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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 필
생활하며, 생각하며
신 강 남*
대부분의 나이 먹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나도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부스럭거리며 하루를 시작한다. 봄철부터 가을까지는 텃밭에서 햇살이 따가워 해가 질 때까지 소일하고, 비가오고 바람이 부는 날은 평소에 보지 않던 아침 TV프로그램도 보고 신문을 뒤적인다. 그러다가 그나마 싫증나면 시내 대형서점이나 미술관순례도 하는 편인데 가급적 동행인 없이 혼자 나들이를 즐긴다.
다른 사람과 좀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일어나자마자 간단한 양치질을 한 후 집안의 모든 불을 꺼놓고 깜깜한 분위기 속에서 식탁의 내 자리에 앉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한 번도 뵌 적이 없지만 언제나 존재하신다고 믿는 그분”에게 감사와 가족의 안녕을 바라는 기도를 잠시 드리는데 그 순간만큼은 가장 정결한 마음상태를 유지하려 애를 쓴다. 요즈음과 같이 가을걷이도 모두 끝난 시기에는 시간이 넉넉하여 읽다가 접어 두었던 책들도 다시 펴보고, 아이들이 예전에 보내준 편지들도 다시 읽어 보고, 미처 앨범에 정리하지 못한 사진들도 제자리에 정리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또 가끔은 책갈피나 메모장 사이에서 나중에 읽어 보려고 오려놓았던 기사나 좋은 문장들을 찾아내어 읽으면서 잔잔한 즐거움을 느끼기도 한다. 오늘 발견한 신문스크랩은 우리나라의 석학이시며 50년 전 문단에 등단하신 원로비평가 이어령(72)씨가 시인으로 데뷔하면서 발표한 “도끼 한 자루”의 내용이다.
<어둠 속에서 너희들을 끌어안은 팔뚝에 힘이 없다고/ 겁먹지 말라/ 사냥감을 놓치고 몰래 돌아와 훌쩍거리는/ 아버지를 비웃지 말라/ 다시 한 번 도끼를 잡는 날을 볼 것이다.>라고 이 시대 쓸쓸한 아버지 상(像)을 연민한 등단 시(詩)도 가슴에 닿았고 <바다 속 전복 따 파는 처녀도/ 제일 좋은 건 님 오시는 날 따다 주려고/물 속 바위 위에 붙은 그대로 남겨 둔단다.>고 노래하신 서정주님의 언어 조탁(彫琢)엔 기가 질릴 뿐이다.
‘나이 50에 새 직장 구하겠다고 이력서 쓰는 사람, 60에 이민 가겠다고 영어 배우는 사람, 70에 싱글하겠다고 골프 레슨 받는 사람, 80에 오래 살겠다고 건강진단 받는 사람’은 불출(不出)로 꼽혀 젊은이들 안주감이 된다는 신문 스크랩도 있다. 이 내용에 강력히 반발하시는 노익장들도 계시겠지만 나는 대체로 동의하는 내용들 같다. 하기야 얼마 전 어느 대기업총수가 나이 70이 되었는데도 젊은이들도 힘든 우주인 선발에 응모하였다는 기사를 읽었는데 만용(蠻勇)인지 정상도전(挑戰)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근자에 어느 잡지에서 읽었는데 하버드대학교의 어느 유명한 생명공학교수는 강의실에서 수업태도가 불량한 학생들에게 ‘너희들 이렇게 말을 듣지 않으면 수명을 100살 넘게 만들어 버릴거야’ 하고 겁을 준단다. 공갈치고는 꽤 무섭지 않은가? 인간들의 평균수명이 고대 그리스. 로마시대에는 28세, 15세기 프랑스인은 25세, 동시대 일본인 평균수명은 30세 안팍이었다는데 지금은 81세라니까 현재와 같은 의학의 발전 속도라면 인간의 평균수명이 100살이 될 날도 멀지 않았다는 것이 대체적인 예견인 것 같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더 오래 살 수 있을까’가 아니라 ‘오래 살되 어떻게 건강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 것인가’ 인 것 같은 데 몸은 쇠하고 정신은 희미하고 주머니마저 텅빈 여생이라면 별로 달갑지 않은 수명연장이 아닌지. 그래도 인간에게는 장수에 대한 열망은 가진 자나 없는 자, 건강한 자나 쇠약한 자 공통인 것 같다.
시위와 축제의 나라 프랑스에서는 포나콩(FONACON, 새해반대전선)이라는 단체가 주동이 되어 2006년 12월 31일 밤 프랑스 서부도시 낭트에서 ‘2007년 새해저지’시위를 준비 중이라는데 다행히 축제 성격의 시위라서 경찰을 긴장시키지는 않는 단다. 그러나 사람의 성격에 따라 늙음에 대한 대처방식도 달라서 어떤 사람은 성형수술이나 보톡스주사로 얼굴주름살을 완전히 없애고 젊은이 같이 위장(?)하여 생활하고 있는데 나는 그것보다는 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 드리며 곱게 늙어 가면서 시간에 순응하는 사람들이 더 좋아 보인다. 한국에 진출한 프랑스 화장품 홍보담당자에 의하면 서구에서는 적당히 젊어 보이게 하는 노화방지 화장품이 인기가 있는데 한국에서는 ‘10년쯤 젊어 보이게’가 아니라 ‘23세에서 그대로 멈춰라’여서 노화예방 프랑스화장품들이 팔리지 않는다고 한다. 얼마 전, 거리에서 평소 잘 아는 분을 만났는데 나이에 걸맞지 않게 너무 젊게 바꿔버려서 본인보다도 바라보는 내가 오히려 민망하였다. 진짜 젊음은 얼굴성형이나 보톡스주사가 아니라 내면에서부터 기쁨을 느끼며 살 때 얼굴에 나타나는 자연스런 모습이 아닐런지. 내 얼굴에는 동년배 친구들 보다 주름이 많다. 그러나 거부할 생각도 없고 인위적으로 변화를 시도하지도 않겠다. 자랑스럽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감추어 버리고 싶지도 않은 나만의 소중한 세월의 흔적이니까.
지난 세월동안 30여 년 간 직장생활을 하면서 동료들과 치열한 승진다툼도 하여 보았고 취미생활로 골동품, 수석수집과 난, 분재 기르기에도 심취하여 보았었다. 그러나 지금은 대부분의 수집 열정은 사라지고 오히려 ‘모든 것은 제자리에 있을 때가 가장 아름답다’는 평범한 진리에 동감하여 모으는 것 보다는 나누어 주는 것이 마음이 편하고 각종 전시장에 전시되는 명품들을 감상하는 것이 수집하는 것보다 더욱 즐거운 마음이 되었다.
10여 년째 강원도 산골 오두막에서 혼자 밥 짓고, 땔감 장만하여 생활하시면서 수행을 하고 계신 법정스님이 어느 기념법회에서 “옛날이나 지금이나 세상이 어지럽기는 마찬가지다. 각자 자기자리를 지킬 때 세상은 좀더 맑고 향기로워질 것이다. 20~30년 전 우리생활은 빈약했지만 연탄 몇 장, 쌀 몇 바가지 들여 놓고도 행복해 하였다”면서 “모두가 불황을 이야기하지만 얼마나 가지면 만족하겠는가, 아쉬움과 궁핍을 모르면 불행하다. 많이 갖고자하는 욕망을 스스로 억제하는 ‘맑은 가난’의 의미를 되새기자”고 강조하면서 ‘맑은 가난’이란 부러움과 시샘을 하는 대신에 어려운 이웃들에게 자신이 억제한 욕망을 나누어 주고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아 자유로워진 상태’ 라고 말했다. ‘맑은 가난’, 이 얼마나 향기롭고 군더더기 없는 간편한 생활의 모습인가.
예수님께서도 공생(公生)의 생활기간 중, 제자들과 주변의 탐욕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나친 탐욕을 경계하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마태복음 19:23-24)
오래 전, 나도 매년 김장철이 되면 김장을 마친 후 창고에 연탄을 가득 채워 놓고 어찌나 마음이 흡족하던지 며칠 동안은 출근 전, 퇴근 후 창고를 열어보고는 포만감에 도취한 적이 있다. 그런데 분명, 지금이 그때보다 풍족하고 생활이 편리해졌지만 오히려 연탄시절을 동경하고 있으니…
온 나라가 부동산 때문에 시끄럽다. 아름답고 자그마한 나라에 웬 고속도로는 그리 많은 지 실타래처럼 엉켜있고, 그것도 모자라 아름답고 유장하게 흐르는 강물의 흐름을 돌리고 산에 구멍을 뚫어 운하를 만들겠단다. 우리 산하가 몸서리치며 신음하는 듯하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욕망을 자제하자. 우리의 후손들도 그들의 취향에 맞게 살 수 있는 국토를 물려주자. 최소한 우리들의 후대들이 여름날밤 맑은 은하수를 바라보며 풀벌레소리를 들을 수 있는 환경정도는 물려주자는 말이다.
- 養賢齋에서
소 망
많은 사람들이 ‘붉은 돼지해’의 첫 해돋이를 보면서 나름대로 준비한 새해의 바람들을 간절히 기원하는 것이 새해 첫날의 세시풍경(歲時風景)입니다. 물론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가족의 건강, 화목, 사업의 번창 등이 주를 이루겠고, 수험생이 있는 가정이라면 자녀의 합격이 최우선일게 틀림없으며, 사행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로또 복권’ 1등에 당첨되기를 기원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그렇게 평범한 사람들만 사는 것이 아니어서 ‘각피석회화증’이라는 우리나라에서 단 한 명뿐인 불치병으로 온몸이 굳어가서 꼼짝 못하고 누워있는 박진석님의 ‘소망’이라는 시(詩)도 있다는 것을 아시는지요.
“새벽, 겨우 겨우라도 잠자리에서 일어나/ 아침 햇살을 볼 수 있기를/ 아무리 천대받는 일이라 할지라도/ 일을 할 수 있기를/ 점심에 땀 훔치며/ 퍼져버린 라면 한 끼라도 먹을 수 있기를/ 저녁에는 쓴 소주 한잔 마시며/ 집으로 돌아오는 기쁨을 느낄 수 있기를/ 타인에게는 하잘것없는 이 작은 소망이/ 내게 욕심이라면, 정말 욕심이라면/ 하나님 저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라고 소망을 이야기하고, 교통사고로 뇌를 다쳐 10년간 누워 있는 50대 아들의 80세 노모는 “새해에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조금만 나아서 그냥 앉아 있기만이라도 할 수 있었으면”하고 아들의 굳어진 얼굴을 쓰다듬는 늙은 어머니의 새해 소망도 있답니다.
청주시에 있는 ‘성모 꽃마을’이라는 말기 암 환자수용 호스피스시설에는 ‘소변 한번 시원하게 보는 것, 편하게 숨 한번 쉬는 것이 소원’인 분들이 대부분이랍니다. 이 시설에는 세상에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항상 지하층에서만 살아오다가 육종암에 걸린 어느 19세 소녀가 ‘응급실이라도 좋으니 하룻밤만이라도 지상에서 지내게 해달라’ 고 소망하며 죽어 갔고, 사업실패로 빚더미에 앉은 아들에게 줄 것이 없는 가난한 어느 어머니는 유방암 징후를 감추고 ‘보험금이라도 타서 아들에게 줘야겠다’고 소원하며 병을 키운 모정(母情)도 있었답니다. 이들의 운명을 오랫동안 곁에서 지켜본 박창환 신부의 말에 의하면 “대부분의 분들이 죽음 직전에 가져갈 것(착한일 한 것)이 없다”고 말씀하시며 운명하시는 것이 안타까워 환자들이 착한 일을 할 수 있도록 “다른 환자를 위해 기도하기, 다른 환자를 위해 소변통 가져다주기”같은 일들을 권하고 있는데 환자들이 아주 즐겁게 참여하고 있답니다.
그러면 과연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가져갈 것이 있는지 주변을 살펴보았지요. 부끄럽지만 없었습니다. 더욱 부끄러운 것은 내 자식의 쾌유(快癒)는 눈물을 흘리며 기도한 적이 여러 번 있었지만 주변사람들의 고통에 대하여는 극히 형식적, 의례적인 기도였음을 고백합니다.
티벳인들은 평생에 의무적으로 한 번씩 그들의 성지(聖地)인 포탈라궁을 오체투지(五體投地)로 순례하는데 오체투지 때마다 드리는 기도의 내용이 무엇이냐고 외국의 기자들이나 관광객들이 물으면 한결같이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을 위하여”라고 답변한답니다. 그들의 기도내용에는 나를 배제한 다른 생명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조금은 부끄럽고 창피하지만 고백하겠습니다. 늘 제 마음은 장터처럼 시끄럽습니다. 왜 이리 평화롭지 못한가, 왜 이리 기쁘지 못한가, 왜 주어진 환경과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는가, 왜 좀더 겸손하지 못한가, 왜 아집이 그리 센가, 왜 남의 말들을 그 사람입장에서 순수하게 듣지 못하는가. 영국의 독설가(毒舌家) ‘버나드 쇼’의 자찬 묘비명(墓碑銘)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지요.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저에게 남은 ‘나그네 인생길’은 분명히 지나온 세월보다 남은 여정(旅程)이 훨씬 짧습니다. 더 늦기 전에 두 손에 들고 갈 것을 몇 개라도 만들어서 나를 세상에 보내 주셨던 ‘그 분’이 ‘너 세상에서 무엇가지고 왔니?’하고 물으시면 쑥스럽고 부끄럽지만 양손에 한 가지씩 들린 세상의 흔적을 슬며시 내 놓을 수 있는 제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것이 ‘붉은 돼지해’의 제 소박한 소망들 중의 하나랍니다.
- 養賢齋에서
가을의 끝자락에서
김 현 주*
언제부터인가 한국의 전형적인 가을 하늘을 보기가 쉽지 않았다. 환경오염 탓도 있고 바쁘게 사느라 도심의 콘크리트 벽에 갇혀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을 잊고 사는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어릴 적 눈이 시리게 높고 푸른 하늘은 추억 속에 박제된 줄 알았는데 올 가을은 유난히 맑은 코발트빛 하늘을 많이 볼 수 있어 행복했다. 시간 날 때마다 운동 삼아 현충원 경내를 걸었던 덕분이다.
늦더위와 가뭄으로 예쁜 단풍을 볼 순 없었지만 파란 하늘을 이고 노랗게 물들어 가는 은행잎을 보며 가을이 깊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계절은 어김없이 자연의 섭리에 따라 순환을 거듭한다.
한여름 그토록 무성한 잎으로 그늘을 만들며 위용을 뽐내던 마로니에도 미련 없이 그 잎을 떨 구며 겨울을 준비한다. 나무는 우주의 질서를 몸소 실천하며 말없는 교훈을 건넨다. 어느새 옷깃을 파고드는 바람에는 찬 기운이 느껴진다.
구양자는 말했다. “과연 가을은 어떻게 오는 것일까. 가을의 형상이란 빛깔은 참담하고 얼굴은 청명한 것이다. 또 그 가을은 차갑고 그 뜻은 쓸쓸한 것이다. 풀잎은 가을을 만나면 빛을 바꾸고, 나무가 이것을 만나면 이파리를 벗는다.” 그렇게 가을은 정열의 여름이 타고난 재처럼 붉게 물들었다 사위어 간다.
해마다 겪는 일이지만 계절의 길목에 서면 마음이 스산해진다.
특히 가을은 사람의 마음을 외롭고 쓸쓸하게 한다.
그 기운이 차갑고 그 뜻이 쓸쓸한 때문일까.
청명한 가을 하늘을 이고 누렇게 물들어가는 잔디밭에 금박 자리를 깔고 누웠다. 흙냄새가 코 끝에 스민다. 얼마만의 여유인가.
하늘엔 흰구름이 평화로이 둥둥 떠다니고 어느새 머릿속엔 어릴 적 동요가 흐른다. “풀 냄새 피어나는 잔디에 누워 새파란 하늘과 흰 구름 보며...”
아스라한 유년의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간다. 다시는 돌아갈 수없는 꿈같던 그 시절, 집 앞 동산에 올라 잔디에 누워 신데렐라와 백마 탄 왕자를 꿈꾸던 그 어린 시절의 내가 그립다.
그땐 무엇이고 다 될 것 같았고 세상살이의 고달픔이 뭔지도 모른 채 마냥 행복했고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 같다.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어 갈수록 새삼 때 묻지 않은 동화 같은 어린 시절, 동심의 세계가 사무치게 그리워진다.
팍팍한 세상살이에 잠시 눈만 돌리면 어디에서나 마주할 자연을 외면한 채 우린 늘 외롭고 허전한 마음을 안고 살아간다. 홀로 있어서 외로운 게 아니라 많은 사람 속에 섞이어 살아가면서도 진정으로 마음을 나누고 대화할 사람이 없어 고독한 것이다.
현대인은 군중 속의 고독, 풍요 속의 빈곤을 느끼며 외로움에 허덕인다. 마음의 빗장을 단단히 걸고 적당한 위선과 타협으로 세상을 산다. 가슴 속엔 누구나가 사람이 그립고 다정한 말 한마디를 간절히 원하면서도 자신은 아닌 양 , 진실을 외면한 채 거짓 웃음을 장식처럼 달고 살아간다.
사람 사이의 훈훈한 인정과 따스한 소통이 점점 사라지고 서로 불신하고 반목하며 이해득실을 따져 인간관계도 형성되어 간다. 그러다보니 감성은 점점 메말라가고 마음 기댈 곳이 없어 방황한다.
이럴 때 말없는 자연과의 교감은 더없는 위로와 안식을 준다.
자연은 언제 어디서나 한결 같이 변함없는 다정함과 푸근함으로 우릴 반겨주고 포근히 안아 줄 것이다.
한참을 이런 저런 생각에 자신을 내 맡긴 채 누워 한가로움을 즐겼다. 혼자 있는데도 전혀 외롭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진정한 자유로움을 느꼈다.
호위병처럼 빙 둘러 에워싸고 있는 나무들, 한가로이 떠다니는 구름, 이름모를 풀벌레의 하모니가 교향악보다 더 감미롭게 날 매료시켰다.
한적한 시골길 온통 황금물결이 일렁이는 들판을 석양을 등지고 하늘거리는 긴 쉬폰 치맛자락을 펄럭이며 한가롭게 걷고 있는 내 모습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떠오른다. 전원생활을 동경하는 미래의 자화상이다.
나는 어린 시절을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군인이셨던 아빠의 잦은 이사로 나는 시골의 할머니 집에서 유년을 보냈기에 유독 시골에 대한 향수가 진하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 꼭 시골로 돌아가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살고 싶은 게 내 소박한 꿈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아직도 그림처럼 선명한 어린 시절의 추억들, 유난히 꽃을 좋아하셨던 할머니 덕분에 집안이 온통 꽃밭이어서 겨울을 빼고는 늘 꽃이 가득했다. 채송화, 맨드라미, 붓꽃, 매화, 칸나, 난초, 다알리아, 백합들과 이름 모를 꽃까지 정말 그 어떤 멋진 정원보다 아름다운 화단이었다.
봄부터 시작하여 계절에 맞추어 꽃들이 저마다 앞 다투어 피었다 졌다. 그곳에 새가 둥지를 틀고 알을 낳으면 조심조심 지나다녔던 기억도 새롭다.
초가집 처마 밑의 수정처럼 맑은 고드름을 따 먹던 일, 감꽃을 주워 꽃목걸이를 만들고 백합꽃 수술로 손톱을 문질러 물들이던 일, 눈썰매를 타다 발이 빠져 울었던 일, 개울에서 물장구치며 놀던 일, 모내기를 따라가 밥을 먹었던 일들… 일일이 기억해 내려면 하루도 모자랄 만큼 많은 추억들이 보물처럼 간직되어 있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추억을 먹고 산다 한다. 그러기에 추억이 없는 노년은 유독 외롭고 쓸쓸하리라 생각된다. 「여자의 일생」에서 마지막 로잘리의 말처럼 “인생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행복하지도, 그렇게 불행하지도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모든 건 마음에 따라 생각의 차이에 따라 달라 질수 있다고 믿는다. 욕심을 버리고 마음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허허롭게 산다면 이 세상은 살만하지 않을까? 나만 잘되고 내 자식만 잘되기를 바라는 이기심에서 벗어나 더불어 함께 잘사는 세상이 되도록 노력할 때 모두가 행복 할 수 있다.
가을의 끝자락이듯 내 삶에서도 40대의 끝자락에 와 있다.
나무는 낙엽을 떨구어 겨울 채비를 하며 내년 봄 새순을 움틀 준비를 한다. 버려야 다시 얻을 수 있다. 나 또한 40대를 보내고 50대를 맞으며 그간의 모든 습관과 길들여진 타성에서 벗어나 새로운 패턴의 삶을 살고 싶다.
우리가 범하는 오류 중의 하나가 변화를 두려워하여 과거에 집착하는 것이다. 용기 있는 사람만이 인생에서도 자신이 원하는 바를 성취 할 수 있다. 나 또한 나이 듦에 주눅 들지 않고 더욱 의연하고 씩씩하게 50대를 살고 싶다.
안전거리
운전하는데 꼭 지켜야 하는 준수사항 중의 하나가 안전거리 확보이다.
지키지 않으면 사고를 유발하고 그 사고는 자신뿐 아니라 아무 이해관계도 없는 선량한 타인에게 까지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이렇듯 자신은 물론 상대방을 위해서도 절대적으로 안전거리는 필요하다 그런데 이런 안전거리는 자동차끼리 뿐만 아니라 사람 사이에서도 적용된다.
사람 사이의 이상적인 안전거리는 대상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가까울수록 좋겠고 불편한 사이 일수록 먼 거리를 유지하려 할 것이다. 다만 아름다운 관계의 지속을 위해서 각자 안전거리를 의식한다면 사람과 사람 사이가 좀 더 품위 있고 건실해질 것이다.
표면적인 거리뿐 아니라 마음과 마음의 거리도 차이가 있다.
점점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하면 왠지 다가오는 게 부담스러운 사람이 있고, 피하고 싶은 상대도 있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이 일수록 배려와 존중의 마음이 깃들지 않으면 서로에게 부담이 되고 상처를 준다는 걸 잘 알지 못한다. 좋다고 너무 가까워지다 보면 사소한 일에까지 간섭하고 개입하여 서로를 힘들게 하고 싫다고 너무 멀리 떨어져도 삶이 외롭고 고적하다.
그렇다면 사람 사이의 이상적인 안전거리는 어떤 걸까?
개인차는 있겠지만 적어도 마음속에 자신으로 인해 상대방이 힘들어하지 않게 하겠다는 자각이 비로소 안전거리에 대한 실천의 출발이라 생각한다. 그런 마음이라면 문제에 부딪쳤을 때 적어도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아량과 관용이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안전거리는 가족관계는 물론, 연인, 친구, 직장의 동료 및 상사 등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이다. 이런 의식이 있을 때 예의가 살아나고 상대를 생각하며 말과 행동을 조심하는 세심한 배려가 생겨나게 될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므로 살아가며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런 사람과의 만남이 우리에게 행복과 불행을 안겨 주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고 감싸주며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끼리의 만남이야말로 생의 활력이요, 삶의 의미 일 수 있다.
그런데 순수한 마음으로 부담 없이 만 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해마다 연말이면 하는 일중의 하나가 전화번호 수첩을 뒤져 보는 일이다. 한해를 보내며 인사를 해야 할 사람이나 혹여 안부를 잊고 산 누군가가 있나하여 페이지를 넘기며 뒤적이다 보면 빼곡히 적힌 번호 중에서 선뜻 전화를 하고픈 이름을 찾는 게 쉽지 않다.
이유야 많겠지만 그 많은 전화번호들이 대부분 일이나 어떤 목적 때문에 만난 사람들의 연락처이기 때문일 것이다.
간간히 박혀 있는 친구의 전화번호 앞에서도 머뭇거려 질 때가 있다.
지란지교처럼 마음 내키면 언제나 전화 하고 또 차 한 잔 하자며 찾아 나설만한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그만큼 모두 바쁘고 세상인심이 각박해진 탓 일게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이 어려워짐을 느낀다.
어릴 적 순수한 만남과는 달리 복선이 깔리고 뭔가 계산되어진 관계인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우린 부담스러워진다.
오랫동안 연락이 없던 친구가 불쑥 찾아오면 반가움에 앞서 무슨 일 때문일까
걱정이 앞서는 것도 서글픈 현실이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부담이 되는 존재는 아닐까 되돌아 보게 된다.
살아가며 사람과 사람이 어우러지고 관계를 맺으면서 성장하고 발전하고 그런 가운데 삶의 진정한 의미와 행복을 느끼게 된다. 좋은 인간관계야 말로 그 무엇에 비길 수 없을 만큼 값지고 소중하다.
존경받는 스승과 제자 사이, 사랑하는 연인사이, 금슬 좋은 부부사이, 친구사이의 우정, 부모 자식 간의 사랑 등 아름다운 관계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런데 이런 관계가 어느 날 갑자기 원수가 되고 증오의 대상이 되어 끔직한 사건으로 번지기도 한다. 이는 서로 간의 안전거리를 무시하여 존중과 신뢰의 마음이 사라진 때문일 것이다.
사랑하는 연인 사이도 서로 없으면 살 수 없을 만큼 좋아하다가 어느 한쪽이 변심을 하면 금방 증오의 칼날을 들이대고 상대방을 해치곤 한다.
진정한 사랑은 서로를 구속하지 않고 오히려 날개를 달아주는 일이라 하지 않았던가. 모든 것이 욕심과 이기심에서 비롯되는 불상사이리라. 부모 자식 사이도 혈연으로 이어진 끈끈한 정이 재산이나 그 외의 이해관계로 얽히다보면 돌이 킬 수 없는 불행을 자초하게 된다.
우리가 잘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람사이의 관계를 잘 조율해야 한다.
마치 한 알의 씨앗을 뿌려 좋은 결실을 거두기 위해 온갖 정성과 애정으로 가꾸듯 사람과의 관계도 잘 이끌어 나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현명한 사람들은 좋은 인간관계를 지속하면서 상호 발전을 위해 노력한다. 사람이 제 아무리 잘나고 많이 배웠다 하더라도 혼자서는 살지 못한다. 또한 정말 훌륭한 사람은 주변에 그를 빛나게 하는 조연이 있었음을 우린 알고 있다. 그만큼 사람은 관계 속에 발전하고 성장 할 수 있는 것이다. 적정선의 거리를 유지하며 내가 상대에게 유익하고 필요한 존재가 되려 노력한다면 그 상대도 진실을 이해하고 같은 마음이 되리라 믿는다.
자동차든 사람이든 절대 안전거리를 지키는 것은 자신을 보호하고 지키는 것은 물론이고 상대에 대한 예의이다. 나를 고집하기 이전에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 할 줄 아는 작은 배려의
실천이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이웃을 밝게 만든다. 물질이든 마음이든 내가 먼저 주려한다면 우리들이 사는 이 세상은 분명 아름답고 살만한 세상이 될 것이다.
과유불급과 같이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너무 가까워 상처를 주고받기 보다는 적절한 안전거리를 통해 서로를 보호하는 것이 이상적인 관계일 것이다.
세월
일요일 오후면 대중목욕탕에 가는 것이 아주 오랜 습관이 되었다.
일주일 동안 밀린 청소며 빨래랑 집안일 들을 마치고 하루의 피로와 찌든 먼지를 말끔히 씻어내는 목욕은 내게 작은 즐거움을 주는 휴식의 시간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해질녘 목욕탕을 찾은 나는 머리를 감고 비누질을 한 후, 탕안 깊숙이 몸을 담갔다. 따스한 물의 온도와 부드럽게 뽀글거리는 포말이 온몸을 감싸며 애무해주는 듯해 기분 좋은 행복감에 도취되어 눈을 감은 채 심신의 긴장감을 풀어내고 있었다.
헌데 탕 안 한 아주머니의 감탄에 눈을 떴다.
“너 어쩜 이리 예쁘니! 몇 살이야? 꼭 인형 같애.”
곁의 중년 여인에게도 “참 예쁘죠?” 하면서 사랑스런 눈으로 두 여자 아이를 연신 번갈아 보며 황홀해 했다.
“언니니? 또 동생 있어?”
궁금한 것이 참 많기도 하다. 탕 안의 온 여자들의 시선이 두 아이에게 모아지자 대여섯 살 되어 보이는 작은 아이와 언니로 보이는 또 한아이가 슬그머니 탕에서 빠져 나간다. 우유빛 살결에 앙증스럽게 작은 몸매가 정말 바비인형처럼 귀엽다.
그 아이들을 따라가던 내 눈길이 갑자기 탕 안을 휘익 둘러 보았다. 태초의 모습 그대로 자신을 드러낸 수많은 여체들이 그곳에 있었다. 이제 막 걸음을 걷는 어린 아이부터 80이 넘어 자신의 몸조차 혼자 움직이기 불편해 누군가의 부축을 받아야 하는 노인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다양한 형상들이 공존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태어나 죽음에 이르기까지 변해가는 여인들의 모습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목욕탕이기도 했다.
작고 예쁜 어린 아이들, 사춘기를 지나 꽃봉오리처럼 막 피어나는 소녀들, 성숙한 여인의 몸을 지나 아이를 낳아 쳐지고 두드러진 뱃살이 어쩔 수 없는 중년, 그리고 피부의 탄력도 몸의 기운도 다 스러져 한생의 무게가 고스란히 남겨진 노년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지나왔고 앞으로 거쳐 가야 할 생의 여정이 기록영화처럼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고 있다.
이제 나도 탱탱한 젊음과 싱그러움을 자랑하던 시절이 지나 중년이다.
매끄럽고 탄력 있는 젊은 아가씨들의 날씬한 몸매가 부럽지만 내겐 이미 그 시절은 다시 오지 않는다. 우리의 인생은 한번 지나가 버리면 되돌릴 수 없다. 그래서 매순간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것이다..
지극히 개인적이면서 일회적인 삶을 살며 진정 소중하고 가치 있는 일이 무얼까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나이가 든다는 건 외적인 미추의 집착에서 벗어나 내면의 아름다움을 가꾸고 넉넉함과 여유로움을 지니며 인생을 관조 할 수 있는 지혜를 지니는 것이다.
탐욕과 집착을 버리고 개인적인 이기심에서 벗어나 주변을 돌아보고 함께 나누며 더불어 살아가는 길을 찾는다면 그 인생은 더없이 아름답고 풍요로우리라 생각한다.
세월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하루 24시간 일 년 365일을 나누어 준다.
잘 쓰고 못 쓰는 건 오직 받아 든 자신들의 몫이다. 잘 산다는 게 꼭 부자로만 사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요즘처럼 웰빙 붐이 일고 있는 시점에선 건강하게 사는 것도 잘 사는 방법의 하나일 것이다. 건강 또한 육체적인 건강뿐 아니라 정신적, 사회적 건강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살고 성공한 인생인지는 각자마다 추구하는 이상과 목표가 다르니 한마디로 단정하기는 쉽지 않다.
허나 애머슨의 시처럼 내가 태어나기 이전보다 조금은 나아지고 발전 할 수 있도록 노력 하는 것, 많이 웃고 사랑하며 아이들에게 존경 받은 것도 성공한 인생일 것이다. 꼭 재벌이 되고 정치적으로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만이 성공이 아니라 자신만의 빛깔과 향기를 지니고 자족하며 사는 것이 진정한 성공일 것이다.
어느덧 한해가 저물어 세모다.
이맘때면 늘 느끼는 허전함, 연초에 세웠던 계획들을 떠올리며 실천하지 못한 후회나 아쉬움으로 씁쓸해지는 시간이다. 허나 매순간 최선을 다하며 열심히 살았다면 비록 목표는 다 이루지 못했다 하더라도 자신에게 후한 점수를 주고 격려해 주어야 하리라. 우리의 행복은 결과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과정이 더 소중하기 때문이다.
너무 목표에만 집착해 과정을 무시하거나 목표 달성을 위해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세상을 살아간다면 오히려 달성하지 못함만 못하다.
행복은 준비된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우연처럼 찾아오는 것이다. 다만 행복을 느낄 줄 아는 감성과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만이 행복할 수 있다.
행복은 크고 먼 곳에 있지 않다.
이렇게 따뜻한 온천욕을 즐기는 이 순간 난 더없이 행복하다. 티 없이 맑은 하늘을 올려다보는 순간 살아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가슴 벅차게 행복한 적이 있다. 또 세차장에서 받았던 작은 친절에 하루 종일 기분 좋은 행복감에 도취하기도 했다. 이처럼 행복은 도처에 널려 있어 마음으로 느끼고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다.
단조롭게 반복되는 일상이 자칫 지루하고 권태롭게 느껴지기 쉽다. 그럴 때 자신만의 특별한 눈으로 세상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며 매순간 행복을 누린다면 세상은 훨씬 재미있고 살만하지 않을까?
오늘 목욕탕의 그 아줌마처럼 아이의 해맑고 예쁜 모습에 감동하며 행복해하는 그 마음의 여유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리라 믿는다. 나 또한 욕심도 미움도 벗어 놓고 넉넉한 마음으로 서늘한 눈매로 세상을, 그리고 주변을 바라본다면 늘 행복 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한 주간의 묵은 때와 피로와 시름을 다 내려놓고 가뿐한 몸과 마음이 되어 목욕탕을 나설 때면 난 선녀라도 된 양 기분이 좋아진다.
목욕을 하면 하루를 기분 좋게 살 수 있다 했던가. 난 습관처럼 일요일 오후면 목욕용품이 든 바구니를 들고 온천탕으로 향한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가듯 이 버릇은 오랜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을 것이다. 이는 내 일상의 작은 행복을 주는 활력소이며 새로운 한 주를 잘 시작하고픈 나만의 의식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 대전 출생, 점핑스쿨 공주교육원장, 수필가, hl3evs@hanmir.com
자료실에 기대어
양 원 준*
누렇게 변해 있어 더욱 보기 좋았다. 그동안 숱한 사람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을 활자가 잠들어 있고 영상물들이 다시 비디오 ‘play’ 버튼을 기다리며 숨죽이고 있는 곳. 얼마나 손길이 닿지 않았을까? 분명 그 누군가로부터 시선 한번쯤은 받아보았을 텐데. 그런 막연한 기다림 자체가 공존해있는 곳이라 좋다.
잉크 냄새였을까, 아니면 낡은 종이에 세월의 무게가 더해져 밴 연륜의 냄새일까? 시시각각으로 쏟아져 나오는 것이 인쇄물인 것을 감안하면 이곳에 모인 자료들이라고 해봐야 극히 일부에 불과하겠지만 그래도 호감이 가는 것은 언젠가는 다시 찾을 그 누군가와의 ‘인연’을 준비하고 있는 그 ‘냄새’가 함께 하기 때문일 것이다.
처음 자료실에 들어선 순간의 기억은 마치 오래 전 일기장을 꺼내보는 듯한, 옛 보물상자를 들여다보는 듯한 설렘 그 자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꽤 육중한 철제문만으로도 결코 아무나 들어설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음에도 큼지막한 경고문이 다시 한 번 발길을 막아섰기 때문이고 그렇기에 그곳에는 비밀스런 그 무엇인가가 실타래가 되어 잠들어 있을 거란 느낌 또한 한 몫을 거들었기 때문이다.
자꾸 하지 말라면 더욱 하고 싶은 것이 당연지사가 아닌가? 그래서 방송국에 들어와서 제일 먼저 보고 싶었던 곳이 바로 ‘관계자’가 아니면서도 ‘관계자’인 척 이곳 ‘자료실’에 들어가 보는 것이었다. 자료실에 들어서면 정리되지는 않았을지라도 앞서 말한 그 ‘기록’들이 뱉어내는 느낌 하나 정도는 건질 수 있을 거란 기대 또한 숨길 수 없었다.
그렇게 어렵사리 들어선 자료실. 마치 여느 도서관에 온 것처럼 가지런히 놓여 있는 서고와 각종 영상테이프 보관실이 눈앞을 사로잡는다. 그 중에서도 내 시선을 묶어둔 것은 개국할 무렵의 방송 프로그램이라도 담겨있을 테이프와 너덜너덜해진 원고 뭉치들. 특히 비디오테이프에는 ‘선경화학’이라는, 이제는 접하기 힘든 회사명이 그대로 찍혀 있기도 했다. 아마 이 테이프도 재생기를 거친 지는 참 오래되었을 거란 느낌이다. 그래서 더욱 내 눈동자를 사로잡았던 것이 아니었을까? 어쩌면 이 테이프 역시 언젠가는 역사의 한 증거가 되리란 판단 때문에….
사실 방송에서 다루어지는 모든 것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역사요 남겨둘 가치가 충분한 자료다. 그 시대의 생활상이나 가치관들이 방송에는 가감 없이 담겨 있다. 물론 방송 언어도 마찬가지이다. 소위 비표준어가 판치는 요즘 시대의 단면이 지금 당장은 거칠고 투박하게 비쳐질지는 몰라도 하나의 대중적 문화로서 기록해 둘 가치는 충분하다. 더구나 그 시대의 생활상과 언어 습관 등이 담긴 대본은 얼마나 귀한 자료란 말인가?
그렇기에 내가 몸담고 있는 곳의 구성원들 한명 한명의 몸부림도 결코 예사스럽지가 않다. 지난 밤, 방송작가는 좀처럼 꺼질 줄 모르는 여의도의 불야성 속에서도 한 꼭지의 글을 쓰기 위해 연신 줄담배를 피웠을 거다. 뇌리 속에서 맴도는 떠오를까 말까한 단어를 조합하기 위해 애쓴 그녀의 흔적은 재떨이에 수북이 쌓인 담배꽁초가 대신한다. 제작기술부 박 감독님은 또 어떠했는가? 스포츠 모자를 푹 눌러쓴 채 테이프를 되감기를 벌써 수십 차례다. 때로는 의사소통이 맞지 않아 언성을 높이고, 불협화음도 곳곳에서 드러난다. 긴장과 고요, 폭풍과 고운 아가가 늦은 밤의 친구가 되어주어야만 한다.
그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완성된 작품에는 우리네 일상이 담겨있고 삶의 철학이 배어있다. 우리는 그 안에서 희로애락을 공감하게 된다. 지금 그들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테이프 하나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숨결이 담겨져 있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먼 훗날에는 우리 시대를 대변하는 기록이자 하나의 역사로 새롭게 태어날 것이다.
사전에서는 ‘어떤 일을 전문으로 하거나 그런 지식이나 기술을 가진 사람’을 가리켜 ‘프로’라고 일컫는다. 자료실에 깃들어 있는 흔적들은 적어도 오늘을 살고 있는 이 시대에 자신과의 싸움에서만은 우뚝 선 그 프로들이 써내려간 자취다. 지금은 비록 먼지가 쌓이고 찾는 빈도 또한 드물지라도, 언젠가 찾을 또 다른 그 누군가를 위해서는 기약 없는 기나긴 잠을 자야 할지라도 그 순간만은 반드시 찾아올 테니 자료실은 시간이 아무리 흐른다 할지라도 언제나 정겹고 살가운 곳으로 남을 것이다.
섬진강은 흐르고 싶다
“너는 너, 나는 나가 아니라 네가 없으면 나 역시 없는 것이다.”
도법 스님은 처음부터 한결같은 자세로 그러나 차분하면서도 힘 있는 목소리로 말씀을 이어가셨다. ‘생명평화운동’이라니, 내게 있어서는 아직 생소하기만 한 말씀이셨지만 그 중심에는 ‘우리’가 있는 것이라고, 그래서 각자가 서로의 배경이 되어주지 않으면 그 어느 것도 아무런 힘을 발휘할 수 없는 것이라며 그 분은 그렇게 시종일관 일관된 모습으로 함께 사는 세상을 그려가셨다….
문학기행이라는 명목 아래 찾게 된 지리산 실상사. 여느 사찰과는 달리 평지에 들어선 것과 같이 그 분의 향기 또한 남달랐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는 그동안 좀처럼 인식하지 못하고 지나쳐왔던 ‘우리’를 발견할 수 있었고 지금 우리네 세상의 잣대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까지도 조금이나마 깨달을 수가 있게 되었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이번 문학기행에 있어 가장 큰 소득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렇다면 생명평화운동의 끝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 물음에 대한 정답은 정해져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근접한 답 또한 그렇게 멀리 있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느낌도 금방 읽을 수 있었다. 바로 적성댐을 둘러싼 논란처럼 말이다.
지난 2005년 9월, 순창군을 흐르는 섬진강은 그렇게 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그곳의 주인 역시 어디를 가나 볼 수 있는 우리의 산과 들이었다. 좀 더 시야를 넓혀 그곳에서 물놀이를 하는 사람들도, 땀 흘리며 수확에 열심이었던 마을 주민들도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우리의 이웃, 그 모습 그대로였다.
하지만 그 주민들의 마음까지 담기에는 그 깊이가 결코 만만치가 않음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도 있었으니 바로 섬진강을 막아 적성댐을 건설한다는 이야기 때문이었으리라.
환경을 전공해서일까? 이곳에 댐이 들어선다는 소식부터가 결코 반갑게 느껴지지가 않았다. 아울러 자연을 무시하는 것은 ‘교만’과 ‘폭력’이라는 또 다른 생각이 앞을 가로막았다.
아마 당초 계획대로라면 머지않아 이곳에서도 수몰을 알리는 표지판이 들어설 것이고 마을 주민들은 그네들이 처음과 끝을 함께 했던 고향을 등진 채 어딘가로 뿔뿔이 흩어져야만 할 것이다. 그들이 어렸을 적부터 키워왔던 꿈도, 그들 부모님의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았던 논과 밭에 대한 집념도 인공호수 바닥, 저 폐허의 한 모서리에 남긴 채 말이다.
나는 이네들의 아픔을 모조리 읽지는 못한다.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겪어본 적이라고는 조금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렇게 ‘우리’ 역시 기억 속 고향을 또 하나 잃어버리게 될 것이란 점이다. 그러니 누렇게 익은 저 곡식이 있던 자리에 시퍼런 호수물이 가득 찬 어느 날 다시 찾는다면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얻을 수 있으려나?
어렸을 때부터 고향인 충남 서천을 떠나 대전에서 자취생활을 해야 했던 내게 있어 고향이란 존재는 마치 어머니의 품과 같은 곳이었다. 찾으면 찾을수록 반가운 것은 물론 정이 느껴지고 옛 추억이 다시금 가슴 속 가장자리에서부터 피어나 결국에는 입가에 반달 모양의 미소까지 안겨주던 곳이었다. 그래서 친구들과 함께 물놀이를 하고 가재를 잡고 반딧불을 보며 할머니께서 들려주시던 옛 이야기를 들으면서 잠을 청했던 그 기억은 좀처럼 잊히지 않을 소중한 추억으로 아직까지도 남아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의 내 고향은 아쉽게도 그 때 그 시절의 옛 정취를 다 담아내지는 못하고 있다. 이농현상의 한 단면처럼 고향을 등지는 마을 사람들과 비례해서 이제는 폐가만이 그 빈 공간을 채우고 있을 뿐이다. 어디 그 뿐이랴? 냇가에서 조금만 허리를 구부린 채 손을 모으기만 하면 금세 2~3마리씩 잡히던 붕어, 피라미는 물론이고 이제는 기억 속 빨래터마저 찾을 수 없게 되었다. 그렇게 고향에 대한 기억이 흐려져 갈수록 우리네 기억 속 ‘X파일’ 역시 시나브로 지워져 간 것이다.
그래서일까? 지금은 고향에 가도 예전처럼 반갑지만은 않다. 이제는 찾는 이 없는 개울가에 핀 개나리도, 마을과 400여 년을 함께 한 정자나무도 그 곳에서 쉬어가고 잠들었던 달도, 바람도 모두 그 때 그 모습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지금도 섬진강은 흐르고 있고 순창 사람들의 가슴 속에 흐르는 섬진강은 어머니의 탯줄 같은 것이어서 그 소중함을 모르는 이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누가 그들의 입에 귀를 기울였던가? 혹 책상에 앉아 계산기만 두드린 채 내려진 결정에 무조건적으로 따르기만을 바라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행정의 편이성만을 좇다 보니 이제는 우리가 정말 소중하게 여겨왔던 그 함께 사는 가치를 등한시 하게 된 것은 아니었을까?
언젠가 안도현님의 ‘연어’란 책을 읽은 적이 있었다. 그 책에서 초록강은 은빛연어에게 ‘삶의 의미는 다른 누군가의 배경이 되어주는 것’이라고 가르쳤던 것을 떠올려본다.
섬진강을 바라보면 그 때 그 연어에게 마음을 다해 세상의 잣대를 일깨워주던 소설 속 초록강이 떠오른다. 그 초록강이 말한 배경을 우리는 결코 쉽게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래서 일 년 전, 도법 스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너’와 ‘내’가 아니라 ‘우리’를 바라볼 줄 아는 눈을 키워야 하지 않을까?
그 순간 섬진강은 지금처럼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 땅을 촉촉이 적시며 흐를 터이니.
* 충남 서천 출생, ≪상상의 힘≫으로 작품활동 시작, 환경TV 방송사 재직, dasomwj@hanmail.net
복을 부르는 돼지
임 정 란*
흔히 몸이 뚱뚱하고 우둔한 사람을 돼지에 비유하여 이야기하지만 신화에서 돼지는 복의 근원이자 재물을 상징하는 동물로 잘 알려져 있다. 돼지꿈을 꾸고서 복권을 사는 이유는 이러한 돼지의 상징성 때문으로 이미 우리 문화의 일부분으로 자리 잡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평소 요행으로 행운을 거머쥐려는 사람을 고운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는 나조차도, 꿈에서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돼지가 등장하는 꿈을 꾸었을 때면 어김없이 복권을 구입하여 행운이 오기를 간절히 고대하곤 한다.
요 근래 들어 현대사회의 기이한 현상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은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로또복권의 열풍이다. 돼지꿈을 꾸는 사람들이 많아진 이유에서일까? 누구나 이에 대한 답은 ‘아니오’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돼지를 복의 상징으로 여기는 한국의 문화에서 이런 이유는 기이한 현상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이와 같은 일이 발생했을까?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한국사회에서 “1등”이라는 숫자의 가치는 다른 무엇과도 비교의 대상이 되지 않았었다. 특히 학업성적에서 차지하는 1등은 거의 성공을 보장해주는 절대적인 가치였다. 집안 형편이 어렵더라도 공부를 특출 나게 잘해서 일류대에 진학하면 그것은 곧바로 성공과 직결되었었던 것이 얼마 전까지의 한국 사회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이런 한국사회가 변하기 시작한건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과거 고소득을 보장해주는 직업인 의사, 변호사 등의 화이트칼라 계층의 몰락은 이러한 한국사회의 변화된 현실을 잘 반영해 주고 있다.
얼마 전 사람들에게 새해 소망을 물어본 결과를 다룬 기사를 본 적이 있다. 1위를 차지했던 것이 “로또 1등 당첨”이었다. 무수히 많은 소망 가운데 “로또 1등 당첨”은 쌩뚱맞아 보이면서도, 현 한국사회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해 주는 결과라는 생각이 든다. 로또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큰 액수의 당첨금이 걸려 있는 로또복권의 등장 이후 끊임없이 이어져 왔으며, 그 결과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복권으로 자리 잡았다. 사람들이 가장 듣고 싶은 소리가 “로또 1등에 당첨되셨습니다.”라고 할 정도로, 로또의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로또의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가히 짐작할 만하다.
흔히들 사람들은 “로또 1등”만 당첨되면,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일단 어마어마한 복권당첨금으로 얻은 경제적인 풍요로움은, 현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극심한 취업난으로 백수, 백조 생활을 하고 있는 청년실업자들부터 자녀의 교육문제와 해고의 불안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중·장년층에 이르기까지 각 세대별로 겪고 있는 여러 문제는 결국 물질적인 측면이 해결이 되면 대부분 자연스럽게 해소될 수 있는 여지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IMF 외환위기 이후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한 경제상황으로 인해 한국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경쟁은 결국 로또 복권의 구입이라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발전한 것이다.
로또 복권을 구입하는 사람들이 한 목소리로 이야기 하는 말이 있다. 로또 1등에 당첨만 되면, 한국을 떠날 것이라는 것이다. 이 말 속에는 한국사회에서 살아가기가 얼마나 힘들고 버거운지를 잘 말해주고 있다.
새해를 맞이하여 오랜만에 모인 가족모임에서 가까운 친척 중 한 분이 함께 일하는 직원들에게 로또 복권 한 장씩을 새해선물로 줬더니 너무나 직원들이 좋아하더라는 것이다. 아마도 직원들의 새해 소망도 로또 복권 1등 당첨을 모두 바라고 있었나 보다. 모든 사람들이 소망하는 로또복권 1등 당첨이 현실적으로 실현되기는 불가능할지라도, 혹시 모를 기대감이 드는 것은 누구나 부인하지 못한다. 복권의 마력은 이런 것이다.
로또 복권을 구입하는 사람들은 혹시 자신이 구입한 복권이 당첨이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 일주일을 부푼 기대감속에서 보낸다고 한다. 그리고는 당첨자 발표가 끝나면 바로 큰 실망을 하지만, 이것도 순간이며 다시 당첨의 희망을 갖고 복권 구입을 반복한다는 것이다. 요행을 바라면서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왠지 쓸쓸하게 느껴진다.
그냥 돼지해도 아닌 600년 만에 찾아온다는 황금돼지해를 맞이한 2007년에는 많은 사람들에게 로또 1등 당첨과 같은 큰 행운이 함께하길 기원한다. 그 행운은 일주일을 로또의 당첨만을 기다리면서 보내는 사람보다는, 12월의 마지막 날, 한 해를 알차게 보낸 결과들에 뿌듯해하면서 제야의 종소리를 듣게 되는 사람에게 찾아오지 않을까! 복을 가져다주는 돼지의 상징은 바로 이런 것이리라.
지리적 마인드
보통 사람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 깨닫지 못하고 차를 타고 기차를 타고 다른 지역의 경관을 구경하기 위해 애를 쓴다. 심지어는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면서까지 비행기를 타고 다른 나라로 나가는 것을 서슴지 않는다. 늘 거주하는 곳이기에 특별한 느낌이 없는 곳보다는 새로운 무엇인가를 보기위해 가급적이면 자신의 고장을 벗어나 여행을 떠나려고 하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생각일 것이다.
주 5일 근무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면서 곳곳의 고속도로는 주말을 이용하여 여행을 가려는 사람들로 긴 자동차의 행렬이 늘어서 있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이제 이와 같은 모습은 현대사회의 당연한 현상이 되어 버렸다. 달력에서 빨간 글씨로 표시된 날은 무조건 밖으로 떠나는 날로 기정사실화 된 듯하다. 이제 더 이상 현대인들에게 교통의 정체는 별로 유난스럽게 여길만한 문제가 아니며 여행에서의 고려 대상이 아닌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고장인 대전, 나는 대전에서 태어나 줄곧 이 지역에서 성장한 대전 토박이이다. 오랜 세월동안 자라고 성장하고 생활한 곳이기에 애착이 많은 지역이지만, 정작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자연경관을 주의 깊게 살펴볼 기회가 없었다. 등산을 하기 위해 산을 오를 때에도 대전이 아닌 다른 지역의 산을 오르곤 했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그래서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이 대전을 여행지로 물어보아도 자신 있게 추천을 해 주지 못했다. 이런 내가 지리에 대한 공부를 하게 된 것은 그동안의 사고를 획기적으로 전환시켜 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저 평소에는 지형경관을 바라볼 때, “저 산은 참 멋있구나, 단풍이 물들어 예쁘다”정도의 느낌이었다. 그러나 각각의 지형들이 어떤 원인에 의해서 만들어졌는지 그 형성원인을 생각하며 지형을 바라보면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지형이지만 전부 소중하고 아름다운 지형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산의 정상에 높게 솟아 오른 거대한 바위들을 보며 멋있다고 탄성을 자아내는 것을 지리학적으로 보면, 그 바위는 비, 바람 등의 작용으로 지표 속에 있던 기반암들의 옷이 벗겨져 벌거벗은 일종의 노출경관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삶이 경쟁의 연속인 것과 마찬가지로 지표의 자연환경도 수많은 물리적, 자연적 요소와의 경쟁 속에서 살아남은 것만이 경관이 될 수 있다.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원칙이 자연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다. 그저 평소 같았으면 이러한 바위들을 보면, “멋있다”라는 정도로만 생각할텐데, 지리를 공부한 후 바라본 암봉은 “저 바위는 옷이 벗겨져 있는 노출경관이네, 옷이 없어서 춥겠다”라는 생각을 함께 하게 된다. 이러한 지형은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지형은 아니기에 사람들의 이목을 끌게 되는 경관인 만큼 가치 있는 자연경관이라 볼 수 있다.
또, 우리가 산에 가보면, 여기저기 각이 진 암괴들이 길게 늘어선 것들이 있다. 이런 것들은 주로 산골짜기에서 많이 볼 수 있는데, 돌들이 물이 흐르는 것처럼 길게 늘어서 있다고 하여 암괴류라고 한다. 이러한 암괴류는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잘 띄지 않지만, 흔하게 볼 수 있는 경관이 아니기에 신기하고 멋있다. 바위가 갈라져서 생기는 절리도 멋진 경관을 연출할 수 있는데, 수평이나 수직방향의 절리는 각각 독특한 모습의 경관으로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다.
이처럼 주변의 자연경관을 지리학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멋있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내가 살고 있는 고장인 대전에도 식장산, 보문산, 구봉산, 만인산, 계족산 등의 명산이 있는데, 각각의 산들은 수많은 시련 속에서 살아남은 자연경관들이 멋진 모습을 연출하여 사람들의 발걸음을 꾸준하게 이어오게 하고 있다. 봄이 되면 알록달록 꽃으로, 여름이면 푸르른 산록으로, 가을이면 울긋불긋 단풍으로 겨울이면 앙상한 가지들로, 사계절을 독특한 경관으로 만드는 산을 여럿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대전은 다른 사람들에게 멋진 자연경관을 가진 산이 많아 등산하기가 좋은 지역이라고 이야기해 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는 것이다.
대전은 이미 많은 곳들이 시가지화 되어, 도심과 그 주변은 많은 고층 건물들이 늘어서 있어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복잡한 도시로밖에 떠오르는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도시가 아닌 다른 관점으로 바라다본 대전은 외곽으로 둘러싸인 산들이 멋진 경관을 연출하고 그 안의 분지는 각종 도시의 기능이 집중되어 사람이 살기에 가장 이상적인 지역이며, 또한 여행지로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지리적 마인드를 가지고 지형을 다른 관점으로 바라볼 때, 평소 특이할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주변의 지역이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수 있다.이런 관점에서 내가 살고 있는 대전의 경관이 다른 어떤 지역보다 아름답고 소중한 곳이란 것을 지금에서라도 깨닫게 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안부전화
유 주 리*
지잉. 지잉.
책상 위에 올려 둔 핸드폰 진동소리가 요란히도 울린다. 발신자를 확인해 보니 또 우리 아빠다.
“어, 아빠!”
“감기 아직 안 났어? 코맹맹이 소리 나네. 밥을 제대로 먹어야 감기가 낫지”
“으-응!”
“일은 할 만해?”
“응, 그렇지 뭐”
“뭐 별다른 일은 없고?”
“응, 없어”
“그려, 알았어”
뚝.
우리 부녀로 말할 것 같으면 무뚝뚝한 유전자를 그대로 이어 받은 것이 천상 아버지와 딸이다. 나의 타지생활이 10년을 훌쩍 넘었건만, 아버지와의 전화내용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없다. 달리 할 말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표현방법을 모르는 것인지 늘 안부만을 묻기 때문에 우리 부녀의 통화는 1분을 넘기는 일이 드물다.
그러나 내가 지역의 조그만 잡지사에 취업한 후, 아빠로부터의 안부전화가 ‘곧잘’ 걸려 온다. 이제 막 취업한 사회초년생이자, 한 달째 감기를 달고 사는 빌빌대는 딸이 꽤나 걱정되는 모양이다. ‘곧잘’ 이래봐야 일주일에 두어 번 정도에다 1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통화이지만, 아버지 특유의 사투리 섞인 음성을 듣고 있노라면 묘하게 가슴이 뭉클해져 온다.
아마도 딸을 염려하는 마음이, 사랑이 아버지의 목소리 한가득 배어나오기 때문이리라. 일찍부터 홀로 타지생활을 한 딸이 걱정되지 않을 리 없지만, 그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서툴러 안부 이상은 묻지 못하는 아버지의 한숨소리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자주 전화하면 행여 딸에게 누가 되지 않을까 이 생각 저 생각 망설임 끝에 수화기를 들었을 모습까지도 눈에 선하다.
나는 어떠한가?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아버지와 매한가지다. 새벽같이 일어나 쉴 틈 없이 몸을 움직이시는 아버지에게 “아빠, 건강 좀 생각해”라며 따뜻한 한 마디 정도 건넬 수 있으련만 도통 입이 떨어지지 않아 그대로 수화기를 내려놓기 일쑤이다. 게다 생활비 문제를 제외하면 내가 먼저 아버지에게 전화한 적은 손에 꼽을 정도이니 그야말로 불효막심하지 않은가. 평생을 한결같이 노력하고 희생한 아버지의 삶을 헤아리지 못하고 되려 어린 아이처럼 마냥 떼쓰기만 했다. 아버지의 머리숱이 빠지고, 이마의 주름이 깊게 패여갈수록 아버지의 더 큰 희생을 강요하며 남들보다 부족한 상황을 탓하고만 있었다. 그렇다. 나는 감정표현에 인색한 무뚝뚝한 아이가 아니라,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어린아이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얼마 전 이사 간 새집을 정리하다 우연히 아버지의 젊은 시절 사진 몇 장을 발견했다. 동년배들과 즐거운 한 때를 보내는지 얼굴 한가득 웃음을 머금고 있는 건강한 장발 청년이었다. ‘아, 아버지에게 청춘이 있었구나. 아버지는 내 아버지이자, 나보다 인생을 먼저 살아가고 있는 선배구나’ 새삼 아버지가 위대해 보였다. 그리고 아버지의 남은 인생 누구보다 따뜻하게 웃음 지을 수 있는 선물을 하고 싶어졌다.
다가오는 설날에는 그 선물의 일부를 아버지께 드려야겠다. 이번에야말로 아버지께 먼저 전화해 안부를 물어야겠다. 무뚝뚝한 딸이 얼마나 달라지겠느냐마는 “우리 아빠 없었으면 나 어떡했을까?”와 함께 “항상 고마워”라는 말도 덧붙여야겠다.
철없는 딸이라고 주변의 오해를 받을지언정 이말 만큼은 꼭 한 번 해야겠다.
* 충남 논산 출생, 월간《마이라이프》기자, juriyu@hanmail.net
줏대없는 토끼와 양의 탈을 쓴 거북이
국 정 숙*
한창 사람들이 퇴근길에 바쁠 무렵 내가 자주 다니는 길에 자리한 문구점 앞이 소란스럽다. 무슨 일로 소란스러운지 궁금해 눈길을 주니 문구점에서 소란을 피우던 아이들 가운데 대장인 듯한 녀석이 품에 한가득 불량식품을 안고서 아이들의 환심을 사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은 그 대장 녀석에게 온갖 입에 바른 말을 하며 조금이라도 더 마음에 들어 불량식품을 얻어먹겠다는 태도로 올망졸망 모여 있었다.
잠시 후 연습장과 펜을 사고 나오는데 그 자리에서 더욱 우스꽝스러운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갓 이사 온 것으로 보이는 아이가 건담 로봇 몇 개를 아이들에게 보여주며 자랑을 하고 있었다. 자기의 부하가 된다면 로봇 하나쯤은 얼마든지 줄 수 있다는 태도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불량식품을 가득 안은 대장은 뒤로 물러난 지 오래다. 아이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불량식품을 든 대장을 버리고 광이 나는 로봇을 든 아이에게 왁자지껄 모여들며 새로운 아이의 등장을 열렬히 환호하고 있었다. 대장은 얼굴을 찌푸린 채 억지로 울음을 참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대장 녀석의 얼굴이 마음속에 박혔다. 좋은 의도였든 나쁜 의도였든 간에 녀석은 아이들에게서 주목과 관심을 받고 대장으로서 우뚝 서고 싶어 했다. 그러나 그 동안 관심을 가져주며 친한 척하고 아부를 아끼지 않았던 아이들이 단 한순간에 새로운 아이에게로 관심을 돌렸다. 이제 아이들의 관심은 새로 이사 온 아이와 로봇이었고 대장은 그냥 먹을 것을 제공해줬던 아이로 전락해버렸다. 대장의 모습이 어린 날의 나와 너무 닮았다는 것을 느꼈다. 내 주위의 사람들은 나를 필요에 의해서만 찾았고 내가 무언가를 가지고 줄 수 있을 때만 내 곁에 있었다.
나는 욕심이 많았다. 그 중에서 사람 욕심이 가장 컸는데 친구를 하나라도 내 곁에 두려고 온갖 착한 척과 물적 공세를 아끼지 않았다. 초등학교가 아직 초등학교가 되기 전 우리 집은 학교 앞에 자그마한 가게와 문구점을 겸업하고 있었다. 물질적으로 다른 아이들에 비해 풍족했던 나는 내가 가진 여유로 아이들의 환심을 사기에 바빴다. 나를 놀리는 아이들은 부모님께 일러 혼을 내주고 잘해주는 아이들에게는 가끔 과자와 완구 등을 가져다주며 내 편을 만들었다.
그 시절 우리 반 아이들은 두 팀으로 편을 갈라서 놀았다. 먼지 자욱한 20평 겨우 넘는 조그만 교실에 10명 남짓한 아이들이 서로 선을 그어놓고 싸우고 경쟁하며 놀았다. 그 팀에서 잘 놀다가도 팀원들과 싸우면 반대편으로 넘어가는 일이 허다했다. 어린 나이에도 눈치와 자존심은 있었나보다.
그러며 놀던 때의 일이었다. 나는 우연히 집에서 미술 책을 뒤적거리다가 토끼와 거북이 그림을 찾아냈다. 다들 기억할지는 모르겠지만 그 때 당시 초등학교의 2학년 미술책에 보면 거북이가 토끼를 등에 업고 바다위로 토끼의 간을 찾으러 가는 장면이 있다. 노란 바탕의 크레파스 그림은 우연이었는지 책과 정말 똑같이 그려졌다. 나는 스케치북의 그림을 보고 탄성을 지르며 다음날 아이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소중히 돌돌 말아서 학교에 가지고 갔다. 그리고는 우리 팀 아이들을 사물함으로 불러냈다.
그 당시 학교 사물함은 신발장같이 한쪽면만 텅하니 뚫린 나무 정리함에 노란색 커튼으로 압정을 박아 가려놓은 무늬만 사물함이었다. 비록 좁긴 했지만 어린 꼬마들이 안에 들어가 무언가를 볼 수 있기엔 충분한 자리였다. 우리는 모두 그 노란 커튼 안으로 들어가서 무슨 보물이라도 보는 양으로 스케치북을 펼치는 내 손에 시선을 집중했다. 아이들은 그림을 보며 놀라워하면서도 의식의 눈초리를 나에게 보냈다.
“이거 너네 엄마아빠가 그린거지? 사실대로 말해!”
그 말을 들은 나는 강하게 반발하며 내가 그렸다고 했지만 아이들은 의심 반 믿음 반으로 날 쳐다봤다. 그 일로 화가 난 나는 아이들과 심하게 다툰 후 다른 팀으로 가버렸다. 하지만 다른 팀에 가서도 그 그림을 보여줬지만 그 팀 아이들도 믿지 않았고 난 그 아이들을 먹을 것 등으로 잘 구슬려 결국에는 내가 그린 그림임을 인정하게 만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그렸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식으로 아이들이 인정하게 만들어야한다는 사실이 참 안타깝다. 난 얼마 안가서 그림을 찢어 쓰레기통에 버렸고 새로 들어간 팀 아이들과 어울리기에 급급해 그림 따위는 까맣게 잊었다. 휴지통에 잘기잘기 찢겨져버려진 그 그림 속에는 내가 들어 있었다.
그림속의 거북이는 토끼를 감언이설로 유혹하여 토끼의 간을 얻기 위해 바다에 데리고 가는 것은 성공했으나 토끼의 꾀로 다시 지상으로 올라가고 결국에는 토끼를 놓친다. 토끼는 부귀영화를 탐내어 거북이에게 속아 바다 속까지 따라 들어갔지만 이내 속은 것을 알고 꾀를 내어 지상으로 올라와 도망치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후에 다시 경망스럽게 행동하다가 위험에 처하게 된다.
온갖 착한 척과 감언이설, 물적 공세로 토끼의 간이라는 이름의 친구를 사귀려고 했던 거북이의 모습을 한 나, 거북이의 감언이설 속에 담긴 부귀영화를 탐내어 내 곁에 머물렀다가 이내 별 볼 것이 없는 것을 알고 잽싸게 돌아 서버리는 토끼라는 이름의 내 주변사람들은 서로서로 교묘하게 닮아 있다.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가 마치 우리의 삶을 풍자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게 아닐까? 결국에 줏대 없는 토끼와 양의 탈을 쓴 거북이는 우리라고 말이다.
지금까지 내 곁에 남아 있는 친구들을 둘러보면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 때 가장 친했던 녀석들 밖에는 없다. 나머지 아이들은 서로 필요에 의해서만 시간을 같이 보낸 친구였다는 사실을 자각할 때면 가끔 슬퍼지곤 한다. 그렇게 사람 욕심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내 곁에 남은 사람은 얼마 없다. 친구와 다투고 나서도 그 친구와 사이가 나빠져서 서로 멀어질까 걱정을 했었지만 혹은 그 친구가 다른 아이들에게 내 험담을 늘어놓을까 두려워 조바심을 냈었던 적이 많다. 그런 이유로 가끔은 자존심을 구겨가며 친구와 화해를 했다. 난 그만큼 사람을 마음과 마음이 아닌 물질과 머리로서 계획적으로 대했던 것이었다.
요즘 나는 착한척한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그만큼 겉으로만 번지르르한 내 의뭉스러운 행동을 나무라는 말들이 많아졌다. 아직도 고쳐지지 않은 내 습관이 되어버린 버릇을 어떻게 고쳐야할지 나조차도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이런 내 모습을 보고 어느 누군가 충고를 했다. 물질적으로 사람을 대하지 말고 진심으로서 사람을 대하라고 말이다. 진실된 모습을 보이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결국엔 날 알아주고 진정으로 좋아해 줄 것이라고 말이다.
나는 일기에 적어 내려간다. 앞으로 다시는 토끼도 거북이도 되지 말자고. 진심어린 사람이 되어보자고.
* 충남 논산 출생, 한샘문학상 수필부문 입상, ljwh0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