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風에게
權龍太(권용태)
겨우내
굳어버린 나무가지에서
南風은 되살아나
싱싱한 아침의 모습으로
故鄕의 봄을 맞는다。
서성거리고 싶은 街頭에서
꽃눈이 내리기를 기다리는
山莊의 어느 여울목에서
南風은
바다의 노을처럼 驚異(경이)로운
메아리로 피어난다。
南風은
密林으로 通하는 <카니발>의
海岸通을 따라
사랑의 遺蹟(유적)을 방황하다가
나의 부끄러운 儀式으로
飛散(비산)해 가는 鍾소리가 아닌가。
어떤 것은 분홍빛, 네온싸인의
<마네킹>처럼
旗가 펄럭일 때마다
南風은 울었다.
成을 쌓고 碑를 세우고
싶은 언덕에서。
貨幣恐怖(화폐공포)
權龍太(권용태)
우리의
歷史敎本이
아무리 어둔 것이지만
그래도 그렇지,
一年 十個月
언제나 萬愚節(만우절) 속을 살아가는 걸。
오늘도
우리의 흐린 畵室 속에
눈이 내리지만
그래도 그렇지,
紙雨傘(지우산)으로
生活을 받으며
가난하기는 매한가지인 걸。
우리보다
더 우울한 나라에도
비가 내리면
公園은 茂盛(무성)하고
土曜日은 떠난다는데
우리는 겨울에
조용히 잠들 수 없는
貨幣의 恐怖 속에 산다。
九孔炭 五十 個만 있어도
安堵(안도) 위에
宮闕(궁궐)을 짓고
生計를 論議하지만
南녘의
庶民들은
食卓 위에 더욱 목이 타오른다。
모든
近代的 市街地에
빌딩은 높아가는데
우리의 市場周邊은
恐怖속에
어두운 一色이다。
권용태(權龍太.1937.12.12∼ )
시인. 경남 김해군 장유면 출생. 중앙대학교 행정학과를 거쳐 1961년 동 대학 대학원 수료. 1958년 시 <바람에게> <산> <기(旗)> 등이 [자유문학]에 추천되었다. [현실] 동인. 국회 공보담당관, 중앙대학, 서라벌예술대학 강사, 저작권심의 조정위원,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 강남문화원장 등을 거쳐 1999년부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한국문화원연합회 회장 역임. 현재 중앙대학교문인회 회장.
제1회 중앙문학상(1959), 녹조근정훈장(1980), 제14회 노산문학상(1989), 홍조근정훈장(1996), 자랑스러운 중앙인상(1997), 제7회 시와시론 본상 등 수상.
【경력】
1958년 순문예지 [자유문학] 시 추천(3회) 문단 데뷔
195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
1960년 중대신문사 편집국 국장
1961년 중앙방송국 방송위원
1964년 주간 [예술] 편집국 국장
1965년 국무총리 기획조정실
1966년 중앙대,서라벌예대 강사
1967년 국회사무처 문공사회과 과장
1967년 국회사무처 공보담당관
1981년 국회사무처 자료편찬과 과장
1983년 국회 올림픽특별위원회 입법심의관 겸임
1983년 국회 문공위원회 입법심의관
1984년 대한체육회 사회체육위원
1985년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권익옹호위원장
1985년 한국현대시인협회 이사
1985년 한국문인협회 이사
1986년 예총회관에서 시화전 개최
1991년 방송위원회 영화심의위원
1991년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이사
1992년 국회 문화체육공보위원회 수석전문위원(∼1998)
1994년 초대 중대신문동문회 회장
1994년 저작권조정심의위원회 위원
1996년 제4대 저작권심의조정위원회 위원(유임)
1997년 초대 한국공연예술진흥협의회 위원
1997년 한국방송위원회 영화심의위원회 위원
1997년 서울여대 강사
1997년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제1심의위원회 위원
1997년 한국공연예술진흥협의회 비상임감사
1998년 제3기 종합유선방송위원회 위원
1998년 강남문화원 원장
1998년 경주대 교수(∼2001)
1999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2001년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제4심의위원회 위원
2003년 제24대 전국문화원연합회 회장(∼2009)
2010년 중앙대학교문인회 회장
【작품】<남풍(南風)에게>(1973) <해토(解土)를 기다리며>(1973) <손오공 선생>(1973)
【시집】<아침의 반가(反歌)>(문예사.1968) <남풍에게>(중앙출판인쇄.1980), <북풍에게>(한컴.1998)
권용태 / 아침 반가 (1시집)
1969년 / 문예사 / 97 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