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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건물은 조선(朝鮮) 효종(孝宗) 때 대사헌(大司憲), 병조판서(兵曹判書), 이조판서(吏曹判書)를
지낸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 (1606∼1672) 선생이 낙향하여 자신의 호를 따서 지은
별당(別堂)으로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1607∼1689)이 쓴 현판이 걸려 있다.
조선시대 별당 건축의 한 표본으로 들 수 있으나, 구조는 비교적 간소하고 규모도 과히 크지 않다.
오른쪽 4칸이 대청이 되고 왼쪽 2칸이 온돌방인데, 전면에는 쪽마루를 깔았으며 온돌방의 벽 아래
부분에는 머름을 대었다. 주춧돌은 사각형의 귀가 높은 초석을 사용하였는데, 조선(朝鮮)
후기(後期)의 주택(住宅) 건물(建物)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양식(樣式)이다.
나 .동춘당선생 古宅
이 고택은 조선 효종때 경연관(經筵官), 병조판서(兵曹判書) 등을 지낸 동춘당 송준길(同春堂
宋浚吉 1606∼1672) 선생이 관직을 물러난 후 거처하던 곳으로 동춘당(보물 제 209호)의 뒷쪽에
있다.
동춘당 왼쪽에 있는 대문을 들어서면 일자(一字)형의 사랑채와 ㄷ자 모양의 안채가 있고 그
오른쪽에 가묘(家廟), 별묘(別廟)가 배치되어 있다.
안채는 건물의 중앙부에 3칸×2칸의 넓은 대청과 왼쪽에 2칸의 마루방, 한칸반의 안방, 한칸씩의
자녀방과 침모방, 그리고 부엌이 각각 연결되어 있고, 또한 대청의 오른쪽으로는 한칸씩의 건너방과
웃방, 부엌과 찬방, 그리고 행랑방이 붙어 전체적으로 ㄷ자형 평면을 이룬다.
사랑채는 앞면 6칸, 옆면 2칸의 일자형 건물로 서쪽 끝에 위치한 한칸은 중문(中門)으로 사용하고,
옆에는 작은사랑방이 있고 다시 한칸의 대청과 2칸의 큰사랑방, 그리고 부엌의 순서로 배치되어
있다. 부엌 위는 다락으로 꾸며졌고, 부엌 앞에는 한칸의 살림채를 달아 청지기가 거처하던 방을
두었다.
대청과 큰사랑방 앞에는 툇마루가 설치되었고, 작은사랑 앞에는 루마루처럼 높혀서 그 밑에 아궁이
를 두었다. 가묘(家廟)와 별묘(別廟)는 모두 앞면 3칸, 옆면 2칸으로 홑처마의 맞배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