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 화 재 (기념물) 대 장 ( 앞 면) | |||||||||||||||||||||||||||||||||||||||||||||||||
문화재종별 |
기념물 |
지정번호 |
제 |
124 |
호 |
명칭 |
옥천부원군조원길묘및묘표 |
지 정 연월일 |
2005.12.16 |
색인 번호 |
| ||||||||||||||||||||||||||||||||||||||
玉川府院君趙元吉墓및墓表 | |||||||||||||||||||||||||||||||||||||||||||||||||
분 야 |
분묘 및 비석 |
종류 |
분묘, 석재 |
규격 크기 |
|
작자 |
| ||||||||||||||||||||||||||||||||||||||||||
재 료 |
분묘, 석재 |
형식또는형태 |
|
구조 |
| ||||||||||||||||||||||||||||||||||||||||||||
소 재 지 또 는 보관장소 |
순창군유등면 건곡리 산86-14 |
수 량 (지정면적) |
1식 |
소 유 자 |
옥천조씨대종회 |
관 리 자 또 는 관리단체 |
조무삼(회장) |
점유자 |
조종휴(도유사) | ||||||||||||||||||||||||||||||||||||||||
순천시 매곡동 179-9 |
061-751-2288 |
016-611-3066 | |||||||||||||||||||||||||||||||||||||||||||||||
부속시설물 |
|
건축또는 제작의 연대 또는 시대 |
고려말 선초 | ||||||||||||||||||||||||||||||||||||||||||||||
추 가 ․ 확 대 지정등 |
지정일자 |
|
지정 면적 |
|
㎡ |
|
평 |
지정 일자 |
|
지정 면적 |
|
㎡ |
|
평 | |||||||||||||||||||||||||||||||||||
|
㎡ |
|
평 | ||||||||||||||||||||||||||||||||||||||||||||||
|
㎡ |
|
평 | ||||||||||||||||||||||||||||||||||||||||||||||
|
㎡ |
|
평 |
|
㎡ |
|
평 | ||||||||||||||||||||||||||||||||||||||||||
보호 구역 |
지정일자 |
|
지번 |
|
지목 |
|
지적 |
|
㎡ |
소 유 자 |
|
관 리 자 |
|
점유자 |
| ||||||||||||||||||||||||||||||||||
보호물 |
|
명칭 |
|
수량 |
|
소유자 |
|
관리자 |
|
점유자 |
| ||||||||||||||||||||||||||||||||||||||
지정사유 |
○ 길이 약 200cm, 너비 약 50cm, 두께 약 30cm의 화강암 비석으로 면을 다듬지 않은 거친 상태에서 상층부 절반 부분에 문자를 음각하였음 ○ 비문은 모두 42자로 해서(楷書)이지만 해서에서 사용되지 않는 이체자가 있으며 묘지의 성격에 축문의 성격을 가미한 특이한 문장형식이다. 이는 기존의 금석문에서 볼 수 없는 형식을 갖추고 있음 ○ 홍무24년(1391년) 조원길의 둘째 아들 유(瑜)가 부원군 예장(禮葬)시 세운 묘표로 추정되며, 정확한 연유는 알 수 없으나 어느 때부터 축대의 장대석으로 사용되었음 |
문 화 재 (기념물) 대 장
연 혁(유래․전설․현황․특징 등) |
○ 고려 말 충신인 조원길은 본관이 옥천이고, 자는 성중(聖中)이며 호는 농은(農隱)이다. 시중 장(璋)의 증손으로 부원군 전(佺)의 아들이다. 공민왕 18년(1369)에 문과에 급제하여 檢校, 侍中 등 여러 관직을 거쳤다. ○ 1389년에 포은 정몽주 ․ 운제 설장수 ․ 독곡 성석린 등과 함께 창왕을 폐하고 공양왕을 옹립하는데 공을 세워 일등 공신에 서훈되어 “推忠奮義 翼戴弼成 克復三重 壁上功臣”의 칭호를 받으면서 옥천부원군에 봉해졌다. 조선개국 후 사람들은 고려왕조에 끝까지 충절을 지킨 포은 정몽주, 목은 이색, 야은 길재 등 삼은(三隱)과 도은 이숭인, 농은 조원길을 합하여 오은(五隱)이라 칭하였다. ○ 묘는 순창군 유등면 건곡마을 뒤에 있으며 묘의 앞에는 후손 趙命臣이 1735년에 세운 비와 면암 최익현이 비명을 짓고, 승지 이재윤이 글씨를 쓰고, 도사 송병순이 頭篆을 쓴 神道碑가 세워져 있다. ○ 족보에 보면 원래 묘소 앞에는 장례 후 세운 비가 있었으나 조선 개국 후 묘소 앞에 묻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최근에 이 말과 부합되는 碑가 도유사 조종휴씨에 의해 발견되었다. 축대의 장대석으로 놓여있던 비를 정밀탁본하여 판독한 결과 42자의 글자를 판독하였다. ○ 그 원문을 보면 ○ ○ ○ 고려시대 碑 중에는 武자에 대한 가감 획을 여러 군데서 찾아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경기도 수원에 있는 창성사진각국사 대각원조탑비라든가 경기도 벽제의 최원직 묘표에도 간지에서는 武자가 감획이 되어 있다는 점이다. ○ 이러한 사실들은 이 비가 高麗碑 라는 사실을 증명해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현재까지 전라북도에서 발견된 고려비는 금산사의 혜덕왕사비 뿐이므로 조원길의 묘표는 고려시대 비문의 형태와 서체 등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학술적 ․ 역사적 사료라고 할 수 있다. |
지정 연혁
첫댓글 반갑습니다 사는곳은 서울 목동이구요 고향은 전남 곡성 죽곡입니다 절민공파 22대손이고요
이름은 조동복입니다 자료수집차 들러서 다 퍼서 가져갑니다.소중한 가문의자료로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