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벌이의 고통.hwp
'시골 의사의 아름다운 동행'에 동행하며
이 책 서문의 제목은 '시퍼렇게 살아 있어야 할 양심의 이야기'이다.
그래서인지 의사로서 겪은 일을 진솔하게 담고 있었다.
서문을 잠시 옮기자면
우리는 대개 무엇을 알마나 더 가질 수 있느냐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행동한다. 그리고 그 갈망이 실재로 채워지지 않았을 경우엔 절망하고 분노한다. 그래서일까. 대부분 사람들은 바라는 것을 손에 넣기 위해 끊임없이 고군분투하며 앞만 보고 내달린다. 자신이 차지하고 있는 부나 명성만큼이나 다른 누군가는 그 결핍에 고통받고 힘들어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애써 외면한 채 말이다.
.... 하략
이 책은 의사로서 겪은 일들을 진솔하게 보여서 의사의 세계를 가까이서 보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 하지만 자주 등장하는 환자들의 이야기는 안타까워서 잠시 심호흡을 하고 읽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후반부에 나오는 개인 가족사의 글이 반갑기도 했다.
여러 편의 작품이 실려 있는데 감상 대신 그 중에서 한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밥벌이 고통
중국성 철가방인 영규씨가 병원에 왔다. 밤새 피를 거의 한 말이나 토했단다. 몇 달 사이에 얼굴은 더 검어졌고, 눈은 노랗다 못해 이제는 거의 짙은 회색빛이었다. 몸에는 거미줄 모양의 실핏줄이 군데군데 드러나 있었고 복수도 차기 시작했다.
초음파를 해보니 간 조직이 시멘트 덩어리처럼 굳어 있었다. 대정맥이 확장되고 담도가 두 배는 늘어나 있었는데, 우측 횡격막 아래쪽에 아기 주먹만한 덩어리도 보였다. 분명히 6개월 전에는 없었는데 그새 생긴 것이다.
돈 때문에 망설이는 영규씨에게 복부 시티촬영과 내시경을 권했다. 동료는 인근에 있는 종합병원에 전화를 해서 예전에 같이 근무하던 방사선과 과장에게 부탁을 했다. 원무과에 등록하지 말고 방사선과 과장재량으로 그냥 프리로 처리해주었으면 하는 아쉬운 부탁이었다.
종합병원에서 의사의 재량권은 대개 10퍼센트 정도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10퍼센트 이상 치료비를 깎아줄 수는 없는 상황이라서, 아예 방사선과에서 자체로 무상으로 해줬으면 하는 어려운 부탁이었는데 흔쾌히 승낙을 해주었다. 그래서 영규씨는 내시경 비용만 내고 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다행히 간암은 아니었지만 간경화로 인해 발생한 식도정맥류였다.
또다시 어려운 싸움이 시작됐다. 나는 일단 영규씨를 진료실이 아닌 원장실로 오라고 해서, 앞에다 차를 한 잔 놓고는 먼저 담배를 권했다. 영규 씨는 내 앞에서 담배를 피는 것이 어려운지 잠시 머뭇거렸다. 그래서 나도 같이 담배를 피워물고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부터 꺼냈다. 재윤이는 건강하나, 아내는 요즘도 아파트에 청소하러 다니나, 모친이 어제도 병원에 오셨는데 아무래도 노인이라 쉽게 호전이 안 되는것 같다, 이제 중국집 주방일은 좀 배웠나...... 등등.
재윤이는 영규 씨의 외아들이다. 재작년에 동료에게 감기진료를 받다가 심실중격 결손증이라는 선천성 심장병이 발견되어 수술을 받은 아이다. 그때도 수술을 해야 한다는 동료와 돈이 없어서 수술을 받을수 없다는 영규 씨의 딱한 사정이 충돌했다.
그래서 나는 심장재단으로 방법이 없나 알아보고, 친구는 친구대로 대학병원과 접촉했다. 심장재단은 순서를 기다려야 하는데, 아이는 호흡기 감염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라 수술을 서둘러 해야 했다. 할 수없이 친구가 영구 씨와 타협 아닌 타협을 했다. 친구는 수술비가 백만원이면 할 수 있겠는냐고 물었고, 영규 씨는 그 돈이라면 어떻게든 마련해보겠다고 했다.
친구는 그날 자신이 근무했던 대학병원 은사들에게 부탁을 해서, 가능한 한 모든 약제나 수술도구는 제약 회사나 의료기구 회사에서 준 샘플들을 사용하고, 교수 특진비 등등을 빼어 백만 원 수준에서 수술을 하기로 허락을 받았다. 그렇게 해서 재윤이는 수술을 받았고, 지금은 세 살배기 건강한 아이로 자라나 가끔 할머니 손을 잡고 병원에 따라와 재롱을 부린다.
다음 문제는 영규 씨였다. 얼굴 색깔이 검어지고 눈에 황달기가 보여 검사를 한 결과 만성간염에 이은 간경화였다. 이 병은 대단히 무서운 병이다. 절대적으로 휴식이 필요하고 좋은 섭생과 치료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영규 씨는 그럴 처지가 아니었다. 영규 씨 아내는 3급 장애인이고, 노모가 계신데 지능이 약간 모자라는 분이시다. 그래서인지 영규 씨는 일을 무섭게 한다. 예전에는 목욕탕에서 때를 밀었는데, 호흡기가 나빠져 습한 환경에서 근무를 할 수 없게 되자 다른 일을 하고 있다.
그는 놀랍게도 하루에 네 시간 정도밖에 안 잔다. 밤 열두시 반에 우유대리점으로 출근해서 새벽까지 배달 나갈 우유를 분류한 뒤 집으로 들어가 잠깐 눈을 붙이고는, 다시 오전 열시에는 중국집인 중국성으로 출근한다. 중국성에서 하루종일 배달을 하고 청소를 끝내고 나면 밤 열시 정도가 되는데, 그때 집에 들어가서 저녁을 먹고 또 잠깐 눈을 붙이고는 다시 밤 열두시면 우유대리점으로 출근을 하는 것이다. 물론 아내와 얼굴을 마주할 시간은 이때뿐이다.
그가 그렇게 해서 버는 돈은 중국집에서 70만원, 우유대리점에서 30만원이다. 그리고 그의 아내가 아파트 계단을 청소하면서 받는 임금은 한 달에 40만 원이다. 정말 터무니없는 임금이지만 요즘은 살 만하단다. 불과 얼마 전까지 아내가 일자리가 없었을 때는 정말 먹고살기가 너무나 어려웠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나와 동료들은 일을 그만둘 것을 권해야 했다. 간염이 동반된 간경화 환자가 과로를 한다는 것은 매일 독약을 들이키는 것과 같다. 그러나 그에게 일을 그만두라는 것은 네 식구더러 그대로 굶어 죽으라는 소리와 같은 이야기였다.
그래서 나는 진단서를 끊고 소견서를 첨부해서 시청에 생활보호대상자 신청을 하게 했는데, 자기 집(집이래야 달동네 판잣집 수준이다)이있고 직업이 있다고 반려되었다. 할 수 없이 행정 부시장에게 따로 부탁을 하고, 우유대리점 일은 일용직으로 바꾸고 해서 겨우 생활보호대상자로 만들어주었다.
그런데 영규 씨는 이제 치료비도 안 드는데 병원에 오지 않았다. 병원에 오면 늘 일을 그만두라는 소리가 듣기 싫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결국 이 꼴이 되어버렸다.
식도정맥류는 간기능이 완전히 없어졌음을 의미한다. 간으로 통하는 혈관들이 딱딱해진 간 조직에 눌려 피를 흘려보낼 수 없게 되면 주변 조직으로 피가 역류하는데, 그렇게 되면 가장 조직이 약한 식도의 혈관들이 부풀어 오르고 결국 압력에 의해 혈관이 터져버리게 된다.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지만 지금 그의 상황은 살아 있되 죽어 있는 목숨이었다.
영규 씨는 즉시 중환자실로 입원하라는 권유를 뿌리치고 다시 내게로 왔다. 식도정맥류가 발생한 간경화 환자를 살리는 방법은 간이식 수술뿐이다. 아니 사실은 이미 그것도 늦은 상태였다.
그는 그 지경임에도 담배를 물고 산다. 그는 착하기는 하지만 달리 말하면 미련하다는 뜻도 된다. 그런 그에게 담배를 꺼내 권하고는 나도 같이 피웠다. 그러고는 천천히 그가 완전히 이해할 수 있도록 그의 병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약간 느리기는 해도 사리분별은 했다. 그의 눈에서 곧 닭똥 같은 눈물이 떨어졌다. 그의 머릿속으로는 이미 재윤이와 아내, 그리고 어머니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지나갔을 것이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극한의 노동량을 감당하면서도 우선 먹고 살 만해진 형편이 행복했던 그가 이제야 자신의 병의 심각성을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니 사실 불안하면서도 설마설마 했을 테고, 아니면 이미 죽을 각오를 했을지도 모른다. 나와 동료들이 계속 그렇게 고집을 부리면 죽는다는 소리를 백 번도 더 했으니 말이다.
이제 그의 여생은 그에게 달려 있다. 식도정맥류는 요즘은 다행히 수술 대신 내시경으로 묶어줄 수 있으니 대학병원에 가서 정맥류를 묶으면 된다. 그리고 일을 하지 않고 요양하면서 간에 필요한 영양을 충분히 섭취하면 1년, 5년, 10년, 혹시 하느님이 도우시면 20년을 살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처럼 일을 하면, 그는 머지않아 자장면 배달통을 안고 길거리에서 쓰러져 피를 토하면서 죽어갈 것이다.
나는 겨우 그를 설득해서 대구의 대학병원으로 가게 했다. 그는 그 와중에도 입원 안 하고 정맥류만 묶고 안동으로 다시 오면 안 되느냐고 물었다. 이제 겨우 모은 돈을 치료비로 날릴까봐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나는 의료보험이 되니 큰 부담은 안 될 것이라고 또 설득을 했다. 나머지 의료보험이 되니 큰 부담은 안 될 것이라고 또 설득을 했다. 나머지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고가치료는 어떻게든 선후배들에게 시술을 부탁해볼 참이었다.
그러나 그를 설득한 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이제 누가 그와 그 가족을 부양한단 말인가. 사람이란 참 상황에 따라 많이 변한다. 가능성으로만 생각하고 있을 때는 담담하던 사람이 막상 현실이 되면 암담해하고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가 일단 일을 쉬고 치료를 받겠다는 결심을 하는 순간, 지금까지와는 반대로 이야기를 했다.
걱정하지 마라, 왜 걱정을 하느냐, 당신이 여때까지 말을 안 들어서 그렇지 치료만 잘하면 이 병은 충분히 나을 수 있는 병이다, 쉬면서 잘 치료하면 완치된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 더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면 된다, 충분히 희망이 있다, 왜 두려워하느냐고 말이다.
그런데 이제는 이런 고통스러운 전쟁이 점점 힘들고 지친다. 그래서인지 요즘에 들어와서는 가운을 벗는 상상을 더 많이 하게 된다.
*의사만 가운을 벗는 상상을 하겠어요?
밥벌이의 고통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