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질투---
어느 날 저녁 식탁에서 짝이 말했다.
“ 신문을 보니, 내 동창 ooo 남편이 oo청 최고위직으로 승진했던데요.”
“ 내 생활과 관련 없고 , 또 전혀 알지도 못하는 사람 일이라 관심 없어.”
단순히 신문에 나온 기사 내용을 나에게 전달했을 뿐인데, 그리고 전혀 모르는 사람이니 질투의 대상이 될 이유도 없으련만 , 내 대답은 상당히 퉁명스러웠던 것 같다 .
이어서, 덤으로 , 이 지역 건설회사 사장이나, 건실한 새마을 금고 이사를 남편으로 맞이한 행운 덕에 상대적으로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는 다른 동창들 돈 씀씀이 소식도 곁들여졌는데---, 그것 역시 우리 집 소비 능력의 소박함을 돋 보여줄 뿐이라서, 서민 봉급쟁이 가장인 내가 듣기에 다소 거북했다.
‘ 듣는 바 없이 듣는 ’ 불교 수행이 잘된 사람은 이런 경우에도 전혀 흔들림이 없으련만---. 이미 내 자신의 고요함은 무너진 것 같았고 덩달아 변변치 못한 내 내면의 살림살이도 드러난 것 같았다. 그래서 그쯤에서 아예 억지로 내 귀를 닫아버렸다.
빨리 달리는 사슴의 능력과 , 높은 나무 가지의 가녀린 잎사귀까지 기어오르는 느림보 달팽이 능력은 서로 성질이 다르기 때문에 우열을 가리는 비교가 불가능하듯 , 나 역시 이 세상 속에서 ‘나’만이 가지고 있는 어떤 절대적인 존재 가치가 있다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 긍지가 거부당하는 생각이 들며 우울해지기에 , 바로 그 울적한 생각들을 끊으려 일찍 잠자리에 들어 버렸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동짓달이 되려면 아직도 3-4개월이나 더 남았으련만, 그 날은 이상하게 밤마저 길었다. 번뇌(煩惱)도 보리(菩提: 깨우침)이라더니 ! 그 때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 혼자 있을 때보다 , 누구인가 내 옆에 있을 때 외로움이란 더 깊어질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바로 그 옆에 있는 사람이 잠든 상태에 있고 , 나 혼자 깨어 있게 되면 , 내 의식은 더욱 맑고 뚜렷해진다는 것을---.
먼 과거란 각박한 현실로부터 훌쩍 벗어나 저 멀리 비껴 서있기에 , 때로는 아련하고 포근해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현실 생활이 힘들고 피곤할 땐 도피성이 될 수도 있고---. 아무튼 그 날엔 ,' 기억 '이라 불리는 항구의 부두를 따라 주-욱 늘어서서, ‘과거’라는 밤바다를 향해 깜박이는 ‘의식’의 가로등 불빛들이 서러움을 느끼게 할 정도로 맑고 맑았다 !
시퍼렇게 날이 섰던 의식도 새벽닭이 울고 난 이후엔, 뿌연 물안개가 피어 오른 늦가을 구이 호숫가 정경처럼 흐려지며 흔들리더니 잠이 들었나 보다. 그리고 옛날, 현실에서 마주하기 어려우니 꿈에서 만나기를 바랐던 인물이 그 새벽 녘 꿈길에 홀연히 나타났다.
어느 곳인가를 향해 함께 차를 타고 가다가 , 눈이 많이 덮인 가파른 고개 길에 이르렀을 때였다. 차바퀴가 제 자리에서 헛돌았다. 조수석에 있던 내가 내려 밀어 주자, 비로소 앞으로 나아가게 되었는데---- , 다시 멈추게 될까봐 두려워하는 그녀는 나를 남겨둔 채로 저 먼 고개 정상을 향해 멀어져 갔다. 한동안 숨을 할딱이며 뒤 따라가던 나는 그만 지쳐 서버렸다. 그리고 , 점점 멀어져 가는 차 뒷모습만 허탈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잠에서 깨었을 땐, 이른 새벽이었다. 자리에서 조용히 빠져나와 뜰로 나갔다.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기만 한 조금 전의 꿈 때문이었을까 ? 과거 속에 화석으로만 존재해온 다른 주변 사연들도 현실 세계 속으로 꾸역꾸역 기어 나왔다.
" 데려간다는 사람이 아직도 없으면 나에게 시집오는 게 어때 ?"
" 오 ! 상처받은 이 내 자존심 ! ‘ 오라는 사람이 있어도, 제발 그 손 뿌리치고 나한테 와 주오 !’ 라고 ‘She's gone’을 부를 때‘ Steel Heart ’ 처럼 몸부림치며, 매달려도 시원찮은 터에---,"
덧없이 그렇게 또 얼마간의 세월이 흐르더니 그 엷은 인연도 다해서 하나의 매듭으로 바뀌는 순간이 다가왔다. 그 때 , 듣는 이의 기분이 상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내가 표현한 작별 인사란 , ‘ 네 짝이 만약, 너를 헤아려보거나 남과 비교한다면 바로 나에게 와 버려 ! ’라는 시샘이 듬뿍 담긴 질투였던 것 같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출근길에 나설 때였다.
“ 아침 약 드셨지요 ? ”
“ 응 ! 그런데 --- 꼬박 꼬박 약 먹는 것이 지겹고 이제 다소 무의미하게 느껴지기도 해 . ”
“ 무슨 말 하는 거예요 ? 우리에겐 이 세상 그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소중한 존재인데---. 나머지 가족들은 어떻게 하라고---.“
“ 정말 가장 소중해 ? 현재 이 모습, 이대로 ? ”
“ 어떻게 그런 질문을 다 해요 ? ”
“ -------- . ”
“ 운전 조심하시고--- , 잘 다녀오세요. ”
전송하는 짝의 표정과 말 속엔 , 온몸을 부려서 의지해오는 그 절대적인 신뢰와 다사로움이 조금의 빈틈도 없이 예전과 마찬가지로 가득 스며있어 보였다 !
무의식 속에 언제나 동아리를 틀고 앉아있는 질투라는 놈은 잔재주가 많아 , ‘짐작’이라는 기회를 만나기만 하면 , 곧바로 거대한 번뇌 망상이란 도깨비로 변신할 수 있나보다. 그 도깨비는 사람들 넋을 빼앗아, 초죽음이 될 때까지 밤새도록 이리 저리 끌고 다니고----! -끝-
* 불교의 금강경에 나오는 ‘사다함(斯陀含)’이란, 눈(眼) ,귀(耳),코(鼻),혀(舌),피부(身),생각(意)에 의해 질질 끌려 다니며 고통 받지 아니하고 자유로워졌기에, 거룩한 흐름(聖流)에 들어간 사람이라고 하는데----.
먼저 질투라는 도깨비에게 더 이상 끌려 다니지 아니할 때에 그런‘ 고요함(定)’을 얻을 수 있으련만--- 기독교인이라서 일까 ? 아무래도 나에겐 그 경지가 아주 멀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