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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후 3:1-6(288) 새 언약의 일꾼 된 자 2025.2.2.
‘니는 혼자가 아이다’라는 독특한 제목을 가진 책이 있습니다. ‘니는 혼자가 아이다’라는 말이 부산이나 경상도 사람이 많이 사용하는 사투리라서 무슨 뜻인지 쉽게 잘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경상도 사람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말일 수 있습니다. ‘니는 혼자가 아이다’라는 말이 무슨 뜻이에요? “너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독특한 제목으로 만든 이 책은 심재훈 박사(1935~ )이 자신이 살아 왔던 인생에 대해 끈 자서전 내용을 담도 있습니다. 심박사님은 ‘힘들었제? 그 맘 다 안다. 내도 외톨이인 줄 알았드만 아이더라’며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간증합니다.
초등학교 4년밖에 다니지 못해 의사가 될 조건이 하나도 없었지만, 하나님이 자신을 의사로 만드신 까닭은 ‘소외되고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주라는 뜻이였다’고 그는 고백합니다. 할머니를 따라 일본 교토에서 살다가 조선으로 건너왔습니다. 광복 후 다니던 중학교에서 일본에 살았다는 이유로 쪽발이라고 놀림을 받자 흉기를 휘둘러 상해를 입힌 사건의 주인공이 되어 퇴학을 당하기도 합니다.
미군 부대 하우스 보이로 일하며 스스로 돈을 벌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북대 의대에 입학하기까지 드라마틱한 인생의 전반기를 보냅니다. 의과대학 시절 대구중앙교회에 출석하여 세례를 받습니다. 대구 동산의료원에서 수련의를 마치고 미국으로 건너가 아동문학가 최효섭 목사와 남부 뉴저지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이어갑니다.
그 후 심 박사는 1년에 한 번씩 한국을 찾아 3개월 동안 영등포의 요셉의원에서 의료봉사를 합니다. 사람들은 미국에서 돈 많이 벌고 잘 나가는 의사가 왜 한국의 영등포 쪽방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느냐? 물으면 이렇게 대답합니다.‘이렇게 힘들게 사는 사람들의 속내를 내가 알아요. 내가 그렇게 힘들게 살았거든요.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님이 나만 잘 먹고 잘 살라고 나 같은 놈을 의사로 만든 것 같지 않아요’라고 말합니다.
그는 미연방 교도소 의무과장직의 은퇴를 앞당겨 남은 생애를 통해 의료선교를 합니다.
의료 시설이 낙후한 중남미 카리브해 연안 국가는 약 대신 침술이 낫겠다는 생각으로 뒤늦게 72세에 한의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의료 봉사에 나섭니다. 환자를 만나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좋다는 심 박사는 여전히 플로리다주 팜비치에서 한국 교민들은 진료비를 받지 않고 진료 중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처럼 못나고 나처럼 부족한 자를 들어서 사용하시는 것에 감사하면서 니는 혼자가 아니고 하나님이 너 곁에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고백을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옆 사람에게 말해 봅시다. ‘니는 혼자가 아이다’. 그리고 내 자신에게 말해 봅시다‘나는 혼자가 아니다’ . 내 혼자 이 세상을 살아가고 내 혼자 나에게 얽혀 있는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처럼 힘들어 보이지만, 나는 혼자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좋으신 하나님이 언제 어디서나 항상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어떠한 곳, 어떠한 장소와 환경에 처해 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은 늘 나와 함께 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환난과 역경에 처해 있다고 하더라도, 굴하거나 좌절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함께 ‘거룩하신 하나님’을 찬양했으면 좋겠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주께 감사드리세. 날 위해 이 땅에 오신 독생자 예수 나의 맘과 뜻 다해 주를 사랑합니다. 날 위해 이 땅에 오신 독생자 예수 내가 약할 때 강함 주고 가난할 때 우리를 부요케 하신 주 감사 감사. 내가 약할 때 강함 주고 가난할 때 우리를 부요케 하신 나의 주 감사 감사.’
거룩하신 하나님은 내가 약할 때에 나에게 강함을 주시는 분입니다. 내가 가난할 때 나를 부요케 하심으로 나를 도와주시는 분입니다. 내가 어려움에 쌓여서 기진맥진하면서 탈진할 그 때에 좋으신 하나님은 언제나 내 곁에서 나를 이끌어 주시는 성실하신 하나님입니다.
이런 능력의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2월의 모든 시간을 하나님과 함께 동행 하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축원 드립니다.
고린도후서 3장은 사도 바울이 자신의 사도직에 대해 변호하는 내용입니다. 초대교회 당시에 많은 기독교인들은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사도가 되었다는 것을 믿지 않았고, 받아 들이지 않았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생각하는 바울은 스데반 집사를 앞장서서 죽였던 박해자요 살인자에 불과했습니다. 그 결과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서 회심하고, 예수님을 증거하고 복음을 전하는 것을 전적으로 믿지 않는 분위기가 팽배했습니다.
이에 바울이 쓴 바울 서신 추두에는 대부분 ‘예수 그리스도의 은예로, 또는 하나님의 뜻으로 사도된 나 바울’이란 문구를 항상 사용함으로서 바울은 자신이 예수님의 사도이며 제자 인 것을 증명한 것입니다.
바울은 사도직을 부인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인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강조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로 사도된 나 바울이기에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바울이 가지고 있는 사도권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변합니다. 아울러 자신이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도가 된 고린도 교인들이 자신의 사도권을 입증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1절, ‘우리가 다시 자천(自薦)하기를 시작하겠느냐? 우리가 어찌 어떤 사람처럼 추천서를 너희에게 부치거나 혹은 너희에게 받거나 할 필요가 있느냐?’
1절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자천(自薦)이라는 말은 스스로 추천한다는 말입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자신이 사도임을 증명하기 위하여 스스로 추천할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또한 다른 사람들처럼 누구의 추천서를 받아서 자신을 소개할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외국 대사로 임명되는 경우에는 대통령과 나라에서 발행하는 임명장을 수여합니다. 그리고 이 임명장을 받은 사람은 그 직책에 어울리는 권한이 주어지고, 그 맡은 바 임무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해서 일을 처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나라의 대사나 영사라고 하더라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표성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도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도직을 받았지만, 사도라는 직함으로 추천서나 임명장을 받은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가진 의심을 해결하고자 바울이 편지를 쓴 것입니다.
성도들 역시 하나님의 자여요 하늘나라 시민권을 가지고 있지만, 달리 증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무엇으로 내가 하늘일꾼이며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명할 수 있을 까요?
1. 성도는 그리스도의 편지입니다.
3절,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 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 판에 쓴 것이라.”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두고‘너희는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편지라는 말은 ‘그리스도를 말해주는 편지’라는 의미입니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뜻을 전하는 편지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편지에는 편지를 보내는 사람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담겨져 있습니다. 성도가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말하면서 그 뜻과 다른 내용이 들어가 있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편지가 아니고 다른 사람의 편지가 된다는 점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의 편지라면, 그 편지에 담겨져 있는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요?
요 6: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모른다면 그것은 가짜 편지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것이고 마지막 심판 날에는 믿음을 가진 자를 다시 살려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뜻을 전하는 그리스도의 편지입니다. 사라져 버릴 먹에다 새긴 편지가 아닙니다. 돌에 새겨서 오래오래 간다고 말하지만, 언젠가는 사라져 버릴 돌에 새긴 편지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사랑을 세상에 전하는 편지입니다.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말하면서 내 생각을 넣고, 내 고집을 드러내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면서 그 내용을 전하는 것은 내 편지이지 그리스도의 편지가 아닙니다. 이런 편지는 가짜 편지입니다. 편지는 보내는 이의 뜻이 온전히 담겨져 있을 때에 그 힘을 발휘하게 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편지로 살기 위해서는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채워져 있어야 합니다. 나의 기분과 감정과 판단에 따라 이리저리 휩쓸리는 신앙생활을 해서는 안 됩니다. 초지일관하게 나를 보내신 그리스도의 뜻에 복종하여 어느 곳도 마다하지 않는 그리스도 편지로의 사명을 감당하시기를 축원합니다.
3세기경 로마에 밸런타인(Valentine)이라는 수도사가 있었습니다. 수도원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특출한 재능이 있어 보이는데, 발렌타인 자신은 뛰어난 재능이 하나도 없어 고민에 빠집니다. 그렇게 자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재능이 무엇인지를 찾아 기도하다가 한 가지 일을 떠올리게 됩니다. ‘날마다 사람들에게 사랑의 말을 전하자’라고 생각하고 매일 사랑의 편지를 써서 사람들에게 전달합니다.
감옥에 갇혔을 때는 나뭇잎에 사랑의 편지를 쓰면 비둘기가 편지를 배달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편지에 용기와 위로를 얻게 됩니다. 순교한 후에 성자의 칭호를 얻습니다. 사람들은 매년 그가 순교한 날에 그의 뜻을 기려 사랑과 격려의 편지를 서로에게 전합니다. 발렌타인 수도사가 순교한 날이 2월 14일이고 그날이 바로 밸런타인데이입니다.
지금 발렌타인데이라고 말하면, 단순하게 초콜릿을 주고 받는 날로 인식되었지만, 본래는 그리스도의 편지로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그 목적이었습니다. 모름지기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편지로 세상에 나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편지를 필요로 하는 자에게 전해져야 합니다. 병으로 힘들어하는 자에게 능력의 편지로 가야하며, 실패한 자에게 승리를 약속하는 편지가 되어야 하며, 불화로 괴로워하는 자에게는 화목의 편지로 가야 합니다.
2. 성도는 그리스도의 일꾼입니다.
6절,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새 언약의 일꾼’으로 만들어 주셨다고 말합니다. 옛 언약이 무엇인가요? 옛 언약은 모세의 율법을 바탕으로 세워진 언약입니다. 이것은 오래된 약속으로 구약(舊約)을 말합니다.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율법이 말하고 있는 옛 언약입니다.
하지만 이 옛 언약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단 한사람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 어떤 사람이라도 행함으로 하나님이 정해 놓은 의로움의 기준에 도달할 수 있는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노력이나, 인간의 의로움이나, 인간의 선행으로는 하나님이 정해 놓은 구원의 기준을 충족시킬 수 없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새로운 새 언약을 세워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천국백성이 되고, 구원을 얻게 된다는 약속입니다. 이것이 바로 새로운 약속인 신약(新約)입니다. 오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세워진 새 언약의 일꾼들입니다.
그러기에 썩어져 버릴 옛 습관에 따라 세상의 모습으로 행동하는 육신의 추악한 것들을 모두 벗어 버려야 합니다.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고, 예수님이 정해 주시는 기준과 규칙에 따라 일꾼으로서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성도는 자신의 능력에 따라 책임을 부여받은 것이 아닙니다. 능력을 갖추어서 직분을 얻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입니다. 베드로는 평범한 사람이었지만 그리스도께서 택하셔서 일꾼으로 삼으셨습니다. 이 사실을 절대 잊어서 안됩니다.
새 언약의 일꾼은 사랑으로 서로 감싸는 사람들입니다. 서로의 죄를 들추어내어 비난하지 말고, 서로 울어주고, 서로 기도하고 기다려주는 일꾼이어야 합니다. 모든 만족이 하나님께로 부터 온다는 확신을 가지고 충성을 다하는 그리스도의 일꾼이 되시기 바랍니다.
4절 보세요.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 이 같은 확신이 있으니’
하나님을 향하여 이 같은 확인이 있다고 바울은 말합니다. 어떤 확신인가요? 제가 이미 말씀해 드린 것과 같이 1)성도는 그리스도의 편지라는 확신입니다. 그리고 2)성도는 하나님이 새우신 새로운 언약의 일꾼이라는 확신입니다.
확신(確信)과 의지(意志)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확신은 확고부동한 믿음이라는 뜻이며, 의지는 어떠한 일을 이루려고 하는 마음을 말합니다. 확신과 의지는 항상 같이 움직이는 단어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 자신이 믿는 마음과 의지가 함께 하게 되면, 실천력이 생깁니다. 부딪히는 난관이나 장애물을 잘 극복해 나갈 수 있습니다.
확신이 없다면, 헤쳐 나갈 의지가 없다면, 작은 난관이라도 사람은 포기하게 됩니다. 작은 돌맹이에게도 발이 걸려서 넘어져 큰 상처를 입을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주시는 강한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주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교회 일을 해야 하고, 세상에서 그리스도를 전하는 일에 매진해야 합니다. 그럴 때에 난관에도 굴하지 아니하고, 맡은 바 사명에 따라 소임을 감당할 수 있는 새 일꾼이 되는 법입니다.
항상 주님의 손만 잡고 나아가십시오. 어려울 때마다 하나님에게 기도하며 나아가면 문제는 해결되고 사명을 완수하게 된다는 점을 절대 잊지 말도록 합시다.
일본이 기독교의 불모지이지만, 일본에도 믿음의 훌륭한 인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의 한 사람이 이가라시 겐지(五十嵐健治, 1877-1972)라는 분입니다. 그는 동양 제일의 크리닝 회사인 하쿠요샤(白洋舎)를 창업한 사람입니다. 이가라시는 새 사업을 물색하면서 흔들리지 않는 몇 가지 중요한 기준을 정합니다.
‘1)주일 예배드리는 것에 지장이 없는 것. 2)거짓말이나 에누리를 할 필요가 없는 것. 3) 남에게 이익이 되고 손해가 되지 않는 것.’
그는 자기의 유익을 위한 사업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사랑, 사람 사랑을 실천하기 위한 사업을 찾았습니다. 그것이 세탁업이었습니다. 이가라시는 자신의 사업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세탁장이, 이웃의 때로 밥을 먹는다고 하지만 사람의 때 정도가 아니다. 인류의 더러운 죄를 한 몸에 떠 맡고 십자가의 고초와 치욕을 받으신 그리스도를 생각할 때에 나 같은 인간이 남의 때를 씻는 것이 무엇이 부끄럽겠는가? 세탁은 하나님이 주신 성스러운 업이다. 이 사업에 평생을 바치자.’
대기업 미쯔비시에서 잘 나가던 회사원이 회사를 때리 치우고 세탁쟁이가 된다는 것에 대해 창피한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세탁이야말로 하나님이 주신 거룩한 직업이라 믿습니다. 1907년 7월 일본에서 처음으로 드라이클리닝에 성공하면서 동양최대 청소와 세탁업으로 일본에서 이름을 드러내게 됩니다. 그는 1950년대에 80세가 넘은 노구에도 불구하고 교도소, 병원 등에 복음을 들고 홋카이도까지 비행기로 다니면서 주님의 사랑을 전하였다고 합니다.
세상에는 직업의 높고 낮음이 있습니다. 돈을 많이 버는 직업도 있고, 귀하게 여기는 직업이 있는 반면 천하게 보는 직업도 있습니다. 성도는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느냐?’라는 세상적 관점보다, ‘내가 이 일로 인해 하나님에게 어떤 영광을 드러내는 일꾼이냐?’라는 점에 초점을 잡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 그리스도의 새일꾼으로서 우리에게 주어진 2월의 모든 시간 속에서 하나님에게 충성하고 주의 복음을 올바르게 드러내는 사명자가 되도록 노력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