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하늘의 문 쁘레시디움 단원 일동은 윤기환 안드레아, 채철현 대건 안드레아 단원의 차에 각각 나누어 타고 대구 레지오 도입 50주년 기념 신앙대회 참관을 마치고 팔공산 자락에 있는 한티 성지에 갔다. (아래 내용은 천주교 대구대교구 한티순교성지 2006년에 발행한 거룩한 순교의 땅, 천주교 한티성지 책자의 내용을 옮긴 것입니다.)
한티 순교 성지는 대구에서 북쪽으로 28km, 행정구역으로는 경상북도 칠곡군 동명면 득명리 해발 600m의 깊은 산중턱 고갯길에 자리 잡고 있다. 대구에서 군위 의성으로 넘어가는 큰 산 고개, 즉 한티아래 형성되었던 궁벽한 산골 마을로 가톨릭 교우들이 박해를 피해 몸을 숨긴 교우촌이요, 그들이 하느님을 증거하다 처형을 당한 곳이며, 또한 그들의 유해가 묻혀있는 완벽한 순교 성지이다.
한티에 언제부터 교우촌이 형성되었는지 명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처음 이 곳에 교우들이 피난을 오게 된 것은 이 지역이 임진왜란 때 부터 피난지로서 알려져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한티 교우촌은 신유교난(1801년) 이후 경기 및 충청지역의 많은 교우들이 박해를 피해 경상도 땅으로 남하하는 과정에서 또한 을해박해(1815년)와 정해박해(1827년)를 겪으면서 대구 감영에 투옥된 교우들의 가족 친지들이 옥바라지를 위해 대구 인근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처음에는 신자들이 한 두 집 모여 움막을 짓고 사기와 숯을 굽고 화전을 일구어 생계를 유지하던 정도였으나 1838년 김현상(요아킴) 가족이 피난을 온 이래 인근의 서촌과 한밤 및 원당의 외교인까지 입교하여 1850년 말경에는 제법 큰 규모의 교우촌이 형성되었다. 경신박해(1860년) 이후 김현상 가족은 대구로 이주하고 상주 구두실이 고향인 조 가롤로 가정을 중심으로 열심한 신앙생활을 하였다.
1862년 조선 교구장 장 베리뇌 주교의 성무집행보고서에 의하면 40여명이 이곳 한티에서 성사를 받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경신박해(1860년)의 소식을 접한 한티의 교우들은 깊은 산속으로 숨어들어 박해를 피하나, 텅빈 한티 마을로 피난 온 신나무골에 살던 이선이(엘리사벳) 가족은 뒤따라온 포졸에 의해 한티에서 죽음을 맞는다. 이선이와 아들 베스테파노는 한티에서의 최초의 순교자이며, 이선이는 현재 신나무골 성지에 안장되어 있다.
병인박해(1866-1873년)가 시작되자 대구 읍내와 신나무골에 살던 많은 교우들이 한티로 피난을 오게 되어 마을 규모는 더욱더 커진다. 1866년 문경 한실로 피난을 갔던 서태순(베드로)이 상주진영에서 옥사하니 그의 형 서익순(요한)이 한티에 안장하였다.
1868년 발생한 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 묘 도굴사건은 더욱더 심한 천주교 박해를 가져온다. 1868년 봄 '선참후계'의 명을 받은 포졸과 군졸들은 한티 교우촌을 급습하여 조 가롤로를 비롯한 수많은 교우들의 목숨을 현장에서 빼앗고, 교우촌의 재건을 우려한 나머지 마을을 불태워 버린다.
박해의 폭풍이 지나간 후 죽음을 면한 교우들은 다시 한티에 돌아오게 되고, 온 산야에 버려진 채 썩어가고 있는 순교자의 유해를 발견한다. 그들은 그 중 수습 가능한 유해를 양지바란 곳에, 너무 훼손되어 옮기기 힘든 유해는 쓰러진 채 썪어가던 그 자리에 안장하였다.
한티에서 살아남은 교우들은 순교자의 유해를 정성껏 안장하고 새로이 공소를 재건한다. 조 가롤로의 아들 조영학(토마)은 부친의 신앙을 이어받아 공소의 책임자가 되고, 박만수(요셉) 가정과 함께 공소재건에 앞장선다. 그 무렵 김재윤(플로리아노), 김윤하(안드레아), 배순규(아고보), 조규성(프란치스코) 가정이 이주해 옴으로써 재건된 한티 공소는 다시 활기를 띠게 되어, 1882년-1883년 김보록 신부가 판공성사를 주러 왔을 때 한티의 교우 숫자는 총 39명에 이르렀고, 1900년 경에는 80여명에 이르렀다.
제법 큰 규모의 교우촌을 형성한 한티공소는 1901년 이후 전교를 위해, 혹은 살기 좋은 곳을 찾아 조영학 가정을 비롯한 많은 교우들이 한티를 떠나면서 점점 쇠퇴하게 되었다.
한티 피정의 집 안내
시설 안내
-건축물의 규모 : 공사 기간 1990년 2월-1991년 9월 25일
-건축면적 : 1910평(연면적)
-건축구조 : 지하 2층 지상 5층 철근 콘크리트조
이용 안내
한티 순교 성지 안쪽의 언덕에 우뚝 솟아있는 지상 5층, 지하2층의 피정의 집은 장엄한 분위기의 대성당과 아담한 소성당, 120석 규모의 대강의실과 40석 규모의 소강의실, 다용도로 사용가능한 친교실 및 10여개의 소그룹 회합실 등 완벽한 부대시설과 욕실이 완비된 65개의 남향 침실을 갖추고 있다.
건물 곳곳에 기도와 묵상을 위한 공간이 넉넉하며, 성지 곳곳에 묵상을 위한 아름다운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본당 및 단체의 피정을 위한 시설대여 뿐 아니라 위탁피정도 가능하며, 숙식의 시간적 여유가 없는 경우 일일피정도 가능하다. 개인적으로 조용히 묵상하며 삶을 돌아보고자 하는 경우에는 개인피정도 연중 가능하다.
단체 순례객
-사전 예약으로 식사 가능함(1식 5천원)
-전화 054-975-5151/FAX 054-975-5150
-이메일 :hanti@tghatholic.or.kr
첫댓글 우리 본당 대들보 역활을 하시는 형제들님 보기 참 좋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