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들이 말하지 않은 진실, 그들이 말한 거짓(05)
팩션형 사모펀드 투쟁기
6조8천억은 어디로 증발했나
○ 두 PB팀장의 이야기(1), 김하늘 PB팀장의 변명과 하소연
나는 기업은행 ○○ WM센터 소속 김하늘 PB팀장이다. 센터 명칭은 밝히지 못하겠다. 요즘은 은행에 출근하는 일이 심리적으로 너무 힘들다. 난 내 행동의 결과가 궁극적으로 옳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엄청난 스트레스를 견뎌내고 있다. 왜 내가 이런 결과를 감당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일에 대한 보람도 없다. 얼마 전부터 아침에 일어나면 가슴이 답답하고 무언가 쫓기는 기분이고 숨이 막힌다. 밤에 잠도 안 오고 새벽에 혼자 깨어 답답하고 억울한 마음에 소리를 막질렀지만, 진정이 안 된다. 놀란 아이들과 남편이 불안해한다. 동생이 “언니 우울증 같아, 정신과 클리닉에 가보자” 면서 억지로 끌려가서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말로만 듣던 우울증이 이런 거였구나 싶다. “심각하네요. 약을 처방해드릴 테니 정기적으로 복용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큰일 납니다.” 의사의 경고였다.
나는 은행에 입사한 지 10년 차 중견 사원이다. 센터에는 내 아래로 4명의 후배가 있다. 내 남편은 하나은행에서 나와 같은 업무에 종사하고 있다. 남편은 대학 시절 ‘금융재테크 동아리’ 선배였다. 나는 중학교 3학년, 1학년 아들과 딸이 있다. 요즘은 아이들이 유일한 위로가 되고 있다.
입사 8년 차 은행 창구에서 고객 응대하고, 매일 입·출금 수납업무 등 반복되는 일상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김성진 지점장이 프라이빗 뱅커((Private banker, PB)에 지원해보라는 권유를 했다. 마침 FP(자산 관리사) 자격을 보유하고 있어 지원자격이 된단다. PB 자격을 얻으려면 FP(자산 관리사), AFPK (한국 재무설계사), CFP(국제공인재무설계사) 자격이 있는 직원만 가능하다. 1. 2차 걸친 시험에 합격을 해야 한다. PB (Private bank) 제도는 1995년 남편이 근무하는 하나은행이 국내 최초로 도입한 이후 전 금융사로 퍼져나간 비즈니스 모델이다.
PB가 하는 일은 금융회사가 고액 자산을 보유한 고객들이나 법인(중소기업 등)의 자산 관리, 투자 상담, 세무, 법률 지원 등을 종합적으로 관리해주는 서비스이다. 너무 멋지다고 생각했다. 얼마나 근사한가 고객들과 밀착해서 고객들의 성장과 함께할 수 있으니 말이다. PB가 하는 일은 금융기관 영업부서의 재테크 팀이나 PB팀에서 금융상품의 투자전략 및 관리방안, 다양한 절세방법 상담 등 다양했다. 그래서 당장 지원하고 시간을 쪼개서 학습하고, 은행에서 지원하는 교육프로그램을 잘 이수한 후 PB 자격을 획득하였다. 처음 WM센터에서 일하면서 보람도 있었다. 내가 선택한 상품에 투자한 고객들이 수익률이 상승하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뿌듯했다. 자산 관리 전문가로서 이대로만 잘 나간다면 머지않아 WM센터장님처럼 멋진 승진을 기약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내가 판 상품에 문제가 생겼다. 디스커버리 글로벌채권펀드와 부동산담보부채권펀드에서 문제가 터진 후 라임펀드에서 피해자들이 발생했다. 이 펀드들은 사모펀드인데, 라임펀드는 전액 가까이 손실이 났고, 글로벌채권펀드는 미국에서 환매중단이 되어 고객의 투자금 중 80% 가까이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단다. 엊그제 불안한 얼굴로 은행에 찾아온 김명남 어머니께서 내 손을 잡고 “김 팀장 어떻게 니가 이럴 수 있냐? 기업은행하구 김 팀장을 믿었는데, 이렇게 배신을 할 수 있단 말이냐” 너무 흥분하셔서 진정시켜드릴 수가 없었다. 솔직히 김명남 어머니께 정말 미안하다. 평소 따듯한 분이고, 지난겨울 직접 수확해서 삶은 고구마를 함께 나눠 먹으면서 더욱 친해진 뒤로, 가끔 가족 얘기며 아이들 키우는 고충을 위로해주신 고마운 분이었는데, 정말 미안해서 고개를 못 들겠다.
지난주에는 태명의 대표이사께서 “김 팀장 이거 큰일 났구먼, 자네. 우리 회사 잘 알잖아. 요즘 자금 부족으로 어렵게 버티고 있어, 그거 다음 달 기계 구입하고, 원자재 결제 자금이야 그거 없으면, 우리 회사는 심각해진다구, 자네가 어떻게 이럴 수 있나?”솔직히 펀드가 사모펀드라는 사실조차 알려드리지 않았다. 판매에 급급해서, 설명서와 교육받은 대로 원금 3.2%에 만기 6개월, ‘미국이 망하지 않는 한 절대 원금 손실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손실이 날 수 있다고 하면 불안해하실 것 같았고, 센터 실적 때문이기도 했다. 똑같은 상품이 이미 두 차례 정상 환매가 되어 기계적으로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게 문제였다.
디스커버리펀드는 우리 WM센터에서 팔았던 수많은 상품 중 하나였다. 매월 성과지표에 맞춰, 본점과 센터장이 찍어 주는 상품을 집중적으로 팔았다. 그런데 디스커버리펀드는 처음부터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기업은행이 무엇 때문에 이런 신설 운용사의 상품을 열심히 팔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2017. 4 당시 디스커버리 운용사는 설립한 지 6개월밖에 안 된 신설 운용사였다. 기업은행처럼 공기업이 이런 새내기 투자운용사의 상품을 엄청나게 판매하는 것이 이해가 안 되었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디스커버리 자산운용의 장하원 대표는 문재인 정부에서 초대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장하성의 친동생이었다. 현재 주중대사인데 그도 이 펀드에 가입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뭔가 냄새가 나고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나하고 상관없는 일이니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2017. 9월 상품을 재설계해서 가져온 적이 있다. 그게 지금 문제가 된 글로벌채권펀드이다. 투자구조가 석연찮았다. 디스커버리펀드 고객들이 투자한 돈은 미국의 우량 소상공인들에게 p2p 방식으로 대출해준다고 했다. 그리고 나서 미국 소상공인들에게 대출해준 채권을 DLG라는 특수목적법인(SPV)이 매입하는 방식이었다. 디스커버리펀드는 다시 DLG가 매입한 채권을 담보로 발행한 또 다른 구조화 채권에 투자하는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펀드였다. 문제가 터진 후 자세히 알아보니, 투자수익을 고객들에게 분배해주려면, 5단계의 투자과정을 안전하게 통과해야 한다. 그중 한곳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투자금 손실이 발생할 수 있는 위험한 상품이다.
더욱 황당했던 것은 조세회피처 케이만 군도에 설립한 DLG(특수목적법인)는 한마디로 페이퍼 컴퍼니에 불과하다. 통상 채권을 발행하면 발행자의 신용등급을 살펴봐야 한다. 그리고 해당 대출채권의 채무자들도 정말로 우량한 사람들인지 그들의 채무상환능력을 확인해야 한다. 미국은 FICO 점수로 650점 이상이어야 우량신용등급으로 본다. 그런데 기업은행과 디스커버리 자산운용사는 채권의 기초상식을 완전히 무시했다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2017. 4에 첫 판매를 시작한 상품은 대신증권 DLS와 연계된 사모펀드라서 안전하다고 믿었다. 대신증권은 투자은행(IB)으로 전문금융사이고, 당시 신용등급이 AA-로 우수한 회사였다. 나는 대신증권의 DLS(파생결합증권)와 연계되었으니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믿었다.
그런데 2017. 7월 대신증권이 연계되어 투자했던, 미국의 DLIF 펀드의 기초자산 중 하나가 부실이 발행해서 갑자기 판매가 중단되었다. 기업은행이 판매한 사모펀드에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나중에 미국의 자산운용사가 보낸 DLIF 투자자 레터(letter)에, “기초자산 QS에서 일부 손상 징후를 발견했고, 현금 흐름 조사를 수행했더니 그 기초자산의 적정가격을 평가할 수 없었다”고한다. 그래서 그 기초자산을 “별도로 사이드포켓(Side Pocket)으로 설정했다”라는 내용이었다. 한마디로 정상이 아니라서, 별도 특별관리를 한다는 내용이고, 위험한 상태라는 것이다.
디스커버리 자산운용사의 미국 쪽 파트너인 엘리엇 강이 2017. 8 기업은행 본점 김홍경 팀장에게 찾아와 대책을 논의했다고 들었다. 그때 김홍경은 ‘팔 수 있는 상품을 가져오라’라고 했단다. 그렇다면 2017. 9 새로 가져온 상품은 본점에서 더 철저하게 잘 살폈어야 했다. 내 생각에 본점의 투자심사 과정에서 총체적으로 잘못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리스크 심사에 구멍이 난 것이다.
통상 신상품판매가 결정되면 자산운용사에서 제공한 투자제안서에 대해 컨퍼런스 콜을 진행한다. 디스커버리펀드도 그랬다. 디스커버리 자산운용사 직원들이 직접 상품교육을 담당했다. 그들은 늘 뭔가를 숨기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전국의 PB팀장들끼리 만든 단체 카카오톡에서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PB팀장들과 만든 단톡방에서 서로 정보를 교류해왔다. 모두 나와 같이 본사에서 시키는 대로 판매를 했을 뿐이라면서, 답답하다고 한다. 지난 4월 초에 기업은행 본점 앞에서 피해고객님들이 집회시위를 했다는데, 요즘 다른 센터 PB팀장들도 피해고객들에게 시달려서 미치겠다고 한다. 지방에서는‘장하성 동생이 파는 펀드’라서 안전하다고 노골적으로 판매한 모양이다. 요즘 하루하루가 힘겹다. 오늘도 피해고객 중 한 분이, “남편 모르게 가입해서, 나 이거 밝혀지면 큰일 나 김 팀장 왜 처음에 말한 것하고 다른 거지? 빨리 이걸 해결해야 해, 이거 남편이 알면 칼이라도 들고 쫓아올 사람이야 우리 남편 성질 알지?”센터장님과 면담을 했다. 피해고객에게 시달려서 미치겠다고, 다른 지점이나 센터로 옮겨달라고 했다. 센터장은 “조금만 더 참아봐, 행장님이 새로 오셨으니, 조만간 인사발령이 새로 날 거야, 그때 가서 신청해줄게”하면서 센터장도 애로사항을 털어놓는다. 나는 기업은행 본점에서 뭔가 석연찮은 일이 벌어졌고, 디스커버리 자산운용에 속았다고 생각한다.
기업은행에서 판매한 디스커버리펀드 2019. 2. 18 판매를 중단하였고, 4. 25 펀드의 투자금을 환매해주지 않아 피해자들이 불안해하고 있었다. 그러다 작년 9월부터 라임펀드 환매중단 사태가 터지고 사모펀드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았다. 지난달 본점에서 ‘미국 자산운용사가 DLIF 펀드에서 60%~80% 이상 손실이 예상된다.’라는 안내문을 고객들에게 발송한 후 전국의 WM센터에. 피해자들이 항의하거나 민원이 끊이질 않고 있다.
요즘 사모펀드 문제로 다른 은행도 시끄럽다. 작년에 애들 아빠도 하나은행하고 우리은행에서 판매한 DLF 파생결합 펀드에서 문제가 생겨 한동안 은행에서 피해자 문제로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남편은 원형탈모가 오고, 한동안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다. 어느 날 술을 잔뜩 취해서, “개새끼들이 내가 문제 있다고 얘기했는데, ‘이모작 상품’이라면서 자꾸 독촉해서 팔았어, 정말 후회가 된다. 앞으로도 터질 게 너무 많아!”하면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나은행은 함영주 행장 시절 ‘전 직원의 PB화’를 외치면서 사모펀드 판매에 혈안이었다.
★★★
○ 은행을 믿었지만, 김성태 전무와의 간담회
4.28 이제 봄기운이 완연하다. 신장식 변호사와 약속이 5월로 미뤄지고, 기업은행 본점 앞 두 번째 집회가 열리는 날이다. 을지로2가 기업은행 본점 부근 사거리를 지나는 차량의 행렬은 길게 늘어지고, 점심 식사를 위해 건물을 나서는 직원들의 숫자가 많아진다. 관광버스에서 일군의 사람들이 내리고, 광장에서 피켓을 목에 걸고 ‘깜깜한 투자, 예고된 불행’‘틀린 것은 인정하고 바꾸면 됩니다’현수막을 들고 그 뒤에 열을 맞춰 선다.
김창희 위원장, 김학서 동지 그리고 나는 어떻게 집회를 진행하는지 살펴보기로 하고, 현장에서 말없이 집회를 지켜보았다. 코로나 19 거리 두기에 맞춰 마스크를 쓴 피해고객들이 4열 횡대로 본점 앞 광장에 늘어서고, 조순익 부위원장이 마이크를 들고 맨 앞에서 준비해온 구호를 외친다. 사람들이 피켓에 줄을 매달아 목에 걸친 모습이 이색적이다.
“만기에 지급되지 않은 이유를 알려달라고 했더니, 판매직원은 펀드가 깨진 것이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고 기다려 달라고 했다. 판매했던 오영국 본부장도 11월에 자산은 깨지지 않았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여러분 맞습니까?”집회 참가자들이 “네”라고 답한다.
“그런데 1년이 넘도록 아직 지급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냐” 참가자들이 세 번 “무엇이냐”외친다.
“기업은행에 말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게 무슨 짓인가, 생각하면 미쳐버리겠다. 기업은행은 우리가 어떻게 하기를 원하는가? 우리가 죽기를 원하는가? 그러나 우리가 먼저 죽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삶을, 인생을, 미래를 훼손하고 사기꾼에게 불량상품을 사기당하고 불완전 판매하게 한 책임자를 징계하라”
참가자들이 외침이 더 커진다. “징계하라, 징계하라, 징계하라”피해자들 가슴 속에서 타오르는 불길을 내뿜는 듯하다. 힘차게 하늘로 주먹을 치켜들고 누군가에게 겁박할 듯하다. 이런 일에 처음 나서서 데모를 할 사람들처럼 보이지 않는다. 아직도 어색한 듯 얌전하고 어정쩡한 모습으로 주위를 살피는 여자분들이 보인다. 남대문 경찰서 정보관과 기업은행 경비과 직원들이 집회 장면을 유심히 살핀다.
“투자상품 선택은 기업은행이 했다. 국민이 국책은행을 믿지 못하고 사기 맞을 것을 대비하여 법 공부하고 운용사 부실까지 따져가며 돈을 맡겨야 하는 거냐? 당장 원금과 이자를 지급하라”
“지급하라, 지급하라, 지급하라”
기자들이 집회 모습을 스케치하고,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며 취재에 열중이다. 두 번째 집회라고 하는데, 질서 정연하게 진행되지만 뭔가 부족해 보인다. 집회 프로그램이 너무 단순하다고 생각했다. 집회란 상대에게는 위력을 가하고, 집회 추진세력의 투쟁 의지를 통해 요구를 전달하고, 여론을 만들어나가는 목적이 중요하다. 그렇지만 참가자들이 지루하지 말아야 한다. 줄곧 구호만 외치면 선창자도 지치고 참가자들도 힘들 수밖에 없다.
“이러면 집회가 지루해지고, 힘만 드는데”
“그러게요. 보완해야겠는데요” 김학서 동지가 옆에서 같은 생각을 나눈다.
그때, 한쪽에서 경찰관 두 명이 소음 측정기를 들고 와서 집회대열 옆에서 소음을 측정하더니, 뭔가 쪽지를 전달하려고 한다.
순간적으로 쫓아가서, “그거 뭡니까”
“집회 소음이 커서, 계고장을….”“아니 평화롭게 집회하고 있는데 갑자기 경고장을 줘버리면, 겁주는 거 아닙니까”
집시법에 도심가 집회 소음은 75데시벨 (db)을 넘지 못하게 되어있다. 을지로 사거리는 평소에도 65db 내외의 소음이 발생하는 곳이다. 경찰의 집회 소음 측정은 규정 준수를 하도록 지도하려는 목적이긴 하지만, 난생처음 집회를 하는 분들에게, 경찰의 경고장은 참가자들을 위축시킬 수 있고, 경찰의 행위 자체가 은행 쪽에게 유리하게 해석하게 만든다. 후일 알게 되었지만, 기업은행은 집중적으로 직원들을 시켜서 민원인 전화인 척 가장해서 신고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집회 자체도 자기들 입맛대로 통제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도 소음규정은 지켜야 하니까, 저분에게 전달해드려야 합니다.”
맨 앞에서 선창하고 있던 조순익 부위원장이 집회 주최자로 신고가 되어 있었나 보다.
“아니, 집회 사회를 보는 분께 경고장을 주면 집회하지 말라는 거 아닙니까.” 순간적으로 격앙된 듯한 목소리를 높였다. 소리가 너무 컸던지, 광장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이쪽으로 쏠린다….
“이건 저의 직무입니다. 전 이걸 전달해서 소음규정 준수하도록 해야 합니다.”
“아니 그건 그렇다 쳐도 소음이 높으면 얼마나 높다고, 여기 처음 집회하시는 분들인데 그렇게 몇 분지나지 않고, 바로 경고장을 보내면 경찰이 겁주는 거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언성을 더 높이자, 경찰관이 “이거 이러시면 저희 업무 방해하는 겁니다. 저리 비키셔요”
“뭐라고, 왜 명령하는 건데, 당신이 뭔데 이래라 저래라야”일부러 신경을 건드려 깐깐하게 보여야 한다. 언제 다시 만날 수도 있으니 만만하게 보여서는 안 된다.
“경고합니다. 저희 업무 방해하지 마셔요”
“내가 언제 방해했어, 내 입으로 떠드는 데 방해? 당신이야 말로 경찰이라고 지금 집회 방해하는 거 아냐, 다른 사람에게 전달해도 될 것을 왜 굳이 집회사회자에게 주려고 하냐고? 그게 결국 집회 중지용 경고장이 되는 거잖아”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업무방해 하지 마셔요” 그때 김창희 위원장과 김학서가 다가온다.
“무슨 일입니까?” 김창희 위원장은 상황파악을 다 해 놓았지만, 일부러 다가와서 물어본다. 시간 벌기와 진정용이다.
“아니, 여기 계신 분들이 집회를 자주하는 분들이 아니고, 오늘이 두 번째입니다. 경찰이 자꾸 주변에서 서성이면 집회 참가자들이 위축될 게 뻔하지요. 좀 유연하게 대응합시다.”
“그래서 저희도 멀리서 측정하고 소음 민원신고가 들어와서, 경고장을 드리려는 겁니다.”
“아니 그걸 꼭~ 집회 분위기가 한창 올라가는데 찬물을 끼얹어야 하냐구요. 결국 집회사회자와 여기 계신 분들 기죽이는 거잖아, 다른 집회에서는 이렇게 안 하면서 이 사람들 길들이려는 거 아냐?”소리를 냅다 지르자. 집회를 지휘하던 조순익 부위원장이 마이크로 “왜 그러셔요? 이리 와보셔요” 하면서 경찰관과 눈이 마주친다.
그제야 소음 측정 경찰관이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간다. 그리고 경고장을 전달한다. 그렇게 잠시의 소동이 진정되고, 앰프 소리를 줄이고, 집회가 이어진다. 집회현장에서 소음 측정과 경고장의 제시 과정에서 이런 작은 소동은 늘 있기 마련이지만, 때로는 집회 주최자들은 위축되지 않기 위해 기(氣) 싸움도 하나의 필요한 수단이다.
1시간 후 집회가 마무리되고, 집행부 임원들은 김성태 수석부행장 겸 전무이사와 간담회를 위해 자리를 이동한다. 기업은행은 지난 1월에 새로 취임한 윤종원 행장 체제로 바뀐 후, 2월에 대규모 손실사태 확인, 피해자들의 단체 행동에 대응하고 사태 해결을 목적으로 TF 조직을 만들었다. 라임펀드와 디스커버리펀드 별도의 팀으로 대응해오던 것을 김성태 전무를 단장으로‘투자상품 전행 대응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한 것이다. 피해자들의 집단 대응이 언론에 관심을 받고, 심각성이 더해가자 전국의 WM센터를 돌면서 피해자 설명회도 개최하고 있었다.
그날 김성태 전무이사 겸 TF 단장과의 간담회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기업은행 임원 중 행장 다음의 중요 임원과 만남이라는 것과 은행 측에 피해자들의 요구사항을 전달하고, 임원진의 생각을 파악해 볼 수 있는 자리였다. 대책위 임원들은 간담회를 마치고 나서 상당히 고무되어 문제가 잘 해결될 것처럼 기대를 하고 나왔다. 김성태 전무의 노회한 대응과 어휘 구사가 피해자들을 잠시 사로잡고 장밋빛 기대를 하게 한 것이다.
고위 공무원과 정치인들의 얘기는 항상 잘 듣고 해석해야 한다. 그날 김성태 전무의 어휘 구사는 모호하고 명확하지 않다. 한다는 건지 안 한다는 건지, 듣는 사람이 듣고 싶은 부분에만 관심이 꽂혀 있으면 긍정의 신호로 또는 부정의 신호로 해석할 수 있게 모호한 여지를 준다. 김성태 전무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금 제기하신 이 상품 자체가 실질적으로 문제점을 ‘체크할 수 없는 상황에서 팔리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다’라는 관점에서 검토를 하겠습니다. 저희가 검토를 하면서 법적 문제가 있을 수 있어요.....결론적으로 (여러분들이) 말씀하시는 것은 원금 다 해소를 해야 된다는 그 원칙을 지금 갖고 계신 것 같고, ..... 불완전 판매나 이런 쪽으로 가면 보상을 많이 받을 수 있는 한계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그런 정도로 해서는 우리가 상당히 문제가 있다.”김성태 전무가 그날 했던 표현이다.
‘체크할 수 없는 상황에서 팔리는 것’이 아니라 위험성을 충분히 체크하고 판매했어야 했다고 말해야 할 것을 책임의 소재를 상황의 탓으로 돌리는 묘한 표현이다. ‘원금 다 해소를 해야 된다’는 아무 의미 없는 표현이다. ‘불완전 판매나 이런 쪽으로 가면 보상을 많이 받을 수 있는 한계’라는 것은 사기판매가 아니라 불완전 판매를 주장하면 배상비율이 낮아질 수 있다는 것을 비교적 솔직히 얘기한 것이지만 그 ‘한계’라는 표현이 누구 입장에서 한계로 해석할 것인지의 문제가 남는다.
“불완전 판매나 이런 쪽으로 가면 보상을 많이 받을 수 있는 한계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상당히 문제가 있다. 그래서 그런 모든 부분들을 감안했을 때 지금 고객분들께서는 ‘지금 적시하신 것처럼 이렇게 도저히 할 수 없는 이런 구조의 상품을 파는 자체가 잘못됐다’라는 관점에서 검토를 하자 이렇게 제안을 한 거잖아요.”
“네 맞습니다.”조순익 부위원장이 응답을 한다.
“그래서 그 부분을 제가 검토를 하겠습니다.”검토를 하겠다는 것은 어느 부분을 검토하겠다는 것인지 고객의 주장을 검토하겠다는 것인지, 제안한 것을 수용할지 검토하겠다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정치인들이나 공무원들이 검토하겠다는 뜻은 하지 않겠다는 의미를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수법이다.
따라서 검토만 하겠다는 것인지, 검토 후 어떤 결정을 하겠다는 것인지 분명한 의지의 표현이 아니다. 이런 어법에 상대한 경험이 있다면, 언제까지 어떤 내용을 검토할 것인지, 검토 후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지, 검토 결과를 어떻게 공개해 줄 것인지 따져서 꼬치꼬치 답변을 듣지 못한다면 불리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수사적, 말장난인 경우가 다반사이다.
“대책위 임원분들이 아직 나이브하신거 같아요”그날 상황을 듣고서 내린 김학서의 판단이다.
그날 간담회의 작은 성과라면, 김성태 전무가‘주요 쟁점 증거 자료’를 제출해주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주었고, 대책위는 산발적으로 개최하던 설명회를 전체 피해자 설명회로 바꿀 것, 피해원금+이자까지 배상하라는 요구사항을 전달했다는 점이다.
모든 투자는 불확실성과의 싸움이다. 정보의 비대칭성이 엄존하는 금융 환경에서 투자 결정은 늘 어렵다. 정상적인 시장에서 투자 실패의 책임은 대개 투자자들의 몫이다. 그러나 개인이 주도하지 못하는 변수들 때문에 투자 실패가 발생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예를 들어, 투자자에게 알려주지 않은 치명적인 비밀이 있었고, 금융 제도의 실패, 규제 감독기관의 방기와 보이지 않는 대형 금융사들의 검은 배경이 시너지 효과를 내었고, 그들의 잘못과 의도적인 묵인이 일으킨 것이라면 투자자 자기 책임으로 모든 사태 원인을 종결짓는 것은 부당하다.
사모펀드 피해자들이 갖는 기본적인 요구는 피해를 본 원금의 반환이다. 하지만 심리적 근간에 깔린 욕구는 상처받은 자존감의 회복이다. 칼 폴라니는 ‘인간은 물질적 재화의 소유라는 개인적 이해를 지켜내기 위해 행동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행동하여 지키려는 것은 그의 사회적 지위, 사회적 권리, 사회적 자산이다. 인간이 물질적 재화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오로지 이러한 목적들에 도움이 되는 만큼으로 한정된다.’라고 했다. 고객들이 피해를 본 것은 단순한 금전적 재화뿐 아니라 재화를 획득하는 과정에서 흘린 땀과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다는 점이다. 그들은 상처받은 자존감과 사회적 지위도 올바르게 회복하고 싶은 것이다.
★★★
○ 두 PB팀장의 이야기(2), 박혜정 PB의 변명과 무관심
난 박혜정 기업은행 ○○지점의 부지점장이다. 얼마 전 진급했다. 그동안 이 자리까지 오느라 고생한 것을 이번 진급으로 다 보상받은 기분이다. 다만 한 두 가지 걸리는게 있지만, 그건 전적으로 나의 책임이 아니니까, 사실 신경 쓸 필요도 없다. 다음 주에 IBK투자증권 박범희 부장과 골프 라운딩 약속이 있다. 그 친구 무뚝뚝해도 의리가 있다. 함께 WM센터에 잠시 근무한 인연으로 ‘누님! 누님!’ 하며 잘 따른다..
잠시 골프 라운딩 생각을 하면서 혼자 픽 웃음을 짓는데, 휴대전화에서 톡이 울린다. 최경희씨다. 의정부지점 있을 때 디스커버리펀드를 가입시킨 고객, 젊은 엄마다.
"박 팀장님 어쩜 그럴 수 있어요. 제가 왜 IBK투자증권에 가입된 거죠? 원금 손실 났다고 연락받고 가입 당시 서류를 받아보니 투자증권에 가입되었네요. 어떻게 된 거죠?"
다 지나간 일 인제 와서 뭘 어쩌겠다고 난리람, 그때 분명히 박범희가 명함도 주고 계약설명도 해주었는데,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서, 왜 인제 와서 나더러 어떻게 하라고~ 톡을 씹어 버렸다.
잠시 후 톡이 부른다. 아참 이 양반 질기네, "지점 떠나셨다고 답도 안 해주시고 전화도 안 받으시네요. 정말 너무하신 거 아니에요. 전 하루하루 지옥같이 보내고 있는데, 왜 답이 없나요?"
어지간히 하시지 젊은 여자가 참~ 사실 좀 미안하기는 하지만, 나보고 어떡하라고, 일단 서류에 친권자 싸인 다 했겠다. 자기가 다 동의해서 도장까지 찍어 주고 서류 완벽히 꾸몄으면 제대로 확인도 안 한 고객이 잘못이지 왜 나한테 지랄이람~ 투자자 자기책임이란 것도 모르니 원.
최경희의 계약은 2018. 11 경 WM센터 박범희가 부탁했었다. "누님 잘 지내시죠? 저 이번 디스커버리 펀드 기업은행꺼는 다 소진했다는데 증권꺼가 아직 좀 남았어요. 누님 고객 중 저희한테 센터링 좀 해 주시죠"
"난 이제 사모펀드는 취급하지 않아서 잘 모르는데 ~”
"아, 참 우리 누님이 왜 그러실까, 왕년에 박혜정 팀장님께서 말이죠. 그러지 말고 동생 함 살려주셔요. 다음 달 라운딩 가서 한턱낼게요”
한턱낸다는 말에 귀가 열린다. 전산을 뒤져 봤다. 어? 최경희 고객 자녀들 중금채 채권이 이번 달 만기네? 잘 됐다. 박범희에게 전화를 돌린다.
"다음 주에 지점으로 와라. 딱 너한테 맞는 고객을 찾았다. 젊은 엄만데, 아이들 이름으로 각각 1억씩 가입시킬 서류 준비해서 와, 친권자가 서명할 거야, 인적사항 알려줄 게 화요일 점심 어때?”
"넵 누님 아니 존경하는 팀장님 하명에 따르겠습니다”
다시 전화기를 돌린다. "네 최경희입니다”
"네 의정부지점 박혜정입니다. 주찬이 주희 잘지내죠”주찬이 주희는 초등학생들이다.
"네~잘 지내셨어요. 덕분에요. 팀장님도요”
안부 전화이후
“저기 이번주에 주찬이 주희 앞으로 가입한거 만기되는거 아시죠?”
“네 그렇지 않아도 찾아가려고 했어요”
“이번에 아주 좋은 상품이 나왔어요. 내가 최경희 고객님을 위해 따로 키핑해놓은 상품인데...”
“어머 그러셔요, 감사해요. 그럼 언제 갈까요?”
“다음 주 화요일 점심 식사 후 그러니까 오후 1시 30분쯤 오셔요”
그렇게 박범희 부장을 소개해주고 지점에서 계약서 작성하고 투자하게 된 거다. 설명해 주고 서류 완벽하게 작성했으면 계약서 꼼꼼히 읽어보고 서명해야지, 제대로 살펴보지 않은 고객이 잘못 아닌가? 대학까지 나온 여자가..... 투자자 자기책임은 그래서 있는 거야, 노조는 뭐하고 있나 모르겠네, 피해자들 민원 전화 때문에 전국의 PB들이 고통받고 있다는데 노조가 나서서 좀 막아줘야 하는 것 아닌가?
최경희 고객은 어떻게 가입했길래 박혜정은 이렇게도 무심하고, 뻔뻔할 수 있었을까.
다음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