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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품 -> 정신 -> 마음 -> 뜻 -> 육근 |
그러니까 상전급(범부)까지는 <육신(육근), 뜻, 마음> 이 세계에서 살아요. 선악의 마음, 구별하는 마음. (이런 마음으로 삽니다.) 그러나 이제 항마위가 되면 <정신, 성품>의 세계로 진입하는 거예요, 확실히.
어떤 판단이나 결정을 이것(마음)에 속지 않습니다. 이 <정신>으로 판단할 수 있는 거예요. 견성을 했기 때문에 그렇고 마음에 힘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회에서는 일만시간의 법칙을 이야기하기도 하지요. 하루에 세 시간씩 십년을 하면 일만시간이 됩니다. 그러면 변화가 있어진답니다. 수행을 하루 세시간씩 하는 사람은 많지 않지요. 대종사님은 24시간 하라고 상시응용주의사항을 주셨는데 잘 안하죠. 그래서 상시응용주의사항을 제대로 하면 삼년이면 된다고 하신거예요.
범부들은 감정에 속고 마음에 속습니다. 그러나 상전급이 되면 이제 알기는 아는데 (마음과 감정에) 많이 지죠. 하지만 항마위는 아는 것뿐만 아니라 (마구니의) 마음이 나도 지지는 않아요. 그런다고 해서 내가 마음대로 갖고 놀지는 못합니다.
이때가 이제 항마위입니다.
그 다음 읽겠습니다.
3. 대산 종사 말씀하시기를「항마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견성을 해야 하느니라. 그러나 대종사께서는 돌아오는 시대에는 견성은 어려서 집에서 하고 대정력을 익히기 위해 스승을 찾아다니게 될 것이라고 하셨느니라.」
항마위는 견성을 해야 합니다. 견성을 했다는 것은 아까 이 마음에서 넘어서서 성품자리까지 (간 것입니다).
정전에 보면 ‘대소유무에 걸림이 없다’라는 표현이 있는데요. 대소유무 중에서 ‘대’자리를 깨친 것을 초견성이라고 해요. 그 다음 ‘소’자리를 깨친 것을 중견성. ‘유무’자리까지 간 것을 상견성이라고 합니다.
유무자리까지 가야지 대소유무에 걸림이 없어요.
그러니까 이때(육근, 뜻, 마음)까지는 법에 의지하고 서원과 신에 의지해서 하죠. 그러나 여기(정신)서부터 즉, 항마위부터는 이제 자성의 정혜계 공부를 하는 거예요. 자성자리, 즉 견성을 했기 때문에 그 자리에 비춰봐서 자성반조 회광반조 공부를 합니다. 마음의 원리로 비추면 싹 녹는 거예요. 어떤 경계가 와도 다 녹여낼 수 있습니다. 항마가 되면. 그렇다고해서 아무 감정도 없고 아프지도 않고 그렇지는 않습니다. 쓰리고 아프고 그럽니다. 그러나 성품자리에 탁 한 번 들어갔다 나오면 깨끗해집니다. 왜? 성품자리가 내 본래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항마위가 되면 말을 해도 대체적으로 법에 맞습니다. 안이비설신의 육근도 육법이라고 합니다. 대개 법이 아닌 짓은 안합니다.
앞으로 미래시대에 견성은 어렸을 때 집에서 하고, 큰 스승 만나서 성불제중하기 위해서 수행한다고 합니다. 견성 그거 별거 아니예요.
견성도 무엇으로 하냐하면 서원과 신으로 뚫는 거예요. 서원과 신이 없으면 견성하기 어렵습니다. 머리 좋다고 서울대 들어간 사람이라고 (견성하는거) 그거 아니예요.
의심을 뚫는 것은 이 서원과 신으로 뚫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의심을 통해서 견성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교당에 다니지만 인과에 대한 생각이라든가 또는 성품, 온전한 정신, 마음의 원리를 깊이 있게 (공부하셔야 합니다.)
처음에 원불교에서 ‘앗! 경계다’ 하면서 마음을 대조하는 공부를 하는데, 이것은 법에 의해서 마음을 대치하는 즉, 분별이 분별을 대치하는 공부예요.
그런데 이제 항마위가 되면 대치공부가 아니라 반조공부가 되는 것입니다. 회광반조 공부가 이제부터 확실히 되는 거예요. 법마상전때도 어느 정도는 해요. 그러나 (항마위부터) 확실하게 대소유무에 이치에 걸림이 없고 확실하게 성리에 대조해서 공부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어떤 경계가 와도 툭툭 털어집니다.
상전급까지만 해도 화가 나는 일도 많고 마음에 꺼림칙한 것도 많아요. 그런데 항마위만 되면 마음 안에서 묘하게 여유가 있어집니다. 그리고 뭔가 생각을 하게 되면 딱딱 가리가 납니다. 금년에 법위사정이 있는데 우리교당에 일곱명 정도가 항마위 예비 후보입니다.
자 그 다음 읽겠습니다.
4. 대산 종사 말씀하시기를「앞으로 법강항마위를 사정할 때에는 재색명리에 큰 허물이 없고, 스승과 동지와 심심상련 법법상법 하는 신맥이 있고, 일원의 진리를 믿고 이 회상에서 영겁토록 물러서지 않을 심법을 갖추었는가를 표준으로 하라.」
법강항마위 사정을 할 때 어떻게 하냐하면,
첫째는, 재생명리에 큰 허물이 없다.
그러면 젊을 때는 허물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래서 3년 기간동안이라고 했습니다. 어렸을 때 똥 안 싼 사람 있어요? 젊을 때 저금통 안 훔친 놈 있어? 드물죠? 젊었을 때 일을 보는 게 아니라 3년 내에 그것을 보는 겁니다.
둘째는. 스승과 동지간의 심신상련 법법상련 하는 신맥이 있는가,
이제 공부를 해보면 스승에 대해서 눈이 달라져요. 처음에는 교무님이 예뻐해주니까 스승님이 좋아요. 그리고 자기에게 속 시원한 소리를 해주니까 스승이 좋습니다. 그런데 항마위즈음 되면 그 스승의 지혜! 그 혈성! 스승의 심법!이 보입니다. 해보니까 보이는 거예요. 막 시집간 딸이 ‘어매~ 우리 엄마가 이랬었네~’ 하는 것과 같은 것이죠. 그래서 효심이 나는 것과 같아요. 항마위가 되면 스승에 대한 생각이 달라집니다. 그냥 막연한 스승이 아니라 ‘아! 이런 스승이구나, 이런걸 참고 이런걸 인내하고 그 자리에 가신 어른이시구나!’ 하고 진정으로 우러나는 신심이 나오는 거예요.
일원상의 진리에 보면 <제불제성의 심인>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즉, <모든 부처님 모든 성자의 마음자리> 이것이 항마위가 되면 보입니다. ‘아~ 이게 마음자리구나. 그 혈성과 그 심법 그 마음으로 사신 어른들이구나~’ 이게 보이게 되는 것이죠.
셋째는, 이 회상에서 물러나지 않을 심법을 갖췄는가.
그래서 항마위가 되면 위법망구라고 해요 법을 위해서 몸을 잊습니다.
교화하라고 하면 “아이고~ 교무님 부담스럽게 그런 말씀 마세요~”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은 아직 멀었습니다. 위법망구가 아니예요, 아직 상전이예요. 상전까지는 자기 코가 석자고 자기가 우주의 중심이예요. 범부는 그래요. 범부라는 것은 자기 안의 무의식 또는 에고 또는 분별 주착심의 세계가 주인공으로 사는 거예요. 그래서 몸이 아주 크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죠.
사실, 몸이 진짜 중요하잖아요. 근데 ‘ 나중엔 없어질 것이다. 그리고 이 불사를 위해서 제생의세를 위해서 이 몸을 건강히 해야겠다.’ 고 하면 항마위죠. 상전급은 그게 아니고 ‘오매~ 이 내 몸 어떻게든지 아껴야지!’ 하는 것이죠. 이 몸이 아직 나예요.
항마위는 달라요. 이 몸이 내가 아니면서 나다, 하면 그게 항마위예요.
이 몸이 나다! 하면 아직 항마 아니예요.
그 다음 읽어요.
5. 대산 종사 말씀하시기를「대종사께서는 무관사에 동하지 않고 계문을 범하지 않으며 교단과 생명을 같이 여기는 사람을 거진출진의 표준으로 삼으라 하셨나니, 이 법을 위하여 죽어도 그 마음이 변치 않고 이 회상을 위하여 죽도록 봉사하는 마음을 가지며 재색명리에 큰 허물이 없으면 항마니라. 우리 재가 교도 중에는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으면서도 죽어도 변치 않고 죽어도 회상을 위해 일하고 법을 지켜나가고자 하는 이러한 거진출진단이 많이 있느니라.」
우리 재가교도님들은 이런 분들 많거든요. 원불교의 무서운 힘입니다 이게. 아 제가 놀랄 때가 많아요. 이번에 우리 동기 교무가 “출가자는 재가교도를 통해서 자기 마음공부를 확인하게 된다.” 이런 표현을 하더라고요. 제가 원남교당에서 처음 근무했잖아요. 그때 정말 재가교도를 통해서 공부를 많이 한 것 같아요. 원남교당은 출가위가 여러명이고 대호법이 여러명입니다.
우리 교당은 아직 한 명도 없습니다. 원남교당 역사나 안암교당 역사나 별 차이가 없습니다. 근데도 우리는 아직까지 출가위가 한 명도 없어요.
이번에 제가 무식해서 예비출가위를 한 분 올리려고 교구에 전화를 했더니 우리 동기인 사무국장이 “출가위는 종법사님이 추천하는거여~” 그래요. 무슨 이야기냐, 출가위는 종법사님이 안다 이 말이예요. 즉, 종법사님이 그 사람이 누군지 잘 모른다~ 그러면 아직 그 사람은 출가위가 아니다~ 그 말이예요. 감 잡혀요? 무슨 말인지 알겠죠?
항마위는 국집에 빠져있어요. 아직 국을 못 넘어섰어요. 자기 항마는 해요~ 자기 재색명리는 넘어섰어요. 그런데 그 국이 툭 터지진 못했어요. 항마위가 잘못하면 대접받는 재미로 살아요. 어디 가면 환영 받거든요. 항마만 되도 자기가 맘만 먹으면 돈도 벌 수 있고, 마음 먹으면 사업도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국이 툭 트질 못해요. 그래서 불퇴전인 출가위에 가지 않으면 여러 생을 걸치다 강급해 버려요.
여러분 이 회상 만났을 때 최소한 항마는 해야 하고 더 나아가서 출가위에 가셔야 해요.
제가 여러분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을 말씀드립니다. 이 회상 만났을 때 여래위를 목표로 하시고 최소한 출가위는 가십시오.
누가 그러대요. 몸 바꿔서 다시 할란다고. 하이고~ 여러분! 죽을 때는 어떻게 죽어요? 막 쌩쌩해서 나 이제 간다~ 하고 죽어요? 언제 간지도 모르게 막 가 정신없이 가요. 근데 내 생에 와서 딱 찾아와서 또 공부 할란다고?! 그거 정말 쉽지 않아요.
이 법을 위하고 회상을 위해서 죽어도 변치 않는 마음. 위법망구.
왜 그럴까요? 하나는 스승의 은혜를 입어서 그런 것이고, 하나는 깨쳐서 그런 거예요. 이게(이 몸, 한 개체)가 나가 아니고, 다 ‘나’ 고 이것이 가장 ‘나’를 위한 길인 것을 아는 것이예요. 그러니까 죽어도 변함이 없는 거예요. 나라는 존재는 텅~비어서 이렇게 있는 존재예요. 이게 나라는 거예요.
그런데 범부들-상전급까지는 그렇지 않아요. 텅 빈 나가 아니라 이만한 뭐가 들어있어요. 그러니까 죽도록 까지는 안해요~ ‘나는 어쩌라고~~’ 하는 마음이 들죠.
6번 읽겠습니다.
6. 대산 종사 말씀하시기를「법강항마위는 심신조복이니 내 육신을 조복 받는 자리가 바로 항마니라. 그러므로 어떠한 법력을 가졌다 할지라도 심신을 조복을 하지 못하면 항마는 아니니라.」
상전급에서는 심신이 교전한다고 합니다. 막 싸워요. 근데 상전급 때도 속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힘이 없어요. 그래서 막 져요. 그런데 항마위가 되면 이제 조복을 받는다. 쉽게 말해서 육신이 나를 어떻게 못해요. 쉽게 말하면 마음이 육신을 이기는 거예요. 상전급에는 육신이 이겼다 졌다~ 그러거든요. 그런데 항마위가 되면 육신은 마음 아래로 가는 것입니다. 마음을 딱 먹으면 육신은 따라오게 되어 있어요. 육신이 이겨 먹지는 않아요.
그 다음 넘어갑니다.
7. 대산 종사, 항마의 표준을 잡아주시기를「일체 닻줄을 모두 끊어버려라. 애착 ․ 탐착 ․ 원착의 밧줄을 사정없이 끊어버려라. 그리고 무관사에 동하지 말라. 이제는 형제 자녀들이 자기 일 자기가 알아서 할 것이니 공연히 뛰어들어 간섭하지 말고 부모로서 자기 할 일 만 챙기라. 이 표준은 대종사님께서 노년에 공부할 강령을 정해 주신 것이니라.」
노년에는 일체 애착, 탐착, 원착을 다 끊어버리라는 것이죠.
이게 쉽나요? 자식 손자들에 대한 부분이 잘 안되죠. 재가자 항마위의 표준은 재색과 무관사 부동입니다. 출가자 항마위의 표준은 명리라고 했어요. 무관사에 동한다는 것이 뭐예요? 나하고 상관없는 것에 자꾸 동한다는 것이죠. 며느리가 냉장고에 패스트푸드를 먹든 말든 냅 두세요. 자기 알아서 살으라고. 손자들 이렇게 키우라고 하면 말 좀 들어요~ 꼭 ‘옛날에는 괜찮았어야’ 이러지 말고, 이게 무관사에 동하는 것이예요. 위생적으로 문제가 있다고하면 그러냐~, 하면 되지 우리 때는 그래도 괜찮았다고 하니까 시어머니를 띵겨 버리잖아요. 그게 세대차이예요. 처처불상 사사불공이라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그 사람의 입장에서 그 사람의 말을 들어주고 그 사람의 마음을 기분 좋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상전급하고 항마위가 잘 걸리는 것이 시비예요. 특히 상전급 때는 막 시비를 따집니다. 범부 중에 고급 범부가 있어요. 고급 중생(이라고도 하죠). 고급 중생은요 이 시비를 잘 따져요. 시비지심 많아요. 그것에 넘어집니다. 진짜 중생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이죠. 그러나 조금 고급 중생은 다른 사람에 시비를 보면 용납이 안돼요. 시비를 넘어선 자리가 비로소 성품자리입니다.
그 시비를 보고 모르쇠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시비를 딱 봐서 사사불공 은혜가 되게 가져갑니다. 이것이 항마위입니다.
특히 노년에는 닻줄을 끊어 버려야 해요. 내 코가 석자예요. 내생에 출가위를 못 올라가서 강급기를 맞아서 강급을 할 수도 있어요. 내 코가 석자예요.
자 넘어갑니다.
8. 대산 종사 말씀하시기를「항마를 할 때에는 삼천대천세계가 다 동원되어 시험을 하나니 그 하나는 구렁으로 밀어 넣는 것이요 또 하나는 이끌어 올리는 것이니라. 그 대표적인 것이 불신과 탐욕, 나와 우로 천만난만으로 우리를 구렁에 밀어 넣으려 하나니 항마에서는 자칫하면 재색명리와 권리에 빠져 퇴전을 하기 쉽느니라.」
항마위는 불퇴전이 아닙니다. 퇴전하기 쉬워요. 항마를 할래도 엄청나게 시험이 많아요. 건강을 확 무너뜨린 다던가, 가족 인연이 문제가 생긴다던가, 사업적으로 문제가 나게 한다던가, 억울한 일을 당하게 한다던가, 자기가 생각할 때는 이것이 옳은데 틀리다고 한다던가. (하는 시험이 있습니다.)
그 때 속 깊이 공부하고 신맥을 댄 사람, 서원이 확실하고 반조한 사람은 그것이 서원하고 비교가 안되는거예요. 자기가 안다는 것이 들어가면 내가 여기 뭐하러 왔는가 잊어버려고 던져버려요. 따지고 달려들고 난리죠.
자식들도 좀 크다가 보면 이제 자기가 좀 컸다고 부모한테 막 이 소리 저 소리 하죠? 그러듯이 그래요. 교도들도 조금 크면 교무한테 대들어요. 그러면 부모가 뭐라고 해요? 너가 좀 컸다고 그러는구나 그러잖아요.
(시험을 할 때) 밀어 넣어서 시험을 하기도 하고, 끌어 올려서 - 즉 명예를 줘요~ 그래가지고 또 시험을 하기도 해요. 그래서 그걸 넘어가셔야 해요. 대종경에도 ‘시험이 있다’ 는 법문에도 나오죠? 요새 회사에서도 신입직원이 쓸만한 것 같으면 한 번 더 (시험을) 거치잖아요. 사장이 지갑을 살짝 흘려 놔본다던지 아니면 만지지 말라고 해놓고 만지고 싶은걸 둔다던지.. 그래놓고 살짝만 만져도 알 수 있게 흔적을 만들어놓고 갑니다. 만졌는가 안만졌는가 보는 것이죠.. 우리 대산종사님도 대종사께서 이 책을 보라고 말을 안했으니까 안 봤다고 하잖아요. 정산종사님도 대종사님이 전주는 들리지 말라고 하니 전주 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고 하잖아요. 그것이 항마위예요.
범부는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가요. 어릴 때 보면 그 사람이 싹이 있잖아요. 그 싹 중에 나태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요. 행동도 나태할 뿐만 아니라 생각도 나태해요. 말도 느리게 하고 행동도 느리게 하고 뭐 하라고 하면 다음에 할께요, 하는 사람이 있어요. 이런 사람은 항마위에 올라가기 어렵습니다. 왜? 이 세상에 나태한 사람이 성공한 예는 없습니다. 잠자기 대회에서나 성공하려나 몰라도요.
자 그 다음 읽겠습니다.
9. 대산 종사 말씀하시기를「대종사께서는 같은 위, 같은 급이라도 천층만층이 있다 하시며, 수양과에 능한 항마도 있고 연구과에 능한 항마도 있으며 취사과에 능한 항마도 있다 하셨느니라. 특히 재가교도들은 연구과는 좀 부족하나 수양과와 취사과에 능한 항마가 많으니 무관사에 동하지 않으면 다 항마로 올려주라는 말씀을 자주 해 주셨느니라.」
똑같은 사람 몸을 받아도 천층만층이듯이, 같은 항마위도 천층만층이예요. 똑같아요.
어떤 사람은 수양력이 뛰어난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연구력이 뛰어난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취사력이 뛰어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수양 연구 취사가 원래 하나예요. 공원정이 하나거든요 원래. 근데 자기 전생의 습관 이런 것 때문에 한편에 치우칠 수가 있고 또 환경따라 인연따라 치우칠 수가 있어요. 그러니까 재가교도는 수양과 취사는 능할 수가 있습니다. 근데 연구는 출가자가 강합니다. 제대로 배웠으니까요. 재가가 연구는 조금 약할 수가 있습니다. 물론 재가가 뛰어날 수가 있어요. 대체적으로 그렇다는 것입니다.
무관사에 동하냐 안하냐~ (무관사에 동하지 않으면 다 항마로 올려주라는 것입니다.) 무관사에 동하는 사람은 무슨 핑계가 그렇게 많은지 몰라요. 내가 적어서 책을 하나 내고 싶을 만큼 많아요. 하면 하는 것이지 무슨 놈의 핑계가 그렇게 많은지... 가기로 했으면 그냥 가는 거예요.
다음 읽으실께요.
10. 대산 종사 말씀하시기를「항마는 바람이 불고 소리가 나지만 항마 이상은 바람도 소리도 없느니라.」
항마는 소리가 납니다.
대종사님 당대에 대종사님하고 옆에 팔산님이나 또는 원산 서대원 선진님이 가면 허우대도 좋고 말씀도 좋고 그러니까 어떤 사람은 대종사님보다 더 높은 사람인줄 알았다고 합니다. 대종사님은 촌로, 촌노인같고..
출가와 여래는 별 소리가 안나요. 그러나 항마는 소리가 나요. 약간 척 병이 있습니다. 약간 잘난 척 하는게 있어요.
자 그 다음 읽겠습니다.
11. 대산 종사 말씀하시기를「마흔 살에 항마하면 여래판이니 그는 자기 공부를 마친 사람이기 때문이니라. 항마와 동시에 여래로 뛰어오르는 사람도 있고 항마에서 멈추는 사람도 있느니라.」
대종사님 당대에 정산 종사님 법위를 초반에 얼른 안 올리셨어요. 정산 종사님은 이미 어렸을 때 영통하시고 다 하셨거든요.
그러니까 집을 지어도 기초가 약하게 지은 집이 있고요, 기초가 튼튼하게 해서 지은 집이 있어요. 층수는 똑같아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래서 기초가 탄탄히 된 집은 항마가 되도 쭉 올라갈 수 있어요.
운동을 해도 기초가 탄탄한 사람이 계속 발전하잖아요. 그와 같아요. 그 기초가 뭐겠어요? 기초가 기본 교도로서의 사종의무 그리고 신과 서원이예요. 그리고 성리공부가 깊이 된 것. 그리고 복덕이 있어야 합니다. 복이 없으면 안되요.
복은 짓고 보는 것입니다. 근데 범부들은요 법을 지을 때 꼭 계산을 해요. 근데 항마위는 못 지어서 곤란해 해요. 그런데 범부들은 주판알을 튀기죠. 상전급까지도 튕겨요. 본래 그것까지 생각하지 않아요. 내 이름이 나겠냐 안 나겠냐, 박수 받겠냐 안 받겠냐 그걸 따지죠.
마흔살에 항마하면 여래판이다 했습니다. 마흔살에 항마하기 어렵습니다. 왜? 마흔살은 기운이 살이 있어요. 그래서 자기라는 것이 있고 욕심도 있습니다. 재색명리와 탐진치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걸 넘어서는 사람은 대단한 사람이죠.
항마위에서 멈추는 사람, 또는 바로 뛰어오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다음,
12. 대산 종사 말씀하시기를「항마가 어려운 것이 아니니라. 한 마음 잡아 조복 받으면 그것이 곧 항마이니, 항마를 하면 시기질투 재색명리가 없는 것이 아니라 있기는 있으되 그것으로 인해 본인이나 타인에게 해를 주지는 않느니라.」
항마를 하면 시기 질투 재색 명리 탐진치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있기는 있는데 본인이나 타인에게 해를 주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직 자유는 못해요.
한마음 조복 받으면 그것이 항마니라. 캬~ 얼마나 좋은 법문이예요!
야구로 말하면 연봉을 많이 받고 타율이 좋은 사람이 그 날 게임에서 스트라이크만 당하고 들어가는 경우가 있어요. 근데 연봉도 훨씬 적고 타율도 훨씬 낮은데 그 날만 싸이클링이라고 막 때려버리는 사람이 있죠. 홈런, 3안타 때려버리는 사람이 있어요. 그날 그 사람 뭐예요? 훨씬 더 실력을 발휘한 사람입니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기본 힘이 있는 것도 있지만 한 경계에서 한마음 챙기면 여래도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경계에서! 이해하시겠어요?
물론 공부 표준을 그 급에 맞게 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한 경계에서 한 마음 잡으면 출가에 마음을 쓸 수도 있고 여래의 마음을 쓸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하다보면 체험이 붙고 재미가 붙고 거기에 효과가 붙어요. 공덕이 붙어나가요.
여러분, 나는 아직 그냥 중생이다 이렇게만 생각하지 마시고, 한 경계에서 출가 심법으로! 한 경계에서 여래 심법으로! 마음을 써보세요.
그러면 묘하게 선물이 있어요.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너무 감사합니다.
정말 제선교우님의 정리는 꼼꼼합니다. ^^ 엄마되기 직전까지도 뭐든 열심히 하시는 제선교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