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국사 다보탑 ‘돌사자’ 제자리 찾는다 중앙에서 기단으로
일제 수탈 과정에서 엉뚱한 자리로 옮겨진 것으로 추정되는 국보 20호 불국사 다보탑의 돌사자가 제자리로 돌아온다. 문화재청은 다보탑 서쪽 기단 중앙부에 있는 돌사자를 원래 위치인 기단 모서리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혜문 스님은 국민신문고에서 "다보탑 돌사자 자리가 원래의 위치에서 변경돼 있는 사실을 발견했다"면서 "아마도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돌사자 4개 중 3개를 훔쳐가는 과정 혹은 해방 이후 다보탑 보수 과정(1960년대 초반) 중에 옮겨지거나 변형됐다"고 주장했다.
현재의 상태
모서리로 이동을 가상하여 놓은 모습
국립경주박물관의 다보탑-네 마리의 사자
돌사자 4마리… 나머지 3마리 어디갔나
불국사의 국보 20호 다보탑 돌사자의 기구한 운명은 일제 침탈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문화재청이 2011년 낸 '불국사 다보탑 수리 보고서'에 따르면 도쿄대 교수를 지낸 세카노 다다시가 1904년에 간행한 '한국건축조사보고'에 따르면 "다보탑 기단 모서리 4곳에 돌사자가 있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일제 병탄 직전까지는 돌사자 4마리가 온전히 제자리에 있었던 것이다
돌사자의 위치는 세키노가 1916년부터 1935년까지 펴낸 15책의 '조선고적도보'(朝鮮古蹟圖譜)에 실린 사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세키노는 1909년부터 1912년 사이에 조선의 문화유적을 한 차례 더 조사한 뒤 '조선의 건축과 예술'을 내는데 거기에 "다보탑의 돌사자 1쌍이 없어졌다."고 기록했다.
일제시대. 자하문쪽에서 찍은 다보탑 두 마리의 사지가 보인다. 그런데 사자가 앉은 위치가 모호하다. 한마리는 기단 모서리에 다른 한 마리는 중앙 감실에 앉아 있다. 어느 쪽이 맞는 자리일까? (1912년 이전)
일제시대. 지금의 회랑쪽에서 찍은 사진 위 사진에서 보았던 사자의 흔적이 없다 (1936년-1944년 사이)
하지만 1960년대 초반의 다보탑 복원 공사 때 1마리만 모서리에 있는 모양이 어색하다고 판단한 불국사 측이 공사팀과 상의해 지금의 기단 서쪽 중앙부로 옮겨놓았다고 문화재청은 밝혔다. 국립경주박물관 앞마당에 있는 복제품 다보탑은 그야말로 일제강점기 이전의 다보탑을 그대로 살려놓은 모습이다. 경주박물관은 안내문에서 "분황사 석탑이나 화엄사 사사자석탑, 흥덕왕릉에 있는 사자 네 마리가 모두 네 귀퉁이에 있는 것으로 보아 다보탑도 네 귀퉁이에 불법을 수호하라는 의미로 사자를 배치했을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1966년-돌사자 없음
1970년-돌사자 없음
1983년-돌사자가 가운데 있음 2006년-돌사자 있음
10원 주화는 다보탑을 기본 문양으로 1966년 8월 처음 발행한 데 이어 1970년, 1983년, 2006년 등 4차례 도안을 바꿔 가며 45년간 총 72억개를 발행했다. 1966년과 1970년에 발행한 주화는 다보탑을 정면에서 바라본 도안을 채택했는데 이 도안에는 돌사자가 없다가 1983년 발행분부터 지금의 다보탑처럼 기단의 중앙부에 돌사자가 들어갔다. 한국은행은 천원권 지폐의 뒷면 도안에 있던 도산서원의 금송(錦松)이 일본풍이라는 논란에 휩싸이자 2007년 1월 신권 발행 때 겸재 정선의 '계상정거도'로 대체한 바 있다.
다보탑 석사자 일지 1904년 : 세키노 다다시의 '한국건축조사보고' 기단 네 모서리에 사자상 있음 1909년 : 세키노 다다시의 '조선건축과 예술' 돌사자 1쌍 없어짐 1936-44년 : '다보탑 돌사자 한 마리 극락전 앞 보존' 기록 1952,53년 : 정영호 당시 서울대사범대생, 역사답사에서 '극락전 앞 돌사자 목격 1962년 : 정영호 당시 문화재 전문위원 다보탑 한쪽 모서리에서 돌사자 목격 1963-66년 : 불국사에 의해 돌사자가 기단 중앙부로 이동 현재 : 다보탑 기단 중앙부(서편)
국립경주박물관에 다보탑, 석가탑 복제품을 세운 이유는?
국립경주박물관 다보탑 복제품 불국시 다보탑
경주시 인왕동 국립경주박물관에 있는 다보탑, 석가탑 복제품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특명으로 만들어졌다.
박 전 대통령은 천년의 세월을 견뎌온 다보탑, 석가탑이 앞으로 천년은 더 갈 수 있는지를 문화재위원회 등에 물었다고 한다. 정영호 단국대 석좌교수의 회고. "간접적으로 이 같은 질문이 내게도 왔는데 당시 석조 문화재 전문가들은 '100년도 못 갈 것'이라는 회신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박 전 대통령은 문화재관리국에 1975년 경주박물관의 개관에 맞춰 다보탑, 석가탑 복제품을 만들어 내라는 지시를 한다. 문화재관리국은 그래서 우리 기술진에 의해 처음으로 다보탑, 석가탑을 실측했다. 정 교수는 "그전에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이 약식으로 한 실측 도면이 있었지만 우리 손에 의한 것은 없었다."고 말했다.
※ 본문 중의 사진 자료는 이해를 돕기 위하여 블로그 주인이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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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토함산솔이파리 원문보기 글쓴이: 솔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