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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도균 선생은 석음서당(부산교육대 평생교육원 부설 한문서당)의 훈장입니다. 한문학을 전공하고 현재, 반여고에서 한문을 가르치는 교사이기도 하다. 고전 강의도 재미있지만 이 분의 남도소리(판소리) 솜씨는 가히 일품이다. 지인들이 박동진 선생(인간문화재 명창)후계자라고 놀릴 정도라고도 한다.
먼저 이 초대석에 응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석음서당의 동학(同學)들이 박 선생의 이야기보따리를 손꼽아 기다려왔습니다. 소리를 풀어내시듯 흥겹게 한번 풀어놓으시리라 믿습니다. (*참고로 이 인터뷰는 이메일로 이뤄졌습니다.)
문 1.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기왕이면 조선조 선비들이 하는 식이면 더욱 좋겠습니다.
박도균(朴燾均)입니다. 본관은 반남(潘南)입니다. 반남은 전라남도 나주에 있습니다. 저의 선대는 조선이 개국하면서 한양에 터를 잡았는데, 제 19대조께서 연산군의 폭정을 피해 전주로 낙향하면서 지금까지 후손들이 터전을 일구며 살고 있습니다. 태어난 곳은 전북 익산군 王宮面이라는 곳인데, 마한의 수도라는 설이 있기도 하며, 백제 무왕의 궁궐이 있던 곳이라서 조선 말기에 왕궁면이라 했습니다. 궁궐터에 있는 왕궁탑이 국보이며 인근에 무왕과 선화공주의 무덤과 미륵사지가 유명합니다. 요 근래에는 보석박물관도 들어서서 둘러 볼 곳이 제법 있습니다.
문 2. 작고하신 퇴산 이신성 교수님과 각별한 인연(우문회?)을 맺어 오신 걸로 압니다. 석음서당강좌에는 어떤 계기로 참여하시게 되었는지도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가 교사로 발령이 나서 부산 땅에 당도하고 보니 아는 이 하나 없는 사고무친에 적막강산이었습니다. 그래서 무료함을 타파할 작정으로 어찌어찌 하여 당시 남산동에 계시던 설암 권옥현 선생을 찾아뵙고 인사를 드렸는데, 그곳에서 당시 우문회 회장이셨던 이신성 교수님을 위시한 우문회 회원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2주에 한 번씩 일요일 아침에 모여서 오후까지 강독을 했는데, 몇 번 참석하다가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몇 번 뵌 적도 없는 교수님이 저에게 계속 전화 연락을 하는 겁니다. 전화 몇 통화에 감동 먹고, 그래서 코를 꿴 것이 지금까지 올가미가 되었지요. 이신성 선생님의 꾸밈없는 해맑은 미소가 무척 그리워집니다. 어째든 이런 인연으로 길고도 모질게(?) 엮여서 석음서당으로 발걸음을 하게 되었습니다.
문 3. 박 선생님은 호남 태생으로 영남과는 사뭇 다른 풍류가 느껴집니다. 어릴 적 한문 교육과 관련하여 재미난 일화들을 소개해 주십시오.
어렸을 적 특별히 한문교육을 받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증조모, 조부모님을 모시고 자랐기 때문에 생생한 옛날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우리 증조님은 기억력이 좋으셔서 옛이야기를 잘 하셨습니다. 예컨대, 유충열전, 심청전을 비롯하여 집안 이야기, 당대 우리 집안에 내왕하던 학자들 이야기 등등 을 많이 들었습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증조모와 관계된 몇 가지 일화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증조모는 아무리 나이가 어려도 하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초등학교 때 친구를 데리고 집에 가면 항시 “집이 어디요? 성씨가 뭐요?” 라고 하며 존대를 했습니다. 또 제가 동생들과 다투면서 “이 새끼, 이 자식” 이라고 욕을 한 적이 있습니다. 어떻게 동생에게 새끼나 자식이란 말을 함부로 쓰느냐며 무척 혼이 난 적이 있었습니다. 옛 양반들은 짐승에게도 함부로 욕을 하거나 발길질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예컨대, “어허! 이 짐승 저리 물러 서거라!” 이렇게 한 거지요. 또는 손이나 주먹으로 머리나 신체를 때리는 것도 쌍것들이나 하는 짓이라 해서 무척 혼 난 적이 있었습니다. 또 집에 밥 얻어 먹으러온 거지에게도 꼭 밥상에 밥을 차려서 가져다주도록 했습니다. 재미난 이야기는 아니지만 옛날 분들의 생활 속에서 지금 우리의 삶을 돌이켜 볼만한 점들이 있다고 봅니다. 지금 생각하면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서 타인을 배려하는 정서가 모든 행동의 밑바탕에 깃들어 있었다고 봅니다. 지금 사람들이 좋아하고 내세우는 지위, 나이, 경제력, 학력 따위로 남에게 함부로 하지 않은 것이지요.
문 4. 대학 때 전공을 한문학으로 선택하게 된 동기가 궁금합니다. 모르긴 해도 당시에는 이공계 쪽을 선호하는 분위기였을 텐데........혹시 선친의 압력이나 주변의 강권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요?
우리 조부께서는 해마다 봄이 되면 사랑방 벽장 속에 감춰진 고서들을 꺼내 마당의 멍석에다 펼쳐놓고 거풍을 하곤 했습니다. 일명 바람을 쏘이는 것이지요. 조부께서는 평생 농사를 지으시며 큰 학문을 하진 않으셨지만 선대의 문집들을 보면서 이것은 누구 문집이고, 이것은 누구 문집이며, 이 책은 이런 책이고, 저책은 저런 책이라고 설명해 주시곤 했습니다. 집안에서 무엇을 하라고 강요하지는 않았지만, 이러한 집안의 영향이었는지 한문학 쪽으로 관심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한문학을 선택한 진짜 이유는 당시나 지금이나 잘나가는 학과에 가기가 여러 가지로 부족했기 때문이지요. 어째든 웃자고 한 소리이지만, 한문학과를 선택한 것이 조상의 음덕이 아니라고 할 수 없지요.
문 5. 박 선생님은 고등학교에서 한문 교사로 근무하시고 계십니다. 소위 속도문명을 좇는 젊은 세대들에게 한문을 가르치시면서 느끼는 고민, 그리고 보람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지금 같은 입시 구조 하에서 한문 교과의 설자리는 너무너무 좁습니다. 학생과 학부모들이 목숨처럼 여기는 수능에서 단 한 문제도 출제되지 아니 하고, 내신도 적용되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학생들이 무슨 관심이 있겠습니까? 관심 없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부담이 백배입니다. 그러나 반면 입시성적에 얽매여 전전긍긍하기보다는 다양한 고전을 통해 다양한 인간의 삶과 제자백가의 각기 다른 철학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는 매력도 있습니다. 예컨대, 쉽게 접하는 고사성어를 통해서도 인생을 논할 수 있고, 선인들의 삶을 통해 자신을 반추 할 수 있으며, 동양의 고전을 통해 인생의 깊이를 닦아갈 수 있는 점입니다. 이러한 점들은 영어나 수학의 여타 과목들이 범접할 수 없는 부분들이지요. 학생들도 이런 이야기를 할 때면 귀를 쫑긋합니다.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야! 이놈들아, 한문이란 단순히 대학을 가기 위해, 대학 갈 때까지만 사용하다 헌 신짝처럼 버려버리는 반짝이 교과가 아니란 말이야! 인생을 잘 살아가는 여러 가지 방법들을 배울 수 있는 학문이며 평생을 두고두고 공부할 수 있는 과목이다.”
이렇게 큰 소리로 호통 반 허풍 반으로 소리를 높이면, 아이들이 와 하고 박수를 치곤하는데, 정말 그렇게 됐으면 좋겠습니다.
문 6. 우연한 기회에 선생님의 쑥대머리-남도소리(창)-를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당시 등골이 서늘한 감동을 느꼈답니다. 어떤 계기로 소리를 배우시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범 없는 산중에 여시가 대빵, 고래 없는 바다에 갈치가 대빵’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어쩌다 한 잔 마시고 기분이 좋아서 그냥 냅다 소릴 내지르는데, 잘 모르는 분들이 저를 보고 판소리를 한다고 합니다. 정말이지 박자 음정 다 헛방입니다. 단지 살던 동네가 동네니 만큼 귀 동양으로 좀 들었습니다. 관심을 가지고 많이 들었다고 보면 됩니다. 어찌 보면 지금의 뽕짝 부르는 것과 전혀 다를 것이 없습니다. 예전의 민요나 판소리 등등 모두가 구전이거든요. 그런데 너무 접할 기회가 없다 보니 생경하게 들리는 것이지요. 그런데 저를 보고 판소리를 좀 한다고 말씀하시면 참으로 판소리에 대한 모독이지요.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 근사하게 흉내 낼 줄 안다고 하면 적당한 말입니다.
문 7. 석음서당 이외에도 한문 관련 여러 활동을 하시는 걸로 압니다. 선생님의 취미활동에 대해서 소개해 주십시오.
취미생활을 다양하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저 만큼 있는데, 실제 몸은 요만 큼도 못 따라 갑니다. 남다른 취미생활도 재주가 많아야 하는데, 재주도 없거니와 시간을 따로 내어 배운 공력도 별로 없어서 특별하게 내세울 만한 취미는 없습니다. 시간 나면 산에 가는 것을 매우 좋아 합니다. 전문적인 산타기 보다는 산보하며 걷는 수준이지요. 배드민턴은 학교에서 짬이 나면 조금씩 치고 있습니다. 이 또한 여가로 하는 수준이고요. 작년에 처음으로 낚시하는 데를 한 번 따라갔는데, 속칭 뭣 땜 시 저 짓을 하는지 모르겠더라고요. 근데 추운 겨울에 밤을 세 워 낚시하는 사람들의 열정을 보고 느낀 점이 참 많았습니다.
문 8. 고전을 공부하시는 동안 인생에 가장 영향을 끼친 책, 평소 좌우명으로 삼고 계신 글귀와 한문을 배우고자 하는 일반인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어쩌다 한문을 전공하긴 했지만 참으로 어려운 것이 한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학, 역사, 철학, 갖가지 서체, 무궁무진한 典故, 등등 두루두루 공부해야 하는 어려운 한문이기에 훌륭한 스승이나 선배들을 보면, 부럽고 존경스러워 나도 저리 한 번 해봐야지 하지만, 작심삼일로 세월을 보낸 지가 처음부터 지금까지입니다. 그러니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선생님들로부터 들었던 몇 가지만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 하겠습니다. 대학, 논어, 맹자, 중용를 四書라고 하는데, 일반인들이 원전을 통해 공부하기란 그리 녹녹한 책들이 아닙니다. 제가 모신 선생님이 계신데, 요즘도 인사를 드리러 가시면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욕심내지 말고 사서 중에서 대학이면 대학 논어면 논어, 맹자면 맹자를 선택해서 전문가가 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사서 중에서 한 권을 선택하여 곱씹고 곱씹어 글의 깊이와 맛을 알아가며 느껴보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말씀을 염두에 두고 생각하면, 우리가 강독하고 있는 명심보감도 좋은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허투루 보지 말고 글맛을 느껴보는 거지요. 눈으로 보고 입으로 읽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느끼고, 한 단계 더하여 몸으로 체득하면 금상첨화겠지요. 선인들이 이야기한 고전의 묘미가 이를 두고 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좌우명까지는 아니지만, 제가 좋아하는 글 귀중의 하나는 학문에 관계된 것으로 중용에 나오는 “博學, 審問, 愼思, 明辯, 篤行”입니다. 널리 많은 것을 배우고 자세히 스승에게 물으며 신중하게 생각하고 명확하게 판단하며, 충실하게 행동하라는 것입니다. 공부하는 과정을 다섯 가지로 뚜렷하게 설정하였으며 학문의 궁극처는 역시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요즘 고전을 알기 쉽게 강의하거나 풀어쓴 인문학 서적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번 방학 중에 정민교수가 쓴 다산선생 지식경영법이란 책을 읽었는데 다산의 학문하는 방법에 대한 상세한 설명들이 주목할 만하였습니다.
문 9. 다음카페 <고전의 메아리>는 연붕서당과 석음서당을 위해 만든 사이버서당이나 다름없습니다.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전통문화의 맥을 이어가는 연붕과 석음서당에 ‘젊은 피의 수혈’이 간절합니다. 박 선생님께서 젊은 한문학도 내지는 젊은 층이 서당에 많이 참가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제시하신다면 어떤 걸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참으로 어려운 질문입니다. 현재의 수능을 과거시험으로 대체하면 한 방에 해결될 제일 좋은 방법이긴 합니다. 시간을 가지고 고민해야할 문제 인듯합니다.
문 10. 이 자리는 릴레이 초대석입니다. 박 선생님께서 다음 손님을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가급적 석음서당과 관련된 분 중에서 한문학자 또는 고전에 밝은 분이면 좋겠습니다. 또한 초대하는 이유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현재 우문회 회장을 맡고 있고 석음서당 강의를 담당하시는 김영석 선생님을 추천합니다. 김영석 선생은 정신문화의 수도라 자칭하는 안동의 군자리 오촌 출신으로 안동에서도 유명한 동네이며, 선대 분들도 안동에서는 상당히 명망이 있었던 분들이라고 알 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유익한 이야기들을 들 을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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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그 동안 박도균 훈장님의 배후가 오리무중이었지요. 이번 인터뷰로 인해 수수께끼가 상당 부분 풀린 것 같아 아주 개운합니다. 하하하. 인터뷰로 인해 신비감이 없어진 게 아니라 인간미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바람에 더욱 친해지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다. 인터뷰 대가로 석음서당 훈장님들 모두 모시고 식사 한끼 대접하고 싶습니다. 설 쇠고 난 다음 주 중에 한번 뫼시지요. 감사합니다.
평소 강의중에도 느끼는대로 '겸손과 소탈과 해박함'이, 본 글에 진하게 풍겨납니다.특히 증조모님의 가르침중 '사람과 사람의 관계속에서 타인에 대한 "배려"가 모든 행동의 밑바탕'이라는 부분이 가장 인상적으로 닥아옵니다.조용히 은근한 감동을 주셔서 깊이 감사드립니다..雲中
문과 답이 물 흐르는 듯합니다. 막힘 없이 읽히는게 참 좋습니다. 질문을 하는 사람이나 그에 맞는 답을 유연하게 풀어내는 두 분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지는군요. 잘 읽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석음서당에 등록 할려고 작정했는데 지금 두분의 대화내용을 읽고 확실하게 마음을 굳혔습니다.감사합니다.
한 번이라도 얼굴을 뵌 분은 언제나 친근하게 다가옵니다. 그래서 만남이란게 중요한가 봅니다. 종강 때 우연히 참석을 해서 들었던 '쑥대머리' . 그 여운 참 오래가더군요. 그래서 우리 것은 좋은가 봅니다. 그리고 고귀한 말씀 마음에 새기겠습니다.
과거시험!! 딱 입니다.ㅎㅎ 회정 선생님=풍류 선비 이도 딱입니다. 선비님이라 생각했는데 소리까지 하신다니 풍류도 딱이네요. 부드러운 목소리에 찬찬하고 여유로우면서 질문에 대한 답을 그 다음 주에 정확하게 친절히 말씀해 주시던 우리 선생님, 멋있어요! 이신성 교수님은 어쩜 이리도 좋은 사람들을 모아 주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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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백하게 마음에 다가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