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오보(甲午譜)’ 서문에는 풍천노씨(豊川盧氏)가 정직(情職)과 거경(鉅卿), 문장(文章)과 충렬(忠烈)로 나라를 빛낸 분이 많았을 뿐 아니라 도학(道學) 효우(孝友) 은덕(隱德) 행의(行義)로 이름을 알린 분이 그치지 않았다고 하였다. 이런 말에 걸맞게 풍천노씨(豊川盧氏) ‘대동보(大同譜)’ 손록(孫錄)을 보면 관환(官宦)과 학덕(學德), 청백(淸白), 효제(孝悌)로 입신(立身)한 분들이 눈에 띈다. 이를테면 3세 노준(盧俊)은 고려조에 호부상서(戶部尙書)에 올랐고 아들 노정(盧貞)은 검교군기감(檢校軍器監)을 지냈다. 5세 노서린(盧瑞麟)은 고려조에 문과에 올라 판사재사사(判司宰寺事)를 지냈으며 아들 노천계(盧天桂) 역시 문과에 급제한 분으로 승사랑(承仕郞)을 거쳐 용구현령(龍駒縣令)을 역임했다. 노흥길(盧興吉)은 그의 아들이다. 고려 우왕 1년 도병마사(都兵馬使) 이순(李順)의 휘하에서 의주성(義州城)에 출진(出陣)한 것을 비롯하여 도순문사(都巡問使) 심덕부(沈德符)를 따라 평양성(平壤城)에 유진(留陣)하였고 돌아와서는 좌우위보승랑장(左右衛保勝郞將)에 제배(除拜)된 분이다. 풍천노씨(豊川盧氏)의 상계(上系) 인물들은 이렇듯 환번을 이었다. 그러나 풍천노씨(豊川盧氏)를 나라 안의 현족(顯族)으로 터를 굳힌 분은 그의 손자 노숙동(盧叔仝)이라 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그의 자(字)는 화중(和仲), 호(號)는 송재(松齋)로, 조선 태종 3년에 태어났다. 세종 9년에 문과에 올라 18년에 중시(重試)에 합격할 만큼 학문이 뛰어난 분이다. 한림주서(翰林注書)와 사인(舍人)을 거쳐 예조참판(禮曹參判), 예문관제학(藝文館提學)에 이르렀고 대사헌(大司憲)을 끝으로 일생을 마쳤다. 학문에 깊은 뜻을 두어 항상 집현전파(集賢殿派)로 경서에 탐익했으며 삼도(三道)등 외직(外職)으로 나갔을 때에는 선정(善政)으로 청백리(淸白吏)에 녹선(錄選)되기도 한 풍천노씨(豊川盧氏)가 자랑하는 인물이가. 문집(文集)으로 ‘황화집(皇華集)’등을 남겼고 숙종 때 도곡서원(道谷書院)에 향사(享祀)되었다. 특히 종문(宗門)의 현창(顯彰)에도 힘을 썼기에 ‘을사보(乙巳譜)’ 서문에는 그가 종보(宗譜)를 정리한 공을 기리고 있다. 노윤은 그의 큰 아들로 사마시(司馬試)를 거쳐 벼승은 장예원사평(掌隸院司平) 등을 지냈는데 영의정(領議政)을 지낸 정총(鄭摠)이 그의 처조부(妻祖父)가 됭다. 둘째 아들 노분(盧昐)은 자(字)는 언승(彦昇), 호(號)는 졸재재(拙在齋)이다. 세조 때 승문원박사(承文院博士)와 예문관봉교(藝文館奉敎), 승문원주한(承文院注翰)을 지낸 뒤 발탁되어 예문관교리(藝文館校理)를 역임하면서 점필재 김종직(金宗直)과 더불어 옥당(玉堂)에서 수사사업(修史事業)에 관여하였다. 풍천노씨(豊川盧氏)가 자랑하는 문한(文翰)이라 하겠다. 충순위공파(忠順衛公派)로 노기(盧祺), 손자 노건(盧腱), 참의공파(參議公派)의 노기의 아우 노지(盧祉)와 아들 노사엄(盧士儼) 등이 알려진 인물들이었다. 나암공파(懶菴公派)로는 노우량(盧友良)이 효행으로 지평(持平)에 증직되었으며, 경암공파(敬菴公派)의 노우명(盧友明)은 학행이 뛰어나 김안국(金安國)의 천거로 현릉참봉(顯陵參奉)에 제수(除授)되었고 다시 기묘명현(己卯名賢)으로 천거된 분이다. 손자 노사준(盧士俊) 역시 효행으로 참판(參判)에 증직된 분이고 아우 노사예(盧士豫)도 효행(孝行)이 알려져 정려(旌閭)되었다. 노사개는 둘째 아우다. 문필(文筆)과 효행(孝行)이 뛰어나 효릉참봉(孝陵參奉)에 제수(除授)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풍천노씨(豊川盧氏)의 대표적인 인물은 노진이다. 그는 문효공파(文孝公派)의 파조(派祖)가 된다. 노진의 자(字)는 자응(子膺), 호는 즉암(則菴)이며, 학자로 세칭 옥계선생(玉溪先生)이라 했다. 중종 1년 문과에 올라 옥서(玉署), 은대(銀臺)를 거쳐 선조의 특명으로 영남백(領南伯)과 양관(兩館) 제학(提學)이 되었고 경연(經筵)에 나아갔다. 이퇴계(李退溪)ㆍ조남명(曺南溟)ㆍ노수신(盧守愼)ㆍ김인원(金麟原)ㆍ이준백(李俊白) 등과 도의(道義)로 사귀었으며 특히 지례현감(知禮縣監)으로 있을 때는 치적(治積)이 많아 청백리(淸白吏)에 뽑히기도 했다. 대사간(大司諫)을 거쳐 이조판서(吏曹判書)가 그의 마지막 관직이었다. 문형(文衡)에 열(列)하였으며 문효(文孝)라 시호(諡號)된 분으로 함양(咸陽)의 당천서원과 남원(南原)의 창주서원(滄州書院)에 제향(祭享)되었다. 아들 노사훈(盧士訓) 역시 뛰어난 분이었다. 중종 때 진사(進士)에 합격, 천거로 별제(別提)와 별검(別檢)에 제배(除拜)되었고 특히 필법이 탁월했다고 한다. 노승(盧勝)은 노사훈(盧士訓)의 아들로 선조 때 학행(學行)이 알려져 순릉참봉(順陵參奉)에 제수(除授)되었다. 청백리(淸白吏)의 후손이어서 부사과(副司果)를 거쳐 제용감(濟用監)까지 오른 분이다. 노사회(盧士誨)는 노진의 아들 7형제 중 둘째다. 자는 계시(啓時), 호(號)는 습열(習悅)이다. 일찍이 월사(月沙) 이정구(李廷龜) 등과 도의(道義)의 교(交)를 맺고 음사(蔭仕)로 헌릉참봉(獻陵參奉)이 된 뒤 예산군수(禮山郡守) 등을 거쳐 공조좌랑(工曹佐郞)과 정랑(正郞)을 지냈고, 유성룡(柳成龍)의 천거로 부산군수(釜山郡守)로 나아갔다. 노형필(盧亨弼)은 노진의 증손이고 노사신(盧士新)의 손자다. 선조 때 학행으로 참봉(參奉)에 제배(除拜)된 뒤, 봉림대군(鳳林大君)의 사부(師傅)가 되었으며 장여헌(張旅軒)의 문하(門下)에서 수학(修學)한 분이다. 풍천노씨(豊川盧氏)의 역대 인물 중에는, 벼슬길을 마다하고 학생과 효양(孝養)으로 평생을 보낸 이들도 많다. 노사해(盧士海)의 아들 노?(盧?吉 )과 그 아들 노형후(盧亨後), 노승(盧勝)의 아들 노형우(盧亨遇), 노사흔의 아들 노척(盧脊), 노우영(盧友英)의 아들 노상(盧祥) 등이 그런 인물들이었다. 문효공파(文孝公派)로 이 분들 말고도 노사예(盧士譽)의 아들 노?((盧示+斤+口)과 손자 노형서도 물론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사암공파(徙菴公派)로는 노관이 진사(進士)에 합격, 학행으로 천거되어 동몽교관(童蒙敎官)과 제원찰방(濟原察訪)을 지냈는데, 조남명(曺南溟)ㆍ임갈천(林葛川)ㆍ오덕계(吳德溪) 등과 도의(道義)로 사귄 문인(文人)이었다. 처사공파(處士公派)로는 앞서 본 노우영(盧友英)과 그 아들 노상(盧祥)ㆍ노사위(盧士偉)ㆍ노수(盧脩) 등 3대가 유명했다. 학문과 음보(蔭補)로 벼슬길에 오른 분들이다. 교위공파(校尉公派)로는 노개방(盧蓋邦)이 선조조에 문과에 올라 동래교수(東萊敎授)로 있다가 임진왜란 때 순절, 송시열(宋時烈)이 충열비문(忠烈碑文)을 지었다. 노형하(盧亨夏)는 인조 때의 인물이다. 진사시(進士試)에 합격, 사림(士林)의 존경을 받아 팔미군자(八美君子)라는 별호를 얻은 분이다. 다시 인조 26년에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승문원정언(承文院正言)을 지냈는데 특히 시문(詩文)에 능했다고 한다. 풍천노씨(豊川盧氏)의 역대 인물들 중에서 몇몇 분을 통하여 씨족의 모습을 본 셈이다. 곧 환로(宦路)에 나아가 현직(顯職)에 오른 분도 있지만 학행과 효양(孝養)으로 이름이 알려져 종문(宗門)을 빛 낸 분도 많았고, 그런 뜻이 깊어 사림(士林)의 신분으로 평생을 학문으로 지낸 분도 많다. 기절(氣節)의 혈통이 강한 씨족임을 엿볼 수 있다. 이런 전통을 상징적으로 말해주는 분이 한말(韓末) 독립운동으로 평생을 바친 유명한 노백린(盧伯麟)장군일 것이다. 그는 일본에 건너가 경응의숙(慶應義塾) 보통과(普通科)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귀국해서 육군 정령(正領)에 임명되어 관립무관학교(官立武官學校)의 교육국장ㆍ교장 등을 지냈다. 1907년 안창호(安昌浩) 등과 신민회(新民會)를 조직, 국권회복을 위해 활약하였으나 군대가 해산당하자 고향에 내려가 광산(鑛山)ㆍ피혁상(皮革商) 등을 경영하였다. 1914년 박용만(朴容萬) 등과 함께 국민군단(國民軍團)을 창설, 군사훈련을 실시하였고 3.1운동 후에는 상해로 망명하여 임시정부 군무총장(軍務總長)을 지내기도 하였다. 1920년 비행기 양성소를 설립하여 비행사를 양성하는 등 일생동안 항일운동에 투신하였으나 상해에서 병사하였다. 1962년 그의 높은 항일정신을 기려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복장(複章)이 수여되었다.
항렬표(行列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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