남의나라 방송에까지 들락날락거리다니... 도대체 홍길동이란 인물에 대해 알아봐야겠다.’
헤리포더가 홍길동 인물에 대해 고민하는 장면을 끝으로 율도국에서 넣어준 프로는 끝났다. 곧 이어, 금방 한국의 정규방송으로 이날의 특집프로 녹화 장면이 이어지고 있다. 방송국에서는 한숨을 돌리고 여유 있게 직원들끼리 자기네 특집방송 프로 중간에 자체적으로 구하지도 못한 영국런던의 헤리포더네 집에까지 가서 찍은 특종을 방영하여 특집으로서의 기능을 톡톡히 하긴 했으나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몰라 아직까지 얼이 빠진 상태이다.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일까? 헤리포더 TV의 자막에서 처럼 홍길동의 짓일까? 400년 전에 죽은 홍길동이 살아 올 리도 없고. 누가 이런 멋진 쇼를 출처도 밝히지 않고 했단 말인가? 우리 방송국이 아니라면 우리나라 전국에 어디서 우리 방송국을 능가하는 또 다른 비밀방송국이 있다는 말인가? 특집 방송 프로에 등장한 몇몇 과학자와 사회학자 및 정부인사의 대담프로에서도 확실한 결론은 맺지 못했으나 400년 전 죽은 홍길동의 짓이라고는 아무도 인정하지 않고 어디엔가 이승의 숨어있는 과학자가 벌이는 비밀 방송장치가 있는 것 같다는 정도로 매듭을 짓고 만 대담이었다. 여하든 오늘의‘홍길동 소동의 해부’의 특집 방송은 계획했던 것 이상의 시청률을 올린 성공적인 특집방송으로 마무리 지었다.
26.여름 방학 홍길동 축제
아이들의 세월도 빨라 벌써 여름 방학이 되었다. 금년엔 특별히 태풍과 폭우와 산사태로 피해도 많았지만, 특히 봄에는 고성, 속초. 강릉 등에 불어닥친 강풍을 타고 대형(2019년) 산불로 인가는 물론 짙푸른 자연의 피해가 많았다. 대형산불로 관동지방의 아름다움을 많이 잃었지만 그래도 벌써 영동고속도로는 메어지게 휴가차들로 가득 차 연일 도로가 막히고 있다.
윤서네도 낙산해수욕 장으로 피서를 가게 되었다. 마침 아버지 회사에서 낙산해수욕장 근처에 사원 여름연수 캠프를 차렸다고 한다. 윤서 아버지는 이 연수 때문에 어차피 낙산으로 떠나야하고 가는 김에 가족을 데려가 민박하며 연수 겸 가족 피서를 겸하기로 했다고 한다. 윤서는 아버지의 설명을 듣고 날아갈 듯이 기뻐 어쩔 줄을 몰라 이 날은 하루 종일 마음이 들떠 공연히 이 방 저 방으로 왔다 갔다 하다가 밥상의 국그릇을 엎지르기도 했다. 그 뿐이 아니다. 친구들 집에 전화를 걸어 자랑하며 너희들은 어디로 바캉스를 가느냐? 우리 거기 가서 만나자는 둥 별별 얘기로 이야기꽃을 피워댔다.
*바캉스 - 주로 여름에, 피서나 휴양을 위해 떠나는 휴가
드디어 윤서네는 온 가족이 아버지가 모는 승용차로 영동고속도로에 들어섰다. 물론 피서지에서 쓸 물건과 캠코더, 카메라, 아이들 숙제, 가정상비약 등을 챙겨 넣고 윤서의 장난감 하늘 배도 헌 보루박스에 넣어 트렁크에 실었다.
강릉 주문진을 지나, 낙산 못 미쳐 남애 항에 이르러 차를 세웠다. 가족들은 가게 파라솔 밑에 앉아 음료수를 마시며 쉬고 있다. 그 때 윤서 아버지는 늘 동해안에 오기만 하면 단골로 다니는 횟집을 찾아갔다. 그리 크지 않은 어항 남애항 연안의 횟집이 줄지어 앉은 상가 중 경북횟집을 찾아 들었다. 마침 주인 신씨 아저씨가 윤서 아버지를 알아보곤 앞치마에 손을 문지르며 반갑게 맞이했다.
“어이구, 정사장님! 오래간 만입니다. 어서 오세요.”
“네, 안녕들 하셨습니까?”
그 때 안주인이 나오며 허리를 굽혀 또 인사한다.
“사모님도 오셨어요?”
“아이들도 다 왔어요. 당분간 또 신세지게 됐습니다.”
“아니, 별말씀을... 자 이리 앉으세요. 자, 어서...‘
“아, 아닙니다. 가족을 데리고 와야죠.”
“아, 참... 어디 계신지, 내가...”
“아니, 잠깐! 신 사장님... 이번에도 믿거라하고 미리 전화도 않고 왔습니다만, 저 요번에도 식구들 묵을 방을...”
주인 신씨는 너무도 마음씨가 좋아 이렇게 단골이 오면 민박영업도 아니면서 자기들 살림방을 아무 때나 내주고 그들 부부는 여름철이라 횟집 가게에서 자곤 했다. 그의 살림집은 재작년에 새로 지은 새집으로 보통 영업용 민박집보다 더 널찍하고 깨끗하여 일류 호텔 같은 분위기라고 여기서 묵었던 윤서 아버지가 자랑했었다. 이 댁과의 인연은 원래 아버지 동창 테크로마트 김만진 사장의 소개로 벌써 몇 년째 이렇게 단골로 거래하고 있는 횟집이다. 이부자리도 한 번도 덮은 흔적이 없이 깨끗하고 냉장고 안에는 음료수, 맥주, 과일이 알맞게 늘 신선하게 준비돼있고 주방 식기, 가스 등 어느 것 하나 콘도 못잖게 정비돼있었다.
가족을 데리고 온 윤서 아버지는 우선 인사소개부터 했다.
“얘들아! 인사드려라. 여기 이 어른이 우리가 묵을 호텔 사장님이시다.”
이 말을 들은 주인 신 씨가 웃으며 아이들 머리를 쓰다듬고는 꽃지를 보더니
“넌 이름이 뭐냐? 콩쥐처럼 예쁘구나”
하더니 널름 안았다가 내려놓았다.
“얘가 큰애 윤서고 요게 꽃지랍니다.”
윤서 어머니가 자기 인사 대신 아이들 소개를 했다.
“어이구, 정말 꽃같이 예쁜 공주로구나!”
꽃지가 그제야 ‘안녕하세요?’하고 인사했다.
“자, 어서 이리들 올라앉으세요. 오시느라 아직 요기도 못 하셨겠지?”
윤서네 가족은 동해안 어촌 인심이 이렇게 후하고 아름다운 줄을 미처 몰라 여기서 벌써 여름피서 반을 한 기분이다. 횟집 부인이 차려주는 각종 회와 매운탕 찌개로 점심요기를 끝낸 이들은 주인의 안내로 호텔 같은 안채로 들어갔다.
“우와- 엄마, 엄마! 정말 호텔 같네요”
“호텔? 허허... 그래 호텔같이 편안히 지내거라.”
신씨가 이렇게 말하며 나가다가 다시 들어오더니 냉장고 문을 열었다.
“사모님, 여기 어려워 말고 내 집같이 마음대로 꺼내 자시고 편히 쉬세요. 정 사장과는 벌써 아우 형님하며 몇 년째인데요. 우리 이 집짓기 전부터 동해안에 오시면 우리 집에서 주무셨답니다. 참 김사장님도 안녕하시죠? 어쩐 일인지 요즘은 통 연락도 없고 오신지 몇 달 되었는데...?
원조 단골 테크노마트의 김만진 사장을 말한다. 그는 거의 한 달에 한 번은 꼭 들리는 일급 단골인데, 요즘은 뜸하다면서 걱정을 했다.
그가 나가면서 열쇠를 윤서 어머니 손에 들려주고 나갔다. 아들 딸 모두 시집 장가 보내 살림을 내고 지금은 두 양주분이 이 큰집에서 사는데, 늘 장사 때문에 여름에는 거의 비어있다고 한다.
아침, 저녁식사는 경북횟집 가게로 나가 했다. 음식은 시키지 않아도 다 알아서 들여왔다. 자연산 우럭과 광어 회와 해삼 멍게를 들여왔고 그 밖에 별의 별 진미가 올려졌다. 나중에 매운탕으로 공기 밥이 들어왔으나 거의 숟갈도 대지 않고 물렸다.
윤서는 아무 것이나 가리지 않고 잘 먹는데 꽃지는 해삼 멍게는 아예 입에 대지도 않았다. 오빠 윤서는 일부러 물컹한 멍게를 초장에 듬뿍 찍어 꽃지 입 가까이 가져갔더니 꽃지가 기겁해 팔을 휘젓는 바람에 멍게가 땅 바닥에 나가 떨어졌다.
“민지야, 그 아까운 걸 왜 쳐내니?”
하고 어머니께 야단을 맞기도 했다. 저녁 식사를 끝낸 윤서네는 아버지의 승용차를 타고 낙산해수욕장 야경 구경을 갔다. 내일부터 아버지 회사의 연수 현장을 둘러보기 위해서다. 낙산 지역에 폭우로 피해도 많았다는데, 그런대로 잘 정비되어 있었다. 낙산 해변에는 전에 없이 조명 전주가 줄 맞춰 해안선을 따라 늘어선 게 대낮처럼 볼만했다. 낙산 비치호텔 옆 공터 백사장에 대형천막과 방갈로 같은 작은 야영천막이 늘어선 것이 볼만 했다.
*방갈로 - 산이나 바닷가 같은 곳에 지어 여름철에 캠프용, 피서용으로 쓰는 작은 집
마침 윤서 아버지의 회사는 찾기 좋게 대형 천막 위에는 회사 로고와 ‘일석이조’라는 회사 이름이 크게 박혀있어 찾기 어렵지 않았다.
*로고[logo] -‘보람’, ‘상징’이란 뜻으로 여기서는 회사 마크를 뜻함
아버지를 따라 천막 밑으로 들어서니 이미 여러 사원들이 수영복 차림으로 내일 연수개강을 위해 준비하고 있다가 윤서 아버지를 본 직원들이 달려와 인사를 했다.
“어이구, 부장님! 소식도 없이 이렇게 나타나시다니... 반갑습니다.”
“어떻게 된 건가? 가족은?”
“헤헤...우리야 뭐 늘 이렇게 홀아비 아닙니까? 부장님은.... 아, 사모님 안녕하세요? 저어, 같은 부의 김정기입니다.”
윤서 아버지가 다시 소개했다.
“이 분이 우리 부의 엘리트 김정기 과장, 이쪽은 만물박사 박 대리. 그리고 김대리.. 자, 그럼 수고들 하게... 저기 방갈로를 둘러보고 갈게. 내일 봐”
“아, 아닙니다. 저, 부장님! 잠깐만, 둘러보고 이리로 오십시오. 저, 준비해둔 게 있어서... 우리, 부장님 없으면... 헤헤 ... 있잖습니까? ... 꼭요. 네 네.. 다녀오세요. ”
호들갑을 떠는 눈치를 보고 척 알아 챈 정 부장은
“그래, 알았어. 자네도... 참, 끔찍이도... 그래 고마워. 둘러보고 올게”
윤서 아버지 정 부장이 방갈로를 둘러보고 나올 동안 윤서 어머니는 아이들 데리고 해변가로 나갔다. 철썩이는 바닷물에 발을 담그며 거닐고 있으려니 아버지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 아까 연수 본부로 향했다. 거기에는 이미 파라솔 밑에 자리를 준비하고 테이블에 언제 준비했는지 맥주와 소주, 음료수, 횟감들이 푸짐하게 늘어 놓여 있었다.
“저, 사모님! 여기 앉으세요. 자, 염려 말고 너희들도 어서 먹어 자, 여기 콜라, 사이다, 주스 아무거나 골라 마셔!”
김 대리가 사이다 캔을 까서 아이들에게 하나씩 안겼다. 동석한 회사원 넷은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며 맥주 캔을 제법 많이들 깠다.
나중에 합석한 안 씨라고 하는 젊은 사원이 마시고 난 빈 잔을 정 부장께 권하며 입을 열었다.
“저, 부장님! 아마도 이번 연수 기간에는 다음 주 열릴 홍길동 축제가 가장 볼만할 것 같습니다.”
이렇게 운을 떼곤 열심히 설명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 때 윤서의 귀가 번쩍 트인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의 설명으로는 어느 회사와 낙산해수욕장번영회가 공동주최하는 홍길동 축제는 여태 우리나라 해수욕장에서 관광개발용으로 벌이는 이벤트치고는 최고로 멋진 행사라는 것이다. 특히 이 행사에서는 홍길동 코미디, 팔도 홍길동 재주부리기, 각종 홍길동 쇼, 홍길동 가면무도회. 노래자랑 등을 벌이는데, 해수욕객을 상대로 한 행사로 누구나 출연할 수 있다고 했다.
이는 지난 장성 홍길동 축제 이후 붐이 일어난 틈을 타 상업적인 행사인 동시에 낙산 해수욕장 번영회에서 관광개발 효과를 위해 이 행사를 주최한 모양이다. KBS를 비롯 방송 3사가 참여하고 문화관광부에서 후원한다니 굉장한 행사인 것 같았다. 특히 이 번 행사에 대해 윤서의 귀가 솔깃하여 오늘 저녁 나들이를 참 잘 했다고 생각했다. 그는 속으로 쾌재를 지르며 여기에 홍길동 하늘 배를 갖고 출연할 계획을 세웠다.
*쾌재 : 일 따위가 마음먹은 대로 잘되어 만족스럽게 여김. 또는 그럴 때 내는 소리.
다음 날 아버지는 회사 사원 연수 때문에 회사 천막 강당으로 가셨고 윤서네 식구들은 파라솔을 하나 빌려 본부를 정하고 해수욕을 즐기고 있다. 엄마는 파라솔 밑에 커다란 타올을 깔고 누워서 전천후 국민교양서로 최근 베스트셀러로 떠오른 교양서‘(편달)’을 읽고, 윤서와 꽃지는 고무 튜브를 갖고 놀이를 하고 있다.
“얘들아! 깊은데... 알지?”
“네, 엄마! ” 아이들이 동시에 대답했다.
“꽃지야! 너 여기 올라타! 내가 밀어줄게.”
그 때 엄마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꽃지야! 조금 놀다 나와아- 햇볕에 너무 태우면 따가워어 ~”
“엄마아- 알았어~”
“밤에 따가워 울지 말고...조금 놀다 나와아 ~”
아이들은 물놀이에 정신 팔려 엄마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도 않았다.
오빠 윤서는 꽃지를 튜브에 태우고 밀며 해안가를 산책하듯 걸었다. 그 때 튜브를 타고 혼자서 손으로 물을 저으며 오는 다른 애의 튜브와 마주쳤다.
“어어?!”
둘이 동시에 소리 지르며 멈춰 섰다.
“너, 수옥이 아냐?”
“어어? 너 언제 왔어, 윤서!”
이들은 같은 반 남녀 친구들로 여기 낙산에 와서 뜻밖에 만나 반가워했다.
“나, 저기 파란 파라솔 밑에 우리 엄마...!”
윤서가 어머니 계신 데를 가리키자 수옥이 윤서 어머니와 눈이 마주치자 멀리서 고개를 숙여 보였다.
“넌 어디야? 언제 왔어?”
응, 우린 어제 왔어.“
“그래? 우리도 어제 왔지. 남애 항에 여장을 풀었어.”
“우린 저 낙산비치호텔 2층이야.”
“와아... 니네는 쎄게 논다아~!”
“아니야. 우리도 얻어 들었어. 우리가 뭐 부자라고 호텔에서 묵어?”
“그럼, 고모부나 이모부가 호텔 사장이라도 돼?”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우리 아빠가 호텔 사장하고 친구야. 그리구 우리 아빠 회사에서 호텔 수리 인테리어(실내 장식)를 해마다 하고 있어.”
*인테리어 - 실내를 장식하는 일. / 실내 장식용품. /‘실내 장식’.
“아하... 그래도 대단하다 야.”
그 때 윤서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꽃지는 벌써 어머니께로 달려갔고 윤서가 돌아보니 아빠가 와 계신 게 보였다.
“수옥아, 2층 몇 호실이라고?”
“그래 2층 2호, 202호실이야. 우리 또 봐, 그럼”
윤서 아빠는 회사 연수가 끝나 가족을 데리고 의상대와 낙산사를 둘러보기 위해 낙산비치호텔 뒤로 올라갔다. 소나무 우거진 동산에 둘러싸인 의상대에 올랐다. 그러나 요 몇 년 전에 낙산사 화제 때 산불이나 아깝게 그렇게 우거졌던 소나무들이 거의 불 타고 볼품이 없었다. 언제 다시 회복이 될는지 정말 안타까웠다. 대웅전과 그 외 사찰 건물은 지금 새로 지어 새맛은 나는데, 별로 예스런 맛은 없다.
발 아래로 멀리 동해가 시퍼렇게 다가왔다. 수평선너머까지 맑게 갠 시야에는 하얀 갈매기 떼가 어울려 노닐고 군데군데 고깃배가 한창 고기잡이 하는 게 보였다. 오른편으로 질펀한 파라솔이 펼쳐있어 해안 가 모래밭이며 얕은 물가에는 온 통 사람들이 개미떼처럼 바글거렸다.
아마 대한민국사람이 죄다 모인 듯했다. 그 많고 많은 사람 중에 그래도 아는 사람 수옥이를 만나다니... 윤서는 참 인연이란 것도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일부러 찾으려 해도 어려운데, 어쩌면 한 학교 같은 반 친구를 만나다니...
의상대에서 내려온 윤서네는 다시 아빠의 안내로 멀리 동해를 바라보고 선 큰 돌미륵을 둘러보았다. 아주 정교하게 조각한 게 멋있었다. 대웅전을 둘러본 이들은 저녁때가 되어 다시 낙산 해수욕장으로 내려와 백사장 길을 걸어 끝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밤이 되니 백사장을 비추는 조명등이 줄지어 선 게 정말 장관(볼만함)이었다.
때가 되어 다시 남애항 경북집에 도착해 저녁을 먹었다. 다른 때 같으면 아무 데서나 저녁식사를 할 수도 있지만 민박 방까지 신세를 지는데 다른 데 가서 팔아 줄 수 없어 삼식요기 중 점심을 빼고는 거의 남애항 경북집에 와서 들고있다.
다음날 또 아빠는 연수차 회사캠프로 가셨다. 연수라 해서 특별히 하는 것은 없으나 하루 한 시간씩 초청해 온 외부 강사의 강연을 듣는 것이 전부라고 한다. 이 강연도 오늘 만 하면 끝이라고 한다. 말이 연수지 사실은 회사원 여름휴가를 위한 합동 캠프를 차린 셈이다.
여름철 한창 붐빌 때에는 민박도 얻기 어려운 때라 연수 겸 회사 사원들을 위해 일부러 차린, 말하자면 가족들을 위한 캠프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한다. 어제는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명예 교수 이석호 박사의‘우리고전 강의’를 들었고, 오늘은 이곳 인구리 출신 정병탁 교장 선생님을 강사로 모시고 회사원 자녀들을 위한 주제로‘가정교육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이라는 강의를 끝으로 회사 연수는 끝난다. 다음 날부터는 윤서가 해방되는 날이다. 여태 아버지께서 매여 있어서 윤서가 활동하기 어려웠는데, 정작 윤서가 해방되는 날은 내일부터다.
다음 날 윤서는 아버지를 졸라 설악산으로 갔다. 언젠가 설악산을 다녀온 적은 있으나 너무 어려서 기억이 삼삼할 뿐이어서 요번에는 일부러 졸라서 설악산 관광을 가기로 했다. 윤서가 기억나는 권금성 케이블카를 타려고 어제 밤 꿈에 하늘 높이 올라가는 꿈을 꾸었다고 아침 꿈 얘기까지 꺼낸 윤서였다.
“엄마, 나 어제 밤 꿈에 케이불 카를 타고 하늘 높이 올라가는 꿈을 꾸었어요.”
“으응, 우리 윤서 키 크겠네. 높이 올라가는 꿈은 키가 크는 꿈이래...”
어머니의 꿈 해몽을 듣고 윤서는 빙그레 웃었다. 그 때 꽃지가 소리 질렀다.
“아, 어머! 저, 하늘로 올라가네. 저, 저 게 뭐지?”
“응, 바로 저거야. 어제 밤 오빠가 꾸었다는 케이블카!”
케이블카 승차표를 사려고 뱀 꼬리처럼 늘어선 게 언제 차례가 될지 아직 멀었다. 그 때 윤서 어머니는 자기가 줄을 서 기다리는 동안 아빠더러 아이들 데리고 신흥사를 둘러보고 오라고 했다. 윤서 어머니는 벌써 설악산 권금성 케이블카를 여러 번 탄 경험이 있고 신흥사에도 몇 번 다녀왔기 때문에 가족을 위해 이렇게 자청하고 서있다.
윤서와 꽃지는 보는 것마다 새롭고 신기했다. 이들이 신흥사를 둘러보고 나오니 어머니는 때맞춰 표를 사 갖고 곧 들어갈 차례라고 알려왔다. 그들이 줄지어 들어가자 금방 케이블카에 탈 수 있었다. 마침 케이블카 안의 벽에는 처음 보는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뭐? 홍길동 축제?”
윤서의 눈이 번쩍 띄었다. 낙산 해수욕장에서 못 보던 포스터가 여기 와서 낯선 케이블카에 붙어있다니...
윤서네가 집에 돌아오다 골목길 입구에서도 ‘낙산 홍길동 한마당 축제’ 포스터를 늦게 발견하고부터 다음날 여기저기에도 포스터가 붙은 것을 많이 보았다.
드디어 내일 축제가 개막된다. 뒤늦게 오늘 윤서는 대회 본부에 축제 출연 신청을 했다.
(61)홍길동 축제에 초청받은 헤리포더
그와 동시에 율도국에서는 벌써 전에 홍길동축제 소식을 알고 있어 홍길동은 런던의 헤리포더의 TV에 낙산 홍길동축제에 구경 오라고 영어 편지를 띄웠다. 이 기회에 한국 구경도 할 겸 오라는 편지다. 저녁 교양 방송을 시청하던 헤리포더가 이상한 자막이 흐르는 것을 보고 자세히 읽어보니 코리아의 홍길동이 보낸 편지임을 알고 반가워 했다.
‘뭐? 낙산 해수욕장에서 홍길동 축제가 열린다고? 축제 구경 겸 한국의 홍길동을 만난다? 으음...’
헤리포더는 한참 생각에 잠겼다. 그나저나 한국이 여기서 어딘데, 그 먼 한국에서 어떻게 갑자기 방송중인 TV에 편지를 써넣을 수 있었을까?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참 홍길동의 재주가 놀랍구나.
축제 이름이 홍길동한마당축제이므로 윤서는 우선 하늘 배를 내놓고 이미 씌어있는 배이름 ‘샛별호’를 고쳐 쓰기로 했다. 문구점에서 칼라시트를 사다가 ‘홍길동호’ 라고 하얀 글씨를 써서 오렸다. 이미 붙은 샛별호의 글씨 위에는 파란색 칼라시트를 덮어 붙여 없애고 그 위에 하얀 ‘홍길동호’를 붙이니 아주 산뜻하고 시원해 보였다. 오늘 오후 해수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대회본부에 들러 대강의 설명을 들었다. 윤서는 그 날 밤 또 하늘을 나는 꿈을 꾸었다.
드디어 오늘은 홍길동 축제가 열리는 날이다. 하늘은 맑고 깨끗했다. 8월의 푸른 하늘 저 멀리서 하얀 파도가 밀려오고 하얀 갈매기는 음악에 맞춰 너울너울 춤을 추고 있다. 울긋불긋 늘어선 파라솔 무늬따라 다 함께 부르는 김정구의 ‘바다의 교향시’ 노래 가락이 울려퍼지고 있다.
어서 가자 가자
바다로 가자
출렁 출렁 물결 치는
십리 포구 바닷가
안타까운 젊은 날의
로맨스를 찾아서
어서 어서 어서 가자 어서 가
젊은 피가 출렁대는
바다가 부른다
저 바다는 부른다 ~~
윤서는 이미 약속한 수옥이를 데리고 대회장으로 나갔다. 장난감같은 짚신 하늘 배 홍길동호를 안고...
“근데 수옥아! 오늘 각자 자기들 재주껏 만든 홍길동 작품들을 출품하는 모양인데 말이야. 우리 배를 어디다 놓고 띄우지?”
“아무 데나 백사장에 놓고 띄우면 어때?”
“에이... 사람들이 몰려들어 일 할 수 있어야지, 어디 아파트처럼 옥상에서 배를 띄워 타고 나타났으면 좋을 텐데...”
이 말을 들은 수옥이 새까만 눈동자를 반짝이더니 생글생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응, 이러면 어떨까? 저 우리 호텔 옥상 말이야, 저기서 타고 날아오면 어때?”
“ 참! 안성맞춤이지, 그러나...”
“괜찮아, 그 건 내가 책임질게. 너, 여기 있어. 내가 곧 갔다 올 게.”
이 말을 마치자 금방 달려가는 수옥이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섰던 윤서는 버릇대로 눈을 감고 재빨리 기도문을 읊조렸다. ‘오, 주여! 뜻대로 이루어 주소서. 아멘.’
드디어 홍길동 축제의 팡파레가 울렸다. 홍길동 축제 마당에는 수영복차림, 비치웨어 차림, 아슬아슬한 비키니 차림 등 가지각색의 모자와 패션을 자랑하며 관중이 꽉꽉 미여지게 몰려 북새통을 이루고 대회 본부 뒤 솔밭에서도 출연 팀들이 목소리를 가다듬는 아마추어 가수도 있고, 무용수의 손놀림 연습을 하는 곳도 있고, 홍길동 가면을 쓰고 탈춤연습 등 코스튬플레이처럼 야단법석을 떨고 있다.
*코스튬플레이 : 배우에게 시대에 맞는 의상을 입혀 볼거리를 제공하는 연극이나 영화(costume)
그 때 뒤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듯해 혹시 수옥이 아닌가하며 윤서가 고개를 돌리니 때맞춰 수옥이 호텔 베란다에서 타올을 흔드는 게 보였다.
“아빠! 됐어요. 가요 저 호텔 옥상으로... 마침 뜻대로 되는가 봐요.”
“으음...언제?”
윤서 아빠는 아이들한테 자세한 내용을 보고 받지 않아 어리둥절해 하며 하늘배 상자를 안고 따라가고 있다.
“저, 아빠! 수옥이네가 호텔에 묵고 있거든요. 수옥이 옥상을 사용할 수 있나 알아보러 갔어요. 마침 잘 됐나 봐요.”
“음, 안성맞춤이구나. 사람들이 몰려들지도 않고...”
이들이 호텔 입구에 이르자 수옥이 마중을 나왔다.
“안녕하세요? 윤서와 같은 반 친구예요.”
“오... 네가 수옥이냐? 응 그래 부모님도 같이 오셨겠지?”
“네, 오늘 홍길동 축제 무대를 우리 아빠네 회사에서 설치했대요.”
“아하, 그래? 아빠가‘대한디자인센터’에 다니시는구나?”
“네, 맞아요. 어떻게 잘 아세요?”
“음,‘대한디자인센터’라면 일류기업이지. 암...”
이들이 호텔 옥상으로 올라가니 벌써 대회 본부 확성기에서 마이크 시험 방송과 음악이 흘러나왔다. 옥상에서도 또렷하게 잘 들려 다행이었다.
윤서는 프로그램을 펼쳐들고 순서를 죽 내리 훑었다. 1번 홍길동 가면 춤, 2번 홍길동과 춘향이. 뭐? 춘향이? 홍길동이 장가가나? 흥, 별의 별 프로도 다 있군. 3번 홍길동 구름 타기? 으음, 여기 나하고 적수가 되겠네? 뭐? 구름 타고 날아간다고? 정말? 윤서는 슬그머니 호기심도 나고 은근히 떨리기도 했다. 혹시 나보다 한 수 위가 아닐까 하고... 4번... 5번... 6번 홍길동 타령? 뭐? 노래가 나와? 각설이 타령인가? 어어? 이건 또, 홍길동이 씨름을 해? 허허... 재미있겠군.
대회 주최 측에서는 여러 가지 프로를 섞어 코미디를 하다가 노래자랑을 하고 장기 자랑이 한두 개 끝나면 무용이 나오고 이렇게 다양하게 꾸몄다고 한다. 17번 팔도 홍길동, 19번 홍길동 인형 춤, 20번 여자 홍길동? 여자가 홍길동으로 나와? 음, 그럴 수도 있지, 22번 하늘 배 홍길동호. 아, 내 차례다. 아, 가슴 벅차구나. 홍길동호가 하늘을 날아 관중들 머리 위를 빙빙 돌다가 무대 위에 사뿐 내려앉으면... 아, 상상 만해도... 아, 멋지다. 틀림없는 1등, 최우수상이다. 아니 대상이다. 대상 감! 암!.. 윤서는 이렇게 저 혼자 김칫국부터 마시고 취해 있다가 수옥이 팔꿈치로 툭 치자 정신이 번쩍 났다.
“얘는 멍하니 서서 뭘 해? 어서 배를 내려 놓고 기합을 넣어야지?”
수옥이도 이미 하늘 배를 타 본 적이 있어, 배가 둔갑술로 커져야 한다는 걸 알고 있어 하는 소리다.
윤서가 안고있던 짚신배를 옥상 바닥에 내려 놓자 곧 바로 커다란 배로 확대되었다. 윤서 아빠를 비롯 수옥이까지 놀라워 했다.
윤서네가 모든 준비가 되자 때마침 대회 본부에서 개회 준비를 알리는 방송이 나오고 출연자들을 점검하는 모양이다.. 윤서 아빠도 이를 보고 안심한 듯 고개를 끄덕이었다.
“아빠! 이따가 우리 차례가 되면 모자를 흔드세요? 아시겠지요? 여기서도 들리겠지만.”
“그래, 준비 다 됐냐?”
윤서 아빠도 길동의 도움으로 배가 날아간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어 안심한 듯 내려가면서도 또 돌아보았다.
“하여간 잘 해라. 나 먼저 내려가 기다릴 게”
“네, 아빠! 걱정 마세요. 아빠, 시나브로!”윤성이 파이팅을 선창했다. 그러자 윤서 아빠가
“분발!”하고 되받았다.
*시나브로, 분발! - 파이팅 대신 새로 개발한 격려구호(시나브로: 점점, 향상. 발전의 뜻./ 분발: 힘을 내다.)
시나브로 하고 선창하면 후창으로 다 같이 분발로 화답한다.
윤서 아빠가 V자 손가락을 세워 보이며 내려갔다.
하늘은 티없이 맑고 짙푸른 바다는 연신 하얀 물거품을 밀고 왔다. 백사장엔 줄맞춰 늘어선 가지각색 파라솔이 오늘의 축제를 위해 한껏 아름답게 수를 놓고 있다. 대회 본부 마이크에서 경쾌한‘희망의 바다로’ 노래 가 끝나자 젊은이 들이 좋아하는 경쾌한 소녀시대 인기곡 ‘더 보이스’(The Boys )가 끝나자 연이어 ‘Oh! Oh! Oh! 오빠를 사랑해!’가락이 흘러나왔다.
곧 개회식이 열릴 모양인지 내빈들 차가 속속 도착하고 정장을 한 높은 분들이 무대로 안내되어 올라가는 게 보였다. 낙산 해변 주변은 온통 행상들이 몰려들어 때를 놓칠세라 손님들을 불러 모으느라 아우성이고 주변의 바람벽이며 전주에는 온통 상업 선전 현수막이 빨래를 널어놓은 듯 어지러이 펄럭이고 있다.
좀 있으니 사회자의 시작 방송이 들렸다. 각 방송사의 카메라 팀이 분주히 움직였다. 카메라 한 대에 딸린 기술진이 꽤 많았다. 우리 국내 보도진들뿐이 아니라 외국특파원, 특히 이 중에는 한국의 율도국과 비행접시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한 첩보원(간첩)들도 특파원을 가장해 끼어들어 있다.
*특파원 - 외국에 파견되어 있는 언론사 기자.
이는 틀림없는 윤서를 미행하던 팀일 것이다.
“자, 오랫동안 기다리셨습니다. 에 지금부터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우상인 홍길동 축제를 시작하겠습니다.”라고 선언하자 팡파르가 울려 퍼졌다.
*우상 : 신처럼 숭배의 대상이 되는 물건이나 신불(神佛)따위. / 아이돌(idol)
*팡파르 [fanfare] : 트럼펫이나 호른 계통의 금관 악기 합주에 의하여 축전, 의식, 사냥, 제례 등에 사용되는 소품곡
팡파르가 멈추자 사회자의 안내에 따라 다음, 애국가 순서가 되어 해군 군악대의 애국가 밴드가 울리자 모든 관중이 일제히 합창으로 불러 젖혔다.
이어서 낙산 해수욕장 번영회장의 개회 선언, 강원도지사의 격려사 대독, 그 외 내빈 축사 등이 간단히 끝나고 내빈들도 단 아래 지정석으로 내려가 앉았다. 금방 본 행사가 시작되어 첫 번째 등장 프로로 1번 ‘홍길동 가면 춤’순서가 되어 남녀 혼성 홍길동 가면을 쓴 배우들이 나와 갖가지 춤사위를 펼쳤다. 박수갈채를 받으며 내려가기 바쁘게 공백 없이 다음 순서로 ‘홍길동과 춘향’이 등장하여 홍길동 도령과 춘향이 서로 희롱하는 대목을 우스개로 전개했다. 홍길동이 춘향의 입 가까이 입을 삐죽 내밀곤 뽀뽀를 하려하자 춘향이 거절하며 눈감고 뽀뽀하라고 하자 홍길동이 눈을 감고 주둥이를 내밀자 춘향이 얼른 조약돌을 꺼내들곤 입 가까이 갖다대니 홍길동은 그런 줄도 모르고 입을 맞추며 너무너무 기분이 좋아 양팔을 벌려 춘향을 끌어안고 눈을 떠보니 조약돌이라 깜짝 놀라는 대목에서 요란한 박수갈채가 쏟아져 나왔다.
이렇게 노래와 장기 자랑을 하는 막간에 심사위원 소개가 있었고 공백 없이 그 많은 프로를 소화하면서 재미있게 전개해 나갔다.
이 축제 목적 자체가 낙산 해수욕장 선전과 애초부터 시상품 지원회사의 상업성을 띠고 나왔기 때문에 간간이 선전 효과도 노리고 주변의 치장 역시 광고효과를 많이 살려 꾸몄다.
다음 순서는 장성 홍길동 축제 때 벌어졌던 제목과 같은‘8도 홍길동 겨루기’ 이다. 사회자의 안내 방송이 나왔다.
“다음 순서는 서울 목동에서 온 박진영 소년의 ‘팔도 홍길동 겨루기’를 선 보이겠습니다.” 이 프로에서는 8도 홍길동을 세워놓고 어느 쪽이 진짜 홍길동이냐를 가리는 프로이다. 꼭 장성 축제 때의 재탕 같았다.
관중들도 그 때를 연상하며 꽤 호기심이 돋는다는 듯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출연자는 어린 중학생인데 제법 솜씨 있게 8명의 소년 홍길동 친구들을 데리고 무대로 나와 줄지어 섰다. 잠시 후 음악이 나오자 이들 8명의 홍길동은 곡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춤 솜씨가 너무 멋져 모든 관람객이 얼이 빠져 있다.
관람객은 물론 주최측이나 심사위원들도 정신을 가다듬고 다음 동작을 주시하고 있다. 연출자 박진영군이 그 때 얍! 하고 기합을 넣자 음악과 춤 동작이 딱 멈추고 어디서 하얀 애완견 한 마리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올라오더니 시키지도 않았는데 8명의 홍길동의 앞뒤로 다니며 코로 냄새를 쿵 쿵 맡으며 돌고 있다. 모든 관중들이 긴장해 숨을 죽이고 개의 행동에 붙박여 눈도 개와 함께 따라 움직이고 있다. 숨소리조차 죽고 귀에는 철석거리는 파도 소리만 솨아- 솨아- 하고 들릴 뿐이다. 바로 그 때 이 강아지는 어느 한 홍길동 앞에 이르러 그 홍길동의 왼쪽 다리를 꽉 물어뜯었다. 그와 동시 아악! 하며 소리지르는 홍길동!
아! 이럴 수가!
그 순간 나머지 7명의 홍길동은 모두 짚 인형으로 피식 피식 쓰러지고 있으니...!
그 때 이 순간을 놓칠세라 방송국 TV카메라가 놓치지 않고 장면, 장면을 찍고 관중들 새에서도 캠코더를 돌려 쌓고 카메라맨은 카메라맨대로 분주히 셔터를 눌러댔다. 그 뿐이 아니다. 특히 외국특파원들은 무대 위에까지 올라가 멀찍이 엎드려 촬영하느라 예의도 잃고 흡사 전쟁을 치르는 모습이다.
그 때 쓰러진 홍길동은 피를 흘리며 무대를 절뚝거리며 한 바퀴 돌더니 중앙으로 나와 인사를 하고 고개를 드는데
아, 이럴 수가!
아까 까지 이를 연출하던 출연자, 정작 이 프로그램을 신청한 그 임자, 박진영 소년이 아닌가? 그가 앞으로 나서며 홍길동 모자를 벗고 싱글싱글 웃고 있다. 그 때까지 왼편 다리에서는 가짜 물감 피가 흐르고 있다.
우와- 기가 막히다. 그새 강아지도 어디로 사라지고 짚은 짚대로 홍길동허수아비로 누워있다. 장내에는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가 계속 울리고 있다.
여기서 특별히 관심을 갖고 살피는 두 편이 있다. 한편은 이 장면을 끝까지 관심 있게 관람한 윤서 아버지이고, 또 다른 쪽은 마술로 끝나 실망 한 외국특파원이었다. 윤서 아버지는 혹시 우리 윤서보다 한수 위로 대상 감이 아닐까해서이고, 외국특파원들은 여기서 진짜 홍길동의 비밀을 밝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했는데, 꼬마마술사의 쇼로 끝나, 하나의 이벤트(잔치)였다는데서 실망했던 것이다.
이번 인기를 끈‘8도 홍길동 겨루기’소동은 우리나라의 인기 있는 젊은 마술사 이은결의 제자의 작품으로 밝혀졌다. 이은결은 어린이들의 우상으로 앞으로 국제적으로 촉망받는 젊은 마술사이다. 특히 무대 위의 앵무새가 순식간에 사람으로 변하는 등 고난도의 마술로 2006년 수웨덴 국제마술대회에서 1등을 하기도 하고, 미국마술협회 3관왕을 차지하는 등 외국무대에서도 실력을 공인 받고 있다. 현재 이은결 마술사의 문하(제자)에는 오늘 출연한 박진영 소년 마술사를 비롯 많은 꼬마 마술사들이 몰려들어 공부를 하고 있다고 한다.
*문하(門下) - 가르침을 받는 스승의 아래 / 문하생: 제자
이은결 마술사 주변에는 때아닌 장터를 이루어 한창 마술에 흥미를 가지고 있는 어린이 예비마술사들이 모여들어 싸인을 받느라 야단들이었다.
이번 8도 홍길동 소동에서 외국특파원들은 마술쇼라는 사실에 실망했지만 오늘의 홍길동 이벤트치고는 보기 드문 성공 케이스였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다음 프로가 아직 남았기 때문에 외국 특파원 겸 스파이(간첩)들은 아직 자리를 뜨지 않고 기대하며 주시하고 있다.
순서에 따라 21번 홍길동 타령이 끝나고 이어서 사회자는 22번 정윤서의 ‘하늘 배 홍길동 호’가 출연하겠습니다. 고 안내하자 모든 관중들이 박수를 치며 어디서 출연하는지 무대 뒤의 출입문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다. 그 때 윤서 아버지 정부장도 잊지 않고 빨강 운동모를 벗어 흔들었다. 윤서 어머니도 때를 놓칠세라 캠코더를 들이대고 이제나저제나 하늘배가 호텔 옥상에서 떠오르기를 기다리고 있고, 윤서 동생 꽃지도 엄마 옷자락을 잡고 올려다보고 있다.
윤서는 모든 걸 홍길동이 알아서 도와주리라 믿고 의심 없이 준비를 끝내고 수옥이를 배안에 앉혔다. 오늘 따라 화사한 날 착 달라붙은 파란수영복에 하얀 물결무늬의 수영복을 입은 늘씬한 수옥을 바라본 윤서의 눈은 새로운 수옥이를 발견한 양 눈을 크게 뜨고 그녀를 바라보느라 얼이 빠져있다.
말총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수옥의 미끈한 몸매를 훔쳐본 윤서는‘아, 멋지구나!’ 하고 속으로 감탄하고 있다. 짙푸른 남색 바탕에 새하얀 물결무늬가 수놓인 수영복 입은 늘씬한 몸매의 수옥이 짙은 갈 색 썬글라스까지 낀 자태가 ‘너무너무 예쁘구나!’ 이렇게 생각한 윤서는 이상한 사춘기적 충동을 느꼈다. 여자아이들은 본래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남자 아이들보다 더 성숙하는 법이다. 본래 예쁜 수옥이 수영복 입은 몸매에다 물고기 마냥 미끈하게 뻗은 다리와 허리곡선이 유선형으로 죽 뻗어있었다.
*유선형 - 물이나 공기의 저항을 덜 받게 하기 위하여 앞부분을 곡선으로 한 미끈한 모양.
탄력 있게 야트막하니 도톰한 젖가슴은 수영복이 몸에 착 달라붙어 사춘기로 접어든 윤서의 눈을 더욱 황홀하게 유혹하고 있다.
*사춘기 - 육체적·정신적으로 성인이 되는 시기./ 이성에 눈 뜰 시기
*유혹 - 꾀어서 반하게 하다.
그 때 사회자의 안내 방송이 또 나왔다.
‘곧 홍길동호가 출연하겠습니다!’
방송 소리에 놀라 고개를 든 윤서가 가까스로 정신을 가다듬고 수옥이에게 쏠린 눈길을 거두고 십자 리모컨 키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배가 서서히 떠서 앞으로 진행 중이다. 선장 윤서가 앞을 바라보니 커다란 눈깔사탕 같은 애드벌룬이 세로로 ‘축 낙산 홍길동 한마당 축제’ 또는‘동해 제일 낙산해수욕장개장!’ 등의 문구 걸개 현수막을 달고 여기저기에 둥 둥 떠있고, 삼성전자에서 띄운 갤럭시 스마트폰 형 비행선과 현대자동차의 자동차 모양의 비행선이 무대를 중심으로 빙빙 돌고 있다. 이것들은 상업 선전용으로 전자리모컨의 원격조정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원격조정- 멀리 떨어진 곳에서 수동 또는 자동으로 신호를 보내어 움직이는 일.
드디어 윤서네 하늘 배가 어김없이 둥둥 떠 호텔 옥상을 떠났다. 윤서는 차츰 고도를 높혔다. 저 멀리 아래로 사람들의 모습이 개미떼처럼 보였다.
어떤 사람들은 하늘 배라는 소리에 고개를 젖히고 하늘을 바라보았으나 아까부터 돌고 있는 선전용 비행선과 갈매기만이 날아다니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자 설마 하늘에서 나타나랴, 하고 무대로 다시 눈을 돌렸다. 그 때 부르르응 하는 소리가 나자 모두 하늘을 쳐다보니 비행기가 떠 지나갔다. 또 사람들은 아무 것도 아니란 듯 무대로 눈을 돌렸다. 아무리 기다려도 소식이 없자, 사회자도 이상하다며 계속 ‘정윤서의 하늘 배! 하늘 배 홍길동호! 어서 출연하세요,‘ 하고 연거푸 불러댔다. 그러면서 장내는 계속 웅성거렸다. 바로 그 때 어떤 사람이
“아! 저기 온다!”
하고 소리 지르자 모든 사람이 고개를 들고 그가 가리키는 호텔 쪽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무늬도 화려하고 스마트한 요트 같은 화려한 ‘홍길동호’가 배 꽁무니에는 스크루 대신 오색테이프가 바람에 포르르 나부끼고 엷은 흰색 뭉게구름과 함께 하늘로부터 소리도 없이 아이 둘을 태우고 나타나자 사람들은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다.
*스크루 - (1) 배 꽁무니의 바람개비 같은 날개 / (2)회전축 끝에 나선면을 이룬 금속 날개가 달려 있어서 회전을 하면 밀어내는 힘이 생기는 장치.
선장 윤서는 운항키를 잡고 배 앞머리에 앉았고 늘씬한 몸매의 수옥은 한쪽손으로 황포돛대를 잡아 버티고 서서 미소를 날리며 또 한손을 들어 흔들고 있다. 배 꽁무니의 오색테이프는 살아서 움직이듯 바람결에 나부끼고, 배 밑을 떠 받치는 흰구름은 하얀 파도처럼 넘실대고...
앗! 저건 홍길동 호라고 씌어있긴 한데, 빗자루처럼 꼬리를 달고 떠 오네? 어떤 사람은 하늘 배를 보더니 헤리포더의 배인가?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중에 정작 영국에서 날아온 헤리포더는 관중석에 섞여 앉아 속으로 웃음을 참고 있다. 주변에는 혼혈 외국인을 비롯해 최근엔 서양사람, 동남아 사람까지 외국인이 많아 누구 하나 여기 영국의 헤리포더가 베이지색 반바지에 하늘색 T셔츠를 입고 검정 동그란 안경알 속으로 눈알을 굴리며 왼쪽 소나무 쪽 가에 앉아 있어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없다.
그와 동시에 각 보도진들의 카메라와 방송국의 TV카메라가 윤서의 하늘 배를 촬영하느라 분주히 취재 경쟁을 벌이고 있다.
배는 서서히 고도를 낮춰 축제 마당 관중석 상공을 한 바퀴 돌고 있다. 관중석에는 순 수영복차림인 사람, 비치웨어 차림에 차양 모를 쓴 사람 등 울긋불긋 꽃밭 같다. 윤서와 수옥이는 이들 관중석 머리 위를 빙빙 돌며 미소를 머금고 신데렐라나 된 듯 손을 흔들고 있다. 두 번째 또 한 바퀴 돈 홍길동호는 무대 중앙 통로 바로 위를 지나가며 전단지 한 묶음을 뿌렸다. 난 데 없는 삐라를 줍느라고 잠시 어수선했다. 삐라를 주워든 어느 심사원은 어! 하고 놀라고 있다.
거기에는 ‘활빈당 홍길동!’ 이라고 씌어있었기 때문이다. 어어? 정말 홍길동?!
물론 그렇게 믿고 놀란 것은 아니지만 ‘홍길동호’가 참 멋지다는 찬사의 놀람이다. 그때 전단지를 뿌린 하늘 배는 동해 바다를 향해 날아가다가 되돌아 무대를 향해 날아들고 있다. 선장 윤서는 만장의 관중을 내려다보며 손을 흔들고, 산뜻한 수영복에 썬그라스까지 낀 예쁜 수옥은 풀어 헤친 머릿결을 바람에 날리며 미끈한 몸매를 한껏 뽐내며 미소를 날리고 있다. 이들은 무대 중앙을 지나 관중석을 천천히 한반퀴 돌고 다시 바다를 향해 날아가고 있다. 만장의 박수갈채가 울리고 있다.
이 때
“어어? 어디 갔지?”
갑자기 모든 사람이 지른 소리다.
그런데 하늘 배가 금세 무대 중앙을 지나 바다쪽으로 날아가다가 갑자기 모든 사람의 시야에서 사라지고 말았으니...
어어? 정말? ...갑자기 없어졌네! 동해 바다 쪽엔 하늘 배를 떠 받쳤던 뭉게구름만이 꼬리를 끌며 흩날리더니 그것 마저 흩어져 사라지고 말았으니...
이 땐 영국의 진짜 헤리포더도 눈을 닦고 찾아보아도 눈앞에서 갑자기 사라져 제법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물론 헤리포더의 마법으로도 투명술은 가능하기 때문에 그다지 신기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라진 하늘 배는 어디로 갔을까? 호텔쪽 하늘에도 없고, 모든 사람들이 고개를 젖히고 바다 쪽 멀리까지 내다보고 있다. 그러나 배는 영영 자취를 감추고 보이지 않았다. 배를 떠 받치던 뭉게구름도 흩어져 다 없어지고.
수평선 너머로 사라졌나? 사람들과 보도진들도 다 이렇게 놀라 하늘을 샅샅이 살펴도 애드벌룬 및 비행선만 보였지 하늘 어디에도 하늘 배는 보이지 않았다.
27.홍길동호 대상
선장 윤서와 수옥이는 하늘 배를 몰아 다시 호텔 옥상에 사뿐 내려앉았다. 율도국에 앉아서 이 모든 광경을 살펴보던 정작 홍길동은 스스로 만족한 기분으로 윤서가 타고 내린 커다란 짚신배를 처음대로 작은 장난감 배로 축소시켰다. 윤서는 짚신배를 보루 상자에 넣어 수옥이에게 맡기며 서울 갈 때 실어다 주기로 약속하고 옥상을 내려왔다.
아, 멋지다. 오늘의 경연대회는 참 멋진 공연이다. 둘은 기분 좋게 손을 잡고 지금 축제장으로 달리고 있다. 거기서 아빠를 만난 둘은 너무 멋진 장면에 사람들과 심사원들까지 깜짝 놀랐다는 말을 듣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 때 아빠가 이렇게 물었다.
“얘, 그런데 무대 앞으로 돌다가 빠라까지 뿌리는 걸 보았는데, 그러고 나서 다시 바다쪽으로 날아가다가 갑자기 어디로 내뺐니? 도무지 안보여서 나도 찾다 찾다 못 찾았다. ”
“그래요? 안보이다니.. 우린 다 보았는데요. 사람들도, 엄마가 캠코더를 찍는 것도, 꽃지가 손 흔드는 것도 봤었는데요?”
“아니, 느네야 다 보았겠지, 그 후 너의 하늘배가 호텔로 가는 게 안보였단 말이야.”
“그래요? 안보였어요? 어어?”
윤서는 짐작했다. 이건 필시 홍길동이 깜짝쇼를 벌여 여기서 심사원들의 점수를 올리기 위한 투명둔갑술로 도와 주었구나 하고 짐작은 했다. 홍길동이 아니고서야 그런 재주를 부릴 사람이 없음을 안다.
그 때 어머니와 꽃지가 다가 왔다.
“안녕하세요?”
“어! 너 수옥이, 아까 나도 봤어. 참 멋지더라. 얘!”
“오빠 언니, 너무 멋있었어. 하늘 배도.”
그 때 마지막을 알리는 사회자의 안내 방송이 나왔다.
마지막 프로로 만장에 모이신 여러분들을 위해 특별 출연으로 유명한 국민가수 조용필 선생을 소개합니다.
가왕 조용필이 특별히 출연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지고 이어서 바다와 어울리는 노래 ‘돌아와요 부산항’1절이 끝나자 모든 관중이 2절을 합창으로 따라 부르고 있다. 그리고 심사원들의 결과 집계를 위한 공간에 또 틀별초청 인사로 이은결 마술사가 등장하자 또 한번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으며 무대에 올랐다. 그는 사회자의 설명을 하지않아도 이미 다 알고 있다면서 곧바로 마술시범을 펼쳤다. 양복 윗주머니에서 파란 손수건을 꺼내더니 양손으로 비비곤 손수건을 펼쳤더니 하얀 갈매기가 나와 공중으로 날아갔고, 또 손수건을 비비자 갈매기가 또 날아갔고, 또 비비자 세 번째 갈매기가 날아갔고, 또 손수건을 비비자 팔딱팔딱 뛰는 고등어가 나와 앞에 앉은 소년에게 건네주고, 또 손수건을 비비자 불가사리가 나오자 옆에 앉은 중학생에게 던져 주었더니 한참 들고 진짠가 가짠가 하고 살피곤 뒤엣 사람에게 넘기면, 만져보고 또 뒤엣 사람에게 넘기면서 돌리고 있다. 이윽고 이은결 마술사의 해양생물 마술시범이 끝나고 단 아래로 내려가자 사회자의 심사결과 발표 안내 방송이 울렸다.
“에, 여러분. 오랫동안 진지한 가운데 홍길동 경연대회가 성황리에 무사히 마치게 되어 감사드리고, 이어서 오늘의 심사결과를 발표하겠습니다. 에, 인기상에 멀리 강화에서 출연한 ‘홍길동 만담’을 갖고 나온 김보람 양! ”
서울 압구정동에서 메이크업 전문업에 종사한다는 메이크업 전문가답게 머리와 몸단장이 특이한 김보람 양이 올라가 트로피와 꽃다발, 그리고 푸짐한 상품을 한 아름 안고 만장의 박수를 받으며 내려갔다.
“다음은 기술상에 칸트벽시계 기술부의 김규식 대리!”
김대리는 모터를 장착한 홍길동 인형 셋을 등장시켜 자동으로 춤을 추게 한 기술상이다. 춤추는 로봇에 홍길동 의상을 입혀 출연한 아이디어 상인 셈이다.
이렇게 인기상, 기술상, 장려상, 동상, 은상까지 수여하고 다음은 금상과 대상이 남았다. 장내의 모든 시선이 집중하고 TV 카메라의 스포트라이트가 어느 때 보다 더 환하다.
*스포트라이트 - 특정한 인물만을 특별히 밝게 비추는 조명 방식. / ‘각광’, /‘주시’
“다음은 금상을 발표해드리겠습니다.”
윤서와 소년마술사 박진영군은 여태 동상 은상까지는 기대도 하지 않았으니 금상 아니면 대상에 해당되리라고 점 치고 조마조마하니 기다리고 있다.
“여러분이 고대하고 기다리던 금상에!”
사회자는 이렇게 뜸을 드리고는 장내를 두리번거리며 숨을 멈추자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와 한바탕 웃고 나서, 어서 발표하라는 독촉으로 다 같이 박수를 쳐댔다.
“자, 다시 금상에.... ” 하곤 또 멈추자 또 한바탕 웃어댔다.
“요번에는, 진짜 금상에...” 하더니 사회자가 먼저 웃음을 터뜨리는 바람에 만장의 관람객이 또 폭소를 터뜨리며 배꼽을 잡고 웃어댔다.
“하하하, 어이구 미안합니다. 요번에는 진짜, 진짜 금상에.....멋진 8도 홍길동 허수아비 중에 진짜로 살아난 서울 목동의 소년홍길동, 박 진 영 군 ~ ~!”
수상자 본인이 등단도 하기 전에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가 쏟아지면서 소년 마술사 박진영군이 현대식 머리로 멋을 부린 엷은 금색 머리를 하늘로 뻗은 채 무대로 달려나갔다.
대형 트로피와 상금 봉투를 받아든 그는 양손을 높이 쳐들어 환호하고 연이어 여기저기서 올라온 꽃다발을 받고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꽃다발을 흔들어댔다.
“에, 여러분 감사합니다. 잠시 수상 소감을 나누겠습니다. 잠깐... 저 박진영군은 워낙 유명한 소년 마술사로서 이 보다 더한 우승도 여러번 하였고, 사실 대상을 기대했을 것 같은데 지금의 소감은?”
“네, 사실 솔직히 말씀드려 여기 출연하기 전부터 대상을 꿈꾸어 왔습니다만, 뛰는 사람 위에 나는 사람이 있는 법 아니겠습니까? 다음에는 꼭 대상을 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또 좋은 작품 기대하겠습니다. 자, 그럼 대망의 대상!...”
하고 소리 지르다가 사회자가 손을 들다 멈추었다.
“아, 잠깐! 대상 발표에 앞서 꼭 소개해야할 특별 프로가 하나 남았습니다. 으음! ”
사회자는 또 뜸을 들이더니 무슨 연유인지 두리번거리며 여기 저기 누구를 찾는 시늉으로 한 참 살피다가 목표한 인물을 찾았는지 다시 입을 열었다.
“에, 됐습니다. 특별히 소개할 특별 프로가 하나 남았습니다. 오늘의 이 축제를 더욱 빛내고 여러분의 기대를 한 층 더 올리기 위해 미리 소개하지 하지 않은 특별 손님을 지금 소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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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진짜 영국의 헤리포더의 등장
주최 측에서는 이미 헤리포더의 내한을 알고 오늘 막간에 소개하여 더욱 축제 분위기를 돋우고자 준비했었다. 이는 물론 홍길동의 작전이었던 것이다. 홍길동은 주최 측 집행위원장의 핸드폰에다 영국의 헤리포더가 낙산홍길동 축제에 내빈으로 참가할 테니 아무도 모르게 중간에 소개하고 그 멋진 빗자루 타고 날기를 선보이라고 일러두었던 것이다.
사회자의 특별 손님 소개라는 말에 모든 관람객이 고개를 들고 좌우를 살폈다. 그 때 다시 사회자의 소개말이 나왔다.
“저 오늘 특별히 소개할 손님은 저 멀리 영국에서 날아온 전 세계 소년들의 우상 헤...리...포더!”지금 이 말도 헤리포더의 귀에는 영어로 번역되어 들리고 있다.
이 말이 떨어지자 너무도 놀란 어린이들이 그가 어디 있는지 발견도 하기 전에
우와 --------- !
하며 일제히 일어서서 박수를 쳐댔다. 어떤 어린이들은 의자에 올라서서 두리번거리며 헤리포더가 어디 있는가 하고 찾았다. 그러나 소년 헤리포더는 무대 위에 나타나지도 않고 마냥 박수만 요란했다. 사실 헤리포더도 여기 소개 되리라곤 생각지도 않았던 차다.
“자, 여러분 조용히 자리에 앉으세요. 헤리포더는 무대에 없습니다. 자, 어서 앉으세요. 저, 저기 바다 쪽을 보십시오.”
하고 사회자가 손가락을 들어 낙산 바다 수평선을 가리켰다. 그와 동시에 모든 관람객의 목이 우로 돌아가며 동해 바다 쪽으로 바라보았다. 그 때 또 한 번 우와아! ------
하며 일제히 일어서서 양손을 높이 쳐들고 흘들어댔다. 지금 막 헤리포더가 빗자루를 타고 바다 쪽 하늘에서 무대를 향해 천천히 날아오고 있다. 그는 더 멋을 부리느라 좌우로 왔다갔다 지그재그(Z)를 그리며 천천히 다가 왔다.
관중석에 앉았던 헤리포더는 사회자의 소개말 때 모두 일제히 일어서 환호하는 사이 얼른 자리를 떠나 솔밭에 숨겨두었던 빗자루를 타고 바다로 나갔으나 아무도 낌새를 못 차렸던 것이다.
지금 헤리포더는 무대 앞까지 이르러 다시 무대를 한 바퀴 휘돌아 다시 바다를 향해 날아가고 있다. 그 때 사회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자, 여러분 어떻습니까? 참 멋지지요?”
이 말이 떨어지자 또 요란한 박수갈채가 쏟아지고 그와 때를 같이해 헤리포더는 다시 뒤돌아 무대를 향해 날아오고 있다. 그는 바로 무대 위까지 와서 곧바로 수직강하로 착 내려섰다. 왼손엔 빗자루를 거꾸로 세워 쥔 채다. 아 멋지다. 하늘을 날아와서는 헬기보다 더 멋지게 수직으로 사뿐 내리 앉은 빗자루 비행기 조종사 헤리포더!
사회자가 다가가더니 헤리포더와 악수를 나누었다. 그 때까지 흥분한 관중은 여태 앉지도 않고 모두 일어서 있었다.
“에. 여러분 자, 모두 흥분을 가라앉히고 자, 자리를 정돈해주시기 바랍니다. 자, 어서들 앉으세요. 자, 자 앉으세요.”
간신히 자리가 정돈되고 다시 사회자의 마이크 소리가 들렸다.
“에 여러분 어떻습니까? 기분 좋지요?”
“네, 좋아요.”
다시 박수가 쏟아져 나오자, 헤리포더가 정중히 관중을 향해 절을 했다.
“저, 여러분! 이제 대상 발표가 있기 전에 여기 헤리포더 소년에게 특별히 마련한 기념품을 전달하겠습니다. 오늘의 특별 손님을 위한 기념품 증정은 낙산 축제 위원장이신 김민상 회장님께서 하시겠습니다. 키가 후리후리한 번영회 회장이 정장차림으로 무대로 나와 섰다. 예쁜 한복으로 차려 입은 여직원 김효리 양이 자그마한 상자를 회장에게 건넸다. 사회자가 헤리포더를 안내해 회장 앞에 세웠다. 여기서 이루어지는 한국어를 헤리포더가 알아들을 수 있게 헤리포더의 귀에는 영어로 들린다. 이 장면 역시 헤리포더는 정말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으나 알아챌 수가 없다.
“에, 지금부터 오늘의 축제를 빛낸 영국의 헤리포더 소년에게 기념품을 전달하겠습니다. 오늘의 기념품은 (삼*전자)에서 특별히 제공하는 세계적인 일등 스마트폰 ‘ 럭서리 미래폰 999(쓰리나인)’을 대회 본부장께서 전달하시겠습니다.”
이 말이 끝나자 김민상 위원장이 상자를 열더니 반짝 반짝 빛나는 최신 스마트폰을 꺼내 높이 들어 보이곤 도로 상자에 넣어 헤리포더의 손에 쥐어주었다. 헤리포더도 벌써 삼*의 스마트폰 ‘럭서리 미래폰 999’ 이라면 이미 그 명성을 알고 있었던 터라 기분이 좋아 입이 함박만큼 벌어져 회장과 악수를 끝내자 핸드폰을 든 오른 손을 높이 들어 흔들었다. 어느새 준비했는지 헤리포더 팬들의 꽃다발도 전달되었다. 기념품 전달이 끝나자 헤리포더는 다시 관중을 향해 정중하게 인사를 하더니 금방 빗자루를 타고 곧장 무대 바로 위로 떠 오르는 게 아닌가!
사람들은 또 한번 우와! 하며 환성을 지르며 박수 갈채를 보내고 있다. 삼*전자 핸드폰 상자와 꽃다발까지 안고 떠 오른 헤리포더는 서서히 동해 바다를 향해 날아가고 있다. 관중석에서는 여전히 환성과 박수가 그칠 줄을 모르고 있다.
그런데 그 때! 모든 사람들의 입에서
“어어? 어디 갔지? ”
수많은 관광객들의 눈은 공중을 향한 채 없어진 헤리포더를 찾느라 고개가 아픈 줄도 모른다.
“어어? 아까 홍길동호 처럼 사라졌네?”
빗자루를 탄 헤리포더는 홍길동의 둔갑술과 마찬가지로 마법을 부려 투명술을 써서 지금 중앙무대 위를 빙글빙글 회전하고 있으나 관중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고 있다. 그 때 헤리포더의 귀에 영어로 말이 들렸다.
“어이, 이봐! 나 홍길동!”
“뭐? 홍길동?”
“그래 놀라지 말게, 나 홍길동이야. 손님을 초청해놓고 사람들에 시달려 나갈 수가 없어 미안해, 자 자네도 지금 빗자루를 탄 김에 아주 고향으로 돌아가게. 나중에 어린 친구들에게 걸리면 곤욕을 치를 거야.”
이 소리를 들은 헤리포더도 그렇겠구나 싶어
“맞아. 그게 좋겠군. 그래 나, 이 길로 그냥 내 뺄 거야. 이담에 다시 만나. 그럼 안녕!”그리고 곧장 중앙무대를 벗어나 솔밭위를 지나고 있다.
홍길동은 무슨 생각을 했던지 헤리포더를 다시 불렀다.
“어이, 잠깐! 내 사회자의 핸드폰에 연결했어. 떠나면서 인사나 간단히....”
“아, 그거 좋은 생각일세. 좋은 선물도 받고 그냥 내빼서야...”
“자, 됐어. 어서 말해봐. 사회자의 귀에는 한국어로 자동통역이 돼.(똑)”
이 소리를 들은 헤리포더가 놀라며, 인사말을 하고 있다.
“안녕하세요? 전 헤리포더입니다.”
사회자가 깜짝놀라 응답했다.
“어이구, 헤리포더! 너무 너무 고맙습니다.”
“ 좋은 선물까지 받고 지금 떠나면서 인사를 드립니다. 홍길동축제의 성공적인 마무리를 빌며 떠납니다. 여러분! 안녕!”
지금 이 말은 사회자의 핸드폰을 통해 한국어로 거기 모인 모든 관중들도 들을 수 있게 확성기로 들리고 있다. 이는 홍길동의 만능리모컨의 작용이다. 이 말이 끝나자 누가 먼저였는지
“앗 저기 헤리포더다!”하고 소리 지르자 일제히 솔밭 쪽 하늘을 쳐다보니 헤리포더가 투명술을 벗고 꽃다발을 흔들며 솔받 위를 돌고 있는 모습이 보이고 있다.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 헤리포더가 영국으로 떠납니다. 안녕!“
헤리포더가 꽃다발을 흔들며 서쪽 하늘로 방향을 틀었다. 관중들의 열광적인 손 인사를 받으며... 영국의 헤리포더는 서편 하늘 가로 가물가물 작아지더니 영영 사라지고 말았다.
29.대상발표...... 173
어린이들의 우상 헤리포더도 떠나고, 이제 모든 축하 순서가 끝나자 사회자가 다시 앞으로 나서며 자 모두 자리에 앉으세요. 자 자. 이제 오늘의 축제무대에서 여러분이 기다리는 대상을 발표하겠습니다. 대형 프로가 끝나고나니 사회자도 속도를 높여 바로바로 나왔다. 자 오늘의 대상은?
하고 둘러보니 그렇게 떠들썩하던 장내 분위기가 착 가라앉아 모든 눈동자가 사회자 한테로 집중돼 붙박혀있다.
오늘의 대상은 하늘배를 타고 나타났던 정 윤 서....!
와아 —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시상이 끝나자 사회자가 윤서를 향해 이렇게 물었다.
“저, 아까 멋진 하늘 배를 타고 재주를 부렸는데, 수상 기분은? ”
“네, 저도 아까 금상을 받은 박진영 형의 너무 멋진 홍길동 소동을 보고 정말 조선 시대의 홍길동이 나타났나하고 놀라, 틀림없이 박진영 형이 대상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저는 정말 뜻밖이라 형 한테 좀 미안한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어른스런 소감에 관중들도 너무 겸손한 어린 초등학생 대상 수상자에게 아낌없는 칭찬의 박수를 보냈다. 축제가 끝난 자리에는 진짜 홍길동의 흔적이라도 찾으려고 혈안이 된 외신기자들이 그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땐 이미 보도진들과 외국 특파원들까지 무대로 올라와 발 디딜 틈 없이 수라장이 돼있었다. 그 때 사회자를 제치고 어떤 기자가 불쑥 이렇게 물었다.
“저, 정윤서 어린이는 아까 여자 친구와 둘이 배를 타고 나타났었는데, 진짜 홍길동이나 둔갑을 부릴 텐데 어떻게 나중에 퇴장하는 장면은 보이지도 않고 어떻게 사라졌지요?”
“네? 사라지다니요?”
윤서는 사라지지 않고 바로 앞에 보이는 호텔 옥상으로 날아가 착륙하는 것도 다 보았을 텐데... 사라졌다고 하니 의아해 이렇게 반문했다.
“아까 무대를 두어 바퀴 돌고 활빈당 전단을 뿌린 후 퇴장했지요? 그 때 어디로 빠져나갔는지 전혀 보이지 않았거든...”
윤서는 고개를 갸웃하며 자기는 그런 일이 없었는데 이상한 질문을 한다고 쳐다보고 섰다. 그때 정작 사회자가 나서며 기자들을 손으로 밀치는 시늉을 하며 입을 열었다.
“저 잠시만, 보도진들은 잠깐 뒤로 물러서시고... 저 어떻게 배를 보이게도, 안보이게도 재주를 부렸느냐고 물었어요.”
윤서는 그제야 감을 잡았으나 이는 틀림없이 퇴장 때는 투명 둔갑술을 부린 게 틀림없는데, 그렇다고 진짜 홍길동이 도와줬다고 할 수도 없어 임기응변으로
“네에, 그건 저도 재주를 부릴 줄 모릅니다만, 저기앉은 이은결 마술사가 잠깐 도와주지 않았나 싶네요.”
*(임기응변 : 그때그때 처한 사태에 맞추어 즉각 그 자리에서 결정하거나 처리함.)
이 말이 떨어지자 모든 시선이 단 아래에 트로피를 안고 앉은 허수아비 짚 홍길동 쇼를 부린 금상 박진영 꼬마 마술사 옆의 이은결을 내려다보고 연이어 카메라의 눈이 그리로 쏠렸다. 때를 놓칠세라 꼬마들이 싸인받느라 이은결 마술사 곁으로 우르르 모여들었다.
윤서는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이때 재빨리 수옥이 손을 끌고 얼른 자리를 떴다. 단 아래 아빠 엄마 꽃지랑 만나 얼른 부산한 자리를 빠져나왔다. 꽃지
는 수옥이 언니 손을 잡고 싱글벙글하며 뒤따랐다.
.
낙산 축제에서 하직 인사를 마친 헤리포더는 흐뭇한 기분으로 지금 백두대간의 소백산 연화봉 상공을 날고 있다. 이때 헤리포더의 귀에 귀 익은 홍길동의 음성이 다시 들렸다
“어이, 헤리 포터! 나, 홍길동!”
“어어? 홍...?”
휘파람을 불며 빗자루를 타고 날고 있던 헤리포더가 뜻밖에 홍길동의 음성을 듣고 깜짝 놀랐다.
“나, 아까는 미안했어. 마중도 못하고...”
아주 가까이서 들리는 이 소리를 듣고 헤리포더가 놀라 뒤돌아보았다. 아, 그런데 어느새 홍길동이 구름을 타고 금방 나타나 뒤따르고 있다. 홍길동이 고대 따라 붙어 헤리포더와 나란히 날고 있다.
“홍길동, 웬 일이니? 아깐 나올 수 없다더니...”
“응, 아이들 때문에 축제 마당에는 갈 수 없었어. 하지만 자네가 이렇게 우리나라에 모처럼 방문했는데, 직접 만나 환송인사라도 해야지... 미안해서 배웅하러 나왔어. 아까 무대 앞에서 선보인 ‘빗자루타기’재주를 보고 아주 멋진 선물이라고 생각했어. 정말 고마워.”
“아아, 아니야. 그 걸로는 이 선물(스마트폰 상자를 들어 보이며) 값을 못해. 좀 마음에 덜 차.”
이들의 대화가 이어지는 동안 벌써 한반도 상공을 가로질러 인천공항이 내려다 보이는 계양산(395m)을 넘었다. 왼편으로 인천대교가 흡사 하프 악기처럼 아스라이 내려다 보였다.
“아무튼 고마워. 벌써 우리나라 국경 서해 바다에 다다랐어. 여기서 작별해. 앞으로 우리율도국의 연구목표가 완성되면 우리나라는 통일되고 세계평화가 이루어질 거야. 그 때 자네를 다시 초청할 거야.”
“아, 좋아! 꼭 성공하길 바래. 나도 꼭 자넬 찾을 거야. 우리 앞으로 사이좋게 지내며 함께 세계평화를 위해 노력하자구.”
“그래, 바로 내가 바라는 소원을 자네가 앞질러 미리 다짐해 오네.
좋아! 그렇게 하자구. 자 그럼, 잘 가아!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 ”
길동이 손을 내밀었다
“그래, 고마워. 또 만나.”헤리포더는 오른 손의 꽃다발을 핸드폰 상자 든 왼편팔에 옮겨 가슴에 품더니 홍길동과 악수를 교환 했다. 둘은 아쉬움을 담아 오랫동안 손을 잡고 우정을 나누었다.
길동이 손을 흔들며 돌아서자, 그도
“빠이, 빠이”하며 손을 흔들며 작별했다. 흰구름은 길동을 태우고 방향을 틀자 구름 무더기도 타원을 그리며 계양산을 바라보고 날고 있다. 길동이 아쉬워 다시 뒤돌아보니 헤리포더가 서쪽하늘 가로 가물가물 작아지더니 아주 시야에서 사라져갔다--- (끝) --- (179)--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