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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그가 오신 목적
히2:1 그러므로 모든 들은 것을 우리가 더욱 간절히 삼갈지니 혹 흘러 떠내려갈까 염려하노라
히2:2 천사들로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치 아니함이 공변된 보응을 받았거든
히2:3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히2:4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가지 능력과 및 자기 뜻을 따라 성령의 나눠 주신 것으로써 저희와 함께 증거하셨느니라
이 구원이 큰 이유는 이미 살펴보았습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제시한 첫번째 이유는 메시지의 원천에 있었습니다. 복음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해 성령으로 주신 메시지입니다. 유일무이한 구속력과 특별한 권위를 가진 메시지입니다. 이 구원이 큰 두 번째 엄숙한 이유는 이 메시지를 등한시하면 피할 길이 없다는 사실에 있었습니다. 복음은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라는 경고입니다(마 3:7). 성경 전체에 나오는 심판의 메시지, 의로우신 하나님이 온 땅의 심판자로서 마지막 때 온 세상을 심판하신다는 메시지입니다. 이 메시지를 무시하는 자를 확실히 기다리는 것은 무서운 진노와 고통과 형벌뿐입니다.
세 번째 중대한 이유가 담긴 구절은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라는 것입니다. 그가 주시는 구원의 크기 자체 때문에 모든 사람이 주의하고 유념해야 하며 절대 등한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2:5-18은 이같이 큰 구원이라는 주제에 대한 주석입니다. 이 구절들이 펼쳐 보여주는 구원의 크기를 보면 그저 경탄할 수밖에 없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주석이요 진술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중대한 주장을 해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선지자들보다 월등히 뛰어나신 분이라고 했습니다.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
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난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히 1:1-2).
그리고 같은 장에서 아들은 천사들보다 뛰어나신 분이라는 주제도 다루었습니다. 천사들의 힘과 능력이 아무리 놀랍고 강력해도 아들께는 미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위대하고 거룩한 모든 천사들을 압도하는 이분. 하나님 아들의 탁월하심과 뛰어나심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이 말이 어떤 이들, 특히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에 불러일으킬 문제를 금세 알아차린 것 같습니다. "당신 말처럼 나사렛 예수께서 하나님의 독생자요 영광의 광채요 본체의 형상이요 택함받은 거룩한 천사들보다 월등히 뛰어나신 분이라면 왜 그리 천하게 출생한 겁니까? 왜 그리 연약한 모습을 보인 겁니까? 왜 그리 고난을 당하고 잔혹한 십자가 죽음의 자리까지 나아가 심히 연약한 패배자의 모습으로 죽은 겁니까? 그가 정말 천사보다 뛰어나신 분이라면, 대체 왜 그 모든 일이 일어난 겁니까?"라는 반박이 제기될 수 있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리스도께서 천사들보다 탁월하시다는 자신의 주장과 그의 생애 및 죽음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 밝혀야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신약성경에 기록된 이 놀라운 구원이 얼마나 큰 것인지 설명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오셔야 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세상에 살면서 그 모든 일을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것은 아주 좋은 질문으로서, 그 대답을 아주 분명히 알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세상에 오셨음을 막연히 믿는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그가 세상에 오셔서 이 모든 일을 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며 견디신 이유는 오직 한 가지. “이같이 큰 구원을 위해서였음을 알아야 합니다.
먼저 일반적인 의미에서 이 점을 살펴보겠습니다. "이같이 큰 구원"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백성들을 매료시켰던 표현입니다. 이 표현에 다가가는 것은 마치 보물과 재화로 가득 찬 장엄한 구조물에 다가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건물에는 덥석 들어가지 못하는 법입니다. 이미 들은 소문이 있기에 일종의 경이감을 품고 다가가게 됩니다. 외관을 보며 겉모습에서부터 벌써 놀라움을 느낍니다. 현관에 들어가서도 선뜻 발걸음을 옮기지 못합니다. 유심히 살펴볼 가치가 있는 곳은 현관부터 볼거리가 있는 법입니다. 땅 위의 건물이나 광경을 볼 때도 그렇다면, 하나님이 자신의 말씀 안에서 알려 주시는 이같이 큰 구원"을 들여다보고 살펴볼 때는 무한히 더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첫 번째로 구원의 목적이라는 관점에서 그 크기를 살펴보도록 합시다. 이같이 큰 구원의 목표가 무엇입니까? 히브리서 2:5은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하는바 장차 올 세상을 천사들에게 복종하게 하심이 아니니라." 어떤 이는 물을 것입니다. "당신이 말하는 구원이 대체뭡니까? 기독교 복음이 전하는 메시지가 뭡니까?" 복음은 장차 올 놀라운 세상에 대해 알려 주는 메시지입니다. 5절이 단순히 장래 일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는데, 그들과 논쟁을 벌일 생각은 없습니다. 저는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주신 모든 복을 가리키되, 주로 장래 일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는 "만물이 아직 그에게 복종하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히 2:8). 만물이 그에게 복종한 세상이 장차 올 것입니다. 이것은 기독교 구원의 핵심에 있는사실입니다.
복음의 모든 유익 중에서도 가장 놀라운 유익들을 저 자신이 오랜 세월 놓쳤고 지금도 많은 이들이 놓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가끔 두려운 마음이 듭니다. 구원을 주로 개인적인 체험 내지 주관적인 상태나 상황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탓에 그렇게 놓치는 것입니다. 복음은 개인적인 체험에 앞서 온 세상에 일어날 일을 알려 줍니다. 개인적인 측면을 다루기에 앞서 우주적인 일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자신이나 자신의 개인적인 필요만 생각지 말 것을 다시 한 번 권합니다. 물론 개인적인 필요를 구할 수도 있고, 그런 권리도 있으며, 실제로 하나님이 개인적인 필요를 구하도록 격려하시고 때에 맞게 도와주시는 것은 감사한 일이지만, 구원을 그렇게 좁게만 생각하면 절대 안 됩니다.
세상이 이 모양이 된 것은 인간의 죄와 불순종 때문입니다. 인간이 타락하면서 불행과 고통이 세상을 채우게 되었습니다. 질병과 죽음과 싸움과 불일치와 혼돈이 찾아왔습니다. 그러므로 이같이 큰 구원과 관련하여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이 이처럼 죄로 망가진 세상에 조처를 취하셨다는 사실. 이와 다른 세상이 장차 온다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간의 어리석음이 낳은 결과, 죄와 불순종이 낳은 결과를 현 세상에서 경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당면 문제는 이렇게 표현해도 된다면 친히 만드신 후 완전하고 좋다고 선언하신 세상. 그런데 죄가 망쳐 버린 세상에 어떻게 찾아오시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을 원래 의도하신 바대로, 아니 그보다 훨씬 더 놀랍게 회복시키려면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구원은 바로 이 문제와 관련된 일입니다. 이 구원 안으로 들어갈 때, 자기 자신이나 자기 기분이나 자기 마음상태에 몰두하던 차원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그 즉시 자기 자신을 영원한 세상에 속한 천국 시민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하나님이 만드실 새로운 세상이 있습니다. 성경은 그가 큰 계획과 방안을 가지고 계신다고 말합니다. 영광과 경이로 가득찬 세상을 만드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세상에는 죄도 없고 슬픔도 없고 고통도 없습니다. 아픔도 없고 질병도 없습니다. 다툼도 없고 싸움도 없습니다. 지금은 대립하는 짐승들이 그때는 한자리에 누울 것입니다. 평소 굶주리고 난폭했던 짐승들이 어린아이의 손에 이끌려 다닐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제시하는 그림, 신약성경뿐 아니라 구약성경이 제시하는 그림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시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던 선지자들도 장차 올 세상에 대한 기록을 남겼습니다. 장차 이루 어질 놀라운 일을 일부 보았습니다. 주님도 자주 그 세상에 대해 가르치셨습니다. 자신이 다시 와서 만물을 새롭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이 세우신 나라와 그 나라에 일어난 놀라운 일들에 대해 늘 이야기하셨습니다. 그 나라에는 이삭과 아브라함이 앉아 있을 것이며, 다른 이들도 와서 놀라운 영광을 누린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신약성경에는 계속 그 나라에 대한 언급이 나옵니다. 베드로도 자주 그 나라에 대해 전했습니다. 오순절 이후 예루살렘에서 설교할 때도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르러 영광과 경이로 가득 찬 나라가 시작될 것이라고 했습니다(행 3:19).
사도 바울 역시 그 나라를 계속 고대했습니다. 빌립보 교인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오시면 우리 영혼을 죄에서 구하실 뿐 아니라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변하게 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빌 3:21).
빌3:21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게시록도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하나님의 성이 찬란하고 경이롭고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하늘에서 내려오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런 이미지로 장차 올 세상을 묘사합니다. 구원의 목표는 이처럼 만물을 새롭게 하심으로 지금 우리가 아는 세상과 완전히 다른 세상을 만드시려는 것, 그런 세상이 오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이 온다고 하면서(벧후 3:13). 그 나라를 고대하며 앞당길 것을 그리스도인들에게 권면했습니다.
벧후3: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새로운 세상이 시작되는 그 큰 날에 일어난 한 가지 놀라운 일은 사람이 그 세상을 통치하고 다스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시편 8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받아래 두셨으니(시 8:4-5).
이것은 장차 올 놀랍고 영광스러운 새 세상에 대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그때 사람은 피조 세계의 주인이 될 것입니다. 세상을 심판할 것입니다. 그렇게 높아질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바로 이런 일들이 일어나게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반복하건대, 이것이 기독교 복음의 첫 번째 핵심 진술입니다. 복음의 일차적 목적은 저와 여러분을 위해 몇 가지 일을 해주려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그런 일도 해주지만, 그보다 앞서며 그것을 넘어서는 엄청난 구상과 영광스러운 전망을 제시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은 이처럼 세상을 속량하시고 구원하시며 죄와 그 모든 결과에서 해방시키시려는 것입니다. 온전하고 영광스럽게 만들어 다시 하나님께 돌려드리려는 것입니다.
이 주제를 살펴보면서 발견하게 되는 사실은 히브리서 기자가 "이같이 큰 구원"을 말하기 위해 아주 신중하게 단어를 선별한다는 점입니다. 구원은 우주적인 계획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고 화목케 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라고(엡 1:10),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바로 그런 나라를 세우시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는 그 나라를 세우시고 완성하시기 위해, 마침내 그 나라를 이루시고 완결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성은 흠 한 점 없이 완전무결한 곳이 될 것입니다.
인간의 역사는 낙원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죄가 들어와 망쳐버렸습니다. 하나님은 그 세상을 회복하고 재건하여 원래 의도하신 세상. "우리가 말하는바 장차 올 세상"을 만드실 것입니다. 계시록을 읽되, 특히 21장과 22장을 읽어 보십시오. 이 모든 말의 의미를 알게 될 것입니다.
두 번째로 살펴볼 것은 구원의 주체로서, 이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의 말을 다시 들어 보십시오. "하나님이 우리가 말하는바 장차 올 세상을 천사들에게 복종하게 하심이 아니니라." 천사가 아니면 누구한테 복종하게 하신다는 것입니까? 사람입니다. 장차 올 완전한 세상을 향유하는 주체가 천사가 아닌 사람이라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사실입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연이어 시편 8편을 인용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사람이야말로 새로운 세상을 향유한 주체입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기자는 주께서 사람을 잠시 동안 천사들보다 못하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능력이나 힘 등에서 천사들보다 못하게 하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천사들은 고통이나 죽음을 겪지 않지만 죄와 타락의 결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은 그것을 겪는다는 점에서 못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잠시 동안 천사들보다 조금 못하게 되었습니다. 좀 더 뒷부분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도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었다고 말합니다(히 2:9). 주님도 잠시 동안 천사들보다 조금 못하게 되셨습니다.
이것은 무엇보다 놀라운 사실입니다. 이같이 큰 구원, 영광의 잔치. 장차 올 세상의 잔치가 저와 여러분 같은 사람들을 위해 준비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고 예언적 의미에서 이 일을 내다본 시편기자가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라고 외친 것도 놀랄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을 거역하고 그를 거슬러 죄를 지음으로 우리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형상을 더럽혔습니다. 여러 가지 면에서 들짐승보다 못한 존재로 전락했습니다. 이를테면 하나님의 얼굴에 침을 뱉은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불순종과 어리석음으로 고통과 아픔과 혼란과 적의와 전쟁과 삶의 모든 공포 및 죽음 자체를 자초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런 우리를 위해 "장차 올 세상이 준비되고 있다고 한 번도 제자리를 이탈한 적 없는 거룩한 천사들, 하나님의 명령을 준행하는 저 밝은 천상의 영들이 아닌 우리를 위해 준비되고 있다고 그러니 이 구원이 얼마나 큰 것이냐고 히브리서 기자는 말합니다! 1장에 나오듯이 모든 천사들은 구원받을 상속자를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신 섬기는 영입니다. 상속자는 누구입니까? 저와 여러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크고 강한 천사들은 우리의 종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하기 위해 사용하시는 중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이 구원이라는 일대 영예를 위해, 상상할 수 없는 사건을 위해 택하신 대상은 다름 아닌 우리 인간입니다.
이 말이 동화처럼 들립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복음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복음의 핵심에 있는 사실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도 과거에 죄를 지어 심히 더러웠을 수 있고, 오랜 세월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그를 외면했을 수 있으며, 짐승 같았거나 짐승만도 못했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영광의 나라에서 그와 함께 거할 것입니다. 땅이 새로워지고 갱신될 때, 물질들이 타오르는 불의 뜨거운 열기에 풀어질 때, 모든 죄와 악과 불순물이 제거되어 온 세상이 완전해지고 의로워질 때, 그 새로운 땅 위를 거닐 것입니다. 빛 가운데, 그의 찬란한 얼굴 빛 가운데 행할 것입니다. 아들의 벗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뵙고 즐거워할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의 보좌 주변에서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라고 노래하며 외치고 있는 거묵한 천사들의 수종을 받을 것입니다(사 6:3).
사6:3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이것이 기독교 복음입니다. 영광스러운 상태에서 하나님을 살짝 본자가 전해 준 메시지입니다. 그리스도께 속한 자들은 형언할 수 없는 영광 가운데 살 것이며, 영원토록 그의 거룩한 임재 안에서 지낼 것입니다. 그런데도 히브리서 기자가 이같이 큰 구원"이라고 말하는 것이 놀랍게느껴집니까?
누가 이 구원을 계획했습니까? 히브리서 1:10을 보십시오. "주여. 태초에 주께서 땅의 기초를 두셨으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라. 히브리서 기자가 말하는 이분이 누구입니까? 당연히 하나님이십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을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라고 부릅니다(히 2:10).
히2:10 만물이 인하고 만물이 말미암은 자에게는 많은 아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저희 구원의 주를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 하심이 합당하도다
저처럼 미미한 자가 이처럼 무한하고 광대한 주제를 다루는 것이 좀 우습기는 하지만, 미약하나마 제가 말하려 하는 바는 크고 전능하시며 영화로우신 하나님, 만물이 그를 위하는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위해 친히 이 영광을 계획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만물이 그를 위하고 그로 말미암은 분입니다. 영존하시는 전능자시요 절대자십니다. 자존하시는 분입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분입니다. 모든 거룩한 가운데 영원토록 스스로 충족히 거하시는 분입니다. 그런 분이 세상과 우리를 만들기로 결정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크심과 능력과 힘과 창조력은 그래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충격적인 사실은 저와 여러분처럼 왜소한 자들, 맹목적이고 무지한 자들이 자신을 출생케 하시고 이 모든 기능을 주신 존재를 거역하며 그에게 반역함으로 파멸을 자초했는데도, 그토록 어리석게 죄를 지었는데도 우리와 세상을 단숨에 쓸어버릴 수 있는 분이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크고 자존하시는 하나님, 우리가 전혀 필요치 않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한 구원의 길을 계획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히 2:10).
히2:10 만물이 인하고 만물이 말미암은 자에게는 많은 아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저희 구원의 주를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 하심이 합당하도다
이같이 큰 구원!" 우리가 거슬러 죄를 지은 대상인 거룩하신 하나님이 친히 우리의 구원을 시작하셨습니다.
10절이 묘사하는 이 영원하시고 거룩하시며 절대적이신 분이 자신과 세상을 위해 조처를 취하셨다는 사실에 전혀 놀라지 않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다시 한 번 말하고 싶습니다. 왜 조처를 취하셨습니까? 9절에 그 답이 나옵니다.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필립 도드리지(hilip Danlederwer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은혜! 마음을 사로잡는 소리요
귀에 감기는 소리일세.
하나님의 은혜가 없다면 저와 여러분과 온 세상, 이제껏 살았던 모든 사람과 앞으로 살게 될 모든 사람은 멸망과 지옥과 영벌에 처해질 것입니다. 오 하나님의 과분한 자비여!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은혜는 자격 없는 자에게 베푸시는 호의요 인자요 자비요 긍휼입니다. 은혜와 정반대되는 것을 받아 마땅한 자, 진노와 형벌을 받아 마땅한 자를 이처럼 사랑과 자비와 긍휼로 대하시는 것은 오직 그가 은혜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찰스 웨슬리도 이런 사실들을 묵상했습니다.
오,만 입이 내게 있으면
내 크신 구주와
내 하나님 내 왕의 영광과
그 은혜의 승리를 찬송하겠네.
하나님의 아들이 땅에 오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를 위해 죽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 놀라운 사랑 때문에 우리의 실상을 보시면서도 단숨에 날려 버리지 않으시고 해방과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어떻게 그 일을 하셨습니까? 독생자를 통해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 구원 계획의 핵심이 여기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구원의 창시자요 지휘관이요 인도자요 지도자십니다. 다시 말해서 이 거룩하신 하나님,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 말할 수 없이 거룩하고 완전하신 이가 자신이 만들었으나 죄가 망쳐 버린 세상을 굽어보시며 우리의 수치와 비참과 필멸과 고통과 죽음과 혼란을 바라보시고 '내가 조치를 취해야겠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외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아들은 우리를 이 상황에서 끌어내시기 위해 사람이 되고 육신이 되어 이 상황 속으로 들어오셨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본성을 입으셨고, 우리는 그의 의를 받았습니다. 그는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셨습니다(롬 8:29).
볼지어다. 나와 및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라" (히 2:13).
그는 우리를 형제라고 부르길 부끄러워하지 않으십니다. 두 번째 사람, 마지막 아담으로서 이제껏 말한 모든 복을 주고자 준비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오신 목적과 관련하여 우리가 유념해야 할 사실들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처럼 하늘을 떠나 갓난아이의 모습으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일, 그가 말씀하시고 행하신 모든 일 겪으신 모든 일을 마땅히 숙고해야 합니다. 주님이 그 모든 일을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장차 올 세상에 거할 새로운 시민, 새로운 인류를 시작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 세상은 놀랍고도 영광스러운 곳으로서, 오직 그에게 속한 자들만 그 세상에 거할 것입니다. 다른 자들은 거할 수 없습니다. 그가 붙들어 주시는 대상은 천사들이 아닌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바로 저와 여러분입니다. 그가 친히 우리를 영광의 나라로 인도하실 것이며, 영원무궁토록 자신과 함께 영광을 누리게 하실 것입니다.
이제 이 구원의 크기를 이해하겠습니까? 여러분이 이런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알겠습니까? 여러분은 지금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까? 그 영광의 나라를 고대하고 있습니까? 이것이야말로 구원의 전적인 목적임을 알고 있습니까? 이 구원이 지금 역사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역사가 끝나는 날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아직은 그날이 오지 않았다고 히브리서 기자는 말합니다. 그러나 오고 있습니다. 예수의 부활이 그것을 보장해 줍니다. 그를 믿는 모든 자들이 그와 함께 다시 살아날 것이며, 그와 함께 찬란한 영광을 누릴 것입니다. 이 사실을 생각하고 이 사실에 유념하십시오 흘러 떠내려가지 마십시오. 이런 구원을 주겠다고 하시는데, 굳이 지옥으로 내려가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자녀가 누릴 영
광을 놓치지 마십시오. 등한시하지 마십시오. 아무리 정당한 것이라도 하나님과 여러분 사이에 끼어들지 못하게 하십시오 자신이 그리스도께 속한 자요 그 계획에 포함된 자로서 영광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때까지 마음을 놓지 마십시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십시오. 그러면 이 영광을 차지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