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테말라는 첫 번째 수도를 제외하고는 지진으로 인하여 3번이나 수도를 옮기게 되었으며, 현재의 수도인 과테말라시(Ciudad de Guatemala)는 4번째의 수도가 된다.
1. 첫 번째 수도
1524년 7월 25일, 스페인 정복자 뻬드로 데 알바라도(Pedro de Alvarado)가 깍치꿸(Cackchiquel)왕국의 본거지인 익심체(Iximché)에 왕국의 첫 수도 'Ciudad de Santiago'를 세웠다. 1개월이 지난 후 스페인 군대에 대한 매복병의 루머를 접하고 알바라도는 수도를 불태워 버렸다. 그러나 첫 번째 시청이 그곳에 만들어졌었기 때문에 과테말라 왕국의 첫 수도로 인정을 받게 되었다.
* 익심체(Iximché)는 오늘날의 치말떼낭고 주 떽빵(Tecpán Guatemala)에서 5Km 거리에 있는 마을이다.
* 익심체 자료보기 : http://blog.daum.net/rhein/14286082
* 당시에는 수도의 명칭은 'Ciudad de Santiago'(산띠아고 시)라고 불렀다.
익심체 유적지
2. 두 번째 수도
깍치꿸의 반란과 익심체의 화재 이후, 알바라도는 '우나뿌' 화산(Volcán Hunapú)자락의 알모롱가 계곡(Valle de Almolonga)에 새 수도를 건설하기로 결정하기 전까지 그의 군대와 함께 협곡(barrancos)에 거주하면서 저항하는 주민들과 전쟁을 하였으며, 새 수도는 1527년 11월 27일에 지금의 비에하 시(Ciudad Vieja, 영어로 'Old City'라는 뜻)의 자리에 세워졌으며, 잘 정비된 도로와 아름다운 성당, 총독부 건물들이 들어서면서 도시가 확장되었다.
새 수도가 세워지자, 뻬드로 데 알바라도는 북쪽으로 정복여행을 떠나서 멕시코의 노치스뜰란(Nochistlán)에 이르러 1541년 7월 4일에 과달라하라(Guadalajara)에서 비참한 죽음을 당하였으며, 그의 부인 베아뜨리스(Beatriz)가 상속인이 되고, 마로낀(Francisco Marroquín) 주교와 Juan de Alvarado가 유언집행인이 되었다.
새로 건설된 도시는 이로부터 14년 후인 1541년 9월 10일과11일 사이에 화산에서 내려온 홍수(riada)에 의해서 파괴되어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게 되며, 이 재앙으로 뻬드로 데 알바라도의 미망인이며 총독(Gobernadora)인 베아뜨리스 데 라 꾸에바(Beatriz de la Cueva)가 죽었다.
* 이 홍수 이후로 '우나뿌' 화산(Volcán Hunapú)은 아구아 화산(Volcán de Agua)이라 불리우게 되었다. 'Agua'는 '물'이라는 뜻이다.
3. 세 번째 수도
과테말라의 첫번째 주교 프란시스꼬 마로낀과 베아뜨리스 데 라 꾸에바의 동생인 프란시스꼬 데 라 꾸에바(Francisco de la Cueva) 두 사람이 총독 직무대행으로서 승려회(Cabildo)와 함께 �사띠보 강(río Pensativo) 유역의 판초이(Valle de Panchoy)계곡에 세 번째 수도를 세우기로 결정하였으며 1543년 3월 10일에 건설되었는데, 이것이 오늘날의 안티구아(Antigua Guatemala)로 알려진 곳이다.
이 도시는 약 233년간 과테말라 왕국의 수도였으며, 스페인 왕에 의해 임명받은 총독(Gobernador)이 통치를 하였는데, 통치영역은 치아빠스(Chiapas)와 소꼬누스꼬(Soconuscp),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니카라구아, 코스타리카를 포함하였다.
* 치아빠스와 소꼬누스꼬는 Justo Rufino Barrios가 멕시코에 전쟁물자와 바꾸었다.
이 도시는 일직선으로 구획되고 포석이 깔린 완벽한 동서로와 남북로(calles y avenidas), 시청사와 수많은 교회, 그리고 분수와 공원들로 미화되어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오직 멕시코(Mexico city)와 리마(Lima)만이 비교될 수 있을 만큼 가장 아름다운 도시의 하나로 발전하였다.
'Ciudad de Santiago de los Caballeros de Guatemala'(과테말라 신사들의 산띠아고 시)라 불리우며 당시 아메리카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이 도시는 1773년 7월 29일 오후에 발생한 강력한 지진으로 무너지고 말았다.
* 1773년 7월 29일은 Día de Santa Marta(산따 마르따 일)로 이 지진을 Santa Marta 지진이라 부른다.
4. 네 번째 수도
기존의 장소에 도시를 재건하자는 정주파('Terronistas'라 함)와 '암자의 계곡'(Valle de la Ermita)으로 수도를 이전하자는 천도파(Traslacionistas)의 긴 논쟁 끝에, 1776년 1월 2일 마르띤 데 마요르가(Martín de Mayorga) 총독(Capitán General)이 지금의 수도인 새과테말라(Nueva Guatemala)에 시청을 설치하고 1776년 5월 23일에 스페인의 까를로스 3세(Carlos III) 국왕이 칙허장(Real Cédula)에 서명하여 새 수도의 이름을 “Nueva Guatemala de la Asunción”라 칭하게 되었다.
* Valle de la Ermita는 종교적인 명칭으로 Valle de la Virgen 라고도 불리운다.
과테말라시의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