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 신 6:4-9
.제목 : 다음세대 유산
어떤 로마인이 유대인 랍비에게 물었습니다. ‘당신들은 하나님 이야기만 하고 있는데 도대체 하나님이 어디에 있다는건지 알려 주시오. 그러면 나도 하나님을 믿겠다’고 심술궂은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랍비는 이 로마인의 손을 잡고 밖으로 데리고 나가 하늘의 태양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저 태양을 똑바로 쳐다 보세요”
이 말을 듣고 로마인은 태양을 잠깐 쳐다본 후 소리쳤습니다.
‘엉터리같은 소리는 집어 치워요! 어떻게 태양을 똑바로 쳐다 볼 수 있단 말이예요’
그러자 랍비는 다시 다음과 같이 일러 주었습니다.
“당신은 지금 하나님이 창조하신 많은 것들 가운데 하나인 저 태양조차 잠시도 볼 수 없으면서 어찌 위대하신 하나님을 눈으로 볼 수 있게 해달라고 말할수 있죠?”(탈무드)
어디 이런 사람뿐입니까? 종종 전도를 하다보면 ‘저 사람은 법없이도 살 사람입니다’ ‘나는 법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이오.’ 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스스로 착한 사람이다는 말이겠지요. 나아가 이 말은 남의 생명과 재산을 해롭게 하지 않는다는 말 일것입니다. 그러나 좀 더 자세히 그 말을 들여다 보면 무언가 부족한 것을 보게 됩니다. 남에게 손해는 안끼쳤을지 모르나 남을 위해 나와 내것을 내놓고 손해 보는 자리까지는 가지 않은 것을 저작 놓치고 있다는 사실은 모르는 것 같습니다.
이에대한 매우 좋은 예를 공관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과 부자관원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눅18:18-30에 내용중 부자로써 관직에 있는 사람이 예수님에게 와서 묻습니다.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내가 어릴 때부터 5-10계명은 다 지켰습니다 이 말을 들으신 예수님은 대답하십니다. “네가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라 그러면 하늘에서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그랬더니 부자 관리는 누가복음에서는 심히 근심했다고 했으나 다른 마태복음(19장) 마가복음(10장)의 동일한 본문에서는 근심하여 가버렸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매우 중요한 두가지를 예수님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두가지란 무엇일까요? 주님을 따르기 원하거든 남을 해하지 않는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만 끝나지 말고 여기에서 더 나아가 너 자신과 네가 가진 재산을 내놓을 수 있는 그 사랑, 즉 주님의 값없이 주신 은혜를 받은 은혜의 법, 또는 그리스도의 법을 동시에 가진 자가 되어야 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여러분, 복음을 믿는 것(세례받기까지)은 천국에 입학하는 자격을 받는 허가증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요, 율법을 지키는 것은 입학한 그 학교의 규율(교칙)을 따르는 것, 즉 성화라 할 수 있고, 그리고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여 사는 것은 영화로운 하나님의 나라를 마음속에 풍성하게 누리며 사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복음과 율법과 사랑은 전혀 모순되지 않습니다. 이 모두를 완전히 이루신 분이 예수님임을 믿으시는 분은 아멘.
유대인은 하루에 세 번씩 기도를 드립니다. 그런데 이 세 번중 두 번은 반드시 기도서에 있는 쉐마를 암송합니다. 이것은 그들의 죽음직전까지 계속 이어집니다. 그들의 유언은 우리와 전혀 다릅니다. 우리같으면 아마 땅이 있고 집문서가 있고, 보험에 가입된 돈이 있으면 아마 이렇게 하겠죠 ‘아들아, 속사리 어디에 금산 어디에 진주 또는 사천 몇 번지에 아버지 재산으로 땅과 집이 있으니 네 앞으로 등기해 주마.’ ‘딸아 너는 무엇을 줄꼬, 내 통장에 네 몫으로 적금 든 것 또는 암보험으로 저축해 놓은 것 너에게 주마.’ 그럴지 모릅니다. 그런데 유대인은 마지막 임종시에 자녀들에게 무엇으로 유언으로 남길까요? 쉐마입니다. 가족과 주위 사람들을 모으고 자녀들의 얼굴을 하나씩 살핀 후 최후로 하는 유언이
“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때에든지 누웠을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테필린’=마23:5에서는 ‘경문’)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메주사’=직사각형으로 된 곳에 쉐마가 기록 )
오늘 본문 6:1-3은 서론에 해당하고 4-9절은 그들이 대대를 타고 대물림해주는 최고의 재산 쉐마입니다. 이들은 말을 배우기 전에 더 먼저 배우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쉐마입니다.그래서 이들의 하루의 시작도 그들의 일생도 쉐마로 시작해서 쉐마로 마칩니다.
놀라운 사실은 2절에 기록한대로 쉐마교육은 세대차이를 뛰어넘는다는 사실입니다. 특별히 삼대입니다. 왜일까요? 아브라함 이삭 야곱, 이 삼대가 세대차이가 없으면 영원히 세대차이가 없음을 의미하고 있는 영적으로 매우 소중한 의미요 이와같이 삼대만 잘 지켜 행하면 그 후손 대대로 영원한 보장을 누리고 그들의 날이 장구하고 번성할 것을 약속해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질문을 하나 던져 자문자답해보아야 합니다. 그것은 신약의 교회는 중동의 유대 사마리아 소아시아 로마등 유럽 영국 미국 한국 중국에 이르기까지 세계선교를 위해 복음을 전했고 지금도 전하고 있는데 자기 민족과 자기 자녀에게 대대로 말씀 전수하는 일에 성공했다고 볼 수 있겠는가?라는 물음입니다. 이스라엘은 비록 4200년 역사를 지내오는 동안 2000여년정도 나라를 잃은 민족이지만 어떻게 지구상에서 멸하지 않고 대대로 지켜 올 수 있었는가입니다. 이에대한 해답을 바로 철저히 유일하신 하나님 신앙을 가르친 쉐마교육에서 찾습니다. 즉 자녀들에게 하나님 신앙을 대물림해주는 전통, 수직교육, 수직사상, 수직전도를 잃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지상명령인 오늘 본문말씀과 신약의 지상명령 마28:18-20을 동시에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할 일이 지금이라도 내 자녀부터 예수님의 제자를 만드는 일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정예배입니다. 여러분 오늘부터 반드시 가정예배부터 시작하십시오. 시간이 서로 안맞다고요, 바쁘다고요. 늦게 집에 온다고요. 그러니까 드려야 합니다. 성경은 하루의 순서가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와 같이 저녁에서 아침입니다. 신본주의의 개념입니다. 저녁은 어둠이요, 고통이요, 절망이요 죄이지만 아침이 되었다는 말씀은 빛이요 승리요 희망이요 자유로 끝난다는 의미입니다. 가정예배를 저녁에 드리면 자녀가 일찍 들어오는 일에 힘씁니다. 밤문화에서 벗어납니다. 무엇보다 가정예배는 세대차이를 극복합니다. 또한 부모의 야곱이 큰손자인 므낫세가 아닌 작은 손자 에브라임에게 오른손을 얹어 축복할 때 그들의 아버지 요셉이 잘못된 줄 알고 ‘그리 마옵소서’했다가 아버지 말씀에 그대로 받아 순종하는 것처럼 아버지 영적 권위가 세워지게 됩니다.
그러면 무엇을 가르치라는 것입니까?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한분이시다.’에서 ‘하나’라는 뜻의 히브리어는 ‘에하드’인데 그 음가가 13이라는 숫자가 나옵니다. 또한 하나님은 본질인 ‘사랑’이라는 히브리어가 ‘아하바’인데 역시 그 음가가 재미있는 것은 13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 고난당하신 성금요일이 유대월력으로 니산월 13일입니다. 이 한분이시고 사랑이신 하나님을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하여 사랑하라고 말씀합니다. ‘마음을 다하라’는 말은 유대인들은 마음을 열망하고 동경하는 자리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므로 선한 법을 받아 마음에 접수하여 따르고 악은 거부하라는 의미입니다. ‘성품을 다하라’는 말은 우상숭배를 강요할 때 죄를 짓느니 율법을 지키기 위해 순교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힘을 다하라’는 말은 어느 것보다도 하나님이 우선 순위가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서 이것을 네 머리에 두라고 하지않고 마음에 새기라고 말씀합니다. 시내산에 주신 십계명을 또는 2000년전 주님의 말씀하신 것처럼 그 감동을 현재에 체험하듯이 읽으라는 말씀입니다. 누구에게 이것을 가르치라고 합니까? 7절을 다시 보십시오.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어떻게요.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었을 때에든지 (저녁) 일어날 때에든지(아침)그것을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으라했습니다. 나아가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하라는 것입니다.
소수민족이지만 저력있는 유대인을 보십시오. 세계 곳곳 각 분야에서 유대인은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두지 않았습니까? 노벨상 수상자의 26%가 유대인들입니다. 특히 노벨 과학상 수상자의 60%가 유대인입니다. 전 세계 3000여 대학의 교수가 유대인이며, 25%의 유대인들이 총장입니다. 미국에서 큰 빌딩이나 은행이나 대형 백화점의 주인 90%가 유대인의 것입니다. 세계의 곡물시장, 무기시장, 헐리우드 영화계까지 유대인들이 주름잡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1300만명의 불과한 유대인이 어떻게 그런 큰 역할을 감당할 수 있습니까? 바로 율법과 계명을 가르치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의 집이 그렇게 되고 있습니까? 주님의 전을 여러분 그런 마음으로 출입하십시오.
특별히 우리교회는 다음세대 어린이 전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투자에 인색하지 말아야 합니다.
영국의 톰 리즈(Tom Rees)씨가 조사한 것에 의하면, 영국의 전체 크리스찬 신자들은 그 75%가 나이 14살이 되기 전에 그리스도를 믿어 영접했고, 20%는 14-21세 사이에 크리스찬이 되었고, 오직 전에 신자의 5% 만이 21세 이후에 그리스도를 영접했다는 것이다.
미국 침례교회의 위대한 목사인 트루엘(George Truett)도 1,200명의 남자 크리스찬들을 상대로 조사를 해보았는데, 다음과 같은 결과를 통해 어린이 신앙교육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 있습니다.
1,200명 중 오직 세사람만이 나이 45세가 넘어서 예수를 믿어 영접했습니다. 13명은 40-45세 사이에 크리스찬이 되었습니다. 약 30명의 사람들은 그들의 나이가 30세가 넘어서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1,200명의 크리스찬들 중에서 1,100명이 그들의 나이 21살이 되기 전에 예수님을 그들의 주님으로 영접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음세대에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어야 합니다. 히브리 민족의 조기교육은 유명합니다. 나라를 잃어버린 2,000년이란 긴 세월 속에서도 언어, 문화, 역사전통을 계승하여 마침내는 독립하여 세계를 놀라게 한 것은 그들의 자녀교육, 곧 정신이 살아있었기 때문입니다.
모짜르트는 6살 때부터 독일 황제 앞에서 연주했다고 합니다.
스펄죤 목사는 20세때 영국사회에서 대설교가로 말씀증거에 힘썼습니다.
헨델은 10살 때부터 작곡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리빙스톤은 23세 때에 검은 땅 아프리카로 찾아가서 선교와 그리고 그 백성을 살리는 일에 헌신했습니다.
존 칼빈은 26세 때에 기독교 강요라는 위대한 저서를 내고 종교개혁에 나섰습니다.
집안이 잘되려면 3가지 소리-책읽는 소리, 일하는 소리, 아이웃음소리-가 들려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어린이가 줄어드는 저출산 고령화문제가 최근 우리나라의 사회문제입니다. 저출산의 가장 심각한 이유중의 하나가 결혼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는 생각때문입니다.
통계청은 26일 이같은 내용이 담긴 ‘2008년 보건·가족 부문 사회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조사에 따르면 만15세 이상 인구중 결혼을 해야 한다는 답변은 68.0%로 나타났고, 미혼의 경우에는 남자의 64.8%가 결혼에 찬성했지만 여자는 46.5%만 결혼에 찬성했습니다.
미혼 여성의 경우 ‘결혼해도 좋고 안 해도 좋다’는 응답이 46.8%로 나타나 결혼에 대한 의무감이 약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세상 농사는 한 해 잘못되면 다음해에 잘 지으면 되는데, 자식농사는 그럴 수 없습니다. 누구나 다 알면서도 잘 안 되는 것이 자녀 교육입니다. 사람의 인격형성에 가장 중요한 시기는 6세까지인데, 이때 이미 인생의 태도가 85%는 결정됩니다. 그래서 잠언 22장에 보면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인 수직교육이 가정에서부터 일어나야 합니다. 다음세대에 남겨줄 이 유산을 유대인들은 일찍이 쉐마교육을 통해 실천함으로써 전세계를 움직이고 있습니다.하나님의 말씀은 주님을 체험하게 합니다. 주님을 만난 체험이 있을때에 자신으로부터 변화가 일어납니다. 변화된 사람이라야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예배가 여러분을 바꿀 최고의 시간이요 주님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주님을 만나는 본어게인(born again)한 사람은 세상을 변화시키고, 또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을 갖게 될 것입니다. 이와같은 영원한 유산을 다음세대에 물려주는 여러분 가정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 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