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 분 |
2004 |
2005 |
2006 |
2007 |
2008 |
증가율 | ||
‘04~’07 |
‘08/‘07 | |||||||
공 급 액 |
한 살 림 |
70,202 |
79,403 |
93,592 |
108,955 |
132,598 |
15.8 |
21.7 |
iCOOP생협연합회 |
42,813 |
53,447 |
73,407 |
94,220 |
130,150 |
30.1 |
38.1 | |
두레생협연합회 |
25,013 |
28,159 |
31,707 |
30,285 |
36,815 |
6.6 |
21.6 | |
민우회생협 |
6,607 |
6,653 |
7,479 |
8,604 |
11,352 |
9.2 |
31.9 | |
기 타 |
21,651 |
22,776 |
18,107 |
19,882 |
23,839 |
-2.8 |
19.9 | |
합 계 |
166,286 |
190,438 |
224,292 |
261,946 |
334,754 |
16.4 |
27.8 | |
조 합 원 수 |
한 살 림 |
99,761 |
115,336 |
132,787 |
147,339 |
170,793 |
13.9 |
15.9 |
iCOOP생협연합회 |
31,950 |
38,908 |
30,725 |
34,674 |
54,660 |
2.8 |
57.6 | |
두레생협연합회 |
29,856 |
34,627 |
37,670 |
37,157 |
44,575 |
7.6 |
20.0 | |
민우회생협 |
11,155 |
12,077 |
12,911 |
14,382 |
17,187 |
10.9 |
19.5 | |
기 타 |
31,612 |
34,078 |
31,795 |
33,957 |
37,420 |
2.4 |
10.2 | |
합 계 |
204,334 |
235,026 |
245,888 |
267,509 |
324,635 |
9.4 |
21.4 |
주 : 1) iCOOP생협연합회의 2006, 2007년 조합원수는 조합비 조합원(19,971명, 22,538명)을 포함하여 추정한 수치임.
2) iCOOP생협연합회의 공급액에는 (조합비)조합원외 공급액이 포함되어 있음(‘06년 약 204억원, ’07년 약 267억원, ‘08년 851억원)
3) 한살림의 2008년 공급액에는 학교급식사업 공급액 약 10억원이 포함되어 있지 않음.
한국의 친환경농업도 1998년 친환경농업 육성법의 제정이후 친환경농업 육성예산의 증대와 2002년 지자체선거를 기점으로 지자체별로 친환경농업 육성정책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면서 본격화된다. 2008년말 현재 우리나라의 친환경농업 현황은 인증을 기준으로 보면 172,533농가, 면적은174,107ha이다. 이는 2001년에 비교하면 4배가 상승한 것이며 농가수 비중으로 치면 2007년 총 농가수 1,231,009에 견주면 2007년 말에 이미 10.7%로 10%를 넘어서고 있으며 2008년에는 15%정도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전체 친환경농업농가 중 70%가 저농약이다. 저농약인증의 주요품목은 과일과 채소이다.
유기농업 농가는 전체친환경농업 면적의 7%정도 친환경농업농가의 5%정도이며 전체 농가와 견주면 0.7%를 약간 상회해 아직 1%가 안 된다. 무농약과 유기농업을 합치면 친환경농업농가의 30%정도 전체 경지면적 중 차지하는 비율은 2007년 총 경지면적이 1,781,579ha임으로 2007년이 약 2.1% 2008년에 3%를 약간 상회할 것으로 추산된다. 대체적으로 1998년말 친환경농업육성법제정 이후 우리나라의 친환경농업은 최근 들어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고 보여 진다. 이것은 정부와지자체의 친환경농업 육성과 지원정책과 식품안전에 대한 식품사고와 맞물리면서 시민의 먹거리의식의 증대와 밀접히 연동된다.
<표2>친환경농산물 생산 농가수 및 면적 추이 | ||||||||
구분 |
유 기 |
무농약 |
저농약 |
(농림산물)계 | ||||
농가수 |
면적(ha) |
농가수 |
면적(ha) |
농가수 |
면적(ha) |
농가수 |
면적(ha) | |
2008 |
8,460 |
12,033 |
45,089 |
42938 |
119,004 |
119,136 |
172,533 |
174,107 |
2007 |
7,507 |
9,729 |
31,540 |
27,288 |
92,413 |
85,865 |
131,460 |
122,882 |
2006 |
7167 |
8,559 |
21,656 |
18,066 |
50,812 |
48,371 |
79,635 |
74,995 |
2005 |
5,403 |
6,095 |
15,278 |
13,803 |
32,797 |
29,909 |
53,478 |
49,807 |
2003 |
2,748 |
3,326 |
7,426 |
6,756 |
13,127 |
12,155 |
23,301 |
22,237 |
2001 |
442 |
450 |
1645 |
1,293 |
2,591 |
2,811 |
4,678 |
4,554 |
자료: 국립 농산물 품질관리원 홈페이지 통계자료 |
그런데 이때 먹거리에 대한 의식의 증대는 농업살림이나 공동체적 각성보다는 소박한(또는 소극적인) 가족공동체의 건강으로 출발하기에 생협과 친환경농업의 질적 성장과 결합하지 못하는 것이다.
한국생협의 신장은 생협운동 자체의 노력과 힘으로 성장하기 보다는 끊임없는 먹을거리의 위협과 미디어에 의존해 성장하고 있다. 유기농업도 농민들의 자각과 각성보다는 정부의 친환경농업 육성 정책과 새로운 소득모형으로서 확장되어가고 있다. 그러니까 한국생협의 성장은 친환경농업의 성장과 동전의 앞뒷면처럼 얽혀 있는데 양자 모두 주체적인 노력에 의한 성장 보다는 외부적인 요인에 의한 것이다.
이러한 외인론에 의한 성장은 한국의 생협운동의 조합원과 생산자운동이 주체적으로 일구어온 성과가 아니기에 운동성을 떨어뜨리고 오히려 생산성과 공급을 중심으로 한 물류사업의 비대화를 불러오고 다시 일반 기업의 친환경농산물시장진입과 경쟁하면서 생협운동의 빈곤화를 초래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것은 결국 생협의 사업고나 친환경농업의 성장이 전체사회의 농업살림의식이나 공동체의식의 성장으로 이어지지 않고 결국 도시공동체의 성장과 마을공동체의 정착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단적으로 확인되는 것은 한살림 및 생협의 조합원확대와 공동체 프로그램의 빈곤으로 보여진다.
3. 경제위기에 대한 시선
경제위기라는 용어가 심심치 않다. 그런데 필자에겐 그것이 욕망충족의 위기라는 말로 들린다. 자본주의체제는 이윤의 축적과 성장이 생명이다. 그러니 현재 운위되고 있는 경제체제의 위기는 그 동안 추구해온 이윤축적과 성장의 메커니즘이 위기에 빠졌다는 이야기이며 결국 우리 삶에서 돌아보면 물질만능의 소비중심 삶의 위기이다. 반드시 국가와 자본은 또 다른 이윤축적과 성장의 메커니즘을 찾으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생명운동진영은 대안적인 경제체제를 찾아야 나서야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것은 농업을 중심으로 하는 호혜적 자본(공동체적자본)을 많이 만드는 것, 자연과 이웃. 모두에게 도움이 되고 노동이 즐겁고 보람 있는 노동, 서로에게 자족과 자립의 도움이 되는 호혜적인 거래에 기초해야 할 것이다. 그 길은 우리가 기존의 사고와 삶을 바꾼다면 다양하게 열려있다. 생명운동은 결국 우주적 존재인 인간생명이 또 하나의 우주인 농업을 중심으로 자연과 더불어 이웃과 더불어 사는 법을 배우는 공동체운동이 아닐까 생각된다.
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자연에 대한 수탈과 인간노동력을 착취하여 자본을 축적해 나가는 메커니즘이다. 특히 자본주의는 인간의 욕망에 기초해 있으며 모든 삶을 욕망의 충족을 위한 메커니즘에 복종하기를 강요하는 사회체제를 구조화 한다. 그것은 경제성장이라는 이름으로 정책으로 나타나며, 임금인상과 부의 분배라는 모습으로 착취와 수탈을 은폐하며, 인간욕망의 충족을 위해 투기적 자본(금융)시장을 운영한다. 이러한 메커니즘은 마르크스가 지적했듯이 주기적인 공황을 필연으로 하며 공황은 자본주의체제의 전환기로서 작용한다.
자본주의체제의 전환기는 국가에 의해 관리 되며 그것은 체제위기에 따른 대응에 불과하기에 발전된 체제유지를 기본전략으로 한다. 따라서 전환된 자본주의 체제는 그 어떤 다른 것이 아니라 새로운 자본축적메커니즘을 갖는 또 다른 자본주의에 불과하다.
이번에 제기 된 자본주의 위기는 금융시스템의 결함과 이를 발전시킨 ‘신자유주의(자본주의)’ 위기라고 진단하는 경향이 많은 것 같다. 이러한 진단방식은 현실자본주의 위기를 진단한다는 점에서는 일면 맞지만 문제의 해결 주체는 당연히 국가와 자본이며 국가간, 또는 자본간의 정책 조정 외에 답을 내 올 수 없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현재의 욕망체계를 유지하고 축적 시스템의 지속성만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결국 민초들은 또 다른 욕망의 노동과 자본의 성장체계에 객체로서 갇힐 수밖에 없다. 즉 그것은 민초들의 자립적이고 자족적인 관점이 아니라 여전히 자본과 국가의 성장과 욕망체계의 재편과 관련 된 관점에 지나지 않으며 결국 민초들의 자율적 자치와 자립과는 거리가 멀며 생태적 삶하고도 거리가 멀다. 그리고 이러한 시선은 당연하게도 국가에 의한 내수의 창출(SOC투자와 같은)과 사회보장제도의 강화 및 경제 활성화 정책을 가지고 해결하고자 한다. 이것은 케인즈 경제학에서 본 받은 바이며 필자가 알기로 케인즈는 자본주의 생명을 연장하자는 것이지 자본주의를 극복하자고 한 적이 없다. 따라서 이러한 논리는 결국 현재의 경제체제의 문제의 본질을 외면하게 되며 민초들을 영원히 경제의 객체로 가두는 논리에 다름 아니다.
대안을 논의하고자 한다면 현재의 경제 체제와 위기를 바라보는 시선은 자연과 더불어 사는 시선과 민초들의 관점, 공동체적인 관점을 가지고 바라보아야 한다. 역으로 현재 우리사회의 질곡을 일으키는 문제의 핵심인 자연과 인간관계의 문제와 자본대 노동의 대안구조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물론 현실의 경제위기가 곧 바로 대안경제체제로의 진전할 수 있다는 주장은 아니다. 자본주의 체제가 구조화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듯이 우리가 꿈꾸는 대안의 경제체제가 서는 데에도 장구한 세월이 필요할 것이다.
4. 협동조합과 지역사회
협동조합은 전통적으로 사적소유와 무차별적이고 폭력적인 시장거래를 넘어서기 위해 고안되었다. 또한 공동체적 인간형과 호혜적 시장, 더불어 사는 사회를 위해 고안된 것이다. 초기에 대응은 폭력과 착취의 유통자본과 금융자본에 대한 대응으로서 소비조합 및 신용조합으로 시작되었다.
이후 이해와 이익(?)을 함께하는 농업협동조합과 노동자 협동조합이 탄생하였고 더 나아가서는 주택조합과 보건의료조합이 탄생되었다. 이러한 협동조합들은 이미 알고 있다시피 몬드라곤을 제외하고 개별영역으로서의 협동조합기업(?)으로는 성공했지만 조합원들과 지역사회의 의미 있는 삶의 변화를 이끌어냈는지는 의문이다. 특히 개별 협동조합들은 인간 삶의 일부분문제를 해결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일정규모가 되고 시장과의 접점이 형성되면 현격히 시장에 흡수되어 버리는 결과를 우리는 종종 목격해 왔다. 특히 문제가 다면적으로 얽혀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특정 이해관계- 그것이 생산과 판매로 이루어질 경우 더욱 그러하다 -의 협동조합은 자본주의와 닮은 성장을 동력으로 삼는다. 이 순간 협동조합은 그것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사명을 잃어버릴 가능성이 크다.
그 원인은 협동조합이 자본주의라고 하는 기본 틀 내에서 운동하기에 발생한다. 첫 번째로는 협동조합은 끊임없이 국가와 시장으로부터 견제와 유혹을 받는다. 제도화는 늘 상 유혹이자 국가의 주요한 견제이다. 경영이라는 이름아래 강조되는 시장과의 경쟁원리는 협동조합을 시장화하고 관료화시켜간다. 두 번째는 조합원들은 협동조합의 참여를 ‘사회적 이해’로 받아들이지 않고 ‘개인적 이익’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크고 일부조합에서는 이렇게 홍보한다. 이것은 결국 조합원을 창조적인 공동체구성원으로 길러내지 못하고 조합을 이익집단 화하는 경향으로 몰고 가는 것이다. 세 번째는 협동조합의 주도자가 조합원이고 끊임없는 교육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종종 잃어 버린다. 조합원을 주인으로 세우고 조합원들의 건강한 삶과 활동을 엔진으로 돌아가지 않는 한 협동조합은 언제든지 정체성을 위협 받는다.
우리는 왜 변혁의 틀로서 협동조합을 생각하는가?
우리가 가져야 될 운동의 틀은 협동조합만은 아니다. 그러나 협동조합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주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현실 가능한 그리고 민중에 대한 한없는 신뢰속에 꿈을 꾼다면 욕망에 기초한 성장제일주의 경제체제인 국가소유나 사적소유대신에 ‘공동체적 소유’의 증대, 착취와 탐욕의 시장 대신에 필요에 의해 나누고 교환하는 호혜적 시장, 근대적 복지라는 이름아래 전개되는 수용과 ‘제공의 상품서비스’가 아니라 우애적 ‘돌봄의 사회’, 국가와 형식적 민주주의가 아니라 민중의 ‘자율적 자치’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협동조합은 이러한 우리의 지향과 현실적인 접합 가능한 운동형태로서 가장 유사한 조직이다.
그러나 협동조합은 협동조합 그 자체로 우리의 운동방향과 본질에 절대적으로 부합하는 것은 아니다. 전통적인 협동조합운동이 가지고 있는 경제적 조직으로서의 한계(?)를 뛰어넘어야 하며, 한국사회현실이 규정하는 협동조합의 한계 또한 넘어야 한다. 이것은 한국사회의 , 특히 지역공동체 운동가들이 협동조합운동과 지역공동체운동 대한 끊임없는 고민과 재창조를 요구받는 것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지역사회의 공동체운동은 협동조합운동으로는 포괄하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 공동체운동의 개념범주가 협동조합보다는 훨씬 넓기 때문이다. 그러나 협동조합운동은 지역 시민사회의 중심운동이지만 다양하게 발현되는 제 모순과 시민들의 열망을 담아내는 다양한 운동들을 창안해내고 조직해내야 지역을 건강한 공동체로 발전시킬 수 있다.
우리는 왜 운동의 현장으로서 지역사회를 택했는가?
첫 번째로 생명체로서의 삶터가 구체적인(원주라는) 지역사회이고 이 지역사회에 신자유주의와 국가권력의 제 모순들이 삶을 통해 현실화되는 곳이자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이 더불어 사는 삶과 인간존재의 자율과 자치를 위협하는 현장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는 세상을 바꾸는 운동이란 나를 바꾸는 것에서 시작해 가정과 지역을 변화시키는 것이 가장 근본이기 때문이다. 지역은 나와 가정의 삶과 공동체적인 이해가 가장 근본적으로 엮여있는 곳이다.
세 번째로는 지역의 변화는 이웃지역의 변화와 함께 일국 및 전 세계적인 변혁운동의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랜 기간의 훈련과 인간노력의 퇴적에 의해 조금씩 나아가는 것이다.
5.지역사회에서 전개해야 할 운동
사적소유, 이윤을 위한 폭력적 시장, 자본에 이익이 되는 상품가치를 생산하지 않으면 노동도 없다. 필요한 물품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이윤이 되는 재화와 용역을 생산하며 그것은 인간의 욕망을 자극함으로서 돈이 된다. (착취의 노동과 고용관계의 폭력성),
자본이 바라는 바는 욕망의 노동과 소비로 구성된 욕망의 노예이다. 어줍잖은 생태적 삶의 욕망도 마찬가지다. 노후의 전원생활에 들어가는 삶의 비용을 10억으로 생각하는 사회는 생태적 삶의 근저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생태를 가장한 욕망의 또 다른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 현재의 자본주의 위기는 세계자본체제(그것은 국가와 자본의 동맹이다)는 새로운 축적 메카니즘과 새로운 욕망의 메커니즘을 창출하고자 한다. 대안운동진영이 대안적 경제가 아니라 기존 경제체계의 담론과 시장의 연장에서 국가 의존적 복지운동으로 나가는 것은 희망이 될 수 없다.
새로운 삶의 양식과 노동관이 필요한 시점이다.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삶의 양식과 욕망의 충족을 위한 노동이 아니라 자족과 자립의 노동관이 필요하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공동체적인 사회구상이어야 하며 자유로운 공동체간의네트워크를 통해 실현가능할 것이다.
욕망의 생활구조에 갇힌 전통적인 취업노동관을 버리는데서 출발해야 한다. 8시간을 노동하고 많은 월급을 받고 그것을 통해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소비와 2세를 위한 교육을 하고 풍족한 노후를 생각 하는 한 새로운 사회로 나가기는 힘들다.
삶의 양식의 전환을 고려한 새로운 민의 호혜 경제체제를 생각해야 한다. 호혜는 자연과 인간에 이로움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자본과 문명의 이기로부터의 불편함은 어느 정도 감수 되어야 한다. 그러기위해서는 첫째로는 호혜적 자본(공동체적 소유)과 호혜적 노동이 결합한 노동공동체운동으로 나가야 한다.
이를테면 노동자(생산)협동조합도 게중에 하나일 것이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수탈, 욕망의 노동구조가 아닌 새로운 의미의 사회적인 노동자협동기업 운동은 이제 한국사회에서 시작되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자본에 고용노동이 아니라 자발적인 공동체적 자본의 형성과 자기고용(Self Employee)을 통해 자연과 인간에 유익한 생필품을 만들어 내고 자립과 자족의 삶을 지향해야 한다. 그것은 생명본연이 가지고 있는 그물코의 삶을 닮은 수많은 호혜적 네트워크 경제체제를 꿈꾸는것에서 시작된다. 그것은 다양한 형태의 협동조합일수도 있고 노동자협동조합일수도 있으며 공동체일수도 있고 시민기업일수도 있다.
노동운동이 무엇인가? 노동조합운동이 곧 노동운동은 아니다. 자본에 고용된 욕망의 틀 거리에 갇혀 새로운 세상을 위해 나가지 못하면 노동조합운동은 노동운동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진정한 노동운동은 자연과 이웃에 대해 소박한 존중과 노동을 통해 얻어가는 자립과 자족을 목표로 한다. 그것이 노동해방이다. 노동해방은 노동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삶에 필요한 적절한 노동을 통해 자연과 이웃 속에서 삶의 만족을 얻는 것이다.
8시간 노동의 패러다임이 서기까지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이제 8시간 노동도 재고해 보아야 한다. 적게 일하고 소박한 삶을 즐기는 공동일터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 물론 그것은 자립을 지향해야 한다. 자립은 한사람, 하나의 기업, 단선적인 네트워크로 되지 않는다.
한살림이나 생협운동이 일구어온 업적과 과정은 훌륭하다. 그러나 지역의 다양한 생활 영역의 (그물)코를 만들어 공동체적 네트워크를 만들지 않는다면 지속적인 성장욕구와 맞물려 기업과 같은 수직적 그룹화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결국 한살림이나 생협 운동이 지향하는 가치와 멀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제 한살림이나 생협운동은 조직내적인 실천을 넘어 조합원들의 일상 삶에 필요한 지역사회의 다양한 공동체를 조직하고 촉진해야 한다.
현재까지의 한국사회의 대부분의 협동조합운동은 지향가치를 제외한다면 욕망의 노동구조의 연장이다. 친환경농업은 고투입 고소득 유기농업으로 제도화 되어가고 있으며 생협과 한살림은 성장주의 신화에 빠질 수 있다.
노동구조를 바꿀 생각을 해야 한다. 그것은 삶의 구조를 바꾸는 생각을 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단번에 그리고 하나의 조직으로 되지 않는다. 그것은 전국적인 형태로 바로 발현되지 않는다. 삶터를 중심으로 다양한 공동체의 육성과 네트워크를 통해 아주 서서히 바꾸어 나갈 것이다. 진짜 혁명은 권력을 잡는 것이 아니라 삶의 양식을 바꾸는 것이다.
지역의 공동체 일터에서 공동체적 합의에 의해 자유로이 일하고 이웃과 더불어 소박한 삶을 즐기고 나누며, 지역의 자연친화적인 농산물을 먹고 , 소유하지 않는 에너지 자립적인 건축과 아이들을 생태 공동체교육을 하는 공동육아와 대안학교에 보내고 의료생협에서 진료를 하고, 민초들이 출자한 은행에서 삶에 필요한 자본을 대여하고, 소박하게 이웃과 가족들 앞에서 평화로운 죽음을 맞이하고 상조공제를 통해 죽음의 예를 함께 하는 게 꿈인가?
모두를 포괄하는 새로운 노동체계를 지향하지 못하고 욕망과 권력을 통한 문제 해결방식에 집착하는 한 자립과 자족의 사회는 더디게 올 것이다.
6. 지역사회에서 전개해야 될 공동체운동들
생협의 주인은 조합원이다. 조합원들이 할수 있는 일을 발굴하고 판을 만들어야 한다. 작은 일은 작은대로 큰일은 큰대로 고민해야 한다. 의료생협도 만들 수 있어야 하고 다양한 복지와 관련된 협동조합도 고려해 보아야 한다. 지역 화폐운동도 좋다.
지역의 이웃하는 단체들과 연대의식을 가져야 한다. 다음은 일상에 필요한 운동이다. 만일 누군가 하고 있다면 연대하고 같이 해야 한다. 그것이 지역공동체 네트워크를 만들어 가는 첫 출발이다. 그것은 결국 도시에서는 지역공동체운동을 중심으로 농촌에서는 마을공동체운동을 중심으로 생협 운동의 구심을 잡아가는 과정이다.
1)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노동 공동체운동
워커즈도 좋고, 소수의 공동체(반찬 공동체, 바느질 공동체) 그것을 지역매장에서 취급하자.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조합원들의 노동공체를 통해 생산하고 자급하는 노력을 길러야 한다.
2)공교육과 대안교육운동
교육은 제2의 변혁운동이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교육문제를 가지고 토론하고 배울수 있는 모임에서부터 시작하자. 공교육에서 개혁하고 바꾸어야 할 것과 대안교육으로 풀어야 할것들을 나누어 실천하자.
3)시민노동 만들기
나눔과 봉사의 운동으로 일상에 필요한 일들을 공동체운동으로 만들자. 저소득층을 위한 마이크로 크레딧 운동, 자원재생 공동체운동, 도서순환운동, 독거노인이나 노인계층을 위한 운동, 방과후 학교, 다양한 생협 공동체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4)평화운동이 필요하다.
이명박 정부 들어 남북관계가 급속히 경색되고 있다. 여전히 북쪽과의 민간 교류를 활성화해야 한다. 북한산농산물을 가공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주변국의 생협운동 평화운동과 활발한 연대를 해야 한다. 동아시의 민중평화연대를 통해 국가와 자본의 욕망의 도발을 막아야 한다.
5)마음살림운동을 하자
초기 생명운동은 정농회든 한살림이든 생명살림의 큰 뜻을 품고 시작되었고 그 정신과 사상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나 이제 생명농업의 화두였던 유기농업(친환경농업)이 제도화되고 대중화되면서 생명농업 본래의 취지는 대안이 대체농업으로서의 이미지를 가지고 생산력중심으로 가고 있다. 또한 도시에서는 생협을 중심으로 ‘몸 살림’만의 안전한 먹거리 운동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이기적인 몸살림 운동이 상업주의와 결합할 때 생협운동과 생명농업운동은 위기에 빠지는 것이다.
그러나 생명운동의 핵심은 생명개체가 우주적 존재로서 자연과 더불어 이웃과 더불어 사는 운동이다. 그것의 중심에는 우주적존재로의 각성과 이웃과 자연을 향한 살림의 마음을 키우는 ‘마음살림’운동이 있다. 내 것을 내어 공동체의 것으로 만들고, 내게 남는 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과 나누고, 내 삶과 노동을 나누는 마음살림이 있어야 한다. 겸손하고, 검약하고, 자애의 마음을 가지는 운동을 하자. 이 ‘마음살림’운동이 생협운동과 생명농업의 활동가들 내면에 자리 잡고 진행 될 때 우리사회의 생명운동은 한 단계 진전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평화의 마음운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