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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광주산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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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터어키 여행 스크랩 터어키일주 7일차-보스포러스,그랜드바자르,성소피아성당.끝
산신령(최순조) 추천 0 조회 483 15.01.25 22:05 댓글 6
게시글 본문내용


술탄 아흐메트 사원(BIue Mosque)



♣ 누가 : 기아자동차산악회외 27명            


 여행사:여행나루 박숭례(광주기아자동차내 복지,스포츠센타내)


♣ 언제 : 2014. 12.28(일)~2015.01.04일(일) 06박08일

 

♣ 어디 : 로맨틱 그리스와 터어키 일주여행


♣ 여행경비 : 235만원,옵션 - 지프 사파리투어(90EUR-13만원),열기구 투어(170EUR-238,000원)-강풍으로 취소


♣ 코스 : 광주 - 인천공항- 터어키 이스탐블 - 그리스 아테네(2박) - 이스탐블(1박) - 카이세리(1박) - 카파도키아(1박) - 파묵깔레(1박)


            이즈밀 공항 - 이스탐블(1박) - 인천공항 - 광주

 

♣ 날씨 : 지중해연안의 나라인지라 우리나라와 비슷하지만,대체적으로 따뜻하고 겨울에 눈은 많치가 않음.

  

♣개요 : 로맨틱 그리스,터어키 여행 8일의 시발점이자 종착지인 터어키 이스탐블에서의 마지막 여행에 나섭니다.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가되는 보스포러스해협을 끼고 위치한 이스탐블은 2000년이 휄씬 넘는 역사에 걸맞게,아주 자연스럽게


           동서양 문화와 상업의 교류지로 역할을 다해왔습니다.세계를 지배한 3대강국인 로마,비잔틴,오스만제국의 수도이기도 했던 


          이곳은 오늘날까지도 도시 곳곳에 과거 번영의 흔적들을 보존하고 있어서 생생한 역사의 장이 될뿐만 아니라,1,200만명의


          인구가 살아가는 현대도시로서의 면모도 동시에 내포하고 있습니다.


          또한 서양과 동양이 절묘하게 조화된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묘한 신비가 깃들어 있는 도시가 이스탐블이네요.



그리스 터어키 일주 8일 동선




터어키 주요도시 지명




이스탄불 지도








하늘에서 바라본 터어키 이스탐블 갈라타교





로맨틱 그리스,터어키 08일 여행의 마지막날 행사인 터어키의 최대도시 이스탐블의 관광에 나섭니다.


갈라타교 아래에 있는 선착장에서 미리 예약을 해둔 유람선에 우리만 독선으로 배를 띄워

편하고 안락하게 보스포러스 해협을 약 1시간에 걸쳐 

유람해 봅니다.




스탄불 



이스탄불은 인류 최초의 문명인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시발점이자 이후 인류 역사의 주 무대였다. 블루모스크를 마주하고 있는

 아야소피아 성당을 비롯해 톱카프 궁전(Topkapi Palace)과 돌마바흐체 궁전(Dolmabahce Palace), 로마 시대에 전차경주가 열렸던 

히포드롬 광장(Hippodrome Square) 등 유럽지구의 신(新)시가지와 구(舊)시가지 등이 있다. 아시아 지구에 산재한 수많은 유적에 얽힌 

이야기만으로 몇 날 밤을 지새워도 모자를 만큼 다양한 역사가 존재한다.



이스탄불은 콘스탄티노플, 비잔티움으로 불리며 로마제국과 비잔틴제국, 라틴제국(주: 루마니아 제국),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수도를 

거치며 초기 기독교, 그리스정교, 이슬람 문화를 모두 아우르는 중심지로 번성했었다. 그 덕에 그리스의 기둥 양식과 

로마와 비잔틴 건축, 이슬람 양식의 건축물들이 반경 1km 이내에 모두 공존한다. 






보스포루스

Bosporus 

 


해와 마르마라 해를 연결하여 터키의 아시아 지역과 유럽 지역을 가르는 해협(bo?az:'협류'라는 뜻). 

이 해협의 길이는 30㎞, 최대 너비는 북쪽 입구에서 3.7㎞, 최소 너비는 루멜리히사리와 아나돌루히사리 사이의 750m이다. 

중류에서 수심은 36~122m로 다양하다. 가운데에는 흑해로부터 마르마라 해로 빠른 조류가 흐르나 수면 아래에는

 마르마라 

해에서

흑해 쪽으로 짠물이 역류한다. 


이 해협은 계절에 따라 물고기들이 흑해로 오가는 길목이기 때문에 어류가 풍부하고

숲이 우거진

양쪽 해안에는 마을, 휴양지, 아름다운 저택 및 별장이 산재해 있다.



보스포루스는 '소의 여울'이라는 뜻으로, 이오가 젊은 암소의 모습으로 방랑하던 중 트라키아의 보스포루스를 횡단한 

전설과 관련이 있다. 해협의 남쪽에 걸쳐있는 이스탄불을 방어하는 데 있어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이기 때문에 

비잔틴 제국의 

황제들과 그 이후의 오스만 제국 군주들이 해안(특히 유럽 쪽 해안)을 따라 요새를 건설했다. 


오스만 제국의 요새 중 주목할 만한 

것으로는 1390~91년 바예지드 1세가 아시아 해안에 건설한 

아나돌루히사리 성과 1453년 메흐메드 2세가 해협을 직접 가로질러 

건설한 루멜리히사리 성이 있다. 


19세기 들어 유럽 열강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이 해협을 통과하는 상선과 군함의 운항을 통제하는 

규정이 성문화되었다(1841, 1871년의 조약). 제1차 세계대전에서 오스만 제국이 패한 후 국제위원회가 이 해협에 

대한 통제권을

가졌으나 1936년 터키가 이를 되찾았다.


 보스포루스를 횡단하는 다리는 1973년에 완공되었다. 















터키 수도 - 스탄불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가 되는 보스포러스 해협에 위치한 이스탄불은

2000년이 넘는 역사에 걸맞게 두 지역 간 문화와 상업의 교류지로서 역할을 해 왔다.

 

처음 이곳에 정착한 사람들은 고대 그리스인들이었다.

여러 개의 폴리스 중 하나였던 메가리아는 실크로드를 통해 동서양 상인들의 교류가 활발한 이곳을

그리스의 식민지로 삼아 상업도시로 성장시켰다.

이때 메가리아의 지도자였던 비자스(Byzas)의 이름을 따서 도시 이름을 비잔티움이라 불렀다.

 

서기 330년에는 동로마제국의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로마 수도를 이곳 비잔티움으로 옮기고,

비잔틴 제국 시대에 도시 이름을 콘스탄티노플이라고 바꾸었다.

동로마제국은 이 도시를 중심으로 1000 여 년간 막강한 제국으로 성장하며 위세를 떨치는 동안

실크로드와 지중해의 상권을 연결해주며 중세 유럽의 상업을 부활시켰다.

 

그 후 오스만 터키의 술탄 메메드 2세가 1453년 이 도시를 점령하면서 화려했던 명성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슬람의 지배하에 들어간 콘스탄티노플은 다시 이름이 이스탄불로 바뀌고 600여년간 오스만 제국의 수도가 되었다.

오스만 제국은 서쪽 모로코에서 부터 동쪽의 아제르바이잔까지 광활한 지역을 지배하며 크게 세력을 떨쳤다.

 

터키의 수도가 앙카라로 옮겨지기 전까지 1600년 동안 이스탄불은 세계를 지배한 3대 강국인

 그리스, 로마, 오스만에 이르기까지 찬란했던 제국의 수도로 이어지며 이들 나라의 군사, 종교, 상업, 문화의 지배를 받아왔다.

또한 동양과 서양이 교차하는 지리적 조건 때문에 이 도시는 동양과 서양의 다양한 건축양식과 생활양식이 

공존하는 유일한 도시이기도 하다.

 

아시아와 유럽을 이어주는 보스포러스 해협을 유람선을 타고 지나면 많은 모스크들을 볼 수 있다.

이슬람국가인 터키에는 6만여 개의 모스크가 있는데, 그 중 아름다운 것은 이스탄불에 가장 많다.

 

아일랜드 시인 예이츠가 ‘한 달만이라도 살아보고 싶다’고 극찬한 이스탄불은 2010년에 독일의 에센,

 헝가리의 페치등과 함께‘유럽의 문화수도’로 선정될 만큼 빼어난 도시이다.


이스탄불은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을 정도로 여러 시대의 유적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도시 곳곳에 아야 소피아 성당을 비롯하여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블루 모스크), 톱카프 궁전, 돌마바흐체 궁전 등

과거 번영을 누렸던 흔적들이 잘 보존되어 있어 생생한 역사의 현장이 되고 있는 한편,

1200만 명이 살고 있는 현대도시로서의 면모도 갖추고 있다.

 

 










강바람이 약간 쌀쌀한 날씨이지만 동양문명과 서양문명이 만나는 역사의 도시 이스탐블에서 유람선을 타고


보스포러스해협을 구경할수 있다는 들뜬기분에 다들 밖으로 나와 아침햇살에


인증샷을 다들 남겨 봅니다.









유람선에서 바라본 유럽지역의 이스탐블





갈라타다리는 조금더가서 낚시를 하는 다리가 갈라타교이고,저 다리는 건설된지 얼마되지 않은


신다리인데 이름은 잘 모르겠네요.













화창한 날씨에 수많은 갈메기들이 날아 올라 우리들을 반겨 줍니다.









진풍경입니다.


아침부터 갈라타다리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낚시를 즐기고 있네요.



저다리위에서 낚시를 즐기는 사람이 많으면 그만큼 경기가 좋치않고,사람들이 많치 않으면 일들을 하러나가


경기가 좋다고 하는데 지금 터어키의 경기는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이스탄불 갈라타 다리


도개교(跳開橋)로서, 총 길이는 490m이고, 폭은 42m이다.

양방향으로 각각 3차선 차도와 도보가 있으며, 중앙에 트램(Tram) 노선이 지나간다.

기록에 따르면 골든혼(Golden Horn)에 처음 다리가 놓인 것은 6세기 부터였다.

동쪽의 갈라타(Galata) 지구와 서쪽의 에미뇌뉘(Emin?n?)를 잇는 현재 자리에 다리를 놓고자 처음 시도한 것은

술탄 베야지트 2세(Bayezid II, 1481-1512 재위) 재위기인 1502년이다.

당시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에게 설계를 의뢰했으나 기술적인 문제로 건설되지 못했다.

 

  1845년에 술탄 압둘마지드(Abdulmecid, 1839-1861재위)의 어머니 발리데(Valide) 왕비의 명령으로 최초의 다리가 놓였고,

18년간 사용되었다. 1863년에 술탄 압둘아지즈(Abdulaziz, 1861-1876 재위)가 다리를 재건했고,

1870년에 프랑스 회사에 의해 확장 공사가 시작되어 1875년에 완공되었다. 그 결과 다리의 길이는 480m, 폭은 14m가 되었다.

이 다리는 1912년에 철거되어 상류로 옮겨졌으며, 현재 구갈라타 다리(Old Galata Bridge)로 불린다.

1912년에 독일 회사가 놓은 새 다리는 길이 466m, 폭 25m이며, 1992년에 화재로 파괴되기 전까지 사용되었다.

현재의 다리는 터키 건축회사에서 놓은 것으로 1994년에 완공되었다.

 

이스탄불을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나누는 골든 혼 위를 가로질러 놓인 갈라타 다리.


이 다리는 1845년에 처음으로 나무로 건설 되었고, 두 번째 다리는 1992년에 만들어 졌지만 화재로 침수되어 그 후 새로 놓여졌다.

 
















휴일을 맞아 갈메기인지 비둘기인지 얼른 구분이 잘 가지는 않치만 녀석들도 나들이를 나왔는지,


한가롭게 우리를 구경하며 휴일아침을 맞고 있습니다.









가까이서보니 비둘기와는 사뭇 다르게 보이는 새들입니다.


물새들 같기도 하네요.





터키의 최고급 군사학교, 터키에서는 꽤 유명한 학교로 터키의 국부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와 


사담 후세인등이 이학교 출신이다






배에서 단체로 인증샷을 남겨 봅니다.


이스탐블의 도시위로 떠오른 햇살에 다들 반짝반짝 빛나는 얼굴들이네요.





세게적인 도시답게 수많은 사람들을 태운 유람선들이 보스포러스해협을 넘나들며 


이스탐블을 구경시켜주고 있습니다.





해박하신 지식과 유머스런 해설로 며칠동안 우리를 기쁘게 해주셨던 우경석해설사님





좌측은 조남일님 누님이 되시고 우측은 누님 따님이신데,오붓하게 이번여행에 함께 하셔서 함께 즐거운


그리스,터어키여행을 하게 되었네요.


딸은 올해 독일로 유학을 떠난다는데 가서 원하는 공부 건강하게 잘마치고 돌아왔으면 합니다.


굉장히 영특하고 학구적인 젊은 친구 입니다.





누님도 어린이집 선생님도 하시고,나름 역사에 대해 관심이 많은듯 합니다.













우리도 우가이드님과 함께 인증샷





이번 여행 마지막날인지라 다들 가이드님과 인증샷을 함께 나눕니다.













강바람이 제법 차서 바람을 피하는 자리에 숨어있는 두미시 양반들





여행중에 맛보는 즐거움이 많치만 그중의 하나가 사진을 남기는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추억은 눈에 보이지 않치만 순간 순간 즐겁고 행복했던 모습들을 사진으로 남겨 놓아 후일에 바라보면 아련한 추억과


함께 다시 그때의 행복함을 느낄수 있어서 빠질수 없는 항목이 바로 사진 찍는일 같네요.


지금 이순간도 그때 사진을 보면 다시금 그순간으로 돌아가 행복감에 젖어 듭니다.





다함께 부~라~보





터이키 국민들도 자국에 대한 애국심이 무척 강하다고 합니다.


항상 어느곳 어느 장소에 가더라도 터어키 국기는 바람에 휘날리고 있습니다.





ㅎㅎ


장미 한송이가 있길래 선상에서 집사람에게 건네며 사랑의 프로포즈를 해봅니다.


퍼포먼스이기는 하지만 여러사람앞에서 오랜만에 해보니 약간 쑥스럽기도 합니다.





함께 여행을 하면은 이래서 좋은것 같습니다.


장미 한송이를 받으며 즐거워 하는 정여사의 미소에 나도 즐거워 지네요.






보스포러스 해협에서 바라 본 돌마바흐체 궁전

 

이스탄불의 신시가지에 있는 돌마바흐체 궁전은 오스만 왕조 시대 술탄의 마지막 성이다.

19세기 중반에 지어진 이 궁전은 터키어로 '가득찬 정원'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바로크 양식의 화려함 때문에 '화려함의 극치'라고 표현되기도 한다.

 

유람선을 타고 보스포러스 해협에서 바라보는 경관도 또 다른 각도에서 그 아름다움을 느낄 수가 있다.

지금은 영빈들을 대접하는 장소로 사용되고도 있으며, 노무현 대통령도 터키 방문 당시 이곳에서 간담회 등을 했다고 한다.

 






나도 한번 해볼겨..


기호선님도 아내에게 사랑의 장미한송이를 전해 줍니다.









블루모스크위로 보스포러스 다리가 지나가 한폭의 그림같은 모습입니다.





다정한 모습의 여인들





터어키에는 약 6만여개의 블루모스크(사원)가 있는데,그중에 절반 가량이 이스탐블에 몰려 있고 또 가장 아름다운


모스크들이 많이 있다고 합니다.





보스포러스해협옆으로 빛나는 블루모스크









강바람이 무척 차갑습니다.


그래도 언제 또 이곳을 올지 몰라 한순간도 놓치지않고 이스탐블의 동맥을 곳곳히 즐기며


사진을 남기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좌,우 절반으로 나뉘어 좌측은 유럽지역 이스탐블,우측은 동양지역은 이스탐블입니다.


서양과 동양으로 나뉘어 사진을 남겨 봅니다.









우리도 동,서양으로 나뉘어 한컷..


좌측은 유럽..우측은 아시아...






추워도 우리도 한컷 해야제..





보스포러스 대교, 길이 1,000m, 1973년 개통되었다.



<보스포러스 해협 (BOSPHORUS STRAITS) / (=보아즈츠 Bo?azi?i) >

 

 흑해와 마르마라 해를 잇고 이스탄불 아시아지역과 유럽 지역 사이를 가르고 있는 해협. 

직선길이로는 29.9km이지만, 골든혼쪽으로는 55km이고 아나톨리아 반도쪽으로는 35km입니다.

          터키어로는 <보아즈츠Bo?azi?i>라고 부릅니다. 


이는 '보아즈Bo?az'(목) '이츠i?i'(안)의 합성어로 흑해와 마르마라해의 연결 통로로서의 해협모양이 
목처럼 길다고 여겼으며 그 목의 안을 지나간다고 생각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강이 아니라 해협인지라 커다란 배들도 유유히 보스포러스해협을 넘나 듭니다.





자체발광의 심금식님 내외





오른 쪽에 보이는 작은 섬은 '처녀의 탑'이라고 불린다.


 * 처녀의 탑


보스포러스 해협의 위스키다르 인근의 해안에서 200m정도 떨어진 바다에는 처녀의 탑이 작은 섬처럼 떠 있다.

이 탑은 비잔틴제국 시대에 만든 요새로 이 해협을 지나는 선박들을 감시하고 운항세를 받던 곳이었다.

2층 건물로 된 이 탑은 지금은 식당과 카페로 사용되고 있다.

 

이 탑에는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다.


옛날 이곳을 다스리던 왕에게는 공주가 있었는데,

어느날 유명한 점술가가 ‘공주는 16세가 되기 전에 독사에 물려 죽게 될 것이다’라고 예언하였다.

그러자 왕은 독사를 피하기 위하여 바다에 있는 이 탑에 공주를 살게 하였다.

그러던 중 많은 세월이 흘러 공주가 16세가 되던 전날 밤 생일파티를 해 주기 위해 선물들이 들어 왔는데,

그 중 과일 바구니에 숨어 있던 독사에 물려 결국 숨지고 말았다는 슬픈 사연이 담겨 있다고 한다.

 












보스포러스 해협을 한바퀴 둘러보고 다시 윈위치합니다.













다시 돌아온 갈라타교에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낚시를 즐기고 있네요.


이곳 갈라타교에서 낚시하는 사람들을 보고 터어키의 경제를 알수가 있다고 합니다.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그만큼 일자리가 없어서 시간을 보내려고 오는 사람들이고,그래서  불경기라는 소리이고


사람들이 없으면 다들 일하러가 터어키 경제가 살아 날것같은 희망을 품게 합니다.





수많은 낚시인파와 그옆으로 보이는 우측에 성소피아성당


사람들이 많은게 일자리가 많치않아서 소일거리로 낚시를 즐기고 있는게 경기가 좋치 않은듯 합니다.





보스포러스 해협 유람선에서 바라본 아야소피아성당

 




보스포러스 해협에서 바라본 이스탄불 시내 전경

 

 

   이스탄불은 길이 약 30㎞의 보스포러스 해협을 사이에 두고 유럽과 아시아로 나뉘어 있다.

   해협의 폭은 최소 700m로 군사적 요충지였다.

 

   유럽쪽에 있는 금각만과 마르마라해, 테오도시우스 성벽에 둘러싸인 지역이 구시가지이고 금각만을 사이에 두고

   맞은편이 신시가지다. 2개 지구를 갈라타 다리, 아타튀르크 다리 등이 연결하고 있다.

   관광객이 많이 찾는 구시가지는 톱카프 궁전과 아야소피아 성당 등 역사적인 건축물이 즐비하다.

   상업중심적인 신시가지에는 외국 자본의 고급 호텔이 들어서 있고 세련된 쇼핑타운으로 인기가 높다.

 

   구시가지에는 비잔틴 1000년, 오스만 왕조 700년 동안의 수도였던 이스탄불의 대표적인 건축물이 모여 있다.

   그리스 정교의 총본산인 아야소피아성당을 비롯해 오스만왕조시대 역대 술탄의 거처였던 톱카프 궁전,

   블루 모스크라는 이름으로 친숙한 술탄 아흐메트 자미 등이 같은 지구에 있다.

 

 

   블루모스크, 아야소피아성당, 톱카프궁전, 지하궁전 등 유명한 명소는 구시가의 동쪽 부분인 술탄 아흐메트 지구에 다 모여 있다.

   이 구역이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에 등록돼 있는 이스탄불 역사지구다.













근 한시간여의 보스포러스해협의 선상투어를 마무리하고,다시 버스를 타고 이스탐블의 명소중 하나인 최대시장


그랜드바자르로 향합니다.


퍼스트 레이디가 익숙한 서양답게 에~말이요 여사장님이 배에서 내리자,양쪽에서 젊은 남자들이


양손을 잡아주어 여성존중의 생활상을 옅볼수 있다.


우리나라 같으면 내리든지 말든지 지알아서 헐것이제 무슨 손을 잡아주어..할것인디..ㅎ









세계 최대의 시장중 하나인 그랜드바자르



붕이 있는 시장이란 뜻의“그랜드 바자르”는 비잔틴 시대부터 현재 그랜드 바자르가 있는 장소는 무역의 중심지였다.

이후 터키가 이스탄불을 장악하게 되면서 1455-1461에 걸쳐 그 곳에는 도시의 경제생활을 부강하게 만들 목적으로

두 개의 주 아케이드가 만들어졌다. 


18개의 출입구와 4천개 이상의 상점들이 들어서 있는 이스탄불의“그랜드 바자르”는 세계의 가장 큰

바자르 중의 하나로 터키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에게 아주 인기가 좋은 관광명소로 손꼽히고 있다.


정찰제가 아니라 상품 구매 시 흥정이 필수다.



 상점에 따라 상품 가격이 달라 다시 환불을 요구하면해 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구매 시 꼭 현금으로 구매 할 것을 추천 드리며 카드의 결제 시 속을


확률이 높다.

 




아내의 그랜드바자르 인증샷





안으로 들어오기는 했는데 어디로 가야할지 갈팡질팡입니다.


길이 사통팔달 뚫려 있어서 모이기로한 장소에서 멀리 가지는 못하고,각자 가족 친지들에게 선물할 간소한 선물들만


구입하고 아이쇼핑을 나섭니다.









단체로 기념사진을 남기고..





시장내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화려한 색상의 조명등이 유난히 많이 있어서 


카메라에 담아 봅니다.













물건 사는것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는 남정네들은 사진을 몇장 찍고 


슬슬 떠날 채비를 해봅니다.


심포지움 준비를 해오지 못해 그랜드바자르심포지움은 다음 기회로 미루어야겠네요.









여행사 사장님을 비롯한 일행들이 선물을 고르고 있어서 함께 구경하면서 한컷 담아 봅니다.


터어키인들은 함께 사진 찍는것에 대해 부담감이 없어 편하게 찍네요.





다시 모이기로 한 장소에 나와서 일행들을 기다려 함께 다음 장소인 성소피아성당으로 


다시 차를타고 이동해 봅니다.





가는길에 반가운녀석이 눈에 띱니다.


내가 만든 봉고3가 이역만리 이곳 터어키 이스탐블에서 힘차게 달리고 있네요.





아야소피아(성소피아) 

?

터키여행 중에서도 이스탄불 투어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건물이라고 할 수 있어요! 처음 건설되었을 땐 성당의 목적

으로 건설되었었는데 오스만에게 정복 당하면서 이슬람 사원이 되었다가 지금은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는 곳인데 종교적인

탄압을 받았던 곳이었던만큼 역사적인 아픔과 당시 엄청난 인력을 끌어다 해서 많은 사상자를 낸 건물로도 유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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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피아 성당


그리스도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수도를 로마에서 이곳으로 옮기고 콘스탄티누스의 도시(폴리스)라는 뜻으로

 '콘스탄티노플'이라 명명하였다.


성 소피아 성당은 유아티스누스 황제 때(532~537건립되었는데 매일 100여명의 기술자와 1만 명의

인부가 동원되어 5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완공되었다.


그 옛날 이렇게 웅장한 건물을 짧은 기간에 어떻게 완공할 수 있었는지 궁금할 뿐이다.

건평 2,290중앙 돔의 높이 56m, 직경은 31m에 달한다.


1500년 역사중 1000여년은 성당으로 500년은 회교 사원으로 사용되다가 지금은 박물관으로 관광객을

맞고 있다. 


..................


 

<블루모스크=술탄아흐멧자미>



아야소피아 박물관 맞은편에 있는 술탄 아흐메트 1세의 자미, 우리에게는 블루모스크라고 불리는 것이 더 친숙한 곳입니다. 

1616년 오스만제국의 14번째 술탄, 아흐메트 1세(Ahmet I, 1590-1617, 재위: 1603-1617)가 지은 것입니다. 


이 때는 오스만제국의 위세가 가장 크면서도 평화적인 

시기였기 때문에 제국의 위력을 나타내기 위해 비잔틴 문화를 대표하는 아야소피아 맞은편에 그보다 더 아름답고 화려한, 

자신의 이름을 딴 모스크를 지을 것을 명령했습니다.

터키에서 유일하게 첨탑이 6개가 있는 모스크, 제국의 위상을 보여주려 했던 아흐메트 1세는 '황금'(Altın, 알튼)으로 첨탑을 

세울 것을 명령하나 이를 듣고 한 나라의 재정을 걱정했던 대신들은 황금과 발음이 비슷한 숫자 '6'(Altı, 알트)으로 

기지를 발휘해 6개의 첨탑이 세워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일단 성소피아성당 으로 들어가는데,휴일을 맞아 세계각지에서 몰려든 관광객들로 인해 돈내고 들어가 관람하는것도


만만치가 않습니다.





우리는 먼저 예매를 해둔탓에 조금 먼저 들어가지만,들어가는것도 전자식 입장권이라 바코드를 잘대어야


들어갈수가 있네요.













예수님 모습을 이슬람제국인 오스만 제국이 통치할때 황금벽화에 덧칠을 하여 지금은 조금씩 벗겨내고


공개를 한다고 합니다.









벽의 노오란 색을 띠는게 모두 황금이라고 하니,어마어마 하죠.






















예수님 발아래에 업드려있는 왕의 모습



첫번째 두번째 성소피아 성당은 모두 화재와 폭동으로 소실되고,지금 있는것은 세번째 지은 성당인데 이우스티니아누스 1세에


의해 더욱 크고 화려하게 서기 532년에 건축하여 537년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영광스럽고 장엄한 자태를 지닌 성소피아성당은 초기 비잔틴양식으로 가장 위대한 건축물중의 하나이다.









방대한 성소피아 역사를 거침없이 설명하는 우경석해설사님





이 십자가 표시는 이건물을 지을때 상층부에서 추를 줄에 메달아 내려뜨려 돔이 정중앙에 올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어마어마한 성당 규모에 입이 쩍 벌어 집니다.


수많은 관광객들을 보면서 왜 우리는 이런 유적들이 없을까하는 아쉬움도 남네요.





"알라"라는 의미의 문양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여 이스탐블로 개명한 마호메트의 싸인





아기예수를 안고있는 성모마리아













콘스탄티노플을 바치고 있는 콘스탄티누스황제와 아야소파아성당을 바치고 있는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모습이다.





아야소피아성당의 규모와 인파에 정신없이 구경을 하고 히포드롬 광장으로 향합니다.












술탄아흐멧 사원



불루모스크 술탄아흐멧사원은 오스만 투르크의 14번째 술탄,

아흐멧 1세가 성소피아 성당보다 더 크고 아름다운 모스크로

지을 것을 명령하여 건축되어 현제 사원으로 이용되고 있어서

기도 시간을 피하여 세계 많은 관광객들이 성지순례를 하고 있다.

  







히포드롬광장



터키 이스탄불 서쪽에 위치한 히포드롬(말의 길) 광장은 로마시대 유적지로

10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경기장이다.

196년 로마 황제 세비루스가 검투 경기장으로 건설했으나,

4세기 무렵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마차 경기장으로 변경하였고

오늘날 세로 500m, 가로 117m의 U자형 경기장을 광장으로 활용하여

아트 메이단(말의광장)이라 불리며 터키인들의 축제장소와 안락한 휴식공간이 되어있다





오벨리스크 



고대 이집트에서 태양 숭배 상징으로 세워 기념비. 네모진 거대한 돌기둥으로, 위쪽으로 갈수록 가늘어지며 꼭대기 피라미드 

모양으로 되어 있다. 기둥 에는 상형 문자 국왕 공적이나 도안 그려져 있다




이 오벨리스크가 세워진 곳은

히포드롬 광장인데요

히포드롬은 전차경주장입니다.

영화 벤허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영화 벤허의 촬영지였던 히포드롬광장 




로맨틱 그리스,터어키 08일 여행의 시작이자 마지막 종착지인 이스탐블에서의 마지막날은 화려했던 과거의

영욕으로 점철된 보스포러스해협,그랜드바자르,아야소피아성당,술탄마호메드,히포드롬 오벨리스크등

며칠은 걸려야 제맛을 음미할수있는 진수성찬들인데 여건상 하루에 다볼려고하니

무척 바쁘게 다녀야되고 무척이나 배가 고파 옵니다.


근처에 있는 미리 예약해둔 레스토랑으로 가서 근사한 점심을 먹어 봅니다.

한국사람들이 자주 들르는 곳이라 그런지 한글로 새해 복많이 받으라는 새해 인사말도

씌여 있습니다.









잉꼬부부로 소문난 심금식님 내외의 싱글벙글한 모습









닭꼬치구이에 야채와 쌀밥으로 제법 먹음직 스럽게 나온 점심 메뉴









열기구 투어장면





이번 터어키 여행중 꼭해보고 싶은것중 1번순위였던 열기구 투어는 투어당일 바람이 많이 불어 


결국 타보지 못하고 이렇게 식당에 걸린 사진으로 대신해 봅니다.


터어키에 오게된 동기가 저 열기구투어 방송을 보고 터어키에 가고 싶은 꿈을 꾸었는데,타보지 못한 아쉬움은


다음 기회로 미루어야겠습니다.





잠시 선물코너에 들러 가족들에게 줄 선물들을 조금 사고..









술탄 아흐멧 사원(Sultan Ahmat Camii)=블루모스크(Blue Mosque)



 탄 아흐멧 1세의 지시에 의해 1609년에 시작되어 1616년에 완공된 사원인데, 이 명칭보다는 사원(자미=Camii) 내부의

 스태인드 글래스와 이즈닉(Iznik)에서 가지고 온 2만여 개의 푸른색 타일이 창으로 들어오는 빛에 따라 푸르게 빛난다고 

하여 “블루 모스크‘로 더 많이 불리 운다고 한다. 위로 뾰족하게 솟아 있는 첨탑(미나레=Minare)이 6개가 있다.

첨탑의 개수도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1개의 첨탑이 세워진 곳은 개인이 만든 사원, 2개면 나라가 만든 사원, 

4개면 왕이 만든 사원이라고 한다. 블루모스크의 첨탑이 6개인 이유에 대해서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술탄이 성지순례를 떠나며 첨탑을 황금(터키어로 알툰, Altun)으로 지으라고 말 한것을 6(터키어로 알트, Alt)로 

잘못 알아듣고 만든 것이다 고한다. 이 첨탑은 알람시계 겸 마이크 역할을 하는 시설인데, 첨탑의 꼭대기에는

 ’무예진‘이라는 분이 하루 다섯 차례 기도 시간을 알리는 소리를 전파한다고 한다. 최초로 6개의 미나레를 응용하였고, 

내부의 화려한 장식과 정교한 세공법이 도입된 오스만제국시대의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점심을 먹고 아야소피아성당곁에 있는 블루모스크 술탄아호메트사원을 구경왔는데,줄이 끝이 보이질 않습니다.


잠시 고민하다가 도저히 시간이 맞지를 않아 내부는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외부에서 인증샷만하고


가기로 합니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블루모스크 술탄아흐메드사원

































다시온 히포드롬 오벨리스크



오벨리스크 



고대 이집트에서 태양 숭배 상징으로 세워 기념비. 네모진 거대한 돌기둥으로, 위쪽으로 갈수록 가늘어지며 꼭대기 피라미드 

모양으로 되어 있다. 기둥 에는 상형 문자 국왕 공적이나 도안 그려져 있다





















오스만 제국의 왕을 '술탄'이라 칭합니다.



술탄들의 거처 '톱카프 궁전', '대포 문'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성벽에 과거 대포가 있었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약 21만평의 부지에는 4개의 정원이 있습니다. 정원도 그곳에 있는 건물도 모두 이 곳을 거쳐간 술탄의 취향에 따라 

제 각각의 느낌을 자아냅니다. 1453년 꿈에도 그리던 이스탄불을 장악한 술탄 메흐메트 2세가 만든 궁전, 15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중반까지 400여년 간 오스만제국의 술탄 24명이 이 곳을 거쳐갔습니다.






 

베르사이유 궁전을 모델로 지은 돌마바흐체 궁전(DOLMABAHCE SARAY)

오스만 제국의 말기에 6명의 술탄이 거처 했던 곳, 1856년에 완공된 서양식 궁전으로

바다를 메운곳에 세워졌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공화국이 선포되면서 초대 대통령 아타튀르크(무스타파 케말)가 관저로 사용했으며,

아타튀르크가 19381110일 오전 95분에 이곳에서 사망했던 당시의 시계는 그시간에 멈춰서

있으며 지금은 박물관으로 일반에 공개 되고 있는데 내부는 사진 촬영 금지






터어키 지도





과거 술탄(왕)들이 거쳐했던 톱카프궁전에서 당시의 생활상을 설명하는 우경석해설사님





과거의 화려했던 제국의 문화 유적들이 산적한 이스탄블은 보면 볼수록 탐나고 멋들어진


도시였습니다.


시간상 많은 제약이 따라서 상세히 둘러보지는 못하고,아쉬운 마음에 우리나라로 치면 5,000원에 이스탄블 한글판


책자를 한권 구입해 봅니다.





과거 오스만 투르크 제국시절 수많은 주위 나라들을 점령하여 그나라의 수많은 금은보화와 문화재등을 약탈하여 이곳 궁전박물관에


일부를 보관하여 전시하는데,많은 인파로 인해 제대로 둘러 보지 못하고 조금 맛배기만보고


우해설사님이 지정해준 시간에 도착하여 오늘 이스탄블의 여행을 총평해 봅니다.


그때 수탈해온 금은,보화는 지금 터어키 8,000만 국민들이 아무 일도 하지않고 50년동안 먹고 쓸 재물이라고 하니 그 규모가


어마어마 하겠지요.


그 뺏어온 국보급 재물들을 전시를 하면 빼앗긴 나라에서 반환해달라고해 진짜 보물들은 전시를 하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아직도 길게 늘어선 박물관 관람객들





톱카프궁전을 지키는 근위병과 함께..





터어키 영화 포스터


우리나라에도 개봉 되었던 300이라는 영화와 같은 줄거리라고 합니다.









이스탄블을 구경하고 예정된 시간의 비행기를 타야해 부랴부랴 이스탄블 아타튀르크공항에 도착합니다.


아타튀르크는 터어키의 국부로 추앙받는 아스타파 케말의 이름입니다.


터어키의 근대사를 이야기할때 빼놓을수 없는 인물이죠..


잠시 그의 이력에 대해 알아 볼까요.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터키어: Mustafa Kemal Atat?rk, 1881년 5월 19일 ~ 1938년 11월 10일)는 터키의 육군 장교이자 혁명가,

 작가 그리고 터키 공화국의 창시자이고, 터키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다. 아타튀르크는 '터키의 아버지'라는 뜻이다.


아타튀르크는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육군 장교였고, 오토만 제국의 패배 이후 터키 국민 운동 소속으로 터키 독립 전쟁을 주도하였다. 

일찍이 청년 투르크 당에서 활동하였으며, 갈리폴리 전투영국프랑스 군대의 공세를 저지한 탁월한 장군이기도 하였다.


 재임 기간 중 1938년에 서거했다.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1907)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는 1881년 당시 오스만 제국의 지배 하에 있던 그리스의 살로니카(지금의 테살로니키)에서 

튀르크무슬림이었던 국경세무관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장성하여 군인의 길을 택하였고, 청년 케말은 

술탄 압둘 하미드 2세에 대한 독재를 반대하여 청년 터키당에 가입하여 진보적인 길을 가게 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때는 

갈리폴리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어서 큰 공을 세웠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연합국들이 오스만 제국을

 침공할 때 전선에 나가 조국을 수호했다.


특히 1921년에는 그리스가 아나톨리아침공할 때, 사카르야 전투에서 크게 승리를 거두어 대그리스주의를 끝내게 만들었다. 

1923년에는 자신을 지지하는 청년 장교들과 함께 앙카라를 장악하여 오스만 제국을 무너뜨렸다.


1922년 11월에는 술탄제를 폐지하고, 1923년 7월 연합국과 새로운 조약(로잔 조약)을 체결하였다. 10월에는 자그만한 

시골 도시에 불과했던 앙카라를 수도로 삼고 공화제를 선포하였으며, 대통령에 취임했다.


케말 아타튀르크는 1923년대통령에 취임한 뒤 본격적으로 개혁정책을 시행했다. 1924년에는 632년 이래 1300년 동안

 이어져 오던 칼리프제를 폐지하였고, 터키 공화국의 기본 정신인 세속주의를 법으로 제정했다

.

1925년에는 복장 개혁을 시행하여 여성들의 복장을 해방시키고, 과거에 금지되었던 여성의 교육권을 보장해 남녀평등교육을 

시행하였으며, 이슬람력을 폐지하여 유럽식 그레고리력으로 대체했다. 1926년에는 민법을 개정해 일부다처제를 금지하고 

일부일처제를 확립하였으며, 1928년터키어의 아랍 문자 표기법을 폐기하고 로마자 표기법으로 변경하였다. 

1930년에는 여성에게도 선거권을 부여했다






4일동안 터어키에서의 일정을 우리와 함께 하면서 동거동락하면서 때로는 재미있게 때로는 감동있게 터어키의


역사와 눈물을 생동감있게 풀어주어 무척 재미있게 해준 우경석해설사님과의 마지막 인사를 뜨거운 박수와함께


마무리하고 우리는 정들었던 그리스와 터이키를 뒤로하고 장장 12시간의 비행기에


몸을 실습니다.









아타튀르크 국제공항









비행기 노선도









비행기 탑승시간 12시간과 시차 7시간을 더하닌까 장장 19시간의 시간이 지나버려


인천공항에는 낮 12시가 되어 도착했습니다.









화물을 찾고..





예정된 시간에 정확히 맞게 2015년 01월04일 오후 05시쯤 도착하여 간단하게


저녁을 겸한 쫑파티를 하고 헤어 집니다.

.

.

.

영국의 역사학자 토인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스탄불은 인류 문명의 살아있는 옥외 박물관이다."

또한 나폴레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일 세계가 하나의 나라라면 그 수도는 이스탄불일 것이다."

두 대륙 위에 서 있는 세계유일의 도시, 이스탄불. 많은 나라들이 이스탄불을 중심으로 뻗어있습니다. 
화려했던 오스만제국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터키,우리나라와는 6.25동란때 참전을 하여
우리나라를 구해주어 형제의 나라라고 칭하는 터어키.
다시한번 찾고싶은 명품 도시였습니다.


총   평


2,000년전 인류문명을 이끌었던 고대 그리스,로마시대의 화려한 역사가 그대로 살아 숨쉬는 로맨틱 그리스와
터어키 08일 여행은 말그대로 흠잡을때 없는 명품 여행이었습니다.

그리스에서의 아크로폴리스,파르테논신전,에릭티온신전,고린도유적,포세이돈신전,수니온곳과
터어키로 건너와 카파도키아 파묵깔레,히에라폴리스,괴레메골짜기,데린구유,지프 사파리투어,에페소 유적지의 원형극장,
셀서스도서관,히드리아누스신전등과 이스탄블의 보스포러스해협,그랜드바자르,아야소피아성당,블루모스크,히포드롬,
톱카프궁전,돌마바흐체궁전등 셀수없이 교감을 나누었던 2,000년의 시공을 초월한 
그리스,터어키 유적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가 지금 이순간도 그때의
감동을 잊을수가 없습니다.

"여행은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큰 최고의선물이다."라고 오늘 설명해준 한 해설사의 말처럼 우리 인간들이
과거의 조상들이 살았던 인류의 삶과 애환을 느낄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여행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에~말이요 여행사 박숭례사장님,그리스 해설사 곽동훈해설사님,터어키 해설사 우경석해설사님,그리고
09일동안 함께했던 27분의 여행의 동반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 드리며,
짧지만 굵었던 09일간의 스토리 마감합니다.

다음은 2,017년 05월 동유럽을 향해 또다시 꿈을 꾸기 시작합니다.

~ 산  신  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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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5.01.25 23:55

    첫댓글 그때의 감동이
    배가되네요..
    박학다식한 이들과 여행을
    함께하게되서,
    개인적으로 많은 도움이
    되서 넘 좋았답니다.
    수고하셨네요~^^
    담 여행도 잘 해보게요~♡♡

  • 작성자 15.01.26 16:23

    심총무님이 제일 고생 많았제..
    여행은 세가지 간이 맞아야 훌륭한 여행이 된다고 들었네..
    함께하는 우선 여행할수있는 시간이 맞아야하고,여행을 어디로 갈것인지 결정하는 공간이 맞아야하고,
    함께하는 사람들인 인간이 맞아야 즐거운 여행을 할수 있다고 하네..
    시간,공간,인간이 삼위일체가 된 멋진 여행이었네..

  • 15.01.26 19:29

    사실 저는 터키하면 흔히 형제의나라라는 통상적인 말만 떠오르곤했는데,
    이렇게 유서깊고 수 많은 유적지가 넘치는 대단한 나라라는건 몰랐었네요~~~
    부회장님의 열정적이고 대단한 여행기 덕분에 엄청난 공부를 하고갑니다~~~
    그리고, 요즘 김군 사건으로 약간 분위기가 무거운것 같은데,
    이번 여행하신 행복 넘치는 스물일곱분!!!
    연말연시에 다녀오신 타이밍도 대단하신걸보니 평소에 덕을 많이 쌓으셨다는게 절로 증명이됩니다^^
    아름다운 여행의 꿈 가득 안고 행복한 2015년되십시오~~^^

  • 작성자 15.01.27 04:18

    여행은 세번 오르가즘(?)을 느끼는것 같습니다.
    가기전 어디로 갈것인지 결정하고 준비하는 과정의 들거움이 첫번째요.
    두번째는 수개월에 걸쳐 준비한 과정을 현지에서 풀어먹는것이 두번째요.
    다녀와서 여행지에서 느꼈던 추억과 사진들을 정리하면서 되세김하는것이 세번째 즐거움 같습니다.
    과거가 없으면 현재와 미래도 없듯이 여행도 세단계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었을때 비로소 완성이 되는
    최괴의 축복이 아닐까요..항상 명품댓글 감사 합니다.ㅎ

  • 15.01.30 23:07

    멋지네요 ~~잘 보고갑니다 ~~짝짝...

  • 작성자 15.01.31 08:05

    문수대장님이 오셨네요.ㅎ
    가는길이 달라 자주 보지는 못하지만,가끔 산에서 만나 막걸리 한잔씩
    권하는 산정은 이어졌으면 합니다.
    마산 저도 용두산 산행때 오신다니 그때 한잔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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