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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 르도르즈 신부님,반포성당 성서백주간 방문 말씀
(한국방문 1996년 9월 13일)
여러분께서 이렇게 환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백주간이 본당 차원에서 활성화되고 있고, 반포 성당에서는 30여 개나 되는 그룹이 모범적으로 하느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것을 보니 정말 놀랍고 반갑고 무척이나 감격스럽습니다. 또한 반가움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성서 말씀을 통해서 많은 은혜를 내리시도록 기도하겠습니다.
성서를 가까이하고 통독하고 묵상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 있겠습니다만, 백주간을 택하셨으니 백주간을 성서 공부 방법을 통하여 어떻게 하면 좀 더 성서를 잘 읽어나가고 묵상하고 기도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몇 가지 도움이 될 수 있는 말씀을 드려볼까 합니다.
성서백주간은 성격과 목적으로 보아서 성서를 학문으로 보는 것도 아니고 상세하게 공부하는 것 보다는, 구원의 역사를 한 눈으로 하나로 꿰어서 보는 눈을 얻어 그 안에서 부분 부분의 뜻을 이해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저는 45년을 선교사로 일해왔고 그중 32년을 동경의 일본)우에노라는 본당에서 주임으로 있었습니다. 입교와 입교 후 후속 프로그램이 없었기에 함께 성서를 읽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처음 본당 주임으로서 새로 시작하는 본당이었고, 모두가 외교인에게 전교를 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교리 입문, 세례 입문을 시키느라, 때로는 1년 어떤 사람은 2년 길게 걸리는 사람은 3년씩 입문을 해서 영세를 하게 되고 그 가르친 내용을 보면 예수님의 생애와 가르침, 수난과 부활, 우리의 영생, 구원받은 자로서 살아야 할 길 등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구원의 역사가 어디에서부터 뿌리가 있어 이어져 온 것인지, 구약의 부분이라든가 전체적인 구원역사 안에서의 예수님에 대한 이해는 부족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처음부터 전체를 하느님의 구원 경륜 속에서 보아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성서를 읽자고 했습니다. 성서를 읽자고 해놓고서는 어떤 식으로 성서를 읽어야 할지 몰랐었습니다.
성서백주간의 틀을 잡은 것이 76년경인데 저는 성서를 꽤 안다고 자처하였습니다. 그러나 막상 성서를 신자들과 같이 읽어나가기 시작하니까 제가 알고 있는 것은 이 부분 저 부분 토막지식으로 알고 있었지 하나의 전체로서 성서의 의미와 흐름에서 이해하고 그 속에서 부분을 알아듣는 안목이 없었습니다. 오랜 사제생활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그중에서도 저 자신이 놀라웠던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그 백성들을 구원하시고자 애를 쓰시는데도 그 말씀을 받아들이기를 꺼리고 거부하고 반항하고 약속을 하고는 어기고 계속 이것이 사는 길이다 하면서도 그 길을 가기가 어려워 되돌아서는 모습을 많이 보았습니다. 어쩌면 우리들 안에서도 하느님께서 부르시는데 조건 없이 선뜻 응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서 작게 크게 살아나가면서 이 부분, 저 부분에서 버티기도 하고 틀어보기도 하고 뒷걸음질도 치는데,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에서 우리 자신의 마음의 모습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이러한 일반적인 말씀을 깔아놓고 성서백주간을 실제로 묵상해 나가면서 어떻게 하면 이것이 더 잘 되는지 원리에 대해 구체적으로 몇 말씀 드리겠습니다.
성서를 각자 자신이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성서백주간은 성서에 관한 좋은 말씀을 신부님, 수녀님, 전문가 등을 청해서 유식한 이야기를 듣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일차적인 목적은 각자가 성서를 가까이해서 자기 것으로 삼는 노력을 집에서 하는 것이 제일 기본입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일상적인 하루 흐름 속에서 성서를 찾는 마음으로 조용히 혼자서 읽고 묵상하는 시간을 내어야 합니다. 일주일 모임 바로 앞에 허겁지겁 읽는 것이 아니라 매일 시간을 많이 내실 수 있으면 더욱 좋지만 적어도 하루 반 시간은 내셔야 합니다. 한꺼번에 몰아서 하시면 들어가질 않습니다. 날마다 작정을 하고 끼니를 거르지 않는 것처럼 매일 시간을 내야 합니다.
그다음 성서를 만나는 것입니다. 도움책은 성서를 보기 위한 것입니다. 또 도움책의 도입 부분이나 끝부분을 참조하시면 굵은 선은 보이니까 거기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 주된 흐름을 놓치지 않고 읽어나가는 노력을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성서에 관해서 이것저것 알아보려고 하면 끝이 없습니다. 유식하고 학술적으로 거창한 것들이 많이 있는데 그것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그것은 그것대로 해야 할 일이지만, 여기에서는 성서 본문을 만나서 나에게 살아있는 말씀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귀를 여는 것이 목적입니다. 해설서, 주석서를 읽다 보면 시간도 많이 빼앗기게 되고 성서에 관한 이야기는 머릿속에 많이 담게 되지만 성서 본문이 살아있는 말씀으로 내 안에서 자리를 잡는 데는 경우에 따라서는 방해가 됩니다. 그러한 노력과 성서학자들의 연구가 불필요하다는 것이 아니고 필요한 것인데 성서백주간은 성서 본문을 통독하고 묵상하고 기도해서 변하자는 것이기 때문에 본문을 붙들고 늘어져야 합니다. 뜻이 무엇인가 깨쳐보려고 노력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다른 주변의 책들을 파고들다 보면 본문하고 만나는 시간을 잃을 수가 있고 분심이 들 수 있기 때문에 되도록 그런 데에 마음을 쏟지 않도록 하시고, 한 곳에 집중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다른 성서학자들이 펴내는 것이 불필요하다는 것이 전혀 아닙니다. 지금 우선은 성서 분문을 몸에 익히는 노력을 하시고, 성서를 3년-3년 반에 걸쳐 다 봉독하고 묵상하신 다음에, 성서에서 내 마음에 들고 관심을 주며 마음을 끌었던 부분에 관한 다른 저서를 보시면 훨씬 이해가 깊고 그 뜻을 알아듣기 쉽습니다. 일단 한 번 성서를 통독하는 동안은 본문에만 마음을 쏟으시기 바랍니다.
성서를 읽다 보면 어려운 부분이 많습니다. 책이 고문서이고 쓰이길 히브리어로 쓰인 것을 옮긴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충실히 번역을 잘해 놓아도, 한국말과는 느낌이 다른데다가 시대 배경도 다르고 심리도 다르다 보니까 알아듣기 어려운 것들이 나옵니다. 언뜻 공감도 안 가고 와 닿지 않는 부분이 많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당황하지 말고 한꺼번에 풀려고 하지 말고 계속 충실히 읽어나가다 보면 나중에 전체 안에서 그 의미가 드러나는 것이 많습니다.
이제까지는 “하지 말라”라고만 했는데 이제는 “하시라”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제일 우선하실 일과 항상 하실 일은 기도하는 일입니다. 성서를 열기 전에 마음속으로 매번 꼭 기도하십시오. 성령께서 마음을 비추셔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들려주시고자 하는 생명의 말씀을 깨칠 수 있도록 마음을 열어 주십사하고 기도를 하는 데, 다만 자신을 위해서만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백주간을 같이하시는 반원들 하나하나를 위해서 성령께서 그분들 하나 하나에게 은혜를 내리셔서 각자가 하느님의 말씀에 마음의 귀를 열어서 생명의 뜻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주십사하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또 한 가지 구체적으로 큰 도움이 되는 것은, 성서를 한 장씩 읽어 나가는데 장의 내용이 많고 적을 수도 있지만 매 장을 읽으신 다음 그 장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가의 주요 골자를 아주 짧게 두어줄, 서너 줄로 요약을 합니다. 그렇게 짧게 하다 보면 세세한 부분에 정신을 팔기보다는 이 장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어 도움이 되고 성서를 다 읽고 난 후 요약한 노트만을 보아도 그 내용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성서를 읽은 다음 성서를 덮어놓고 다시 기도하십시오. 예를 들면 “오늘 읽은 부분 중에 못 알아들은 부분이 많습니다.” 등으로 말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읽은 말씀을 정말로 깨칠 수 있도록, 그 뜻을 알아듣고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제 마음을 비추어 주십시오.”라고 기도를 또 한 번 합니다.
일주일을 하루같이 그런 식으로 성서를 묵상하고 요약한 다음에, 모임이 있는 날 전에 적어 놓은 것을 다시 보면서 이러한 일 중에 내 마음에 무엇이 남아 오는가, 나에게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며 감동을 주는 것이 무엇인가, 나와 가장 상관되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면서 성령께 옳게 깨닫도록 도와주십사 기도하는 마음으로 해서 그때 하느님께서 들려주시는 말씀이 이것이었구나를 깨달으면 그것에 대해 더 생각하고 모임에 와서 그것에 대해 묵상 말씀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이것을 하면 좋겠다’,‘이것을 하면 재치 있겠다’라고 생각하여 묵상나눔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시작 시간과 끝 시간을 정확히 지킬 줄을 알아야 합니다.
진행하는 동안의 부분 시간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복습은 지난주에 보았던 내용 중에 무엇이 골자였는지를 전부를 되풀이하여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 주요 부분을 말하면, 또 다른 사람이 다른 부분을 말하면서 한 바퀴를 돌면 중요 부분이 대개 다 나오게 됩니다. 그렇게 해도 안되면 봉사자가 전체를 다시 한번 되풀이해서 생각할 수 있도록 합니다. 지난주의 감상을 되풀이하는 것이 아니고 지난주에 읽었던 부분의 골자가 무엇인지 사건으로나 말씀으로나 중요한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전부 보고 넘어가는 것입니다. 각자가 돌아가면서 한 말씀씩을 발표를 30분 이내에 하는 것입니다.
모임 속의 참여하는 사람 하나하나를 통해서도 말씀하시니 그것을 침묵 중에 경청하고 들으면서 서로를 존중하고 지금 이분 저분 입을 통해서 나에게 말씀하신다는 것을 깨달아 이것을 살아있는 하느님 말씀으로 알아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알아들은 말씀의 뜻을 받아들이고 있는지, 나의 삶에서 실행하고 있는지, 살아내고 있는지, 살아보려고 노력하고 있는지 성찰하면서 말씀을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을 항상 생각하고 있을 때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복습에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기지 않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다음에 중요한 묵상 시간이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중요한 부분이 묵상 나눔인데, 각자 자기가 어떻게 성서를 깨닫고, 무엇을 의미하고 그중에 무엇이 가슴에 남았는지 그것을 서로 나눌 때, 그 속에 하느님 말씀이 들리는 것입니다. 그 부분이 깊은 나눔이 되고 거기에서 서로서로를 합치면 성서 전체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시간이 됩니다.
한 주일분의 성서를 봉독하고 묵상한 것을 3분 이내로 서로 나누고 나면, 복습한 것과 묵상 나눔을 듣고 각자 자기 자신이 읽고 알아들은 뜻도 있지만, 살아있는 뜻이 생활 속에서 더 드러나기 때문에 그 속뜻을 더 알아듣는 결과가 나오게 됩니다. 묵상나눔을 하려면 남들 앞에서 마음속의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솔직하게 속을 드러내기 어렵고, 3분 이내로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서로를 위한 뜻에서 편한 마음으로 속에 있는 말을 할 수 있게끔 분위기를 서로 협조해서 자아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은 봉사자만의 몫이 아니라 모두가 협력해서 해야 할 부분이고 서로를 아끼는 분위기에서 알맞게 스스로를 자제하는 마음으로 균형을 찾아야 합니다. 말씀을 나누실 때 전체 중에서, “지금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신 말씀이 바로 이것이다”하고 마음을 움직인 그 부분을 이야기 합니다. 집중해서 하면 짤막하게 하게 됩니다. 개인 기도를 이어서 합니다.
남의 앞에서 이야기 하는 것도 어렵지만 그보다 귀담아 듣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듣다 보면 “왜 표현을 저렇게 하나?”,“무슨 소리 하는지 모르겠네”,“안 들리네”,“난 달리 생각하는데” 등 마음속에도 침묵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기 마음속을 잠재우고 남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들어주는 것이 말하는 것보다 더 어렵습니다. 요즘 생활에서는 남의 말을 듣는 것이 어렵습니다. 이 공부는 훌륭한 듣는 습관을 길러줍니다.
모임에 가보면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있어서 어떤 사람은 언변이 좋아서 유창하게 말을 시작하며 끝을 내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남들 앞에서 무안을 당하지 않도록 따로 짧게 해달라고 부탁을 해보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자신도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우물거리는 사람이 있는데 이런 사람에게는 자신을 갖도록 용기를 주도록 합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훈련이 되어 자신이 붙어 잘하게 됩니다. 귀가 열리면 마음이 열리게 되고, 남을 존중하며 들어주는 것이 습관이 되면 그 사람 생긴 대로 그 사람의 말 있는 그대로, 말하는 대로를 받아드리는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남을 있는 대로 받아들이는 마음이 생기면 남을 존중하고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모임 도중에는 침묵을 지키겠지만 마음속의 침묵도 배우고 지켜 끝난 다음 집에 가는 길에 남의 묵상 이야기를 말하지 말고, 누가 이런 말을 이렇게 하더라 하는 식으로 말하지 마십시오. 마음속으로도 비판하지 말고 서로 흉을 보거나 흠을 잡거나 판단 없이 사는 습성을 만들어 가십시오. 서로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받아들일 때 더욱더 좋은 공동체의 모임이 됩니다.
서로 위하면서 받아들여서 3년이 되면 친해지게 됩니다. 너무 친해져서 다른 사람이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배타적이 되면 안됩니다. 그것은 성령의 열매가 아닙니다. 또 본당에서 공부하지 않은 사람에 대한 우월 의식이나 교만함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성서 공부를 할수록 겸허해질 줄 알아야 합니다.
서로의 나눔을 하고 듣다 보면 한 시간이 지나게 되는데 그러다보면 어깨가 뻐근해져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휴식 시간이 필요합니다. 잡담도 하고, 일어나서 기지개도 피고 성서 아닌 딴 이야기도 하며 서로 인간적으로 친해질 수 있는 시간이 됩니다. 시간 낭비라 생각지 마시고 휴식을 가지십시오. 잡담으로 시간 연장하지 않도록 하며 시간을 매 단위마다 지켜야 합니다.
일상적인 이야기는 묵상 시간에 하지 마시고 휴식 시간에 하십시오.
다과 시간이 끝난 뒤 예습 시간에는, 다음 주에 보고 오실 내용에 대해 봉사자가 이런 시각에서 보십시오라든가, 이러한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든가, 내용이 대충 어떻다는 것을 이야기 합니다. 도움책의 도입 부분이나 뒷부분을 참조하시고 봉사자가 유념해야 할 몇 가지를 이야기하면 적어서 집에서 보면서 읽으면 도움이 됩니다.
3년 동안 통독하여 묵상하고 나면 그 열매로 내가 믿는 바가 무엇인지 내 신앙의 본질이 무엇인지, 예수님이 누구시고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우리 구원의 역사가 어떤 것이고 내 안에서 일어나는 구원이 무엇인지에 대한 깊은 깨달음이 생깁니다. 그렇게 되면서 미사 참여를 의무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일어나는 것을 훨씬 더 깊게 깨닫고 참여하기 때문에 기쁨이 되고 기쁜 마음으로 전례에 참여하게 됩니다. 또 집에 돌아가서나 일터에서, 공동체 생활에서 세상의 빛이 되어 남들에게 자기 삶에서 발하는 빛으로 복음의 힘을 증언하는 그런 존재가 되는 변화를 일으키는 것을 보시게 될 것입니다. 스스로가 기도와 미사에서 기쁨을 느끼면 가족 역시 성서 말씀, 미사, 기도에서 기쁨을 받는 것을 통해서 보고 그것을 귀하게 여깁니다. 또 가족과 자녀들이 그 모습을 보면서 자라기 때문에 복음을 심어주는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덧붙임
*이 자료는 성서백주간을 만드시고 직접 운영하신 르 도르즈 신부님의 주간모임(신부님은 ‘작은모임’이라 함)과 운영에 대한 1차적 원본 자료이다. 그러니 권위가 깊다. 큰 영감을 준다. (95년판 길잡이와 2023년 지침서에 수록된 내용은, 원본을 편집한 것임)
*마르셀 르 도르즈Marcell Le Dorze 신부님은 1996년 9월 11일~15일 기간 동안 장익 주교님의 초청으로 한국에 머무르셨다. 1996년 9월 13일 성서백주간 추계 연수(제 3차 연수)에 참석하셨고, 마침 금경축을 맞으시어 축하 미사와 모임이 있었다. 위 내용은 당시 반포성당 주임사제로 계셨던 안경렬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의 초청으로 반포 성당 백주간 모임에 초대되시어 하신 말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