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⑴ㄱ. 사랑의 앞뜰에는 햇빛이 화사하게 비치고 있었다. ≪박경리, 토지≫ ㄴ. 밖엔 눈이 소리도 없이 소용돌이치고 거리의 집집에선 점점이 붉고 따스한 빛이 창문으로 비치고 있었다.≪김인배, 방울뱀≫ |
문제는 ‘비치다’와 유사한 우리말 동사로 ‘비추다’가 있어서 두 단어를 정확히 구별하여 쓰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우선 다음 예문들을 보기로 하시지요.
⑵ㄱ. 난로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이 마루를 비추고 어둠이 짙게 서린 뜰에는 늦은 눈이 내리고 있었다. ≪한수산, 유민≫ ㄴ. 조금 좋지 못하던 일기는 홀연히 개어서 서창을 비추는 저녁 빛은 두 사람의 마음을 명랑하게 하였다.≪한용운, 흑풍≫ |
⑴, ⑵의 문장들을 통해 짐작할 수 있듯이, ‘비치다’와 ‘비추다’가 쓰일 수 있는 의미 맥락 또는 문법적 조건은 서로 차이가 있습니다. 우선 두 단어의 차이를 사전에 제시된 의미를 통해 파악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⑶ㄱ. 비치다: 빛이 나서 환하게 되다. ㄴ. 비추다: 빛을 내는 대상이 다른 대상에 빛을 보내어 밝게 하다. |
이와 같은 사전적 정의를 토대로 할 때, ‘비치다’는 어떠한 물체 혹은 물질이 빛이 나서 환하게 되는 것을 가리킨다고 하면, ‘비추다’는 그러한 물체나 물질이 다른 대상에 빛을 보내어 밝게 하는 것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두 단어가 보이는 의미 차이는 이들 단어가 분포하는 문법적 조건에도 차이를 야기하고 있습니다. 즉, ‘비치다’는 ‘~이 ~하다’라는 환경에서 자동사로 쓰이는 반면, ‘비추다’는 ‘~이 ~을 ~하다’라는 조건에서 목적어를 필요로 하는 타동사로 쓰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⑵의 문장만 놓고 볼 때, ‘비추다’는 ‘불빛이 마루를 비추다’, ‘저녁 빛이 서창을 비추다’와 같은 환경에서 쓰임으로써 ⑴의 ‘비치다’와 구별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비치다’와 ‘비추다’는 ⑴, ⑵에서 확인한 기본 의미 외에 다음과 같은 의미를 별도로 가지고 있습니다. 결국 두 단어 모두 다의어(多義語)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바, 마음이 여유로운 날 차근차근 새겨 보아 주시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단어 |
의미 |
비치다 |
1. 빛을 받아 모양이 나타나 보이다. 例. 번쩍이는 번갯불에 그의 늠름한 모습이 비치었다. 2. 물체의 그림자나 영상이 나타나 보이다. 例. 창문에 사람 그림자가 비쳤다. 3. 뜻이나 마음이 밖으로 드러나 보이다. 例. 그의 눈에 언뜻 난감해하는 기색이 비쳤다. 4. 투명하거나 얇은 것을 통하여 드러나 보이다. 例. 이 쓸쓸한 집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 화려하고 속이 비치는 분홍빛 여자 속옷이 커다란 남향 창문 옆에 걸려 있었다.≪안정효, 하얀 전쟁≫ 5. 사람 몸속의 피가 몸 밖으로 나오는 상태가 되다. 例. 가래에 피가 비치다. |
비추다 |
1. 빛을 받게 하거나 빛이 통하게 하다. 例. 햇빛에 필름을 비추어 보았다. 2. 빛을 반사하는 물체에 어떤 물체의 모습이 나타나게 하다. 例. 거울에 얼굴을 비추어 보았다. 3. 어떤 것과 관련하여 견주어 보다. 例. 상식에 비추어 생각해 보면 네 행동은 지나친 감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