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말 편지 Ⅱ
☑ ‘다른 말’과 ‘틀린 말’ 23
‘도긴개긴’과 ‘도찐개찐’
우리나라 코미디 프로그램 중 최장수 프로그램을 들라 하면 누구든 <개그 콘서트>, 줄임말로 <개콘>을 떠올리는 데 주저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1999년 9월 4일에 첫 방송이 이루어졌으니, 햇수로 무려 17년 동안 <개콘>은 매주 일요일 밤 보통사람들로 하여금 팽팽하기만 했던 긴장의 끈들을 풀어 놓고 마음껏 웃어도 좋은 시간을 제공해 왔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유쾌한 웃음과 함께 <개콘>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많은 유행어들입니다. ‘느낌 아니까!’를 비롯하여 ‘고객님, 많이 놀라셨죠?’, ‘하지 마시옵소서!’, ‘명치를 빡, 끝!’, ‘아이고, 의미 없다’ 등등의 대사들이 유행어가 되어 사람들의 마음을 쉴 새 없이 노크하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겠지요. 근래 들어서는 ‘도찐개찐’이라는 말이 2음보의 운율까지 갖추고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고 있는데, 이는 도토리 키 재기의 상황을 유쾌하게 보여주는 코너의 이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문제는 ‘도찐개찐’이 정확한 표준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표준어는 무엇일까요? 바로 ‘도긴개긴’입니다.
‘도긴개긴’이라는 단어의 원래 뜻이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우리의 전통 민속놀이인 윷놀이에 대한 지식이 약간 필요합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윷놀이는 정월의 마을 축제로서 남녀노소 누구나 신명나게 할 수 있는 놀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윷패는 4개의 윷을 던져서 엎어지고 젖혀진 상황에 따라 ‘도·개·걸·윷·모’로 결정됩니다. 윷 3개가 엎어지고 1개가 젖혀진 것을 ‘도’라 하여 한 밭을 가고, 2개가 엎어지고 2개가 젖혀진 것은 ‘개’라 하여 두 밭을 가며, 1개가 엎어지고 3개가 젖혀진 것은 ‘걸’이라 하여 세 밭을 갑니다. 또한 4개가 모두 젖혀진 것은 ‘윷’이라 하여 네 밭을 가고, 4개가 모두 엎어진 것은 ‘모’라 하여 다섯 밭을 가지요.
윷패에 따라 밭 수를 계산하는 근거는 동물의 걸음걸이에서 찾는 것이 특징입니다. ‘도’는 돼지, ‘개’는 개, ‘걸’은 양, ‘윷’은 소, ‘모’는 말을 상징하는 것이지요. ‘도긴개긴’은 바로 이러한 밭 수와 관련이 있습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긴’의 개념을 알아야 하는데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긴’은 “자신의 말로 남의 말을 쫓아 잡을 수 있는 거리.”를 의미합니다. ‘긴’의 개념을 이해하셨다면 이제는 ‘도긴개긴’의 차례일 터, 위에서 설명한 대로 윷패에서 ‘도’는 한 밭을, ‘개’는 두 밭을 가게 되니 그 차이가 별로 없다는 뜻으로 ‘도긴개긴’은 결국 ‘오십보백보’ 혹은 ‘거기서 거기’ 정도의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그렇다면 ‘도긴개긴’이 <개콘>에서 ‘도찐개찐’으로 사용되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이는 국어 방언들이 수행한 음성 변화(sound change)와 관련이 있습니다. 즉, ‘도긴개긴’과 ‘도찐개찐’을 대조해 보면, 두 단어 간의 차이는 ‘긴’과 ‘찐’에 의한 것임을 금방 알 수 있는데, 이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음성 변화의 결과라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⑴ 긴>진(‘ㄱ’ 구개음화)
⑵ 진>찐(어두경음화)
결국, <개콘>의 작가는 대세에 영향을 주지 않는 사소한 차이를 가리키는 말로 표준어형 ‘도긴개긴’이 아닌 방언형 ‘도찐개찐’을 활용하여 “저렴한 전셋집과 허니버터칩은 ‘도찐개찐’이다. 구하기가 힘들어서다!”와 같은 개그를 통해 뭇 사람들의 불편한 심기를 그럴듯하게 대변하고 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문장에서 쓰인 ‘도긴개긴’ 또한 그와 같은 의도를 잘 표현해 주는 사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