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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하기를 나의 행위를 조심하여 내 혀로 범죄하지 아니하리니 악인이 내 앞에 있을 때에 내가 내 입에 재갈을
먹이리라 하였도다 내가 잠잠하여 선한 말도 하지 아니하니 나의 근심이 더 심하도다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뜨거워서
작은 소리로 읊조릴 때에 불이 붙으니 나의 혀로 말하기를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이 언제까지인지 알게 하사 내가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주께서 나의 날을 한 뼘 길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은 그가 든든히 서 있는 때에도 진실로 모두가 허사뿐이니이다 (셀라)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로 소란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거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시편 39:1∼7)
우리들은 예수님을 믿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요.
사도신경은 저희들이 믿는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독생성자이시고, 우리의 주님이시고, 그리스도, 기름부음을 받은 특별한 존재이고, 동정녀 탄생을 하신 분이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는데 사흘 만에 부활하신 분이고, 승천하셔서 지금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 분이고, 심판하러 재림하실 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매주 사도신경으로 우리들의 신앙을 고백하고 있는데, 오늘도 그렇게 헸는데 그때마다 이런 사실을 반복해서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우리들의 신앙을 체계적으로 잘 고백한 것 가운데 감리교 신앙고백이 있습니다.
감리교 교리적 선언은 두 번째 조항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육신으로 나타나사 우리의 스승이 되시고 모범이 되시며 대속자가 되시고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육신으로 나타나신 분입니다.
이것을 세 글자로 줄여서 ‘성육신’이라고 하지요.
예수님은 우리의 스승이 되시고 모범이 되시는 분입니다.
스승이 되고 모범이 되는 존재를 줄여서 ‘멘토’(mentor)라고 하지요.
예수님은 ‘멘토 가운데 멘토’이십니다.
그리고 ‘영원한 멘토’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대속자가 되시고 구세주이십니다.
이런 예수님을 생각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해야 할 일들이 많습니다.
그 예수님을 더 잘 믿어야합니다.
그 예수님을 더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가장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라는 찬송이 있지요.(94장)
잘 아실 것입니다.
그 찬송가 가사 그대로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고, 명예와 바꿀 수 없고, 행복과 바꿀 수 없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그 예수님을 믿고 있는 것, 따르고 있는 것, 감사드려야 합니다.
그 예수님을 널리 전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생각할 때 해야 할 것들이 참 많지만, 저는 오늘 특별히 마음이 뜨거워져야 하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왜 마음이 뜨거워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할까요?
오늘이 웨슬리 회심 기념주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웨슬리 목사님은 회심 이전에도 규칙을 엄격하게 지키며 경건한 생활을 했습니다.
선교사로 아메리카 대륙에 가서 조지아 주의 인디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마음에서 답답함 같은 것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284년 전인 1738년의 5월 24일. 수요일이었는데, 웨슬리 목사님은 답답한 마음을 안고 올더스게이트의 한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그곳에서 마음이 뜨거워지는 체험을 했습니다.
웨슬리 목사님은 그 날 일기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저녁에 나는 별로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올더스 게이트 거리에 있는 한 집회에 참석하였는데 거기서 한 사람이
루터의 로마서 서문을 읽고 있었다. 9시 15분경에 그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마음에
변화를 일으키시는 일을 설명하고 있을 때 나는 내 마음이 이상스럽게 뜨거워짐을 느꼈다. 나는 내가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있다고 느꼈으며 구원을 위해 다만 그리스도만 믿고 있음과 그 위에 주께서 나의 죄를, 아니 나의
죄까지도, 다 거두어 가시고 나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건져 주셨음을 믿는 확신이 나에게 주어졌다.
그 뜨거워진 마음으로 “세계는 나의 교구이다” 외치며 나가서 복음을 전해서 탄생한 것이 감리교회입니다.
저는 웨슬리 회심 기념일을 ‘감리교회의 생일’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감리교회들은 웨슬리 회심 기념일이 들어 있는 주간에 지방별로 회심 기념집회를 갖습니다.
중구용산지방은 오늘 오후부터 나흘간 예수마을교회에서 기념집회를 갖는데 이 웨슬리 회심 기념집회는 ‘감리교 생일잔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설교의 제목은 “뜨거워서 불이 붙으니”이고 본문은 시편 39편의 전반부 말씀인데요, 목사님들은 설교를 준비 할 때 제목과 본문을 정하느라고 고심을 많이 합니다.
제목과 본문이 정해지면 설교 준비의 반은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한 목사님도 있습니다.
저는 오늘 본문과 제목을 정하기 위해 성경에서 ‘뜨겁다’라는 말이 들어 있는 구절들을 거의 모두 찾아보았습니다.
대한성서공회 홈페이지의 성경검색 방에 들어가서 “뜨거워” “뜨겁게” “뜨거우니”를 모두 입력해서 검색해 보았습니다.
제일 강하게 눈사도행전 강해에 들어오는 것은 누가복음 24장 32절,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뒤 두 제자가 엠마오라는 마을로 내려갑니다.
실망의 길이고, 도피의 길입니다.
그들의 발걸음이 무거웠을 것입니다.
어깨는 축 늘어졌을 것입니다.
그들이 길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날이 저물어 유숙하기 위해 한 곳에 들어가 음식을 먹을 때야 그가 예수님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때 보이지 아니하셨는데 그 때 그들이 한 말입니다.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그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들의 발걸음, 엠마오로 갈 때와는 반대로, 가볍고, 힘이 넘쳤을 것입니다.
찬송가 171장 “하나님의 독생자”, 이 찬송의 2절 가사가 이렇지요.
주안에서 거듭난 우리 기뻐하며 찬양하리
가슴속에 넘치는 확신 우리의 가는 길에 소망 넘치네
살아계신 주 나의 참된 소망 두려움이 사라지네
사랑의 주 내 갈길 인도하니 내 모든 삶의 기쁨 늘 충만하네
그들은 부활의 주님에 대한 확신을 품고 소망에 넘쳐서 충만한 기쁨을 안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을 것입니다.
거기 모인 열한 제자와 그들과 함께 한 자들에게 자기들이 겪은 일을 말했습니다.
부활의 증언자가 되었습니다.
담임목사님께 석 주일 전, 5월 1일에 이 말씀을 본문으로 “엠마오의 두 제자”라는 제목으로 설교하시면서 이 일을 잘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 설교를 기억하면서, 마음이 뜨거워져 엠마오가 아닌 예루살렘으로 확신과 소망과 기쁨의 행진을 해야 합니다.
성경에서 뜨겁다는 말을 검색하다가 시편 39편을 본문으로 택했습니다.
3절 때문입니다.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뜨거워서 작은 소리로 읊조릴 때에 불이 붙으니 나의 혀로 말하기를
이 말씀에서 “뜨거워서”라는 말과 “불이 붙으니”라는 말을 뽑아서 조합을 해서 오늘의 설교제목을 만들었습니다.
사실은 이렇게 하면 안 되는 법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는 한 구절, 한부분이 아니라 그 구절, 그 말씀이 들어있는 전체를 읽어야 합니다.
이것을 ‘문맥을 파악한다’고도 하고, ‘문단을 읽는다’고도 하고, ‘텍스트(text)를 이해한다’고 합니다.
성경 말씀에서 자기 마음에 드는 구절을 하나 뽑아서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강조하는 것은 잘 하는 일이 아닙니다.
피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제가 그렇게 했는데요, 불가피해서 그렇게 한 것이니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요한 웨슬리 회심기념주일, 웨슬리 목사님이 마음이 뜨거워진 날입니다.
본문 2절에 “내가 잠잠하여 선한 말도 하지 아니하니 나의 근심이 더 심하도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회심하기 전의 웨슬리 목사님의 마음이 이랬습니다..
아까 말씀드렸는데요, 웨슬리 목사님은 회심 이전에 아메리카 대륙에 선교사로 다녀온 일이 있습니다.
그 선교사역이 그렇게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습니다.
웨슬리 목사님의 일기에는 “나는 인디언들의 영혼을 구하려고 갔는데 내 영혼을 구원할 자는 누구란 말인가?”라는 말이 적혀 있습니다.
그러니까 근심이 더했겠지요.
그러던 가운데 마음아 뜨거워지는 체험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전도의 불이 붙은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과 저의 마음이 뜨겁습니까?
예수님께 대한 사랑이 뜨겁습니까?
말씀에 대한 사랑이 뜨겁습니까?
교회에 대한 사랑이 뜨겁습니까?
이웃에 대한 사랑이 뜨겁습니까?
제가 아까 성경에서 ‘뜨겁다’가 들어간 말을 모두 검색했다고 했는데요, 성경은 뜨겁게 서로 사랑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베드로전서 1장 22절의 말씀입니다.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베드로전서 4장 8절의 말씀입니다.
웨슬리회심 기념주일입니다.
마음이 뜨거워지시기 바랍니다.
아니 뜨거워져야 합니다.
60여 년 전, 제가 고등학생 때 일입니다.
그때 용산교회에 속회 노래가 있었습니다.
교회에 모여 연합속회를 드릴 때마다 그 속회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 가사의 대부분은 기억하지 못하는데 “웨슬리 선생 마음 같이 우리 맘도 뜨거워져 용산교회 날로 부흥하게 하옵소서”이런 구절이 있었던 것은 기억이 납니다.;
이것이 감리교회에서 만들어서 각 교회에서 부르게 한 노래인지, 용산교회에서 만든 노래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때 용산교회는 그런 노래를 스스로 만들 형편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지금도 이 노래가 남아있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 속회 노래 가사 그대로 웨슬리 선생 마음 같이 우리 마음도 뜨거워져야 합니다.
웨슬리 목사님의 마음이 뜨거워져 탄생한 것이 감리교회인데, 지금의 한국 감리교회, 과연 뜨겁습니까?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하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감리교회가 20년 전에 ‘72운동’이라는 것을 했습니다.
‘72운동’은 ‘7천 교회 2백만 신도 운동’의 줄인 말인데 말 그대로 7천 교회 2백만 신도가 되게 하자는 운동이었습니다.
그때 참 뜨겁게 했습니다.
그때 감독회장으로 앞장서서 이 운동을 이끈 분이 김진호 목사님이었습니다.
어떤 서예가가 김진호 목사님에게 “흥기발광”(興起發光)“ 네 글자를 붓으로 써서 드렸습니다.
일 흥, 일어날 기, 쏠 발, 빛 광, 이사야서 60장 1절의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라는 말씀을 한문으로 옮긴 것인데 ‘72운동’의 표어가 이 말씀이었던으로 기억됩니다.
김진호 목사님은 72운동을 위한 집회를 할 때마다 그 붓글씨를 들고나가 펼쳐 보이며 감리교회는 일어나서 빛을 발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여기 발광(發光)이 잘못하면 미친다는 말로 들리기 쉬운데 나는 이 운동에 미쳤다는 소리를 들어도 좋다고 했습니다.
듣는 분들이 모두 그 뜨거운 열심에 감동을 받곤 했습니다.
그 뒤에는 감리교회에서 어떤 뜨거운 운동 같은 것이 있었던 기억이 없습니다.
그 대신 감독회장 선거를 하면 으레 당선무효, 선거무효 재판이 뒤따르곤 했던 것은 잘 기억납니다.
웨슬리 목사님의 말씀 가운데 “나는 감리교라는 조직이 없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감리교회가 뜨거운 사랑을 잃고 차디찬 조직으로만 남아있게 되지 않을까, 그것이 두렵다“는 것이 있습니다.
지금 한국 감리교회가 그렇게 되어 있지 않는가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번 주간에 거의 모든 지방 열리는 웨슬리 회심 기념집회들이 웨슬리 회심 기념주일이니까 하는 행사가 아니라 감리교회를 뜨겁게 만드는 불씨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음이 뜨거워진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우리 마음 속에서 죄의식, 정결하지 못한 것, 이런 것들이 사라지는 것을 말합니다.
웨슬리 목사님의 오늘 일기 후반부를 다시 봅니다.
“나는 내 마음이 이상스럽게 뜨거워짐을 느꼈다. 나는 내가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있다고 느꼈으며 구원을 위해 다만 그리스도만 믿고 있음과 그 위에 주께서 나의 죄를, 아니 나의 죄까지도, 다 거두어 가시고 나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건져 주셨음을 믿는 확신이 나에게 주어졌다.”
웨슬리 목사님은 그의 죄가 다 거두어짐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16절에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미지근하면 세균이 번식하기 좋습니다.
의심, 근심, 불신, 게으름 다 우리의 믿음을 병들게 하는 세균들입니다..
우리는 밥그릇이나 수저 같은 것을 뜨거운 물에 넣어 소독을 하는데 믿음도 뜨거운 물로 소독을 해야 합니다.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요한계시록 3장 16절의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라오디게아 교회를 꾸짖으신 말씀인데 우리는 이같은 책망을 들어서는 안 됩니다.
이사야서 6장에는 선지자 이사야가 소명을 받는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사야가 성전에 나가 하나님을 뵈었습니다.
그때 이사야는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사 6:5)라고 탄식했습니다.
그 다음에 일어난 일이 이사야서 6장 6절과 7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때에 그 스랍 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그것을 내
입술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제단에 있는 뜨겁게 핀 숯을 통해 사죄의 선언을 받고, 그 다음에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하는 음성을 듣게 되고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는 응답이 하게 됩니다.
이 말씀을 가지고 만들어진 찬송이 있지요.
495장입니다
익은 곡식 거둘 자가 없는 이때에 누가 가서 거둘까
내가 어찌 게을러서 앉아 있을까 어서 가자 빛으로
보내주소서 보내주소서
제단 숯불 내 입술에 대니 어찌 주저할까
주여 나를 보내주소서
제단 숯불이 입술에 대어지는 체험이 웨슬리 회심 기념주일에 여러분과 저 모두에게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마음이 뜨거워진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탈진 상태에서 벗어나 다시 일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탈진은 슬럼프, 부진, 힘이 다 빠진 것을 말하는데 탈진을 영어로는 ‘번 아웃’(burnout)이라고 합니다,
불이 꺼졌다는 뜻입니다.
사전에서 ‘burn out’이라는 말을 찾아보면 “다 타서 없어지다” “극도의 피로” “기력을 소진한 상태. 한가지 일에만 몰두하던 사람이 신체적. 정신적인 피로를 느끼며 무기력증과 자기혐오 직무 거부 등에 빠지는 증상” “탈진 증후군” 이렇게 풀이 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이 들어있는 시편 39편도 다윗이 번아웃 상태에서 지은 시입니다.
뜨거워지면 번아웃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이번 주간은 웨슬리 목사님이 마음이 뜨거워져서 번아웃 상태에서 벗어난 것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날입니다.
단순히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에서 벗어나 우리도 다시 뜨거워져 힘을 내야 합니다.
열왕기상 19장에는 엘리야가 번아웃에 빠졌던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엘리야가 바알의 선지자 사백 명, 아세라의 선지자 사백오십 명과 싸워 이겼습니다.
이세벨이 분노해서 엘리야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엘리야는 광야로 피해서 로뎀 나무 아래 앉았습니다.
그리고 죽기를 원했습니다.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왕상 19:4p)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탈진 상태에 빠져있는 엘리야를 그대로 두지 않으셨습니다.
찾아오셔서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물으시고 해야 할 일을 알려주셨습니다.
엘리사를 후계자로 세우라고 하셨습니다.
엘리야는 오직 나만 남았다고 했는데 아니라고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자 칠천 명이 있다고 하셨습니다.(왕상 19장)
여러분, 지금 탈진 상태, 번아웃 상태, 불이 꺼진 상태입니까?
웨슬리 목사님이 마음이 뜨거워진 날, 마음이 뜨거워져서 불이 붙기 바랍니다.
대통령 집무실이 용산으로 옮겨오면서 새 정부가 내건 구호가 있습니다.
“다시 대한민국, 새로운 국민의 나라”입니다.
감리교회가 뜨거워져서 “다시 감리교회”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각자의 신앙이 뜨거워져서 “다시 아무개”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대통령 집무실이 용산으로 옮겨오면서 용산교회는 대통령 집무실에서 가장 가까운 교회가 되었습니다.
이 사실이 저희 교회에 유익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방한을 했는데 한미정상회담이 용산에 있는 대통령 집무실에서 열렸고, 공식 만찬이 용산에 있는 국림중앙박물관에서 행해졌고, 바이든 대통령 숙소도 용산에 있는 하얏트 호텔이어서 용산이 각광을 많이 받았습니다.
어제 삼각지 지하철역 일대에는 경찰 버스 수십 대가 와 있었습니다.
전철을 타기 위해 그 옆을 지나면서 ‘아, 용산이 정말 한국의 중심이 되었구나!’ 하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생각과 함께 ‘아, 용산교회가 한국교회의 중심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우리들이 뜨거워질 때 그런 일도 가능할 줄로 믿습니다.
코로나로 인한 제약이 믾이 풀리면서 여러 가지가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관광 열기가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운동경기 관람 열기가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각종 모임 열기도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지금, 지방선거 열기도 뜨겁습니다..
교회가 먼저 뜨거워져야 합니다
그동안 제대로 모이지 못해 답답했던 마음, 이런 것들이 연료가 되어 뜨겁게 달아올라야 합니다.
‘교회 안 나오고 집에서 영상을 통해 예배 드릴 수 있으니까 편해서 좋더라’ 하시지 마세요.
예배는 교회 나오려고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드려진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아니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외모와 복장을 단정히 하는 순간부터 드려진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사도신경의 두 번째 부분,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를 외울 때 마다 마음이 뜨거워지시기 바랍니다..
그 예수님이 나를 위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생각할 때 뜨거워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예수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의 고통을 받으셨다는 것을 생각할 때 더 뜨거워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예수님이 지금도 나와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더욱 더 뜨거워지고 나아가서 든든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가 지난 시간에 말씀 드렸지요.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는 그리스도의 현존성을 가르쳐주는 뜻입니다.
찬송가 85장은 “구주를 생각만 해도 이렇게 좋거든” 이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우리는 “구주를 생각만 해도 이렇게 뜨거워지거든”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생각하며 마음이 뜨거워져서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그리스도만 믿고, 사죄의 확신을 새롭게 하는 여러분이 되고 제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우리들이 뜨거운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원하시는 주님,
우리들이 뜨겁지 못하고 뜨뜻미지근한 상태에 있음을 고백합니다.
주님 284년 전 이 주간에 웨슬리 목사님에게 주셨던 그 뜨거운 마음을 오늘 제게도 주옵소서.
저희 모두에게도 주옵소서.
모두가 뜨거운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서 힘있게 일어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