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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그림에 대한 설명에 앞서 1991년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를 간단히 소개해 드리면 88올림픽이 성공리에 개최되고 경제적으로 호황을 누리던 시기입니다. 우리 시도 숙원이었던 금강하구둑 공사가 마무리되고 국가공단의 조성이 한창이었습니다.
또한 30년만에 지방자치가 부활되고 4월 15일에는 시의회와 군의회가 구성되어 자치행정의 깃발을 높이 올렸습니다. (군산시 의회는 의장에 이덕산, 부의장에 오영철 의원이, 옥구군 의회는 의장에 강대권, 부의장에 이인효 의원이 선출됨) 또한 선거결과를 보면 신풍동에서 출마한 박풍성 의원은 군옥지역에서 가장 높은 74.9%의 득표율로 당선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4월 16일에는 이제 역사의 한 페이지로 사라진 전북연고의「쌍방울 레이더스」프로야구단이 1군 정규리그 첫 게임을 승리로 이끈 날이기도 합니다.
여름이 되기 전에는 전국적으로 붐을 일으켰던 「쇠뜨기」풀의 부작용이 발생함으로써 일순간에 가정에서 사라져 버렸고 8월에는 해변을 끼고 있는 도시답게 콜레라가 발생하여 전국적인 주목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10월에는 제72회 전국체전이 개최되었는데 군산에서는 은파유원지와 옥구저수지에서 조정과 요트경기가 열렸고 월명종합경기장과 이 해에 완공된 월명체육관은 보조경기장으로 활용되기도 했습니다.
11월에는 부안 변산에서 역사적인 새만금사업 기공식이 있었는데 벌써 10년의 세월이 흘렀고 당시의 발전을 위한 필수사업이라는 의식에서 이제는 생태계보호와 맞물려 개발여부 지속을 두고 논쟁이 벌어지게 된 것을 보면 세월의 무상함을 느낍니다.
<그림1 - 어업무선국 옥상에서 바라본 수시탑 전경>
이 그림은 어업무선국의 옥상에서 바라보고 그린 것입니다. 수시탑의 모습이 아주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고 푸른 하늘과 더불어 금강과 서천지역의 산하 모습이 원경으로 처리되어 있어 군산을 아는 사람은 금방 향수를 느낄만한 그림입니다. 오른쪽의 숲 안쪽으로는 지금은 바다조각공원이 자리잡고 있고 나뭇가지 사이로 언뜻 보이는 시가지는 지금도 그대로입니다.
박교수님께서는 그림을 그릴 때 우선 펜으로 스케치를 한 후에 채색을 하셨다고 합니다. 따라서 소개되는 그림은 전부 수채화입니다. 느낌이 부드럽고 색감이 고와 호감이 가고 고향을 그렸기 때문에 더욱 아름답게 보입니다.
수시탑 준공은 제가 쓴 글 『수시탑의 비밀』에서 밝힌 것처럼 시사 등에 기록되어 있는 1967년이 아니고 1968년 입니다. 또한 이 그림에서 수시탑의 배를 상징하는 부분의 고물부분에 검은색 돌에 파서 붙인 “수시탑”이라는 글씨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박교수님께서 그림을 그린 91년 7월 이후에 제작하여 부착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다시한번 강조하지만 수시탑은 우리시의 상징탑으로서 그 조형미가 아름답고 상징하는 바 그 뜻이 크므로 누구든 정밀하게 측정하여 재원을 확실하게 밝혀주기를 기대해 봅니다.
<그림2 - 월명공원에서 바라본 시가지와 금강상류>
멀리 금강하구둑이 보입니다. 1990년 11월 20일에 완공되었으니 약 8개월이 지난 뒤 그린 그림입니다. 원경으로 처리되어 하구둑이 거기에 있다는 정도만 표현이 되었습니다. 지금 그렸다면 구 한국합판을 관통하여 그림 오른쪽 상단의 구암동산 옆으로 시원하게 뚫린 연안도로가 표현이 되었을 것입니다.
제가 한창 사진을 찍을 때 시가지 전경을 잡는 포인트는 채만식 문학비가 있는 화단이 조성된 곳에서 남쪽으로 몇발짝 가면 예전에 소방서의 화재감시소가 있던 곳인데 아주 무난하게 시가지와 금강을 카메라의 파인더안에 한번에 잡아 넣을 수 있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이 그림을 스케치했던 것 같습니다. 가까이에는 빨간 지붕이 특별한 옛 제일국민학교 건물이 보이고 88한신맨션, 지난해 철거된 내항입구 철도변의 창고, 지금은 술집으로 변한 구 한일은행, 내항이 보이고 리버사이드 레스토랑이 들어있는 건물도 보입니다.
옛 시청건물도 보이는데 10여년이 흐른 지금 과장급이상 공무원중 지금도 근무하고 있는 분들을 살펴보니 이영일, 임갑수, 고석주 국장님과 구성대 보건소장님 그리고 김길자, 채길수 과장님 밖에는 없습니다. 옥구군은 그나마 과장급이상은 한분도 명감에서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세월이 사람을 기다려 주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림의 금강을 보면 박교수님께서 크게 인심을 써서 약간의 청색을 써 주신 것 같은데 백릉 채만식 선생님의 “탁류”를 생각하셨다면 청색보다는 황색계통을 사용했을 것입니다.
<그림3 - 장산도 쪽에서 바라본 외항과 지방산업단지>
이 그림을 그린 교수님의 말씀처럼 군산의 구 시가지는 활력이 없는데 외항과 공단은 활력이 넘치고 생동감이 있어 보입니다. 해안경비 부대가 주둔하고 있던 공단이 건설되기 전 조그만 섬이었던 장산도 쪽에서 바라본 모습 같습니다. 군산국가산업단지를 조성할 때 이 부대를 지나서 통과해야 했고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홍보하기 위한 커다란 도면과 설명문이 기재된 홍보판이 서 있었습니다. 섬에는 군인들을 위한 건물이 있었고 바다 쪽을 향해 기관총좌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호안을 축조하는 장면을 사진으로 찍기 위해 여러 차례 방문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외항은 내항의 토사퇴적으로 인한 항만기능 상실과 공단조성에 따른 화물의 운송을 더욱 편리하게 하기 위하여 건설되어 그 임무를 충실히 하고 있으나 금강하구둑의 완공후 내항을 비롯하여 외항에 들어오는 항로도 토사의 퇴적이 더욱 심해져 가고 있어 새로운 항만의 개발이 필요한 실정입니다.
화면의 가운데 모습은 군산지방산업단지의 모습입니다. 우리 군산 최초의 계획공단으로 지방비를 투입하여 조성하였는데 시가지의 공장들과 더불어 군산의 경제를 이끌어 가고 있는 생산의 현장입니다.
화면의 뒤쪽으로는 월명산맥의 완만한 능선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외항의 선박 관제탑 왼쪽으로 보이는 산은 점방산으로 해발 136m이며 옛날 봉수대가 있던 곳인데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고 오른쪽은 은적사 뒷산인 설림산입니다. 현재의 옥구읍과 옥서면 일부 그리고 미성동 일부가 간척되기 이전인 1923년 이전에는 은적사 앞까지 바닷물이 드나들었습니다.
외항선이 출항하고 있습니다. 뱃머리를 외해로 향하고 있는 이 배의 고물 쪽에서는 아마 깨끗한 새 태극기가 힘차게 펄럭였을 것입니다. 당시에 군산시에서는 외항선에 태극기 달아주기 운동을 특수시책으로 전개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림4 - 공원 기상대에서 바라본 해상도시와 금강하구>
월명공원을 올라가는 입구는 상당히 많습니다. 군산의료원 뒤쪽 월명테니스장 옆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가파른 길을 따라 올라가면 매점이 있고 해안쪽 약간 높은 곳에 군산기상대가 자리하고 있는데 이 그림은 여기에서 그린 것입니다.
기상대 아래쪽은 옛날 항만을 축조하고 산업도로를 뚫으면서 금강으로 뻗어있던 산을 잘라내 지금은 가파른 언덕으로 남아있으며 이 산의 끝자락에 해망정(海望亭)이 있었는데 이곳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용당야우(龍塘夜雨 - 해망정에서 바라보는 장항일대의 밤비 내리는 풍경이 좋음)라 했는데 군산8경 중의 하나입니다.
가운데 보이는 타원형의 길쭉한 부지는 해상도시 예정지입니다. 약 30만 여평이 매립되어 있어 거친 뱃사람들 보트로 건너가 말리는 사람도 없이 치고 패고 싸움하기 딱 좋은 곳입니다. 백중 사리만 아니면 수면보다 높아 항상 볼 수 있는데 언제쯤 이곳에 건물이 들어서고 활기찬 모습을 보일지 모르겠습니다.
이곳에서 낙조를 감상하고 있다고 상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구 장항제련소의 높다란 굴뚝을 사이에 두고 점점이 떠있는 멀고 가까운 섬들과 서해의 망망한 바다로 붉은 색 뚝뚝 흩뿌리며 지는 태양을, 이 경치를 우리 조상들은 장암낙조(長岩落照 - 월명공원에서 바라다 보이는 구 장항제련소 굴뚝이 위치한 산 언저리의 해질 무렵 경치가 장관)라 했습니다.
<그림5 - 구암동산에서 바라본 금강의 하구>
5점의 그림을 실었습니다만 모두 금강을 주 장면이나 또는 배경으로 그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군산은 항구도시이며 국내 4대강중의 하나인 금강의 하류에 자리잡은 가장 큰 도시입니다. 군산은 금강과 함께 발전해 왔고 애환을 함께 해 왔습니다. 100여 년 전에는 문호를 개방하여 도시로서의 첫발을 힘차게 내디뎠고 지금은 개항 2세기를 맞아 새로운 21세기를 대비하고 있습니다.
이 장면은 구암동산에서 바라본 것입니다. 구 한국합판의 원목하치장이 하단 쪽에 보이고 작업중인 크레인이 몇 대 보이지만 이제는 역사의 한 편으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우리 군산과 영화를 같이 했던 한국합판그룹(세풍그룹)도 금강의 모래사구는 그림에서 처럼 지금도 그 자리에 있건만 이제는 명맥도 유지하지 못하고 산산히 조각나고 사라져 향토기업의 뿌리가 완전히 뽑혀 버렸음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그림이 아니면 군산에 오래 산 사람도 볼 수 없었던 모습으로 화력발전소에서 사용하던 전용 돌핀시설이 특이하게 보이고 멀리 서해바다와 마주 닿은 곳에서는 아름다운 스카이라인이 만들어집니다.
첫댓글 추억을 생생하게 떠올리는 소식 잘 읽었는데여 그림은 보이질않아요 벌거벗은 임금님 옷 처럼 착한 사람 에게만 보이는건지..보는 법 부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