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들은 망원경 하면 별을 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별, 즉 항성은 워낙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아무리 큰 망원경으로 확대하여 보더라도 맨눈으로 보는 것과 똑같이 점으로 보이며, 이거 봐야 아무 재미도 없다. 그래서 아마추어 천문가들은 별은 그냥 맨눈으로 보고, 망원경으로는 안 본다. 그럼 망원경으론 뭘 보나? 달, 목성 토성 같은 행성을 보거나 성운 성단 은하 이런 것을 본다.
전자는 행성 관측, 후자는 딥스카이 관측이라고 보통 부른다. 행성 관측은 달의 분화구, 목성의 줄무늬와 위성의 움직임, 토성의 고리 등을 아주 세밀하게 관측한다. 딥스카이 관측은 눈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 희미한 성운이나 성단, 은하를 관측하고 스케치한다. 밤하늘에는 이런 딥스카이 대상들이 수천개 있기 때문에 평생 봐도 볼 것이 떨어지지 않는다.
간혹 두개의 별이 아주 가까이 붙어 있는 것을 보는 이중성 관측이라든가, 새로이 나타난 초신성을 본다든가, 밝기가 변하는 변광성의 광도 측정 이런 때는 망원경으로 별을 보기도 하지만 위의 두가지만큼 일반적인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별을 보려고 망원경을 산다는 사람들은 뭘 모르는 사람들이다. 별은 그냥 맨눈으로 보는 것이 제일 잘 보이고 멋있다.
2. 망원경만 있으면 천체관측을 할 수 있다. ==> 망원경 있어도 아무것도 못 본다.
많은 분들이 망원경만 사면 당장 달도 보고 목성 토성도 보고 오리온 대성운도 보고 안드로메다 은하도 보고... 이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오늘 밤에 목성이 어디에 있는지 아시는지? 어디 있는지 알아야 볼 것이 아닌가? 오리온 대성운을 보려고 한다. 오리온 대성운이 어디에 있나? 책을 찾아보면 "오리온 자리의 삼태성 밑의 소삼태성 가운데..." 이런 식으로 설명되어 있다. 오리온 자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야 찾을 것 아닌가?
망원경으로 무언가를 보기 위해서는 우선 별자리부터 알아야 한다. 별자리를 모르면 달 외에 어떤 것도 볼 수 없다. 그런데 이 별자리라는 것이 그냥 하늘 쓰윽 쳐다보면 금방 아 저게 무슨 자리, 이렇게 되는게 아니다. 북두칠성이나 오리온자리 같이 금방 눈에 띄는 것 외에는 별자리 모양을 찾아내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관측 나갈 때마다 열심히 찾아서 외워도 별자리 모양을 대충 익히는 데만 몇 달이 걸린다.
별자리를 익히는 데는 망원경 절대 필요없다. 앞서도 말했듯이 별자리는 맨눈으로 보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천체 관측에 관심이 있다면 망원경 살 궁리를 하지 말고 오늘밤부터 옥상에 올라가서 하늘의 별부터 봐라. 그리고 천체 관측 입문 서적을 사서 보라. 서점의 교양과학 코너에 가보면 아마추어 천문 관련 서적이 많이 있다. <교양 천문학>, <아시모프의천문학>, <스티븐 호킹의 우주> 이런 책들은 별보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책이므로 피하는 것이 좋고, <재미있는 별자리여행>, <천체관측의 첫걸음>, <밤하늘 관측>, <아빠, 천체관측 떠나요!>등의 책을 골라야 한다.
3. 배율이 높으면 좋은 망원경이다. ==> 배율은 별 의미가 없다.
망원경에 대해 잘 모르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망원경 광고를 보면 대개 500배니 600배니 하는 엄청난 배율이 적혀 있다. 그래서 많은 초보자들이 배율이 높으면 좋은 망원경이라고 생각한다.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망원경은 배율이 고정되어 있지 않고, 아이피스를 갈아 끼움으로써 원하는 배율을 마음대로 얻을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원한다면 500배가 아니라 1000배 2000배의 배율도 낼 수는 있다. 적어도 이론상으론그렇다. 그러나 실제로는 어떤 망원경으로 낼 수 있는 최고배율은 망원경의 구경 및 품질에 따라 제한된다. 구경이 작은망원경, 광학 성능이 떨어지는 망원경에서 무리하게 배율을 올리면 상이 흐려져서 제대로 보이지가 않기 때문이다.
망원경의 성능을 결정하는 일차적인 요인은 구경이다. 구경 60mm 망원경보다는 100mm 망원경이, 그보다는 200mm 망원경이 더 밝게, 더 자세히, 더 또렷하게 보인다. 그러나 구경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광학 성능이다. 렌즈를 어떤 것을 썼는지, 반사경의 연마 정밀도가 어떠한지, 각종 부품이 얼마나 튼튼하고 견실하게 만들어졌는지 등이 망원경의 성능을 좌우한다.
위에 말한 500배율 망원경 이런 것들을 보면 대개 구경 60mm의 싸구려 굴절 망원경이다. 이런 망원경으로는 500배는커녕 100배도 내기 힘들다. 만일 구경이 100mm 인 굴절 망원경이라면 200배까지는 가능하며, 같은 100mm 라도 ED 나 플로라이트라고 하는 특수한 렌즈를 쓴 굴절 망원경은 300배에서 400배까지도 가능하다. 물론 이런 특수 소재 망원경은 엄청나게 비싸다.
그리고 무조건 고배율이 좋은 것은 아니며, 관측하려고 하는 대상에 따라 적절한 배율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대개 성운 성단 관측에서는 50배 내지 100배의 배율을 가장 많이 쓰고, 목성이나 토성을 관측할 때는 200배에서 300배가 적당하다.
이중성 관측에서는 이보다 더 높은 배율을 쓴다.
4. 망원경은 백화점에서도 판다. ==> 망원경은 백화점에서 사면 절대 안 된다.
사진 : 저가형 백화점 스타일 망원경(이런걸로 잘 보일까???)
무슨 물건을 사려면 별 생각 없이 백화점에 가는 분들이 있다. 이런 분들은 망원경도 백화점에서 사려고 할 것이다. 실제로 백화점의 완구 코너나 용산 전자상가의 카메라 가게에 가면 망원경이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혹은 신용카드나 홈쇼핑 카탈로그에도 20만원에서 30만원쯤 하는 망원경들 광고가 나온다. 앞서 말한 500배율 망원경이 바로 이런 것들인데, 이런 망원경들의 성능은 어떨까 하고 궁금해 하는 분들이 많다.
간단하게 말하자. 이런 망원경들은 좋게 말하면 하이테크 장난감이고 나쁘게 말하면 쓰레기다. 이런 망원경 샀다가는 99% 후회한다.
망원경은 전문 메이커의 제품을 사야 하고, 이런 망원경은 백화점이나 카메라 가게에선 안 팔므로 망원경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가게에서 사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망원경을 전문적으로 파는 업체는 통틀어서 열군데가 안 된다. 망원경이란 것이 얼마나 특별한(?) 물건인지 감이 잡히시는지?
5. 초보자용 망원경은 싼 망원경이다. ==> 초보자는 싼 망원경으로는 절대 못 본다.
그런데 이런 전문업체에서 판매하는 망원경이라고 해서 다 쓸 만한 것이 아니다. 이런 업체에서 파는 망원경 중에서도 싼 것들은 앞서 말한 백화점 망원경이랑 별 차이가 없는 것이 가격만 더 비싼 경우가 있다. 대개 30~40만원 정도 하는 60mm 경위대식 굴절 망원경이 이런 것들인데, 이런 망원경 산다고 하면 도시락 싸들고 다니면서 말리고 싶다.
물론 망원경을 쓸 사람이 초등학생이나 중학생 정도라면 이런 것도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이런 망원경을 가지고 관측을 꾸준히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개 달, 목성, 토성 한두번 보고 나면 더 이상 볼 것이 없어 흥미를 잃고 구석에 처박히기 십상이다. 30만원이 뉘집 강아지 이름도 아닌데 이렇게 날리기는 아깝다.
이것은 60mm 굴절로 아무것도 볼 수 없다는 것은 아니다. 사실 60mm 나 그보다 더 작은 구경의 망원경으로도 훌륭하게 관측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려면 관측하는 사람이 실력이 무척 뛰어나야 한다. 관측이란 하면 할 수록 눈이 훈련되기 때문에 처음에는 도저히 안 보이던 것도 여러번 반복해서 보면 점점 더 잘 보이게 된다. 가령 60mm 굴절로 초보자는 절대로 못 보는 희미한 성운 성단도 숙련자는 잘 볼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60mm 굴절은 초보자용이 아니라 오히려 전문가용 망원경이다.
6. 망원경은 비싼 물건이 아니다. ==> 망원경은 무지 비싸다.
사진 : 천문대급 하이앤드 망원경(이게 얼마일까요???)
일반인들은 망원경이 그다지 비싼 물건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알고보면 그렇지가 않다. 보통 쓸만한 망원경이라고 하면 100만원부터 시작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정도면 80mm 적도의식 굴절 망원경이나 114mm 적도의식 반사 망원경이다. 그러나 이정도 망원경도 초급자용으로 분류되는 망원경이며, 관측자가 열성적인 사람이라면 일년 남짓해서 더 좋은 망원경으로 바꾸게 되기가 쉽다.
수년 동안 쓸 수 있을 만한 튼튼한 망원경이라면 200만원 정도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이 정도도 베테랑 아마추어의 관점에서 보면 겨우 중급자용 망원경에 불과하다. 어디 가서 "아이구, 좋은 망원경 가지고 계시네요" 이런 소리 들으려면 한 500만원 정도는 투자해야 하고, 남들이 가진 망원경을 부러워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하려면 한 1000만원 정도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또 좀 경력이 있는 아마추어라면 자기 소유의 개인 천문대를 지어서 거기에 대형 망원경을 설치해서 보는 것이 꿈인데 이 정도면 몇억대의 돈이 들어간다.
7. 싸고 좋은 망원경을 구하고 싶다. ==> 그런 망원경은 없다.
망원경에 대해 질문하는 것을 보면 하나같이 싸면서도 좋은 망원경을 추천해 달라고 한다. 하지만 그런 망원경은 없다.
가령 내가 지금 100만원을 들고 망원경을 산다고 해 보자. 시중에 나가보니 100만원 짜리 망원경이 A, B, C 세 모델이 있다. 이 세 가지가 모두 장단점이 있다. 만일 A 망원경이 B C 망원경보다 같은 값인데 성능이 훨씬 좋다면 아무도 B C 망원경을 사지 않을 것이고 당연히 B C 망원경 회사는 일찌감치 망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는 것은 B C 망원경도 나름대로 장점이 있어서 어떤 점에서는 A 망원경보다 낫고, 그 점 때문에 B C 망원경을 사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 어떠한 상품이든지 그것의 가격은 그 상품의 가치를 반영하게 마련이다. 물론 고가의 옷이라든가 수입 화장품 같이 가격 구조가 왜곡되어 상품의 실제 가치와 동떨어진 가격표를 달고 있는 것도 있긴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비싼 물건일수록 좋은 물건임은 당연하다. 망원경도 여기서 예외는 아니다.
8. 망원경으로 보면 멋있게 보인다. ==> 하나도 안 멋있다.
사진 : 안드로메다 은하 (눈으로 이렇게 보이면???)
망원경을 사려고 하는 분들을 보면 천체관측에 대한 열의가 대단해 보인다. 그런데 실제로 망원경을 산 다음에 처음 관측을 한 다음 반응은 두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우와~~~" 고 다른 하나는 "애걔~~~" 다.
우리가 책이나 잡지에서 보는 목성 토성의 사진은 허블 망원경으로 찍은 것이거나, 아니면 갈릴레오호 같은 탐사위성이 목성 바로 곁에서 찍은 것이다. 성운 성단도 마찬가지여서 팔로마 천문대의 5m 반사 망원경 이런 걸로 찍은 엄청나게 화려한 사진이 책을 장식하고 있다. 이런 망원경이나 탐사위성을 띄우는 데는 수백억에서 수천억의 돈이 들어간다.
겨우 100만원 200만원 투자해서 산 망원경으로 이런 사진처럼 멋있는 모습을 바란다면 좀 비양심적이라고 생각되지 않는가? 웬만한 망원경으로 목성 토성을 보면 성냥개비 머리알 만하게 보인다. 성운 성단은 오리온 대성운 같이 그런대로 볼 만한 것도 있지만, 안드로메다 은하만 하더라도 처음 보는 사람에겐 그저 희미한 빛덩이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 시점에서 기특하게도 "우와~~~" 한 사람은 계속 천체관측을 하면서 망원경도 업그레이드하는 수가 많고, "애걔~~~" 한 사람은 몇 달 내에 망원경 중고로 팔아치우는 수가 많다.
사실 관측의 묘미는 계속 꾸준하게 관측을 함에 따라 처음에는 잘 보이지 않던 것도 보이게 되고, 같은 대상이라도 관측 횟수가 늘어남에 따라 점점 더 많은 세부를 관측하게 되는 것에 큰 비중이있다. 그 정도의 인내심이 없다면 천체관측에 도전하지 않는 것이 낫겠다. 망원경 팔고 그 돈으로 다른 취미를 개발해 봄이 어떨지.
9. 망원경만 사면 관측 열심히 다닐 것이다. ==> 망원경 있어도 관측 많이 못한다.
망원경 구입을 꿈꾸는 사람들 가운데는 망원경만 사면 매일 밤이라도 관측을 하겠다고 덤비는 분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망원경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한 달에 한 번 쓸까 말까이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아마추어 천문 좀 한다 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이 딥스카이 관측이나 사진촬영에 몰두해 있고, 행성관측이나 CCD 촬영 같은 분야는 거의 하는 사람이 없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이 딥스카이 관측이나 사진촬영은 도심지에서는 절대 불가능이고 제대로 하려면 반드시 강원도나 지리산 같은 어두운 하늘을 찾아가야 한다.
서울에서 강원도를 가려면 왕복 300km 가 넘고 오가는 데만 대여섯시간이 걸린다. 이 때문에 직장인이 평일에 관측 간다는 것은 회사에서 잘릴 각오를 하지 않은 다음에는 불가능이고 주말 밖에 없다. 그럼 1년에 52번 있는 주말 중에서 월령이 안 좋은 때를 빼면(달이 밝으면 별이 안보이기 때문에...) 26번이고, 그 중에서 날씨가 맑을 확률은 잘 해야 50% 이므로 13번이다. 그 중에 설이나 추석 연휴는 제외해야 하고, 회사에서 특근이 있다거나 결혼한 사람의 경우는 장모님 생신이니 이런 거라도 겹치면 또 못 나간다.
아무리 잘 해 봐야 한 달에 한 번 이상 쓰기가 무척 어렵다는 얘기다.
관측을 나가는 데 드는 비용도 장난이 아니다. 서울에서 강원도 태기산 같은 데 갔다 오려면 왕복 300km 가 넘는데, 기름값과 고속도로 통행료만 따져도 4~5만원이다. 여기에 사진이라도 찍을라치면 필름값에 현상인화료에 해서 또 2~3만원이 든다. 한 번 관측 나가는 데 못해도 6~8만원이 깨지니 시간이 많다 하더라도 돈 때문에 못 나가는 것이다.
이렇게 한 달에 한 번밖에 관측을 못 나간다면, 망원경 본전을 어떻게 뽑을 것인가? 해답은 한 번 나갔을 때 제대로 보자는 것이다. 제대로 된 관측을 하려면 준비를 철저하게 해야 한다. 망원경 가지고 막상 나가면 설치하느라고 시간 다 보내고 막상 보려 하다 보면 뭘 볼 건지 막막해서 그저 이것 저것 찾다가 시간 다 보내는 수가 많다. 비싼 돈 주고 산 망원경, 어렵게 시간 내서 나간 관측 기회가 너무나 아깝지 않은가?
관측을 나가기 전에 먼저 성도를 찾아보고, 볼만한 대상이 무엇이 있는지 알아본다. 관측지에 몇 시에 도착해서 몇시에 철수할 것인지, 그 동안에 무엇무엇을 할 것인지 계획을 세워야 한다. 욕심을 내서 무리하게 하는 것보다는 꼭 해야 할 것 몇 가지와 시간이 남으면 할 것으로 분리하는 것이 좋다. 필요하다면 부분 성도를 출력하거나 복사하거나, 관측 대상의 데이터를 뽑아서 가져가야 한다. 이런 노력이 없다면 아무리 좋은 망원경 있어 봐야 실력은 제자리 걸음이다.
※ 밤하늘의 별을 쫓는 열성적인 베테랑 아마추어 천문학자 이준희님께서 글을 보내주셨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정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