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로 보내온 행복
윤 기 한*
요즈음 젊은이들
튀어야 ‘짱’이 된다
법석을 떤다
고품격 메이크업에
복합 쇼핑몰 드나들며
카드결재 으스댄다
고수익 상장기업에
로또 복권 당첨률 챙기며
해피 엔딩 인생을 그린다
수채화 한 폭 그림은
포커 게임 끝머리도 아니고
씨알머리 없는 계집도 아니어라
인간의 굴레 벗지 못하고
신용불량 낙인에 붉어지는 얼굴
택배로 보내 온 행복이더냐
벼랑 끝에 날개 달고
번지점프 도망하려나
튀기는 왜 튀는고
장수풍뎅이
장수풍뎅이
네 놈의 짝짓기 격렬하구나
수액보충 재빠르게
산란지로 고행하는 암컷은
생명의 잉태
출생의 환희
끝을 모른다
제 알집 먹어 가며
애벌레 풍뎅이
일곱 달 채워서 번데기 변신
딱딱한 외피 둘러쓰고
한 해를 인고하는 집념
껍질 벗어 성충으로 자라지만
두 주간 삶에 서산이 불탄다
장수풍뎅이
그 이름이 아깝구나
골프하는 날
파란 잔디 위에
미인의 앞가슴 곡선을 닮아
업다운 잔물결이
페어웨이 간드러진 굽이굽이
어서 오라 손짓하니
자격미달 아마 골퍼
총알 같은 흰 공 날려
정복자 쾌감추구 맛보자고
안간 힘 큰 몸짓
어림없는 스윙 허리가 아프다
덤벼든 곰보 백구의 향연
쉽사리 내주지 않는 녹색의 장원
원망은 너의 것
날아가는 흰 공
창공을 뚫을 듯 쾌속질주
멀리 멀리 더 멀리
내 마음 욕심 부린 소원 싣고
후려친 그 힘 자랑스레 보일까
비거리 크다고 뽐내 볼까
빨래줄 직선 따라 날아가는 모습
스피드에 홀려서
즐거움 무한정 만끽하는
초원의 방랑자 되어라
골프하는 날
* 대전 출생, 문학박사, 충남대 명예교수, 국제 계관시인연합회원, 호서문학회원, 산시동인, kh-youn@hanmail.net
봄날에
최 송 석*
햇살 고운 봄날
마음 어지러워 문 걸어 잠그고
신열로 몸을 불태우다
질곡을 벗어나면
꽃이 피듯이
내 몸엔 열꽃이 피고
밖엔 무더기 꽃들이
함성을 지른다
횡단보도에 서서
빨간불, 파란불이 교차하는 횡단보도는
질서와 무질서가 함께 서성이는
타락한 도시의 율법이다
횡단선 앞에 머물러 선 무리들은
모였다 흩어지고, 흩어졌다 모이지만
종래는 각자 사방으로 흩어져야 할 길인데
나는 무리에 끼어 발길을 옮기며
자의식을 상실한 채 도시의 문명에 끌려가고 있다
이러다가 불이 꺼지는 상황이 오면
이 길을 어떻게 건너야 할지
순간 아득한 나락으로 가라앉는데
나는 지금 불빛의 색깔을 가늠하기 위해
피로한 신경을 고추세우며, 횡단보도 앞에서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서 있다
* 충남 예산 삽교 출생, 대전문인총연합회장, ≪시와 의식≫으로 등단, 시집 그림자를 위한 향연, 풀빛 바람 곁에서, 우리는 절망을 탄핵할 수 없다, 사화집 강물은 흘러도, 달빛 그림자, 불확정 시대의 휘파람소리 외 다수
만리포 내 사랑
변 재 열*
포구에 서면
저리로는 수평선
하늘 끝 물 끝 마주하며
입술 다문 바다 길
물길 없는 바다 위로 똑딱선 하나
갈매기 따라 어부는
배 갈 길을 열고
물고기 노는 마을을 기웃거리다가
돌아옴을 잊지 않는 내 착한 이웃들
포구에 서면
이리로는 방파제
물 끝 땅 끝 마주하여
입술을 연 바다 길
아이들은 만선의 깃발보다 더 큰
평화를 위해
가족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
너그러이 화답하는 사랑가
파도소리에 울림을 아는 남편
갈매기의 일생을 닮은 아내
바다가 성을 내도 더불어 살줄을 알고
갈매기가 울어도 보듬을 줄을 아는 이들
내 마음의 고향은 만리포라
태안 아라리오
잔잔한 수면에
물이 써면
바다 위엔 땅 땅
아프리카 대륙을 횡단하던 까마귀 떼가
펄 위에 길게 누워 있다
바위틈새 따개비
물 그리워 하품을 하면
떠나간 배 그리로
고개 내미는 망둥어
생명의 불씨를 지핀다
없는 듯 있는 낮은 숨소리
바다를 고향삼아
머드로 단장을 하고
시간의 언저리를 맴돌며
상생을 노래한다
까맣게 그을린 갯벌에
물이 밀리면
땅 땅 위에 바다
가나안의 젖빛이
사랑가에 맞춰 아라리오 춤을 춘다
바다목장
동백꽃 해당화 피는 마을을
그대는 아시나요
그리로 가면
너와 나의 가슴팍이 열리며
일상의 눈물이 고이 접어지는 곳
산으로 가면 산새
우리를 반기듯
바다길 하늘 아래
어머니의 체온이 살아 숨을 쉬는 곳
해 내림 낙조에 와도
생동의 미색으로 꽃 피우는
속삭임의 파도처럼
연인의 마음으로 일렁이는 곳
눈높이 수평선에선
섬들은 바다 위로 점점이 누워
하늘을 우러르고
갈매기 따라 만리포구는
희망이 넘치는 생명의 드림타운
사람들이 이 곳에 오면
파도는 어둠을 잠재우고
햇살 따라 쌍무지개
봄눈을 녹인다
* 충남 공주 출생, 1981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충남문화예술인상(문학부문), 대전문학상 수상, 시집 겨울바다, 보이지 않는 강, 멀리서 가까이서, 바람꽃 향기, 빈 잔의 메아리, 만리포 바람소리 등, 현 조치원중앙여중 교장
아내의 가을
박 상 일*
아내의 시력이 나를 따라오고 있다
긴 그림자를 끌고 정오를 지나
시간의 가장자리로 밀리는 나이테
세월을 바라보며 꿈꾸던 날들이
개었다 흐려지는 하늘처럼
하나 둘 사라지고 있다
한 계절 수놓았던 아내의 시력
내 뒤를 따라 온 지 몇 년
어디서 풀벌레 소리가 난다
보이지 않는 그 소리가
멀리 멀리 너울져 간다
멀어져 가는 풀벌레 소리
바람도 없는데
한 무더기 억새로 피어 흔들린다
어느 날 문득 나도 흔들린다
여름의 끝은 허전하다
기(氣) 싸움
집을 지키던 개가
송충이를 보고 짖는다
예의 주시하며
사뭇 고압적이다
바늘구멍 보다 작은
송충이의 눈이
독하게 쏘아본다
늦추지 않는
경계 태세
서로의 눈에선
예사롭지 않은
빛을 발하고 있다
가늠하지 못하는
빛과 빛의 잣대질
때로는 그 빛이
슬픔이기도 하고
외로움이기도 한
밀려나지 않으려는
팽팽한 긴장감
금세 짓밟아버릴
기세지만
그렇지도 않다
송충이는
송충이대로
흉측한 털을
곤두세우고
점점 거세어지는
적의(敵意)
온 몸으로
밀고 나가는
이 냉혹한
초읽기
* 충남 청양 출생, 1965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 「낙동강」으로 등단,
시집으로 그림자 잠을 깨고, 이 계절이 가고 나면, 신춘향가, 산수유꽃 피어도, 푸른 약속, 바람의 얼굴, 고향을 잃어버린 돌 등이 있음, ‘대전 문학상’, ‘대전광역시 문화상’, ‘한성기 문학상’을 수상하고 ‘옥조근정훈장’ 수훈
낡은 타이어를 보며
김 성 덕*
자꾸 자동차 핸들이 기우는 걸보니
바람이 새고 있나보다
수 없이 자갈길, 비포장도로를 가듯
세상을 살다보면 바람 새는 일이
어찌 헌 타이어뿐이겠는가
하늘 높이 떠돌다 기어이 터져버리고야 마는
고무풍선도 있는데
한겨울 창문을 꼭 닫아놓아도
시베리아에서 온 눈바람이 어느 사이
냉동된 마음까지 점령했다가
인사도 없이 빠져나가는 일이 다반사인 것을
허나, 올해는 꽃피는 봄날 조선무같이
세상의 무릎에도 바람이 든 것 같다
새는 것도 있는데 꽃바람이 든 걸 보면
아직도 제 발로
더 밟아갈 길이 남았다는 증거 아닌가
늦은 밤, 누런 타이어 몇 개
지하도 구석에 앉아 매화 향 묻은
시린 봄바람을 붙잡고 있다
들국화, 피다
봄은 남녘으로부터 다가오고
겨울은 북녘에서부터 숨어온다지만
비바람 치근대는 강 둔덕에 앉아
밤낮으로 기다렸던 그 정도 세월이면
눈물도 아픔도 상처까지도
이제는 모두 다 산화되지 않았을까만
아직도 피다, 피다
오늘마저 한탄강은 대답이 없다
소문보다 먼저 단풍드는 언덕으로
쇠기러기는 된서리를 물고 왔다는데
오늘 밤 마지막으로
이 가슴속에서 애끓는 그리움의 신열로
밤새도록 보라 꽃등을 켜 놓을 테니
강나루에 핏빛 어리기 전에
그대,
단숨에 달음박질해 왔으면 좋겠다
일 몰
늦가을은 잠시 서쪽하늘을 빌려
역 마당에 가마솥 걸고 라면을 삶는다
초상집 육개장 같은 시뻘건 국물 위에서
빛나는 주홍빛 달걀노른자
풍구질 곁불에도 일렁대는 포말에
남해바다 미역냄새가 난다
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돌아오고 돌아가는 사람들
어둠이 숨어들까 가슴을 단단히 여민다
돌아갈 고향이라도 있는 듯 기차를 기다리며
대합실 옥탑방에서 한둔하던
비둘기 몇 마리
노을감고 주저앉아 허기를 채운다
눈언저리에서 발등까지 묻어버린
핏빛 국물자국을 지우며
별처럼 네온사인 하나 둘 눈을 뜰 때
바람맞은 가랑잎들은
오늘도
기차를 타지 못한 채 서성대고 있다
* 경기도 남양 출생, 한밭대학교 교수, 포엠토피아 신춘문예로 등단(2003), 시집 가까운 듯 먼 그리움, 첫사랑 등,
sdkim31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