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셀라 마리아 수녀님을 기리며,
서론
내가 왜 이렇게 정소영 아셀라마리아 수녀님의 서거를 아쉬워하고 안타까와 하는지 나 자신도 잘 모르겠다. 그 이유를 조심스럽게 살펴본다.
수녀님이 1998년부터 2000년 사이에 우리 신사동 성베드로성당(구명칭 신림4동성당)에서 사목 봉사하실 때의 모습이 선연히 떠오른다.
1) 우스운 일이 잇으시면 치마를 부여잡을 정도로(배꼽잡을 정도로) 깔깔 웃으셨다
정월 대보름 척사대회 때, 나는 주관하는 단체의 봉사자로서 윳놀이 대회 결승전 심판을 보게 되었다. 윳놀이 멍석 주위에 교우들이 둘러서 있고 윳놀이를 시작하려 하는데, 연세드신 교우 한분이 윳놀이 판 위를 가로지르며 뭐라고 농담을 하셨다.-아마도 긴장을 풀으라는 의미-. 이 모습을 본 아셀라마리아 수녀님이 마구 웃으시던 것이 기억난다. 그 연세드신 교우가 같은 행동을 한번 더 반복하자 수녀님은 역시 또 배꼽을 잡고 웃으셨다 - 그 모습이 매우 재미있으셨나보다-
2) 나에게 항상 친근한 표정으로 대해 주셨다. 당시에 나는 봉사 직책을 2~3개 맡아 항상 분주하고 벅찬 상태이었는데, 그러한 모습을 측은하고 대견한 마음으로 보셨는지 나에게 친절하게 대해주셨던 기억이다.
한번은 추운 겨울날 이었는데, 역시 나는 저녁 때 성당을 방문하였는데, 다른 교우들이 옆에 있었고, 나를 보시면서 따라 오라고 하셨고 ‘으슥한’ 곳으로 나를 인도하셨다. 내 기억으로 수녀님이 ‘석유가 이곳에 있으니 단체원들 회합시에 이곳에서 석유를 가져다 쓰라”고 하신 것으로 기억난다. -당시에는 성전 건립 중이어서 난방시설이 잘 안되어 있었다. 나는 수녀님께서 나와 내가 속한 단체에 행여나 추울세라 ‘배려’를 해주시는 것을 느꼈던 것으로 기억한다.
3) 3) 아셀라마리아 수녀님은 당시 신림4동 성당에 성무일도 열풍이 몰아쳐 신자들이 궁금한 것을 물어 볼 때, 친절히, 단호하게, 정확하게 알려주시는 모습도 선하다.
다음에는 아셀라마리아 수녀님의 장례미사에 참석한 경과를 조금이나마 털어놓았으면 한다.
본론
9월 21일(월) 오전에 성당 사목회 엠(M) 교우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오전인 것으로 기억된다. 엠 교우님 말씀으로 보혈선교수녀회 아셀라마리아 수녀님께서 돌아가셨는데, 지금의 성당 교우들은 망자 수녀님을 잘 모르니, 아는 사람들만 조금씩 연락하여 문상할 수 있으면 한다는 말씀이다. ‘그렇지요’ 하고 대답하고, 나(미카엘씨)와 엠교우님 내외 및 내가 속한 구역의 티(T) 교우님 내외분 정도만 시간내서 청원에 함께 다녀왔으면 한다는 취지의 말씀이었다.
나는 마침 출근길이어서, 나는 가족과 상의 후 갈 수 있는지 여부와 일정에 대해 엠 교우님께 연락주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우선 너무 막막한 것을 느꼈다. 나로서는 아셀라마리아수녀님이 몸이 않좋으시다는 이야기를 2년전 경에 들었고, 얼마전(지금부터 약 4개월 전)에 본당에서, 본원에서 오신 수녀님이 계시기에 아셀라마리아 수녀님의 안부를 물었다. 아셀라마리아 수녀님이 상태가 좋으신 것으로 수녀님들이 말씀하여 안심한 마음이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소리인가?
여차여차하여 9월 22일(화) 밤7시 51분 충청북도 부강행 무궁화호 열차에 몸을 실었다. – 성당 단체의 동료 교우 피(P)님과 함께-
청원 보혈선교 수녀회를 방문한 시간은 오후 11시 경이었다. 우리 성당 출신 수녀님들이 나란히 입구에 서 계셔, 우리성당의 역사를 축소해 놓은 것이 아닌가하는 착각이 들 정도 이었다. 현 신사동 성베드로성당(신림4동 성당)의 원장 수녀님인 제이(J) 수녀님이 장례절차가 진행되는 피정의 집 앞 정원에서 문상객들에게 인사하는 것이 보였다.
수녀님들과 인사 후, -당연히 제이 수녀님이 너무 놀래시며 반겨주셨고, 우리는 “절대 수녀원에서는 숙박하지 않고 부강 시내에 숙박할 곳을 예약하여 놓았어요”라는 말씀부터 드렸다. 행여 우리의 문상이 오해되고 부담을 줄까봐서이다-
다른 교우분들과 연도를 바쳤다. 의외로 장례식장이 성황인 것을 느꼈다.
다음에, 수도신부님 일행이 오셔서 진행하는 장례미사에 참석하였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6시 30분에 진행되는 장례미사에 참석할 것을 말씀드리고, 수녀원을 나와서, 승용차와 콜택시를 이용하여 주위의 가까운 모텔로 이동하였다.
모텔 주위에 24시간 뼈다귀해장국집이 있어서, 시장하던 차에 피님과 식사하며 반주하였다.
아침에 일어나 장례미사에 참석하였다. 미사에 참석하신 신부님들을 살펴보니 청주교구 신부님들로 보이시는데 16분의 신부님과 우리 신사동 성베드로성당 주임신부님도 오셔서 총 17분의 신부님이 장례미사를 집전해주셨다.
아셀라마리아 수녀님에게는 어머니가 1분 계시고 오빠들 2분이 계셨으며 모두 장례미사에 참석하였고 어머님의 슬픔이 크셨다.
주례신부님의 강론 말씀에, 어머님의 슬픔을 십자가에서 33살의 나이로 돌아가시는 것을 지켜본 성모마리아의 슬픔에 비교하셨고,
보혈선교수도회 내에 있는 동료 수도자들의 슬픔을,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예수님을 지켜본 십자가 밑의 사도 성요한과 여인들의 슬픔에 비교하셨다. 나의 슬픔도 굳이 비교하자면 여기 부분에 해당될 것이다.
결론
정소영 아셀라 마리아 수녀님, 주님의 자비로 수녀님께서 천국에 빨리 드시길 기도합니다.
정소영 아셀라 마리아 수녀님, 천국에서 수녀님이 계시던 수도회를 위해 기도해 주시고,
주님을 잘 찾아 가도록 저를 위해 기도해주시며 (당연히 그러실 것을 알지요. 저를 바라보며 웃고 계실 것도 알지요)
현세에서 여러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과 신사동 성베드로성당 교우들을 위해 기도해주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