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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기도는 반드시 기적을 일으킵니다. 롬8:35-39.
https://www.youtube.com/watch?v=tQss0klOTPw&t=1954s 조용기
https://cafe.daum.net/rnjstlgur/DhRo/5 권시혁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와의 관계는 사랑의 관계인 것입니다. 눈에 안 보이지만 어마어마한 힘으로 우리를 묶어놨습니다. 여러분 원래 눈에 보이는 것은 별로 큰 힘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연결은 밧줄도 될 수 있고 쇠도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밧줄도 세월이 흘러가면 썩어지고 쇠도 세월이 흘러가면 녹슬어서 썩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밧줄보다도 강하고 수배로도 강한 것은 눈에 안 보이는 끈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다 썩어지고 쇠하여지고 없어집니다. 눈에 안 보이는 것은 어마어마하게 강합니다. 썩어지지도 아니하고 녹슬지도 하고 쇠하지도 않습니다. 그 눈에 안 보이는 밧줄이 뭐냐 사랑의 밧줄인 것입니다. 01:00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이 사랑의 밧줄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사랑은 하나님과 우리에 대한 사랑에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부모와 자식에 대한 밧줄도 이 세상에서는 어마어마하게 강합니다. 부모와 자식에 대한 밧줄을 쉽게 끊지 못해요. 부모와 자식 간의 천륜을 끊을 수가 없습니다.
그다음에 형제간의 밧줄도 상당히 강합니다. 사랑의 밧줄이 강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서로의 마음속에 탐욕이 들어오면 끊어집니다. 대개 부모 재산 상속 주고 형제간 모이면 사랑의 밧줄은 쉽게 끊어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부부 간의 밧줄은 형편없이 약합니다. 01:57
그건 뭐 끄떡하면 끊어지죠. 우리 한국에도 하루에 500쌍씩 이혼을 하고 있다. 그럽니다. 그러면 1년에 결혼한 부부의 3분의 1이 이혼하고 있습니다. 그다음 3분의 1은 흔들흔들하고 있습니다. 안심하고 살 만한 사람은 한 3분의 1밖에 안 된다는 거죠. 부부간의 사랑이라는 것은 그렇게 힘이 없습니다. 왜냐 여러분 사랑이라고 하니까 다 똑같은 사랑이냐면 그 질이 틀립니다. 부부간의 사랑은 에로스 사랑입니다. 헬라어로 말하면 에로스라는 것은 정욕에 입각한 사랑인 것입니다. 02:42
남녀 간의 그 이끌림 정욕이 기초가 된 그러한 사랑이 에로스 사랑이기 때문에 그 정념이 사라지면 에로스 사랑은 사라진 것입니다. 그래서 세월이 흘러가면 남녀 간의 사랑은 물에 물 탄 듯이 사라져 가는 것입니다.
그보다 조금 더 강한 사랑이 필레오 사랑입니다. 필레오라는 것은 친구 간의 사랑인 거죠. 그러므로, 부부의 사랑이 에로스의 사랑으로 남아있으면 그걸 많이 쓰면 다 사라져 버려요. 에로스 사랑의 1단계 위에 올라가서 필레오 친구가 돼야 하는 것입니다. 친구 부부간에도 친구가 돼야 합니다. 그냥 육체적인 사랑은 얼마 안 있어 사라지지만, 친구의 사랑은 그보다 더 강하죠. 03:41
그러나 친구의 사랑도 이해관계에 부딪히면 서로 원수가 될 수 있습니다. 이래서 그것도 영원하지 못하죠. 그러나 그보다 더 강한 사랑은 스톨게의 사랑입니다. 스톨게의 사랑은 부모 자식 간의 사랑입니다. 부모 자식 간의 사랑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말하는 사랑 중에 가장 강한 사랑이지만 그러나 대개 일방 통로입니다.
부모는 자식을 어마어마하게 사랑하는데 자식은 부모에 대해서 그런 어마어마한 사랑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내리사랑이 되어서 부모가 자식을 참 사랑하지만, 자식은 부모를 향해서 그런 뜨거운 심정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이 별로 많지 않습니다. 의무적인 사랑이 많습니다. 내 부모니깐 내가 의무적으로 사랑해야 된다. 그것이지. 04:39
우러나오는 뜨거운 희생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이 스톨개 사랑도 일방적인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사랑이 강하지요. 그러나 최고의 사랑이 뭐냐 아가페 사랑입니다. 이 아가페 사랑은 바로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사랑하는 사랑인데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하나님께서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다 주시는 사랑입니다. 하나님 이건 조건이 없는 무조건 사랑입니다.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못났음에도 불구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 죄지은 그대로 못난 그대로 빈손 든 그대로 우리를 용서하고 사랑해 주는 사랑이 아가페 사랑인 것입니다. 이게 가장 인류가 이 지상에 생겨난 이후로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이 아가페 사랑인 것입니다. 05:40
이 아가페 사랑을 버리면 이제는 설 곳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 사랑을 배반하면 그 사람은 지금부터 영원토록 설 곳이 없습니다. 지옥이 왜 무서우냐? 지옥이 사랑이 없는 곳이기 때문에 무섭습니다. 사랑이 없고 미움만 꽉 들어차 있기 때문에 어마어마한 고통스러운 곳입니다. 천국이 왜 좋습니까? 천국엔 무궁무진한 아가페 사랑으로 넘치기 때문에 이 사랑이 생명을 넘치도록 하는 것입니다.
모든 생명은 사랑에서 넘쳐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태양이 비추니깐 태양열에 의해서 모든 만물이 살아나지 않습니까? 태양의 열 광채 열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사랑으로 비추기 때문에 우리가 살아있는 것입니다. 태양이 옅어지면 북극과 남극같이 얼음 동산이 됩니다. 사랑이 사라진 곳은 미움이 얼음 동산처럼 되지 않습니다. 06:39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그러므로, 여기에 성령은 바울 선생을 통해서 우리에게 담대하게 말하면 누가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려 하면 사랑의 그리스도가 우리를 사랑하는 그 사랑을 우리가 받아들이면 그 사랑의 눈에 안 보이는 밧줄을 누가 끊어보라. 공경함을 끊어보라.
환란이 다가와서 한번 끊어보라 환란이라는 것은 바깥에서 다가오는 풍파입니다. 외부에서 다가오는 풍파지요. 전쟁이라는 환란이 다가올 수 있습니다. 기근이라는 환란이 다가올 수 있습니다. 지진의 환란이 다가올 수 있습니다. 홍수의 환란이 다가올 수 있습니다. 07:26
외부적으로 어마어마한 충격으로서 한번 다가와 보라. 그런 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고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눈에 안 보이는 그 사랑의 밧줄을 끊을 수 있을쏘냐. 바깥에 외부적인 세력이 충격을 가한다고 해서 그런 외부적인 충격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끊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는 여러분 어떠한 환란도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 또 우리에 대한 하나님 사랑의 관계를 끊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큰 환란이 다가오면 부부간의 사랑도 박살 나고 부모 자식 간의 사랑 형제간의 사랑 친구 간의 사랑도 다 박살이 날 수 있지만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사랑한 그 사랑은 박살이 나지 않습니다. 환란이 당하면 당할수록 더 강해지는 것입니다. 08:26
절대로 끊을 수가 없어요. 그러면 곤고냐? 곤고라는 것은 안에서 일어나는 괴로움입니다. 마음의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 미움 분노 질투 시기 같은 이 마음을 곤핍스럽게 하는 내부에서 일어나는 큰 괴로움입니다. 내부에서 이런저런 괴로움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 사슬을 끊으시느냐? 못 끊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신 이상 하나님은 우리의 내부 속에 어떠한 마음의 고통이 일어난다고 할지라도 그거는 우리 내부 사정이지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사랑하는 그 사랑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곤고에 처해도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09:16
우리가 낭패 실망을 당하고 빈손 들게 되고 외롭게 되고 아주 고통스럽고 괴로움 속에 취하게 될 때 대개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다 떠나죠.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곤고할 때도 떠나지 않는다. 내 마음에 외롭고 고통스럽고 괴롭고 슬프고 분노에 빡 들어차고 미움의 몸부림을 치더라도 그래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 그래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의 줄을 곤고가 끊지 못한다.
핍박이냐? 지금 어디 그 사랑을 핍박이 와서 한번 끊어보라 하나님 우리 사랑하고 우리가 예수님 사랑하는 그 사랑을 핍박으로 끊을 수 있느냐 외부에서 막 예수 믿는다고 비난하고 공격하고 핍박한다. 10:15
아무리 핍박이 다가와도 핍박으로서 이 사랑의 줄을 끊을 수가 없다. 대개 핍박하면 사랑이 더 강해져요. 인간적인 사랑도 그래요. 아들이나 딸이 연애한다고 막 부모가 돼서 때리고 오빠가 와서 발로 차고 하면 더 사랑한다고 그냥 여동생이 연애한다고 불러다 놓고 오빠가 그냥 쥐어박고 너 다시 그놈 만나면 내 손에서 죽을 줄 알아. 그래도 죽이세요. 죽이세요. 그러면 그럴수록 더 뜨거워집니다.
인간적인 애정도 그 애정 때문에 밖에서 다가오는 핍박은 오히려 영광으로 생각하고도 뜨거워집니다. 11:11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도 바깥에서 핍박을 하면 더 똘똘 뭉치게 되는 겁니다. 욕하고 압력을 가하면 신앙이 더 두터워지죠. 하나님도 우리가 환란을 당하면 더욱 성령을 부어주셔서 그 사랑이 더 돈독해지죠.
기근이냐? 굶주림이 와서 한번 이 사랑을 끊어보라. 온 천하의 기근이 다가와서 굶주림이 있는데, 그 굶주림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버리고 하나님 우리 버려야겠느냐? 우리는 굶주림이 다가오면 하나님께서는 세상 방법이 아닌 말씀으로 살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온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11:58
하나님의 희한한 손길이 나타나서 기근에서도 우리가 견뎌내게 함으로 하나님의 사랑은 기근의 시련이 와도 그 사랑을 끊지 못합니다. 적신이냐? 적신이라는 것은 실패해서 아주 빨가벗게 되는 것입니다. 빈손 들게 돼요. 집도 다 저당 잡혀버리고 직장도 잃고 뭐 길거리에 나서게 된다. 그러면 길거리에 나서게 됐다고 해서 하나님이 아 이제 너는 모르겠다. 너는 길거리에 나섰으니까.
너 같은 것은 이젠 내 자식 아니다. 그렇게 하느냐 절대로 적신이 있다가 와도 하나님은 적신이 되어도 넌 내 자식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가 없습니다. 적신이 된 그 자리에 다리 밑에 들어가도 하나님의 사랑은 따라와서 돌봐주시니까 싫어요. 그렇게 되었다고 해서 하나님 버리잖아요. 13:00
잘 살 때만 하나님이 우리 사랑하고 못살 때는 하나님께서 져버리는 그런 왕소금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짜지 않아요. 하나님! 적신이 될 수 있어 우리가 잘못했어. 그러나 하나님 품에 안기면 적신이 된 우리도 하나님 품어주시고, 또 살려 일으켜 주시는 것입니다.
위험이냐? 인생을 살아가는데 위험이 많죠. 전쟁의 위험도 있고 동족 간의 위험도 있고 원수의 위험도 있고 질병의 위험도 있고 위험이 많죠. 그러나 아무리 위험이 다가온다 해서 위험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고 떠납니까? 병아리를 품고 있는 어미 닭도 위험이 다가온다 해서 병아리 버리고 떠나지 않습니다. 13:54
평소에는 개나 고양이가 다가오면 줄행랑을 치는 어미 닭도 새끼를 품고 있을 때는 목숨을 바치고 고양이나 개에게 덤벼드는 겁니다. 그래서 사랑 때문에 그런 것이죠. 위험이 다가온다고 해서 우리 하나님이 우리 버리고 떠날 것입니까? 하나님이 위험보다 약한 줄 압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위험 같은 건 그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칼이랴? 칼은 죽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 죽인다고 했어. 사랑이 끊어집니까? 주님 말하기를 육체는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않은 사람을 죽이지 못할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고 영혼과 육체를 동시에 지옥에 던지는 자를 두려워하라고 말하셨습니다. 칼이 온다고 해서 하나님과 우리 사랑이 끊어집니까? 끊어지지 않습니다. 14:45
역사적으로 볼 때 로마에 그렇게 어마어마한 칼로써 예수 있는 사람들 거의 씨를 말렸지만, 그러나 결국에는 그들이 끝까지 주님을 부인하지 않고 주님을 믿고 순교를 당하고 그 로마는 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고 예수 믿는 것이 국교로 변화되고 마는 것입니다. 칼이 사랑을 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보세요.
누가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려 합니까? 그 어마어마한 하나님의 사랑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붙잡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랑이 환란이 와서 때려도 끊어지지 아니하고 곤고가 와도 끊어지지 않고 핍박이 와도 끊어지지 않고 기근이 와도 끊어지지 않고 적신이 와도 끊어지지 않고 위험이 와도 끊어지지 않고 칼이 와도 끊어지지 않는다. 그러면 이 사랑에 도전할 힘이 없습니다. 15:40
하나님이 그러지 않아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 사랑이 어마어마하게 크기 때문에 이 사랑을 끊어 놓을 힘이 없어요. 오직 한 가지가 있습니다. 우리가 주를 배반하면 주님도 우리를 모른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배반하지 않은 이상 주님은 환란에도 우리 붙잡아주시고 곤고에도 붙잡아주시고 핍박이 와도 붙잡아주시고 기근이 와도 붙잡아주시고 적신이 와도 붙잡아 주시고 칼이 와도 주님의 사랑은 우릴 붙잡고 놓지 않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모른다고 하면 주님도 우릴 모른다고 하시겠지만 우리가 주님을 모른다고 하지 않은 이상 주님의 사랑은 천지간에 그 무슨 힘으로도 끊을 수가 없습니다. 그만큼 주님이 강하게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16:36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몸을 찢고 피를 흘리셨어요. 끝까지 우리를 사랑하는 사랑을 보십시오. 주님은 12 영이나 되는 천사를 불러서 십자가에서 내려오게도 할 수가 있고 십자가에 올라가기 전에 헬라로 도망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는 사랑 때문에 그 죽음을 그대로 다 받아들이고 그 몸을 찢고 피를 흘려 끝까지 잔을 다 마신 스스로 구원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원수들도 그러지 않습니다. 17:12
저가 남은 구원하였을 때 자기는 구원하지 못하는 도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면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 주님이 안 내려왔죠. 못 내려온 것이 아니라 안 내려왔죠. 내려올 수 있는 권세와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안 내려왔죠. 사랑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끝까지 주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고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고 십자가에서 당신이 모든 우리의 죄악을 담당해 주셨습니다.
이런 예수를 우리가 배반할 수 있나요? 예수님이 우리를 배반 안 했는데 우리가 예수를 배반할 수 있나요? 못하지요. 예수를 진실로 믿고 중생한 사람은 그리스도를 배반 못 합니다. 18:06
위대한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이 어디 있으며 이 사랑 안에서야만이 내 생명의 존재 가치가 인정되는 것입니다. 이 사랑을 놓쳐버리면 내가 누굽니까 아무 데도 쓸데없는 쓰레기에 불과한 것입니다. 크리스도 안에서만이 내가 다이아몬드로 빛나지. 그리스도 밖에 나오면 쓰레기입니다. 쓰레기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사랑의 나를 다이아몬드로 만들어 주었는데 내가 그 사랑을 버리고 떠날 수가 있나요? 못 떠나죠.
36절요 기록된바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이 말은 시편 44편 22절에 예수군이 들어올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런 핍박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19:05
종일토록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긴 권력자가 정치인들이 주를 믿는다고 해서 핍박을 하고 죽이고 마치 잡아서 푸줏간에 가져갈 양같이 우리를 여겼지만, 그래도 주님은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셨다. 시편 기자의 증언입니다.
우리 환경은 매일같이 죽임을 당할 것 같은 위협 속에 있고 도살할 양같이 놓임을 받아도 그러나 우리의 배후에는 주님의 사랑이 우릴 붙잡고 우릴 놓지 않았던
37절요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여기는 일입니다. 19:59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종일 우리를 죽이려고 하고 종일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고 이리저리 끌려다닌다고 하더라도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이 모든 환란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 그런 모든 시련 속에서도 우리를 사랑하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긴다는 것은 뭐냐 하면 우리를 끝까지 사랑해 주고 절대로 우리를 버리지 않고 떠나지 않는 그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우린 마음의 단단히 확신과 무장을 가지고 이 모든 것을 극복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겨낼 수가 있다. 사랑의 힘이 있기 때문에 이겨낼 수가 있다. 20:47
사랑해 주는 사람이 없으면 내가 못 이기지만 우주를 다 죽어도 바꿀 수 없는 그 위대한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해 주고 계신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고 우리 주 예수님이 계시므로 우린 우리 주 예수와 아버지 하나님 믿고 모든 것을 이겨낼 수가 있다. 사랑은 믿음을 가져옵니다. 이 사랑을 받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끝까지 믿고서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써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나타나지 않습니까?
우리가 이러한 도전을 받으면 거기에 대해서 믿음으로 응답하고 이것을 변화시킬 수가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이란 사람은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는 사람입니다. 환란이 도전하면 환란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그 사랑을 믿고 기도함으로 환란을 변화시켜 버린 것입니다. 곤고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핍박도 변화시키고 기근도 변화시키고 적신도 위험도 칼도 변화시키고 우리의 믿음의 기도는 우리의 운명과 환경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우린 뒤로 물러가지 않고 끝까지 믿음으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부르셔서 하나님이 날 사랑하는데 내가 왜 두려워할 것이냐? 내가 믿음으로 그래서 이런 여러 가지 도전이 우리에게 다가올 때 우리는 어마어마한 믿음으로 기도해서 그 도전에 응전함으로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 역사를 볼 때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와 성도들이 이런 시련에 직면했을 때 기도와 믿음을 통해서 사회도 변화시키고 국가도 변화시키고 세계도 역사도 변화시킨 것입니다. 22:40
변화시키는 어마어마한 힘이 여러분 우리의 믿음의 기도를 통해서 나타납니다. 그런데 그런 믿음의 기도를 할 수 있는 것은 사랑이 배후에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절대로 버리지 않고 사랑해 준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사랑으로 말미암아 믿음이 생기는 것이죠. 그냥 믿음이 생기는 건 아닙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눈엔 아무것도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 잡히는 것 없어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나타난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고, 인내함으로 이 모든 일에 넉넉히 이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승리자가 되죠.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에 우린 믿음으로 기도해서 승리자가 된 거지 이기는 자가 우리 예수면 사람이 지면 안 됩니다. 우린 운명과 환경을 짓밟고 일어나는 승리자인 것입니다. 23:37
우리는 그리스도 사랑이기 때문에 언제까지나 희망을 저버리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어디까지나 모든 일이 합동하여 선을 이룬다는 낙관적인 인생관을 가진 사람들이고 그리고 사물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삐뚤어지게 바라보지 않고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이건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에 온 천지가 뒤엎어지고 온 세계가 다 뒤죽박죽이 된다. 해도 우린 사랑의 밧줄 하나 잡고 있으면 주여! 믿습니다. 그러고 믿음으로 우리 주님께 맡기고 기도하면서 희망을 품습니다. 나는 절대 여겨서 파멸되지 않는다. 넉넉히 이긴다 희망을 가지고 희망이 있으면 낙관하죠. 기뻐하고 즐거워하죠. 그리고 적극적으로 나갔습니다. 24:33
그러면 예수님은 그것이 이렇게 정신적인 위대한 힘의 차원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올바르게 믿으면 어떠한 환경에도 이기고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여러분 경제적인 여러 가지 시험과 혼란이 많지마는 우리 국민이 정말로 하나님을 믿고 이 도전에 대해서 회개하고 자복하고 뜨거운 마음으로 기도하면 새로운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다를 변하여 육지되게 만드는 기적을 베풀어 줄 수 있으니까요? 사랑과 믿음은 기적을 창조합니다. 다른 어떠한 것도 기적을 못 만듭니다. 사랑과 믿음은 기적을 만드는데 하나님 우리 사랑하시고 우린 믿고 그다음 기도하면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25:31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절요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일이나 능력이나 앞에서도 그리스도 예수와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가 없다고 했는데 이제 뒤에 나가서 더 어마어마한 도전을 열거합니다.
어디 하나님의 사랑을 한번 도전 해보라. 그래서 예수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지도 못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인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는 더 큰 우주적인 힘이 한번 와보라. 아까는 우리 몸 주변에 있는 약한 힘들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이제는 어마어마한 힘을 말합니다. 26:32
여기 보십시오. 내가 확신한다. 이 사랑을 끊을 수 없는 것을 내가 확신한다. 그러면 어떤 것이 오는지 한번 와봐라. 이제 사망이 와봐라. 내가 확신해서 사망이 와 봐라 .죽음이 도전해 와 봐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가 있겠는가?
왜 죽음이 와봤자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자신이 죽음을 받아들여서 죽음을 죽여버리시고 사흘 만에 부활했기 때문에 이것을 믿는 우리에게는 죽음은 별 힘이 없습니다. 여러분 조금 겁이 날 지경이지 죽기 전에 쪼끔 겁이 나지. 그건 왜냐하면, 주사 맞을 때 겁나잖아요. 주사 맞을 때 주사침 좋아해서 주사침 빠는 사람 별로 없죠. 주사침 찌르면 겁이 나요? 27:31
조금 겁날 뿐이지 그렇다고 주사침 때문에 죽지는 않잖아요. 죽음이 다가오면 쪼끔 겁나지. 나도 생각해 보면 쪼금 겁은 나요? 그래도 예수 그리스도가 죽음을 죽이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자 부활이오, 생명으로 내게 와 있는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겁이 나도 우리가 죽음을 극복할 수 있고 죽음을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피할 수 없는 것 아닙니까?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 조상들도 죽었고 우리 부모들도 죽었거나 또 죽을 것이고 또 우리 차례에 또 우리도 죽을 것입니다. 죽음이라는 것은 보편적인 것입니다. 아무도 피할 수 없이 다 당하는 것입니다. 28:17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은 이 죽음이 새로운 세계로 돌아가는 위대한 삶의 시작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믿지 않은 사람은 죽음으로써 썩어져 버려요. 그러나 믿는 우리들은 죽음을 통해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운 영광스러운 부활의 세계로 들어가는 관문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사망이 와서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가 있나요? 못 끊죠. 어림도 없죠.
생명이나 생명이 왜 꺾느냐 이 세상에 속한 생명 말입니다. 이 세상의 부귀영화 공명을 누리고 이 세상에 악착같이 붙어 살겠다는 세상의 유혹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릴 끊을 수 있느냐? 세상에 여러분 부귀영화 공명은 덮어 입은 옷과 같습니다. 29:17
부귀의 옷을 입어보고 공명의 옷을 입어보고 권력의 옷을 입어보고 세상 쾌락의 옷을 입어봐도 그 옷은 몸만 적시지 마음은 적시지 못합니다. 그 옷을 입으면 몸만 덮었지, 마음을 덮지를 못해요.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의 부귀영화 공명을 얻은 사람들이 마음이 갈급해서 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세상을 따라 방황하지 않아요.
사람 마음의 공허는 이 세상 생명, 이 세상에 인간들이 즐기는 모든 것으로서 절대로 채우지 못합니다. 물질적인 것은 육체만 덮을 뿐이지 사람은 물질로만 돼 있으면 좋죠. 동물들은 물질로만 되어 있기 때문에 물질만 풍부하면 동물은 만족하지요. 30:09
사람은 물질이 아무리 풍부해서 물질로 그냥 칠갑하고 세상의 삶으로 뒤엎어 놔도 마음의 공허는 채우지 못합니다.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하고 난 다음에 밤새도록 양쯔강에 배를 띄우고 무위들의 춤을 추고 술을 마시고 아침 안개가 뽀얗게 끼었을 때 나루터에 배를 대면서 그가 읊은 시가 있습니다.
희락 극해여 애정다로다 희락이 극히 많고 보니 뒤에 남은 것은 그 깊은 슬픔만 남았다. 세상의 즐거움은 반드시 뒤에 흔적을 남깁니다. 세상에 즐거워했던 만큼 나중에 슬픔이 그만치 남아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기쁨은 여러분 그냥 기쁨이 아니에요. 31:07
술을 마시고 잔뜩 즐거운 사람은 그다음 날 그 즐거워한 만큼 마음의 고통과 육체의 괴로움이 따릅니다. 왜 아편 중독자가 아편을 자꾸 마십니까? 아편을 맞고 그 당시에는 구름 위에 떠 있는 것 같은 그런 감정이 있었으나 그것이 지나고 나면 더 깊은 절망과 좌절과 슬픔 속에 떨어지기 때문에 또다시 아편을 찾는 것입니다.
세상의 쾌락이라는 것은 반드시 주의 흔적을 남깁니다. 그 쾌락에 정비례한 슬픔을 남깁니다. 왜 세상 것을 가지고 마음을 채울 수가 없습니다. 물질적인 것을 가지고 영적인 것을 못 채워요. 생수의 근원 되신 하나님을 저버리고 세상 것으로 만족합니까? 32:00
절대로 만족 못 해. 미국의 가장 유명한 석유 부자였던 폴게티가 런던에서 여생을 보낼 때 기자들이 와서 물었습니다. 당신은 행복하니까 무엇이 어쩌고 어째? 행복이 어디 있어? 미국의 최대 부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물질로는 행복을 살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육의 것을 가지고 신령한 것을 살 수가 없습니다. 행복은 신령한 것입니다. 신령한 것을 물질로 어떻게 삽니까“ 못 사죠. 물질로서 자꾸 신령한 것을 살려고 뛰는 것은 그러다가 미쳐요. 미쳐. 뭐 있을 거 같은데, 아무리 붙잡아 봐도 없대. 저 산 너머의 행복에 있다기에 산 넘어가니 또 저 산 너머 행복이 있다고 하더라. 우리 어릴 때 거짓말에 속은 적이 있어요. 32:58
무지개가 옹달샘에서부터 이렇게 올라가는데 그 무지개가 있는 그 옹달샘을 찾으면은 거기에 온갖 보화가 다 있다고 그래서 어릴 때 멋도 모르고 무지개 옹달샘 찾으러 얼마나 산을 넘고 뛰어갔는지 몰라요. 아 무지개가 딱 서 있으니까. 무슨 옹달샘에서 온 것 같아요. 그래 저하고 이웃에 있는 애하고 우리 무지개 옹달샘에서 시장한테 찾아가죠. 산 넘어가니깐 또 저 산 넘어 무지개가 생각나고 그 산 넘어가니까 또 저 산 넘어에 있어요.
또 가니깐 또 저 산 넘어에 있어 나중에 기진맥진해서 결국에는 무지개는 사라지고 아픈 것은 다리만 아팠어요. 세상의 행복을 찾아 산 넘어가고 또 산 넘어가고 또 산 넘어가도 손에 잡힐 것 같이 분명히 있는 것 같은데도 불구하고, 안 잡혀요. 왜 행복은 신령한 것입니다. 물질적인 것이 아닙니다. 33:54
물질적인 것으로 행복을 손에 넣으려고 아무리 몸부림쳐봤자 그것은 있는 것 같음에도 불구하고, 없어요. 꿈에 여러분 배불리 먹고 난 다음 깨니까 어떻습디까?
꿈에 한 상 잘 차려 먹고 잘 마시고 깨면 아무것도 없어요. 세상의 행복이란 그거 없어요. 실제 있는 것 그러므로, 진실한 행복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을 마음속에 모실 때 다가오는 것입니다.
신령한 것이기 때문에 행복은 신령한 것이기 때문에 그 신령한 것이 우리 신령한 것을 채우는 것이죠. 우리 인간은 신령한 존재입니다. 영적인 존재지 육체적인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채워질 때 비로소 의와 편강과 희락이 있죠. 행복이 있죠. 하나님 없이 행복 절대로 없습니다. 34:49
잘 먹어도 행복이 없고 잘 입어도 행복이 없고 구경을 많이 해도 행복이 없고 좋은 호텔에 가서 자 봐도 행복이 없고, 뭐 있는 줄 알고 아무리 물질이나 환경을 쫓아가 봐도 없는데 어디에 있더냐?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 속에 행복이 있다.
그건 정말로 평안과 기쁨과 소망과 즐거움의 행복이 하나님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속지 마십시오. 하나님 밖에서 행복은 없습니다. 눈 똑바로 뜨고 하나님 안에 들어가세요. 그래서 이 생명이 다가와서 이 세상 인간이 좋아하는 육신적인 생명의 모든 영화가 크리스도 예수인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느냐 못 끊습니다. 35:48
왜 육신의 생명을 따라서 살아봤자 내용이 없으니까.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 믿는 하나님의 사랑 속에는 내용이 있어요. 내용이, 내용이 없는데 뛰어다녀 봤자 무슨 소용이 있어요. 내용이 있는 곳에 들어가 살지. 예수를 믿어보니 그곳에 참 내용이 있더란 말이야.
그러니깐 세상의 유혹이 끊을 수 없죠. 천사들이나 천사들이 다가와서 그리스도 예수인 사랑에서 끊을 수 있나요? 보통 천사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도하는데 협조하죠. 여기에 천사라는 것은 타락한 천사를 말하는 것입니다. 루시퍼 마귀와 함께 타락한 하늘나라 3분지 1의 천사들 마귀와 타락한 천사들과 귀신들입니다. 36:46
이 적의 세력들이 와서 내리 부딪쳐서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 사랑의 소리를 끊으려고 하는데 여러분 마귀가 와서 유혹한다고 해서 그 사랑에서 끊을 수 있나요? 마귀는 이미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정세와 권세를 벗어버렸는데 무장 해제시켜 버렸는데 마귀가 무슨 힘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것을 막을 수가 있어요. 마귀가 아무리 장애물을 채워놔도 주님은 장애물을 뛰어넘고서 우리에게 권세자들이나 이 권세자라는 것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37:28
어두움에 권세자들 소위 말하는 임금이나 대통령이나 왕이나 세상의 주관자들 이 권세자들이 권력으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막을 수 있느냐? 로마의 네로 황제로부터 시작한 핍박이 10년 계속해서 예수 그리스도 믿는 사람을 멸종시키겠다고 하고 갈 데 올 데가 없어 전부 카타콤 땅굴에 들어가서 살았지만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을 사랑에서 끊었나요? 38:05
결국에는 기독교가 로마를 점령하고 말았지. 역사적으로 히트라도 일본 동조도 그리고 스타린도 모택동도 김일성도 일어나자, 그들은 권력을 가지고 기독교를 막으려고 교회를 협박하고 목사들을 죽이고 온갖 짓을 다 했지만, 그들의 정치 나라는 무너져도 복음은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어리석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지향하는 것은 어리석었습니다. 장애물 세워봤자 그것이 장애물이 되지 못합니다. 현재 일이나 장례일이나 현재에 있는 모든 일들 현재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현재 일이나 또 장래 미래 장래는 전부 다 불확실하기 때문에 장래에 대한 불안이 있지 않습니까? 38:58
그러면 현재 여러 가지 시련과 장래에 대한 불안감 불확실하니깐 불안감 이런 것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떠날 수 있느냐? 못 끊는다. 현재는 주님께서 다스리시고 장래는 하나님 손에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우리에게 이러한 현재가 장애물이 될 수 없고 장래의 불확실성도 우리에게 장애물이 될 수가 없습니다.
능력 능력은 파워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청춘도 능력이지요. 파워 돈도 능력이지요. 권세도 능력이지요. 그러나 그런 세상의 능력이 하나님의 전능한 능력에 비교하면 초계와 같습니다. 그런 능력이 하나님 오시는 길을 막을 수가 있나요? 못 막죠. 어림도 없죠. 어디에 감히 하나님이 오는 길을 막을 수가 있어요.
그다음 높음이나 깊음이나 아무리 높아도 높아도 하나님 보좌보다 높은 데가 없으며 아무리 깊어도 깊어도 지옥 밑바닥보다 더 깊은 데가 없는데요. 하나님은 가장 높은 곳에 계시고 가장 깊은 뜻을 하나님 만들었었습니다. 그러니 어떠한 높음도 어떠한 깊음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오는데 장애물이 될 수가 없죠.
그러므로,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느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사랑을 베풀어 주는데 이 사랑이 우리를 향해서 뛰어와요. 40:43
그런데 여러분 장애물 경주 봤죠. 올림픽 때 장애물을 세워놓고 장애물을 깡충껑충 뛰어넘는다. 여기에 바울 선생은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데 장애물을 세워 보았었습니다.
그게 사망이란 장애물을 세워놓으니깐 하나님의 사랑에 그것도 탁 뛰어넘어 생명이란 장애물 세워놔도 뛰어오죠. 천사들이란 장애물을 세워놔도 하나님 그 뛰어오죠 권세자에 대한 장애물을 세워놔도 그걸 뛰어넘어 오죠. 현재 일을 장애물 장래일이라는 장애물을 세워놔도 뛰어넘어오죠. 능력이란 장애물로 막아놓아도 뛰어오죠 큰 장애물을 세워놔도 더 높이 뛰어오죠. 예쁜 장애물을 세워도 그걸 건너서 뛰어오죠 뭐 어떤 장애물을 세워 놔도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41:36
그러니 여러분 어마어마하고 형언할 수 없이 질기고 힘센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쯤 하나님의 사랑을 설명했으면 그 이상 방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여러분에 대한 사랑이 이렇게 무시무시하고 마귀가 보기에는 지긋지긋하도록 사랑을 하십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사랑 하고는 너무나 차이가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높고 얼마나 깊습니까? 42:24
온 천산에 새들의 깃털을 다 잡아서 철필로 삼고 온 바다를 다 먹물로 삼고 온 하늘을 두루마리로 삼아도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사랑을 다 기록할 수 없다고 했어요. 그러니 뭐 여러분 아유 하나님이 나 같으면 어떻게 사랑하겠나. 그런 소리를 아예 하지도 마세요. 또 조금 잘못했다고 해서 막 하나님 날 버렸다 그럴 정도의 하나님 사랑이면 사랑이 아니죠. 43:01
일단 여러분의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고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는 이상 자빠져도 찾아오시고 넘어져도 찾아오시고 걸쳐도 찾아오시고 드러누워도 찾아오시고 똥간에 빠져도 찾아오시고 좌우간 하나님의 사랑이 온천하에 미치지 않은 곳이 없어요. 끝까지 따라 붙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잡힌 여러분은 절대로 버림받지 않습니다. 어떠한 힘도 여러분을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우리 35절부터 끝까지 다시 한번 이것을 생각하고 음미하면서 같이 읽읍시다.
43:50
롬 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