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같은 학년 선생님들과 커피를 함께 마시다가 오늘 아침 뉴스 이야기가 나왔다. 5반 선생님이 전하기로 부천의 어느 초등학교 1학년 선생님이 아이가 하도 돌아다니길래 끈으로 묶어 놓았는데 그 길로 아이가 정신에 문제가 생겨 병원에 입원하였다고 한다. '얼마나 돌아다니면 그랬을까?' 하는 같은 직업 가진 사람으로서 이해하는 말도 있었지만 '묶어 놓는 건 너무 심했다.'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그러면서 모두 한편으로 '텔레비전 탔으니 그 선생 이제 끝이군.' 하는 생각과 '또 선생들이 막 돼 먹었다고 꽤 욕했겠지.' 하는 말없는 한 생각이 선생님들의 얼굴에 번져가는 느낌이었다.
아닌게 아니라 요즘 학교에는 자기 멋대로 나 다니는 아이들이 많다. 공부 시간에 교실 안에서 이리저리 돌아 다니는 아이들 뿐이 아니고 어떤 아이들은 공부 시간에 몰래 빠져나가 학교 둘레를 빙빙 돌거나 놀이터에 주저 앉아 들어오지 않는 아이도 저학년에 한두 명씩 있다. 4반에 한 아이가 그러는데 1학년 때부터 선생님이 잠깐 한눈을 팔면 슬며시 교실에서 나가 학교를 떠돌다가 마음이 내키면 들어오곤 한다고 한다. 우리 옆 반에도 그런 아이가 하나 있고 우리 반에는 지호가 그렇다. 또 그런 아이들끼리는 보통 서로 친한 사이라서 함께 만나 떠돌기도 한다.
그 날은 그렇게 하루가 시작되었다. 두 시간이 끝나고 셋째 넷째 시간에는 옆 반인 6반과 함께 운동장에서 즐거운 생활을 하였다. 아이들과 반 대항 축구 시합을 마치고 땀에 절은 몸으로 교실에 들어왔다. 운동을 한 뒤에 교실에 들어오면 으레 소란스러운지라 아이들을 좀 진정시키려 하는데 태헌이가 외친다.
"선생님, 박지호 없어요."
가끔 그렇게 늦게 들어오고 혼자 복도에서 나다니다 들어오는 녀석이라 좀 있으면 오겠지 하고 그냥 넘기고 알림장을 써 주었다. 그리고 잊어버리고 이제 급식차를 교실로 끌고 들어와 밥 나눠 줄 준비를 했다. 그런데 또 태헌이가 소리를 친다.
"선생님, 지호 안 들어 왔어요."
그러고 보니 체육 시간이 끝나고 교실에 들어 온 지 20여분 가까이 지났다. 아니 이 녀석이 어디에 갔단 말인가? 밥 먹을 시간이고 이제 곧 집에 갈 시간인데 지난 번처럼 놀이터에 갔을 리도 없고. 은근히 걱정이 된다.
"아니? 지호 체육 끝나고 교실에 들어 온 것 본 사람?"
서넛이 손을 드는데 이야기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다. 한 아이는 복도에서 봤다고 하고 한 아이는 운동장에 나갈 때만 보았다고 한다. 그런데 한 아이가 한 이야기가 소름을 돋게 했다.
"우리 운동장에서 체육 할 때 지호 교실에 있었어요. 창가에 앉아 있었어요."
그럼 운동장에도 안 나왔단 말야. 더구나 창가에 앉아 잇었다니, 여기가 3층인데 ....... 가슴이 덜컥 하면서 얼른 창밖을 내다보다가 겸연쩍어 운동장 멀리 아이가 있나 둘러보았다. 이거 급식도 나누어 주어야 하고 아이도 찾아야 하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잇는 사이에 아이들은 그저 떠들기에 바쁘고 앞 뒤 돌아보며 장난을 친다. 짜증이 나서 조용히 하라고 소리를 쳐 보지만 잠깐이다. 혹시 집에 갔나 싶어 핸드폰으로 전화를 해 보았지만 아버지 혼자 있다. 바쁜 사정이라 대강 이야기를 한 다음 어머니가 오면 학교로 와 주시라고 말한 다음 끊었다.
똑똑하다 싶은 아이 네 명을 불러 유치원 놀이터랑 학교 둘레를 돌아보라고 일러 놓고 나도 급식통을 팽개쳐 두고 교실 밖으로 서둘러 나갔다. 보고 양 밖을 내다 봐도 없다. 화장실도 들어가보고 실내에 갈 만한 곳은 다 찾아 봤지만 없는데 순간적으로 옥상 생각이 났다. 얼마 전 그 녀석이 옥상에 올라가 보고 싶다고 말한 적도 있다. 그렇지만 출입문이 잠겨 있을 테니 거기에 올라갔을라고 생각하고 위안을 삼으면서도 불길한 생각도 겹쳐 5층 위 옥상으로 내뛰었다. 아이고 어쩔고, 문까지 열려 있네! 옥상 위로 올라가니 바람이 시원하게 얼굴을 휘감아왔지만 눈길은 오직 어디 떨어졌나 하는 방정맞은 생각에 옥상을 빙빙 돌면서 땅 밑만 쳐다보았다. 혹 몰라 옥상 창고 문도 열어 보았지만 비었다.
다시 1층으로 내려와 내 보낸 아이들에게 물으니 학교에는 어디에도 없다고 한다. 잘못 찾아 보았을 지 몰라 지난 번에 놀다가 6반 선생님에게 그 반 아이와 함께 붙잡혀 온 적이 있던 유치원 놀이터로 갔다. 놀이터의 원통 속도 꼼꼼히 살펴 보았지만 없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이쯤 되니 별 좋지 않은 생각이 다 나고 어렸을 적에 잃어버려 혼줄이 났던 아들 찾은 경험까지 복잡하게 떠올랐다.
아이의 둔한 몸짓과 굵은 안경테가 떠오르면서 걱정이 더 커졌다. 허탈하고 멍한 마음으로 교실 쪽으로 걸어 들어오려다 한 가지 빠진 곳이 불현듯 떠오른다. 얼마 전 그 녀석이 문방구에서 기차 전자 오락을 했다는 일기가 떠올랐다. 그래 그 곳에 잇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아이들을 문방구로 보냈고 조금 있다 쭐밋쭐밋 아이들 손에 이끌려 지호가 들어왔다. 지은 죄가 죄니만큼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옆 반 지수와 함께 문방구에서 오락을 하다 왔단다. 미운 마음보다는 안도의 한숨이 먼저 나왔다.
교실에 들어와서는 아무 말도 묻지 않고 밥부터 먹으라고 일러 두고 소란스런 아이들을 앉힌 뒤 급식을 시작하였다. 아이들도 기다린 뒤라 시끄럽고 떠 있는데다 혼비백산 하여 다니느라 밥은 퍼들었지만 입맛도 없고 밥이 어디로 들어가는 지 모르겠다. 밥을 먹으면서도 연신 지호 얼굴을 보니 눈치는 보고 있지만 밥은 그대로 먹는다. '아이고 그래라. 체할라, 우선 밥이라도 마음놓고 먹어라. 밥 먹은 뒤에 한 따까리 하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