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사> 한국에서의 인터넷: 1980년 SDN으로 탄생해서 ---> KORNET, BORANET, NURINET
1980년대 한국의 연구개발망은 SDN의 기본 프로토콜인 인터넷 프로토콜로 대부분 연결되었지만, 정부를 비롯한 대부분의 연구기관은 인터넷을 '장난감(Toy)'이라고 부르면서 실험실 안에서만 돌아가는 기술 정도로 치부했다. 사실, 정부와 주요 연구기관은 ATM 교환기를 사용하는 ‘개방형 컴퓨터 통신(OSI) 참조 모델’ 연구에 이미 많은 예산을 지출한 상태여서 쉽게 인터넷으로 넘어오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데이콤의 경우는 1984년에 구축한 공중데이터통신망(X.25)에 대한 기대때문에 계속해서 OSI 참조 모델의 데이터통신망 연구에 매진하고 있었다.
한편, 미국에서는 점차 인터넷이 일반화되는 추세였다. 이미 1989년에 상업적 인터넷 접속서비스가 등장했으며, 전국적인 교육연구망으로 해외 각국 교육연구망과 연동된 NSFNET마저도 1995년 4월 30일 종료를 선언하면서 미국 인터넷은 교육연구망에서 상업적 인터넷 접속서비스를 중심으로 하는 상용인터넷 체제로 바뀌고 있었다.
1994년 6월 20일 국내 최초의 상업적 인터넷 접속 서비스 ‘코넷(KORNET)’이 세상에 나오게 된다.
KORNET은 개인 가입자를 대상으로 하는 일반전화망 서비스와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전용선 서비스로 나뉘어 제공되었다. 개인 가입자는 컴퓨터에 모뎀을 부착해 일반전화망에 연결하는 방식으로 KORNET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었는데, 월정액 약 4만원을 내면 최대 14.4Kbps의 속도로 인터넷을 즐길 수 있었다. 전용선 가입자에게는 내부 LAN도 별도로 제공했다. 전용선을 이용하는 경우 접속 환경에 따라 9.6Kbps~2.048Mbps의 속도로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었다.
다른 ISP도 속속 등장했다. 한국통신이 KORNET 서비스를 시작한 지 3개월 후 데이콤이 '데이콤 인터넷' 서비스를 시작했고 한 달 후인 1994년 11월에는 주식회사 아이네트기술(INET)(허진호)이 PC통신 서비스를 제공하던 나우콤과 합작으로 누리넷(nuri.net) 서비스를 선보였다.
이렇게 아이네트는 1994년 11월 기업 대상의 인터넷 전용선 임대서비스와 나우콤 가입자들을 대상으로 개인 인터넷 서비스를 시작한다.
이후, 국내 다른 대기업도 ISP 사업에 뛰어들었다. 삼성SDS의 유니텔, LG 인터넷, 현대의 신비로 등이 인터넷 서비스를 시작했고 벤처형 중소 ISP도 대거 등장했다. 그러나 이들은 미국의 사례처럼 대부분 몇 년을 버티지 못하고 시장을 떠나야 했다.
아이네트는 1998년 외환위기 때 미국 PSINET에 매각될 때까지 한국통신, 데이콤과 경쟁하며 인터넷 대중화를 이끌었다. 하지만 국내 통신제도 아래서 아이네트는 한국통신이나 데이콤과 달리 근본적으로 한계를 가진 사업모델이었다.
아이네트는 1998년 외환위기 때 미국 PSINET에 매각될 때까지 한국통신, 데이콤과 경쟁하며 인터넷 대중화를 이끌었다. 하지만 국내 통신제도 아래서 아이네트는 한국통신이나 데이콤과 달리 근본적으로 한계를 가진 사업모델이었다.
결국 아이네트를 비롯한 중소 ISP들은 제도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거대 통신사와의 경쟁에서 점차 밀려나 1990년대 후반 경제위기를 끝으로 역사에서 사라지게 된다. 이후 정착된 ISP 과점 체계는 공정한 시장 경쟁 상황과 멀어지면서 현재까지도 망중립성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