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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因緣)
이 대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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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물 알갱이들의 반란, 는개는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바람까지 일어 마치 바다에서 안개를 뿜어 올린 것처럼 는개는 환상의 포구를 만들어 갔다. 자연 현상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여러 가지 몽상을 지어낼 수도 있음을 처음으로 느끼는 순간이었다. 대낮부터 북방에서 날아 온 진한 황사가 시각을 무디게 하더니 이제는 취기까지 보태져 의식이 몽롱해져 간다.
여덟 평 남짓한 숙소에서 뛰쳐나와 바다를 보는 순간 나의 영혼은 는개에 부서지고 말았다. 바다가 어둠에 에워 쌓인 것이 아니라 는개가 어둠을 감싸고, 어둠이 바다에 그물을 두르고 있는 형국이었다. 그 속에 어항과 선박과 인간들이 갇혀 버둥대고 있었다. 어느덧 내 영육도 그물에 갇혀 부유하기 시작했다.
대전에서 승용차를 몰아 이 섬에 도착한 것은 저녁 무렵이었다. 공주와 청양, 그리고 홍성, 서산을 거쳐 태안으로 오는 동안 나는 내내 아내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녀와의 만남과 작금의 정황에 이르기까지 십여 년의 세월이 중첩되어 희비를 엮어갔다. 내가 감정의 혼돈에서 벗어난 것은 갈음리 해수욕장을 지난 연육교에서부터였다. 다리 밑에는 어패류들의 신음이 해풍을 몰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비명은 죽음의 냄새를 만들어 비릿한 형상들을 만들어냈다.
신진도는 간척사업으로 생겨난 새로운 어항이다. 방죽을 따라 갓 지은 숙박시설과 횟집들이 어항을 따라 줄지어 있는 곳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신진도는 섬이 아니라 육지이다. 태안군 근흥면에 자리한 이 곳은 근흥항의 기능을 인계받아 새로운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었다. 서해안 고속도로의 개통과 연포, 갈음리 해수욕장뿐만 아니라 인근의 만리포, 파도리 해수욕장 등 풍족한 천연자원을 갖고 있어 기하급수적으로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곳이기도 했다. 서해안의 각종 해산물을 맛볼 수 있을뿐더러 유람선을 타면 마도, 가의도, 옹도로 이어지는 천혜의 절경을 관람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더욱이 가까이는 인천, 멀리는 만주의 흙냄새까지 해풍을 통해 맡아 볼 수 있어 도심에서 쌓인 폐부의 찌꺼기들을 한 방에 날려 보낼 수 있는 곳이었다. 신 항의 개항과 함께 사시사철 외지인들이 드나들기 시작했고, 더불어 인근에는 모텔과 팬션이 하나 둘씩 들어서더니 근간에는 공급이 넘쳐 비수기에는 주인들의 끙끙 앓는 소리가 저녁을 노랗게 물들이곤 했다.
항구에 도착하자 나는 숙소를 정하는 대신 우선 횟집에 들러 소주를 한 잔 하기로 했다. 비수기라 묵을 숙소야 얼마든지 있을 것이며, 또 없으면 어떠랴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횟집 골목은 생각보다 한산했다. 뒤늦게 귀항한 어선에서 막 퍼 올린 고기들은 상인들에 의해 수족관으로 던져지고 있었다. 포획된 고기에게 그 곳은 막다른 삶의 공간이며 죽음의 냄새로 채워진 해수의 늪지대가 될 것이다.
나는 간재미와 개불을 시킨 후 바다가 보이는 이층 식당으로 올라가 자리를 잡았다. 부산어항이나 대천어항과 같이 1층에서 횟거리를 주문하여 이층에서 양념값을 지불하는 형태였다. 해풍의 쌀쌀함에 안에는 난로가 지펴 있고 바다는 이미 어둠에 깊어져 귀선들이 바쁘게 연기를 뿜어 올리고 있었다. 모퉁이에서 서너 명의 사내들이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나의 출현이 그들에게는 안중에도 없을 듯했다. 낮선 이방인, 그것도 초췌한 모습으로 홀로 찾아 든 사내에게 한 번쯤 눈길을 줄 듯도 했지만 뱃사람들은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소주잔에 하루의 시름을 잠재우는 그들의 눈엔 이미 노을이 지고 있었다. 그들은 뭍에서 흘러든 이방인의 행색에 관심을 갖기보다 어로장의 거친 숨소리에 더 집중해야 할 일이었다.
“세상사에 시름시름 앓다 가슴이 노래져 신진도로 날아 든 한 마리의 가리새, 평평한 부리의 천박성을 망각하고 관우(冠羽)가 아까워 ‘큐우리 큐우리’를 소리 내고 있는 희귀한 새.
나는 어쩌면 유정으로 변신을 치러 또 다른 진화를 위해 먼 곳으로 날아 온 한 마리의 가리새는 아니었을까? 유정이 진화를 하기 위해서는 육신을 재로 만드는 고행이 있어야 한다고 들었는데 행여 길을 잘못 접어든 것은 아닐까? 이곳에서 나는 어떻게 육신을 산화시킬 것인가?”
가부좌를 틀어 해신과 접신하려는 순간 개불이 소주와 함께 식탁에 놓여졌다. 순간 내 몸의 어딘가에 붙어 있던 하얀 깃이 우지직 부러지는 소리가 났던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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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당신께!
장마를 재촉하는 비가 새벽부터 내리고 있어요. 침대에서 떨어지는 딸아이의 꿈을 꾼 후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빗소리에 젖어들었지요. 누군가가 속삭이는 소리 같기도 하고 누군가가 다가오는 듯하기도 해요. 어쩌면 당신이 술 드신 후 길게 길게 이어가던 땅에 오줌 눟던 소리 같기도 하고.
이 곳에서 당신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한 지도 벌써 7년이 되었군요. ‘벌써’라는 표현을 하고 나니 웬지 어색한 느낌이 드네요. 일상어조차도 다른 감각으로 느끼게 하는 곳이 이 곳인가 봅니다. 기상 시간 전에 옆 사람 몰래 이불에서 몸을 빼어 벽에 기대는 것도, 차가운 냉기를 몸으로 품는 것도 이젠 익숙한 일상이 되어버렸습니다.
당신은 아시죠?
빗소리를 들으면 내가 글을 쓰곤 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이유가 무엇이라는 것도.
읍에서 이십 리, 면사무소에서 십리 반쯤 떨어진 당신의 시골집은 동화 속에나 나올 듯한 곳이었지요. 새마을 사업으로 개량작업을 한 신작로 옆 슬레이트 지붕에 균열이 가기 시작할 무렵, 당신과 나는 시골길을 가고 있었지요. 당신의 유년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산길을 걷던 때가 는개 내리는 초가을 무렵이었어요. 산 속에 집이 세 채 밖에 없어 같이 다닐 수 있는 친구가 있어야 입학할 수 있었기에 당신은 2년이나 늦게 초등학교에 입학했다고 하셨지요.
당신, 아세요? 그런 말을 한 후 당신의 얼굴에 쓸쓸함이 묻어났었다는 것을.
세 개의 능선을 넘고, 몇 개의 모퉁이를 돌았을까요? 당산나무 밑에 돌을 하나 올려놓으며 무언가를 우리가 기원할 때 까지. 그 때 나무는 바람을 통해 우리에게 울음을 보냈었지요. 휘돌아 가는 산바람, 또는 산신령에 당신은 전신을 의탁했겠지만 나에게는 오직 산풍이 짐승의 울음소리로만 들렸지요.
당신의 집이 눈에 들어오자 나는 두려움보다는 기쁨이 앞섰지요. 다른 이유보다도, 그곳은 사람이 사는 곳이었기 때문이었어요. 그런데 뜻밖에도, 동구 밖까지 마중 나온 세 가구 열다섯 명의 식구들은 정말 제게는 부담스런 존재들이었지요.
기억하세요? 이웃집 아주머니 두 분이 어디서 공주 같은 색시를 데려왔느냐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 하셨던 것을. 그리고 당신 식구 모르게 뒤에서 두런대던 소리들을.
한 분은 앞니가 많이 튀어나왔고, 또 한 분은 등이 심하게 구부러진 분이셨지요. 그러나 당신의 어머니는 그러지 않으셨어요. 뼈진 몸매에 옹찬 목소리를 갖고 계셨지요. 당신의 서느런 눈빛이 나의 허름한 도덕성을 꿰뚫고 지나가는 것 같았지요.
당신은 아세요? 제가 당신 집에 있는 내내 당신 어머니의 눈짓에 묶여 숨 한 번 크게 쉬지 못했다는 것을.
전쟁 통에 북에서 내려와 의탁했던 시골마을이 당신을 평생 가두어두리라고는 당신 자신도 전혀 모르셨겠지요. 숨 막혔던 세상사에 대한 당신의 속내를 내가 첫 대면에서 느낀 것도 어찌 보면 슬픈 인연의 또 다른 이어짐이 아니었을까요?
그래요, 평양에서 운동화를 신고 중학교까지 졸업했던 당신이 초등학교도 못나온 산 사내와의 결혼생활이란 어찌 보면 살기위한 삶의 한 방편이었다고 해야겠지요. 사랑이라는 언어는 배우지 말았어야 할, 버려야 할 지식어가 되었겠지요. 그래서 당신은 당신 어머니의 사랑스런 연인이자 남편이요, 아들이 되었겠지요. 사랑은 지식의 균형 속에서 싹틀 수 있는 행과 불행을 공유한 언어이니까요. 그래서 당신은 산비탈을 일구며 땡볕에 살이 타들어가도 우직했던 남편보다 당신을 먼저 생각하셨겠지요.
당신은 아세요? 나의 신상을 묻는 당신 어머니의 음성에 내가 숨이 막혔던 것을! 그리고 기억하고 계세요? 해가 산마루를 넘어갈 때, 그 집을 내가 홀로 떠나야 했던 일들을. 당신의 어머니가 그러시더군요. 이력이 있는 여자는 우리 집 사람이 될 수 없다고…
벌써, 기상을 알리는 음악이 나오고 있네요. 꿈틀거리는 생명들이 밤새 바닥에 접어두었던 희망들을 들어올리고 있어요. 서러운 목숨들이 또 깨어나 시간을 간식삼아 하루를 버티겠지요. 소포클레스의 말대로,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 하루는 어제 죽어간 이들이 그토록 바라던 하루이겠지요. 단 ‘하루’면 인간적인 모든 것을 멸망시킬 수도 있고 다시 소생시킬 수도 있다는데, 오늘도 소중한 ‘하루’를 살자고 다짐해야 할까 봐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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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로 이어지는 방죽 길은 상당히 긴 듯했다. 그러나 지루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등대의 조명조차 는개에 묻혀 명멸하고 있었다. 선착장에는 벌써 출항하는 선원들을 위해 포장마차가 문을 열어 놓고 있다. 그 앞으로 안개와 는개 사이의 작은 물 알갱이들이 출항을 앞 둔 두어 척의 작은 어선들들 깨우며 불을 밝히고 있었다. 아내의 체온에 여전히 취해 있는 선원 몇몇이 밀려드는 새벽잠을 담배로 쓸어 담는 모습도 들어왔다. 해모수 또는 유화를 흠모하던 젊은 요괴들이 금시라도 나타날 듯한 음습한 날씨다. 요괴들의 나들목이 있다면 아마도 이 방죽을 따라가다 등대 바로 아랜가에 있을 수문으로 기어 들 것이다.
어항에 도착하여 폭음을 한 때문인지, 자꾸 몸이 한 편으로 기우는 느낌이 들었다. 바다에 빠지지 않으려고 뭍 쪽에 체중의 중심을 두어서인지도 모른다. 자주 한 쪽에서 이내 다른 쪽으로 체중이 쏠리곤 했지만 그런대로 걸을 만은 했다.
“정말 깃이 부러진 것은 아닐까?”
나는 그 동안 접했던 자살사건들을 하나하나 떠 올리기 시작했다. 대학 동기인 병두는 자취방에 못을 박고 거기에 줄을 걸어 목메 자살했다. 교통사고 후유증과 장남으로서의 책무 등이 그 원인이라 했다. 장례사가 가져온 관이 작아 친구들이 시신을 우겨 넣느라 애 먹었다는 후문도 들렸다. 고향에선 어릴 적 노름꾼으로 유명했던 할아버지의 벗이 폐암의 고통을 이기지 못해 깔끔하게 죽는다며 살충제를 입에 털어 넣었다. 역시 고향마을의 명숙이 오빠는 월남참전의 후유증으로 저수지에 수장을 꿈꾸다 이튿날 물 위로 떠올랐다. 우리 이웃집 동인이는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되어 십여 년 간 고생하다 끝내 죽고 말았다. 빗길 교통사고가 원인이었다. 찌그러진 차체를 잘라 그의 몸을 끄집어 올렸을 때 다행히 목숨은 붙어있었다. 그러나 뼈가 으스러져 쇠로 엮어 세워야 했다. 그러나 끝내 허물어지고 말았다. 오 년이 걸렸다.
많은 이들이 죽은 것 같은데 생각나는 사람은 그 뿐이었다. 죽으려고 죽은 자와 죽지 않으려다 죽어간 많은 생명들. 죽은 자가 산 자에게 기억되는 것만으로도 사자에게는 커다란 축복일지도 모른다.
나는 편지를 감싸고 있는 주머니 속 손가락에, 오랫동안 힘이 많이 들어가 있었음을 깨달았다. 땀이 맺힌 느낌이 들었다. 담담하리라 생각했던 내 의지와는 다르게 벌써부터 별 개의 생체반응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정말 내 스스로가 또 다른 유정으로의 진화를 위해 산화할 수 있을까? 산화한 나의 모습은 어떠할 것이며 어느 지점에서 날아오를까? 진화한 나의 모습이 노출되면 세상의 이야깃거리나 될까? 된다면 어디까지일까? 나의 가족과 친구들은 나의 진화를 안타까워할까, 아니면 진화의 뒷수습에 골머리를 앓게 될까? 남겨 둔 편지들은 그녀에게 전달될까, 아니면 경찰의 손을 거쳐 복사된 후 가족에게로 넘겨져 은폐될까? 그녀는 나의 산화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리고 나에게 약간의 부채를 진 사람들은 그 액수만큼 봉투에 담아 올까?
그리고… 나는 정말 그녀를 용서할 수 있을까?”
는개는 여전히 살아 있는 나의 피부를 간질이며 스쳐가고 있다. 눈썹에 는개가 응결되어 다시 눈두덩으로 흘러 내렸다. 차가웠다. 아직은 산화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나는 다시 한번 가방에 넣어 둔 불쌍한 언어꾸러미들을 만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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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당신께!
가을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이 곳도 사람이 사는 곳인가 봐요. 오늘은 유독 바깥에서 들려오는 풀벌레소리가 청승맞게 들리네요. 그래도 여름 내내 개구리 울음소리로 넘쳐나던 것에 비해서는 한 결 나아진 상황이지요.
어젯밤에는 당신이 딸아이를 데리고 당신 어머니의 무덤에 가는 꿈을 꾸었지요. 내 딸을 데려가지 말라며 고함을 지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이렇게 편지를 쓰고 있어요.
당신, 생각나세요? 세무서 잔디밭 말이에요.
안양 6동 세무서 뒷담에 인접한 셋방은 우리가 시작한 신혼의 처음이자 마지막 장소였지요. 잔디밭에서 열두 시까지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 통금사이렌이 울린 한참 뒤에야 우리는 담을 넘어 집으로 들어가곤 했지요, 그것도 순찰 중인 경찰의 호루라기소리에 쫓겨서 말이에요. 네 평 크기의 방에 모기장을 치고 당신과 누우면 풀벌레소리며 빗소리며 행복이 다가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지요.
당신, 생각나세요? 우리 어머니가 당신과 내가 결혼하면 음독자살한다며 농약병을 들고 나타나셨던 날을.
어디 남자가 없어서 열두 살 차이가 나는 아이 딸린 홀아비에게 목숨을 거느냐며 실신하셨던 날을. 설상가상으로 그런 일이 있은 다음 날, 그 먼 시골길을 걸어 올라오신 당신의 어머니는 나에게 잔인한 음성을 전하고 가셨지요. 어디 근본도 없이 떠돌던 잡것이 천금같은 우리 아들을 꼬득이냐며 당장 사라지라 하셨지요. 당신이 남긴 천형의 목소리는 결국 당신의 손자를 포박하여 시골로 가게 했지요.
그래요. 우리는 우리들의 어머니들에게서 축복받을 수 없는 만남이었다는 것을 알아요. 그러나 당신들이 받은 남편으로부터의 상처를 왜 우리들이 보듬어야 하는지. 왜 당신 어머니들로부터 당신들이 받았던 고통을 당신의 딸에게 짐 지우려 하셨는지. 저는 오늘도 기결수 복도 천정에 걸려있는 금언을 되새깁니다.
“당신이 입힌 말의 상처는 칼로 입힌 상처보다도 깊다”는 것을.
당신 알아요? 그 때만 해도 우리에게는 ‘힘’이 있었다는 것을. 사랑을 지킬 수 있는 ‘힘’ 말이에요.
우리는 서로가 상처받은 짐승들이었기에 모든 것을 감내할 수 있는 힘이 있었던 것 같아요. 단칸방의 비좁음은 오히려 우리를 더욱 가까이에서 볼 수 있게 했고, 자가용이 없었던 우리는 서로가 손을 잡고 시장이며 공원을 다닐 수 있었지요. 백화점에 갈 일이 없었던 우리는 재래시장에서 순대며 떡볶이를 먹을 수 있었고, 집이 없었던 우리는 내 집 마련의 꿈을 가질 수 있었지요. ‘꿈’을 꾸는 자가 오히려 ‘꿈’을 이룬 자보다 더 행복하다며 우리는 쓸고 닦고, 걷고 또 걸었지요.
“… … ”
여보, 풀벌레소리가 잠시 멈추었어요. 뭔가가 다가오고 있는가 봐요. 비릿한 냄새가 밖에서 들어오기 시작하는 것이 바람의 방향도 조금 바뀌고 있는 모양이에요.
당신이 살아온 길, 그리고 내가 밟아 온 삶을 뒤돌아보면 ‘과연 인류의 진화가 정말 진보의 역사였던가’ 라는 물음을 던지게 돼요. 당신 말대로 여전히 내게는 생뚱맞은 데가 있지요? 갑자기 ‘진보’니 ‘역사’니 하는 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하고 있잖아요. 그러나 이왕 이야기가 나왔으니 되건 안 되건 주절주절 엮어나 봐야겠어요.
인류의 진화가 진보의 역사였다면 존재가 누릴 수 있는 자유의 영역도 과거에 비해 훨씬 넓어져야 하지 않겠어요? 사랑의 방식과 영역까지도 말이에요. 그러나 우린 뭐예요. 여전히 과거가 현재를 구속하고, 당신의 존재 후에 내가 있는 그런 방식 속에서 여전히 살고 있잖아요?
아니에요… 예전에 비해 자유의 영역이나 방식은 훨씬 자유롭고 많아졌을 거예요. 다만 예외라는 것이 우리에게 적용되었던 것이겠지요. 벗어 날 수 없는 인연의 고리 같은 것 말이에요. 근데 왜 하필 그것이 ‘우리’여야 했을까요? 아마도 세무서의 담장이 우리의 보호 벽이 되기에는 너무 낮았던가 보지요. 경찰서 근처에다 집을 얻을 걸 그랬나 봐요.
당신, 기억나세요?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감각을 공유했던 그 날을.
당신의 어머니는 당신의 손자를 데리고 아예 우리의 단칸방으로 내려오셨지요. 그것도 제가 임신한 것을 알고 계셨으면서도 말이에요. 아니 임신한 아이를 떼어 내라고 몇 번을 고함치시다 결행한 마지막 수단이었겠지요.
퇴근한 당신은 길길이 날 뛰면서 당신 어머니의 보따리를 챙겨 시골집으로 가라며 소리를 질러댔지요. 하지만 휘둥그러진 눈으로 마당으로 뛰어나온 네 집 셋방식구들과는 달리 당신 어머니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으셨지요. 오히려 당신보고 시골로 내려가라며 맞고함을 치셨지요.
그렇게 우리의 동거는 시작되었지요. 별난 동거는 날이 가고 달이 가도 변화의 조짐이 없었어요. 아니에요. 오히려 변화가 오기 시작했지요. 생활에 지친 당신은 오히려 나로부터 멀어져 어머니에게 의탁하려 하고 있었어요. 지친 것이었겠지요. 그리고 어머니 품으로 돌아가고 싶었겠지요. 섬이었던 당신은 그 때, 점점 밀물이 되어가고 있었던 거예요. 당신은 이미 회사에서 보던 다정하고 착한 사람이 아니었어요.
그래요. 나도 알고 있어요. 지순한 사랑도 결국 환경의 지배를 받는 것이라는 것을.
술과 담배로 당신의 육체는 점점 병들어 갔고 회사에서는 결국 흔들리는 당신에게 무한한 자유를 주었지요. 그 자유를 얻은 탓이, 당신 아들이 무한한 자유를 얻은 모든 탓이 내게 있다며 당신의 어머니는 며칠 밤낮을 폭언으로 나를 눌러댔지요. 질식할 것 같은 시간들을 왜 그리 미련하게도 버티었는지 모르겠어요. 아마도 당신이 다시 섬이 되어 주기를 기다렸겠지요. 그리고 물결이 잔잔해지기도.
불러오는 배를 바라보는 당신과 당신 어머니의 부담어린 시선에 나는 더 이상 당신의 섬이 되는 것을 포기하고자 했지요. 따뜻했던 당신의 손길이 차가운 폭력으로 내게 다가오던 그 날에. 그리고는 죽기보다 싫은 심정으로 나의 어머니의 집으로 와야 했지요. 어머니는 그래도 이 못난 딸을 내치지는 못하셨고 당신의 탄식하는 소리를 배앓이로 하면서 나는 출산을 해야 했어요.
당신, 아세요? 당신과 당신의 어머니가 출산일이 몇 달 지나도록 내게 아무런 안부도 묻지 않았다는 것을.
딸아이가 돌이 되어서야 나타난 당신의 몸에서는 역한 술 냄새가 낳지요.
당신 아세요? 무정한 사람이라며 우리 어머니가 당신에게 핀잔을 주자 오히려 당신이 화를 냈던 것을.
한 달 후, 축복받지 못한 아이에게 눈 한 번 주지 않던 당신과 당신 어머니는 아예 우리 집 방 한 칸을 차지하기에 이르렀지요. 전세 보증금마저 없애버린 당신 모자는 이미 정숙하거나 다정하다는 단어와는 멀어져 있었어요. 술에 취해 누구의 씨앗인지도 모른다는 폭언을 일삼는 당신을 보고 차라리 내가 떠나겠다며 집을 나가신 우리 어머니는 아예 나와의 인연을 끊으셨지요. 당신의 옷 보따리를 챙기는 대신 당신의 딸의 딸을 챙기시는 것만은 잊지 않으셨지요.
당신은 아세요? 그 순간 세 모녀의 울음이 상생에서 상극으로 향했다는 것을. 그리고 그날 내가 모진 마음을 먹었다는 것을.
1심 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미결수 방에 들어오던 날 누군가가 법무부 색인이 찍힌 모포를 바닥에 깔아주더군요. 젊은 새댁이었어요. 그러나 나는 사형 선고자에 대한 법무부의 배려로 그 모포에 앉지 못하고 다른 방으로 이감되었지요. 아무도 없는 방으로.
마음을 굳게 다잡으라는 언니 같은 교도관의 이야기를 듣다가 나는 정신을 잃었지요. 그리고 당신과 딸, 나의 어머니와 당신의 어머니 그리고 법정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난 후에 깨어날 수 있었지요.
아침에 열 세 개의 철문을 통과한 후, 점심 때 똑같은 문으로 돌아온 나인데 모든 것은 절망의 언어가 되어 있었어요. 관선 변호사의 변론에도 불구하고 정황은 이해되나 남편과 시어머니를 독살하려 한 존속살인죄는 결코 용서받을 수 없다는 판결이었지요.
판결이 내려진 순간부터 나에게는 산다는 것이 곧 고통이었지요. 나에게 유일한 사랑을 느끼게 했던 남편과 그 어머니를 죽이고, 나의 어머니와 딸의 종적조차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나란 존재는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하고 있었던 게지요. 어제와 오늘이 다를 것이 없고,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가 달라진 것이 없는데 세상은 이미 나를 다른 사람으로 바라보고 있더군요.
관선변호사가 수소문 끝에 찾아낸 나의 어머니와 딸을 법정증인으로 출두시킴으로써 무기징역으로 감형되던 날, 수척해진 어머니와 좀 더 자란 딸아이의 손을 만질 수 있었지요.
당신, 아세요? 법정에서 포승줄에 묶여 나가는 나를 보며 우리 어머니가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끝꺼징 살아야 한다! 질긴 목숨이 산 목숨이라드라!. 글구 네 남편도 죽잖코 살아있다고 하더라!”
당신, 당신이 살아계셨더군요. 나는 잠시 눈을 감고 누군가를 향해 감사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그것은 내가 사랑했던 사람이 살아있다는 것에 대한 즉시적 반응이었겠지요. 그리고 수감실에 들어 온 날 밤, 밤새도록 당신 어머니를 향해 기도를 드렸습니다. 용서의 기도는 아니었지만 당신이 극락에서 왕생복락하기를 말입니다. 그리고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의 어머니와 딸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의 어머니가 나에게 해 주었던, 그리고 하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제, 당신을 알고 있는 당신의 사람들에게 용서를 빌고자 합니다. 그리고 당신과 함께 했었던 소중한 시간들을 자주 떠올리며 생활하려고 합니다.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 하루가 어제 죽어간 이들이 그토록 바라던 하루이었음을 되새기며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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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당신께!
좀 더 일찍 써야 할 글이 늦어졌군요. 어제 밤에는 딸아이가 심한 수두증세로 고생하는 꿈을 꾸었어요. 아이의 피부는 좀 나아졌을까요? 누구에게나 평생에 한 번은 있을 통과의례지만 애미로서 걱정이 많이 되는군요. 잘 못 치료하면 얼굴에 흉터가 남기도 한다는데 혹여 그런 일은 없겠지요?
참! 당신에 대한 안부인사가 늦었군요. 딸아이에 대한 안부를 먼저 묻는 나 자신을 보고 간혹 내가 당신의 어머니를 닮아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그럴 때면 온몸에 소름이 끼치는 나 자신을 추스르기가 굉장히 어렵답니다. 이렇게 말하면 당신은 화가 나시겠지요. 아직도 나는 작은 벽 속에서 긴 고통을 견디는 법을 더 배워야 할까 봐요.
언니, 언니 하면서 나를 따르는 아이가 방금 팔순 노모를 만나고 돌아와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네요. 어머니가 무엇인지, 인연이란 게 무엇인지, 대한민국 사회에서 이 모든 것을 잊거나 끊고 살 수는 없는가 보지요?
당신은 아세요? 오 개월 된 아이를 뒤로 한 채 푸른 봉고차에 몸을 싣던 젊은 애미의 멍든 심정을. 그리고 이 년여 동안 아기가 우는 환청에 시달려 격리 수감되었던 이곳의 생활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가를. 그리고 큰 구속 속에 더해진 작은 구속이 얼마나 인간을 초라하게 했는지를…
당신은 그 날 망연자실한 채, 넋 나간 얼굴로 나와 당신의 어머니를 번갈아 보고 계셨지요. 알아요. 그 어떤 말로도 당신의 마음을 위무할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결코 잊을 수 없는 기억이라는 것도. 그러나 지금도 당신 앞에 서서 소리죽여 말 할 수 있는 것은 여전히 당신을 사랑하며, 나도 한 아이의 어머니가 되었다는 거예요.
친정어머니가 첫 면회를 오셨던 날, 나는 당신의 가슴에 또 하나의 큼직한 고통을 실어 보내는 불효를 저질렀지요. 보고 싶지 않다는 딸의 전언을 듣고 당신은 얼마나 무너져 내리는 절망을 안고 출구를 찾으셨을까요? 당신이 살고 있는 집 담 벽에 새겨진 ‘살인자의 집’이라는 글씨가 당신을 괴롭히고 있었음을, 그리고 쫓기다시피 전셋집을 나온 당신이 처음 찾은 곳이 이 곳이었음을 내가 알았더라면 아마도 나는 그 때, 당신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을지도 모릅니다. 내가 가슴에 얼굴을 묻고 마음껏 울 수 있었던 유일한 사람, 어머니, 당신은 이제 저 세상 사람이 되셨지요. 병으로 쇠잔해진 기운에도, 그리고 임종의 순간까지도 이 못난 딸을 걱정해 주셨다던 당신. 이제야 당신을 보고 싶은 것은 당신의 말씀대로 나는 진정 ‘매정한 년’인가 봅니다. 그리고 이제 한 아이의 진정한 ‘어머니’가 되려나봅니다.
첫 번째 면회 후에도 어머니의 발걸음을 수 없이 되돌리게 하던 나는, 당신의 건강이 여의치 않다는 전언을 듣고 당신을 뵙게 되었지요. 익숙해진 수감생활로 며칠 전에 받은 황토색 모범수 수의를 입고 접견실로 향할 때만 해도, 나는 노모에 대한 마지막 연민의 감정을 안고 당신 앞으로 나아갔지요.
그러나 접견실에 들어서자 나는 당황하기 시작했지요. 숙환으로 초췌해진 당신의 얼굴을 보는 순간 지나간 삼십여 년의 시간들이 영상처럼 떠올랐기 때문이지요. 빛바랜 필름 속에 새겨진 당신의 모습은 언제나 우울한 모습이었어요. 잠에서 깨어난 나를 바라볼 때를 빼 놓고 말이지요. 나는 그 때 어쩌면 당신을 보는 마지막 시간이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지요. 스물한 살 나이에 다른 여자를 만나 재혼한 남편을 떠나보내고 힘겨운 살림을 꾸려갔어야 할 당신의 속내를 나는 왜 진작 살피지 못했던 걸까요? 그 때 나는 처음으로 당신의 딸이 되고 있었던 것 같아요. 당신이 벽 아래 가려져 있던 당신의 손녀를 힘줄이 퍼렇게 튀어나온 손으로 들어 올려 나에게 보여주셨을 때, 병약한 당신의 힘에 잠시 놀라기도 했지요. 그리고 나는 당신이 병중에도 왜 힘을 모아 놓았었는지도 알 수 있었지요.
당신, 들리세요? 나의 어머니가 우리 딸을 보여주며 쉬던 긴 한숨 소리를.
아마도 이 땅에서 모진 인연으로 만난 세 모녀의 상봉을 한탄하는 소리였겠지요. 그 울림은 참으로 진하게 응어리진, 이 땅의 어머니들이 간직하고 있는 탄식이었겠지요.
그래요. 6년 만의 딸아이와의 만남은 그렇게 끝났어요.
당신은 아세요? 엄마라고 부르는 딸 앞에서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는 애미로서의 고통을? 그리고 저승으로 떠나는 늙은 노모의 호주머니에 노잣돈 한 푼 쥐어 줄 수 없는 딸의 고통을 말이에요.
오늘은 왠지 우울한 글로 지면을 메우고 말았네요. 다음에는 좀 더 밝은 글을 써보도록 노력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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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버리려 신진도에 와 있습니다. 맑은 정신으로 당신에게 글을 써야 하는데 술기운을 빌어 속내를 털어 놓고 있습니다. 당신 말대로 나는 타인이 신발을 신겨주어야 걸을 수 있는 형편없는 사람인가 봅니다.
어제는 지난 수 년 간 당신이 써서 보낸 편지들을 정리했습니다. 모든 것을 불사르고 바닷가로 떠날까 생각하다가 편지 한 통을 뜯어본다는 것이 당신이 그간에 보냈던 모든 편지를 읽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편지 속에서 당신이 살아온 날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시간들이었는지, 당신의 마음이 얼마나 여리고 고운지를 느끼기에 충분한 글들이었습니다.
당신이 타 준 천국으로 통하는 음료수를 어설프게 먹어, 아직도 당신 앞에 살아 있는 쓸모없는 사람이 되었지만 당신의 글을 읽을 수 있음에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여러 해 동안 당신을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나의 방종과 어리석음으로 야기된 모든 비극과 그것에 대한 형벌은 응분 내가 받았어야 했겠지요. 할 수만 있다면 지금이라도 당신이 지고 있는 무거운 짐을 건네받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다. 하지만 나의 어리석음에 대한 처벌을 우리 어머니에게까지 내렸다는 사실이 당신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당신은 모를 것입니다. 우리 어머니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그리고 그 분에게 있어 내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었던가를.
당신이 처음 입사했을 때, 나는 당신에게서 친동생과 같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약간은 수줍은 듯하면서도 야무진 언행이 나의 시선을 당신에게 자주 머물게 했습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당신은 하늘색의 정장을 자주 입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세 갈래 머리를 동아줄 모양으로 꼬아 맵시를 내고 두 개의 분홍색 방울이 달린 금색 끈으로 묶고 다니곤 했지요.
어느 날인가 회식이 있던 날, 자리를 파한 후 집으로 향하는 당신을 따라 간 적이 있었지요. 봉천동 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는 당신의 집은 허름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그러나 담장 밑의 노오란 해바라기와 그 아래 놓여진 나무로 짠 들마루는 집안의 오롯한 정을 마당에 가득 펼쳐놓은 분위기였지요. 당신과 나의 만남이 친숙해지려했을 때, 당신은 내가 당신에게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일찍이 알았었노라고 말했지요. 그리고 가까이 오는 나를 굳이 말리고 싶지 않았었노라고 말했었습니다. 그러면서 더 이상은 이성으로 대하주지 말라는, 앞뒤가 흐려지는 부탁도 했었지요.
그 때 나는 당신의 부탁을 들어 줄 수 없었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당신이 안고 있는 모든 짐들을 대신하여 질 수 있다는 강한 믿음을 주려 무엇인가를 한참이나 이야기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 때 당신은 나에게 낮지만 강한 음성으로 이야기 했었지요.
한 남성에게 배신당하고, 한 남자를 교통사고로 떠나보낸 그런 몹쓸 여자를 왜 당신이 거두려하냐고.
하지만 나는 당신의 모습에서 한 남자에게 기울어지는 지친 의지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한 모습이 나에게는 당신을 기다릴 수 있는 힘이 되었던 게지요. 당신이 회사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나는 항상 당신의 옆에 있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도 우리를 부부로 이어주려 했을 겁니다.
안양 6동, 세무서 뒷담에서 지낸 우리의 신혼생활은 그 어떤 용어로도 설명할 수 없는 행복한 나날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내게 보낸 편지에서 읽듯 그 시간은 그리 오래 가지를 못했지요.
나는 우리 어머니를 변호할 생각은 없습니다. 우리의 잠자리를 갈라놓고, 나에 관한 모든 것을 독차지하려 하셨던 당신의 행동은 분명 당신의 욕심이며 오기였습니다. 당신에게 결혼의 이력이 있었던 것을 우리가 미리 말하지 않았던 것도 당신에게 아들에 대한 신뢰성을 잃게 한 결정적 이유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우리가 헤어지지 않고 딸을 낳았을 때, 당신은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을 느끼셨을 겝니다. 왜냐구요? 당신과 만나기 전 나와 결혼했던 그 여자도 결혼한 이력을 숨긴 채 나의 아들을 낳았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은 견디기 버거운 소심증을 안고 사는 나의 잘못 때문입니다. 전남편이 찾아와 나를 간통죄로 고소하고 자기의 마누라라며 나의 마누라를 앗아갈 때, 세상에 이런 일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찌 보면 당신에게 이러한 일들을 미리 이야기하지 않은 잘못이 더 크다는 것도 압니다.
그러나 당신은 알지 않아요? 내가 속내를 잘 털어놓지 않는 우직한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 어머니가 답답할 때면, 지애비를 닮아서 자갈 문 황소 같다고 하시던 것을.
병적이신 우리 어머니의 시기와 질투를 나는 당신이 잘 감내하리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당신도 쉽지는 않았겠지요. 세월의 흐름으로 무디어진 우리의 사랑과 남편의 방종을 당신이 이겨내기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단칸방에서. 그것도 시어머니가 구렁이처럼 똬리를 틀고 앉았다가 누워 있곤 하는 골방에서.
나의 어머니는 거의 병적으로 우리의 생활에 집착하셨지요. 심지어 임신하여 친정으로 피한 당신의 안방까지 차고 들어가 앉을 때는 나의 어머니나 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삶에 쫒긴 우리는 마치 살코기를 찾고 있는 하이에나가 되었던 게지요.
병원에서 의식을 찾았을 때, 나에게 말을 건네 온 것은 당신도 아니고 간호사도 아니었습니다. 지방일간지 기자였지요. 그 기자는 내가 짐승 같은 울음을 토해내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줄행랑을 쳤었지요.
당신, 알 수 있을까요? 모든 것을 잃고 병실에서 눈만 껌뻑이던 두 발 짐승의 고통을.
나는 아직도 당신들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남편을 두고 나에게 시집 왔던 여자와, 나의 어머니를 가게 한 당신과, 당신을 떠나게 한 나의 어머니 모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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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창틈에 파란 움이 트고 있어요. 신기하죠? 영화 속에나 볼 수 있었던 장면이 내게 현실이 된 것이. 여보, 정말 신기하지 않아요? 밖은 북풍한설인데 비닐로 가린 창문의 틈새에서 싹이 움튼다는 것이.
당신, 알고 계세요? 나의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것을?
나는 오늘 움이 튼 파란 싹을 종이컵에 옮겨 놓았어요. 당신께서 하늘나라로 떠나시며 내게 주시는 선물인가 봐요. 근데 환경이 척박해서 살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어제 점심 무렵 교도관이 커피 한 잔을 내게 주며 나직이 말했지요. 어머니께서 일주일 전에 돌아가셨노라고. 그리고 딸은 어머니의 지인에게 맡겨 놓으셨노라고.
나는 오랜만에, 실로 오랜만에 간수에게 여러 가지를 물어 보았지요. 어머니는 어디에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어머니의 장례는 어떻게 지냈으며 시신은 어떻게 했는지, 당신께서 남기신 유언이나 유품은 없었는지 등등을.
모든 것이 끝이었습니다. 당신은 당신이 돌아가신다는 것을 미리 아신 듯 했지요. 동사무소 복지담당직원이 부녀회원들과 함께 김치통을 들고 당신 방을 찾았을 때 당신은 곤한 잠에 취해계셨었다지요. 이승의 모든 고통을 정화시킨 편안한 당신의 모습에 모두들 놀라했었다지요.
방 안에는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당신이 마련한 수의가 머리맡에 놓여 있었고, 당신이 신던 운동화도 베란다 양지에서 횐 꽃으로 피어있더랬지요. 노인복지수당과 당신이 폐휴지를 모아 팔아 만든 저금통장은 딸아이의 책상 위에 놓여있었다지요. 도장과 함께 말이에요. 뒤에 안 일이지만, 당신은 등교하는 딸아이에게 집에 돌아올 때는 선생님을 ‘꼭’ 모시고 오라고 하셨다지요. 행여 당신이 잠든 모습을 딸아이가 보고 놀랄 것을 염려하신 거겠지요. 당신은 당신이 돌아가실 일시를 정확히 예견하셨던 거예요. 당신은 저승으로 가시는 길에도 편히 가시지 못한 거지요. 가야할 때를 알고 뒤도 안돌아보고 떠나신 당신에게 정말, 은장도로 머리털을 잘라 육날 메투리라도 삼아드려야 할까 봐요.
여보, 어제는 우울한 일이 하나 있었어요.
같은 방을 쓰는 동료가 딸아이를 면회하고 온 후 서럽게 울어댔지요. 무심결에 사탕을 입에 물고 접견실에 간 것이 화근이었지요. 딸아이는 사탕을 달라며 떼를 썼고 그 동료는 아이를 위해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었던 거예요.
당신 아세요? 그 동료가 내게 뭐라고 말한 건지?
출감하면 초등학교 앞에 문방구를 차릴 거라고 하더군요. 딸아이와 함께 운동장에서 자전거도 타고, 사탕도 실컷 먹게 하고, 학습지도 이것저것 보게 할 거라고 하더군요.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나도 딸아이를 생각했어요. 출감하면 나는 딸아이를 위해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말이에요.
여보, 당신도 미리 생각했으면 해요. 우리가 우리의 딸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말이에요.
요즘은 이따금 딸아이가 잘 생긴 사내와 예식장에 들어서는 장면을 떠올리기도 해요. 그리고 당신과 내가 아이들의 큰 절도 받고, 하객들에게 악수도 청하고 또 그들로부터 축하의 인사를 받는 장면 말이에요. 몽상도 일종의 무의식의 표출이라는데, 아마도 딸아이가 당신의 손을 잡고 이 곳을 찾는 모습을 내가 매일 밤 상상해서 그런 생각도 하는 것이겠죠?
당신, 아세요? 내가 당신에게 보낸 편지가 정확하게 천 십이 통이라는 것을. 그리고 당신으로부터는 한 통의 편지도 받지 못했다는 것을.
언제까지 당신에게 편지를 써야 할지도 한 번 생각해봐야 할 때가 된 듯해요. 눈들이 녹아내리고 있어요. 그냥 눈들이 하얗게 남아있는 것도 괜찮을 텐데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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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 하양리로 가는 산길은 지루하고도 멀었다. 그랬다. 이웃집 아이가 몸이라도 아파서, 아니면 일철에 손을 거들려 학교를 빠질라치면 나 홀로 걷는 십리 길은 지루하고도 멀었다. 황소만한 검은 바위가 절벽에 걸려있는 먹뱅이골에는 이무기와 호랑이가 산다고 했으나 한 번도 본 적은 없었다. 무엇보다도 백 년 묵은 흑구렁이가 살아 있어 비 오는 밤이면 밤새도록 울어댄다 했으니 비 오는 하교 길에 그곳을 지나는 일이란 오금을 절이는 일이었다.
걷고 또 걸었던 그 길을 나는 지금 걸어가고 있다. 햇고사리를 숨긴 초록빛 산들이 구렁이와 이무기 그리고 호랑이의 울음을 싹틔우며 먹뱅이골로 몰려오는 중이었다.
는개가 멈추고 안개가 걷힌 신진항에서, 내가 발견한 것은 먹뱅이골을 돌아가던, 그리고 축축해진 속옷을 황토를 딛고서서 산풍으로 말리던 내 유년의 모습이었다. 등대 뒤로 떠오르고 있는 붉은빛 아침햇살이 내 고향 비탈밭을 가득 채우고 있는 황토와 그 너머에 걸려 있던 붉은 빛 노을을 닮고 있었다. 산모퉁이를 돌고 돌다 지친 산골 소년의 모습을 고스란히 갈무리하고 있을 그 노을 속에는 늘 나를 반겨주던 어머니와 누렁이, 그리고 도란도란 가족들이 속삭이던 신문으로 도배한 토방이 놓여 있었다. 붉은 빛 햇살 속에서 붉은 노을과 비탈밭의 황토를 연상한다는 것도 드문 일이다. 그러나 그 붉은 햇살은 묘하게도 나를 하향리로 강하게 이끌고 있었다. 그것이 삶에 대한 나의 새로운 의지였건, 아니면 죽음을 회피하고픈 나약한 마음이 순간적으로 차용한 자연의 착시현상이었건 간에 나는 아침 일찍 신진항을 떠났다.
는개와 안개 그리고 술에 시달린 창자를 해장국으로 달랜 뒤 청주교도소에 도착한 것은 오후 두 시 무렵이었다. 신진항에서 청주까지는 세 시간 남짓한 거리었지만 내려앉는 눈꺼풀을 이기지 못해 휴게소에서 쉰다는 것이 무려 네 시간이나 잠에 떨어졌던가 보았다.
그녀가 수감된 지, 그리고 편지를 보내기 시작한 지 칠 년 만에 처음으로 가는 면회였다. 나는 참으로 편한 마음으로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요란한 스피커의 안내방송을 따라 찾아 든 접견실에서 나는 아내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예전에 비해 약간 나이가 든 듯한 모습을 제외하고는 음성이며, 표정이며, 자태며 거의 달라진 것이 없었다. 나는 그녀를 사복으로 갈아입히고 예전처럼 시장으로 동행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서로가 많은 이야기를 하려하지 않았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는가는 훗날 그녀와의 재회 속에 다시 이야기를 나누게 될 것이다. 머뭇거리며 나누었던 이야기들도 생각나지 않는다. 약간은 어색하게 서 있던 내가 접견실을 나오기 직전, 빠른 시일 안에 당신과 시장엘 가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 것만큼은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아내의 미소 짓는 표정에서 나는 그 동안의 어색함의 공백이 일순간에 메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딸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쯤이면 출감할 수 있으리라는 교도관의 말을 되새기다가 나는 정문에서 헌병의 인사에 화들짝 놀라며 마음을 정리할 수 있었다.
이제부터 할 일이 굉장히 많을 것 같다. 우선 마을 어귀에 있는 어머니 산소를 들를 것이다. 그런 다음 온기 없는 토방에 누워 유년의 낯빛으로 작은 숨소리를 내며 아침 늦게까지 잠을 잘 것이다. 그리고 딸아이를 만나러 보육원에 들른 뒤 장모님 산소로 향할 것이다. 그곳에서 나는 어머니 산소에서 그랬던 것처럼 두 무릎을 꿇고 내 지난 날 이야기하지 못했던 모든 것들을 말 할 것이다. 남들은 나이 서른이면 자기 말을 다 하고 산다는데,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수많은 말들을 그토록 오랫동안 가슴 속에 담고만 살았을까? 아마도 세상에는 나와 같이 답답한 사람들이 어딘 가에서 어렵사리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답답함은 오히려 당사자보다는 주변의 사람들로 하여금 답답하고 힘든 나날들이 되게 할 것이다.
나는 먹뱅이골 중턱에 걸려있는 바위들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구렁이의 긴 울음소리를 들었다. 유년시절에 한 번도 듣지 못했던 흑구렁이의 울음소리가 길게 이어지며 산그늘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그 때, 내 몸에 갇혀 있던 언어들도 계곡을 향해 쏟아져 내려가고 있었다. 나는 화들짝 놀라 미친놈처럼 웃으며 산모퉁이를 내달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