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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 3가의 해프닝 (단편소설)
작가: 백화 문상희
낭독: 김인희 소설가
(유튜브: 댕댕이와 책을ᆢ운영자)
https://youtu.be/udFlgraB-KE?si=a6fkTQm1z7xFDdFZ
따르릉, 따르릉, 따르릉!
"아이고 한가한 작가님,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구설수 시인님!
그나저나 구설수 시인님은 요즘 뭐 하시나요?"
"예~, 저야 뭐 글 나부랭이나 쓰고 있지요!
어쩐 일로 전화를 하셨습니까?"
"네~, 그냥 한가해서 전화를 한번 해봤습니다. 하하하
이번 일요일에 별일 없으면 종로에서 한번 볼까요?"
"예, 뭐 특별한 일 없으니 나가볼게요!"
"음~, 그러면 이번주 일요일 오후 4시쯤 종로3가역
13번 출구 근처 청다방에서 만날까요?"
"예, 좋습니다.
그러면 일요일에 만나서 대포나 한잔 합시다."
한가한 작가와 구설수 시인은 가끔 만나서
대포 한잔 나누는 지인 사이였다.
따르릉, 따르릉, 따르릉,
"구설수 시인님 어디쯤 오셨나요?"
"아, 제가 조금 늦었네요! 죄송, 죄송, 하하하"
"그래요, 그나저나 청다방엔 사람이 꽉 차서
근처 횡단보도 앞에 노땅 꽈배기 집은 자리가
넉넉하니 그쪽으로 오세요!"
"넵, 알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그럼,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구설수는 30분이나 늦어 미만 한 마음에
부리나케 출구 계단을 뛰어서 올라갔다.
"아이고 한가한 작가님 늦어서 미안합니다."
"아이고 괜찮습니다.
얼른 자리에 앉으세요!
저야 한가해서 만나자고 한 것인데요 뭐, "
"여하튼 오랜만에 보니까 반갑습니다."
"그나저나 노땅 꽈배기 집에는 이 핫도그가
맛있어요!
그래서 핫도그 하고 아메리카노 시켰답니다."
"아이고 한가한 작가님, 고맙습니다."
두 사람은 오랜만에 만나서 안부를 주고받고
잡담을 이어갔다.
"그래요, 한가한 작가님!
어디 가서 한잔 하면 좋을까요?
오늘은 제가 멋지게 한번 쏠려고 작정을 하고
나왔답니다."
"에~, 그럴 것 없어요!
내가 가끔 한가할 때 가보는 노래방 미팅이 있으니
나를 따라서 한번 가 보실래요?"
"어떤 곳인지는 몰라도 한가한 작가님이
가 보셨다니까 저도 한번 가보지요 뭐, 하하하"
"자~, 그러면 가봅시다.
저기 파고다공원 골목 쪽에 있답니다."
두 사람은 길 건너 파고다공원 쪽으로 걸어갔다.
"그나저나 한가한 작가님!
어떤 곳인지 대충 얘기나 듣고 갑시다."
구설수 시인은 담배를 꺼내서 물었다.
"뭐, 별다를 것 없어요!
노래방 미팅인데요!
남자는 회비가 만원이고 여자는 회비가 없어요!
주최 측에서 준비한 과자와 과일을 먹으면서
노래도 하고 춤도 추고 자유스럽게 놀다가
마음에 드는 사람 있으면 빈방에 가서 커뮤니케이션
하는 미팅이고 장소는 저기 5층에 모여라 노래방입니다."
"아이고 나는 미련해서 이런 곳에 와보지 못해서요!
살짝 긴장되고 생소하니까 어색하네요! 하하하"
"뭐, 그냥 놀러 온 것이니 편하게 생각하세요!
미팅에서 마음에 들면 술도 마시고 또 합의가 되면
모텔로 직행할 수도 있지요! 하하하 하하하
자~, 5시 모임이니까 올라가 봅시다."
"험, 험, 노래방 미팅이라 ᆢ
그래요 한가한 작가님 덕분에 구경이나 해봅시다."
두 사람은 밀려드는 사람들이 많아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려야 했다.
경험자인 한가한 작가는 구설수 시인을 데리고
5층으로 올라갔다.
5층 전체를 쓰는 노래방이라 규모가 큰 편이었다.
엘리베이터 앞 입구에는 대기하는 사람을 위해
의자와 테이블도 있었다.
테이블에는 60대 여인 둘과 70대 여인도 한 사람이
있었다.
그때 구설수 시인은 깜짝 놀랐다.
20년 전 이혼한 애엄마와 똑같이 닮은 여자가
앉아있었다.
말이라면 한가락하는 구설수는 예전 아내와
닮은 여인보다 옆에 있는 여인네가 마음에 들어
무턱대고 명함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시인이자 유튜브 소설가입니다.
시간 나실 때 네이버나 유튜브에 제 이름 한번 쳐보세요!
소설이 재미있으면 좋아요도 눌러주세요! 하하하"
"예~, 알겠습니다."
명함을 받아 든 여인은 구설수를 위아래로
유심히 훑어보았다.
그 여인는 나이가 들었어도 고전적인 향기를 풍기는 미인이었다.
그때 옆에 있는 70대 여인네도 명함을 달라고 했다.
구설수는 내키지 않았지만 명함을 건넸다.
"아이고 구설수 시인님!
뭐 처음이라고 어색해하더니만 말솜씨가
저보다 월등히 뛰어납니다 그려! 하하하하"
"저야 뭐 문학회를 운영하다 보니 말이야
잘 하지만 여자 꼬드기는 것에는 숙맥입니다. 하하"
엘리베이터 앞에서 여러 사람이 웅성거렸고
그때 회장이라는 사람이 나와서 말했다.
"자~, 콩깍지 모임 회원님 여러분!
5시에 시작하니까 빨리빨리 들어오세요!"
두 사람은 여러 사람들과 함께 룸으로 들어갔다.
대형 룸에는 여인네들 열댓 명과 남자들 십여 명이
앉아있었다.
노래방 대형 룸의 미팅 모습은 말로만 듣던
완전히 요지경 천국 풍경이었다.
특징이라면 여자들은 진하고 화려한 화장을 했고
남녀 모두가 나름대로 외모를 가꾸고 나왔다.
마이크를 집어든 70대 정도로 보이는 회장이
시작을 알리는 말을 했다.
"에~, 안녕하십니까 콩깍지 회원님 여러분!
오늘 처음 나오신 분도 있고 자주 나오시는
회원님도 계시네요!
에~, 여러분 아시다시피 우리 콩깍지 회원님들은
외롭고 쓸쓸한 싱글입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 모였으니 다과를 드시면서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저에게 말씀하세요!
그러면 제가 빈방으로 안내할 테니 둘이 가셔서
커뮤니케이션해 보세요!
우리 콩깍지 모임에서 미팅으로 만난 남녀가
재혼을 한 사람도 여러 명 있답니다.
남자는 회비 1만 원이고 여자는 회비가 없어요!
그러니까 앞으로 싱글인 친구가 있으면 누구든지
언제든지 데리고 나오세요!
노래하실 분은 노래하시고 미팅을 원하면
저에게 상대를 골라서 말씀해 주세요!"
그때 과자와 바나나를 먹던 여자들이 여기저기서
물을 달라고 회장에게 졸랐다.
"에~, 회비가 부족한지라 물과 음료수는 개인이
카운터에서 사서 드셔야 합니다."
"아이고 회장님!
줄려면 할딱벗고 주라는데 기왕 과자를 주셨으니
물도 주세요!"
돈 잘 쓰는 호구 잡아서 얻어먹기로 작정을 하고
나온 여자들은 끈질기게 요구를 했다.
그것을 지켜보던 호방한 구설수 시인이
회장에게 말했다.
"회장님, 물이 필요한 것 같으니 제가 물을 사서
나눠주도록 하겠습니다."
"아, 그래요?
오늘 처음 오셨는데 그래도 될지 모르겠네요!
여하튼 고맙습니다."
구설수와 회장은 카운터로 나갔다.
"생수 30개와 캔맥주 한 개만 주세요!"
구설수는 카드로 계산을 마치고 물과 캔맥주를
들고 룸으로 들어왔다.
"자~, 콩깍지 회원님 여러분!
물이 없다고 성화를 하니까 오늘 처음 오신 분이
생수 30개 찬조를 했답니다.
모두 박수로 환영해 주세요!"
와~, 짝짝짝 짝짝짝 박수소리가 룸을 울렸다.
"자, 생수를 찬조하신 회원님!
기왕 일어선김에 노래부터 한곡 부르고 들어가세요!"
"뭐, 그러면 노래보다 저는 시인이자 소설가이니까
자작시 한편 낭송을 해 보겠습니다."
구설수는 긴장감에 마이크를 잡은 손을 덜덜 떨면서도
예전에 하던 가락으로 시 낭송을 멋들어지게 했고
박수소리를 들으며 자리에 앉았다.
회장의 인사말이 끝나자 성질 급한 사람들은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하고 신명이 난 사람들은
박수를 치면서 춤을 추었다.
또하나 신기한것은 옆자리에 앉은 남자가 여자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누르면서 물었다.
"우와~, 가슴이 풍만하신데 이거 진짜요?"
그래도 여자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대답을 했다.
"아, 당연히 진짜지요!
그런 가짜는 안 달고 다닌답니다.
그 가짜보다 훨씬 비싼 가슴입니다.
아시겠어요? 호호호 호호호"
여자가 그렇게 말하자 남자는 주눅이 들어버렸다
그때 한가한 작가가 구설수 시인에게 말했다.
"다른 사람이 마음에 드는 사람 찍기 전에
얼른 골라보세요!
마음에 드는 여자 있으면 내가 쪼인 시켜줄게요!"
"아이고 그나저나 나는 생소한 자리라서 뭐
어안이 벙벙하네요! 하하하"
"에이, 그래도 기왕 나왔으니 한 명 찍어보세요!
서로 마음에 들면 나가서 술 한잔 해도 되니까요!"
"나는 뭐 고르고 찍고 할 것도 없이 우리도 둘이고
하니까 아까 대기실에서 만난 두 여자와 나가서
한잔 하도록 합시다."
"그래요, 그러면 내가 가서 얘기를 할게요!"
한가한 작가가 일어서는 동시에 구설수 시인이
마음에 들어 하던 여자를 누군가가 데리고 나갔다.
"아이고 참 일찍 얘기하라니까 우리가 머뭇거리는
순간 그 여자를 데리고 나갔네요! 쯔쯔쯔"
"뭐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하하하"
"그럼 다른 여자 골라보세요!
늦으면 이쁜 여자는 다 팔려갑니다."
구설수 시인은 계면쩍어서 문 입구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한가한 작가가 구설수가 한 여자를 쳐다보고
있는 줄 짐작하고 말했다.
"구설수 시인님!
저기 입구에 두 번째 여자가 마음에 드세요?"
"뭐, 좀 그러네요! 하하하하
아무려면 어떻겠습니까!"
그러자 한가한 작가는 바로 회장을 불렀다
"회장님, 오늘 처음 오신 구설수 시인이 저기
문 앞에 두 번째 여자가 마음에 든답니다."
한가한 작가의 말이 끝나자 회장은 두 사람을
떠밀어 옆에 있는 빈방으로 몰아넣었다.
"자~, 두 사람이 마음에 드는지 커뮤니케이션
해보세요 알았지요?"
두 사람이 빈방으로 들어가자 회장은 문을 닫았다.
구설수의 상대는 60 전후로 보이는 아담한 키에
예쁘장한 여자였다.
여자의 다소곳한 모양새에 관심을 가진
구설수는 호방한 성격 탓에 말문을 열고 이것저것
자랑과 질문을 번갈아가면서 말을 이어갔다.
구설수는 캔맥주 한 개를 원샷으로 마신 탓에
말이 끝없이 이어졌다.
그때 회장이 문을 열고 두 사람을 불렀다.
"아니, 두 사람 지금 신혼방 차렸습니까?
방에 들어가 하도 안 나와서 찾으러 왔네요! 하하하"
콩깍지 모임의 내막을 모르는 구설수는 룸으로
돌아와서도 좀 어벙벙했다.
그리고 옆에 있던 한가한 작가가 보이지 않았다.
한참이 지나서야 한가한 작가가 돌아왔다.
"아니 어디를 갔다 오는가요?"
"아이고 나는 구설수 시인이 옆방에 들어가서
하도 안 나와서 나도 다른 여자와 잠깐 미팅을
했지요!
그나저나 그 여자는 어땠어요?"
"뭐, 아무 소리 없는 것 보니 아닌 것 같은데요!"
"한가한 작가님은 어땠어요?"
"나도 모르겠는데요? 하하하"
"그러면 우리 이것저것 다 치우고 맨 처음 밖에서
본 두 여자와 술이나 한잔하러 갑시다.
어차피 오늘 한가한 작가님께 한잔 쏠려고 작정을
했으니 오늘은 내가 쏘겠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합시다."
구설수의 말이 끝나자 한가한은 두 여자를 불렀다.
"오늘 처음 오신 구설수 시인이 두 여자분이
마음에 들어 한턱 쏘겠답니다.
그러면 어디 가서 저녁 겸 한잔합시다."
"호호호 좋지요!
멋진 시인님이 사주신다니 기꺼이 나가야지요! 호호호"
그때 한가한 작가와 미팅을 했던 50대 후반의
여자가 끼어들었다.
"아이고 한가한 작가님!
나와 미팅하고 그냥 가시면 섭섭하지요!
나도 좀 그 자리에 끼워주세요!"
여자가 그렇게 말하자 호방한 구설수가 답을 했다.
"그러세요 뭐,
이것도 인연인데 같이 가도록 합시다."
콩깍지 모임의 생리를 모르는 구설수가 그렇게
말을 하자 여인네들은 호구를 만났다 싶어서
깔깔거리면서 구설수의 기분을 맞췄다.
결론은 남자 둘에 여자가 셋이 된것이다.
한가한 작가와 구설수가 마음에 들어 했던
두 여자 그리고 한가한 작가와 미팅을 했던
여자까지 다섯 사람은 밖으로 나왔다.
무엇을 먹을지 우왕좌왕하다가 오십 대 여자가
천하 곰탕집을 찍었다.
여자들이 협의하여 만두와 해물전 그리고 홍어회
까지 시켰고 술은 막걸리를 주문했다.
다섯 사람은 막걸리로 건배를 하고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했다.
"저는 아까 말씀을 드렸다시피 시인이자 수필가
유튜브 소설가인 구설수입니다."
평소에 동물 흉내와 농담도 잘하던 한가한은
조용히 앉아있다가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했다.
"흠, 아시다시피 저는 한가한 작가입니다."
다음에 차례대로 인사를 했다.
"저는 50대 후반 백 여시라고 합니다".
호구에게 얻어먹자고 따라나선 여인네가
인사를 했다.
"저는 60대 초반 전 장미라고 합니다."
미인급 여자가 인사를 하자 마지막 여자가
말을 했다.
"아이고 아까 예전 부인을 닮았다고 하더만요
둘이서 잘해보세요! 호호호"
"아참, 정말 닮았으니 닮았다고 했지요!"
빨리 본인 소개나 하세요!"
"아~, 그런가요?
구설수 시인님이 아까 오팔 년 개띠라고 했지요?
저도 동갑내기입니다."
"아니, 이름도 알아야지요!
물론 가명일 수도 있지만 말이에요!"
연거푸 술잔을 들이켠 구설수는 기분이 업되어
큰 목소리로 좌중을 휘저었다.
"호호호 저는 고 상녀 라고 합니다."
"어쩐지 고상하더라 했지요!
그 고상함 때문에 제가 반했답니다. 하하하하"
구설수는 처음 나온 생소한 모임에 빠져들었고
술기운에 기분 내키는 대로 내질렀다.
"자, 오늘은 사실 한가한 작가님께 한턱 쏠려고
작정을 했으니 제가 풀코스로 쏘겠습니다."
호방한 성격의 구설수는 그렇게 말하자 콩깍지
모임의 여자들은 호구를 만났다 싶어서 구설수가
하는 말에 맞장구를 치며 비위를 맞췄다.
식사를 마친 다섯 사람은 찻집으로 가서
차를 마셨다.
거기서 알게 된 사실은 진장미와 고상녀는
언니 동생하는 그런 사이였다.
여자들은 오늘의 호구인 구설수에게 집중적으로
질문 공세를 펼쳤다.
구설수는 예전 아내의 사진까지 보여주며
대학시절 메이퀸이었다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어머, 장미하고 진짜로 많이 닮았네!
구설수 시인님 장미하고 또 사랑에 빠지는 거
아니에요? 호호호"
언니인 고상녀가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구설수는 아픈 과거사를 털어놓으며 심각한
표정으로 눈물을 글썽거렸다.
"아, 나는 예전 아내와 닮은 여자는 싫어요!
고상한 여인네 고상녀가 더 좋다니까요! 하하하
그나저나 여기서 이럴게 아니라 노래방으로
갑시다.
기분도 좋고 아까 노래도 못했으니 노래방에 갑시다."
구설수가 그렇게 말을 하자 집에 가야 한다며
여인네들은 왠지 망설이며 무엇을 바라는 눈치였다.
오늘의 호구 구설수는 여인네들이 비위를 맞추자
헤어지기가 싫었다.
"아, 그러면 택시비 줄 테니까 노래방으로 갑시다."
구설수의 그 말이 떨어지자 모두 일어서서
노래방으로 향했다.
구설수는 돈을 찾겠다며 은행 인출기 쪽으로
가자 백여시가 구설수의 옷을 들고 따라나섰다.
은행 인출기에서 구설수가 소리쳤다.
"아이고 휴대폰에 카드가 들어있는데 휴대폰이
어디 있는지 안 보여요!"
구설수는 캔맥주에 막걸리를 마셔 취해 버렸고
횡설수설했다.
"구설수 시인님 잠시만 계셔보세요!
제가 찻집에 가서 찾아볼게요!"
백여시는 찻집으로 가서 휴대폰을 찾아왔다.
한참을 헤매던 구설수는 돈을 인출해서
노래방으로 갔다.
"아이고 구설수 시인님 취하셨나 봐요!"
"히히히 미안합니다.
조금 취했는데 아까 휴대폰 찾느라 긴장을 해서
이제 좀 깨어났어요! 하하하하 하하하"
노래방에서 차례로 돌아가면서 노래를 불렀다.
노래 솜씨가 좋았던 구설수가 노래를 할 때는
여자들이 모두 나와 구설수의 기분을 맞췄다.
자리에 앉아서도 얘기의 중심은 오늘의 호구
구설수였다.
여자들은 구설수의 옆에 붙어 앉아서 기분을 맞췄다.
"자~, 진장미 선생님은 집이 용산구이니까
택시비 삼만 원, 고상녀 선생님은 녹번동이라고
그랬지요? 그러면 역시 택시비 삼만 원, 그리고
백여시 선생님은 중곡동이요? 똑같네요 뭐
가만~, 한가한 작가님은 집이 부천 이잖아요!
집이 멀리 있으니 오만 원은 드려야겠네요!"
사실 구설수는 집이 먼 한가한 작가님 께만
택시비를 드리려고 했지만 시간도 늦었고 기분이 업되어
모두에게 택시비를 나누어 주었다.
여자들은 민망한 기색 하나 없이 택시비를 받아
주머니에 넣었다.
오늘의 호구 구설수는 저녁에 찻집까지 또
노래방에 들러 택시비까지 줬으니 여인네들에게
완전히 왕자님 대접을 받았다.
구설수는 예전 아내와 닮은 여인보다 고상함이
돋보이는 동갑내기 고상녀에게 마음을 두고
대화에 집중했다.
"아이고 구설수 시인님은 노래도 너무 잘하세요!
시도 쓰고 소설도 쓰시고 노래까지 잘하시니
못하는 게 뭐예요? 호호호 호호호"
"나는 여자 꼬드기는 것에는 숙맥입니다. 하하하"
"에이, 거짓말하지 마세요!
하시는 걸 보니 여자가 줄줄 따르겠는데요 뭐! 호호호"
"아닙니다 아녜요!
한복에 꽁지머리를 한 머저리를 누가 좋아할까요!
노래는 좀 하지요! 하하하 하하하 하하하
그래서 우리 아들이 가수잖아요 가수!"
"어머, 정말이에요?"
"아, 진짜라니까요 네이버 치면 나옵니다."
구설수는 기분이 업되어 계속 자랑을 늘어놓았다.
"그건 그렇고 이렇게 끼 많은 이십 년을 어떻게
혼자서 사셨나요?"
고상녀는 구설수의 내심을 알아보기 위해 계속
질문을 했다.
"저기 한가한 작가님도 혼자고 나도 홀아비요!
술 한잔 들어가고 여인네를 보면 물건이 벌떡벌떡
서니까 거 여자들도 한 번씩 주고 그래봐요 좀!
"아이고 여자가 뭐 아무 때나 주나요?
마음이 맞아야 주든가 말든가 하지요! 호호호"
백여시가 나서서 분위기를 맞췄다.
"아이고 구설수 시인님!
그런 끼를 가지고 어떻게 혼자서 사셨나요? 호호호"
이번에는 고상녀가 웃으며 말했다.
"아, 어떻게 살기는 어떻게 살아요!
여자가 생각날 때는 어쩔 수 없이 자위를 하고
살았지요!
여자들도 자위를 한다고 들었는데요 뭐!
여자는 남자보다 더 자극적이더만요!
오이며 가지며 오만것을 다 집어넣고 요즘은 최신식
발브레이턴지 뭔지도 있다면서요! 하하하 하하하"
구설수는 술기운에 거침없이 말을 내질렀다.
여자들은 그 말에 하하 호호 웃으며 긍정의
말과 함께 박수를 쳤다.
"자, 시간이 늦었으니까 이제 마지막 한곡씩
부르고 갑시다."
그때 계속 노래만 하던 한가한 작가가 그렇게 말했다.
다시 차례가 한 바퀴 돌아 구설수의 차려가 되었다.
구설수는 업된 기분을 자중하며 말을 이어갔다.
"제가 처한 상황과 너무 비슷한 노래라서 이 노래를
부르면 눈물을 흘린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이해를 해주세요!"
구설수는 정색을 하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제목은 김재희의 "애증의 강,,이었다.
어제는 바람 찬 강변을 나 홀로 걸었소
길 잃은 사슴처럼 저 강만 바라보았소
강 건너 저 끝에는 수많은 조약돌처럼
당신과 나 사이엔 사연도 참 많았소
사랑했던 날들보다 미워했던 날이 더 많아
우리가 다시 저 강을 건널 수만 있다면
후회 없이 후회 없이 사랑할 텐데
하지만 당신과 나는 만날 수가 없기에
당신이 그리워지면 저 강이 야속하다오
사랑했던 날들보다 미워했던 날이 더 많아
우리가 다시 저 강을 건널 수만 있다면
후회 없이 후회 없이 사랑할 텐데
하지만 당신과 나는 만날 수가 없기에
당신이 그리워지면 저 강이 야속하다오
당신이 그리워지면 저 강이 야속하다오
구설수는 이혼의 아픈 기억과 서러움에 복받쳐
노래를 부르면서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구설수는 떨리는 목소리로 끝까지 노래를 불렀고
자리는 숙연해졌다.
"아이고 미안합니다.
내가 처한 상황과 너무도 같은 가사라서
저도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 눈물을 보였네요!"
"구설수 시인님!
저는 구설수 시인님의 솔직한 감정과 눈물을 보고
이제부터 선생님을 믿기로 했어요!
노래 부르시는 진지함에 제가 반했어요!
구설수 시인님, 기운내시고 멋지게 살아가세요!"
"예, 고맙습니다 고상녀 선생님!
저도 처음 볼 때부터 선생님을 마음에 두었어요!
내가 좋아해도 될지가 모르겠네요!"
"아이고 천천히, 천천히 서로를 알아보면 된답니다."
고상녀는 진심으로 구설수를 위로하는 것 같았다.
드디어 마지막으로 한가한 작가님의 노래가
끝나자 일행은 열 시쯤 밖으로 나왔다.
"한가한 작가님!
집이 부천 이잖아요?"
"예~, 아직은 전철이 있으니까 1호선 타면 됩니다.
그나저나 구설수 시인 덕분에 즐거웠어요!"
"아, 나도 1호선 타고 용산역에 내리면 됩니다."
용산이 집이라고 했던 전장미가 한가한을
따라나섰다.
"그럼 고상녀 선생님은 어디로 가시나요?"
"아~, 저는 3호선 타고 가면 된답니다.
구설수 시인님 덕분에 오늘 즐거웠어요! 호호호"
"아이고 별말씀을요!
저는 오늘 종로에서 새로운 신세계를 경험했네요!
고상녀 선생님, 다음에 또 뵙기를 희망합니다."
"예~, 명함 있으니까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나저나 백여시 선생님은 어디로 가시나요?"
"아~, 구설수 시인님 집이 면목동이라고 했지요?"
"예, 그렇습니다."
"그러면 저하고 같이 가시면 됩니다.
5호선 타고 7호선 갈아타면 저는 중곡역에서
내리고 구설수 시인님은 면목동으로 가시면 돼요!"
"그러면 5호선 3호선은 같은 장소니까 갑시다."
구설수와 백여시 고상녀 세 사람은 전철역으로
걸어갔다.
"아이고 시인님 아직도 취하신 것 같아요!"
그때 백여시가 돈 잘 쓰는 호구 구설수의
팔짱을 끼고 부축하듯 붙어서 걸었다.
그러자 고상녀는 의미심장한 눈빛을 홇기며
인사를 했다.
"구설수 시인님!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예, 덕분에 저도 즐거웠습니다.
안녕히 들어가세요!"
다섯 사람은 인사를 끝으로 각자 전철역으로 갔다.
구설수와 백여시는 5호선 전철에 올라탔다.
늦은 시간이라서 자리가 많이 비어있었고
둘은 나란히 않았다.
"우리 큰오빠 나이쯤 되시니까 오빠라고 부를게요
오빠도 저를 그냥 동생처럼 대해주세요! 호호호"
백여시는 그렇게 말하고 계면쩍어서 입에 손을 대고 웃었다.
"뭐, 그럽시다. 하하하
그나저나 유튜브에 제가 쓴 콩트 "산속에 꽃뱀,,
찾아서 한번 읽어보세요!"
"예~, 산속에 꽃뱀이 있다는 얘기는 들었답니다.
조용할 때 한번 읽어볼게요! 호호호"
구설수는 백여시의 행동이 꼭 꽃뱀 같아서 은연중에
콩트 얘기를 했다.
두 사람은 군자역에서 7호선으로 갈아타고
한 정거장 중곡역에서 백여시가 내렸다.
"구설수 시인님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네, 들어가세요 감사합니다.
백여시는 인사를 하면서 알 수 없는 묘한 눈빛을
보냈다.
구설수도 면목역에서 내려 집 방향으로 향했다.
구설수는 오늘 식사비와 찻값 그리고 노래방비에
네 사람 택시비까지 수십만 원을 썼다.
"야, 구설수!
돈은 쓰라고 버는 것 아닌가?
오늘 신세계를 경험했으니 쓴 돈이라고 생각해라!
그리고 어차피 한가한 작가 만나서 한턱 쏠려고
했잖아! 하하하"
구설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집으로 들어갔다.
구설수는 제자리로 돌아와서 집안일과
프리랜서 일에 매진해서 종로에서 쓴 돈을
이틀 만에 복구했다.
종로에 다녀오고 사흘째 되는 저녁 무렵에
고상녀에게서 문자가 왔다.
"그날 잘 들어가셨나 궁금도 하고 그래요!
지금 통화 가능하세요?"
구설수는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고 고상녀와
통화를 했다.
"안녕하세요 고상녀 선생님!"
"네~, 안녕하세요 구설수 시인님!
그날 집에 잘 들어가셨는지 궁금해서요! 호호호"
"예~, 덕분에 콩깍지 모임인지 뭔지 몰라도
새로운 신세계를 경험했네요! 하하하하 하하하"
"그나저나 구설수 시인님은 끼가 그렇게 많은데
어떻게 혼자서 사셨나요?"
"아이고 애들 키우느라 정신없이 살다 보니
시퍼런 청춘 다 보내고 넋다리 홀아비가 됐네요!"
"아이고 무슨 말씀을요!
구설수 시인님처럼 젊게 사시면 장가를 몇 번이고
갈 수가 있겠는데요 뭐!"
"아이고 무슨 말씀을요!
그날 보셨다시피 나는 실속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구설수 시인님은 재혼에 대해서
생각해 보신 적이 있나요?"
"아이고 애들 키우다 보니 시퍼런 청춘 다 보내고
늘그막에 무슨 재혼입니까!
혹시 나 같은 사람 좋다고 달라드는 여자가
있으면 몰라도요! 하하하 하하하
여하튼 나는 재혼이고 애인이고간에 마음에 드는
여자와 연애나 해봤으면 소원이 없겠습니다. 하하하"
"네~, 그러시군요!
저는 구설수 시인님이 재혼을 하셔서 행복하게
사셨으면 해서 물어본 겁니다.
그나저나 그 중곡동에 산다는 여자 조심하세요!
오십대라고 내세워서 꽃뱀 노릇 할지도 몰라요!"
"하긴 그것도 그렇기는 해요!
중곡동 백여시가 예쁜 친구 소개해줄 테니
일요일에 술 한잔 하자고 문자가 왔답니다."
"거 봐요 그러니까 꽃뱀 조심하라 이 말씀이에요!"
"아이고 걱정 마세요!
나도 이미 눈치를 챘답니다. 하하하하"
전화 끊고 나면 당장 중곡동 백여시와 종로
콩깍지 회장 전화도 차단해서 캡처 사진
보내드릴게요!"
고상녀는 구설수에게 경계심을 부추겼고
구설수는 고상녀도 자신을 마음에 두었나 보다고
생각을 했다.
"고상녀 선생님!
그러면 이번주 일요일엔 우리 둘이 만나서
한잔 합시다."
"아이고 좋지요 구설수 시인님!
어디서 만나면 좋을까요?"
"저는 딱히 다른 곳은 몰라요!
다만 우리 집 근처에 자주 가는 선술집과 갈비탕을
잘하는 곳이 있으니 상봉역으로 오시면
제가 대접할게요!"
"예~, 알겠습니다.
그러면 시간과 만날 장소를 문자로 보내주세요!"
"뭐, 문자도 좋지만 집에서 3호선 타고 종로
3가 역에서 5호선으로 갈아타고 군자역 1-1번
승강장에서 4시쯤 기다리고 있을게요!"
"네, 알겠습니다.
그럼 일요일 4시쯤 군자역에서 뵙도록 할게요!"
두 사람은 약속 시간과 장소를 정했다.
구설수는 비단 한복을 차려입고 군자역으로
나갔다.
하지만 4시가 넘어도 고상녀가 보이지 않아
문자를 보냈다.
"고상녀 선생님, 어디쯤이세요?"
"네~, 지하철 파업 때문에 전철이 안 와서
좀 늦었네요!
종로 4가쯤 왔으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천천히 오세요!"
구설수는 좀 더 기다렸다가 고상녀를 만나서
상봉역으로 향했다.
구설수는 은근슬쩍 고상녀의 손을 잡았고
고상녀도 싫지가 않은 듯 가만히 있었다.
구설수는 30년만에 여자의 손을잡고 걷는것이라
가슴이 뛰었고 설레는 마음을 감출수 없었다.
구설수가 여자와 손을 잡고 걸어본것은 예전 아내와
연애할 때 그리고 신혼시절 잠깐 뿐이었다.
"구설수 시인님!
손이 무척 따뜻하네요!
역시나 정이 많으신 분이라 손도 따뜻하네요! 호호호"
그러면서 고상녀는 구설수의 몸에 기대고 걸었다.
구설수도 여자가 찰싹 붙어서 걸으니 기분이
좋은 듯 미소를 지었다.
전철에서도 고상녀가 휘청거리자 구설수가
부축을 하듯 살짝 껴안았고 남들이 볼 때
두 사람은 부부같이 대화를 했다.
구설수는 명품 갈비탕 집이라고 소개를 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고상녀 선생님!
뭐 드실래요?
이 집 갈비찜도 맛있어요!
"아니요?
날씨가 춥고 하니까 그냥 갈비탕 먹고 싶어요!"
"그래요 그럼!
갈비탕엔 청하가 좋은데 막걸리 한잔 정도밖에
못 드신다니까 술은 막걸리로 할까요?"
"네~, 그렇게 하세요!"
두 사람은 막걸리로 건배를 했다.
"우리의 노년을 위하여 건배~"
"노년의 아름다운 삶을 위하여~"
고상녀도 따라서 건배를 했다.
그런데 두 사람의 대화를 멀찍이서 엿듣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그 여자는 수시로 구설수와 여자를 관심 있게
쳐다보고 있었다.
서빙을 하는 예쁘장한 여자는 바로 구설수와
같은 빌라에 살고 서로 인사를 나누는 사이었다.
홀아비인 구설수도 처음엔 애인을 삼고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나이 차이가 너무많아
예전에 이미 포기를 했다.
두 사람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식사를 마쳤다.
"아~, 저녁은 자알 먹었으니 어디 가서 커피를
한잔 해볼까요?"
"네, 저기 커피숍이 보이네요! 호호호"
두 사람은 마치 연인처럼 손을 잡고 걸었다.
"아, 불쌍한 홀아비에게 자주 오셔서 객고도
좀 풀어주고 그래봐요! 허허 참"
"아이고 구설수 시인님!
부부도 아닌데 어떻게 여자가 함부로 몸을 주나요?
천천히 서로를 알아보고 우리가 재혼을 하게 되면
그때는 원하는 데로 줄게요!
남편이 되면 왜 안 주겠어요! 호호호 호호호"
그래도 구설수는 오늘 당장 급하기에 모텔을
쳐다보며 고상녀에게 눈짓을 했지만
고상녀는 딴청을 부리며 무시했다.
고상녀는 정말로 재혼을 마음에 둔 것처럼
말을 했고 구설수는 이제 뭔가가 되는가 싶어
기분이 들떴다.
둘이는 연인처럼 팔짱을 끼고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구설수는 핫 아메리카노를 시켰고 고상녀는
우롱차를 시켜서 마셨다.
두 사람은 오래도록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었다.
"구설수 시인님은 작가말고 직업이 뭐라고 하셨지요?"
"아~, 작가로는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워서
프리랜서 택배일을 하고 있답니다."
"아이고 그런일은 젊은 사람이 해야지요
힘들고 위험하잖아요!"
"뮈, 아직은 얼마든지 육체적인 일을 할수가 있답니다."
"여하튼 열정은 대단하십니다."
"고상녀 선생님!
홀아비가 어떻게 사는지 우리 집에 한번 가보실래요?"
"아이고 혼자 사는 홀아비집에 내가 왜 가요?
나는 이때까지 남자 집에는 가본 적이 없어요! 호호호"
"아이, 뭐 어때서요!
집에 캥거루 아들놈도 있는데요!"
"엥, 캥거루도 키우시나요?"
다 컸으면 독립하게끔 내쫓아야지요!"
"어차피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키워줬는데
그래도 취업해서 결혼할 때까지는 봐줘야지요!"
"예전 부인도 참 그렇네요!
어린애들 셋이나 두고 가버렸다는 말이에요?"
"뭐, 화류계 팔자를 지녔다니까 팔자대로
지 길을 떠난 거지요!"
"저번에 얼핏 들으니까 술집을 한다면서요!"
"예,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하네요!"
"어쨌거나 애들 키우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아, 애들 다 크고 나니까 내가 외로움을
타는 거지요!
그러니까 그대가 나를 좀 보듬어 줘 봐요 글쎄!"
"호호호 호호호
여자가 몸을 함부로 주면 안 된답니다.
나중에 서로 뜻이 맞으면 그때 가서 줄게요! 호호호"
구설수는 고상녀를 어떻게 해 보려고 했지만
여우 같은 고상녀는 교묘하게 말을 피해나갔다.
구설수는 연애도 하고 재혼도 하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라고 생각했지만 연애가 먼저라고 생각했다.
결국 오늘은 모든 것을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자~, 갑시다.
불광역까지 한 번에 갈 수 있는 6호선 태릉입구역
까지 모셔다 드릴게요!"
"예~, 그렇게 해주시면 고맙지요! 호호호"
여전히 두 사람은 손을 잡은 채 태릉입구역으로
향했다.
지하철로 가는 길에 꽃집이 보여 구설수가 말했다.
"꽃 한 송이 사드릴까요?"
"예~, 저는 금방 시들어버리는 꽃보다 화초가
더 좋아요!"
"그래요, 그러면 화초를 골라보세요!"
"네~, 이게 마음에 드네요! 호호호
하나 사 주실래요"
"예, 좋아하시면 얼마든지 사 드리겠습니다. 하하하"
고상녀는 구설수의 행동 하나하나를 유심히 살폈고
구설수가 소득에 비해 씀씀이가 헤프다는 것도
체크했다.
구설수는 막상 6호선 전철까지 갔지만 미련 때문에
그냥 보낼 수가 없었다.
"고상녀 선생님!
우리 전집에 가서 막걸리 한잔 더 합시다."
"네~, 그래요 선생님!"
고상녀가 순순히 대답을 하자 구설수는 잘됐다 싶어
주위를 두리번거려서 전집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묘한 것이 입구에 쳐놓은 비닐이 꼭 여자의
거시기를 닮았다.
그날따라 바람이 거세게 불어 비닐 지퍼를
열어놓고 아래위를 테이프로 붙여놓았다.
들어가는 사람도 나오는 사람도 뒤돌아
쳐다보며 한바탕 웃었다.
입담 좋은 구설수도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 입구가 영락없이 여자 거시기를 닮았네요!
하하하 하하하하하"
"아이고 그게 그렇게 크면 안 되지요! 호호호 호호호"
"뭐, 애기도 그 구멍으로 나오던데 뭘 그래요!"
"아이고 그것은 애가 머리부터 나오고 또
신축성이 좋아서 그렇답니다. 호호호 호호호호"
고상녀는 말을 되받아서 홈런을 쳐버렸다.
구설수는 이 말을 듣고 술을 한잔 더하고 대차게
밀어붙이면 될 것같이 생각을 했다.
두 사람은 한참을 웃다가 안으로 들어가서
고상녀가 좋아하는 굴 전과 막걸리를 시켰다.
이번에도 고상녀는 술잔을 받아놓고서 마시지를
않았다.
구설수 생각엔 고상녀가 술에 취해서 몸부터 주고 나면
불리한 입장이 될 것이라서 그런가 보다 하고 결론을 내렸다.
집 근처까지 불려 들이는 데는 성공했지만 단번에
깃발을 꽂으려는 구설수의 생각은 오판이었다.
고상녀는 위기 때마다 재혼을 하게 되면, 이라는
단서로 여우같이 교묘하게 빠져나갔다.
구설수는 바지 속에서 꿈틀거리는 욕정을 억누르고
고상녀를 보내야 했다.
"자~, 여기서 타시면 불광역까지 바로 갑니다."
"예~, 구설수 시인님!
오늘도 맛있게 먹고 화초 선물도 고마워요!
다음에 또 뵙도록 할게요!"
구설수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고상녀를 보냈다.
구설수는 집으로 돌아와서도 잘하면 연애도 하고
재혼도 하겠구나 하는 망상에 사로잡혔다.
구설수는 그래도 일을 나가면 하루에 이십만 원도
번다는 증빙을 문자로 보냈다.
하지만 뒷날 저녁에 온 문자는 정반대의
내용이었다.
"구설수 시인님은 정도 많으시고 좋으신 분인데
저는 그런 위험한 일을 하는 사람보다 연금을
받아서 편하게 살 수 있는 그런 사람을 원해요!
그리고 우리는 성격상 공통점도 없고 화합이
안될 것 같아요!"
문자를 읽은 구설수는 아연실색했다.
분명히 잘될 것 같았는데 이것은 아니다 싶었다.
구설수는 참담함에 막걸리를 마시며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그래, 뜬금없이 불려서 나간 노래방 즉석 미팅에서
그냥 한번 즐기는 것도 어려운데 여우 같은 소굴에서
애인을 만들고 재혼이라니 말도 안 되지 허허 참."
구설수는 술에 취해서 넋두리를 산문으로 써서
고상녀에게 문자로 보냈다.
(취중 넋두리)
지난날 나를 떠나간 것들은 수없이 많았다.
강물처럼 바람처럼 그렇게 흘러가버린 것들,
스쳐지난 인연으로 잠시 머문 것도 있었다지만
결국 그것도 때가 되면 어디론가 사라져 갔다.
매번 나는 헤어짐이 안타까웠고 슬펐다.
잡으려 할수록 떠날 시기만 앞당겨졌을 뿐이었고,
잡으려 할수록 그것들은 더 멀어져 갈 뿐이었다.
세월도, 사랑도, 청춘도, 마찬가지였다.
세월이 지나면 계절도 해도 자연스럽게 바뀌듯
내 곁에 머물게 할 수 있는 것이 그 어디 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지나간 것을 사색하며
조용히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떠나간 것들이 다시 올 것이라고 믿지도 말자
행여 소식이라도 전해올까 기웃거리지도 말자
한 번 가버린것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떠나간 그 모든것도 다시 돌아오는 일은 없다.
꿈은 꿈일 뿐이지 결코 현실이 될수가 없다.
가장 위험한 것은 외부의 유혹이 아니라
스스로 유혹에 빠져 헤어날 수 없는 것이다
이 사람아, 절대로 자가당착에 빠지지 마라!
언감생심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새로운 인연에 구구절절 애원도 매달리지도 말자
어차피 그것도 언젠가는 떠나갈 테니 말이다.
진인사대천명이라고 운명에 맡겨두면 될 것을ᆢ
나는 어제도 혼자였으며 아마 내일도 혼자일것이다
살아온 그대로 어쩌면 그것이 더 편할지도 모른다.
왜냐고 묻는다면 대답하리라, 인상사 부질없다고,
그것이 내가 타고난 팔자요 운명이니까 말이다.
문자를 보내고 이틀 동안 답이 없었다.
사흘째 되는 날 고상녀에게서 문자가 왔다.
"구설수 시인님!
저하고는 인연이 안 됐지만 분명히 좋은 짝이
나타날 거예요!"
구설수는 고상녀에게 재혼상대로 사실상 퇴짜를
맞은 것이다.
구설수 역시 흑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래도
사귈 수 있는 애인은 될수 있을것이라 생각했다.
"혹시 나를 고자라고 생각해서 그런것은 아닐까?"
구설수는 이렇게될줄 알았으면 미친척 하고
모텔로 데리고가볼걸 하는 후회도 밀려왔다.
단둘이 만날때 너무 양반 처럼 행동했던것에 대해
커다란 아쉬움이 남았다.
하긴 그런 즉석 미팅에 나오는 사람이 무슨
진정성이 있을까!
그저 맛있는 것 얻어먹고 선물이나 잘 사주는
그런 사람을 원하는 거겠지!
구설수는 외로운 사람끼리 만나서 술 마시고
하루쯤 즐기는건 몰라도 재혼상대를 고른다는것은
무리수가 아니었나 생각했다.
감성이 풍부한 구설수는 정에 쉽게 빠지고
상처도 오래가는 스타일이었다.
구설수는 술기운에 중얼거리며 옥상으로 올라가서
의자에 앉아 턱을 괴고 회상을 했다.
"고상녀의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도 알 수가 없으니
정말로 성격상 이질감에 공통점이 없어서일까?
아니면 그녀의 말대로 부자도 아닌 내가 위험한
일을 하고있는 직업때문이었을까?"
구설수는 일어나서 한참 동안 하늘을 바라보았고
가슴 아픈 이번일을 격은 후 다시는 종로 미팅에
다시는 나가지 않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구설수는 고상녀에게 퇴짜를 맞은 뒤 일주일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파고다공원 싱글 모임에 나온 사람들의 진실과
또 그들이 무엇을 추구하고자 하는지를 생각했다.
그래서 구설수는 친하게 지내는 깐깐해라는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깐깐해 여사님!
내가 어떤 모임에서 만난 여자에게 퇴짜를 맞았답니다.
그래서 여자의 속내를 알아보고 싶어서 전화를
드렸습니다."
"아이고 나도 여자지만 내가 그것을 어떻게 알아요!"
"에이 그래도 그렇지요!
차 한잔 하면서 자문을 좀 얻고 싶어요!"
"그래요!
연말이고 하니까 그냥 차나 한잔해요!"
구설수는 깐깐해 여사를 만나서 송년회 모임
얘기와 그동안 있었던 일을 주절주절 늘어놓았다.
깐깐해 여사는 싱글이지만 독신을 지키고
또 교리를 절대적으로 따르는 가톨릭 신자이다.
그러나 의외적으로 깐깐해 여사도 궁금증에
기꺼이 가 보고 싶다고 말했다.
"아니 구설수 님!
정말로 그런데가 있다는 말씀이세요?"
"아이 그렇다니까요 깐깐해 여사님!"
구설수의 말을 전해 들은 후 깐깐해 여사는 궁금증을
못 이겨 함께 가보기로 결정을 한 것이다.
마침 일요일 1시에 함께하는 단체에서 송년회가
있어서 깐깐해 여사와 함께 다녀왔다.
두 사람은 3시쯤 행사를 마치고 파고다공원으로
향했다.
구설수는 고상녀에게 다른 여자를 만나지 않겠다는 뜻으로
싱글모임 사람들의 전화를 차단했었다.
그것은 고상녀가 다른 여자를 만나지 말라는
언질이 있었기에 환심을 사기 위해 한 것이었다.
구설수는 휴대폰 차단 해제를 하고 오후 4시쯤
회장에게 전화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저 생수 담당 문상희입니다."
"아이고 문 선생님 반갑습니다."
"예~, 회장님!
오늘 근처에 나온 김에 모임에 가 보려고요!
오늘도 5시에 그 장소에서 모임을 하는가요?"
"예, 문 선생님 그렇습니다."
"그러면 이따가 뵙겠습니다."
구설수는 깐깐해 여사를 모시고 파고다공원
골목으로 걸어갔다.
깐깐해 여사는 한편으론 궁금하고 또 불안해
하는 것을 달래기 위해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다.
두 사람은 조금 일찍 모임장소에 도착했고
깐깐해 여사는 다소곳이 자리에 앉아있었다.
정각 5시쯤 회장의 개회 인사사 끝난 후
예상대로 깐깐해 여사는 미팅을 나갔다.
모임의 한 남자가 미팅을 청한 것이다.
잠시 후 구설수가 술기운에 또 호방한 성격 탓에
호구를 자청해 돈을 뿌리고 어울렸던 삼인방 여인들이
차례대로 나타난 것이다.
구설수는 저번에 술자리를 함께한 세 사람이
싱글 모임의 고정 멤버라고 생각했다.
구설수는 그 시점에서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애인은 분명 한명이면 될텐데!
왜, 매주 나와서 매번 다른사람과 미팅을 해야할까?
그 여자들은 분명히 이 모임의 주체일거야!"
구설수는 그 여자들이 소위말하는 얼굴마담
역할을 하는 게 아닌가 하고 짐작을 했다.
얼굴이 반반한 여성 고정 멤버들이 나와서
분위기를 돋웠고
구설수는 그들로 인해 새로운 남성들을 유입해서
모임이 유지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구설수가 두 번째 모임에 참석해서야 분위기를
느끼고 스스로 해답을 찾은 것이다.
또한 싱글 모임이 여러 군데 더 있으며
부유한 사람들은 호텔에서 싱글 모임을 한다는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되었다.
2주가 지나고 구설수는 일에 매진하며 종로의
해프닝을 조금씩 지워갈 때 한가한 작가님께 또
전화가 왔다.
"따르릉따르릉따르릉"
"여보세요?
아이고 안녕하십니까 한가한 작가님!
크리스마스 때는 교회일로 많이 바쁘셨지요?"
"아이고 맞아요 맞아!
이제 좀 한가해서 전화를 했답니다. 하하하"
"안 그래도 그런 것 같아 나는 전화도 문자도
자제를 했지요! 하하하 하하하"
"그나저나 연말인데 뭐 하십니까?"
"뭐, 홀아비가 갈 데가 어디 있나요?
그냥 원수 같은 막걸리 병이나 끼고 살지요!
하하하하"
"그러면 이번 싱글모임에서 재혼에 성공한 커플과
가수도 출연하는 송년회를 한다니까 한번 가봅시다."
"나는 가봤자 퇴짜나 맞을게 뻔한데 영 내키지가
않습니다."
구설수는 아픈 기억 때문에 한 발짝 물러섰다.
"아이고 뭐 그냥 구경삼아 가는 거지요!
일요일에 별일 없으면 함께 가보도록 합시다."
구설수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거절을 못하는
성격탓에 또 재혼을 한 커플이 나온다기에
어떤 커플일지 궁금증에 가보기로 결정을 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몇 시에 어디서 만나면 좋을까요?"
"올해 마지막 일요일 4시쯤 종로3가역
맥도날드에서 만납시다."
"알겠습니다.
그럼 시간 맞춰서 맥도날드로 가겠습니다."
구설수는 싱글모임에서 알아볼 수 없도록 한복을 피해서
캐주얼에 마스크도 쓰고 나갔다.
"안녕하십니까 한가한 작가님!"
"아이고 반갑습니다. 구설수 시인님!
한복을 안 입어서 몰라봤네요! 하하하하"
"구설수 시인님께 이쁜 친구를 소개하겠다고
엉큼해 여사님이 나오셨답니다."
"안녕하세요 구설수 시인님!
추운데 얼른 여기로 앉으세요!"
"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두 사람은 커피와 콜라를 마셨고 구설수도
미리 시켜둔 아메리카노 커피를 마셨다.
"우리 친구 뺀질이가 지금 전철 타고 이리로 오고 있답니다.
그나저나 5시가 다 되었으니 전철역에서 만나
같이 가도록 하지요 뭐"
"예, 그러면 그렇게 합시다."
세 사람은 전철역으로 함께 걸어갔다.
"아이고 저기 우리 친구 뺀질이가 오고 있네요!"
뺀질이는 세 사람을 향해서 인사를 했고
세 사람도 반갑게 인사를 했다.
뺀질이 여사는 쌍꺼풀을 한 흔적이 엿보였지만
전형적인 미인과였다.
구설수는 편하게 생각했다.
"그래, 기왕 속은 것 어디가 거짓이고 어디가 진실인지
한번 더 속아보자!"
구설수는 기왕지사 이렇게 되었으니 편하게 생각을 했다.
네 사람은 나란히 걸으며 파고다공원 골목 싱글모임 장소로 향했다.
구설수는 또 호기가 발동해서 말을 했다.
"미팅이 뭐 별거 있나요?
망년회를 연다니까 구경이나 하다가 우리끼리
내려와서 술이나 한잔하러 갑시다."
구설수의 말에 세 사람은 동의를 했고 네 사람은
싱글모임 장소로 올라갔다.
개회시간이 안 됐음에도 불구하고 대형 룸에는
벌써 약 오십 명이 모여있었다.
네 사람은 한쪽 구석지로 가서 겨우 앉을 수가 있었다.
잠시 후 회비 거출을 할 때는 더 많은 사람이
들어와서 대략 칠 팔십 명이 되었고
그들은 의자가 없어 계속해서 서서 있어야 했다.
구설수는 이리저리 둘러보았으나 이번 모임에
삼인방은 보이지 않았다.
엉큼해 여사에게 물어보니 다른 싱글모임에
갔을것이라는 대답을 들었다.
사회자가 개회를 선언하고 이어서 회장의
인사말이 이어졌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회장의 인사말이 끝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다음 회장이 십 년 전 재혼을 한 커플을 소개했다.
그분은 연금빵빵 공부원 출신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팔십대로 보이는 남성 커플은 마이크를 잡고
싱글모임을 극찬했고 이어서 노래도 한곡 불렀다.
그러나 부인인 여성 커플은 패딩에 마스크까지
쓰고 있어 어떤 얼굴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아니, 이 모임에서 재혼을 했으면 당당하게
인사를 하면 될 텐데 왜 얼굴을 가릴까?
아, 그렇구나!
싱글모임이 이십 년이 넘었다고 했으니 이중에
미팅을 했던 사람도 있을 테니 민망해서 얼굴을
가렸겠지 뭐!"
구설수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을 했다.
이어서 회장은 어디서 본듯한 3류 가수 두 사람을
소개했고 그들은 망년회 분위기에 맞는 노래
두곡씩을 불렀다.
흥이난 회원들은 무대 앞으로 나가서 신나게 춤을 추었다.
어느 모임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광경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회원들은 서로가 마음에 드는 사람을
골라 미팅을 이어갔다.
구설수는 분위기가 성격에도 맞지 않아 소음 속에서
한가한 작가에게 눈짓을 보냈다.
"한가한 작가님!
나가서 우리끼리 한잔하러 갑시다."
"예, 그러지요 뭐."
한가한 작가는 엉큼해 뺀질이 여사에게 나가자는
눈짓을 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다른 놈팽이들과 눈빛을
주고받으며 교감을 하고 있었다.
이것을 모르는 구설수는 여자들에게 말했다.
"우리가 먼저 내려갈 테니 시차를 좀 두고서 이따가 내려오세요."
소음 때문에 전달이 잘 됐는지는 모르지만
구설수와 한가한 작가는 아래로 내려갔다.
"아니, 담배를 한대 다 피우도록 아직도 안 내려오네요?"
"아이고 구설수 시인님!
아까 보니까 다른 놈팽이들과 미팅을 하려고
눈빛을 주고받던데요?"
"아니, 우리끼리 한잔 하자고 아까 약속을 했잖아요?"
"아이고 내가 보기엔 물 건너간 것 같아요!"
"그래도 그렇지요!
사람이 약속을 해놓고 이래도 되는 겁니까?"
다시 그 자리로 가봅시다."
두 사람은 괘씸한 마음이 들어 행사 장소로 다시 올라갔다.
그때는 이미 뺀질이 여사와 엉큼해 여사는 다른 놈팽이들과
미팅을 위해 다른 방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화도 났고 다급했던 구설수가 엉큼해 여사님께
물었다.
"아니, 우리끼리 내려가서 한잔 하기로 했잖아요!"
"아이고 저는 몰라요!
두 분이 나가시길래 가셨나 보다 했지요!"
"이놈의 모임은 약속도 신의도 없는 곳이구나!"
구설수는 어이가 없어 한가한 작가에게 말했다.
"아이고 한가한 작가님 갑시다.
내가 이런 사람들을 믿은 게 바보지요 허허, 참!
갑시다 남자끼리 가서 한잔 합시다."
구설수는 어이가 없어서 한가한 작가에게 말했다.
"예, 그럽시다 뭐!
내가 오륙 년 다녀봤지만 좀 그렇기는 해요!"
"세상에 믿을 수 없는 게 여자의 속마음이라지만 이럴 수가 있을까요?"
두 사람은 한잔 할 곳을 찾아 이리저리 살피며
골목으로 걸어갔다.
그때 "술과 안주 노래방까지 일거에 해결"이라는
간판을 보고 지하실로 내려갔다.
그러나 두 사람은 내려가는 계단에 쓰인 글귀를 보았다.
"싱글모임 주선해 드립니다.
선남선녀 짝을 맞춰드립니다."
구설수는 아연실색을 했다.
"아니, 지금까지도 속았는데 또 미팅이야?
한가한 작가님 다른 데로 갑시다 "
두 사람은 다시 올라와서 거리를 헤매었다.
"구설수 시인님!
내가 아는 술집이 있는데 그리로 갑시다."
"예, 그래요 뭐!
차암 종로바닥은 다 이런 모양이네요! 허허 참!"
한가한 작가를 따라서 간 곳은 생음악 연주에
무명가수가 나와 노래를 하는 곳이었다.
오십 평 규모의 좌석은 거의 차서 두 사람은 구석진 자리를
찾아서 앉았다.
한참이 지나서야 명찰을 단 여성 외이터가 와서
주문을 받았다.
"손님, 뭐 드릴까요?"
두 사람은 메뉴판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막걸리와
해장국 안주를 시켰다.
얼마나 주문이 많은지 이십 분이 지나서야 술과
안주가 나왔다.
"저, 손님!
파트너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불러주세요!"
그러자 한가한 작가가 만 원짜리 지폐를 외이터에게
건네주며 미팅을 부탁했다.
잠시 후 푸짐한 칠십 대 아주머니와 외이터가
테이블로 왔다.
"연말이고 해서 부팅이 어려우니 우선 한분만
소개하고 또 있으면 붙여드릴게요!"
한가한 작가는 양보를 하면서 구설수 옆에 앉기를
권했다.
푸짐한 칠십 대 여인네는 호구처럼 보이는 구설수를
쳐다보며 옆에 앉았다.
"여기 앉으세요!
우리는 막걸리를 마시는데 한잔 하실래요?"
"아니요!
저는 약한 소주로 하겠습니다."
한가한 작가는 벨을 눌러 소주를 시켰다.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건배를 했지만 여인네는
술을 마시지 않고 마시는 흉내만 냈다.
여인네는 구설수에게서 나는 향수 얘기와
이것저것 두 사람의 속내를 계산하고 있었다.
술안주도 거의 바닥이 났으나 여인네는 통박을
구르면서 단 한잔도 마시지 않았다.
한참을 생각하던 구설수는 아니다 싶어서 정중하게
여인네를 돌려보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그때 한잔 합시다.
우리도 갈 곳이 있어 가야 할 것 같습니다."
구설수는 또 한 번의 미팅이라는 해프닝을 겪은 채
술값을 계산하고 밖으로 나왔다.
구설수는 이래저래 허탈한 마음에 한가한 작가에게
말했다.
"우리 저번에 갔던 전통찻집에 가서 쌍화차나
마시고 집으로 갑시다."
"아이고 좋지요!
그런데 어딘지 아시겠어요?"
"아이고 내가 내비게이션입니다.
한번 간 곳은 절대로 안 잊어먹고 간답니다."
구설수는 앞장서서 쌍화차 파는 집으로 들어갔다.
아, 뿔, 사,
그곳에서 뺀질이 여사는 다른 놈팽이와 미팅에
열중이었고 엉큼해 여사는 미팅을 마치고 막
나가는 중이었다.
두 사람은 모른 척하며 이번에도 구설수는 주문과
계산을 마치고 구석진 자리로 가서 앉았다.
전통 찻집도 마찬가지로 남녀 간의 미팅이 여기저기서
이뤄지고 있었다.
그때 엉큼해 여사가 두 사람의 자리로 왔다.
"아이고 두 분이 나가시길레 좋은 짝 만나서
가는 줄 알고 우리도 미팅을 했지요! 호호호"
엉큼해 여사는 모른 척 시치미를 떼고서는
호들갑스럽게 말했다.
"아니, 우리끼리 내려가서 한잔 하기로 했잖아요!"
"아이고 시끄러운데 그 말이 들리나요?
우리는 두 사람이 나가시길레 우리도 미팅을 했지요!"
참으로 어이가 없는 엉큼해의 답변이었다.
세 사람은 쌍화차를 마시고 밖으로 나왔다.
한참 후에 엉큼해 여사의 폰으로 뺀질이 여사에게
전화가 왔다.
"어디 있는 거야?
"응, 우리는 여기 또 와요 아이스크림 집에 왔는데?"
"알았어, 그리로 갈게!"
여덟 시가 넘어서야 네 사람은 다시 한자리에 앉았다.
여인네들은 변명하기에 급급했고 구설수는 그들의
이중적인 행동에 완전히 배신감을 느꼈다.
엉큼해와 뺀질이 여사는 애프트를 얘기하며
연초에 신년회를 하자고 제안했다.
구설수는 건성으로 그러자고 대답을 했다.
"다시는 오지 않겠다고 맹세를 했는데!
내가 왜 또 와서 이런 허망함을 겪을까?"
구설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구설수는 세 사람을 같은 방향 1호선 전철로
보내고 집으로 가는 전철에 올라탔다.
구설수는 그 모임으로 인해 노년의 싱글들이
행복해졌으면 하는 바램을 마지막으로 발길을 끊었다.ㅁ
*아래는 광고성 벽화를 찍은 사진입니다*