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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새날입니다.
이번달 함께 읽을 책은 마이클 샌델 지음의 『공정하다는 착각』입니다.
그 어느 때부터인가 ‘공정’이라는 단어가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공정’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사안을 평가하고 판단함에 있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모든 경우를 동일한 비율로 다루는 것을 말합니다. 간단히 하면 ‘공평하고 올바름’을 뜻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이 공평의 잣대입니다. 어떤 것은 저울과 같이 숫자로 명확히 측정 가능한 것도 있고 측정하기 어려운 것도 있습니다. 측정이 가능하더라도 측정된 값을 두고 어떤 기준으로 평가하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판단을 달리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공정은 무엇을 대상으로 하느냐, 어떤 기준에서 해석하고 판단하느냐, 판단의 결과 적용 원칙이 어떠하냐에 따라 저마다 다르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동안 암묵적으로 이해되어왔던 사회통념적 가치기준도 이제는 세대에 따라 또는 다양하고 세분화된 집단들의 성향에 따라 저마다 이해를 달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쪽에서의 공정이 다른쪽에서의 불공정을 낳는 경우도 많아 늘 논란의 대상이 되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해 분간하기도 어렵습니다.
이렇듯 ‘공정’이라는 하나의 화두를 두고 각계각층이 충돌하고 있는 상황에서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의 『공정하다는 착각』을 같이 읽어 보려 합니다. 이 책은 ‘능력주의’ 관점에서 공정을 논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우리가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너무나도 당연히 생각해왔던, 개인의 능력을 우선시하고 보상해주는 능력주의 이상이 근본적으로 크게 잘못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능력주의가 제대로 공정하게 작동하고 있는지, ‘공정함=정의’란 공식은 정말 맞는 건지 진지하게 되짚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자 소개는 아래와 같습니다.
2010년 이후 한국에 ‘정의’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27세에 최연소 하버드대 교수가 되었고, 29세에 자유주의 이론의 대가인 존 롤스의 정의론을 비판한 《자유주의와 정의의 한계》를 발표하면서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었다. 1980년부터 하버드대에서 정치철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그의 수업은 현재까지 수십 년 동안 학생들 사이에서 최고의 명강의로 손꼽힌다. 샌델이 진행 중인 영국 BBC의 정치철학 토론 프로그램 〈위대한 철학자들〉 시리즈는 ‘철학적 아이디어의 이면을 탐구한다’는 주제로, 세계 각국의 토론자들이 참여하고 있다. 대표 저서로 27개국 언어로 번역된 베스트셀러 《정의란 무엇인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등이 있다.
책 구성은 아래와 같습니다.
서론: 대학 입시와 능력주의
입시의 윤리 | 능력 지표 따내기
CHAPTER 1. 승자와 패자
CHAPTER 2. “선량하니까 위대하다” 능력주의 도덕의 짧은 역사
CHAPTER 3. 사회적 상승을 어떻게 말로 포장하는가
CHAPTER 4. 최후의 면책적 편견, 학력주의
CHAPTER 5. 성공의 윤리
CHAPTER 6. ‘인재 선별기’로서의 대학
CHAPTER 7. 일의 존엄성
결론: 능력, 그리고 공동선
주차별 책 읽기는 아래와 같습니다.
1주차 책 소개, ‘서론: 대학 입시와 능력주의’, ‘1. 능력주의의 승자와 패자’
2주차 ‘2. 능력주의의 명암’, ‘3. 사회적 상승을 어떻게 말로 포장하는가’, ‘4. 최후의 면책적 편견, 학력주의’
3주차 ‘5. 성공의 윤리’, ‘6. 인재 선별기로서의 대학’
4주차 ‘7. 일의 존엄성’, ‘결론: 능력, 그리고 공동선’
〈 들어가기에 앞서 〉
읽고, 정리하고, 생각 나누기
주차별 내용은 책에서 말하는 바를 요약하고 새날의 생각을 덧붙여서 재편집하여 정리하였습니다.
대체로 책의 내용을 근간으로 하지만 책의 내용과 다른 면도 살펴보고, 또 좀더 자세히 알아보면 좋겠다는 것들을 요약내용에 포함하였습니다. 따라서 책의 내용과 같기도 하고 약간 다르기도 합니다.
원문 그대로를 선호하는 분들은 책을 꼭 읽어 보기를 권합니다.
이야기 자리 주제
이번 주 함께 읽은 책 내용에 대해 편하게 이곳의 해당 게시글에 댓글로 이야기 나눠 봅니다.
책을 읽으면서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정리하고 내 삶과 연결 접점을 따져보아 적용하다 보면 변화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타인과의 이야기 자리를 통해 그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느꼈는지, 삶에서 어떤 영향을 받았는 지를 자연스럽게 알게 됩니다. 그 속에서 틀림이 아닌 다름이 이해되고 다양성으로 사고의 확장이 이어져 서로에게 배우고 함께 성장하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이번 주는 1주차로 ‘서론: 대학 입시와 능력주의’, ‘1. 승자와 패자’에 대한 주제의 내용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 읽고, 정리하고, 생각 나누기 〉
서론: 대학 입시와 능력주의
저자는 명문대 입학과 관련하여 들어가는 문을 ‘정문’, ‘뒷문’, ‘옆문’ 으로 나누고 이를 능력주의와 연결지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먼저 ‘정문’은 각 대학의 입학 지원자를 시험을 통하여 선발하는 입시제도를 통과하는 방식입니다. 이런 입시 방식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직 능력, 실력으로만 입학하기 때문에 공정한 방식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 방식도 과거에는 통용되었지만 이제는 그렇게 공정하다고 볼 수만은 없습니다. 실제로 대학 입시시험 점수와 수험생 집안의 소득이 비례관계를 나타낸다고 합니다. 더 부유한 집 학생일수록 더 높은 점수를 얻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죠. 예를 들면 부자 부모가 사설 입시 카운슬러를 고용해 입시 스펙을 다듬어 준다면 명문대에 입학할 확률이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예전에 JTBC 인기 드라마인 ‘SKY캐슬’만 보더라도 쉽게 이해될 수 있습니다. 학비 문제에 있어서도 가난한 집은 대학 입학이 하나의 진입 장벽이 될 수 있고, 입학 하더라도 경제적인 이유로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는 경우는 아주 적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문’의 입시 방식이 반드시 공정하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다음은 ‘뒷문’으로 대학에 들어가는 방식입니다.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생 삼분의 이 이상이 소득 상위 20퍼센트 이상 가정의 출신이라고 합니다. 프린스턴과 예일에는 미국의 소득 하위 60퍼센트 출신 학생보다 상위 1퍼센트 출신 학생이 더 많다고 합니다. 이 엄청난 입학 불평등은 일부 동문자녀에 대한 입학 우대와 거액의 기부금을 낸 사람의 자녀에게 우대하는 소위 ‘기여 입학’이라고 하는 ‘뒷문’의 영항이 크다고 합니다.
마지막은 부유한 집 자녀들이 명문대 입학에 있어 ‘정문’과 ‘뒷문’으로 들어갈 수 없다면 ‘옆문’인 입시부정을 통해 입학하는 것입니다. 책에는 입시부정으로 미국 연방검찰에 기소된 사건의 예를 들고 있습니다. 이 사건에서 한 악덕 입시상담가는 부자들로부터 고액의 돈을 받고 그들의 자녀를 명문대에 부정입학 시켰습니다. 관계자에게 뇌물을 주어 대학입학시험 성적을 조작하고, 축구를 해본 적도 없는 딸을 축구 특기생으로 둔갑시키는 등의 불법적 수단을 동원한 것입니다. 이 입시 상담가의 고객들은 주로 사회적 명사들이나 사모펀드 거부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정문이든, 뒷문이든, 옆문이든 모두가 왜 이렇게 명문대 입학을 하려고 할까요? 저자는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불평등을 들고 있습니다. 불평등이 늘어나면서, 또한 학사 학위 소지자와 비소지자 사이의 소득 격차가 벌어지면서 대학은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되어버렸습니다. 어느 대학에 들어가느냐 역시 중요해졌습니다. 오늘날 학생들은 너도 나도 소수의 주요 대학들만 선호합니다. 누가 어디에 발을 들여놓느냐에 의해 전보다 훨씬 많은 것이 결정되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여유 있는 부모라면 그 자녀가 ‘적어도 중산층의 삶을 살았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이해할 만한 정서의 결과물입니다. 좋은 대학의 졸업장은 그동안 함께 지내온 계층하고만 어울리고 싶어 하는 사회계층의 경직성에 대한 최상의 대응책으로 여겨집니다. 그리고 이는 특권층 부모들이 자녀의 명문대 입시에 새삼 신경을 쏟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경제적 불안이 전부는 아닙니다. 자녀가 명문대 간판을 달도록 함으로써 ‘능력주의’라는 광채를 두르려고 한 것입니다. 불평등한 사회에서 꼭대기에 오른 사람들은 자신들의 성공이 도덕적으로 정당하다고 믿고 싶어 합니다. 능력주의가 원칙이 되는 사회에서는 승리자가 ‘나는 나 스스로의 재능과 노력으로 여기에 섰다’고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역설적으로, 이것이 바로 입시 부정 학부모들이 자녀에게 선물하려던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단지 자녀에게 부를 물려줄 마음뿐이었다면 신탁기금 등을 포함한 재물을 주면 그만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뭔가 다른 것을 원했습니다. 명문대 간판이 줄 수 있는 ‘능력의 지표’ 말입니다.
능력주의가 고조될수록 우리는 경쟁의 이면에 있는 다른 요소들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능력주의가 갖는 ‘내 스스로 모든 것을 해냈다’는 잘못된 인상 등과 같은 것들 말이죠. 이 경우 만약 반대로 입시에 실패하면 그건 ‘누구의 잘못도 아닌 오로지 자기 자신의 잘못’이라는 인식도 심어주게 됩니다. 나아가 지나치게 자신을 위축시키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는 청소년들에게 지나친 부담이 됩니다. 스스로의 능력으로 해 냈다고 하더라도 부모와 교사의 노력, 타고난 재능과 자질, 자신의 능력을 펼칠 수 있는 사회 환경 등의 덕을 보았다는 사실을 거의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그런 것들에 대한 감사와 겸손을 배우기가 더욱 어렵기 때문에 사회 공동체에 대한 이해를 제대로 갖추지 못하게 됩니다.
대학 입시만이 능력주의의 유일한 문제는 아닙니다. 능력주의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의견 불일치는 공정성에 그치지 않습니다. 1장에서 이어질 우리가 성공과 실패 또는 승리와 패배를 어떻게 정의하는가도, 그리고 자신보다 덜 성공한 사람들에 대해 승리자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도 문제입니다. 이러한 문제들은 대체로 외면 받고 있으며, 우리는 발등에 불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그 문제를 다루지 하지 않습니다. 이제 이에 대해 사회 구성원들의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CHAPTER 1. 승자와 패자
저자는 ‘지금이 민주주의 위기의 시대다’라고 말합니다. 왜 그런지에 대한 책의 내용은 대부분 미국을 기준으로 이야기하지만 우리 사회와도 밀접하게 연결되는 지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아래의 짧게 간추린 내용을 읽으면서 우리 사회와 관련지어 생각해 보면 그 의미에 대해 보다 깊은 이해가 동반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민주주의 위기는 외국인 혐오증이 점점 심해지고, 민주주의 규범의 한계를 시험하고 있는 권위주의적 인물들에 대한 지지 역시 높아지는 데서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런 경향의 심각한 문제는 주류 정당과 정치인들이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정치에 대한 대중적 불만에 대해 이해가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일부는 포퓰리즘(대중주의 또는 인기영합주의)적 민족주의의 준동을 단지 이민과 다문화주의에 맞선 인종주의와 외국인 혐오증의 반발로 치부합니다. 다른 일부는 이를 주로 경제 문제의 일환으로 보고, 글로벌 무역과 신기술이 빚어낸 일자리 감소에 대한 반발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포퓰리즘적 저항을 편협한 시각이라고 무시하거나, 이를 다만 경제적 불만의 표출일 뿐이라고 받아들이는 일은 잘못입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불평등이 커지고 상류층에게는 혜택을, 보통 사람들에게는 무력감을 안겨준 세계화가 진행된 데 대한 분노입니다. 이는 또한 경제와 문화 조류에서 뒤떨어져 버린 사람들의 항의를 나 몰라라 한 기술관료중심(과학적이고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사람이 중심, 소위 엘리트 중심) 정치에 대한 반발이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다양한 불편한 감정 속에 얽혀 있는 정당한 불만을 진지하게 다뤄야 합니다.
그러한 불만이 단순히 경제적인 불만일 뿐만 아니라 도덕적, 문화적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 불만은 단지 임금과 일자리에만 있는 게 아니라 사회적 존중, 즉 노동의 존엄성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수십 년 동안 노동자의 사회적, 문화적 지위가 꾸준히 낮아진 것은 피할 수 없는 조류 탓은 아니었습니다. 주류 정당들과 집권 엘리트가 정책을 그렇게 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바로 자신들이 자아낸 분노가 포퓰리즘을 촉발시켰다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또한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혼란이 그들의 정치적 실패에서 빚어졌다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이 실패의 핵심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공공선을 기술관료적으로 인식하였다는 점이며, 다른 하나는 승자와 패자를 능력주의적으로 정의 내리게 했다는 점입니다. 이제 이들 정당은 시장중심적이고 기술관료적인 통치 방식부터 점검해야 합니다. 수십 년 동안 불평등이 증가하면서 생겨난, ‘성공과 실패에 대한 관점’도 다시금 살펴 보아야만 합니다.
이에 대해 앞서 언급된 세계화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세계화는 그 과실을 불균등하게 배분했습니다. 미국의 경우 1970년대부터 지금껏 늘어난 국민소득 대부분이 상위 10퍼센트에게 돌아갔고, 하위 50퍼센트는 거의 아무 것도 얻지 못했습니다. 실질소득 기준 노동가능 연령 인구의 중위소득은 약 3만 6,000달러인데, 그것은 40년 전보다 낮은 수준입니다. 반면에 오늘날 가장 부유한 1퍼센트의 미국인이 하위 50퍼센트가 버는 것보다 더 많이 벌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평등의 폭발적 증가만으로는 포퓰리즘의 분노, 그 핵심을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미국인들은 오래전부터 소득과 재산의 불평등을 참아 왔습니다. 어디서 출발하든 부자라는 결승점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어왔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상승 가능성에 대한 이런 믿음은 아메리칸 드림의 핵심입니다.
오늘날의 경제 상황상 사회적 상승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가난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미국인은 대개 가난한 성인이 됩니다. 소득 기준 하위 5분위 가정 출신자는 스무 명 가운데 한 명만 상위 5분위에 이르렀고, 대부분은 중산층에도 이르지 못했습니다. 개천에서 용이 나는 일은 아주 드문 일이 되었습니다.
최근 수십 년 동안의 폭발적인 불평등 증가는 사회적 상승을 가속화시킨 게 아니라, 정반대로 상류층이 그 지위를 대물림해줄 힘만 키워주고 말았습니다. 결국 오늘날의 능력주의는 세습귀족제로 굳어져가고 있습니다. 빈부격차에 대한 진지한 대응은 무엇이든 부와 권력의 불평등을 직접 다뤄야만 하며, 사다리를 오르는 사람들을 돕는 방안으로는 무마될 수 없습니다. 사다리 자체가 점점 오르지 못할 나무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능력주의의 윤리적인 면은 어떨까요? 능력주의 윤리는 승자들을 오만으로, 패자들은 굴욕과 분노로 몰아갑니다. 특히 능력주의적 오만은 승자들이 자기 성공을 자기 노력의 결과라고, 다 내가 잘나서 성공한 것이라고 지나치게 뻐기는 한편 그 버팀목이 된 우연과 타고난 행운은 잊어버리는 경향을 반영합니다. 정상에 오른 사람은 자신의 운명에 대한 자격이 있는 것이고, 바닥에 있는 사람 역시 그 운명을 겪을 만하다는 것입니다.
“하면 된다” 이 말은 양날의 검입니다. 한편으로는 자신감을 불어넣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모욕감을 줍니다. 승자에게는 갈채를 보내지만 동시에 패자에게는 조롱합니다. 패자 스스로도 자신의 곤경은 자신 탓이라는 말로 받아들입니다.
이런 능력주의의 오만은 대학 학위와 결부되어 있습니다. 집권 엘리트들이 지금껏 ‘대학 학위야말로 성공의 길이자 사회적 명망의 기반’이라고 가치를 부여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대학에 못 간 사람에게 고약한 낙인이 찍히게 됨을 그들은 나 몰라라 합니다. 그러다 보니 포퓰리즘이 터져 나오고 이를 기반으로 한 트럼프가 대선에서 승리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시장 주도적 세계화는 40년 동안 계속돼 왔으며 정치 담론의 장을 공동화했고, 보통 시민들을 무력하게 만들었으며, 포퓰리즘의 반격을 일으켰습니다. 그 반격이란 텅 비어버린 공론장에 무자비하고 복수심에 불타는 민족주의를 채워 넣으려는 움직임입니다.
민주정치가 다시 힘을 내도록 하려면, 우리는 도덕적으로 보다 건실한 정치 담론을 찾아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 공통의 일상을 구성하는 사회적 연대에 심각한 피해를 입히는 능력주의를 진지하게 재검토함으로써 가능합니다.
새날의 생각 나누기
앞서 대학 입시와 능력주의, 그리고 승자와 패자에 관한 주제의 내용을 같이 읽어 보았습니다. 정리해보면 대학 졸업 여부가 능력주의를 조장하고 이로 인해 사회를 승자와 패자로 나눈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경우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사람은 미국의 성인 세 명 중 한 명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성인 25세 이상 65세 미만 성인 대상으로 할 경우 두 명 중 한 명입니다. OECD 회원국 38개국 중에서 대졸자 비중이 50%가 넘는 나라는 캐나다(59.4%), 일본(52.7%), 룩셈부르크(51.6%), 이스라엘(50.2%), 한국(50.0%)입니다(이상 출처1 참고).
그럼 2021년 우리나라의 대학 진학률은 어떨까요? 올해 고교 대학 진학률은 73.7%로 10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습니다(출처 2 참고). 이 경우도 OECD 회원국 중에서 가장 높은 수치입니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 우리나라의 성인 대상 대상 졸업자 비중은 점점 늘어날 것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대졸자 취업률은 75%로 OECD 가운데 31위로 하위권에 속합니다(출처 3). 또한 OECD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전공과 직업 간 미스매치율이 50.0%로 1위라고 합니다. 2021년 통계청 조사에서도 일자리와 전공과의 불일치율은 52.3%로 취업자의 절반 이상이 전공과 무관한 일자리에 취업한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고학력을 요구하는 일자리 증가 속도가 대졸자 증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노동 시장 수급 불균형도 청년 대졸자 고용 부진의 주요 원인이 되는 것 같습니다. 또한 산업구조 변화에 따라 기존 일자리 감소도 매우 우려스러운 상항입니다.
여기에 우리사회의 고질병이라고 할 수 있는 학벌주의도 한 몫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학벌 주의는 개인의 능력과 상관없이 어느 학교 출신이냐에 따라 차별을 받는 사회 현상으로 학벌을 중요하게 여기는 입장이나 태도를 말합니다(이하 출처4 참고). 우리 사회에서는 성공과 출세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인은 학벌로 익히 알려져 있습니다.
비명문대학생의 경우, 취업과 승진 그리고 인격적으로 무시당하고, 더 나아가 특정 학벌이 정부 고위직은 물론 민간, 기업부분을 독점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많이 배웠는가가 아닌 어디에서 배웠는가가 더 중요한 현실은 대학을 서열화 시키고, 더 나아가 교육체계는 물론 교육 전반을 왜곡시키는 문제를 낳고 있습니다. 학벌사회는 특정 학교에 입학하기 위한 입시경쟁사회를 낳고, 교육은 전인교육이 아닌 시험선수를 양산하는 입시교육이 되고, 공부 잘하는 학생만이 학교나 사회에서 모두 인정받는 사회로 전락하고 맙니다. 결과적으로 성적 우수자는 자신이 훌륭한 사람이라는 허위의식을 내면화시키는 동시에 성적이 좋지 않은 학생은 자신감을 상실하게 되고 자신을 무가치한 존재로까지 믿고 맙니다.
학생들은 대학의 좋고 나쁨 혹은 선택의 문제가 학문에 따른 것이 아니라 학교 이름을 보고 선택합니다. 왜냐하면 사회 전 영역에 걸쳐 학벌에 따라 권력이 집중되며 특히 명문대 출신들이 그 권력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학벌은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 차별과 불평을 지속적으로 확산 및 강화하는 기제가 되고 있습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계급차이로 생기는 사회적 불평등은 개인의 노력을 통해 일정정도 극복할 수 있지만, 학벌은 계급과 달리 한번 정해지면 바꿀 수 없는 일종의 후천적 신분으로 지속적인 차별과 불평등을 양산하는 핵심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미국의 학력주의와 우리의 학벌주의는 상황적으로 다른 면이 있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면 명문대를 선호하고 이것이 능력주의와 연결되어 사회 불평등을 낳는 구조적 측면에서는 유사성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으로 책의 내용을 우리나라와 대비하며 읽어보면 우리의 현실에 대한 좀 더 깊은 이해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다음 주에는 ‘2.능력주의의 명암’, ‘3. 사회적 상승을 어떻게 말로 포장하는가’, ‘4. 최후의 면책적 편견, 학력주의’를 같이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 참조글 〉
O 출처1: 국내 성인 인구 2명 중 1명은 대졸 | 한경닷컴
O 출처2: 올해 고교 대학 진학률 73.7%, 10년 만에 최대치 기록
O 출처3: 韓 대졸자 취업률 75%…OECD '하위권' - 비즈팩트 > 기사 – THE FACT
O 출처4: 다음 백과 - 학벌주의
〈 마인드 맵으로 한 장에 보기 〉
〈 소통과 성장의 장 〉
카페 : 새날과 함께하는 책 모임 - Daum 카페, https://cafe.daum.net/bookand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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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해가 뜨고 지는 일이 늘 반복되지만
그래도, 어제보다 좀 더 나은 내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더불어 함께, 새로운 오늘을 충실히 잘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또한 남과의 비교가 아닌,
어제 나와의 비교를 통해 하루하루 성장하는 나를 만나고 싶습니다.
-새날 드림/Dream
첫댓글 〈 이야기 자리 주제 〉
우리 사회의 학벌주의가 갖는 문제에 대해 한 가지 사례를 찾아보고 이야기 나눠보면 좋겠습니다.
과거 KBS2 개그콘서트 프로그램 중 사마귀 유치원 코너가 있었습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진학선생님인 일수꾼인 개그맨 최효종은 우리 사회의 교육에 관해 풍자를 합니다. 사회 문제를 코믹있게 표현하기도 했지만 그것이 곧 씁쓸한 현실을 우리에게 일깨우기도 합니다. 이 중 한 가지 사례로 ‘똑똑한 아이로 키우는 훌륭한 엄마가 되는 법’에 대해 내용을 간추려 보면 이렇습니다.
“똑똑한 아이로 키우려면 조기 교육으로 사교육을 시키면 된다.”
"우리 아이들을 놀이터에 뛰어 놀게 하고 싶다고? 놀이터에는 아무도 없다. 다 학원에 있다."
"우선 영어가 가장 중요하다. 영어학원만 다니면 한글 실력이 떨어질 수도 있으니까 논술학원에, 논술만 배우면 감성이 부족해지니까 피아노 학원에, 그러다 보면 체력이 떨어지니까 태권도 학원에 보내면 된다."
"저녁에 집에 돌아오면 아무도 없다. 엄마 아빠는 맞벌이 중이다. 학원비를 벌기 위해 숨만 쉬고 일만 한다."
"이렇게 열심히 학원에 다니면 아주 훌륭한 대학생이 된다. 그리고는 미친 듯이 취업 준비를 한다. 토익 토플 자격증 학원에 다니면서 스펙을 쌓으면 직장인이 된다. 이렇게 학원에 다녀서 무엇이 남냐고? 학원을 다녔다는 추억이 남는다."
이 내용은 10년 전 방영된 것임에도 지금의 우리에게 전혀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아래 링크 영상을 참고 바랍니다.
개그콘서트 - 사마귀 유치원 진학선생님 일수꾼 모음 영상 : https://www.youtube.com/watch?v=s2ET5vnki_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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